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엄마, 삶과 예술을 실천하기

한국은 ‘어버이날’이 있지만 미국은 ‘어머니날(Mother’s Day)’, ‘아버지날(Father’s Day)’이 따로 있다. 매년 5월 둘째 주 일요일이 어머니날이다. 이는 1907년 미국 필라델피아 출신의 애나 자비스는 정부 기관, 입법부 등에 1년에 하루는 어머니들을 기리는 데 헌신할 것을 제안했다. 1910년, 버지니아주는 처음으로 어머니 날을 공식적인 휴일로 인정했다. 최종적으로 1914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5월 두 번째 일요일을 모든 미국인 어머니들을 위한 국경일로 선포했다. 기념일로 지정될 만큼 엄마는 얼마나 대단한 존재일까? 엄마가 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수없이 생각해 봤지만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 하나 있다. 끊임없이 줘도 부족하고 아쉬운 사랑의 순간들. 모든 장면이 사무치게 그리워 할 순간이 오겠구나. 매일 매순간이 기쁨이고 성장이고 경이로움의 연속인 건 확실하다. 산뜻한 바람과 꽃가루가 춤추는 5월. 지독하게도 끝나지 않았던 뉴욕의 얄미운 초겨울 같던 날씨가 어느새 물러가고 맑고 투명한 빛이 내리쬔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 엄마가 되는 상상을 했다. 세상의 기적을 맛보는. 여러 의미로 정말이었다. 여성이자 엄마가 되는 건 인생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감각과 감정, 그리고 경험으로 생기는 또 다른 흩어진 ‘나’를 발견하게 한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예술계에서 엄마됨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다. ‘여성’이자 ‘엄마’라는 주제는 젠더를 넘어선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다뤄지고 있다. 현대 미술에서도 시대에 대응하는 ‘젠더’, ‘페미니즘’, ‘모성애’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 문제, 특히 성별의 변화에 이뤄지는 ‘가족’과 ‘모성’을 주제로 다양한 예술 작업이 나타나고 있다. 엄마이자, 아티스트이자, 여성이자 많은 역할을 하고 있는 예술가들의 작업 속에서 나타나는 서사는 ‘공공의 영역’으로 들어와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삶이지만 또 하나의 ‘사회적인 삶’이다. 이 말은 여성의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는 사회적 관계와 조건을 필요로 한다. 예술계 안에서 이러한 주제가 생산적인 힘을 가지기 위해선 드러내기, 보이게 만들기, 함께하기, 지지하기를 실천하는 것이다. 엄마라는 정체성은 변하지 않고 함께 간다. 육아는 현실이고 예술과 육아는 이미 예술의 영역으로 넘어온 지 오래고 인식은 확장되고 있다. 큰 범주에 속하지만 아주 작은 부분을 건드리는 것. 계속 끊임없이 보여줄 수 있는 예술가들과 함께 입증할 일들이 앞으로 기대된다.

[천자춘추] 겸손의 문을 열려면

세계적인 베이스 기타리스트이자 교육자인 앤서니 웰링턴은 어떤 악기를 마스터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의식 단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무의식적 무지(Unconscious Not Knowing)다.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단계다. 생일날 장난감 드럼을 선물 받은 어린이가 마구잡이로 치면서도 행복해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된다. 두 번째는 의식적 무지(Conscious Not Knowing)다.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단계다. 자기 실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건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 취미로 시작한 사람들은 이 두 번째 단계에서 그만둔다. 만약 그 고통을 이겨내고 계속해서 배움에 정진하면 어떻게 될까? 조금만 신경 쓰면 멋진 연주를 할 수 있게 되는 세 번째의 의식적 지식(Conscious Knowing)을 가진 프로가 되고, 이 부분을 넘어서면 의식하지 않아도 완벽한 연주가 되는 네 번째의 무의식적 지식(Unconscious Knowing)의 단계에 이른다. 웰링턴은 위의 네 가지 단계가 악기를 다루는 과정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인생이 담겨 있는 통찰이다. 최근 어떤 사람과 일을 같이 했다. 나름 유명한 분의 가르침도 받은 사람이라 실력은 확실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아주 기본도 안 돼 있는 사람이었다. 며칠이 지나고 갑자기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강렬한 깨달음이 왔다. ‘나는 도대체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동안 까불고 살았지? 누군가 보기에는 나도 그 사람만큼 모르는 사람일 텐데.’ 그 사람이 열 가지 중 한둘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열 가지 중 서너개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일곱 개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한두 개 가진 사람들을 손가락질하며 마치 나는 모든 것을 통달한 사람처럼 교만했다.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단계, 서두에 언급한 웰링턴에 따르면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무의식적 무지’의 단계로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다름 아닌 나였다. 어떤 의미로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진정으로 겸손해 본 적이 없었고 수많은 실력 향상의 기회를 교만한 삶의 자세로 놓치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지금이라도 이 사실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미칠 듯이 아쉬웠다. 10년만, 아니 5년만 더 빨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필 인생에 있어 이처럼 중요한 사실을 ‘지천명’의 나이가 돼서야 깨닫게 됐다는 사실 또한 참으로 얄궂다. 그래서 ‘철학의 시작’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우리에게 남겼나 보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내가 모른다는 사실이다.”

