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과연 ‘제3지대’ 가능할까?

물류사업을 하는 A씨는 최근 노동법 위반으로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그가 우선적으로 한 일은 담당 판사의 성향을 판단하는 것. 여러 채널을 통해 파악한 것은 담당 판사가 진보 성향이고 그런 연구회 소속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의 고문 변호사를 제쳐 놓고 진보 성향의 변호사를 선임했다. 물론 이 같은 변호사 선임은 굳이 진보, 보수 따지지 않아도 흔히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관례다. 그러나 요즘은 우리 사법부도 이와 같은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법관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면 되지 거기에 이념의 물감을 덧칠해서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시선도 다를 바 없다. 이비인후과 질병을 앓고 있는 M씨는 보수, 진보 색깔이 강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모 이비인후과를 찾아 대기실에 앉았는데 탁자 위에 이념 성향이 강한 모 일간신문이 놓여 있더라는 것이다. 간호사에게 이 신문 말고 다른 신문은 없느냐고 물으니 ‘우리 병원장님은 이 신문만 보십니다’ 하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M씨는 이 말에 진료를 취소하고 밖으로 나왔다. 우리 사회는 이념의 양극화 현상이 첨예하게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예 A방송을 보지 않고 B방송만 시청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유당 시절 공무원은 야당지라고 하는 모 신문은 구독을 못 하게 했고 정부 기관지만 보게 한 때도 있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에는 당파가 다르면 혼인도 하지 않았다. 노론은 노론끼리 소론은 소론끼리, 그리고 동인, 서인. 그렇게 찢어질 대로 찢어진 분열 속에서 우리 역사는 어둠에 갇혀 있었다. 그런데 요즘 다행스러운 것은 ‘무당파’, ‘중도파’가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힘, 민주당의 정쟁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아마추어 수준에서 속 시원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당,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 송영길 전 대표의 돈 봉투 사건으로 몸살을 앓는 야당, 양보와 대화가 실종된 이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중도층, 무당층의 발언권이 중요하다. 지난 4월27일 조사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무당층이 27%나 나왔고 특히 서울과 부산, 그리고 20대를 중심으로 한 젊은층에서 수치가 높았음은 매우 의미가 있다 하겠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을 이끌 기수가 있느냐는 것. 금태섭 전 의원이 ‘제3지대’를 선언하며 내년 총선에서 30석을 목표로 제시했다. 하지만 과연 금 전 의원에게 제3지대를 이끌며 바람을 일으킬 에너지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가령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 같은 인물이면 우리 나라에서도 해볼 만하다. 마크롱은 2016년 장관직에서 물러나 이듬해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닌 자유주의자를 내세우며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제3지대의 승리인 셈이다. 지금 그는 연금개혁, 교육개혁 등으로 국내에서 거친 저항에 부딪히고 있지만 당초 정치를 시작하면서 선언한 그의 철학을 고수하며 난국을 극복해 가고 있다. 과연 우리에게도 그런 그림이 가능할까?

[변평섭 칼럼] 가슴에 아들의 유서 품고 사는 어느 어머니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도 학교폭력에 시달린 중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있었다. 2011년 12월 대구 모 중학교 학생이던 14세 권승민군이 ‘학교폭력 없애 주세요’라고 쓴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했는데 권군은 또래 학생들로부터 금품 강요, 언어폭력 등 여러 형태로 괴롭힘을 당했던 것. 권군의 극단적 선택은 사회적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유가족들은 우울증, 불안 등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만큼 공황장애를 겪었다. 그의 어머니는 지금도 아들의 유서를 가슴에 품고 살 정도다. 이 사건은 마침내 정치권에까지 공분을 일으켜 2012년 국회는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소위 ‘권승민법’을 통과시켰고 정부도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종합대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시간이 가면서 흐지부지됐다. 그러더니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21년 광주에서 고등학생 A군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또 발생했다. 대구의 권승민군이 당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의 폭력을 광주 A군도 당했던 것이다. 이때도 정부와 언론이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목소리를 높였지만 역시 일회성 외침에 그치고 말았다. 학교폭력은 지금 이 시간에도 더욱 광범위하고 지능적 방법으로 우리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교폭력 사건도 아버지 정 변호사가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됐다 탈락하지만 않았으면 그대로 묻힐 뻔했을 것이다. 특히 정 변호사 아들의 폭력 사건은 또 다른 의미에서 사회적 공분을 사고 있다. 폭력을 다스려야 할 법이 가해자를 보호하는 꼴이 돼 버린 소위 ‘법꾸라지(법+미꾸라지)’의 형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의 아들이 학교폭력의 가해자로 밝혀져 전학 조치가 내려졌다. 그러나 현직 검사로서 요직에 있던 정 변호사는 전학 조치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을 법원에 제기했다. 물론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정 변호사는 이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으며 역시 2심에서도 기각 판결이 내려졌다. 하지만 정 변호사는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대법원에 상소를 했고 대법원도 1·2심 그대로 패소 판결을 내렸다. 겉으로 보면 정 변호사는 완패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해자이면서도 승리했다. 왜냐하면 1~3심 재판을 끄는 동안 그의 아들은 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고 수능을 통해 명문대학에 진학할 수 있게 됐으니 승자가 아니겠는가? 물론 법원 판결이 진행 중이니 학적부에 기록될 수도 없고…. 이것이 법의 허점이다. 이런 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법꾸라지’는 모든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좀먹고 있다. 그러는 동안 정 변호사의 아들로부터 ‘돼지 새끼’ 등 심한 언어폭력에 시달리던 피해 학생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과거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면 한참 떠들다 사그라지듯 정치, 정부, 언론 모두가 한목소리로 학교폭력 근절을 외치고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야당에서는 정 변호사의 국가수사본부장 발탁과 탈락 과정에 대한 청문회를 하겠다고 한다. 물론 야당의 이 같은 공세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그렇다고 학교폭력이 없어지지도 않을 것이며 시간이 가면 거품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12년 전 대구에서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잃은 권승민군의 어머니가 최근 책을 냈는데 특별히 교사들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학교폭력, 은폐하지 말고 축소도 하지 말라’고 호소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솔직히 학교폭력 없는 ‘그런 학교는 없다’고 했다니…. 이 심각한 사회 병폐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변평섭 칼럼] ‘홍어 받으신 분 자수하세요’

초등학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 출마한 학생의 어머니가 아들의 당선을 위해 피자 파티를 해주는 등 선거운동을 해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의 생일을 맞아 친구들을 집으로 초청, 피자를 대접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누구보다도 아들의 친구들이 ‘피자의 숨은 뜻’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아이들이 일찍부터 이렇듯 선거는 돈을 써야 하는 것이라고 배우며 성장할까 두려운 사건이었다. 결국 ‘피자 파티’를 보며 선거문화를 잘못 익힌 어린이가 성장해 금품 거래나 흑색선전에 익숙한 솜씨로 공식 선거에 진출하고 나아가 정치 지도자가 된다면 이 나라 정치에 희망이 있을까? 요즘도 계속되는 정치의 부패, 수천만원에서 10억, 100억, 1천억원 단위로 뛰어오르는 검은 거래도 따지고 보면 초등학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 등장한 ‘피자 파티’의 학습에서 시작됐는지 모른다. 심지어 국회 본회의에서 정치인과 청탁인 사이에 돈을 주고받는 장면, 돈 봉투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까지 녹음됐다는 법무부 장관의 발언이 나올 만큼, 사실 여부를 떠나 그 시궁창 같은 정치와 돈의 연결 관계가 공공연해지고 있다. 한 컵의 ‘누룩’이 수백 배의 술을 만들어내듯 ‘피자 한 판’의 위력이 커지고 커져 단군 이래 최대 부정부패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또 하나의 ‘누룩’이 등장해 사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있다. 3월8일 실시하는 전국동시조합장선거가 그것이다. 농협·수협·산림조합 1천347곳에서 260여만명이 참여하는 이 선거는 지역과 밀접한 ‘풀뿌리’ 경제 책임자를 뽑는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금품이 난무하는 등 혼탁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조합장으로 선출되기만 하면 1억원 상당의 연봉과 수천만원의 업무추진비가 제공되고 조합의 사업과 예산 집행, 직원의 인사권 등 지방에서는 찾기 힘든 대우를 받게 되니 사생결단으로 선거전에 뛰어드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불법 선거를 통해 당선되거나 구속이 되는 조합장들 때문에 2020년 30건, 2021년 18건의 재·보궐선거가 실시됐다.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이 지불된 것인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이런 ‘불량 조합장’들로 풀뿌리 지역경제가 멍들게 된다. 그리고 이 같은 조합장들이 스펙을 쌓아 정치에 입문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 그런데 올해도 어김없이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최근 전북선거관리위원회가 ‘금품·홍어 받은 사람은 자수해 과태료 감경과 면제를 받으십시오’라는 현수막을 걸어 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전주 모 조합장 출마자가 조합원들에게 금품, 특히 홍어를 돌린 것이 밝혀져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는가 하면 선거관리위원회는 홍어 받은 사람들의 자수를 권유하는 현수막을 내건 것이다. 이에 따라 20여명의 조합원들이 홍어를 받았다고 신고를 했고 계속 신고자가 늘어나고 있는 형편이다. 홍어만 문제가 아니다. 경북선관위는 조합장 출마자가 100만원의 현찰을 돌리다 적발됐고 전남 여수에서도 돈 봉투를 건넨 출마자가 경찰에 고발됐다. 금품뿐 아니라 인사장 등 불법 유인물을 발송하는 등 여러 형태의 혼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아직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지 않았는데 149건의 불법 사례가 적발됐다는 것이다. 참으로 이 땅에 건전한 선거문화를 정착시키기가 이렇게도 힘든 것인가. 과거 새마을운동하듯 선거문화 개혁을 위해 국민정신운동이라도 벌여야 할까?

