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양육비 확보 방안

선남선녀가 인연으로 만나 백년해로하면 좋겠으나 여러 사정으로 헤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때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부모는 양육 여부와 관계없이 의식주, 교육 및 건강 등 모든 생활영역에서 최적의 성장환경을 조성해야 하고 비양육 부모는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성실하게 지급해야 한다. 이혼 후 비양육자의 양육비 산정은 부모의 소득, 자녀의 나이, 건강 상태, 교육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결정한다. 양육비 채무자가 자발적으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필요가 있게 된다. 양육비를 받기 위해서는 양육비 액수와 지급 시기 등 지급 의무가 확정돼야 하는데 그 방법은 양육비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법적 효력을 갖도록 공증을 받아 놓거나 합의가 어렵고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양육비부담조서나 가정법원에 양육비 판결 및 조정 신청을 하면 된다. 이처럼 확정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강제 집행할 수 있으므로 가정법원에 양육비 직접지급명령을 신청해 채무자의 고용주로부터 월급을 직접 지급받을 수 있고 정기적으로 지급받는 양육비를 위해 담보제공명령을 받을 수도 있다. 양육비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명령을 신청하고 이행명령을 어기면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나 3기 이상 불이행 시 최대 30일 내의 감치명령(유치장 등에 구속)을 할 수도 있다. 비양육자의 급여, 예금, 부동산 등에 대한 일반적인 강제집행(압류·추심, 경매)도 가능하다. 한편 가사사건의 소 제기 등이 있을 때에는 이행을 확보하기 위해 재산보전처분 등 사전처분과 가압류·가처분도 할 수 있으며 특히 양육비이행법에 따라 국가가 양육비 이행에 대한 책임을 지고 양육비 이행 관리원을 설립, 양육비 이행 확보를 지원하게 됐다. 그래서 양육비에 관한 상담 및 협의 성립을 지원받을 수 있고 양육비 청구 및 이행 확보를 위한 법률지원 신청을 하면 성평등가족부 장관은 양육비 채무자의 재산 등을 조사하는데 국세나 부동산, 연금 등 자료 제공 요청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채무자의 금융정보나 신용정보 등의 제공 요청도 가능하다. 더 나아가 양육비 불이행자에 대해 운전면허정지 처분, 출국금지 요청, 채무자의 성명·직업, 주소나 근무지 등 명단공개 요청 등을 할 수 있고 이행관리원장에게 양육비 선지급 신청을 할 수도 있다. 양육비는 자녀의 복지와 관련된 문제이며 양육비 지급에 어려움이 있다면 관련 기관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천자춘추] 느티나무 아래에서 배운 것들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농촌마을에는 300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동네아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마을 한가운데 있는 느티나무 아래로 모여들었다. 여자아이들은 옆집에서 버린 이가 빠진 접시와 화장품 뚜껑을 그릇 삼아 들꽃과 풀잎으로 밥상을 차렸고 남자아이들은 맨발로 느티나무를 오르며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는지 경쟁하기도 했다. 우리는 놀이를 통해 꽃과 잎의 모양을 익혔고 나무껍질의 질감과 그 틈에 숨어 사는 곤충을 자연스럽게 관찰했다. 그때 자연은 우리에게 친구이자 선생님이었다. 해질 무렵이면 집집마다 굴뚝에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러면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시계도 스마트폰도 없었지만 모두가 돌아갈 시간을 알았다. 신나게 뛰어놀고 먹는 저녁밥은 어떤 진수성찬보다 맛있었고 하루의 피곤함은 달콤한 잠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어떠한가. 학교가 끝나면 학원으로 향하고 남는 시간은 스마트폰이 차지한다. 흙을 밟고 나무를 만지며 자연 속에서 뛰어놀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 지역의 교육열을 가늠하려면 그 지역 정신건강의학과 의원 수를 보라는 씁쓸한 말까지 들리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이럴 때일수록 아이들에게 자연을 만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자연은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감수성을 키우는 배움의 공간이다. 그래서 생태체험교육관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 생각한다. 그러나 수원시에는 생태체험교육관이 겨우 두 곳뿐이다.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이 자연을 배우고 체험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생태체험교육관은 단순한 전시시설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연과 친구가 되고 생태감수성을 키우는 미래교육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미래세대를 걱정한다면 더 많은 학원보다 더 많은 자연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생명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과 기회를 마련하는 일, 그것이 우리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천자춘추] 경기장 바닥을 외면한 스포츠 강국은 없다

대한민국 스포츠는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축구, 야구, 배구, 양궁, 펜싱, 쇼트트랙까지 이제 한국 스포츠는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선수의 기량을 결정짓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 바로 ‘경기장 바닥’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선수의 정신력과 투혼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국제 스포츠는 이미 달라졌다. 이제 세계 스포츠는 선수 개인의 능력만이 아니라, 선수들이 뛰는 ‘환경의 질’까지 경쟁하는 시대다. 특히 종목별 경기장 바닥 성능은 경기력과 안전을 동시에 좌우하는 핵심 인프라다. 축구장의 인조잔디는 회전저항과 충격흡수 성능이 부족하면 발목 부상과 무릎 손상을 유발한다. 농구장은 미끄럼과 탄성이 경기 흐름 자체를 바꾼다. 육상트랙은 탄성 저하가 기록 저하로 이어지고, 체조와 유도는 착지 충격 하나가 선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 실제로 해외 스포츠 선진국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바닥 성능을 ‘경기력 데이터’로 관리하고 있다. 미국 NCAA는 대학 체육시설의 바닥 성능 점검 체계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본은 공공체육시설의 바닥 안전성 검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독일은 체조시설 바닥 개선 이후 착지 안정성이 향상됐다는 연구 결과까지 발표했다. 그들에게 바닥은 단순 시설이 아니라 ‘선수 보호 전략’이며 ‘국가 경쟁력’이다. 반면 국내 현실은 어떠한가. 여전히 노후화된 바닥재가 방치되고, 종목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시설이 운영되는 사례가 많다. 경기장 상태에 따라 선수의 움직임과 기록이 달라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성능 점검 시스템은 사실상 부재하다. 선수들은 자신의 실력보다 ‘운 좋은 바닥’을 만나야 하는 환경 속에서 경쟁하고 있는 셈이다. 이제 대한체육회와 각 회원종목 단체가 나서야 한다. 선수촌 훈련 프로그램만큼 중요한 것이 바로 경기장 환경 관리다. 종목별 바닥 성능 기준 마련, 정기 안전점검 및 인증제 도입, 노후 바닥 리뉴얼 지원 체계 구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특히 생활체육 인구 증가와 초고령사회 진입 속에서 스포츠시설 안전은 단순 체육 행정이 아니라 국민 건강정책의 영역이 되고 있다. 부상 예방은 의료비 절감으로 이어지고, 안전한 스포츠 환경은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된다. 다행히 최근 대한체육회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종목별 바닥 성능 점검 체계와 안전 인증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는 경기장을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선수의 기량과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과학적 스포츠 활동 공간’으로 바라본 것이다. 좋은 선수는 좋은 환경에서 탄생한다. 메달은 정신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수들이 매일 밟고 뛰는 그 바닥 위에서 이미 승부는 시작되고 있다. 대한민국 스포츠가 진정한 스포츠 강국으로 가기 위해 가장 먼저 점검해야 할 곳은 바로 선수들의 ‘발 아래’다.

