화병(火病)에 대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감성이 풍부하다고 한다. 중국의 역사책에서부터 한민족이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인정하고 있거니와, 오늘날 우리 문화가 한류라는 용어로 외국에서 인정받는 것도, 지난 2002년 월드컵에서 기대를 넘어서는 성과를 올린 것도 그 풍부한 감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런 한편, 이러한 감성을 다스리지 못해 나타난 병리현상이 있으니, 한국인의 대표적인 정서로 표현되곤 하는 한(恨)이다. 한이란 원하는 바나 억울함이 풀리지 못하고 응어리져 마음에 맺힌 상태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는데, 한을 품다 병에 이른 것이 화병(火病)이다. 화병은 국제의학계에서도 ‘Hwabyung’이라는 정식용어로 규정되면서 한국적 정신신경장애 증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재판을 진행하면서도 화병에 걸린 것 같은 당사자를 더러 만나게 된다. 일부이긴 하지만 법정에서 흥분해 고함을 지르고, 재판 진행을 위한 대화 자체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법정이야말로 가장 이성적으로 행동하면서 이익을 최대한 실현시켜야 할 곳이 아닌가. 재판을 이기게 해 주는 것은 빈틈 없는 주장과 이를 입증할 증거이지 큰 목소리가 아니다. 그러함에도 이해해야 할 것은, 이렇게 법정에서 흥분하는 분들 중 많은 경우는 자신의 감정을 너무 오래 참아와 폭발해 버린 분들이다. 진작 표현했더라면, 아니면 법원이라도 조금 더 일찍 찾았더라면 소송의 승패 여부를 떠나 그렇게까지 마음고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하지만 감정의 폭발은 상대를 설득시키지 못하는데다 또다른 피해자를 만든다는 점에서 좋을 게 없다. 감정은 그때그때 표현하는 게 좋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때부터 밉지 않고 과하지도 않게 소박한 감정 그대로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아울러 상대방의 솔직한 표현을 너그러이 받아줘야 함도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이 사회에 의사소통이 활발해지면 화병도 많이 없어질 것 같다. 법률가이니까 한마디, 법원은 한을 풀 수 있는 곳이다. 법정에서 모든 한을 풀어 줄 순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법으로 해결하는 영역은 현재보다 더 늘어나야 한다는 생각이다. 재판을 꺼리다보면 다툼은 흔히 힘 있는 자나 목소리 큰 자의 뜻에 따라 해결되고, 그 결과가 한맺힘 또는 화병이다. 이 점에서 국제적으로 알려진 병인 화병을 없앨 짐은 신경정신과 의사들보다 판사들에게 더 지워진 것 같다.

교육개혁의 속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노무현 정부와 다른 새로운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역시 영어 말하기 교육일 것이다. 그러면 학교 현장에선 영어말하기 교육이 준비돼 있는가? 아직 준비돼 있지 않다. 학생들은 영어말하기 수업 준비가 돼 있을까? 물론 아니다. 갑자기 이뤄지는 말하기 수업을 위해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할 수 있어 두렵다. 이에 대한 교훈을 바로 5년 전 참여정부의 교사 정년단축 실패에서 찾아보고 싶다. 참여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교육개혁을 빙자해 교사의 정년을 65세에서 62세로 단축했다. 그 조급한 개혁의 후유증으로 아닌 밤중의 홍두깨가 돼 얼마나 많은 원로교사들이 교단을 떠났던가. 중·고교도 혼란스러웠지만 특히 초등학교는 교단을 떠났던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기간제교사로 다시 들어와 근무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교원의 정년을 단축하려면 적어도 1~2년 정도는 예보 기간을 두어 6개월 단위로 끊어 연차적으로 서서히 단축해야 무리가 안 일어나고 순리대로 됐을 것이다. 이를 뭐 마른 하늘에 벼락이라도 치듯 서둘러 3년을 단축해놓으니 혼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그것도 말없이 그냥 보냈으면 괜찮았다. 마치 대부분의 교사들이 촌지나 받고 있는 것처럼 매스컴을 동원해 보도하고 학교 공교육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시켜가면서 내보냈다. 얼마전 한 보도에 의하면 명퇴신청 교사들이 급증했다는 것이다. 명퇴신청 교사들의 대부분은 영어과 교사들이 아닐까? 갑자기 말하기 수업만이 영어교육의 전부인양 떠들어대니 말하기에 자신이 없는 교사들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교단을 떠나려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수업을 영어로만 수업하는 일은 중등교육에서 필요하다고 수긍하겠다. 그러나 국어 수업만 빼고 수학, 과학, 사회 등마저 영어로 수업해야 할까? 이것은 좀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특히 초등학교에선 현행처럼 읽기, 듣기, 독해능력, 말하기 등의 기초교육을 5학년 때부터나 실시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시절엔 영어교육보다 우리 국어 교육을 더 철저하게 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으로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혹여 교사들 정년을 연장하려면(정년 연장설이 떠돌고 있음) 이것도 2~3년 정도 예보 기간을 두어 6개월 단위로 알게 모르게 연장해야 한다. 그래야 혼란을 최소화해 교사들의 사기를 앙양시키게 될 것이다. 교육개혁은 조용히 물 흐르듯 알게 모르게 실시해야 한다. 서둘러 성급하게 추진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참여정부의 교사 정년단축의 실패를 교훈 삼아 좀 더 차분하게 계획을 세워 연차적으로 실시하길 바란다.

