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 역대 미 대통령들이 당파를 초월해 멘토 역할을 해 준 인물이 있었다. 빌리 그래함 목사(1918-2018)다. 대통령들은 전쟁이나 국가의 중대한 일이 있으면 그를 불러 조언을 들었고 그러면 그래함 목사는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고 함께 기도했다. 그래함 목사는 전쟁이 있는 곳에도 달려가 군인들에게 정신적 위안과 힘을 줬다. 한국 전쟁 때도 그랬다. 한번은 야전병원을 방문했는데 병상에 엎드려 있는 병사가 그래함 목사를 바로 보기 위해 힘들게 몸을 움직이자 아니, 그대로 누워 있으시오!하고는 자신이 그 병사의 병상 밑으로 누워 기도를 했다. 그러자 그래함 목사의 얼굴에 병사가 흘리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도 목사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이런 모습 때문에 미국인들은 그를 정신적 멘토로 삼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해방 후의 혼란, 6ㆍ25전란 후의 절망과 굶주림 속에서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정신적 지도자들이 있었다. 불교의 성철 스님, 청담 스님, 송월주 스님, 법정스님, 기독교의 한경직 목사,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외친 함석헌 선생, 그리고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1971년 12월24일 자정, 서울명동성당에서는 성탄절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KBS TV는 이를 전국에 생중계했다. 미사를 진행하던 김수환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만일 현재의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혁명이라는 양자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 할지 모른다고 당시 정치 사회 전반의 부패를 강하게 경고했다. 혁명까지 거론할 정도로 폭탄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예기치 못한 발언이 전국에 TV로 생중계되자 청와대는 당황했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많은 희생자가 나오자 김수환 추기경이 전두환을 찾아갔다. 그리고 전두환 면전에서 그만 멈추라고 했다. 그러자 전두환은 이에 대한 대답은 않고 국방부에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1979년 6월 항쟁 시에는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시위 대학생들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이 진입하려 하자 경찰이 들어오면 먼저 나를 밟고 가라며 몸으로 그들을 막아 감동을 줬다. 판자촌 철거민들을 찾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위로했다. 한경직 목사나 성철 스님, 김수환 추기경 이들의 공통점은 권력과 돈을 외면했고 청빈을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성철 스님의 누더기 옷도 유명하지만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 그리고 한경직 목사와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유품이라고는 오래된 낡은 옷과 구두 한 켤레, 안경이 감동적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안구마저 시력 장애자에게 기증하고 떠났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이런 정신적 지도가 없다. 정치가 이렇게 혼탁하고 단군 이래 최대의 부정부패라고 하는 성남의 대장지구 개발 게이트가 터져도 나서 주는 지도자가 없다. 목소리도, 촛불도 없다. 그러니 공정과 정의는 어디서 찾을까? 교파, 종파의 지도자는 있어도 통합의 지도자는 없는 것이다. 하긴 100세 노교수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소리를 했다가 젊은 변호사로부터 면박을 당하는 세상이니 지도자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이 혼탁한 세상을 비출 지도자를 고대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오피니언
변평섭 칼럼니스트
2021-10-18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