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아프리카 수단에 커져 가는 인도적 위기

지난 4월25일 아프리카 수단에 체류 중이던 교민 28명을 태운 공군 수송기가 무사히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정부의 발 빠른 교민 철수 작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수단 수도 하르툼에서의 군벌 간 무력충돌이 격화되자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외교관 등 자국민 대피를 서둘러 진행했다. 수단은 알바시르 대통령이 지난 30년간(1989~2019년) 독재로 국가를 통치해 왔다. 오랜 기간 자국 내 분쟁으로 인해 2011년에는 수단 남부지역이 ‘남수단’으로 국가가 분리되기도 했다. 7개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어 이번 수단 내 무력충돌이 인접 국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수단은 수단 항구를 이용하지 못해 석유 수출에 지장을 받고 있고 차드는 무력충돌이 자국 내로 번질 것을 우려해 국경을 폐쇄한 상태다. 이번 무력충돌은 쿠데타로 2019년 정권을 잡은 알부르한이 이끄는 정부군(SAF)과 다갈로가 이끄는 신속지원군(RSF) 간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발생했다. 사실 이 두 군벌은 지난 30년간 수단을 독재하던 전 대통령 아래서 세력을 키워 오던 동지였지만 결국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갈라서게 됐다. 두 군벌의 무력충돌로 지금까지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11만명이 넘는 주민들이 인접 국가로 피란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수단은 이번 무력충돌이 발생하기 전부터 이미 약 1천580만명이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할 만큼 위기가 심각한 나라다. 특히 5세 미만 아동 사망률과 아동 영양실조 비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나라 중 하나인 수단은 약 5만명에 이르는 아동이 중증급성영양실조(SAM) 프로그램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번 무력충돌로 인해 프로그램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도적 지원 활동이 신속히 재개되지 않으면 아동 영양실조 비율과 아동 사망률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번 사태는 아동의 교육권 침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수단은 10세 아동 중 70%가 글을 읽지 못할 정도로 아동들이 기초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이번 무력충돌로 인해 많은 학교가 폐쇄돼 수백만명의 아동이 학업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실제로 여아의 경우 3명 중 1명, 남아는 4명 중 1명이 배움의 기회를 잃게 된 것으로 현지에서 보고되고 있다. 무력충돌 당사자인 두 군벌은 민간인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위해 휴전을 논의 중이지만 전투기 공습 등 무력충돌이 내전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인다. 2019년 수단의 잔혹한 통치자 알바시르 대통령이 축출되자 국민들은 정치적 안정과 민주화에 대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지만 이어진 군벌 간의 무력충돌로 인해 수단 국민들의 고통은 지속되고 있다. 이번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아동을 포함해 수백만명의 민간인이 심각한 생존 위험에 내몰릴 수 있기에 평화로운 해법을 위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중재가 요구된다.

[세계는 지금] 중동의 한국 문화 콘텐츠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비롯한 중동의 여러 국가에서는 한국의 다양한 콘텐츠산업이 강세를 보이며 성장 중이다. 한국 문화 콘텐츠가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상위 5개국에 아랍에미리트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국제문화교류진흥원의 ‘해외한류실태조사 2022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의 한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국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한국에 대한 전반적 인식이 긍정적이라고 답한 비율이 무려 79%를 차지하는데 아랍에미리트에 한국은 “호감이 가는 국가”(79.8%), “경제적으로 선진국”(73.8%), “우리에게 우호적인 국가”(71.3%), “경쟁국이기보다 협력국”(69.0%), “문화강국”(64.5%)의 이미지를 가진 나라다. 또 한국 문화 콘텐츠를 경험하기 전후로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봤을 때 한국 콘텐츠를 접한 이후 한국에 대한 인식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했다는 응답이 76.5%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만약 콘텐츠를 경험하기 이전에 갖고 있던 이미지보다 실제 경험 후 갖게 된 이미지가 부정적이었다면 한국 콘텐츠가 지금처럼 지속적으로 성장세를 띠고 글로벌하게 발전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 경험한 이후 갖게 된 이미지가 긍정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한국 콘텐츠가 경쟁력 있는 양질의 즐거움을 선사했다는 의미라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 또한 존재한다. 이 경우 “한류스타의 부적절한 언행”(30.6%)과 “지나치게 상업적(26.3%)”이고 “지나치게 선정적”(24.4%)이라는 것이 부정적 인식의 원인으로 꼽혔는데 이 점에 유의해 중동 지역에 맞춘 콘텐츠 제작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과 대비해 가장 소비량이 늘어난 콘텐츠 분야는 바로 드라마(63.0%)다. 그 다음으로 높은 소비 증가율을 보인 콘텐츠는 음악(62.4%), 영화(60.4%), 예능(60.2%) 등의 순이다. 스태티스타 2018년 통계자료에 따르면 중동에서는 하루 평균 6시간20분 동안 TV 시청을 하는데 이는 전 세계 평균 시간인 2시간48분보다 2배 이상 긴 시청 시간이다. 중동의 방송 스트리밍 시장 규모는 2020년 기준 14억2천700만달러로 한국의 방송 스트리밍 전망치보다 2.8배 큰 규모를 자랑한다. 따라서 방송 스트리밍 시장에 있어 중동 지역은 매우 성장세가 크고 향후 잠재력 또한 무궁무진한 시장이라 할 수 있다. PWC에 따르면 최근 몇 년 동안 중동 지역에는 넷플릭스에서 스포티파이에 이르기까지 여러 스트리밍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진출했으며 더 많은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업체가 시장에 진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례로 유튜브는 2021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및 기타 5개 시장에서 유료 음악 및 프리미엄 서비스를 출시한 바 있다. 이 같은 중동의 현황은 한국의 콘텐츠가 활발하게 확산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있다. 특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더 글로리’는 아랍에미리트에서 2022년 TV 프로그램 1위를 기록한 바 있으며 ‘작은 아씨들’, ‘여신강림’ 등 다수의 한국 작품이 중동 전역에서 넷플릭스 상위권에 들며 한국 콘텐츠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 케이팝을 빼놓을 수 없는데 트위터에서 공식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케이팝 관련 트위터 해시태그가 2010년과 비교했을 때 10년이 지난 2020년,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수많은 게시글과 케이팝 관련 정보가 해시태그 및 리트윗을 통해 활발하게 생산되고 있다는 뜻인데, 특히 중동 지역에서 케이팝의 열기는 상당하다. 메가 이벤트인 카타르 월드컵 개막식에서 방탄소년단 정국이 카타르 월드컵 주제가 ‘드리머스(Dreamers)’를 부르며 개막식 무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중동 지역에서 한국 콘텐츠가 꽃을 피워 가고 있는 만큼 중동의 문화와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콘텐츠 산업으로 확장해 가야 할 때다.