희망 한국으로 질주하는 국민열차

무자년 새해가 벌써 한달이나 지나갔다. 계획된 일들이 차질 없이 잘 진행돼 가고 있는지 점검 해볼 일이다. 새해 벽두 화두는 단연 ‘희망 한국’이다. 길고도 먼 터널 속에서 희미하게 끝이 보이고 안개정국이 서서히 걷히는 순간이다. 대한민국호 국민열차가 힘차게 꿈과 희망 등을 싣고 미래를 향해 질주하며 신바람의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세계 경제학자들과 CEO들은 몇가지 조언들과 함께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커다란 기대감을 갖고 있다. 아울러 대한민국이 제2의 경제도약으로 선진국의 진입을 조심스럽게 점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위대한 지도자는 위대한 국민 속에서 나온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훌륭한 지도자가 정국을 이끌어도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성숙하지 못하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선진의식으로 1등 국민이 돼야 한다. 또한, 정치는 민심을 읽어야 하고 민심은 천심이라 했는데 천심과 대자연의 이치는 심오한 우주의 질서와 원리 속에서 우리들의 지나온 삶을 반추하게 하며 지금 이 순간의 자화상을 정확한 좌표로 인지시켜 주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올바른 방향과 대안을 제시해 주고 있다. 우리의 영토는 비록 작지만 산과 바다가 있고 기름진 옥토가 있다. 우리에겐 4계절이 있고 24절기의 기후변화에 따른 신속한 적응을 위해 빨리빨리 문화가 형성돼 있다. 21세기는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신기술 개발 등의 순발력을 요구하고 있다. 올바른 방향과 대안 등을 제시해 주면 신바람 나게 열심히 일하는 근성이 있는 단일 민족국가다. 70년대 새마을운동이 그랬고 88올림픽과 2002월드컵, 금모으기 등이 증명하고 있다. 우리에겐 충분한 가능성과 지혜가 있다. 높은 교육열과 문화관광산업의 다양한 콘텐츠개발, IT·BT·NT의 부가가치의 지식기관 산업의 융합기술까지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한 민족은 성장 동력에 시동만 걸어준다면 고속 성장할 것이다. 글로벌시대에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근면하고 부지런한 새마을정신으로 제2의 경제성장을 통해 ‘희망 한국’을 활짝 열어 가야 한다. 물론 미국 경제의 불안요인과 고유가시대 극복해야 할 난제들이 많지만 국민들의 정서에는 소수점 이하의 나머지도 있고 특별 보너스의 덤이라고 하는 국민정서가 있기에 아직도 충분한 여지와 기회가 있다.

수원천주교 순교역사와 북수동성당(수원성지)1

수원천주교회 역사는 박해시대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피를 흘린 순교의 역사이며 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우여곡절 끝에 1776년 조선왕조 제20대 왕에 즉위(1776년)한 정조대왕(실명:이산 1752~1800년)은 11살 어린 시절 당쟁의 회오리 속에 8일 동안 뒤주에 갇혀 통한을 뿌리며 비참하게 죽어간 부친 사도세자의 명예를 회복시키고자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부친 사망 이후 동궁의 몸으로 14년 동안 수십차례 자객들의 습격을 받는 등 숱한 생명의 위협을 겪어야 했던 정조대왕은 왕권을 확립하며 새로운 개혁정치를 결행해 나가게 된다. 1789년 서울 동대문 밖 배봉산에 있던 부친 사도세자의 묘를 풍수지리상 명당자리로 널리 알려진 수원의 화산(花山:옛 수원읍치 온갖 꽃이 피는 산 현 융릉 일대)으로 이장한다. 묘이장 때 개혁파인 남인계 다산 정약용의 지혜로 한강에 놓여진 부교를 통해 이장행렬이 안전하게 건너게 됨으로써 정약용은 정조대왕의 신임을 얻고 후에 수원화성 설계가 그에게 맡겨진다. 부친의 묘를 현융원에 모신 정조대왕은 해마다 부친께 효성의 예를 드리기 위해 한양에서부터 능행길에 오른다. 당시 현재의 수원 도심은 존재하지 않았을 때였다. 정조대왕은 부친의 묘역이 새롭게 드러선 융릉 일대 구 수원 읍치에 살던 주민 677명(가구수 244호)에게 넉넉한 보상금과 이사비용을 내주고 이주민들이 새로운 읍치에서 빨리 삶의 터전을 잡고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수원을 자신의 정치적 개혁을 실현할 제2의 한양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역사상 첫 신도시계획을 진행한다. 정조대왕은 남인파의 수장이었던 채재공 재상을 비롯, 정약용, 이가환 등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던 개혁성향의 천주교 학자들을 대거 등용하며 수원화성에 관아와 향교, 상가, 도로, 교량 등 도시 기반시설들을 마련하고 농업진흥 생산기반시설로 만석거(일왕저수지), 만년제, 축만제 등 인공호수들을 조성하는 한편, 세제혜택과 과거를 통한 인재등용의 기회를 주는 등 다각적인 민생대책을 강구하는 한편 수원을 현재의 직할시격인 유수부로 승격시킨다.

왜 전봇대에 오줌을

“왜 개들은 전봇대에 오줌을 싸는 걸까요?” 선배 문인에게 물었다. “그건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서지. 그런데 오줌을 싸는 건 비단 개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싸긴 하는데, 그건 울분을 표하는 거래. 내가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어느 소설가가 내게 말해준 바로는, 일제억압시대에 일본이 끌어들인 대표적 문명 도구 중 볼썽 사나운 것 하나가 전봇대라는 거야. 그래서 당시 유명했던 소설가 한 분의 작품 속에, 술에 취해 울분을 토하며 전봇대에다 오줌을 갈기는 장면이 나온대. 그래서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술만 취하면 전봇대에 울분과 함께 오줌을 퍼부었다고 하는군.” 이런 전봇대가 요즘 또 이슈가 됐다. ‘전봇대는 전주(電柱), 또는 전신주 등의 속어로 키 큰 사람의 별명으로도 쓰인다’고 사전 풀이가 되어 있다. 전기와 통신은 요즘 현대문명의 절대적인 이기로 공기나 물만큼 필수적이며 자연적인 도구이다. 자연적인 것이라고는 하지만 또한 인위적 물질문명의 상징으로 표현되곤 한다. 전깃줄과 함께 전봇대는 푸른 하늘에 걸려있는 흰 구름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든지, 마지막 숨을 고르며 넘어가는 빨간 석양을 몇등분해 놓는다든지, 쭉 뻗은 가로수들 사이에 끼어 나무들의 행진을 막아선다든지 한다. 단지 풍경과 미학 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도로나 토지, 구역, 건물 등의 건설문제로 사유재산에 침해를 주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선 고압철주가 사람의 건강은 물론 농작물에도 심각한 장애를 일으킨다고 주민들이 집단 항의를 하기도 한다. 폭풍우 등에 의해 전봇대가 쓰러져 전기와 통신 등이 끊어지면서 생활과 산업 등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필자는 그렇지 않아도 평소 지상의 전봇대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제 대운하뿐만이 아니라 전봇대의 지중화 문제에도 커다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어쩌면 대운하보다도 더 시급한 문제일 수도 있다.