[천자춘추] 한국경제 중·장기적 경쟁력 확보 방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악재가 곳곳에 있고 인간의 삶 또한 스펙트럼처럼 변화무쌍하게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세계경제는 아직도 그 여파로 인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 한 채 허덕이고 있는 요즈음이다.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지난 4월4일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예측 프로그램인 ‘GDP다우’에 따르면 올 1분기 성장률 전망치는 1.7% (연이율) 수준으로 집계됐다. 한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경제 발전을 이뤄 내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 대국 중 하나로 성장해 왔다. 한국 경제는 1970년대부터 급격한 성장을 이뤄냈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춰 국제시장에 진출하게 됐는데 이는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의 성장과 함께,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의 노력과 지원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한국 경제는 미래에도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다양한 과제가 존재한다. 그중 시급한 것은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성, 격차 해소 등이 있으며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정부의 지원과 기업의 혁신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 측면에서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인 방안은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는 길이다. 기업은 자체 산업을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하고 육성해 이들이 미래 성장을 견인할 성장동력을 발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그동안 한국 경제의 중차대한 견인차 역할을 해온 반도체의 경우 글로벌 패권경쟁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반도체같이 첨단 제조 산업에서 앞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핵심 기술에 대한 선점전략이 필요하다. 반도체는 물리학, 재료공학, 전기·전자공학 등 여러 분야의 인력이 함께 만드는 제품이므로 질적 우수성을 갖춘 인재 양성에 주력해야 한다. 반도체 설계부터 제조, 생산에 이르는 전 단계에 걸쳐 전략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수요자 맞춤형 우수 인재 육성을 통해 우리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달성해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의 안정 성장에 기여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경기도 기회소득 활성화 정책 제안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 민선 8기! 경기도정의 슬로건이다. 필자는 민의를 대변하는 도의원으로서 민선 8기 경기도의 시그니처 정책인 ‘기회소득’의 실질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을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이야기할 것은 기회소득의 정의, 개념의 명확한 정립에 대해서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사회적 가치 창출자’를 ‘경기기회소득’의 대상자로 선정한다고 했다. 사회적 가치 창출자란 누구인가? 먼저 이 개념을 명확히 해야 한다. 필자가 제안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자는 경기도민의 생활 편익 확대와 직결되는, 즉 공익을 위한 활동을 하는 직종과 계층이다. 이 같은 정의는 기회소득이 특정 직업 분야 및 개인의 경제활동을 지원한다는 부정적인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또 경기도의 기회소득을 통해 경기도민의 생활 편익이 강화된다면 사회·경제적 가치의 동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회소득 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경기도의회와 사전 협의하면 좋겠다. 발전적인 의견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의회 내 공감대 형성은 향후 원활한 정책 추진에도 도움이 돼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두 번째, 업무 효율성 및 전문성에 관한 제안이다. 현재 기회소득은 지급 대상 관련 부서에서 개별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담당 부서의 혼재, 상위법 근거, 필요 조례의 제·개정 등 추진 중에 생길 수 있는 여러 문제의 빠른 해결을 위해 정보와 행정력을 집중할 필요성이 있다. 이에 필자는 큰 틀에서 확장된 기회소득 정책의 추진을 위해 효율적, 유기적, 전문성을 담보하는 전담조직의 신설을 제안한다. 세 번째, 대상의 확대가 필요하다. 정책 지원의 사각지대인 베이비붐 세대에게도 재도전의 기회가 필요하다. 중·장년층은 부모 부양과 자녀 뒷바라지 등 3대(代)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기 때문이다. 실직과 퇴직 이후 경제활동에서 소외된 이들의 경력과 전문성을 살리는 경기 기회소득 프로그램 참여를 통해 경기도 경제가 선순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장애인, 문화예술인, 배달노동자, 청년, 베이비부머, 경력 보유 여성 등 보다 많은 도민들이 기회소득 정책의 실질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민선 8기 모두가 힘써 주기를 당부한다.

[천자춘추] 언어에도 새로 고침이 필요한 이유

언어는 상대를 전제한 행위다. 우리가 말을 하는 이유는 상대에게 들리기 위해서다. 결국 언어는 나를 향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향하는 일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가장 기본적인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사고와 세계관을 형성하고 문화에도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언어는 사용을 통해 습관화되면서 감수성이 무뎌지는 특성이 있다. 내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언어 표현은 없는지 감수성을 가지고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예민하게 구는 것은 어려운 것이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언어에 숨어 있는 불평등과 차별의 요소를 걷어낼 때다. 차별적 언어에 대한 문제의식은 일상의 차별 감수성을 높여줄 것이고, 더 행복하고 평등한 문화를 만드는 기반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매일매일의 언어 표현이 인권을 존중하고 평등의 가치를 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차별적인 기존의 단어를 보다 평등한 단어로 대체한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영어의 ‘미즈(Ms.)’다. 영어권에서는 전통적으로 남성은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미스터(Mr.)’로 불리는 반면 여성의 경우 기혼 여성은 ‘미시즈(Mrs.)’로, 결혼하지 않은 여성은 ‘미스(Miss)’로 구분됐다. 이 같은 차별적인 관행에 대응하고자 생긴 언어가 바로 ‘미즈(Ms.)’로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여성을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한국의 경우 반대로 성 중립적인 명칭에 남성에게는 사용하지 않지만 ‘여배우’, ‘여감독’, ‘여기자’, ‘여검사’ 등 ‘여’라는 성별을 붙임으로써 차별을 낳기도 한다. 언어는 지속적으로 새로 고침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 표현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으며 상대의 감수성에 어떻게 들리는지 생각해 봐야 한다. 너무나 일상적인 차별이라 차별인 줄도 모르고 이뤄지는 우리 일상에 숨은 차별의 언어 문제에 감수성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희망적인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차별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천자춘추] 영화제가 왜 필요하죠?

“영국은 해가 지지 않았지? 한국은 영화제가 끝나지 않아.” 예전 해외 어느 영화제에서 영국 영화인을 만나 던진 농담이다. 실로 그렇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에 접수된 국제영화제 지원 사업 대상 단체가 15곳, 국내 영화제 지원 사업 대상 단체만도 59곳이라고 한다. 여기에 각 지방자치단체나 독립기관에서 ‘영화제’라는 이름을 건 각종 행사가 끊이지 않는다. 경기도 최북부에서 부산, 제주도까지 전국 곳곳에서. 1990년대 중후반 이후 급격하게 늘어난 영화제는 상업 영화관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작품들을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창구이자 신진 감독들의 등용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영화계에 찾아온 위기는 영화제 역시 비켜가지 않는 모양새다. 관객들이 영화관을 좀처럼 찾지 않고 감독과 스태프들이 영화 현장을 떠나 OTT 작품의 현장에서 길을 찾는 시점에 영화제 역시 여러 질문을 받고 있다. 결국 하나로 수렴되는 질문이다. 어째서 영화제가 필요하냐고. 영화의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는 보루. 새로운 언어를 발굴하는 실험대. 이런 설명의 설득력이 예전과 같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영화제가 만들어 내는 공동체에서 답을 찾고 있다. 영화제 프로그래머로서 내가 하는 일의 80%는 결국 설득이다. 한국과 각국 창작자들의 작품을 본 다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가 당신의 영화가 들어올 만한 곳이라고 설득한다. 그러고 나서는 관객을 설득할 차례다. 이 작품이 왜 중요하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와서 보라고 설득한다. 그런 1년간의 준비가 끝나면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 세계 각국의 창작자와 관객들이 한곳에 모여 함께 영화를 본다. 모두가 하나의 장소에 모여 숨죽이고 같은 스크린을 응시한 후 불이 켜지면 대화를 나눈다. 세계 어디에선가 일어난 사건에 관해서, 그것을 기록하고 재창조한 감독의 작품에 관해서, 그리고 그것을 보는 우리의 시선에 관해서. 함께 본다는 것. 그것이 바로 20세기를 목전에 두고 태어나 21세기를 맞이하며 죽음을 위협 받는 영화의 핵심이다.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장치를 발명한 에디슨과 뤼미에르 형제 중 후자가 영화의 창시자로 평가 받는 것은 그들의 장치가 관객들이 함께 영화를 보도록 고안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은 우리가 배워 왔고 꿈꿔온 가장 건강한 사회의 구성 원리와 닮아 있다. 창작자와 영화, 관객을 매개하는 영화제의 공동체는 일시적이고, 불균질하고, 때로는 연약하다. 그래서 지켜야 한다. 이 사회엔 확신에 찬 전진만큼이나 고뇌에 차 비틀대는 걸음도 필요한 법이니까.

