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각 고을들마다 대표하는 부자들이 종종 살고 있었다. 대부분의 부자들이 그렇듯, 자기네만 잘 먹고 잘 살았지, 인심이 후하고 덕 많은 부자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경북 경주의 최씨 부자는 많이 달랐던 모양이다.
갑자기 왠 먹고 사는 얘긴가 하고 의아해 하실지 몰라 칼럼의 핵심을 바로 얘기하고자 한다. 필자는 7~8년 전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란 단어를 어느 매체를 통해 접하게 됐는데 요즘 부쩍 많이 회자되는 신가치적 이슈이다.
영국 왕실에는 군복무의 오랜 전통이 있어 왔는데 현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1945년 공주시절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며 부왕의 만류에도 설득 끝에 여자 국방군에서 복무했고 그의 남편인 필립공 역시 해군 장교 출신이다. 그들의 아들인 찰스왕세자 역시 전투기 조종사와 해군 함장 등으로 복무를 마친 바 있다. 그의 두 아들, 윌리엄과 해리왕자는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마친 뒤 현재 복무 중이며 특히 해리왕자는 고교 졸업 후 바로 진학하지 않고 1년 동안 여러 나라들을 돌며 봉사활동과 견문을 넓힌 후 육사에 입학, 장교로 복무중인 지금은 이라크 파병을 강력히 원하고 있다고 한다.
다시 우리의 다소 뿌듯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야기를 늘어보자. 조선시대에도 고을을 지나던 나그네, 또는 형편이 어려운 이웃 등에게 숙식 제공이 큰 미덕이었다. 그런데 자기 식솔조차도 거두기 어려운 형편이 넉넉찮은 경우 손님을 대하기가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내 집에 오신 손님을 내칠 수 없어 적당한 잠자리와 밥상으로는 보리밥 한그릇, 김치·간장 한종지, 그리고 국 등을 내놓았다. 살림이 넉넉지 않은 집안서 국거리가 없을 때 맹물이라도 끓여 손님상에 올렸는데 이것을 ‘백비탕’이라고 한다. 가난했지만 그 형편대로 지나는 길손과 더 어려운 이웃 등에게 최소한의 예와 배려를 베풀었던 우리의 멋진 조상님들. 이 또한 훌륭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이다.
서럽고 힘들었던 10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이제 정권이 막 바뀐 대한민국, 많은 사람들이 소망을 꿈 꾼다. 잘 사는 꿈, 취직하는 꿈, 로또가 당첨되는 꿈, 혹은 병이 완쾌되는 꿈…. 지도자나 어떤 계층이 이뤄주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꿈을 꾸기 이전 내가 처한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꿈꾸며 찾아야 한다. 포근한 세상을 위해.
조흔구 의정부YMC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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