[천자춘추] 비 오기 전 해야 할 일

어느덧 초여름에 접어들었다. 맑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지만 계절은 서서히 장마와 태풍의 시기를 향해 가고 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대비할 시간은 많지 않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비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점검할 적기다. 최근 관내 전통시장에서 중소벤처기업부, 기초지자체, 건축·전기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풍수해 대비 합동 안전점검을 실시했다. 화재안전 자율활동 운영 현황과 안전시설물 관리 상태를 살펴보고 비상연락망과 재난 대응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도 확인했다. 현장을 둘러보며 느낀 것은 재난이 특별한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의 피해는 작은 부주의와 관리 소홀에서 비롯된다. 전통시장은 점포가 밀집해 있고 시설이 노후한 경우가 많아 사전 대비 여부에 따라 피해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집중호우 시 가장 먼저 문제가 되는 것은 배수다. 맨홀 준설이 이뤄지지 않거나 배수로에 낙엽과 쓰레기 등이 쌓이면 빗물이 원활히 빠지지 못한다. 아케이드 배수로 관리가 소홀하거나 누수가 발생해도 침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시장에서는 배수로 위 매대 설치 등으로 물길이 막혀 피해가 커진 사례도 있었다. 전기 안전 역시 중요하다. 폭우로 인한 누전은 화재로 이어질 수 있어 전선 피복 손상이나 전기 연결부 이상 여부를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 저지대나 경사지 점포, 노점은 침수 위험이 높고 강풍에 따른 간판 및 적치물 낙하 위험도 함께 살펴야 한다. 이러한 안전관리는 행정의 점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상인회 중심의 안전관리 조직 운영과 순찰, 비상연락망 점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인 개개인의 일상적인 관심이다. 자기 점포는 자기가 먼저 지킨다는 마음으로 작은 위험 요소를 미리 점검하는 습관이 시장 전체의 안전으로 이어진다. 전통시장의 안전은 지역경제의 안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원칙은 가정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우리 집 주변 배수구 점검, 옥상과 베란다 정비, 노후 전기시설 확인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대비다. 재난은 비 내리는 날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대비를 미루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비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은 거창한 준비가 아니라 오늘의 작은 점검과 관심이다.

[천자춘추] 버리는 사회에서 돌려 쓰는 사회로

물건을 오래 사용하는 것이 가장 친환경적 소비 방식이라는 점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재활용도 중요한 수단이기는 하지만 재활용 과정에서도 상당한 에너지 소모와 오염물질이 발생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탄소중립·순환경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쓰레기로 배출되기 전에 중고품으로 다시 사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국내 중고품 거래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추세다. 한국인터넷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2025년 중고품 시장 규모는 43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08년 4조원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한 셈이다. 이러한 성장은 모바일 앱 기반 플랫폼(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 등)의 확산, 고물가 시대의 가성비 추구, 환경 인식 제고, MZ세대 중심 중고 거래에 대한 낙인 감소와 리셀문화의 일상화 등 복합적인 요인이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온라인 기반 시장이 성장을 주도하고 있지만 고가 명품을 중심으로 오프라인 중고 매장도 빠르게 늘고 있다. 패션 브랜드들이 직접 중고·리퍼브 제품을 수거·리세일하는 바이백(매입 후 재판매) 매장을 백화점 등에 여는 것이 대표적이다. 온라인 기반 중고품 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온라인 거래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을 위해 중고거래 체험·교육을 지원해 더 많은 시민이 중고 거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중고품 시장의 사각지대를 줄이기 위해서는 일상용품을 취급하는 오프라인 중고 매장도 늘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모습은 동네 단위 커뮤니티 기반 중고 매장이 곳곳에 자리잡는 것이다. 중고품 판매뿐 아니라 리필 제품 판매, 수리 카페 활동까지 병행하는 동네 제로웨이스트 문화의 ‘사랑방’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커뮤니티 기반 중고품 매장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상품 공급망이 전제돼야 한다. 지금처럼 시민 기부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크다. 기업의 재고 물품 소각을 금지하고 이 재고를 중고 매장에 기부·공급하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재고물품 기부와 유통을 전담하는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다. 공항 등에서 발생하는 압수 물품을 중고 매장에서 재판매하는 것도 공급망을 확충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렇게 기업을 통한 재고물품 공급망을 먼저 구축한 후 시민의 중고품 기부나 위탁판매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중고품 매장 운영을 활성화하려면 세제 측면의 뒷받침도 필요하다. 고가 사치재가 아닌 일상 중고품 거래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를 면제하거나 세율을 낮추는 인센티브를 검토할 만하다. 사회적 취약계층의 자활사업의 일환으로 재사용 매장을 늘리는 것도 고용·복지·환경을 동시에 고려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6월3일 이후 지자체마다 새로운 단체장이 선출된다. 민생 위기, 환경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해법 중 하나로 지역 내 촘촘한 중고품 비즈니스 생태계를 만드는 과제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결국 ‘버리는 사회’에서 ‘돌려 쓰는 사회’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며 중고품 생태계는 그 전환을 가장 눈앞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실천 플랫폼이다.