[변평섭 칼럼] 여의도 좀비는 진화한다

1954년 11월27일, 국회에서 벌어진 소위 ‘사사오입’ 사건은 대한민국의 정치사에 영원히 기억된 코미디였다.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 집권을 위해 3선 개헌안을 국회에 회부했다. 재적 국회의원은 203명이었고 개헌은 재적 의원 3분의 2, 그러니까 136명이 찬성해야 통과되는데 표결 결과 찬성이 135명으로 당시 사회를 보던 최순주 부의장이 ‘부결’을 선포했다. 그러자 자유당 강경파들은 수학 교수의 유권해석을 받아 재적 의원 3분의 2는 135.33이니까 소수점 이하는 지워 버리고 135가 맞다며 부결을 가결로 뒤집으라고 요구했다. 소수점 이하의 0.33은 사람으로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강경파의 궤변이었다. 결국 부결을 선포했던 최순주 부의장은 다음 날 같은 의사봉으로 가결을 선포했다. 그래서 자유당은 장기 집권을 하게 됐지만 ‘3분의 2’를 둘러싼 ‘도깨비 춤’ 같은 해석은 이 나라 정치사를 욕되게 하는 ‘좀비’가 됐다. 결국 자유당은 그렇게 잔꾀를 부리는 강경파에 의해 망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 같은 ‘좀비’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 진화해 왔다. 지난해 12월28일 국회 농수산위원회는 ‘이재명표’로 일컫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정부와 여당이 강력히 반대하는데도 단독 통과시켰다. 그러면 이 법안은 법사위를 거쳐야 하지만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기 때문에 법사위를 거치지 않는 기발한 편법을 동원했다. 농수산위 19명 중 5분의 3, 즉 12명이 찬성하면 곧바로 국회 본회의에 상정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농수산위의 민주당은 11명, 1명이 모자랐다. 그래서 민주당에 있다가 위안부 할머니들 관계의 단체를 이끌면서 공금을 유용한 혐의로 수사를 받자 무소속으로 자리를 바꾼 윤미향 의원이 동원됐다. 12명을 채워준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재명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보란 듯이 국회 본회의로 직행했고 절대 다수의 민주당 의원이 포진한 의회 통과는 ‘식은 죽 먹기’가 됐다. ‘5분의 3’은 68년 전 ‘3분의 2’ 개헌 때처럼 ‘숫자의 마술’을 보여줬다. 진화된 ‘좀비’다. 민주당은 이 같은 ‘숫자의 마술’을 지난해 4월 소위 ‘검수완박법’ 통과 때도 드라마틱하게 보여 준 바 있다. 법사위는 여야 의견이 크게 상충되는 법안의 경우 여야 3 대 3으로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하게 돼 있는데 민주당 소속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무소속이 되게 한 다음 그를 야당 몫 3명 속에 집어넣었다. 소위 ‘위장 탈당’ 소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야당 3명 속에는 여당이 1명 끼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표결은 하나마나 기울어진 운동장이 된 코미디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이렇게 해서라도 ‘검수완박법’을 통과시킨 것을 두고 검찰개혁이라는 명분 아래 ‘이재명 지키기’를 위한 의회 폭거라고 비난했다. 그래도 이재명 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계속되고 급기야 성남FC 후원금 의혹으로 검찰 소환까지 이르자 수사 검사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민주당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영장 담당 판사와 재판을 맡을 판사 이름도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렇게 믿을 국민이 얼마나 될까? 수사 검사와 판사 이름을 공개함으로써 겁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소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팬덤 정치에 빠진 강성 지지자들은 그들 판검사에게 문자폭탄을 퍼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치의 ‘좀비’다. ‘사사오입’ 때부터 진화해온 정치의 ‘좀비’-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더 구체화되고 총선거가 가까워질 봄이 되면 ‘좀비’는 더 진화되고 극성을 부릴 것이다. 슬픈 일이다.

[변평섭 칼럼] 정약용이 살아 대통령이 된다면

“10㎞로 달리는 마차의 마부는 10m 앞을 봐야 하고 100m 앞을 보면 안 됩니다. 시속 100㎞로 달리는 고속버스 운전사는 100m 앞을 봐야지 10m 앞만 보면 위험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데이터 대항해 시대라 세상이 빛의 속도로 달리는데 우리 운전사(정치)는 10m 앞만 보고 달립니다. 어떤 운전사는 왼쪽(진보)만 보고 달리고 어떤 운전사는 오른쪽(보수)만 보고 달립니다.” 지난달 도시공감연구소(소장 김창수) 초청으로 특강을 했던 박근혜 정부 때 창조과학기술부 차관을 지낸 윤종록 KAIST 교수가 한 말이다. 그는 차관직에서 물러나는 날, 곧바로 남양주에 있는 다산 정약용의 묘소를 참배할 정도로 정약용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그가 ‘대통령 정약용’이라는 소설을 쓴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정약용은 2012년 유네스코가 매년 인류를 위해 공헌한 사람 3명을 선정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유일하게 뽑힌 인물. 그렇게 정약용은 실학사상과 혁신정신의 상징적 인물이었으나 당쟁에 희생돼 18년 긴 세월 유배형을 받았고, 유배에서 풀려났지만 1836년 2월 세상을 떠났다. 윤 교수는 정약용이 다시 태어난다면 그때나 지금이나 이 나라에 당쟁이 심각하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라며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데 한국 정치는 시속 10㎞에 머물러 있음에 실망할 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정약용이 다시 살아나 대통령이 된다면 ‘생명과학 입국’을 선언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지금까진 산업국가의 모델이 됐던 중화학공업과 정보통신은 이제 거대한 고목(古木)이 됐다는 것이다. 그 대신 의료, 제약, 식품 등 세계 생명과학산업 규모는 18조달러로 정보통신산업의 4배에 달한다고 했다. 그는 또 말한다. 500년 전에는 대항해 시대여서 튼튼하고 안전한 배를 만드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했다.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이 그런 경우의 국가라 하겠다. 그러면서 시대는 변화를 거듭해 엔진을 사용하는 선박을 주도하는 국가, 그리고 지금은 원자력으로 움직이는 선박의 시대를 거쳐 데이터 대항해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공지능(AI)-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질 수도 없는 데이터의 바다라는 이야기다. 만약 정약용이 살아나 대통령이 된다면 ‘생명과학 입국’을 선언하고 ‘AI산업’에 집중할 것이라는 결론이다. 과연 실학과 혁신의 아이콘 정약용 정신을 나타내는 상상력이라 하겠다. 그런데 정약용을 논하면서 간과할 수 없는 게 있다. 그의 대표적 저서의 하나로 꼽히는 ‘목민심서’. 그는 목민심서에서 관리의 부정부패 그리고 세금 문제에 이르기까지 날카롭게 비판을 가하고 특히 요즘 말하는 국가안보에 대해서도 이렇게 언급했다. “군대를 잘 키우고 훈련해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라...또 병기들을 수리하고 보충하며 늘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하며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현실은 어떤가. 북한의 잠수함 공격에 대비한 한·미·일 해상훈련까지 당쟁으로 삼고 있지 않은가. 정약용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던 그 당쟁의 유령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데 생명과학 입국, AI산업, 나아가 국가안보가 제대로 될까 안타깝다. 역시 빛의 속도로 달리는 시대, 10㎞ 앞도 못 보는 우리 정치가 문제인 것이다. 변평섭 前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이태원 참사… ‘내 탓이오’