中企의 진화 3단계

중소기업들을 30년 동안 지켜보아왔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을 담당하던 신입사원 시절부터 중소기업 수천곳의 파트너였던 구매본부장 시절까지 중소기업들은 늘 사업의 중심 테마였다.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협업기업협회(한국ICMS협회) 역시 중소기업간 협업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주요 업무여서 중소기업들과는 불가분(不可分)의 입장에 있다. 여기에 정보를 주고받는 중소기업들이 4천여곳에 이르는 협회 회원사들을 중심으로 족히 1만곳은 넘을듯하다. 이처럼 지난 30년 동안 중소기업들과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중소기업의 탄생부터 소멸에 이르는 흥망(興亡)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흥망과 매출 사이에 묘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체득하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소기업의 연간 매출은 50억원, 300억원, 1천억원 등의 3단계를 거치며 진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학술적 논리가 바탕이 된 건 아니다. 또 모든 중소기업들이 예외없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30년 동안 중소기업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경험적으로 가늠해 본 결과이니 오해 없길 바란다. 먼저 50억원의 매출은 가내수공업적 영세기업에서의 탈피를 의미한다. 창업 후 소상공인에 불과하던 기업이 이제는 기업 형태를 갖추고 창고형 공장, 혹은 대학의 인큐베이팅 협력기업 등에서 벗어나 스스로 걷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중요 시점이다. 300억원의 매출은 기업으로서 “고지가 바로 저긴데…”하는 심정으로 IT기업의 경우 코스닥 상장을 꿈꾸는 신천지이다. 성공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느껴지며 이제는 오너, 혹은 CEO의 개인 기업에서 벗어나 시스템이 절실한 시점이다. 1천억원의 매출. 이는 중소기업들에게는 그야말로 중견기업으로 들어서는 등용문이자 제조기업도 상장을 준비하는 뿌리가 튼튼해지는 단계이다. 뿌리가 깊은만큼 웬만한 비바람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 대기업도 아닌 창업기업부터 중견기업에 이르는 과정이 순탄하기만 할까. 뼈를 깎는 구성원들의 희생 속에 계속적인 성장이 없으면 고사(枯死)하기 쉬운 허약체질이 50억원대 매출기업이고 뒤를 돌아다볼 수 있는 여유에서 주저앉거나 재테크라는 한눈을 팔다가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300억원 매출기업의 어려움이다. 1천억원대 매출기업의 안정감은 오너, 혹은 CEO의 도덕적 해이에 의해 우량기업이 흑자 도산할 수 있음도 우리 경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내일의 성공을 꿈꾸며 오늘을 인내하는 모든 중소기업들이 50억원, 300억원, 1천억원 등을 지나 무한한 성공을 이루기를 소원해 본다. 권재형 한국협업기업협회 회장

성남아트센터와 사랑방 문화클럽

성남아트센터는 지난해 10월 개관 2주년 기념 페스티벌을 열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낙소스섬의 아드리아네’를 직접 제작, 국내 최초로 무대에 올렸고 지난 2005년 개관 기념으로 성남아트센터를 찾은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라 벨르’로 다시 성남 시민들과 만났다. 독일 지휘계의 거장들인 푸르트뱅글러와 오토 클렘페러 등을 잇는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뮌헨 필하모닉과 함께 펼친 국내 최초의 공연은 음악을 사랑하는 성남 시민들에게 강한 영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불과 2주년을 넘긴 성남아트센터는 성남 시민들에게 세계 최고의 예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장을 펼치며 인류가 축적해 온 최고의 정신적 창조물을 누리며 즐기는 아이콘이 됐다. 그렇다! 인간에게는 예술이란 인류의 창조적 성과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도시는 시민들에게 그 권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혹자는 그런 도시를 일컬어 ‘문화를 누리는 도시’라고 부른다. 도시는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를 안고 있다. 최고의 예술을 누림과 동시에 시민들 누구나 자신의 창조성을 발현하는 주체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창조적 힘이 있다. 아니 창조적 활동이야말로 인간을 만들어 온 힘이다. 성남에는 1천여곳이 넘는 시민 문화예술 동호회가 자신들의 창조적 꿈을 펼치며 삶터 곳곳에서 예술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랑방 문화클럽은 이러한 시민 문화예술 동호회의 네트워크를 이어주고 날개를 펼칠 기반을 닦는 정책이다. 오페라하우스에서 ‘낙소스섬의 아드리아네’가 공연되고 있던 날, 콘서트홀에선 아마데이 만돌린챔버, 로망스기타합주단, 경기교사리코더, 분당민트오케스트라, 라모댄스클럽, 윈드매니아, 분당여성합창단, 풍물굿패두렁, 여섯줄사랑, 가족놀이공간산도깨비, 스튜디오창 등 사랑방 문화클럽에 참여하는 시민 문화예술 동호회들의 축제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성남아트센터를 중심으로 펼쳐진 사랑방 클럽축제에 참여한 클럽 출연진만도 710명. 성남아트센터에서 창조적 시민들의 꿈은 바로 현실이 됐다. 도시는 최고의 예술을 누리는 시민과 모두가 창조적 활동에 나서는 시민, 그 두가지 인간의 고귀한 욕망이 만나는 아트센터(Art Center)를 본다. 혹자는 그런 도시를 일컬어 ‘문화를 창조하는 도시’라고 부른다. 인류 최고의 문화를 누리며, 시민들 모두 문화를 창조하는 아트센터를 위하여! 시민을 위하여! 박승현 성남문화재단 문화기획부장

