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빠르게 고령화되면서 고령 운전자 교통안전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운전은 고령자에게 병원 진료, 가족 방문, 생계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생활 기반이며 독립적인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중요한 권리이기도 하지만 도로 위 안전은 개인의 권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한순간의 판단 착오나 조작 실수는 운전자 본인은 물론이고 보행자와 동승자 그리고 다른 운전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남길 수 있어 고령 운전자 문제는 ‘어떻게 하면 더욱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최근 한국도로교통공단 자료에 의하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는 2023년 3만9천여건, 2024년 4만2천여건, 2025년 4만5천여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사망자 또한 2023년 745명, 2024년 761명, 2025년 843명으로 늘었다. 전체 교통사고는 장기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나 고령 운전자 사고 비중은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고령 운전자를 일방적으로 위험한 존재로 봐서는 안 된다. 농어촌이나 중소 도시 외곽 지역에서는 자동차가 없으면 병원, 약국, 시장 등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고령자에게 운전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활 수단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시야, 야간 시력, 반응속도, 판단력이 저하될 수 있고 특히 교차로 좌회전, 차선 변경, 주차장 내 페달 조작 등에서 사고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령 운전자 정책도 단순한 면허 반납 중심에서 벗어나 전면적인 운전 금지가 아닌 개인의 운전 능력과 생활환경에 맞춘 조건부 운행 제도가 필요하다. 조건부 운행은 야간 운전 제한, 고속도로 운전 제한, 장거리 운전 제한, 거주지 반경 내 운전 허용, 병원·시장 등 필수 생활권 중심 운전을 일정한 조건 안에서 운전을 허용하는 방식이다. 이는 운전의 자유를 빼앗는 제도가 아니다. 오히려 고령자가 자신의 능력에 맞는 범위에서 더 오래, 더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도록 돕는 보호장치다. 낮 시간대에 익숙한 동네를 운전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비 오는 밤이나 고속도로 장거리 운전은 위험할 수 있다. 이를 위해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에 대한 실질적인 운전 능력 평가가 필요하다. 현재의 적성검사와 인지검사에 더해 시뮬레이터 평가, 도로 주행 평가, 의료적 소견 등을 종합하되 고령자를 위축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안전 운전을 안내하는 상담형 평가로 운영해야 한다. 또 자동 긴급 제동장치, 차선 이탈 경고장치, 후측방 경고장치,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등 첨단 안전장치 보급도 확대해야 한다. 면허 반납자와 운전 제한 대상자를 위한 대체 교통수단도 중요하다. 택시 바우처, 병원 동행 교통 서비스, 마을 순환버스, 수요응답형 교통수단 등을 확대해야 정책이 현장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처음부터 면허 반납을 요구하기보다 ▲야간 운전 줄이기 ▲비 오는 날 운전 피하기 ▲장거리 운전은 가족과 동행하기 처럼 실천할 수 있는 약속부터 시작하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이다. 고령 운전자 조건부 운행은 규제가 아니라 배려다. 운전대를 빼앗는 제도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 이웃의 생명을 지키는 안전장치다. 운전 조건을 조정하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지혜로운 선택이다. 우리나라의 교통환경과 고령자의 생활 현실에 맞는 세심한 제도 설계를 통해 고령 운전자가 더욱 안전하고 당당하게 이동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 외부 필진의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경기일보
2026-06-02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