[천자춘추] 미디어 규제 완화, 선언보다 속도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미디어 산업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은 컸다. 정부는 지상파를 비롯한 레거시 미디어의 낡은 규제를 손보겠다고 밝혔고 글로벌 OTT 플랫폼과의 역차별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여러 차례 드러냈다. 지난해 방송의 날을 전후해 제시된 청사진 역시 규제 혁신을 통해 국내 미디어 산업을 글로벌 무대의 주역으로 키우겠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난 1년간 현장의 체감은 기대와 거리가 멀다. 토론회와 정책 발표는 이어졌지만 실제 변화는 미미하다. 미디어 환경은 실시간으로 바뀌는데 규제 개선 속도는 여전히 행정 절차와 부처 협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낡은 규제 체계를 근본적으로 손질하려면 국회의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 최근 최민희 의원이 방송광고 종류를 단순화하고 규제 방식을 전환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는 등 입법 움직임도 시작됐다. 그러나 극심한 여야 대립 속에서 관련 법안이 언제 시장에 적용될지는 불확실하다. 더 큰 문제는 정부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시행령 개정마저 속도를 내지 못한다는 점이다. 방송법은 광고 허용 범위와 편성 비율 등 핵심 규제 상당 부분을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다. 중간광고 완화나 광고총량 확대 등은 법 개정 없이도 즉시 추진 가능한 영역이다. 최근 의결 기구도 정상화됐다. 이제는 지체됐던 실무 규제 완화에 전력 질주해야 한다. 의결 기구가 정상화된 지금이야말로 하위 법령 개정은 물론이고 전향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규제 완화가 행정의 관성에 묶여 있는 사이 국내 미디어 기업은 글로벌 플랫폼과 비대칭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방송 생태계가 흔들리면 콘텐츠 제작 기반도 약해진다. 한류 확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가 결국 해외 플랫폼 중심으로 흘러들어가는 구조가 고착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미디어 분야에도 유연한 규제 실험이 필요하다. 정부가 신산업 분야를 중심으로 ‘업그레이드 규제 샌드박스’를 추진하는 만큼 미디어 산업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정부는 국회의 입법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시행령 정비, 하위 규정 개정, 샌드박스 우선 적용 등은 지금 당장 착수 가능한 것들이다. 현장이 체감하는 변화는 선언문이 아니라 그 실행의 속도에서 나온다.

[천자춘추] 아직도 설명 못한 도서관의 가치

최근 방영된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를 보며 문득 도서관이 떠올랐다. 도서관 역시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류와 목록만으로 존재 이유가 설명되던 시대가 지나자 존재(being)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이제 도서관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하는(doing) 기관이 됐다. 행정조직에서 도서관은 비주류다. 불특정 다수가 매일 방문하는 곳이지만 각각의 요구는 너무 다양해 하나의 성과로 정의되기 어렵고 ‘모두’를 맞추기 위해 수많은 작은 일이 일어나지만 그 대부분은 제대로 측정되지 않는다. 너무 많아 보고서에 들어가지 못하고 너무 작아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 전달되지 못한다. 속도와 효율이 강조되는 시대에 대규모 예산과 즉각적인 성과를 요구하는 정책 환경 속에서 일상을 담당하는 도서관의 일은 행정의 언어로 잘 표현되지 못한다. 도서관의 일은 본래 정량적으로 설명되기 힘들다. 한 권의 책이 삶의 방향을 바꾸고 한 번의 만남이 고립을 덜어내며 작은 프로그램 하나가 다시 사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도서관이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바로 그 ‘설명하기 어려운 영역’에 속해 있다. 도서관의 일이 ‘행정의 언어’로 치환되는 순간 변화의 서사는 사라지고 방문자 수, 프로그램 횟수, 대출권수만 남는다. 정책은 측정 가능한 것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예산은 설명 가능한 영역에 배분되기에 사서들은 오랫동안 도서관의 일을 설명 가능한 언어로 만드는 데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도서관의 무가치함을 극복하는 데 충분히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결산 검사가 끝나고 민선 9기를 준비하면서 재정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재정이 어렵다고 한다. 재정이 어려울수록 선택과 집중이 강조된다. 그때마다 도서관은 쉽게 축소 가능한 영역으로 취급된다. 필수적인 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대체 가능한 서비스라는 오해 속에서 존재 이유를 반복해 증명해야 한다. 그래서 도서관은 오늘도 스스로의 일을 설명 가능한 언어로 바꾸는 데 공을 들여야 한다. 존재의 무가치함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직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가치로움을 증명하기 위해 모르지만 당당한 사람들을 친절한 언어로 설득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천자춘추] 안전선진국 출발점 ‘생명안전기본법’

심각한 재난 발생 시 국가와 지자체의 책무를 명확히 한 ‘생명안전기본법’이 7일 국회를 통과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법 제정의 필요성을 처음 제기한 지 12년 만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도 했던 생명안전기본법의 기본틀은 국가의 생명안전보호 의무 명문화, 범정부 통합안전관리체계 구축, 예방 중심의 안전정책 전환, 피해자의 권리 보장 및 지원 강화, 사고 원인과 책임 규명을 위한 독립조사기구 설치, 시민이 참여하는 안전문화 확산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법의 핵심은 모든 국민이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받고 안전하게 살 권리인 ‘안전권’을 명시한 것이다.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 조항(제36조 6항)에서도 보듯 국민의 안전보호를 위한 국가의 역할은 당연하다.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겪으면서 안전은 국민이 누려야 할 권리이기 때문에 국가는 무한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안전을 기본권으로 명시한 법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생명안전기본법은 5년 단위의 생명안전종합계획 수립, 정책 수립과 시행에 필요한 재원 확충, 안전 관련 기준 설정 및 기준의 적정성 평가 등 안전권 보장을 위한 국가의 책임을 담고 있다. 피해자의 범위를 확대하고 권리를 보장한 것도 생명안전기본법의 큰 의미다. 피해자를 ‘안전사고로 인해 신체적·정신적·경제적 피해를 입은 사람’으로 정의함으로써 피해자의 범위를 당사자와 그 가족은 물론이고 목격자, 구조·수습·지원활동 참여자로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해자의 권리는 신속하고 적절한 사고 수습을 요구할 권리, 사고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요구할 권리, 재발방지대책 수립에 참여할 권리 등으로 구체화했다. 선진국은 천재(天災)에서도 인재(人災)적 요소를 찾아내 재발방지책을 마련한다. 반면 후진국은 인재적 요소가 분명한 사고도 천재로 치부해 버린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불가능해지면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는데 우리 사회가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를 겪어온 과정이 그러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갈등으로 얼룩졌던 참사를 뒤로하고 안전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출발점의 의미가 가장 크다.