[천자춘추] 같음과 다름의 가치, 상호 존중돼야

우리는 ‘다름’에 대해 다소 인색하다. 의견이나 생김새를 비교할 때 ‘다르다’는 표현보다 ‘틀리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근대화가 상대적으로 늦었던 우리나라에서 ‘같음’은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같은 목표를 향해 뛰어온 결과 어느새 고도의 산업 국가가 됐다. 초 단위 변화가 실현되는 지금은 ‘다름’에 기초한 창의성이 국가의 먹거리를 창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과거와 비교해 ‘다름’에 대한 인색함의 수준이 많이 나아진 듯하다. 그런데 정부 간 재정관계는 아직도 ‘다름’의 가치가 충분히 존중받지 못한다. 29년간 시행돼온 지방자치는 다양성이 크지 않다. ‘같음’을 우선시하는 재원 배분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재정 이전 수단인 지방교부세를 예로 들면 자치단체별 수요 대비 수입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같음’을 만드는 데 관심을 둔다. 재정력이 열악한 지역이 더 많이 배분받는 구조다. 자치단체마다 처한 환경, 시민의 요구, 발전 방향과 속도가 다르다는 것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다. 부족한 재원을 산식에 의해 보전해 주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세입을 확충하거나 세출을 절감할 유인 역시 갖지 못한다. 민선 자치 원년인 1995년 전국 평균 재정자립도는 63.5%였으나 2022년에는 49.9%로 13.6%포인트나 하락했다. ‘같음’의 가치가 ‘다름’의 가치를 누른 결과 전국의 지방재정은 하향평준화됐다. 경기도는 재정력이 우수하다는 이유로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많이 받지 못한다. 성남, 화성, 용인, 하남, 수원 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국가로부터 재정 재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자치단체가 갖는 대한민국 발전의 추동 가능성과 역량은 그 어디보다 크다. 저성장, 인구 소멸 등 미래의 경제 상황은 희망적이지 않다. 미래의 발전 가능성과 기회를 얼마나 확보하고, 먹거리로 전환시키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는 중차대한 상황이다. ‘같음’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선택과 집중에 따른 기회의 확대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같음’의 가치와 ‘다름’의 가치가 서로 존중되는 정부 간 재정관계의 개선 방안을 고민할 때가 됐다.

[천자춘추] 버스에 봄의 정다움이

버스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예식장에 가는 경우처럼 같은 목적을 갖고 가는 길이라면 혹 버스 안에서 지인을 만나는 경우가 있지만 내가 사는 동네의 시내버스에서도 아는 사람을 만난 일은 없다. 그리고 도시의 익명성으로 인해 버스 안의 승객은 모두 낯선 타인이다. 나는 시내에 나갈 때 승용차를 갖고 가지 않고 으레 시내버스를 탄다. 시내버스에 오르면 특별히 창밖 풍경을 살필 일도 없다. 자주 지나는 길이라 어떤 관공서가 있고 어떤 상점이 있는지 다 알기 때문에 내릴 곳을 찾으려 신경 쓸 필요도 없다. 운전할 필요도 없고 알아서 실어다 주겠지 하고 기사를 믿고 마음을 편안히 내려놓는다. 세상에 제일 편한 곳이 시내버스 안이다. 봄이다. 비 온 뒤 하늘은 맑고, 가로수 은행나무에도 봄의 정다움이 가득하다. 거리에서 만나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봄의 기운을 빌려 인사하고 싶다. 그것이 봄의 힘이다. 실제로 나는 우리 집 동네 골목에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한다. 행궁동 안에 있는 문인협회에 가기 위해 수원역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올라서면서 빈자리가 있는지 둘러봤는데 승객이 반도 차지 않아 버스 안이 휑하다. 그런데 세상에! 둘이 앉는 좌석에 모두 통로 쪽에만 앉아 창 쪽 자리만 비어 있다. 통로 쪽에 줄 맞춰 앉아 있고 창 쪽은 줄 맞춰 비어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통로 쪽에 앉은 사람이 몸을 틀면서 안쪽으로 들어가라고 할 것이다. 차라리 서서 갈까? 통로 쪽에 앉은 사람 가까이 다가가 서 있어도 앉은 사람은 꿈쩍도 않는다. 아마 가까운 곳에서 내릴 것이니 상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수출 규모 세계 6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자동차 생산량 세계 5위다. 선진국이라 불러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이제 버스 착석은 안쪽 자리부터 앉는 전 국민 문화운동을 전개하자. 다음 정거장에 내리는 사람도 자리가 비었다면 당연히 안쪽 자리부터 앉아야 한다. 낯선 사람이 모인 곳에서의 에티켓은 더욱 아름답다. 모든 국민이 안쪽 자리부터 앉는 날 세계 1등 문화국민이 될 것이다, 그날 봄의 정다움이 버스 안까지 마음껏 들어오리라.