축구나 야구경기가 끝나면 승자든 패자든 선수 또는 감독과 인터뷰를 하게 된다. 그런데 패자의 경우, 거의 공통된 것은 패배의 원인을 자기 실력보다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감독이 선수 교체의 타이밍을 놓쳤다든지 심판의 오심이 원인이라는 등등. 스포츠 경기뿐 아니라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나쁜 일이 생기면 그 원인을 다른 것에서 찾아 실패에 대한 위로를 받고자 한다. 심지어 길을 걷다 부주의로 넘어지게 되면 먼저 구청장이나 시장을 비난하기도 하고 대통령을 원망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물론 구청장이나 시장이 도로를 잘못 관리한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길에서 넘어진 자신의 부주의는 생각 않고 원망의 대상부터 찾는 것이 합당한 것일까. 핼러윈데이가 무엇인데 왜 거길 갔느냐는 소리도 있다. 그러나 이태원에 간 젊은이들에게 잘못이 없다. 한창 가슴이 뜨거운 청춘들이 오랫동안 코로나19에 갇혔던 터라 핼러윈에서 무엇인가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만약 필자도 그렇게 젊음이 있었다면 이태원에 갔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지금 가장 크게 지적되는 것은 경찰의 책임일 것이다. 사실 112 신고에 대한 녹취록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녹취록의 생생한 부르짖음은 더 이상 경찰이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미 사고 4시간 전에, 그러니까 오후 6시34분부터 ‘압사 당할 것 같다’로 시작해 ‘통제가 필요하다 ...’ 등 112에 조치를 요구하는 외침이 계속됐으나 경찰은 늑장 출동을 한 것이다. 특히 이들 112 신고 11건 중 ‘압사’라는 말이 6건이나 되는데 경찰은 ‘압사’라는 말뜻을 몰랐던 것일까. 이태원 좁은 골목을 더 좁게 만들어 사고를 키웠다는 해밀톤호텔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해밀톤호텔은 폭 4m의 골목에 설계에도 없던 붉은 가벽을 마음대로 설치하면서 3m로 대폭 축소시켰고 이 때문에 사고 당일 인파의 병목현상을 일으켜 희생자가 많아졌을 것이다. 이태원 골목의 소음을 사고 원인의 하나로 지적하기도 한다. 여기저기 설치한 스피커에서 쏟아지는 음악 소리에 ‘내려가라’라든지 질서를 요구하는 외침, 심지어 경찰에 신고하는 음성까지도 제대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용산구청과 경찰이 좁은 골목을 일방통행으로 만들지 않은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을 겪은 홍콩의 경우 좁은 골목을 자동차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일방통행을 하게 해 사고를 예방하고 있음이 그 좋은 예다. 이 밖에도 그동안 핼러윈 행사를 너무 외형적으로 다뤘던 메스컴을 원망하는 의견도 있다. 다 맞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 모두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런데 이 많은 문제 중에서 정치권이 정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만 골라 부각시키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사건 발생 후 정쟁을 중단하고 초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다짐들은 벌써 사라지고 이 비극을 정쟁의 도구로 삼아 국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야말로 가슴 아픈 일이다. 30년 전 한국 천주교는 ‘내 탓이오’ 운동을 벌인 일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앞장서 승용차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붙이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정파나 종교, 남녀, 노사... 모두가 이념과 진영을 넘어서자는 ‘내 탓이오’ 운동이 지금 이 끔찍한 비극 앞에 우리가 가질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변평섭 前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사도세자 대신 民生을 뒤주에 가두다

역사학자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그 여드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아이디어를 영조 임금에게 진언한 인물로 홍봉한을 지목했다. 홍봉한은 사도세자의 장인이고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는 자신의 딸이다. 그러니까 사위를 죽이는 일 자체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역사는 그가 사도세자의 처벌에 소극적이었다 해 많은 억측과 논란이 있었으나 이덕일씨는 그것이 노론과 소론 당쟁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것이다. 즉, 사도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소론이 집권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노론에 대한 보복이 가해질 것이기 때문에 사위이지만 왕의 길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 거사를 꾸몄다는 것. 또 그것이 자신의 가문을 보호하는 길이라 믿었고 그래서 혜경궁 홍씨도 친정아버지의 뜻을 거역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영조가 당파 싸움의 피해를 막기 위해 ‘탕평책(蕩平策)’을 내세웠던 것인데 오히려 사도세자가 당쟁의 희생물이 됐다는 것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와 소통이 되지 않아 울화병에 걸렸으며 그래서 궁녀를 살해하는 등 기이한 행동을 보여 임금의 노여움이 쌓여 갔고 그것이 결국 1762년 7월5일 뒤주에 갇히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당시 홍봉한은 좌의정, 영의정을 거치면서 영조로부터 큰 신임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위를 살리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보일 수도 있었을 텐데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는 살기 위해 몸부림쳤지만 누구 하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없었다. 때마침 한여름 복날이 겹쳐 뒤주 안은 그야말로 찜통이었고 배고픔과 목마름에 버티질 못해 7월12일, 여드레 만에 숨을 거두고 말았다. 27세 혈기 왕성한 나이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것이다. 우리 역사에 이런 비극적인 세자의 죽음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일부 사학자들의 주장대로 노론과 소론의 당쟁으로 일어난 희생이라면 이야말로 권력의 광기(狂氣)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당쟁의 광기는 지금도 계속되는 것은 아닌가? 260년 전의 당쟁과는 다른 것이 있다면 뒤주에 갇힌 것이 사도세자가 아니라 국가 운명이라는 것이 아닐까? 지금 우리 경제는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수출로 먹고산다는 우리나라인데 지난 8월 무역 적자가 94억7천만달러로 사상 최대 기록을 나타냈다. 최악의 무역 적자뿐 아니라 경상수지도 적자여서 경제전문가들은 ‘쌍둥이 적자’가 현실화되는 것이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다. 환율 문제는 더 심각하다. 13년5개월 만에 1천380원을 갈아 치웠는데 이대로 환율이 고공행진을 한다면 1천400원을 돌파한 데 이어 1천450원까지도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 파월 의장의 금리 인상 발언 한마디에 달러 강세와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주식시장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인들만 이런 것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것 같다. 배추 한 포기에 1만원을 돌파하는 등 물가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국민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말로만 ‘민생’, ‘민생’ 하고 떠들지 관심은 오직 저급한 정쟁이다. 심지어 대통령의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 조문까지 정쟁이 되는 나라다. 임금이 죽었을 때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 하찮은 문제로 서인·남인이 뒤엉켜 피 터지게 싸운, 나라를 망친 당쟁과 무엇이 다른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죽인 정쟁, 조선 왕조를 망하게 한 정쟁, 정말 이 ‘정쟁의 광기’, 그 DNA를 어찌해야 하는가! 사도세자가 아닌 국민 경제가 뒤주에 갇힐 판이니 말이다. 변평섭 前 세종특별자치시 정무부시장

[변평섭 칼럼] 왜 정치인을 싫어하세요?

한때 널리 유행했던 유머가 있다. 한강에서 배를 타고 가는데 어쩌다 배가 뒤집혀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물에 빠졌다. 그런데 재빨리 달려온 구조대원이 허우적거리는 사람 중에 국회의원을 제일 먼저 구조해 사람 차별하느냐는 항의를 받았다. 그러자 구조원이 이렇게 말했다. “국회의원은 썩은 곳이 많아 빨리 구조하지 않으면 한강이 오염되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 국회의원, 수녀님, 중학교 학생, 이렇게 세 사람이 타고 가던 경비행기가 사고가 생겨 비상탈출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낙하산은 2개뿐이라서 한 사람이 문제였다. 이때 국회의원이 “나는 나라를 위해 맨 먼저 살아야 한다”면서 중학생이 메고 있던 책가방을 빼앗아 비행기에서 뛰어내렸다. 그 국회의원은 중학생의 책가방을 낙하산으로 착각하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래서 수녀님과 중학생은 각각 낙하산을 메고 쉽게 탈출할 수 있었다. 이처럼 국민들로부터 존경받지 못하는 국회의원이지만 그들에게 주어지는 대우는 엄청나다. 월 690만원이 넘는 일반수당, 62만1천원의 관리 업무비, 14만원의 정액 급식비, 31만원의 입법 활동비, 그리고 추석 같은 명절이 끼어 있으면 명절 휴가비로 82만8천원을 받는데 모두 합하면 월 평균 1천285만원 상당이 꼬박꼬박 지급된다. 이와 같은 금전적 대우 말고도 연봉 8천500만원 상당의 보좌관, 보좌진 등 9명까지 둘 수 있는 등 갖가지 특혜를 고려하면 국회의원처럼 좋은 직업은 없을 것이다. 이 돈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국민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할 수도 있다. 특히 국회를 열지도 않고 시간만 보내거나 여·야 싸움만 하는데도 이런 대우를 해야 하는 현실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무노동 무보수’의 노동원칙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아니 이보다 국민의 속을 후벼 파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무시하는 행태들이다.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이 지난 11일 서울 사당동 수해복구 봉사활동에 나가서는 “솔직히 비 좀 왔으면 좋겠다. 사진 잘 나오게”라고 말해 수재민은 물론 국민의 분노를 사게했다. 경제위기로 국민들 삶이 너무 힘든데 말로만 ‘민생’을 외치면서 권력싸움에만 몰두하는 국회의원들은 또 무엇인가? 민주당은 소위 ‘검수완박’법을 감행 처리하면서 ‘위장탈당’의 꼼수까지 보여주더니 이제는 당직자가 기소되면 그 직무가 정지되는 당헌 개정을 추진하다 마지막 단계에서 막히는 것 같더니 또 꼼수가 등장했다. 왜 그런 꼼수를 생각했을까? 누구를 위한 꼼수일까? 이래도 사당이 아니라 공당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국민의힘은 이준석 전 대표가 자기 당을 상대로 법원에 소송을 거는 우리 정당사에 유례가 없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자당의 ‘윤핵관’을 비난하고 대통령에게까지 화살을 겨누었다. 참으로 정치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하는 장면이다. 물론 이준석 전 대표는 1차 법정싸움에서 가처분이 받아들여져 승리를 얻었고 당은 혼란에 빠졌지만, 과연 이번 승리가 그의 정치미래까지 승리를 보장해 줄까? 그렇다. 이것이 정치인의 추태이다. 이렇게 되면 정치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정치 혐오증까지 발생하게 된다. 여론 조사 때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리는 무응답자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대답조차하기 싫은 것이다. 하지만 정치 혐오자가 됐건, 정치 무관심자가 됐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정치의 영역에서 벗어 날수 없는 게 현실이다. 당장 우리 주머니에서 지출될 세금문제, 주택 문제, 국가안보 문제, 인권 문제 등, 우리 삶 전체가 정치의 영역에 들어있고, 정치인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정치인이 밉더라도 우리는 눈 부릅뜨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들에게 지불되는 많은 비용도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가 발명한 정치제도 중 가장 훌륭하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비용으로 생각하면 된다.그런 다음 국민은 투표로 심판하면 되는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大法院 확정판결도 거부하는 진영논리