[천자춘추] 질문의 속도

아나운서에게 좋은 목소리만큼 중요한 것은 듣는 능력이다. 질문의 정확성은 ‘제대로 들었는가’에서 결정된다. 상대의 말 속 맥락과 감정, 말하지 않은 배경까지 읽어낼 때 질문은 힘을 얻는다. BBC 기자들이 취재원의 답변을 끝까지 추적하며 핵심을 짚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질문의 질은 ‘상대방에게 얼마나 깊이 도달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질문은 판단을 앞세우곤 한다. 유튜브 예능 ‘핫이슈지’의 유치원 교사 에피소드는 이를 풍자한다. “선생님이 내 코딱지를 먹었어요”라는 아이의 표현은 맥락 속에서 설명돼야 하지만 순식간에 사실 여부를 둘러싼 갈등으로 번진다. 교사의 해명에도 학부모는 “사실인가요”, “다른 반은 그런 일 없다던데요”라며 단정적으로 반응한다. 우스꽝스러운 이 장면은 각자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불통을 드러낸다. 이처럼 해석이 선행된 질문은 늘어나고 있다. 개인 맞춤형 콘텐츠가 빠르게 소비되고 인공지능(AI)과의 대화가 일상화되면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시각 안에 갇히기 쉬운 환경에 놓였다. 이런 때일수록 ‘이 질문은 이해를 위한 것인가, 확신을 강화하기 위한 것인가’를 먼저 자문해야 한다. 상대에게는 “왜 그랬어요”보다 “어떤 상황이었나요”처럼 맥락을 여는 질문이 필요하다. 진짜 목소리는 해석이 멈출 때 비로소 들린다. 소통은 결국 멈춤에서 시작한다. 한 교사는 말을 더듬는 아이를 끝까지 기다렸고 아이는 “혼날까 봐 말을 못 했어요”라고 털어놓았다. 구조자 곁에서 묵묵히 시간을 준 소방관은 그제야 상황의 전모를 들을 수 있었다. 질문에 앞서 감정을 읽어낼 때 말은 늦게 와도 진실은 먼저 도착한다. 침묵과 공백이 때로는 가장 정확한 언어가 된다. 동요 ‘기다려줄게’에는 “천천히 말해도 괜찮아. 내가 너의 곁에서 기다려줄게. 친구니까”라는 가사가 있다. 아이의 시각에서 ‘기다림’은 친구라면 당연한 태도로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때론 아이처럼 상대의 속도에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친구의 태도’야말로 가장 깊은 질문의 출발점이다.

[천자춘추] 그 버스가 다시 출발하는 날

“엄마, 나 김밥 싸 줘.” 5월의 아침, 아이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가방을 메고 현관에 선다. 운동화 끈을 몇 번이나 고쳐 매고 새 물통을 자랑하며 늦을까 봐 발을 동동 구른다.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그 작은 등을 바라보며 부모는 잠시 멈춰 선다. 오늘 하루가 아이의 인생에 어떻게 남을지 알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자신에게도 그런 하루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잊는다. 교과서의 내용도, 시험문제도 흐릿해진다. 그러나 그날의 바람과 햇빛, 친구의 웃음은 오래 남는다. 누구에게나 그런 하루가 있다. 1년 내내 기다렸던, 단 하루의 특별한 날이다. 하지만 지금, 그 하루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같은 5월, 어느 초등학교 젊은 교사는 현장체험학습을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한다. 버스는 안전한지, 작은 변수라도 생기지 않을지 계속 점검한다. 출발 전날이면 학부모 단체 대화방에는 각종 우려와 요구가 이어진다. 그는 책상 서랍 속에 한 장의 판결문 사본을 넣어둔다. 2022년 속초에서 현장체험학습 도중 초등학생이 버스에 치여 숨진 사고 이후 인솔 교사가 형사책임을 인정받은 판결이 교실마다 전해졌기 때문이다. 아이의 손을 잡는 일조차 두려워진 것은 그때부터다. 우리는 언제부터 아이의 하루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어른들이 ‘사고가 나면 누구 책임인가’를 따지는 동안 아이들의 교실 밖 경험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소풍, 수학여행, 체험활동, 수련활동, 운동회가 하나둘 사라진다. 그 사이 아이들은 네모난 교실 안, 네모난 책상에 앉은 채 자란다. 친구와 부딪치며 걷는 길, 낯선 풍경 앞에서 느끼는 설렘, 함께 웃고 어색함을 나누는 시간,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우정을 쌓던 순간들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어떤 교과서나 시험도 대신할 수 없는 배움이다. 무엇보다 우선돼야 할 것이 아이들의 신나는 웃음을 더 크게 키우는 일이라는 사실을 어른들은 잊고 있는 건 아닐까. 어른들의 책임 공방을 넘어 아이들의 즐거운 하루를 지키는 일은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눠야 할 책임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버스를 멈춰 세우는 대신 위험을 나눠 떠받칠 어른들의 시스템을 먼저 세워야 한다. 현장체험학습의 안전을 교사 한 사람에게 기대는 구조에서는 그 버스가 다시 출발하기 어렵다. 아이들의 하루를 지키려면 학교 밖 활동의 안전을 학교와 교육청, 지자체와 국가가 함께 책임지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 “엄마, 나 김밥 싸 줘.” 언젠가 다시 이 말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5월의 아침이 돌아오기를 바란다.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버스에 올라 손을 흔드는 풍경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한 아이의 평생에 남는 소중한 하루를 지키는 일. 그것은 결국 우리가 받았던 시간을 다음 세대에 돌려주는 일이다.

[천자춘추] 도시 문화빈곤, 감각 소멸에서 시작

무엇이 지역을 문화적으로 가난하게 만드는가. 많은 이들은 예산과 시설 부족을 먼저 말한다. 물론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빈곤은 문화가 시민의 삶 속에서 자라나지 못하고 행정의 틀 안에서 소모될 때 발생한다. 일상에서 쌓여야 할 감각들이 단발성 기획으로 소비될 때 도시는 스스로 새롭게 느끼고 해석할 기회를 잃어간다. 그동안 우리의 지역 문화정책은 눈에 보이는 성과에 치중해 왔다. 관(官) 주도의 전시행정은 시민을 창조의 주체가 아닌 일방적 수용자로 머물게 한다. 다양성은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인데 미리 짜인 형식이 앞서면 새로운 시도와 작은 목소리는 설 자리를 잃는다. 도시는 점점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한 장면만이 복제되고 이러한 다양성의 훼손은 결국 도시 전체의 ‘문화적 감각 소멸’로 이어진다. 진정한 문화도시를 가르는 척도는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 ‘기억’의 두께다. 지역 문화예술은 결국 한 도시의 기억을 만드는 일이다. 어떤 삶이 이곳에 있었는지, 누가 어떤 이야기를 남겼는지, 우리가 무엇을 함께 만들었는지를 기록하고 축적하는 과정이다. 행사가 끝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도시가 아니라 시민의 경험과 표현이 쌓여 역사가 되는 도시가 진정한 문화도시다. 기록되지 않는 도시는 아무리 축제가 많아도 결국 문화적으로 빈약해질 뿐이다. 지역의 힘은 기술이 대체할 수 없는 곳에서 나온다. 인공지능은 무수한 ‘정답’을 내놓지만 예술은 우리에게 우리만의 ‘질문’을 던지게 한다. 사람과 그 지역만이 품고 있는 고유한 서사는 기계가 흉내 낼 수 없는 미래의 인프라다. 기술의 시대일수록 로컬의 감각이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될 수 있다. 결국 도시의 문화예술은 그 도시를 어떻게 바라보고 읽어내는지를 보여준다. 문화예술이 풍부한 도시는 시민이 자기 삶과 관계, 공간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이다. 반대로 빈곤한 도시는 볼거리가 부족한 곳이 아니라 그 삶을 해석하고 나눌 감각이 메마른 도시다.