3가지에 대한 小考 -노블레스 오블리주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각 고을들마다 대표하는 부자들이 종종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부자들이 그렇듯, 자기네만 잘 먹고 잘 살았지, 인심이 후하고 덕 많은 부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경북 경주의 최씨 부자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갑자기 왠 먹고 사는 얘긴가 하고 의아해 하실지 몰라 칼럼의 핵심을 바로 얘기하고자 한다. 필자는 7~8년 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단어를 어느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됐는데 요즘 부쩍 많이 회자되는 신가치적 이슈이다. 영국 왕실에는 군복무의 오랜 전통이 있어 왔는데 현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1945년 공주시절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며 부왕의 만류에도 설득 끝에 여자 국방군에서 복무했고 그의 남편인 필립공 역시 해군 장교 출신이다. 그들의 아들인 찰스왕세자 역시 전투기 조종사와 해군 함장 등으로 복무를 마친 바 있다. 그의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왕자는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마친 뒤 현재 복무 중이며 특히 해리왕자는 고교 졸업 후 바로 진학하지 않고 1년 동안 여러 나라들을 돌며 봉사활동과 견문을 넓힌 후 육사에 입학, 장교로 복무중인 지금은 이라크 파병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우리의 다소 뿌듯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를 늘어보자. 조선시대에도 고을을 지나던 나그네, 또는 형편이 어려운 이웃 등에게 숙식 제공이 큰 미덕이었다. 그런데 자기 식솔조차도 거두기 어려운 형편이 넉넉찮은 경우 손님을 대하기가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내 집에 오신 손님을 내칠 수 없어 적당한 잠자리와 밥상으로는 보리밥 한그릇, 김치·간장 한종지, 그리고 국 등을 내놓았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집안서 국거리가 없을 때 맹물이라도 끓여 손님상에 올렸는데 이것을 ‘백비탕’이라고 한다. 가난했지만 그 형편대로 지나는 길손과 더 어려운 이웃 등에게 최소한의 예와 배려를 베풀었던 우리의 멋진 조상님들. 이 또한 훌륭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서럽고 힘들었던 1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이제 정권이 막 바뀐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꿈 꾼다. 잘 사는 꿈, 취직하는 꿈, 로또가 당첨되는 꿈, 혹은 병이 완쾌되는 꿈…. 지도자나 어떤 계층이 이뤄주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꿈을 꾸기 이전 내가 처한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꿈꾸며 찾아야 한다. 포근한 세상을 위해. 조흔구 의정부YMCA 이사장

나이팅게일의 꿈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세상에 이름을 남기게 된 계기는 19세기 중엽 크림전쟁 당시 간호사로 봉사 할 때 부상보다는 질병에 감염돼 죽는 병사들이 더 많음을 깨닫고 수많은 군인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환경 개선작업에서 시작된다. 오수구덩이를 청소하고 환기구 설치, 건물 일부 개축 등을 통한 부상병의 사망률을 3분의 2 이하로 줄이는 효과를 거뒀으며 그동한 행한 일들과 결과물들의 데이터들을 모아 통계자료를 만들어 비협조적이던 의무 장교나 정책 담당자들을 변화시켜 수많은 군인들의 생명을 구해냈다. 이러한 나이팅게일의 업적은 조리사회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쳐 경기도 음식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과연 우리가 무엇부터 해야하는지를 되짚어보고 그 밑그림을 그리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재 경기도조리사회는 현재 각 분야별로 조리를 하는 주방을 좀 더 효율적이고 쾌적한 환경을 만들기위한 자료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런 데이터들이 쌓여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나이에 정착되는 아이들의 입맛을 좀 더 초기에 슬로 푸드 등 건강음식이나 향토음식 등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우리 고장의 농산물을 활용케 함으로써 지역 생산물 활성화에 기여하게 하며 농·산·어촌 홍보전략과 맞물려 남아도는 농산물들을 프랑스 음식 같은 문화의 상징으로 거듭 나게 해 경기도 향토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데도 커다란 몫을 하리라 믿는다. 우리 시대는 이제 건강을 위해 음식을 섭취하는 시대이다. 그러한 시대를 맞아 음식문화 우수성을 알리게 하는데도 그 순서가 있다. 경기도 향토 음식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첫 번째는 현직 조리사들의 교육수준을 향상시키고 그들이 근무하는 근무환경 개선으로 위생적 여건 확립이 목표다. 우리 고장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들을 영·유아기부터 섭취할 수 있도록 해 지역 농수산물 소비는 건강과 연결됨을 알리는 식생활개선운동으로 음식문화교육을 실시, 농·산·어촌 경제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농작물이 처음 심어질 때부터 우리 밥상 위에 놓여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농가 프로그램들을 통해 미국이 아이들에게 허드슨강의 생태계공부를 통한 창의적 사고능력을 키우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게 해 우리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의 창조적 사고능력과 더불어 세계적 인재로 키우는데 디딤돌이 되도록 하는데 일조를 해야한다. 이 모든 것들이 최종 목표인 경기도 음식문화의 우수성을 알리는데 준비해야 할 첫 번째 준비과제임과 동시에 조리사들의 위상을 높이는 길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동욱 조리사협회 경기도지회장

상식(常識)

상식은 평범한 것이다. 모든 지식은 상식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대중적으로 유통될 수 있다.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사람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인 견문(見聞)과 함께 이해력(理解力), 판단력(判斷力), 사리분별이 포함된다.’ 상식이란 관문을 역방향으로 통과하는 확신이란 이름의 지식도 있다. 이성이 아니라 관습이나 습관 등은 물론 카리스마에 의해 강요되는 상식도 있다. 그래서 상식도 각 계층이나 그룹, 나라 등은 물론 시대별로도 차이가 있다. 여행 중 당하는 문화충격이 그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중세 유럽 대학들은 산수·기하·음악·천문학·문법·수사학·논리학을 기본으로 가르쳤다. 이런 학문에 자연과학·기술이 도전·흡수되면서 새로운 근대적 지식체계가 생성됐다. 이 과정에서 상식도 자랐다. 과학적 해명이 잘 안되는 불가사의(不可思議)로 표현되는 건축물 등은 상식 내부에도 진화(進化)의 씨앗이 있음을 보여 준다. 내부의 임계점(臨界点)을 돌파하는 건 도전자의 몫이다. 고대 사회 종교인이던 무당·박수부터 현대 사회의 지식인까지 누구나 도전자가 될 수 있다. 효율성만 확인되면 대중에게서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격변기에는 이런 상식도 흔들거린다. 개인 이익과 집단의 요구가 난무할 때 더욱 그렇다. 조선은 충효의 나라다. 각계각층이 이에 따라 역할과 임무 등이 부여돼 있었다. 1591년 3월 일본에서 귀국한 통신사 황윤길과 김성일 보고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고 한다. “도요토미의 눈이 쥐새끼 같은 것으로 봐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다.”(김성일) “그의 눈이 빛나고 담력이 있는 것으로 봐 반드시 병화(兵火)가 있을 것이다.”(황윤길) 피바다를 건너 일본 통일을 이룩한 적군 최고 지휘관에 대한 평가 중 일부다. 적군의 병력, 훈련, 장비 및 기동력, 예상되는 침투경로 등이 보고의 주요 부분이 돼야 하는 게 아닌가? 정세를 이해하고 전력을 발전시키는데 충효사상이 무슨 의미를 가르쳤던가? 적개심(敵愾心)만 불태우면 모든 게 해결되는가? 웅비하는 중화 인민공화국과 재도전하는 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을 옆에 둔 대한민국의 지난 10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무엇인가? 타성화된 상식의 심층구조에 눈을 돌릴 때이다. 공통 불만으로서 상식이 아니라 공통 도전으로서 상식을 진화(進化)시키자. 평범하게.