[천자춘추] 보릿고개와 어머니

내 어릴 적 오월은 온통 초록 보리밭이었다. 늦가을 뿌린 씨앗들이 엄동설한을 이기고 빼곡히 들녘에 차 올라 일렁이는 모습은 매혹 그 자체였다. 이랑 사이를 거닐며 콧노래도 부르고 연하디 연한 이삭을 어루만지며 가슴에 사랑을 그려 보기도 했다. 낭만과 설렘, 그리고 잔잔한 추억이 아직도 가슴에 그대로 들어있다. 그와 더불어 진한 아픔 하나가 묵직하게 마음을 파고 든다. 긴 한숨 소리, 쌀 독 바닥을 긁는 아침, 종종걸음으로 이 집 저 집 돈 꾸러 다니는 조바심.... 내 어머니의 가난한 오월이었다. 10남매의 맏며느리, 여덟 자식의 젖가슴, 그렇게 강하지 못한 한 남자의 아내! 고생일 수밖에 없었고 눈물의 나날이었으리라. 시동생들과 시누이들의 투정과 성화는 그분의 삶에 여러 개의 멍자국을 남겼으며 녹록지 않은 살림은 어머니의 애간장을 녹이며 온몸에 잔병을 심어 놓았다. 나는 그 속에서 나고 자랐다. 불평과 심통을 부리며 때로는 원망도 서슴지 않았다. 터무니없는 요구와 그릇된 행실로 날마다 그분을 전전긍긍하게 해 드렸다. 그래도 내 어머니는 “큰일 저지르는 놈이 큰일한다더라” 하시며 등을 두드려 주셨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무엇을 어떻게 하셨는지 내게 필요한 만큼을 언제나 만들어 주셨다. 10년 전 임종을 앞둔 내 어머니께서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이 돈은 자네의 자존심을 세울 때 당당하게 쓰시게. 누구도 주지 말고 동기간에 나누려고도 말고 오롯이 자네만을 위해 쓰시게” 하시며 적지 않은 현금을 흰 봉투에 담아 내 손에 쥐여주셨다. 사뭇 놀랐다. 많이 뭉클했다. 눈물 범벅이었다. 그분은 철부지 나에게 태산보다 더 큰 자존심을 선물로 남기고 2013년 오월의 보리밭 이랑을 따라 하늘로 가셨다. “올해는 보리가 유난히 더디 익는다. 어머니의 푸념이었다.” 양식은 벌써 바닥이 났고 오월의 보리밭은 마냥 푸르러 알곡이 익으려면 아직 멀어서.... 해마다 같은 말씀을 하셨다. 많지 않은 밥을 이 그릇 저 그릇에 담으시고 당신은 밥알보다 물이 더 많은 밥으로 끼니를 이으셨다. 지독한 보릿고개였다. 철 모르던 시절에 보이지 않았던 그 고개가 올봄에는 어쩌면 그리 선명하게 짠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그 심술궂은 보릿고개를 내 어머니는 사랑으로 이기셨다. 가난과 고생을 길동무 삼아 침묵으로 뚜벅뚜벅 헤쳐 나오셨다. 투박한 그리움의 잔에 보릿고개와 어머니 마음을 넘치도록 채워 본다.

[천자춘추] 언제까지 경기북부는 사법낙오지인가?

경기도는 김동연 지사의 강력한 의지로 2026년 7월까지 ‘경기북부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키겠다는 목표로 ‘경기북도 설치 등에 관한 법률안’ 통과와 주민투표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 북부지역은 그동안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으로 경기 남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가 완화되지 않고 있어 남부지역과의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에 ‘경기북도’ 신설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이미 경기도북부청사(제2청), 경기도교육청북부청사(제2청), 경기도북부경찰청 등을 비롯해 의정부지방법원, 검찰청 등 경기 북부를 별도로 관할하는 행정기관이 소재하는 등 기능적으로 분리돼 경기 북부 도민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유독 항소심 재판을 받을 권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고등법원 의정부 원외재판소가 설치되지 않아 경기 북부 도민의 재판받을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헌법상 보장되고 있는 재판청구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 주기 위해서는 국민이 많은 교통비를 들이지 않고 가까운 장소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필수적인 요소다. 경기 북부의 면적은 서울시 면적의 약 9배에 해당함에도 도로 보급률은 전국 최하위 수준이고 대중교통망도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심 재판을 받으러 가려면 2시간 이상 걸리는 지역도 많다. 국민의 헌법상 기본권은 국민의 거주지가 어디인가와 상관 없이 보장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 같은 현실은 재판청구권에 대한 평등권 침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경기북부지방변호사회 전임 회장인 이임성 대한변호사협회 총회의장은 “2019년 경기 남부지역에 수원고법이, 인천에는 서울고법 원외재판부가 설치됐다. 현재 경기 북부에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항소심 재판을 지역에서 받을 수 없는 ‘사법 낙오지’로 남은 셈”이라고 그 심각성을 지적하고 있다. 경기 북부지역의 광대한 관할 구역과 지역적 특성 및 1심 합의부 사건에 대한 항소심 사건의 증가 추세에 비춰 경기 북부지역에 고등법원 설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이는 사법의 지방분권 강화라는 측면에서도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경기 북부 도민들이 보다 용이하게 고등법원의 항소심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서울고등법원 의정부 원외재판부를 조속한 시일 내에 설치해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자연을 망각하다

자연의 다양한 생물에게 사람의 마음을 투영하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많은 작가들, 사람들, 정치인들은 마치 자연이 자신인 듯, 타인인 듯 자연에 빗대 이야기한다. 예를 들면 ‘철새 정치인’처럼 왔다 갔다 하는 정치인을 두고 하는 표현은 철새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을 것이다. 철새의 이동은 대륙을 넘나드는 생과 삶의 길일진대 간사한 정치인에게 비교하다니.... 이렇게 좋지 못한 예도 있지만 콘크리트 틈에서 돋아나는 새싹을 보며 ‘저런 환경에서도 자라는데 나도 힘을 내 열심히 살아야지’ 하며 용기를 얻기도 한다. 좋은 표현이든 그 반대이든 관점의 주체는 ‘나’인 것이다. 그리고 자연을 얕잡아 보는 잠재의식 속의 습관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연을 허투루 보는 역사는 오래됐다. 우리가 존경하는 철학자조차 자연을 함부로 대해 왔다. 데카르트는 ‘동물은 단지 기계’라고 했고 칸트는 ‘동물은 자의식이 없다’고 했다. 사람은 너무나 오랫동안 자연을 이용해도 무방한 물건으로 여겨왔고 이는 함부로 자연에 생각을 투영하게 된 것이다. 믿지 못할 사람도 있겠지만 생물은 사유하는 존재다. 지능이 매우 높다는 오랑우탄에서 아무 감각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풀들도 각각의 차이는 있지만-사람처럼 말을 못할 뿐이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사고하고 감정을 표현하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건드리면 건드릴수록 가시를 점점 길게 내 방어한다. 작약은 수정이 되기까지 꽃가루를 함부로 하지 않는다. 빛이 없는 밤이나 비가 올 때 꽃잎을 오므려 꽃가루를 보호한다. ‘잡초’라 불리는 식물도 결국 인간의 ‘쓸모’라는 관점에서 나온 단어일 뿐이다. 생물들이 살던 땅을 콘크리트로 덮어 버린 주체는 사람이면서 그 틈으로 나오는 식물들을 불쌍하게 보는 것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오래전에 이어져 나온 생태적 습성을 망각한 것이다.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생각, 감정을 우주의 나머지와 구별된 무언가로 경험하는데, 이것은 인간의 의식에 일어나는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라고 말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천자춘추] 끊임 없는 전쟁, 층간소음의 해법