[천자춘추] ‘원백’의 30년 우정

원진과 백거이는 당나라 시대 걸출한 시인으로 두 사람을 ‘원백’이라 부르기도 한다. 두 사람은 시를 주고받으며 각별한 우정을 나누면서 사서(史書)에 기록될 만큼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시문의 왕래를 통해 두 사람은 우의가 돈독하고 서로 존경했으며 호방한 필체로 우정 어린 서정시를 30년 넘게 교환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뜻깊다. 원진은 수도 장안 출신으로 외가의 고택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다가, 백거이는 진사과에 응시하기 위해 상경, 장안에서 초조하고 근심스러운 시간을 보내다 처음으로 상면하게 됐다. 원진은 첫눈에 사람을 알아보고 평생을 함께할 친우라고 판단했으며 백거이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비서성 교서랑에 함께 제수돼 돈독한 우정을 나눴다. 두 사람의 교류는 어질고 정직한 벗이자 서로의 잘못을 바로잡아주는 진실됨이 있었다. 인정세태의 변화를 예측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원진만은 곧은 절조와 지행(志行)을 견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진의 인간성을 잔잔한 옛 우물의 물과 꼿꼿한 대나무 줄기에 비유했다. 그러다 원진은 좌습유에 제수, 백거이는 주지현 현위로 임명돼 석별하게 됐다. 노모를 모시고 봉양하느라 곤궁한 생활을 하던 백거이는 자신의 명예보다 어머니를 더욱 편안히 모실 수 있는 관직을 자청했다. 강릉에서 이 소식을 들은 원진은 감동해 일신을 도모하지 않고 봉양을 도모한 그의 원대한 뜻을 칭송하는 시를 지었다. 친구 사이의 깊은 우정을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이 있다. 동업으로 관중과 장사를 하게 된 포숙아는 관중이 이윤을 더 많이 가져갈 때마다 노모를 모시고 있으니 나보다 더 가져야 한다며 감쌌다. 전장에 나가 세 번이나 탈영을 했지만 이 역시 결코 비겁한 자라고 하지 않았다. 훗날 관중은 포숙아를 향해 “나를 낳아주고 길러준 사람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포숙아”라는 말을 남겼다. 원백 두 사람의 우정도 관포지교에 버금간다고 할 만큼 시공을 초월한 돈독한 우정의 표상이라 할 수 있겠다.

[천자춘추] 시흥행궁, 건물 아닌 정신의 복원

궁궐은 본래 머무는 곳이다. 그러나 시흥행궁은 머무름보다 지나감으로 기억되는 궁궐이었다. 1795년 윤2월, 정조는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현륭원으로 향하며 첫날 밤을 이곳에서 보냈고 화성의 큰 행사를 마친 뒤 환궁하는 길에도 다시 이곳에 들렀다. 시흥행궁의 본질은 화려한 전각에 있지 않았다. 그것은 길 위에서 잠시 멈춘 권력, 그리고 그 멈춤을 통해 백성과 만난 정치의 형식이었다. 왕은 이곳을 지나며 지방관을 포상했고 백성은 행차를 바라보며 상언과 격쟁의 가능성을 품었다. 행궁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었다. 움직이는 나라가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현장이었다. 어쩌면 정조에게 중요한 것은 궁궐 자체보다 길 위에서 백성을 직접 만나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궁궐이 고정된 권력이라면 행궁은 움직이는 권력이었다. 그러나 지금 시흥행궁의 흔적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시흥이라는 이름은 남았지만 터는 저층 주거지와 상가 사이에 묻혀 있다. 정확한 규모와 배치조차 여전히 더 따져봐야 한다. 어떤 기록은 114칸을 말하고 후대의 자료는 214칸을 이야기한다. 이 차이는 단순한 혼란이 아니다. 오히려 시흥행궁이 하나의 고정된 건축물이 아니라 시대와 필요에 따라 운영되던 공간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복원은 더욱 신중해야 한다. 문화유산은 상상만으로 되살릴 수 없다. 충분한 사료와 발굴, 직접적인 증거, 최소 개입과 진정성이라는 원칙 위에서 접근해야 한다.화성행궁의 복원은 오랜 고증과 단계적 연구 끝에 가능했다. 반대로 상징과 관광이 증거를 앞지른 복원은 쉽게 ‘가짜 기억’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시흥행궁 복원의 출발점은 ‘몇 칸을 다시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다시 살릴 것인가’여야 한다. 중요한 것은 건물만이 아니다. 능행의 길을 다시 읽고, 오래된 지명의 의미를 되살리고, 사라진 공간의 기억을 오늘의 도시 속에 다시 연결하는 일이다. 골목의 흔적들, 오래된 은행나무, 주민들의 기억과 이야기가 때로는 거대한 전각보다 더 오래 남는다. 최근 금천에서는 시흥행궁의 기억을 오늘의 방식으로 다시 꺼내 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금천시흥행궁문화제역시 단순한 재현 행사라기보다 사라진 행궁의 시간을 다시 도시 위에 펼쳐보는 과정에 가깝다. 길 위를 걷는 행렬과 깃발, 음악과 등롱의 움직임은 결국 ‘행궁이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다. 행궁은 건물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이고 지나가고 기억하던 하나의 흐름이었다. 새 기와를 얹는다고 해서 기억까지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시흥행궁의 복원은 옛 건물을 흉내 내는 일이 아니라 사라진 시간을 오늘의 도시 위에 다시 흐르게 하는 일에 더 가깝다. 사람들이 다시 그 길을 걷기 시작할 때 어쩌면 시흥행궁의 복원도 그때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천자춘추] 아버지의 그늘