사실과 느낌 사이

올해 팔순을 넘기신 아버지께서 조그맣고 탐스런 바윗돌 하나를 주워 오셨다. 물론 오래 전 일이다. 며칠 동안인가? 안방에서 돌 다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을 뿐인데 어느 날 바로 그 바윗돌이 퇴근하는 필자를 마중 나와 현관구석자리에 폼 나게 서있는 게 아닌가! 고산포시(高山布視)라 새긴 가슴팍을 내밀면서…. 당신께선 지금껏 그 말뜻을 일러주신 적이 없다. “알아 볼만한 자식들이니까…”했을 법하다. 필자 역시 “높은 산에 오르면 보다 멀리 바라 볼 수 있다”는 말 같구나 하며 여쭤보질 않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아버지께서 이 평범한 이치를 통해 뭔가의 교훈을 주시려 한 건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는 아들들을 향해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넓은 안목과 다면 시각을 가지라”는 채찍을 든 것 같기도 했다. “상사와 생각이 다를 때에는 윗사람 뜻이 옳을 경우가 많음을 알고 겸손 하라”는 주문처럼 느끼기도 하고, 아는 만큼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는 가르침으로도 알고 마음에 담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문제는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요즘에도 실수다운 실수로 종종 망신을 당할 때가 있다. 돌아가는 분위기나 느낌만으로 분명 그렇고 그런 것이리라 여기고 불호령을 내리고 나서 보면 사실이 아닌 경우가 그렇다. 참으로 무안한 처지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만대 차량들이 고속도로를 오간다. 인간사가 다 그렇듯 우리의 소홀함도 있겠지만 고객의 오해로 빚어지는 일이 없을 수가 없다. 필자는 책임자랍시고 늘 강조하는 바가 있다. “고객의 불만이나 주장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옳다고 여기고 응대하라”고 말이다. 고객이 잘못 알고 터무니없는 요구나 질책을 하는 경우라도 결국 우리가 제대로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그런데도 회사 홈페이지 사이버 민원실에는 하루도 빤할 날 없이 고객의 질책이 올라온다. 이를테면 며칠 전 어느 톨게이트로 일시에 차량들이 몰리자 사무실 근무 여직원들이 모두 나와 빠른 소통을 돕는 광경을 본 어느 고객이 “남성 직원들은 뭣하고 연약한 여성 직원들만 추위에 떨게 하느냐”며 온갖 욕설로 공직자의 근무태도를 사정없이 나무랐다. 그분의 느낌만으로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사실은 톨게이트 근무자가 대부분 여성 직원이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광경일 뿐이다. 그분만 탓할 일은 아니다. 사실이야 어떻든 느낌이 그러하면 느낌을 사실로 믿고 마는 우리 인간의 속성을 주신 신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고산포시(高山布視)를 바윗돌에 새기신 아버지의 의도와 필자의 느낌 사이에는 어떤 차이라도 있는지 새삼 여쭙고 싶어지는 건 까?

우연과 요행

우연의 결과에 의해 좌우되는 승패에 돈을 걸고 내기를 하는 것을 도박이라고 한다. 우리가 명절 때마다 하는 고스톱이 대표적인 예이다. 도박에서 돈을 잃고 기분 좋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친척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고스톱이나 포커를 치더라도 돈을 잃은 사람들의 표정은 항상 벌겋게 달아올라 있게 마련이다. 무엇이 원인인지 알 수 없으나 도박이라는 미묘한 승부에서 패배한 사람은 이성을 상실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우연에 의해 결과가 좌우되는 도박의 성격상 결과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의 결과라는 도박의 속성상 도박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언젠가는 우연의 신이 자신에게 미소를 지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우연을 기다리다 보면 이미 더 이상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갑자기 도박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필자가 변호인으로 만난 상당수 피고인들이 도박 때문에 범죄로 내몰린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지역적 특성상 수원지법 관할 구역에 있는 피고인들 중 상당수는 한국마사회가 합법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도박인 경마와 적지 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최고의 명문대 법대 대학원에서 위탁교육을 받고 있던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를 소총을 든 강도로 돌변하게 만든 장본인도 바로 경마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도박은 요행을 바라는 인간의 본능적인 심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요행을 바라는 사람이 또한 빠지기 쉬운 게 사기꾼의 유혹이다. 사기죄 피해자들은 제3자가 보기에는 말도 되지 않는 거짓말에 쉽게 빠져든다. 요행을 바라는 사람들은 사기꾼의 감언이설을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며 실현 가능하다고 판단한다. 그의 두뇌에는 이미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아닌 요행에 의존하는 회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피해자를 기망한 사기꾼은 정말로 엄한 처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어이 없는 감언이설에 속은 피해자도 요행을 바랐던 자신의 솔직하지 못한 기대를 한번쯤 반성할 필요가 있다. 우연이나 요행을 바라는 사람은 한없이 불행하게 마련이다. 우연이나 요행을 바라는 간사한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정당한 노력에 따른 확실한 결과를 추구하는 게 마약보다 무서운 도박에 중독되지 않고 가증스러운 사기꾼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 가장 손쉬운 마음가짐임을 새삼 명심할 필요가 있다. 민기영 변호사