로마의 관광 명소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진실의 입’(La Bocca della Verita)이 아닐까. 사자 모양의 짐승 조각인데 그 벌린 입에 손을 넣으면 거짓말하는 사람은 손목이 잘린다는 것. 물론 전설의 석상이지만 관광객들은 줄을 서서 그 입에 손을 넣어 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는 인기 코스다. 그 옛날 로마 사람들이 공포의 조각상을 만든 것은 거짓말하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직’을 로마의 정신으로 확립하기 위해서 였을까. 로마 뿐 아니라 영국에서도 ‘정직’은 가장 중요한 신사의 덕목으로 전해 오고 있다. 가령 영국 의회에서 상대방을 비난하는 연설을 하더라도 ‘거짓말 쟁이’(liar)라고 하면 가장 큰 모욕으로 받아 들여 결투를 하기도 했다. 이번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물러나게 된 것도 그가 한 거짓말 때문이다. 그는 3년 전 코로나 방역지침에 따라 금지된 가든파티를 벌인 것이 탄로가 나서 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그런데 그는 이에 대해 사과도 하지 않고 그런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의회 불신임 투표까지 가게 되었고 겨우 위기를 넘기는가 했지만 결국 ‘거짓말’은 용납할 수 없다는 여론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하긴 미국의 닉슨 대통령도 중국과의 국교정상화와 냉전체제의 전환이라는 업적을 남기고도 탄핵에 몰리다 사임했는데 그 핵심은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거짓말을 하게 되면 국민들과는 신뢰를 잃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진영에 따라 거짓말도 진실이 되고 진실도 거짓말이 된다. 심지어 대법원에서까지 최종적으로 판정된 것도 진영에 따라 진실이 결정된다. 조국 전 법무장관의 부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가 대법원에서 자녀입시 비리 등 혐의로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아직도 그는 무죄라고 주장하며 억울하다고 외치는 사람들에 둘러 쌓여있다. 대법원은 1~2심에서 판결한 대로 동양대 강사 휴게실PC의 증거능력을 인정했고, 그의 딸이 공주대학 생명공학연구소 인턴 경력이 없다는 등 7가지 혐의내용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는데도 이처럼 반기를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바로 진영의 논리다.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조국의 江’을 건너지 못하는 현상인 것이다. 노무현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한명숙씨의 불법정치자금수수 사건도 마찬가지다. 한 전 총리 역시 대법원에서 혐의 모두를 유죄로 확정하고 징역 2년에 8억8천만원의 추징금을 선고했으나 문재인정부에서 ‘무혐의’를 위한 재심운동이 끊이질 않았다. 역시 진영 논리다. 내 편이 하는 것은 거짓말도 진실이고, 네 편에서 하는 것은 진실도 거짓말이라는 것이 진영논리다. ‘검수완박’ 법안통과를 위해 민주당에서 무소속으로 위장탈당을 했다 하여 논란이 되고 있는 민형배의원 - 그가 민주당 이재명의원의 광주 방문에 동행하고 지방선거 때는 민주당 후보를 지원했는데 그러면 위장탈당이 아니라고 하는 민형배 의원과 위장탈당이라고 하는 국민의 힘, 어느 쪽이 거짓말일까?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다스’ 소유를 강력 부인하던 이명박 전 대통령 - 그러나 13년에 걸친 법정 공방 끝에 대법원이 ‘다스’는 이 전 대통령의 소유이고 따라서 자금횡령죄를 인정한다며 대법원이 징역 17년, 벌금 130억원을 선고했는데 그럼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 이 전 대통령일까, 대법원일까. 진영논리에 의하지 않고, 흑을 흑이라 하고, 백을 백이라 하는 날 우리 정치는 신뢰의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이준석 대표는 주연인가, 조연인가

최근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휩쓴 <브로커>가 계속 화제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송강호의 그림자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영화 평론가들은 조연배우 강동원에 주목하고 있다. 영화 속 베이비 박스에서 일하는 동수역을 맡은 강동원의 연기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주제를 잘 살려 냈고 ‘발 없는 참새’라던가 ‘태어나 줘서 고마워’같은 명대사의 분위기도 100% 전달했다는 것이다. 사실 영화든 연극이든 심지어 TV연속극까지도 주연 못지않게 조연 배우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TV 일일연속극으로 가장 인기를 끌었다고 하는 TBC(동양방송)의 ‘아씨’ 역시 조연 배우 때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TBC는 삼성의 이병철회장이 설립했다가 1980년 전두환 정권 때 KBS와 강제 통합됐는데 1971년 연속극 ‘아씨’는 방송사에 길이 남을 히트를 기록했다. 아씨의 친정 어머니역을 맡았던 김용림, 진산댁 역의 여운계 등 조연들이 드라마를 살렸다는 것인데 이 드라마가 방영될 저녁 시간대에는 서울 거리가 한산했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니 그 인기를 짐작할 만하다. 특히 이병철회장이 드라마에 관심이 많았고 조연 배우를 중요시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데 사실 오늘 삼성이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선 것도 이와 같은 조연 배우를 중시하는 경영철학이 작용했는지 모른다. 어쩌면 정치 역시 주연 못지않게 조연이 잘 해야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요즘 집권당이 된 국민의 힘을 보면 누가 주연이고 누가 조연인지 헷갈리게 한다. 분명 당 대표는 이준석이고 그가 주연 배우다. 그런데 다르게 보면 소위 ‘윤핵관’이 주연 같고 이준석 대표는 조연처럼 보인다. 심지어 당 최고회의에서 배현진 의원이 이 대표를 몰아붙이기도 하여 이에 발끈한 이 대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가 하면 악수를 청하는 배현진 의원의 손을 뿌리치기도 했다. 어린이 소꿉놀이처럼 유치한 장면을 보아야 하는 국민의 마음은 착잡하다. 이런 볼썽 사나운 모습에 국민이 실망하면 그 화살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간다. 이 대표의 나이가 어리기 때문일까. 국회 0선이라는 경력 때문일까. 오히려 그것이 더 강점일 수 있는데 차기 당권을 노리는 안철수 의원을 비롯 장재원 의원 등 반 이준석의 전선(戰線)만 넓히고 있다. 보다 못해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고위원과 당 대표는 경쟁관계가 아니라고 경고를 했다. 배현진 의원을 정치에 발탁한 사람이 홍준표 시장임에도 이런 경고를 날린 것은 그만큼 당 내 소란이 민망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이준석-배현진 실랑이도 누가 주인공이고 누가 조연인지 헷갈리게 하는 사례 중 하나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소위 윤핵관 측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자기 정치를 하고 있다고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최재형 의원(前 감사원장)을 위원장으로 출발시킨 당 혁신위원회도 그런 시각으로 보는 측도 있다. 이것을 통해 차기 공천 문제 등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양대 선거를 승리로 이끌고도 주연인지, 조연인지 안개 속을 걷고 있는 이준석 대표- 거기에다 ‘성상납’ 혐의로 당 윤리위원회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 이준석 대표, 우리 정당사에 처음 경험하는 이 사태는 그 자신이 자초한 것인가. 아니면 성숙하지 못한 우리 정치문화가 만들어 낸 것인가.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그래도 박지현을 변호한다