나는 올해 환갑을 맞았다. 1966년 말띠로 어느덧 예순 고개를 넘었다. 인생을 돌아보니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아버지’다. 고등학교 1학년 5월, 봄기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났다. 아버지의 부재는 단순한 이별을 넘어 삶의 버팀목 하나가 사라지는 일이라는 것을. 집 안의 공기가 달라지고 어머니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그저 현실을 받아들이기에 급급했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야 깨닫는다. 아버지의 그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그것은 비를 막아주는 지붕이었고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잠시 쉴 수 있는 나무 그늘이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자랐고 그 존재를 당연히 여겼다. 그러나 그 그늘이 사라진 뒤에야 그 크기와 깊이를 비로소 알게 됐다. 이제 나는 한 가정의 아버지로 서 있다. 곁에는 평생을 함께한 아내가 있고 서른을 넘긴 아들과 딸이 있다. 아이들은 이미 어른이 됐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품 안의 자식들이다. 문득 묻게 된다. 나는 과연 내 아이들에게 어떤 그늘이었는가. 젊은 시절의 나는 가족을 책임진다는 이유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쉼 없이 일했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은 늘 부족했다. 그때는 그것이 아버지의 역할이라 믿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다. 아버지의 그늘은 물질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함께한 시간 가족들과 나눈 대화,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순간들이야말로 진정한 그늘이었다. 요즘 나는 일부러라도 아이들과 마주 앉는다. 짧은 식사 한 끼 소소한 대화 속에서 늦게나마 아버지의 역할을 채워가고 싶어서다. 완벽하지는 못해도 언제든 돌아와 쉴 수 있는 자리 하나는 남겨주고 싶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그분의 그늘은 여전히 내 삶 속에 남아 있다.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 선택의 순간마다 기준의 돼주는 기억들, 그것이 아버지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이다. 이제 나는 그 그늘을 이어가는 사람이다. 내 아이들이 언젠가 나를 떠올릴 때 따듯한 기억 하나쯤은 남아 있기를 바란다. 비바람을 모두 막아주지는 못하더라도 잠시 쉬어 갈 수 있었던 그늘로 기억되기 바란다. 환갑의 나이에 비로소 알게 된다. 아버지의 그늘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도 나는 그 그늘을 조금 더 넓히기 위해 살아간다.

[천자춘추] 매월 찾아오는 생리통, 어떻게 이겨낼까?

흔히 ‘월경통’, ‘월경곤란증’으로 불리는 생리통은 환자 자신이 숨긴 채 드러내기를 꺼리지만, 심할 경우 우울증 등 정신 질환을 유발하고 일상생활에서도 여성들의 업무 능력을 떨어뜨리는 주원인이 되기도 한다. 여성들의 50%정도가 생리 전후 또는 생리 기간 내내 여러 가지 불쾌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 증상들은 무기력, 불안감, 우울, 짜증, 피로, 두통, 메스꺼움, 복통, 설사, 변비, 식욕부진, 졸리움 등이 나타나는데 가장 많은 증상은 생리를 하는 전기간, 혹은 전후의 하복통과 요통이며 그 아픔이 발작적으로 오는 경우와, 지속적으로 오는 경우가 있다. 경우에 따라 생리 전기간 동안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자주 있다. 일반적으로 출산경험이 없는 여성의 자궁의 크기는 자신의 주먹만하다. 자궁경부의 크기는 매우 작아서 물보다 진한 점도가 있는 혈액이 나오기에는 구멍이 매우 좁다. 더군다나 자궁이 복부로 기울어져 있어 더 나오기 힘든 구조다. 만약 혈액이 충분히 맑거나 출산 등으로 인해 자궁경부가 어느 정도 넓어지게 되면 혈액이 쉽게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혈액의 점도가 높다면 혈류가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일 수 밖에 없다. 이 때 신체는 PG(프로스타 글란딘)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해 혈액이 잘 나오도록 자궁 평활근을 흔들어댄다. 이때 평활근의 움직임으로 느끼는 통증이 바로 생리통이다. 이런 작용으로 인해 자궁평활근은 물론 더 나아가 자궁 뒷면에 있는 척추와 허리, 골반, 자궁 앞의 대소장 부위까지 호르몬을 영향을 받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생리기간에 변비나 설사. 소화불량 요통 복통 등을 호소하게 된다. 우리가 흔히 ‘생리통 약’으로 알고 있는 타이레놀이나 게보린, 펜잘 등의 약들은 호르몬을 차단하는 약이다. 생리통 약을 먹으면 자궁 평활근의 진전이 멎으면서 통증은 줄어들지만,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나와야할 생리혈이 전부 나오지 않고 자궁에 재흡수될 수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진통제를 먹어도 생리통이 나아지지 않거나, 자궁내막증 등의 질환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턱이나 입술 아랫부분에 뾰루지 피부 트러블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배가 아플 때 배변을 하면 좋아지듯이 생리통이 있을 땐 생리혈이 잘 나올 수 있도록 하면 되다. 대부분의 생리통은 출산과 함께 자궁경부가 넓어져서 혈류가 원활히 빠져나오게 됨으로써 많은 여성들이 자연분만을 통한 출산 후 생리통이 없어지게 되다. 만일 기혼여성이며 출산을 한 후에 원래 없었던 생리통이 생겼다면 자궁내막증이나 근종, 골반염 등의 다른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 냉 대하. 생리주기 이상 과다월경 등을 호소하게 된다. 생리주기가 변동이 생겼거나 없었던 생리통이 생겼다면 반드시 한의사와 상담하는 것이 좋다. 생리통의 있을 때 한의원에서는 자궁 내 혈류 흐름이 원활해질 수 있는 지료를 하게 된다. 첫 번째 침과 뜸치료를 통해 복부를 따뜻하게 하여 복부의 혈액순환을 증대시킨다. 둘째 약침 등의 치료를 통해 원활한 호르몬 분비가 가능하게 돕는다. 셋째 한약 등을 통해서 혈류상태를 개선하게 된다. 또한 생리통이 있을 때 다음과 같은 것에 주의하면 좋다. 첫째 배꼽티, 찬 곳에 오래 앉아있기 등 하복부가 냉해질만한 행동은 피한다. 둘째 인스턴트 음식. 술, 담배, 커피 등을 가급적 줄인다. 셋째 신선한 야채와 수분공급이 충분해야 좋다. 넷째 생리통이 심할 경우에는 복부에 온찜질을 해준다.