진화 그리고 메타리더

지금 대한민국은 전 분야에 걸쳐 개혁이다 변화다 하며 들떠 있는 분위기다.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새 정부 정책들을 논하는 새 정부 인수위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수많은 제안과 셀 수 없는 의견들이 매초마다 수십건, 또는 수백건씩 올라오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몸을 담고 있는 작은 조직 안에서도 변화의 물결들이 넘실거리고 세대 교체가 시대가 요구하는 답인양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해 비자금·비리사건으로 160년 사상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독일의 세계적인 기업 지멘스는 신임 회장으로 페터뢰셔(Peter Loescher·51)를 선택했다. 그는 “혁명이 아닌 진화를 택할 것”이라며 “기업구조와 문화를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우리들이 그동안 몸을 담아 온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또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판단해 다음 세대에 미래 지향적으로 진화된 긍정적 사회를 물려줘야 진정한 세대교체를 이뤘다 할 것이다. (사)한국조리사회 경기도지회는 구·신세대 리더들이 머리를 맞대고 밝고 맑은 미래를 선사하기 위해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의견들을 수렴하고 대안들을 논의하고 정책들을 결정하고 있다. 수많은 조리사들의 위상 강화를 위해 투쟁이 아닌, 눈높이를 높이고 지식인으로서 거듭 나게 하며 이론과 실제 등을 겸비한 실제 전문가집단으로 만들어 내기 위한 대책들을 수립하고 있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사카모토 게이치는 “메타리더를 주장하며 전체의 흐름을 하나의 판으로 바라보고 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흐름을 만들어 주는 전략적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지식은 상식의 늪과 같아 자신이 만든 전략의 늪에 빠져 국지적 패배를 도모할 수 있다는 명언은 우리를 다시 돌아 보게 하는 지침서 같은 말이 됐다. 전략에 치중하다 보면 큰 판을 보지 못하고 내가 들고 있는 패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는 의미다. 큰 눈으로 판을 바라보라는 말, 이 말이 표현하는 게 바로 전략적 지도자를 말하는 메타리더라는 것이다. 곧 전략을 생각하고 전술을 논하는 지도자를 말한다. 다시 생각해도 그의 표현이 정말 맛있다. 그렇다 우리는 공통된 하나의 목표를 바라 보고 가는 이들에게 이탈하지 않도록 큰 흐름을 제공해주고 그들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물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다. 전동욱 조리사협회 경기지회장

동도서기(東道西器)

‘동도서기(東道西器)’란 말이 있다. 19세기 말, 조선이 서양의 발달한 과학문물을 받아들일 때의 입장을 정리한 말이다. 우리 고유의 전통을 그대로 살리면서(東道), 서양의 발달한 군사·과학 기술을 수용하자(西器)는 것으로 강대국의 개방 압력 속에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는 당시 사람들의 고뇌가 담겨 있다. 당시 교육에 있어 동도서기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우리의 전통적인 교육정신, 예컨대 스승 존경이나 배움의 진지함 등을 살리면서 그 외적인 면, 즉 교육시설이나 체계 등을 받아들여 우리의 교육수준을 한 단계 올리려는 정도가 아니었을까? 광복 이후 우리는 외국의 교육사조와 교수 방법론 등을 받아들여 실험해 보기에 급급했다. 지금까지 여덟차례나 교육과정을 바꾸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교육 빈국이 됐다. 가까운 1960년대나 1970년대만 해도 전통적인 교육정신이 살아있었던 것 같다. 당시의 교육환경은 지금보다 훨씬 열악했었다. 급격히 늘어나는 학생들을 감당하기 어려워 학급당 60~70명, 심지어는 1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을 수용하기도 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오전반과 오후반 등을 편성해야 했다. 한 교사가 담당해야 하는 학생 수가 많았으므로 자연히 교사 중심의 암기·주입식 교육에 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당시 교육받은 사람들은 그때의 교육이 부실했다거나 요즘 한창 부르짖는 창의성 계발을 도외시한 교육이었다고도 보지 않는다. 과연 암기교육, 주입식교육 등이 전혀 불필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암기교육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 정도가 심했다. 조선시대만 해도 천자문, 소학, 논어, 맹자, 한시 선집 등을 외우는 것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런 무모하기 짝이 없는 교육을 4~5년 동안 받은 학생들은 어느날 갑자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어려운 한문 문장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까다롭기 짝이 없다는 한시까지도 읊조릴 수 있었다. 앞으로 외국것들만 무조건 따르지 말고 우리의 장점은 최대한 살리는 교육이론과 방법 등이 모색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세계의 유학생들을 불러 모으는 교육강국이 됐으면 좋겠다. 과거 우리 교육은 퇴계·율곡·남명·다산·연암 선생들과 같은 세계적인 석학들을 배출한 전통이 있다. 변우복 김포고 교감

나와 너

뿌리는 서로 다른데 땅 위로 자라는 몸은 둘이 붙어 있어 한 몸을 이루는 나무가 있다. 같이 꼭 붙어 껴안고 살지만 각자의 개성을 인정하고 서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나무를 ‘연리지’라고 한다. 연리지 나무는 한 나무가 죽으면 옆에 붙어 있는 나무는 죽는다고 한다. ‘나’라는 말 안에는 ‘너’라는 의미가 함축되고 전제된, 살아 있는 말이다. 진정 ‘너’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 않은 ‘나’라는 자리는 불완전함을 안고 사는 존재이기에, 그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너’라는 자리에 우리는 물질적인 것등을 포함한 왜곡된 것들로 채우려고 발버둥치고 중독돼 간다. 지난해 4월 미국에서 일어난 버지니아 총격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나’가 아닌 ‘너’인 조승희가 일으켰고, 이로 인해 ‘나’인 많은 희생자들을 포함한 우리들이 충격과 좌절, 그리고 두려움 등을 감당했던 사건이었다. 즉 ‘나’와 ‘나의 가족’의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선 ‘너’와 ‘너의 가족’의 행복이 전제됐어야 함을 새삼 절실히 느꼈던 사건이다. ‘너’라는 자리에 ‘나’만의 이익을 위한 소유의 대상, 이용의 대상만을 두고 산다면 그 ‘나’라는 대상에겐 어떤 희생도 은총도 만남도 현재도 사랑도 평화도 없을 것이다. 이것은 진정 우리가 원치 않는 것이다. ‘너’라는 자리에, 있는 그대로의 존재가치가 부여된 사람을, 경외롭기 그지없는 자연을, 우리네 인간의 교만을 깨닫게 해주는 신의 존재를 두고 관계함이 ‘나’의 본래 자리가 아닌가 싶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임을 안다.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은 ‘나’ 자신을 삶 속에서 지탱시키고 성장시키는 중요한 요소이기에 그 나름대로 선한 의도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 다른 이면의 마음인 이타심, 희생, 사랑의 마음 등을 ‘나’와 ‘너’가 함께 어우러지는 ‘우리’라는 울타리에 품고 산다면 균형되고 조화로운 ‘나’와 ‘너’가 자리할 것이다. 미래사회로 갈수록 개인주의화되는 과정 속에서, ‘나’와 ‘너’의 관계가 계속 상처받고 왜곡돼 사회가 조각조각 나눠지는 불행한 사태에 이르지 않기 위해, 먼저 ‘나’부터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사랑의 운율로 ‘너’를 불러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김유신 김유신치과 원장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역할