6·1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 지도부는 총사퇴를 발표했고 이에 따라 박지현 비상대책위원회 공동대표도 87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 대표는 물러났지만 여진이 그치질 않고 있다. 강성 민주당은 박 대표가 선거 막판 당의 쇄신을 요구하고 당내 문제를 사과한 것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식으로 공격을 하고 있다. 사실 그의 행동이 시기적으로 무리가 있어 보이는 면이 있기는 하다. 민주당 국회의원 64%가 586세대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광역 단체장 17명 후보 가운데 50%가 역시 586세대였다. 더욱이 민주당을 이끄는 지도부,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 대표, 우상호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대본부장 등등, 철벽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이 586세대다. 여기다 대고‘586 물러가라’고 요구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무모한 일이다. 그것도 이제 갓 26세의 여성 당직자가 단신으로 돌을 던진 것은 놀랄 일이다. 그는 겁 없이 그렇게 돌을 던졌다. 마치 이스라엘의 양치기 소년 다윗이 골리앗에게 돌을 던져 이마를 맞힘으로써 그 거인을 쓰러뜨린 고사를 생각하게 하는 장면이다. 블리셋의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을 침략한 골리앗은 “꼬맹이가 겁도 없이 덤비느냐”고 다윗을 조롱했지만 결국 그는 다윗이 던진 돌에 이마를 맞고 쓰러졌으며 블리셋 군대는 장수를 잃고 당황해 무너지고 말았다. 물론 박지현 대표는 다윗처럼 586 거물들을 쓰러뜨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586세대의 퇴진을 요구한 지 3일 만에 자신의 돌팔매질을 사과했으며 특히 윤호중 대표에게는 더욱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리고 일단 사태는 봉합됐다. 이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3일 만에 백기를 들었다’고도 했고 강성 당원들은 대표직을 떠나라는 등 1만개의 문자 폭탄을 퍼붓기도 했다. 그렇게 뭇매를 맞는 박 대표를 위해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은 많지가 않았다. 그러나 박 대표는 정치인이기 앞서 용기 있는 여성이다. 군함처럼 거대한 민주당의 팬덤 정치를 지금까지 감히 누가 그것을 깨자고 주장했던가. 하지만 박 대표는 ‘민주당의 팬덤 정치를 청산하고 대중정당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리고 586세대들의 퇴진을 말했다.(그 이후 586전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참 대단한 도전이다. 비록 늦게라도 민주당이 그의 제안을 수용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특히 박 대표의 주장 가운데 국민의 공감을 얻는 것이 팬덤 정치의 종식이다. 논리도 합리적 명분도 없이 이념의 틀에 갇혀 군대처럼 움직이는 팬덤 정치는 지금도 조국 전법무장관의 사태를 일컫는 소위 ‘조국의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으며, ‘검수완박’에서 보듯 강성 당원들에 의해 폭주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되는 성 비위사건에도 내로남불의 윤리적 오만함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이른바 반지성주의. 바로 이 때문에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박 대표의 용기 있는 발언에 공감을 했던 것. 비록 그 목소리가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 해도 그 용기마저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좌절하지 말고 더 용기를 가져야 한다. 미국의 존F.케네디 대통령은 그의 명저 ‘용기 있는 사람들’에서 진정한 용기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것이라 했고,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용기의 진정한 의미는 ‘국민의 시선’을 두려워하는 것이라 했다. 26세의 앳된 박지현 대표가 순수하게 바라본 정치의 음습한 내면에 신선한 산소가 공급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래야 민주당이 산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칼럼] 검사에서 대통령으로

“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닙니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습니다”, “내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인사권도 없는 식물 총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문재인 정권, 특히 조국·추미애·박범계 등 전 법무장관들과 맞서 싸우던 윤석열은 오늘 0시를 기해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신분이 확 바뀌었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런데도 그의 이미지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도 하고 핍박도 받던 검찰총장으로서의 ‘윤석열’이 강하게 남아 있다. 사실 그를 대통령으로 이끈 것은 위와 같은 이미지에 국민들이 공감했던 때문이며 그래서 결국 총장의 옷을 벗은 지 1년도 못 돼 대통령까지 오른 것이다. 수많은 정치인들이 일생을 다 바쳐도 달성하기 어려운 정상을 단숨에 올라 선 것. 그러니 그 이미지가 쉽게 지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사실 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이나 당선인의 신분이 되고서 보여준 그의 움직임은 그동안 역대 대통령들의 당선인 신분 때와 비교하면 세련되지 못했고 어설프기까지 했다. 물론 정치적으로 세련되지 못했다는 것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 집무실 선택 과정에서 보여 준 혼선, 대통령 관저를 외무장관 공관으로 결정하기까지의 잡음, ‘검수완박’의 여야 합의, 그리고 파기 과정의 명쾌하지 못한 정치적 소통의 문제점 등.... 그를 대통령으로 뽑아준 국민들에게마저 불안하게 비쳤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양심있는 사회단체와 대법원까지도 반대하는 ‘검수완박’에 대해 국민의힘이 보여준 모습은 아무리 선의로 해석해도 지방의회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문제는 앞으로 이와 유사한 일들이 계속 이어질 텐데 과연 성숙한 솜씨로 위기를 타개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이런 실수가 되풀이 되면 이탈리아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가 추락한 안토니오 디피에트로 검사처럼 될 수도 있다. 피에트로 검사는 42세 때인 1992년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태리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대청소를 실시했다. 이른 바 ‘깨끗한 손’(mani pulite) 운동. 상하의원 945명 중 321명을 수사했고, 619명에게는 국회의원이 갖는 면책특권을 정지시켰으며 현직 총리가 망명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집권당의 실세 의원을 TV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마약과 밀수혐의로 구속하기도 했다. 암살 위협을 받음은 물론 집권당으로부터 사임 압력을 받았지만 그는 흔들림 없이 투쟁했다. 그런 가운데 부패와 관련된 정당 4개가 해산됐고 대기업 총수들이 자살하는 사태가 속출하자 그는 1994년 검사의 옷을 벗고 정치에 뛰어 들었다. 유럽 의회 의원을 거쳐 입각도 하고 상원의원에 진출했으며 마침내 그 자신이 ‘가치의 이탈리아’라는 정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그가 만든 새 정당에 큰 관심을 갖기도 했지만 점점 열기가 식어 갔다. 피에트로가 검사로서 한창 국민 지지를 받을 때는 T셔츠나 맥주 컵에 그의 초상화를 그려 넣은 것이 불티나게 팔렸지만 정치 지도자가 되면서는 그만큼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그가 만든 정당은 집권을 못하고 야당으로만 전전하는 등, 검사로서는 영웅이었지만 정치인으로는 실패를 한 셈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이 너무 험난하다. 북한 김정은은 공공연히 핵위협을 노골화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 속에 안보환경은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국제 원자재 값의 폭등, 그것이 미치는 국내 물가 상승은 국민생활을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자영업자들의 손실, 노사 갈등, 빈부격차의 심화... 문제는 끝이 없다. 그런데다 취임 초에 누리는 허니문도 없이 민주당은 다수 원내 의석을 무기로 밤낮 없이 공격을 가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에서 부딪쳤던 개인적인 위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어떻게 이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것인가?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과 그 정부가 땀과 눈물, 그 열정을 쏟으면 못 넘을 산이 없다. 처칠이 2차 대전 때 영국을 승리로 이끈 것은 바로 그 눈물과 땀이었다. 국민들의 힘이 되어 줄 땀과 눈물-그것이 최선의 무기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칼럼] 여의도에 펼쳐질 ‘내로남불’ 코미디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온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려 “이 여인을 어떻게 할까요?”라고 묻는다. 그들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을 던져 죽이도록 돼 있다. 사실 유대인들은 예수님 입에서 “돌을 던져 죽여라”는 말이 나오기를 바랐던 것.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않고 땅에다 무엇인가 글씨만 썼다. 유대인들이 계속 예수를 다그치자 이렇게 말한다. “죄 없는 사람이 먼저 돌을 던져라” 그리고 또 다시 땅에다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말에 손에 들었던 돌을 내려놓고 하나씩 돌아갔다. 성경에 나오는 매우 드라마틱한 장면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예수가 땅에 쓴 글이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다. 정말 무엇을 썼을까? 이에 대해 요즘 한국의 정치 상황을 빗대 ‘내로남불’이라 썼을 것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어 웃음을 자아냈다. 예수님이 보기에도 한국 정치의 큰 병폐가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했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은 우리나라의 ‘김치’가 고유명사가 됐듯 이미 영국은 물론 미국에서까지 고유명사화 되고 있다. 지난해 4월7일 NYT(뉴욕타임스)가 naeronambul로 표기해 한국에서의 그 의미를 소개한 바 있고, 여타 해외 언론도 그렇게 뒤를 따르고 있는 실정. 특히 흥미로운 것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측이 ‘내로남불’을 선거구호로 내걸자 더불어민주당을 연상시킨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중앙선관위가 내로남불 이미지를 민주당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정말 문재인 정부 초기 ‘촛불정신’을 계승한다며 민주당은 도덕적 우월의식과 선민의식에 거칠 것이 없었다. 가령 2017년 11월1일, 청와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야당인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이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향해 주사파니, 전대협이니 하며 가시 돋은 질의를 하자 ‘그게 질의냐’, ‘매우 모욕감을 느끼고 강력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강하게 반발했었는데, 그만큼 선민의식이 팽배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조국 전 법무장관 등 사태를 거듭하면서 공정과 정의는 사라지고 ‘내로남불’의 세상이 돼 마침내 정권을 놓치고 말았다. 심지어 야당시절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옷값과 특활비 공개를 강력히 요구했었는데 지금은 김정숙 여사가 야당으로부터 옷값과 특활비 문제로 공격을 당하는 그야말로 ‘내로남불’이 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등 ‘5대 인사원칙’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고위공직자 원천배제의 잣대로 제시했다. 뿐만 아니라 2017년 11월에는 음주운전 등을 추가해 ‘7대 기준’을 마련했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는 이 잣대를 잘 지켰을까? 조명래 환경부장관 등이 위장전입으로, 김연철 통일부 후보자는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지는 등 의혹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국회청문회의 야당 동의 없이 34명의 장관급 임명을 강행했다. 청문회 제도가 시행된 이래 역대 정부 중 최대의 기록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내각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시작되면 문재인 정부에서 제시했던 ‘7대 기준’을 잣대로 철저히 검증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소식을 들은 국민의힘 측에서는 ‘완전한 코미디 내로남불’이라고 비아냥댔다. 이처럼 코미디 같은 정치가 계속되니 정치인들이 존경을 못 받는 것 아닐까. ‘내로남불’로 얼룩진 ‘7대 기준’이 코미디가 되지 않기를 바랄뿐. 이런 판에 송영길 민주당 전 대표가 86세대 은퇴를 주장했는데 갑자기 서울시장에 출마한다고 하자 같은 당내에서까지 ‘내로남불’이라고 반발하는 소리가 높다. 과연 여의도의 봄은 ‘내로남불’로 만개한 것 같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칼럼] 링컨은 人事로 미국을 통합시켰다