우리나라 전체 주거유형의 큰 부분은 공동주택이다. 우리나라 국민 10명 중 7명이 공동주택에 살고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말까지 나오지 않았는가. 최근 층간소음 문제가 폭력, 살인 등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면서 민원과 사건·사고가 매년 증가 추세다. 한국환경공단의 ‘2022년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운영 결과’에 따르면 재택근무, 원격수업 등 실내생활 증가로 2019년 2만6천257건에서 2021년에는 4만6천596건으로 소음피해가 2배 가까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층간소음에 대한 규제는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에서 직접 충격과 공기 전달에 의한 소음의 기준을 정하고 있고 각 지자체 조례로 관리 중이다. 또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나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서 조정을 받기도 한다. 층간소음은 제도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 방법이 없다. 위층 소리가 아예 안 들리는 건 건축학적으로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위층 사람이 상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각자의 상반된 입장이 지속해 부딪치면서 서로의 입장만 과열될 뿐이다. 심리학이론 중 ‘해석수준이론(Construal Level Theory)’이 있다. 각자의 현상이나 대상에 대한 거리감에 따라 해석 수준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행동 반응과 선택이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심리적 거리가 멀수록 상위 수준으로 해석하고, 가까울수록 하위 수준으로 해석하게 되며 이러한 해석 수준으로 판단과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이 이론에 층간소음 문제를 담으면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시끄러운 위층 집이라는 상위 수준의 추상적인 개념으로 해석돼 ‘윗집은 우리에게 층간소음으로 큰 피해를 주는 행위를 하기 때문에 항의하고 이의 제기하는 것은 당연한 나의 권리’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반면 친한 이웃사촌 관계에서는 추상적 개념이 구체적 개념으로 바뀌어 층간소음이 들려도 ‘애들이 뛰어다니네, 뭐 신나는 일이라도 생겼나 보다’라는 관점으로 해석이 바뀌게 된다. 갈등의 크기에 비하면 해결 방안은 비교적 단순하다. 해석 수준의 전환이다. 층간소음 관련 통계에서도 새로 지은 공동주택보다 오히려 오래된 공동주택에서 층간소음 민원이 적게 나타났다. 이는 층간소음의 해결책은 공동주택을 사용하는 주민들의 이해와 배려, 그리고 지혜로운 대처가 답이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결국 층간소음의 해법은 먼저 기본적으로 시공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 살 만한 수준으로 건물 짓는 것이 최선이고 그다음은 서로 간의 안 좋아진 감정을 풀고 윗집은 조심스럽게 생활하고 아랫집은 윗집의 사정을 이해하는 배려가 필요한 것이다.

[천자춘추] 허준 이야기

허준(1539~1615)은 1539년(중종 34년) 양천 허씨인 아버지 허론과 영광 김씨인 어머니 사이에서 서자로 태어났다. 허준의 젊은 시절은 호남지역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 만큼 호남지역의 인맥이 매우 중요하다. 허준과 관련된 호남 사림 가운데 유희춘은 허준의 5촌 당숙이던 김안국의 제자로 허준을 내의원에 천거한 특별한 사이다. 그의 나이 30세 되던 해에 내의원에 출사해 1596년 선조의 어지를 받들어 편서국을 설치해 의서의 편찬을 시작했으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며 결국 편찬은 중단되고 말았다. 1608년 선조가 승하하자 어의였던 허준은 의주로 유배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더욱 의서 편찬에 혼신의 힘을 다해 1610년 8월 초, 마침내 완성된 원고를 광해군에게 바쳤다. 1613년 11월 조선 내의원에서 교지를 받들어 ‘동의보감’이 간행, 15년간의 숭고한 허준의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됐다. 허준은 동의보감이라는 의서를 통해 고래의 도가적 전통을 의서 편찬의 기본 철학으로 삼아 금원대사가 의학의 정리 및 이후의 명대 의학을 조선 향약론의 전통으로 흡수 완성하는 업적을 이뤘다.  허준의 이러한 자연철학은 16세기 중·후반 서경덕(1489~1546)을 조종으로 해 한강 이북과 임진강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성시산림’ 학파들의 이른바 유·불·선 삼교회통 사상과의 교류 덕분이다. 개경 출신의 화담은 도가적 학풍에 상공업을 중시하고 절충과 개방 의식이 뚜렷했으며 조선 후기 남인 실학의 저류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유학과 도가 및 불교를 넘나드는 회통의 사상, 특히 선가적 분위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실생활에 필요하다면 정학이나 이단을 가리지 않고 절충·보합하려는 학문적 개방성도 가지고 있었다. 허준이 서울과 개경을 잇는 임진강 주변 이북 학자들과의 삼교회통 전신의 교우를 통한 자연철학의 완성에서 동의보감이 완성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허준의 고향에 대한 진실게임이 일어나고 있다. 산청에서 유의태에게 의술을 사사했다는 웃지 못할 억측도 나온다. 허준의 본관이 양천현(강서)인 것은 맞다. 그러나 양천 허씨들의 세거지, 특히 허준의 할아버지 허곤, 아버지 허론, 허준 자신과 그의 동생 허징과 허준의 후손들 모두가 경기도 장단(파주)에 거주했으며, 이들의 사후 묘소가 장단에 있다. 허준의 묘소는 파주시 진동면 하포리에서 1991년 고문헌 연구가 이양재 교수에 의해 발견됐다. 다시 말해 파주는 동의보감을 허준이 완성시킬 수 있도록 학문적 토대와 정신적 철학을 숙성시킨 곳이다. 이처럼 몸과 마음이 닿아 있는 곳이 허준의 고향이다. 파주시민들에게 허준에 대한 긍지를 지키게 해주길 바란다.