[천자춘추] 위장 하도급, 숨은 위험

건설 현장에서 반복되는 안전사고와 부실공사 뒤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숨어 있다. 바로 ‘위장 하도급 업체’다. 주소지만 형식적으로 이전해 지역업체 요건을 충족한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시공능력이나 안전관리 체계가 없는 업체가 계약을 따내는 행위다. 이들은 저가 입찰로 계약을 확보한 뒤 불량자재를 투입하거나 공사를 재하도급해 비용을 최소화한다. 그 결과 균열, 침하, 누수 같은 하자가 나타나고 산업안전보건관리비는 다른 용도로 전용돼 현장에서는 추락방지망조차 설치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안전 매뉴얼도, 장비도, 교육도 없이 외지 인력을 투입한 결과 발생한 참사들이다. 공사 완료 후에는 주소를 다시 이전하거나 사실상 폐업 상태로 만들어 책임 추적이 불가능해진다. 피해는 고스란히 발주자와 이용자에게 돌아간다. 가장 큰 문제는 지역경제에 왜곡이 생긴다는 점이다. 통계상으로는 지역업체 참여율이 달성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외지 인력과 자재가 투입돼 지역고용과 세수에는 아무런 기여가 없다. 하도급 업체가 주소지를 이전하는 이유는 공공 공사에서 요구하는 지역업체 우선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다. 이 외에도 건설산업종합정보망(KISCON) 등록 요건을 충족하고 면허 등록지 요건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사실상 발주자는 하도급 업체의 위장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지역경제 왜곡, 세금·사회보험 혼선, 노동자 임금 체불, 불법 재하도급 확산 등 다양한 피해가 발생한다. 공사 완료 후 주소를 이전한 상태에서는 증거 확보가 어렵고 행정기관도 추적에 어려움을 겪는다. 따라서 위장 하도급 업체를 적발하기 위해서는 형식적 요건 확인을 넘어 실질적 영업 여부를 검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도급 계약 시 세금·고용보험 납부 증명 등 실질 요건 확인과 주소 이전 이력 자동 확인시스템 구축과 공사 완료 후 일정 기간 주소 유지 의무, 원도급 업체의 확인 의무 법제화, 하도급 참여 제한 제재 강화가 필요하다. 위장 하도급 문제는 단순한 행정 위반이 아니라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다. 지역경제 왜곡, 노동자 임금 체불, 안전사고라는 삼중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제도적 감시망을 촘촘히 하고 원도급 업체와 발주자 모두 책임을 분명히 하는 개혁이 시급하다.

[천자춘추] 사인여천 정신과 통합돌봄

130년 전 이 땅의 민초들은 ‘사람을 하늘처럼 섬기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의 가치 아래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그 울림은 오늘날 초고령사회라는 거대한 파도를 마주한 우리에게 다시금 준엄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진정으로 서로를 하늘처럼 모시는 돌봄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복지는 단순한 시혜가 아니다. 돌봄이 필요한 이들이 자신이 살던 집과 마을에서 존엄을 지키며 생의 마지막까지 평온을 누리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사인여천 실현이다. 필자는 이를 위해 ‘인공지능(AI) 기술은 날개가 되고 사랑은 뿌리가 되는’ 하이브리드 통합돌봄 모델을 제안해 왔다. 기술은 차갑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 에이전틱 AI와 바이브 코딩 등 고도화된 기술은 돌봄의 사각지대를 24시간 깨어 있는 눈으로 살피는 ‘디지털 효도’의 날개가 된다. 혼자 사는 어르신의 미세한 움직임을 감지하고 인지 건강을 체크하며 외로움의 대화 상대가 돼주는 기술은 돌봄 노동의 한계를 넘어 모두를 하늘처럼 모시는 촘촘한 그물망을 완성한다. 그러나 날개만으로는 비상할 수 없다. 기술이라는 날개를 지탱하는 것은 결국 인간을 향한 깊은 연민과 사랑이라는 뿌리다. 지역사회가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적 가치가 뒷받침될 때 AI 기술은 비로소 온기를 가진 생명력을 얻는다. 기술이 효율을 담보하고 사랑이 가치를 지탱하는 이 하이브리드 시공간에서 비로소 진정한 통합돌봄이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K-복지’의 표준을 세워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인본주의 정신인 동학의 사인여천을 최첨단 AI 기술과 결합한 우리의 통합돌봄 모델은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고령화와 고립의 문제를 해결할 창조적 대안이 될 것이다. 돌봄은 더 이상 개인의 희생이 아닌 사회적 영성의 실천이어야 한다. 모든 국민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창가에서 따스한 봄 햇살을 받으며 존엄하게 숨을 거둘 수 있는 나라, 기술과 사랑이 완벽하게 결합한 경기도의 통합돌봄정책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K-복지의 미래가 될 것이다.

[천자춘추] 中, 아프리카 ‘무관세 정책’

중국 정부는 대만과 국교를 맺은 아프리카의 에스와티니(Eswatini·옛 스와질란드)를 제외한 아프리카 53개국에 대해 5월1일부터 ‘제로 관세’를 시행하기로 발표했다. 이번 중국의 무관세 정책은 세계 무역에서 유례없는 파격적인 조치로 표면적으로는 경제 협력의 확대처럼 보이지만 이면에는 미국 중심의 일극 체제를 허물고 중국 중심의 신국제질서로의 재구조화라는 전략적 포석이 깔려 있다. 중국은 1960년대 자국이 극심한 경제난에 시달리면서도 ‘탄자니아와 잠비아 철도(TAZARA)’ 건설에 5만명의 인력을 파견하며 아프리카를 지원했다. 서구의 식민 지배에 신음하던 아프리카에 중국은 동지이자 후원자였다. 이러한 역사적 관계와 정서적 연계는 중국의 일대일로(BRI)를 거쳐 이제 ‘무관세 외교’로 진화했다. 중국은 아프리카를 단순한 원조 대상이 아닌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국제질서를 깨뜨릴 수 있는 후방으로, 또 강력한 전략적 파트너로 삼으려 하고 있다. 중국이 아프리카에 획기적 혜택을 주면서 관계 강화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자원 안보의 파트너다. 전기차와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핵심인 리튬, 코발트 등 전략 광물의 보고인 아프리카와의 관세를 허물어 공급망의 안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다. 둘째, 시장의 선점이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자원·노동력과 자국 기술력을 결합해 새로운 생산 거점을 만들며 글로벌 사우스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또 ‘내정 불간섭’ 원칙을 앞세워 아프리카 국가의 지지를 얻고 있다. 미국이 안보 동맹과 가치 중심의 기술 봉쇄로 중국을 압박하는 사이 중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프리카를 우군화하며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중국식 질서를 세계 표준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결국 중국의 무관세 정책은 세계 지도를 다시 그리겠다는 장기적인 포석일 수 있다. 미국이 자신의 ‘가치’를 강요하는 동안 중국은 아프리카에 ‘도로’를 닦아주고 ‘무역의 문턱’을 낮췄다. 이 정책적 차이는 앞으로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에서 중요한 변수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지금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중국의 거대한 전략과 포석의 파장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의 한가운데 있는 한반도에 미칠 영향을 냉철한 시각으로 국제질서 변화의 거대한 물결을 직시하고 대비해야 한다.