시골뜨기, 꺽다리 촌놈, 원숭이. 미국 16대 대통령 링컨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그렇게 그의 정적(政敵)들은 링컨을 무시했고 특히 스탠턴 같은 사람은 앞장서 링컨을 조롱하고 반대했다. 팔이 긴 원숭이라는 모욕적 비난을 했던 사람도 스탠턴이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링컨이 대통령이 되고 내각을 구성할 때 자기를 조롱하고 반대했던 스탠턴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링컨은 정치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통합에 두었기 때문에 그렇게 파격적 인사를 한 것이다. 국방부 장관이 된 스탠턴은 링컨에 충성하며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으니 링컨의 인사는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링컨은 통합을 매우 중요시 했다. 러시아 영토였던 알래스카를 미국의 영토로 만든 데에도 링컨의 통합의 리더십이 숨어 있다. 러시아로부터 720만달러에 알래스카를 사들인 윌리엄 스워드 국무장관을 국무장관에 임명한 대통령도 링컨이었고, 그가 암살되자 부통령이었던 존슨이 대통령에 오르면서 그대로 유임됐다. 특히 스워드는 대통령 지명전 때 링컨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는데도 그를 포용해 국무장관에 임명했고 스워드 역시 알래스카 매입 등 미국에 공헌을 했다. 남북전쟁도 결국 미국의 통합을 위한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결과였다. 세계 2차 대전이나 월남전, 6202725 한국전, 그리고 최근의 아프간 전쟁에서 죽은 미군의 숫자보다도 많은 60만 명이 목숨을 바친 남북 전쟁이 아닌가. 이렇게 엄청난 전사자를 내면서 링컨이 이 전쟁을 밀고 나간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남북전쟁 하면 노예해방을 생각한다. 그러나 링컨 대통령은 전쟁을 시작하면서도, 그리고 전쟁 중에도 노예해방을 선언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부 주를 점령한 북군 사령관들이 노예를 해방시킨다고 발표하자 그들을 엄하게 경고했다. 한 신문에서 이와 같은 링컨의 자세를 비판했는데 링컨은 그 신문 편집인에게 편지를 보내 우리가 전쟁을 하는 것은 미국의 연방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노예해방을 않고도 연방이 유지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남북전쟁의 목적은 노예해방이 아니라 하나 된 미국을 위한 것이요, 요즘 우리 대통령 선거 때 자주 등장했던 국민통합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국가 통합을 최우선으로 삼았던 링컨의 정신은 지금 우리나라에도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는 지금 갈라질대로 갈라져 심한 갈등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보수와 진보, 물과 기름 같은 이념의 분열은 초등학교 교실에까지 번져 있고 세대, 젠더, 노동, 문화 예술 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든 독버섯처럼 퍼져 있다. 이렇게 나라가 온통 분열의 열병에 걸려 몸살을 앓은 때가 일찍이 있었던가. 앞으로가 더욱 걱정이다. 최근 대통령 선거는 외국 언론이 역대 최악의 선거 또는 비호감들의 선거라고 혹평할 정도로 분열을 넘어 증오의 선거가 됐던 만큼 앞으로의 정국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국무총리 임명 동의안이 국회의 벽을 무난히 넘을 수 있을지, 장관의 국회 청문회는 또 얼마나 시끄러울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국회 청문회 동의 없이도 23명이나 장관에 임명된 독선을 되풀이 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래서야 선거기간 내내 약속했던 국민통합이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힘겹게 정권교체를 이룩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야말로 링컨의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 정파와 이념, 세대, 성별을 초월한 정부를 출범시켜야 할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칼럼] ‘오징어 게임’같은 선거