[천자춘추] 부모, 아이들의 전략적 파트너 돼야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대치 키즈, 헬리콥터 맘, 극성 엄마라는 프레임으로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려는 엄마의 간절함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현실이다. 엄마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입시제도는 당황스럽고 엄마가 입시제도를 모르면 아이와의 소통 역시 불가능하다. 중학교 시절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고등학교가 결정되고 특목고, 자사고 등 상위권 고등학교의 서열화에 아이와 엄마 모두 인생 첫 좌절을 맛보게 된다. 물론 인생 첫 입시에서 실패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지 않고 오히려 특목·자사고의 최대 약점인 내신의 불리함을 커버하면서 내실 있게 준비해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다. 엄마, 부모는 아이의 공부를 도와주는 전략적 파트너가 돼야 한다. 입시제도를 원망하고 아이에게만 맡기기에는 입시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중학생쯤 되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는다. 그 과정에서 사춘기 아이들은 안 그래도 입을 꾹 닫거나 부모의 모든 말을 잔소리로 듣게 되는데 입시를 모르는 엄마, 아빠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며 더욱 굳게 빗장을 걸어 잠근다. 고등학교 입학 전에 진로 탐색을 마치고 자신의 진로를 정해야 고등학교 입학 후 과목 선택이나 동아리 활동에서 방향을 잡을 텐데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아직 어린아이가 혼자서 모든 것을 하기는 힘들다. 이 말을 오해하면 안 된다. 엄마나 아빠가 극성맞게 따라다니면서 챙기고 간섭하라가 절대 아니다. ‘혼자서는 못한다’가 아니라 ‘부모가 도와주면 더 잘하게 된다’다. 대한민국에서 부모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먹이고 길러주며 ‘우리 딸, 아들 엄마는 널 믿어’라며 믿어주기만 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적극적으로 부모가 도와주길 바란다. 혼자 하는 것보다는 이 세상에서 자녀와 가장 가까운 부모가 아이의 조력자가 돼 진로 고민, 선택과목, 동아리 선택, 공부에 대한 고민, 학원은 어디로 갈지, 온라인 수업이 좋은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더 많아지고 깊어지는 자녀의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 부모는 부지런히 입시정보를 모으고 분석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 공부는 단순히 학원 간담회에 참석하고 자료를 받아오는 것으로 끝나선 안 된다. 무엇이 내 아이에게 가장 효과적인 전략인지 공부하고 그것을 아이에게 맞게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공부하느라 힘든 아이의 포근한 안식처가 돼 주면 그야말로 최고의 부모다. 넘쳐나는 입시정보를 합리적이고 영리하게 골라 내 아이에게 맞게 재창조하고 자녀와 소통하면서 입시를 도와주는 부모가 되길 바란다.

[천자춘추]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것은?

2023년의 시작을 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쯤 단체 메일로 글 하나가 도착했다. 가까운 미래에 선생님을 준비하는 한 교원대학교(교대) 학보사(대학신문)에서 온 메일이었다. 인권활동을 하면서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는 일은 그리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학보사는 조금 다르다. 지성의 탑을 쌓는다는 대학이라는 공간이 점점 더 취업을 위한 공간으로 변해 가면서 학보사의 역할 또한 퇴색돼 버렸다. 그러니 학보사에서 요청된 메일 내용을 확인도 하기 전에 제목만 보고도 반가웠다. 온다에 요청한 것은 지난 2월7일, 인천의 한 초등생이 아동학대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학대 부모는 아이를 때린 것이 “훈육 목적이었고 학대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아동학대의 원인 중 하나로 체벌과 학대를 분리해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를 알아보고 이것이 정말 분리될 수 있는 개념인지 짚어본다. 또 아동학대 예방과 대책 마련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5월5일은 101번째 어린이날이었다. 1923년 5월1일 어린이날 선언 중 ‘어른들에게 드리는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어다 보아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되 늘 보드랍게 하여 주시오.’ 100년이 지난 2023년 여전히 ‘어린 사람은 아랫사람이 아니다’라는 청소년 인권단체의 캠페인 문구가 사회적 메시지로 다가오고 있다. 체벌이 제도적으로는 금지돼 있지만 제도의 변화만큼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의 속도는 따라가지 못하는 듯하다. 온라인 쇼핑사이트에서는 ‘사랑의 매’를 치면 체벌도구를 아무렇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내 아이니까 내 맘대로 하면 어때? 다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 ‘맞을 짓을 했으면 맞아야지’ 하는 사회적 통념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 아동학대 또한 이러한 인식들이 한 겹 한 겹 겹치고 쌓여 끔찍한 사건으로 드러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세상에서 끔찍한 일이 많지만 가장 끔찍한 것은 아이가 교사나 부모를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한 교육 사상가의 말이 떠오른다.

[천자춘추]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

최근까지도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이라는 용어에 취해 있었다. 마약 청정국이라는 개념은 ‘마약류 범죄계수 20’, 즉 인구 10만명당 단속된 마약류 사범이 20명 이하로, 우리나라 5천만 인구 기준으로 마약류 사범이 1만명 이하인 상대적으로 마약에서 안전한 나라임을 강조하기 위한 ‘바람’ 같은 개념이었다. 그러나 2015년 이후 현재까지 우리나라 마약류 사범의 수는 매년 1만명을 상회하고 있다. 최근 3년간은 2020년 1만8천50명, 2021년 1만6천153명, 2022년 1만8천395명으로 이제 마약류 범죄계수 36을 넘어서고 있다.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며 마약류 범죄는 이미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든 심각한 사회 문제로 인식된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21년 4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진행한 2차 하수역학 기반 불법 마약류 사용 행태 조사 결과에서도 조사 대상 전국 대규모 하수처리장 27곳 모두에서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이 검출되기도 했다. 정부는 마약류 범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류 관련 범죄에 대해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강조했다. 하지만 마약류 범죄자의 절반 이상은 마약류 단순 사용자, 즉 치료를 받아야 할 중독 환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약류 중독자는 법을 위반한 범죄자이기에 정의 실현의 관점에서 엄하게 처벌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치료적 개입 없이 지금처럼 사법적 처벌과 지역사회로부터의 격리만 강조한다면 이들은 치료받지 않았기에 중독의 병이 재발하고 결국 다시 마약류 사범으로 단속되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마약류 중독의 회전문이라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마약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마약류 범죄자에 대한 단속과 체포가 중독자 치료의 시작이 돼야 한다. 마약류 범죄가 발생하면 경찰-검찰-법원-교정기관-보호관찰 시스템의 연속선상에서 사법과 보건복지 서비스가 연계돼야 한다. 사법적 처우 과정에서 순차적으로 중독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마약류 중독을 질병의 관점에서 개입하는 중독재활 전문가가 단계별로 개입해야 한다. 더 나아가 마약류 사범이 사법적 죗값을 받은 후에도 만성질환의 지역사회 관리와 유사한 형태로 마약류 중독 회복의 안전망을 구축해 중독재활 전문가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병원과 지역사회에서 의료 및 사회적 재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천자춘추] 진보의 균형

