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팔순을 넘기신 아버지께서 조그맣고 탐스런 바윗돌 하나를 주워 오셨다. 물론 오래 전 일이다. 며칠 동안인가? 안방에서 돌 다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을 뿐인데 어느 날 바로 그 바윗돌이 퇴근하는 필자를 마중 나와 현관구석자리에 폼 나게 서있는 게 아닌가! 고산포시(高山布視)라 새긴 가슴팍을 내밀면서….
당신께선 지금껏 그 말뜻을 일러주신 적이 없다. “알아 볼만한 자식들이니까…”했을 법하다. 필자 역시 “높은 산에 오르면 보다 멀리 바라 볼 수 있다”는 말 같구나 하며 여쭤보질 않았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아버지께서 이 평범한 이치를 통해 뭔가의 교훈을 주시려 한 건 아닐까하는 느낌을 받곤 했다.
사회적 지위가 달라지는 아들들을 향해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더 넓은 안목과 다면 시각을 가지라”는 채찍을 든 것 같기도 했다. “상사와 생각이 다를 때에는 윗사람 뜻이 옳을 경우가 많음을 알고 겸손 하라”는 주문처럼 느끼기도 하고, 아는 만큼 이해의 폭도 넓어진다는 가르침으로도 알고 마음에 담고 살아온 게 사실이다.
문제는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요즘에도 실수다운 실수로 종종 망신을 당할 때가 있다. 돌아가는 분위기나 느낌만으로 분명 그렇고 그런 것이리라 여기고 불호령을 내리고 나서 보면 사실이 아닌 경우가 그렇다. 참으로 무안한 처지가 되고 마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백만대 차량들이 고속도로를 오간다. 인간사가 다 그렇듯 우리의 소홀함도 있겠지만 고객의 오해로 빚어지는 일이 없을 수가 없다. 필자는 책임자랍시고 늘 강조하는 바가 있다.
“고객의 불만이나 주장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고 무조건 옳다고 여기고 응대하라”고 말이다. 고객이 잘못 알고 터무니없는 요구나 질책을 하는 경우라도 결국 우리가 제대로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논리이다.
그런데도 회사 홈페이지 사이버 민원실에는 하루도 빤할 날 없이 고객의 질책이 올라온다. 이를테면 며칠 전 어느 톨게이트로 일시에 차량들이 몰리자 사무실 근무 여직원들이 모두 나와 빠른 소통을 돕는 광경을 본 어느 고객이 “남성 직원들은 뭣하고 연약한 여성 직원들만 추위에 떨게 하느냐”며 온갖 욕설로 공직자의 근무태도를 사정없이 나무랐다. 그분의 느낌만으로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사실은 톨게이트 근무자가 대부분 여성 직원이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광경일 뿐이다. 그분만 탓할 일은 아니다. 사실이야 어떻든 느낌이 그러하면 느낌을 사실로 믿고 마는 우리 인간의 속성을 주신 신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갑자기 고산포시(高山布視)를 바윗돌에 새기신 아버지의 의도와 필자의 느낌 사이에는 어떤 차이라도 있는지 새삼 여쭙고 싶어지는 건 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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