이재명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지난달 내가 지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감옥에 보낼 것이라고 한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켰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후보가 당선되면 정치보복을 할 수 있다면서 지지층 결집을 호소한 발언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민주당 안에서도 대장동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부정적인 발언이라는 평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후보는 그 다음 날도 대한민국을 미래로 가는 희망찬 나라로 만들 것이냐 아니면 복수혈전이 펼쳐지는 과거로 갈 것이냐라고 말했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복수혈전이니 감옥이니 하는 말이 등장한 것은 처음이다. 듣기에도 거북한 말이다. 그런데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집권하면 적폐청산을 하겠다는 발언에 대통령까지 나서 분노를 표시하는 등 뜨거운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선거전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이 편하질 않다. 우리 조선 당쟁사가 복수혈전으로 얼룩져 있기 때문이다. 그 무서운 갑자사화가 대표적 케이스. 1478년 봄 전국에 흙비가 내려 성종 임금은 불길한 징조로 생각하고 어전회의를 열었다. 신하들은 사치를 금하고 술을 마시지 않게 하자고 아뢰었으나 비서실장격인 도승지 임사홍만 술을 금하자는 것에 반대했다. 흙비는 재해일 뿐이며 제사가 많은 궁궐에서 어떻게 술을 금하느냐는 것이었다. 급기야 임사홍은 그의 돌출발언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귀양을 간 임사홍은 그날부터 복수혈전의 칼을 갈았다. 귀양살이에서 복귀한 임사홍은 아들 둘을 임금의 사위로 삼는데 성공함으로써 권력의 정점을 향해 치닫는다. 성종 임금이 세상을 떠나고 연산군이 등극하자 임사홍은 연산군과 밀착해 권력의 날개를 달았다. 연산군의 최측근이 된 것이다. 이렇게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은 임사홍은 자신을 귀양 보냈던 정적들에 대한 잔인한 보복을 결행한다. 1504년에 벌어진 갑자사화가 그것이다. 그동안 비밀에 부쳐졌던 연산군의 생모가 참소 당해 죽은 사실을 연산군에게 고해바침으로 우리 역사상 가장 참혹한 보복이 일어난 것. 연산군은 자기 어머니 죽음에 관련된 선비들을 모두 죽이고 이미 죽은 사람은 그 무덤까지 파헤쳐 유골에 칼질을 하는 등 공포분위기가 계속됐다. 임사홍은 연산군을 부추겨 과거 흙비사건으로 자신을 귀양 보냈던 반대파들 역시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는 등 철저한 보복을 감행했다. 그렇게 권력은 가슴에 맺혔던 흙비의 한도 깨끗이 풀어 주었다. 그야말로 권력의 맛이었다. 하지만 권력은 정의와 공정을 상실했을 때는 여지없이 뒤집어 엎는 속성이 있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 연산군의 폭정이 종말을 고하자 임사홍 역시 자신이 정적에게 했던 것처럼 몽둥이에 맞아 죽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의 무덤까지 파헤쳐 시신을 욕 보였다. 이와 같은 보복의 정치가 갑자사회에 끝나지 않고 조선왕조가 망할 때 까지 계속된 것이 부끄럽게도 우리 역사다. 그런데 요즘 우리 대선판국이 심상치가 않다. 불나비들이 죽는 줄 모르고 불을 향해 돌진하듯, 선거에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르고 있다. 치졸한 술수가 다 동원되고 지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진흙탕 싸움을 한다. 마치 오징어 게임같은 선거다. 그리고 마침내 지면 감옥 갈 것이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결국 이와 같은 현상은 선거 자체를 혐오스럽게 하고 있다. 이렇게 추하게 죽기 살기로 싸움을 벌인 끝에 승패가 결정나면 어느 쪽이든 흔쾌히 승복할 것인가? 그 앙금이 보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을까? 며칠 전 하루 동안에만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후보 부인 김건희씨의 7시간 녹취록에 대한 보도와 관련해 MBC를 대검에 고발하는 등 3건의 고소 고발이 있었고, 민주당도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이재명 대통령 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의 제보자 죽음이 이 후보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발언한 데 대해 허위사실유포로 서울지검에 고발하는 등 고발 고소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니 선거후의 후유증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접수된 이번 대통령선거 보도관련 이의신청 또한 1월말 현재 64건이나 되고 있음도 선거후 분위기를 걱정하게 한다. 정말 선거가 오징어 게임이 아니라 축제가 되기를 꿈꾸는 것은 허망한 일일까?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그러면 神父님이 출마하세요?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이는 10년에 걸친 트로이와의 전쟁을 그 유명한 트로이의 목마(木馬) 계략으로 승리를 거두지만 멘토라는 교육 용어를 탄생시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전쟁에 나가면서 아들 교육이 걱정이었다. 아버지가 집을 비운 사이 자식이 삐뚤어지지 않을까,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갖춘 젊은이로 제대로 성장할 것인가. 그래서 그는 그의 친구 멘토에게 아들 교육을 부탁하고 전장으로 나간다. 멘토는 아버지를 대신해 교육을 했는데 때로는 엄격하게 가르치고 때로는 마음 터놓고 친구처럼 깊은 정을 쌓아 갔다. 전쟁에서 돌아온 오디세이는 전쟁에서 승리한 것보다 멘토 덕분에 아들이 훌륭하게 성장한 것에 크게 기뻐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도 충실한 인생 상담자, 또는 반려자나 존경하는 선배를 멘토라고 하는데 그 어원이 여기에서 시작된 것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계 2차 대전 때 일본을 항복시키고 6ㆍ25 한국전 때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켰던 미국의 맥아더 장군은 48세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었다. 육군 중장으로 유럽, 필리핀 등 세계를 누빌 때여서 자식 교육에 소홀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내 아들이 이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는 기도문을 만들어 수시로 암송했다고 한다. 정직한 패배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승리에 겸손하며 남을 다스리기 전에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 웃을 줄 알고 눈물도 흘릴 수 있는 사람 미래를 향해 전진하되 과거를 잊지 않는 사람 이렇듯 집을 떠나 전쟁터에서 세월을 보내야 하는 영웅일지라도 자식 교육에 신경을 쏟았다. 그런 게 군인이 아니어도 정치인이나 사업가들이 너무 바쁘게 뛰어다니다 보면 자식 교육에 소홀할 수 있다. 심지어 전국을 누비며 부흥설교를 하러 다니는 유명한 목사의 아들이 탈선하는 경우도 있고, 사업 확장에 몰두하던 대기업 총수의 자녀가 마약이나 도박에 빠지는 일도 있다. 민주화운동에 일생을 바친 김영삼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 점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를 비롯,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 차남 홍업, 3남 홍걸 씨 등 3형제 모두가 크고 작은 비리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는 등 아버지들의 명예를 훼손시켰기 때문이다. 대권(大權) 문 앞까지 갔다가 자식문제로 낙마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그리고 대권까지는 아니더라도 국민의 힘 장재원 의원등등. 그리고 지금은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가 아들 문제로 난처한 상황에 있다. 경기 남부경찰은 그의 장남 도박혐의에 대해 수사에 착수했고 이재명 후보는 직접 국민 앞에 깊은 사과를 했다. 국민의 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는 아들은 아니지만, 부인의 허위 경력문제로 시끄럽다. 결국 이준석 당 대표와 조수진 의원의 이른바 항명 파동도 후보 부인의 문제에 대한 대처방식이 충돌을 빚은 것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그런데다 지난주 윤석열 후보의 장모가 사문서위조혐의로 재판을 받고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래서 요즘 나오는 이야기가 자식도 없고 처가도 없는 신부님이나 스님이 대통령에 출마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물론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렇다고 신부님이나 스님이 정치를 잘할 것인가? 우리 한국 정치의 현실을 말해 주는 뼈아픈 농담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조국의 江’과 ‘돌아오지 않는 江’

미국 서부 웅장한 로키 산맥의 긴 협곡에는 돌아오지 않는 강(River of no Return)이라 불리는 강이 있다. 물살이 빠르고 험해 당시 서부 개척자들이 뗏목을 이용해 이 강을 건너다 많은 희생을 당해서 생겨난 별명이다. 1955년 관능미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를린 먼로와 로버츠 미첨이 주연했던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이 대단한 인기를 몰았는데 바로 그 배경이 되어준 강이다. 오래된 영화지만 지금도 그 주제가는 라디오에서 가끔 들을 수 있다. 먼로가 직접 부른 주제가를 들으면 그 위험한 물길에서 뗏목을 부둥켜안고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결국 주인공들은 그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너고 사랑도 이루는 해피엔딩. 대통령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조국의 강이 뜨겁게 회자되고 있다.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처럼 뗏목까지 등장하고 있다. 조국 전(前)법무장관이 최근 그의 페이스북에 저는 강이 아니라 뗏목에 불과하다는 글을 올렸기 때문이다. 정말 그는 강이 아니라 뗏목일까? 이 문제를 처음 꺼낸 것은 민주당 조응천 의원이 한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한테 주어진 과제 중에 큰 것은 결국 조국의 강을 확실히 건넜느냐라고 언급하면서였다. 그러자 민주당 이재명 대통령 후보 역시 조국 사태에 사과를 했고 특히 12월2일 방송기자클럽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아주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같은 민주당의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이에 반발해 조국의 강은 실체가 없으며 쥴리의 강만 있다고 언성을 높였다. 바닥까지 긁어내고 다 파내도 표창장 한 장만 남았다고도 했다. 표창장 하나. 추 전 장관이 인식하는 표창장 하나의 의미와 국민들이 인식하는 표창장 하나의 의미에는 큰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거기에 사태의 심각성을 추 전장관은 모르는 것일까, 알고도 무시하는 것일까? 사실 조국의 강은 조국 가족의 문제에서 시작됐지만 그것을 큰 강으로 만든 데는 내로남불의 사건들이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이용해 개인적 이득을 취했다는 소위 윤미향 의원의 정의기억연대 사건은 지금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 사건이 엄청나게 세상을 시끄럽게 했는데도 민주당 소속을 무소속으로 자리만 옮겼을 뿐 여전히 금배지를 달고 있다. 윤희숙 의원이 아버지로 인해 발생한 부동산투기 의혹임에도 국회의원직을 내던진 것과는 정반대다. 재벌의 저승사자로 불릴 만큼 경제 정의를 외쳤던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은 세입자 보호를 위해 5%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자신이 앞장서 임대차 3법을 만들었는데도 자신의 청담동 아파트를 법 시행 이틀 전 141%나 기습 인상시킨 사실이 밝혀져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내로남불이 계속되자 이들 물줄기들이 모이고 모여서 강을 이루었고 그것이 마침내 조국의 강에 더해져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처럼 위험한 강이 됐다. 이 강물을 더욱 흐려 놓은 것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이어 오거돈 전 부산시장에 이르기까지 민주당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성추행 사건들이다. 여성의 인권과 공작자 윤리를 강력히 부르짖던 이들의 두 얼굴, 국민들을 얼마나 실망스럽게 했을까? 따라서 조국 전 장관은 민주당은 조국의 강을 넘어 들판을 향해 신속히 진군하고 있다고 하면서 뗏목 고치는 일은 저와 제 가족, 소수의 동지들 몫이라고 했지만 뗏목 고치는 것으로는 이 강은 건널 수 없을 것이다. 내로남불이 바로 큰 강이기 때문이다. 뗏목이나 고치는 정도로는 돌아오지 않는 강이 되고 말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이회창 대선 패배의 교훈