신문과 방송에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대한 각 정부 부처의 업무 보고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정부의 유류세, 법인세, 각종 부동산정책 등은 가계와 기업들로서는 직접 피부에 와 닿는 정책들이어서 국민들의 귀와 눈이 인수위원회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권력이 집중되는만큼 인수위원회에 대한 힘이 어느 때 보다 막강해 보인다. 인수위원회는 새로 들어서는 정부와 물러나는 정부 사이에서 정부 부처의 기능과 각종 정책 목표 등을 새롭게 수립하고 다듬어 국민들에게 혼란이 가지 않도록 최소화하는데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다른 역대 정부와 달리 정권 인수인계에서 마찰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이 엿보인다. 구랍 28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만나 원활한 정부 인수인계를 위해 서로 최대한 협조와 당부를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 정부의 인수업무에 큰 차질은 없는듯 보였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4일 “인수위원회에 죄지은 것처럼 임할 필요가 없다”는 등 아직 다음 정부와의 인수인계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피력했다. 이 당선인이 청와대에서 “전임자를 잘 모시는 전통을 만들겠다”고 약속한 것처럼, 이번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도 국민들로부터 칭찬과 격려를 받는 인수위원회가 됐으면 한다. 인수위원회가 정부 부처에 대해 오만하게 보였다면, 이 당선인의 말씀처럼 더욱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 권력과는 멀리 떨어져 정부 부처들과 협조해 새로 들어서는 정부 부처들의 기능과 역할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 조용한 인수위원회 활동을 바라고 있다. 화려함 보다는 내실을 구하고 국민들이 직접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실천하는 작은 정부를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인수위원회 작업은 이명박 정부 성패의 첫 척도일 수가 있다. 인수위원회는 오직 국민들만을 생각하고 업무에 충실하게 진행하는 게 이명박 당선인의 선진 산업사회로 나가는 길이다. 김남성 경기도의원

잠재력을 찾아주는 길잡이

네 안의 최고를 찾아라…. 필자는 요즘 어느 지인이 자필 서명한 책을 선물받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는 단체생활을 하면서 자신감이 없거나 회의에 빠져 있을 때 또 다른 용기와 결단력 등을 끄집어 내주는 내용이 보석알처럼 나열돼 있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 열매를 맺는다고 어르신들은 항상 말을 가려 하라고 말씀해오셨다. 필자는 아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어떤 어려움에 부딪힐 때가 종종 있다. 자기 스스로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때로는 생각만큼 좋은 결과가 없을 때는 실망스런 어조로 “나는 재수가 없나봐. 진짜 열심히 했는데”라고 말한다. 부모로서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 중에 하나다. “아들! 생각 없이 말을 하면 못써, ‘나는 재수 있는 놈이다’라고 말하렴.” 그래야 재수가 있다고 노인네처럼 말해준다. 며칠 전 친구의 친정아버님이 별세해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었다. 호상이라 상주들도 꽤나 연세들이 들어 있었다. 친구랑 잠시 시간을 갖고 이야기를 하다 친구가 “야! 너 우리 올케 알지? 너의 큰 애 담임선생님이라고 네가 말했잖니?”라고 말했다. 옆 자리를 보니 10여년 전 뵈었던 큰 아들의 초등학교 6학년 담임선생님이 하얀 상복을 입고 손님을 맞고 계셨다. 간단히 인사를 나눌 셈으로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선생님 혹시 6학년 OOO 학생 기억하시나요?” 선생님은 “그럼 아다마다요”하시며 반겨 주신다. 아들의 초등학교시절이 생각났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과 보호를 받으며 7살의 나이로 입학해 늘 어린 행동을 일삼아 걱정이 앞서는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가방을 내던지며 “엄마 선생님께서 나보고 과학자가 될거래”라고 말하며 좋아하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시험을 보아도 모두 잘 보았다 싶으면 꼭 한과목씩 말썽을 부려 가슴을 쓰리게 했었는데…. 성장해서도 종종 어릴 적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들을 생각하곤 했다. 선생님께서 아이의 안부를 물어 오신다. “제대하고 4학년 올라가는데 로봇과 모터를 만드는 연구실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선생님께서 말씀해주신 대로 연구하는 게 본인 적성에 잘 맞는 것 같아요.” 선생님은 “그럴 줄 알았다”며 함께 기뻐해 주신다. 어린 마음에 선생님의 관심과 따뜻한 마음이 자신감을 심어줬고 잠재의식 속에 그 길을 향해 아이는 성장한 것이다. 앞으로 많은 학생들이 졸업하고 또 다시 입학하는 시기가 됐다. 아무쪼록 필자 아이의 스승님처럼 아이에게 꿈을 심어주고 자신안의 최고를 찾을 수 있도록 길잡이가 돼 주시는 진정한 스승님들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속적인 한류를 위하여