[천자춘추] 이웃 배려하는 펫티켓시대

경기도는 전국에서 반려동물이 가장 많이 등록된 지방자치단체다. 2024년 말 기준 경기도내 등록된 반려동물은 총 111만6천243마리로 이는 전국 반려동물 등록 건수의 약 30%를 차지하는 수치다. 높은 인구 밀도와 1인 가구 및 가족 단위 거주층의 집중으로 타 지역 대비 반려동물 양육 비율이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려동물 입양 인구의 급증은 우리 사회의 풍경을 바꿔 놓았으며 반려동물로 인한 이웃 간의 갈등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성숙한 반려문화 정착을 위해 반려인과 비반려인 모두 서로를 배려하는 ‘펫티켓’ 준수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생각된다. 산책이나 외출 시 반려인이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사항은 목줄 착용이다. 현행 동물보호법상 외출 시 목줄 길이는 2m 이내로 유지해야 하며 이는 돌발 상황에서 반려동물을 제어하고 타인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배설물을 즉시 수거하는 것은 공중위생과 이웃에 대한 기본적인 에티켓이다. 산책 시에는 반드시 배변 봉투를 지참하고 배변 후에는 흔적을 남기지 않도록 처리해야 한다. 도사견, 아메리칸핏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 동물보호법에서 명시된 맹견으로 분류된 품종은 외출 시 반드시 목줄 및 입마개를 착용해야 한다. 법적 맹견 품종이 아니더라도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 또는 동물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어 시·도지사가 맹견으로 지정한 반려견 역시 돌발 행동을 예방하기 위해 입마개 훈련과 엄격한 관리가 필수적이다. 적절한 안전장치는 이웃의 안전뿐만 아니라 반려동물을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펫티켓은 반려인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길에서 만나는 반려동물이 귀엽다고 해서 주인의 동의 없이 갑자기 만지거나 큰 소리를 내는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 반려동물에게는 낯선 사람의 접근이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려인과 비반려인의 자발적인 참여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정한 ‘반려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경기도가 국내 반려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를 기대해본다.

[천자춘추] 민통선, 소문의 낙원이 아니라 삶을 짓는 도장(道場)

요즘 거리에서 ‘소문의 낙원’이라는 노래가 자주 들린다.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은 그 낙원에 대한 노래다. 가사를 듣다가 문득 웃음이 났다. 바깥의 사람들에게 민통선 철책 너머의 공간이 꼭 그렇게 들리겠구나 싶어서다. 바깥에서 이 땅은 오랫동안 소문의 낙원이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 신비한 야생, 시간이 멈춘 평화의 정원. 누구도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닫힌 경계에는 늘 가장 화려한 상상이 덧칠해지는 법이다. 70년의 통제가 만들어낸 가장 큰 산물은 어쩌면 이 짙은 환상의 두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9년간 이 안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분명히 적어 두고 싶다. 이 땅은 결코 낭만적인 낙원이 아니다. 필자는 이 숲을 종종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번뇌시도장(煩惱試道場)’. 번뇌가 곧 수행의 재료가 되는 자리, 제약과 불편이 그대로 길이 되는 도량이라는 뜻이다. 분단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자기 자리를 짓고자 하는 사람이 매일 온몸으로 부딪쳐야 하는 현실의 다른 이름이다. 낙원에는 절차도, 시간표도 없다. 그러나 도장(道場)은 절차와 일몰의 시간에 묶여 있다. 손님 한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서도 며칠 전 군에 명단을 보내야 하고 아침마다 자재를 실은 차들은 검문소 앞에서 긴 기다림을 거쳐야만 안으로 들어선다. 그렇게 어렵사리 숲에 들어와도 해가 지면 여지없이 땅을 비워야 한다. 야간 작업으로 시간을 연장하는 도시의 방편은 여기에 없다. 안보라는 큰 틀 위에 생업이 얹혀 있기에 즉흥적인 방문도, 시간을 빚내어 쓰는 밤샘도 허락되지 않는다. 모든 만남에는 며칠의 시차가 깔리고 모든 일은 오직 태양이 허락한 시간 안에서만 멈추고 또 시작된다. 낙원은 바람이 일지 않는다. 그러나 도장에서 가장 거센 바람은 자기 안에서 분다. 이 모든 마찰 앞에서 가장 자주 흔들리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 안의 작은 욕심이다. 절차를 우회하고 싶고 시간을 압축하고 싶고 화려한 시설로 단번에 시선을 끌고 싶은 유혹. 그러나 그 조급함에 굴복하는 순간 이 땅이 70년간 품어온 결은 쉽게 파괴된다. 매일 이끼 앞에 웅크리고 앉아 스스로의 허영을 솎아내는 일이 가장 뼈아픈 작업이다. 낙원의 서사는 사람을 잠시 머물게 한다. 도장의 서사는 사람을 오래 살게 한다. 평화의 환상을 품고 온 사람은 검문소 앞에서 표정이 굳고, 들어와서도 신기루를 좇다 떠나간다. 그러나 이 땅을 기꺼이 번뇌시도장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다르다. 명단의 절차를 자기 박자로 들이고 일출과 일몰의 시간표를 자기 호흡의 일부로 삼으며 행정과 협상하는 매일의 일을 자기 삶의 형식으로 껴안는다. 이 땅에 들어와야 할 사람도 분명해진다. 낙원을 소비하러 오는 사람이 아니다. 분단의 시스템과 마주하면서도 묵묵히 그 마찰을 견뎌내며 삶을 일구고 마침내 그 지난한 과정을 단단한 ‘신뢰 자산’으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이 한 명씩 모여 이 땅에 자리를 짓기 시작할 때 바깥의 소문 속 낙원은 비로소 숨 쉬는 도장으로 바뀌어 간다. 낙원은 주어지는 자리가 아니라 분단의 시스템과 치열하게 대면하며 짓는 자리다. 9년의 도장이 이 척박한 땅 위에서 필자에게 가르쳐 준 단 하나의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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