나는 변리사다. 공대를 나왔고 시험을 거쳐 변리사가 됐다. 현장의 발명가들을 만나고 산업현장의 최전방을 뛰어다니는 사람이다. 그들이 만든 모든 게 혁신은 아니지만 개중에는 챗GPT 같은 인공지능, 반도체, 자율주행차 기술 같은 혁신이 되는 경우가 있다. 성공을 꿈꾸는 발명가들과 함께하는 나의 삶은 매우 신나며 그들이 기업을 만들고, 투자를 받고, 주식시장에 상장되는 과정에서 변리사는 희열을 느낀다. 특허를 받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은 ‘진보성’이며 이는 특허제도를 보유하고 있는 200여개국의 공통 심사 요소다. 변리사는 기업과 자본, 그리고 자유로운 창의와 함께하기 때문에 ‘보수적’이기도 하지만 아이디어로 경제적 난국을 타개하는 드라마틱한 부의 분배 과정에 있으며 언제나 기술의 발전과 함께하기 때문에 ‘진보적’이기도 하다. 변리사들의 수준이 국가의 경제수준의 지표다. 하지만 40대에 진입한 내 가슴속에는 무엇인가가 빠져 있음을 느꼈고 철학, 언론, 정치, 마케팅, 종교, 영업, 사회운동 등 ‘공돌이’인 내가 알지 못하던 영역의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배우면서 ‘내가 아는 기술, 경제, 특허의 세계는 세상의 6분의 1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편 정치에 전념하는 친구들을 관찰해 보니 그들은 언제나 ‘진보’에 대한 열띤 논쟁에 휩싸여 있었다. 카카오 등 플랫폼은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 부를 독식하고, 삼성전자는 근로자들을 오염에 노출시킨다고 말한다. 네이버 때문에 언론이 망가졌다고 하며 현대자동차 같은 기업들이 부의 분배에는 뒷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공대생 출신의 내 생각은 약간 다르다. 이제 우리는 건국세대(시스템), 산업화세대(보수적), 민주화세대(진보적)를 거쳐 새로운 세대임을 자각해야 한다. 선진세대여야 한다. 나는 그간 우리 선배들이 이룩한 ‘사회적 진보’를 존경하지만 기존의 ‘진보’는 진정한 진보로 가는 여정의 절반쯤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를 자칭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이 ‘기술적 진보’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분들은 기사를 보고 챗GPT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고 열변을 토하지만 실제로 챗GPT를 써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치 ‘증기기관’이 모든 일자리를 말살할 것이라는 19세기 말의 ‘러다이트 운동’을 21세기에 보는 느낌이다.  ‘사회적 진보’에 기여한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다. 이제 진보의 균형과 선진을 위해 ‘기술적 진보’를 생각해야 할 시기라고 말이다. 기술에 의해 사회가 바뀌고 있다. 이는 비단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역사를 통해 미래를 보자. ‘사회적 진보’로 내디딘 발자국 다음에 ‘기술적 진보’의 다음 발을 내디뎌 보자. 미래를 향해 걷자.

[천자춘추] 수도권 내 균형 발전

더 많은 인구와 산업이 수도권으로 집중한다.성장세가 빠른 기업들이 수도권에서 성장함에 따라 수도권 집중이 심화된다. 기술혁명이 주도하는 반도체, 정보기술(IT), 바이오, 배터리산업의 성장으로 이러한 경향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수도권에서도 격차가 커지는 양상이다.경기 북부 접경지역은 인구가 감소하거나 정체하고 경기도 남북 간의 격차는 더 커지는 추세다. 신성장 산업들이 용인, 화성, 평택 등 경기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집중되고 교통기반시설도 경기 남부지역 중심으로 이어진다. 지방에서는 서울역이나 청량리역보다 수서역으로의 철도 연결을 희망하고 있어 고속교통, 광역교통 접근성에서도 차이가 커진다. 대북관계, 대중관계가 소원해지니 북부지역은 조금 더 멀어지는 듯하다. 수도권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광대한 경기 동부 자연보전권역에는 팔당수계 보전을 위해 택지개발, 산업단지의 규모를 제한하고 대학의 신·증설과 이전을 규제한다. 상수원 수질보전을 위해 규모 이하의 개발사업만을 허용한 결과 환경처리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소규모 산업단지, 광역교통기능과 자족기능을 갖지 못한 소규모 주택단지 위주로 공급된다. 수질 보전을 목표로 하는 입지규제가 환경 보전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충남의 천안·아산·당진, 충북의 진천·음성·증평, 강원도의 원주 등 수도권에 접한 지역은 인구도 증가하고 기업 입지도 활발하다.  이들 지역의 산업경쟁력은 수도권 북부와 동부지역을 뛰어넘는다. 최근 들어 광주, 이천 등지에서는 소규모 난개발로 인한 개별 입지 공장, 소규모 주택단지 개발로 인한 상시적 교통체증, 수계 관리의 문제점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점점 더 커져 가는 남북 간 격차로 인해 경기 북부를 특별자치도로 독립시키자는 논의도 활발하다.  50년 전에 만들어진 수도권정비법의 근본적인 수정이 필요하다. 기술혁명의 진전이 가져오는 신성장산업의 등장과 모빌리티의 비약적 발달로 전과 다른 균형발전대책이 요구된다. 대한민국 메가시티 시대를 맞이해 수도권의 지리적 경계에 대한 성찰도 필요하다. 모빌리티 허브를 중심으로 혁신성장 거점을 조성하는 ‘거점연계형 국토관리’의 시대다. 지리적 균형을 추구해 개발사업과 시설을 여기저기 분산 배치하던 것에서 고속광역철도의 환승역세권을 중심으로 혁신 기업을 집중시키고 이의 편익을 대중교통망 등으로 주변에 파급, 확산하게 하는 방식이다. 경기 북부와 자연보전권역 내의 GTX, 경강선 환승역세권을 중심으로 혁신지구를 조성하는 ‘거점연계형 정비발전지구’를 조성해 수도권 내 쇠퇴 지역의 균형발전을 촉진해가는 새로운 ‘수도권 내 균형발전’ 정책이 요구된다.