금지된 사랑,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몸부림치는 네 남녀의 영원히 끝나지 않을 사랑을 얘기한 SBS 드라마 ‘천국의 계단’은 한류 드라마의 주인공이라 불리는 ‘겨울연가’ 이후 한류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갔던 작품이었다. 인천 중구 무의도에 위치한 세트장은 시도의 ‘슬픈연가’를 비롯, ‘풀하우스’ 등이 추가로 방영되면서 지금도 동남아 관광객들이 그때의 감동과 분위기를 살리려고 방문하는 등 관광지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문화적 유사성과 친숙함 등으로 인해 특히 아시아 문화권 내에서 한국 드라마들은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점점 드라마의 질과 소재의 한계성으로 중반을 넘어서면 배우들이 이른 바 쪽 대본을 보면서 촬영에 임하고 방영하는 날까지 촬영과 편집 등이 동시에 진행돼 방영되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드라마 내용은 팬들의 반응에 따라 결말이 바뀌거나 조기 종영되거나 연장 방영되기도 한다. 초기 한류 인기에 힘입어 인상된 제작비 및 출연자 개런티 등도 고비용·저효율의 재고품을 생산하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한류 스타의 출연료 및 인기 작가의 작가료가 최근 급증해 수출 압박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류의 정서적 거부감인 ‘혐한류’ 현상도 확산되고 있는데, 이는 단기간에 일방향적으로 밀어대는 문화 콘텐츠 홍수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큰 원인으로 일방적인 문화의 흐름은 수용자 입장에 있는 국민들과 정부에겐 상당히 위협적인 현상으로 인지돼 한류를 폄하할 뿐만 아니라 일부 국가에선 정부 차원의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위기의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신 한류 전략을 갖고 신선한 소재와 설득력 있는 스토리 라인의 개발과 함께 지속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들을 개발하고, 재외 공관 및 주재관 등을 활용해 현지 지원 및 마케팅 전략 등을 수립하는 등 해외 각 지역별 시장 유통에 따른 차별적 전략과 다양한 현지 내부 유통 채널을 개발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 DVD나 OST 등 직접 수출이나 인터넷 다운로드 환경 정비 등으로 다양화되고 적극적으로 한류 문화 콘텐츠들도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현재 주목받고 있는 ‘혐한류’ 현상은 아직은 크게 영향을 줄 정도의 큰 현상은 아니라고 보지만, 일방향적인 문화 유입이 아닌 쌍방향적인 문화 교류 확대를 통해 거부감과 위기의식 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김동빈 인천종합문예회관 관장

희망을 심는 사람들

지난 1987년이었다. 그해 아카데미 수상작이며 장 지오노의 원작이었던 영화 ‘나무를 심은 사람’은 프랑스의 어느 고원지대, 사람들의 분별없는 욕망으로 나무를 마구 베어 자연이 헐벗으면서 시냇물과 우물까지 말라 마을은 폐허가 된다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줄거리는 과연 어떻게 진행됐을까. 영화가 늘 그랬듯, 이때 외롭게, 하지만 당당하게 어떤 의로운 일을 실천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물론 그 주인공이 부딪쳐야 할 상황들은 만만찮다. 그 땅에 남겨진 단 한 사람, 엘지아 부피에라는 양치기. 그는 이처럼 척박한 현실에서도 신념을 꺾지 않고 묵묵히 땅에 대한 소박하고도 경건한 믿음으로 매일 나무를 심고 가꾼다. 한 사람의 몇 십년에 걸친 지속적인 노고와 헌신 끝에 마침내 황무지는 푸른 숲으로 뒤덮이고, 맑은 강물이 흐르며 새들이 지저귀는 생명의 땅으로 되살아난다. 장 지오노는 첫 마디를 통해 “세상일이란 것은 겉만 봐서는 모르는 거야. 특히 어떤 사람이 정말로 훌륭한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일은 쉬운 게 아니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의 업적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 참다운 가치가 알려지는 법이란다”라고 말한다. 장 지오노는 이렇게 강조하기도 했다. “이 사람은 평생 동안 돈이나 명예 등을 바란 적이 한 번도 없었어. 그렇지만 이 사람이 이루어 놓은 업적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고 후세 사람들에게 크나큰 은혜를 베풀었단다.” 새로운 한해가 시작돼 많은 사람들이 새롭고, 큰 계획을 세우며 힘차게 나아가려고 한다. 2008년 무자년(戊子年) 한해에는 다른 계획들보다 장 지오노의 원작 ‘나무를 심은 사람’에 나오는 엘지아 부피에의 노인처럼 정말 작은 일이지만, 소중하고 가치있는 일들을 실천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넘치기를 소망한다. 아마 필자만의 소망은 아닐 것이다. 황무지 같은 세상에 희망의 씨앗을 심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점점 밝아질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부터 시작하자. 작은 일부터 실천에 옮기자. 단 기간 내에 결과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지켜보며 희망의 씨앗을 심으면 황무지가 푸른 숲으로 변하듯, 황량한 세상도 좋은 세상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돼야 한다.

성남아트센터와 문화도시 성남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는 ‘라보엠’ 공연 도중 발생한 화재로 올 10월까지 공연을 모두 중단하고 전면적인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화재가 발생한 후 기자를 포함해 여러곳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요지는 예술의전당 화재로 인해 그 관객들이 성남아트센터로 이동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또한 성남의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정책 관계자들은 성남아트센터의 관객층을 확대시킬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 전화를 받으며 성남아트센터의 위상이 예술의전당과 어깨를 겨눌 정도가 됐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예술정책 관계자나 예술에 관심이 많은 시민, 심지어는 예술의전당 직원 등까지 예술의전당 화재로 인해 성남아트센터로 관객들이 이동하지 않을까에 촉각을 곤두 세울 정도니 말이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등과 더불어 세계의 3대 오페라극장으로 불리는 런던의 로얄 오페라하우스는 ‘코벤트 가든’이란 별칭으로 더 유명하다. 별칭은 이 극장이 자리 잡은 시장(市場)의 명칭이다. 여기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의 전용극장인 런던 콜릿세움이 있다. 로얄 오페라하우스의 화재로 인해 그 관객들이 런던 콜릿세움으로 이동했는가를 연구한 보고서가 있다. 답은 “아니다”였다. 그 연구가 진행된 건 예술의전당 화재 후의 똑같은 질문이 당시에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영국의 사례는 고객들이 단순히 화재로 인해 극장에 대한 선호를 바꾸는 게 아니라, 극장 고유의 정체성에 좌우된다는 것을 웅변하고 있다. 참으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수도권에서 서울 중심의 예술구도와 경쟁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지금 성남아트센터는 이미 예술의전당과는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형성하며 독자적 고객층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이제 성남아트센터는 문화도시 성남을 별칭하는 도시의 상징이 돼가고 있다. 다른 도시의 공연장들이 ‘예술의전당’이라는 명칭을 지명 뒤에 붙일 때, 성남은 당당히 ‘아트센터’를 고집했다. 그 고집 속에는 극장 고유의 정체성을 도시의 비전으로 담아내려는 의지가 있었다. 성남이라는 도시가 세계 예술의 중심(Art Center)으로 나서는 꿈! 글로컬(Global+Local)의 시대, 성남아트센터가 세계의 공연장으로 웅비하는 힘은 여기에 있다. 지역이 바로 세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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