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7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시청각 유산의 날’이다. 1980년 10월 27일 세르비아 벨그라드에서 개최된 제21차 총회에서 ‘시청각 기록의 보호와 보존에 대한 권고문’을 채택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2005년부터 유네스코 회원국을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관련 행사가 펼쳐져 왔다. 한국의 경우 2019년과 2020년에 오프라인 행사가, 2021년에는 온라인 행사가 있었다. 올해에는 한국영상자료원과 새공공영상유산정책포럼의 공동 기획 하에 10월 27일 오후 2시부터 5시 30분까지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KOFA 제2관에서 2년 만에 오프라인 행사가 열렸다. 테마는 ‘필름 아카이빙을 말하다’였다. 이번 행사는 다양한 시청각 유산(Audiovisual Heritage) 중에서도 영상 매체, 특히 영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1부에서는 이네스 토하리아 테란(Ines Toharia Teran) 감독의 <필름, 우리 기억의 살아있는 기록(Film, the Living Record of our Memory)>(2021)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상영됐고, 2부에서는 한국영상자료원 성연태 대리와 기록문화보관소 박주원 실장의 전문가 대담이 마련됐다. 대담의 진행은 필자가 맡았다. 이를 통해 필름 아카이빙의 개념과 필요성, 국내외 필름 보존 및 보관, 영상 복원 및 디지털화 작업의 공정과 업무의 특수성 등에 관한 개괄적이고도 구체적인 논의와 설명이 이뤄졌다. 알려진 바대로, 19세기 말 영화가 등장하고 정착하게 된 데에는 필름의 개발과 상용화라는 기술적, 산업적 배경이 자리해 있었다. 이후에도 무려 100여 년간 영화는 촬영, 현상, 배급, 영사 등의 전 과정에서 ‘필름’이라는 물리적 기반을 토대로 삼았다. 영화(Film)의 역사가 곧 필름(film)의 역사였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적어도 20세기만큼은 영화 필름에 지나간 세월의 흔적(歷史)이 생생하게 담겨졌다. 인류 역사의 바탕에 인간의 기록 행위가 전제돼 있음을 떠올리건대, 동시기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영상 매체로서의 지위를 누렸던 영화 필름이 지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는 상당히 크다고 하겠다. 필름은 외부 환경에 따라 쉽게 변질되고 손상되는 물질적 속성을 띠기도 한다. 때문에, 소중한 문화유산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며 그것을 철저히 관리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국내에서는 오랫동안 필름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10월 27일은 한국 ‘영화의 날’이기도 하다. 1919년 10월 27일 단성사에서 한국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연쇄극 <의리적 구토>가 개봉된 일을 1960년대부터 기념해 온 것인데, 이 작품의 필름 자료는 소실된 상태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영화 필름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반전은 의외로 필름 시대의 종말을 고하던 때에 일기 시작했다. 2000년대 이후 한국영화에 대한 필름 발굴, 복원, 데이터화 작업이 본격적으로 행해져 과거의 명작들이 소생하게 된 것이다. 또한 필름 아카이빙도 보다 체계화됐고, 관련 전문가들이 양성되기도 했다. 물론, 여전히 과제는 남아 있다. 젊고 유능한 인력의 확충과 더불어 국가 기관, 민간 업체, 개인별로 흩어져 있는 방대한 자료를 아우를 만한 통합적 관리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 매체의 근본적 변화가 추동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공공의 재산인 필름이 지니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식하고 환기시키려는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함충범 한국영상대 영화영상과 교수
오피니언
경기일보
2022-11-02 20: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