우리나라 바다에서 가장 물의 흐름이 빠르고 험한 곳이 전남 해남과 진도 사이에 있는 울돌목이라고 부르는 명량해협(鳴梁海峽)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는 배들은 어느 때 조류가 빠르고, 어느 때 물길이 바뀌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거북선으로 왜선 133척을 맞아 세계 해전사에 유례없는 승리를 거둔 것도 명량해협의 물길이 변하는 때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전투에 활용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정치에서도, 특히 선거에서 때를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협의 조류, 그 바다의 때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전투에 활용해 승리한 것처럼 선거도 민심의 흐름, 그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이회창의 대권실패는 좋은 교훈이 될 수 있다. 그의 실패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를 대권 반열에 올려놓았던 대쪽 이미지와 3金청산이 족쇄가 됐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였던 그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에게 57만표라는 근소한 표차로 패배했다. 불과 2.3%p 차이, 그러니까 이회창 후보가 30만표만 더 얻었으면 승리를 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이 얇은 벽을 그는 뚫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을까? 대통령선거에서 2.3%p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그가 JP(김종필 자민련총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만약 JP를 잡았으면 충청권에서 적어도 30만표 이상은 더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투표 전에 이미 이와 같은 낌새를 느낀 참모들이 JP를 끌어들여야 한다고 건의를 했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그의 정치철학이었던 3金청산이라는 것이 제동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제동을 건 또 하나의 사유도 있다. JP가 이회창과 손잡으면 충청권의 정치적 맹주 역할을 하고 있는 K씨가 자리를 빼앗기게 되기 때문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고민하다 이회창은 투표 며칠 앞두고 다급한 나머지 JP를 만나러 청구동 JP자택으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JP자택에 거의 도착할 무렵, K씨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 만약 JP를 만나면 자신은 탈당하겠다는 전화였다. 결국 이회창은 JP를 포기하고 차를 되돌렸다. 그리고 JP가 끌어 모을 수 있는 30만표는 노무현 후보에게 돌아갔다는 것이다. JP의 회고록에 의하면 이처럼 JP와 이회창이 손을 잡을 기회가 몇 번 있었으나 성사 직전 서로 등을 돌렸다는 것이다. 그것이 운명일까? 아니면 참모들의 판단 착오일까? 이회창은 박근혜 의원(후에 대통령)을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문제로도 고민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가 박근혜를 영입하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는 이미 타이밍을 잃은 후였다. 2007년 12월, 그가 세 번이나 삼성동 박근혜 의원 집을 찾아갔으나 면담조차 거부당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리고 또다시 이회창은 대권도전에 실패하는 쓴잔을 마셨다. 역시 때(時)를 다스리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는 말이 수긍가는 대목이다. 어쩌면 지금 대권주자들은 마음에 내키지 않는 사람들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는 걸 주저하고 있는지 모른다. 후보자 본인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측근 참모들이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태가 임박해서 손을 내밀면 그때는 이미 놓친 것이고 과거 이회창처럼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뻔한 것이다. 후보는 아니지만 이준석 국민의 힘 대표가 안철수를 따돌림 하는 것도 그런 면에서는 좋은 자세는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승자와 패자 표차가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포용의 자세가 더욱 중요하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정말, 지도자가 없구나!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비롯 역대 미 대통령들이 당파를 초월해 멘토 역할을 해 준 인물이 있었다. 빌리 그래함 목사(1918-2018)다. 대통령들은 전쟁이나 국가의 중대한 일이 있으면 그를 불러 조언을 들었고 그러면 그래함 목사는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고 함께 기도했다. 그래함 목사는 전쟁이 있는 곳에도 달려가 군인들에게 정신적 위안과 힘을 줬다. 한국 전쟁 때도 그랬다. 한번은 야전병원을 방문했는데 병상에 엎드려 있는 병사가 그래함 목사를 바로 보기 위해 힘들게 몸을 움직이자 아니, 그대로 누워 있으시오!하고는 자신이 그 병사의 병상 밑으로 누워 기도를 했다. 그러자 그래함 목사의 얼굴에 병사가 흘리는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래도 목사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번지르르한 말이 아니라 이런 모습 때문에 미국인들은 그를 정신적 멘토로 삼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해방 후의 혼란, 6ㆍ25전란 후의 절망과 굶주림 속에서 국민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정신적 지도자들이 있었다. 불교의 성철 스님, 청담 스님, 송월주 스님, 법정스님, 기독교의 한경직 목사,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외친 함석헌 선생, 그리고 천주교의 김수환 추기경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1971년 12월24일 자정, 서울명동성당에서는 성탄절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KBS TV는 이를 전국에 생중계했다. 미사를 진행하던 김수환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만일 현재의 사회 부조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는 독재 아니면 폭력혁명이라는 양자택일의 기막힌 운명에 직면 할지 모른다고 당시 정치 사회 전반의 부패를 강하게 경고했다. 혁명까지 거론할 정도로 폭탄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예기치 못한 발언이 전국에 TV로 생중계되자 청와대는 당황했고 국민들은 환호했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많은 희생자가 나오자 김수환 추기경이 전두환을 찾아갔다. 그리고 전두환 면전에서 그만 멈추라고 했다. 그러자 전두환은 이에 대한 대답은 않고 국방부에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1979년 6월 항쟁 시에는 명동성당으로 피신한 시위 대학생들을 검거하기 위해 경찰이 진입하려 하자 경찰이 들어오면 먼저 나를 밟고 가라며 몸으로 그들을 막아 감동을 줬다. 판자촌 철거민들을 찾아가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위로했다. 한경직 목사나 성철 스님, 김수환 추기경 이들의 공통점은 권력과 돈을 외면했고 청빈을 실천했다는 사실이다. 성철 스님의 누더기 옷도 유명하지만 법정 스님의 무소유(無所有), 그리고 한경직 목사와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유품이라고는 오래된 낡은 옷과 구두 한 켤레, 안경이 감동적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안구마저 시력 장애자에게 기증하고 떠났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이런 정신적 지도가 없다. 정치가 이렇게 혼탁하고 단군 이래 최대의 부정부패라고 하는 성남의 대장지구 개발 게이트가 터져도 나서 주는 지도자가 없다. 목소리도, 촛불도 없다. 그러니 공정과 정의는 어디서 찾을까? 교파, 종파의 지도자는 있어도 통합의 지도자는 없는 것이다. 하긴 100세 노교수가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소리를 했다가 젊은 변호사로부터 면박을 당하는 세상이니 지도자가 존재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우리는 이 혼탁한 세상을 비출 지도자를 고대한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변평섭 칼럼] TV토론이 대통령 만든다고?

정치평론가들은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이 TV가 없었으면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1960년 9월26일,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후보 TV토론이 있던 날, 민주당 후보 케네디는 특이한 헤어스타일에 검정 정장,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고 얼굴에 메이크업까지 하는 등 젊고 활력 넘치는 이미지를 보여 주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그때만 해도 TV가 컬러가 아닌 흑백이어서 그에 맞는 이미지 연출에 신경을 썼는데 반대로 공화당 닉슨 후보(당시 현직 부통령)는 이런 것에 소홀했다. 그런데다 닉슨은 무릎 수술을 받고 입원을 막 끝낸 상태여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얼굴 화장도 거부하고 맨얼굴로 TV토론장에 나타났다. 사실 닉슨은 현직 부통령으로 인지도가 높고 이미 모스크바에서 당시 소련 공산당 제1서기 흐루시초프와의 그 유명한 부엌 논쟁으로 토론 솜씨를 세계에 과시한 만큼 케네디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TV토론이 시작되자 상황이 정반대로 전개됐다. 닉슨은 계속 얼굴에 땀을 흘려 피곤한 모습에다 얼굴빛은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해 창백해 보였다. 반대로 케네디는 아일랜드 이민 후손이어서 특유한 영어 발음에 유창한 언변으로 닉슨을 공격, 미국을 이끌 지도자로서 유권자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데 성공했다. 이 TV를 보고 미국의 중도층이 케네디로 돌아섰고 특히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가 크게 높아졌다. 그리고 케네디는 미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TV가 없었으면 케네디는 당선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후 많은 나라들이 선거에서 TV토론을 가장 효과적인 선거운동으로 활용하고 있고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국민의힘에서는 선두 주자인 윤석열 후보 측이 토론에 소극적이라며 역대 선거에서 토론실력을 보여 줬던 후보들이 공격했고, 지난달 25일에 있었던 후보들 비전 발표회를 초등학교 학예회 같다고 비웃는 후보도 있었다. 심지어 TV토론이 겁나면 대통령 출마도 그만둬라고까지 몰아세웠다. 그리하여 마침내 국민의힘도 민주당처럼 치열한 토론의 무대가 열렸으며 날 선 검증과 공격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각 후보 캠프에서는 토론 준비에 올인하고 있으며 전문가들을 초청해 과외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TV토론이 대통령을 만드는 요술 방망이라도 되는 것일까? 듣기에 달콤한 언변으로 유권자들을 솔깃하게 하고, 상대방의 허점을 후벼 파는 공격은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바지를 벗을까요?와 같은 저급한 용어, 배신자, 개XX 같은 섬뜩한 독설은 유권자들을 흥분시킬 것이다. 얼굴의 주름을 감추고 눈썹을 짙게 하는 등 분장은 이미지를 높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이 얼마나 표로 연결될 것인가? 중요한 것은 이제 유권자들의 의식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여러 선거에서 수없이 있었던 TV토론을 통해 TV화면 뒤에 가려진 후보자의 진실을 유권자들은 판별할 줄 알게 된 것이다.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대통령의 멋진 말도 얼마나 허접한 것인가를 경험한 국민은 이제 그 연출된 말의 향연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TV토론이 선거 참고서는 될지언정 대통령을 만드는 요술방망이는 아님을 후보자들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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