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의 진화 3단계

권재형 한국협업기업협회 회장권재형 한국협업기업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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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들을 30년 동안 지켜보아왔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을 담당하던 신입사원 시절부터 중소기업 수천곳의 파트너였던 구매본부장 시절까지 중소기업들은 늘 사업의 중심 테마였다. 현재 대표를 맡고 있는 한국협업기업협회(한국ICMS협회) 역시 중소기업간 협업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주요 업무여서 중소기업들과는 불가분(不可分)의 입장에 있다. 여기에 정보를 주고받는 중소기업들이 4천여곳에 이르는 협회 회원사들을 중심으로 족히 1만곳은 넘을듯하다.

이처럼 지난 30년 동안 중소기업들과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중소기업의 탄생부터 소멸에 이르는 흥망(興亡)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흥망과 매출 사이에 묘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체득하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소기업의 연간 매출은 50억원, 300억원, 1천억원 등의 3단계를 거치며 진화한다는 것이다. 물론 학술적 논리가 바탕이 된 건 아니다. 또 모든 중소기업들이 예외없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30년 동안 중소기업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경험적으로 가늠해 본 결과이니 오해 없길 바란다.

먼저 50억원의 매출은 가내수공업적 영세기업에서의 탈피를 의미한다. 창업 후 소상공인에 불과하던 기업이 이제는 기업 형태를 갖추고 창고형 공장, 혹은 대학의 인큐베이팅 협력기업 등에서 벗어나 스스로 걷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중요 시점이다. 300억원의 매출은 기업으로서 “고지가 바로 저긴데…”하는 심정으로 IT기업의 경우 코스닥 상장을 꿈꾸는 신천지이다. 성공이 손에 잡힐듯 가까이 느껴지며 이제는 오너, 혹은 CEO의 개인 기업에서 벗어나 시스템이 절실한 시점이다.

1천억원의 매출. 이는 중소기업들에게는 그야말로 중견기업으로 들어서는 등용문이자 제조기업도 상장을 준비하는 뿌리가 튼튼해지는 단계이다. 뿌리가 깊은만큼 웬만한 비바람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어디 대기업도 아닌 창업기업부터 중견기업에 이르는 과정이 순탄하기만 할까.

뼈를 깎는 구성원들의 희생 속에 계속적인 성장이 없으면 고사(枯死)하기 쉬운 허약체질이 50억원대 매출기업이고 뒤를 돌아다볼 수 있는 여유에서 주저앉거나 재테크라는 한눈을 팔다가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게 300억원 매출기업의 어려움이다. 1천억원대 매출기업의 안정감은 오너, 혹은 CEO의 도덕적 해이에 의해 우량기업이 흑자 도산할 수 있음도 우리 경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 경계해야 할 일이다.

내일의 성공을 꿈꾸며 오늘을 인내하는 모든 중소기업들이 50억원, 300억원, 1천억원 등을 지나 무한한 성공을 이루기를 소원해 본다.

권재형 한국협업기업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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