[천자춘추] 세상 상식과 여의도 상식

북한의 미사일 발사처럼 처음 발사 때의 위기감도 계속되면 무덤덤해지듯이 보통 같은 일을 거듭해 겪게 되면 그 일이 아무리 엄중한 위험을 수반해도 어쩔 수 없이 위기감은 무뎌지는 게 마련인 모양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온갖 것이 국민의 그러한 내성을 기르는 데 공헌(?)하는 듯이 보이는데, 안타깝게도 요즘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산실이어야 할 보통 ‘여의도’로 통칭되는 의회가 종종 국민적 내성 강화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여의도는 원래의 목적이었던 화합과 타협의 산실에서 멀어져 오히려 갈등과 대립의 진원지로 탈바꿈한 느낌이다. 모름지기 정당정치란 각 당이 당리당략을 갖고 이를 바탕으로 국리국략을 추구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각 당에 각각 고유의 당리당략이 있어야 하는 점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그러한 측면은 널리 권장될 필요가 있고, 수권을 목표로 한 각 당의 당리당략 경쟁이야말로 모든 국민의 바라는 바일 터다. 국민은 각 당의 당리당략 중 어느 것이 국리국략에 부합하는지를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나라 정당은 국리국략은 물론 변변한 당리당략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 같다. 정당 지지도를 묻는 여론조사 결과의 작금의 추세는 각 당의 치열한 ‘잘하기 경쟁’의 결과라기보다는 상대 정당의 실책에 따른 결과라는 특성이 강하다. 나의 득점이 아닌 남의 실점으로 내가 돋보이는 이상 현상이 꽤 오래전부터 일상화되고 있다. 여야를 불문하고 반복되는 볼썽사나운 정당의 실태(失態)는 남 탓하기, 발뺌하기, 상대와 나의 원초적 차별 언행(내로남불) 등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질릴 정도로 내 과실의 원인은 남 탓으로 돌리고 내 책임은 발뺌하며 남의 작은 허물은 크게 보이는 눈도 내 큰 허물은 보이지 않는 듯한 내로남불의 언행이 횡행하는 사례가 축적된 결과, 국민은 웬만한 남 탓이나 발뺌에 너무 익숙해 있다. 남 탓 정치와 발뺌 정치가 국민에게 감동을 줄 수는 없다. 남 탓 정치와 발뺌 정치에 국리국략을 다투는 정당 간의 정당한 당리당략 경쟁이 설 자리는 없다. 남 탓하고 발뺌하는 것이 여의도의 전매특허는 아니겠지만 일반인이라면 남 탓이나 발뺌도 한두 번이지 일상적으로 무한 반복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의도에서는 일반인이라면 도무지 엄두도 내지 못할 남 탓과 발뺌에 내로남불의 언행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복된다. 아마 세상 상식과 여의도 상식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세상의 상식이 여의도에서는 비상식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여의도의 상식은 세상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여의도가 민의의 전당으로서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의도 상식을 세상 상식에 맞추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이다.

[천자춘추] 지침이 기술발전을 가로막지 말아야

국가가 직접 또는 국고를 보조해 시행하는 사업이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고 원활하게 수행되도록 하기 위해 국가에서는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는 다양한 지침과 매뉴얼을 작성해 운영하고 있다. 지침이나 매뉴얼은 사전적 의미로 ‘생활이나 행동 따위의 지도적 방법이나 방향을 인도해주는 준칙’을 말한다. 일정한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사업의 실패를 최소화하고 누구나 쉽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말 그대로 방법이나 방향을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침과 매뉴얼이 조금이라도 과학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강우 시 인근 하천으로 유입되는 비점오염물질의 저감과 관련된 지침이나 매뉴얼을 예로 든다면 대표적으로 ‘비점오염저감시설 성능검사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과 ‘비점오염저감시설의 설치 및 관리·운영 매뉴얼’이 있다. 규격화된 형태로 제조되는 비점오염저감시설을 개발하고 적용하고자 하는 사업자는 이 규정과 매뉴얼에서 제시하는 형식 및 종류 범위에 포함된 제품을 정해진 규격의 시제품으로 만들어 부유물질(SS) 제거효율 80% 이상을 만족하는지에 대한 제품의 저감효율과 기술적 타당성 및 유지관리 적절성 등을 평가하는 환경부 성능검사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조잡하고 성능이 낮은 제품들이 국민 세금으로 시행하는 국책사업에 무분별하게 적용 및 난립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일정한 자격기준을 두는 셈이다.  반드시 필요한 절차와 과정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이 규정과 매뉴얼에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인 제품의 성능 외에도 형식과 그에 따른 규격 등을 반드시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과형의 경우 일정한 규격의 전처리조를 반드시 구비하고 일정한 두께의 여과재를 충진해야 하며 반드시 역세척을 실시하는 시스템이어야 한다. 이 중 단 한 가지만 부족해도 성능검사 통과가 매우 어려워 사업은 아예 불가능하다. 역세척하지 않고도 목표 효율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제품을 개발한다 해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0개의 기술을 접목해야 하는 것을 단 하나의 기술로 성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혁신 생태계는 요원한 시스템이다. 자칫 지침과 매뉴얼이 혁신의 발목을 잡는 돌이킬 수 없는 규제가 될 수도 있다. 지침과 매뉴얼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특히 저감효율 같은 본래의 핵심적인 제정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지에 방점을 둬야 하고 끊임없는 새로운 기술의 출현과 개발 및 발전을 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자칫 이러한 지침과 매뉴얼, 심지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마저 틀에 박힌 기존의 정형화된 기술의 답습과 반복에 가둬 신기술의 개발을 가로막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