[세계는 지금] 영국 음식이 맛없는 이유

영국 유학을 하다 보면 도대체 뭘 먹고 사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많은 분들이 영국 음식이 맛이 없다는 소문을 듣고 이렇게 걱정을 해준다. 고급스럽고 맛있는 음식에 대해 생각할 때 사람들은 프랑스와 이탈리아 요리를 많이 떠올릴 것이다. 반대로 맛없는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를 생각할 때 필자는 사람들이 1초의 고민도 없이 영국을 떠올릴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인식은 유럽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다. 인터넷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웃기는 짤’ 중에 영국 음식이 주제로 만들어진 것이 꽤 있다. 그중 ‘정어리 파이’라는 게 있는데 비주얼이 압도적이다. 여러 마리의 정어리 머리가 밖으로 나오게 파이에 꽂아 그대로 구운 음식이라 생선 머리가 노골적으로 사람을 쳐다보기 때문이다. 덕분에 한국 친구들이 이 정어리 파이 사진을 필자에게 보내주며 안부를 묻는다. 이 칼럼의 첫 부분에 언급된 질문에 대답을 하자면 필자는 주로 한식을 해 먹는다. 한식을 안 먹을 때는 파스타 같은 다른 외국 음식을 해 먹는다. 이건 필자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친구들과 무언가를 축하하기 위해 멋진 곳에서 좋은 식사를 계획할 때도 당연히 외국 음식을 생각한다. 영국 가정에서 가장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있는 음식도 파스타다. 웃기게도 영국 사람들도 영국 음식을 잘 해먹지 않는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분점을 가지고 있는 프랜차이즈 식당들도 다 다른 나라의 음식이다. 지금까지 언급된 이야기들은 매우 현실적인 영국의 식문화에 대한 인식과 일상이다. 영국의 명소나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영국적 요소들은 식민주의 시대에 영국이 식민지에서 뺏어 오거나 수입해온 문화와 문화재들이 대부분이다. 대영박물관 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과 미술관들과 식자재 같은 것들이다. 영국인들이 매일 마시는 차도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다. 이렇게 영국이 음식문화의 발달에 소홀했던 이유는 산업혁명의 영향이 크다.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산업혁명은 농산물의 생산보다는 기술 발달에 큰 중점을 두게 했다. 풍족하고 다양한 농산물을 생산하기에는 열악한 기후조건도 무시할 수 없다. 영국에서 살다 보면 계절에 상관없이 햇빛을 보기가 힘들고, 비가 오다가 바람도 불다가 결국 하루 안에 사계절을 다 겪게 된다. 그러다 보니 날씨가 좋은 날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모두가 밖에 나와 일광욕을 한다. 이러한 기후환경으로 인해 품질이 좋은 농산물을 생산하기 어려우니 나라를 대표할 만한 빵이나 와인조차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음식을 만들기도 어려운 환경에서 산업혁명으로 밤낮없이 일까지 해야 했으니 좋은 음식 문화를 만들기는커녕 끼니를 대충 때우고 일만 하기에도 벅찼을 것이다. 따라서 영국이 식민지를 만들고 플랜테이션 농업을 강행한 것은 영국 내에서 개선하기 어려운 기후환경과 농산물 문제를 식민지의 다른 환경과 노동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한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절대로 정당화할 수 없는 인류의 역사지만 말이다. 이러한 가운데도 영국을 대표하는 국민 음식들이 당연히 있다. 피시앤칩스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영국 음식으로 튀긴 대구와 감자튀김 요리다. 펍에서 자주 먹는 요리인데 맥주와 같이 먹으면 꽤 맛있다. 웃기게도 맛이 없기 힘들어 보이는 이 피시앤칩스도 의외로 맛없게 만드는 곳이 영국에 많다.  두 번째로 잘 알려진 음식은 선데이로스트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영국인들이 일요일에 즐기는 전통음식이다. 가장 전통적인 형태는 그레이비소스를 얹은 채소와 로스트비프, 그리고 요크셔푸딩으로 이뤄져 있다. 가정에서도 많이 만들어 먹지만 필자는 주로 친구들과 펍에서 먹는 편이다. 결론적으로는 이렇게 영국도 국민음식이 있긴 하지만 열악한 기후조건과 식민지 시대의 영향으로 인한 외국 음식문화 수입으로 현대 영국의 식문화는 그 음식의 근원지를 찾는 것이 의미가 없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인류가 세계화 시대에 진입하면서 그 영향이 더 커지는 듯하다. 음식이 문화의 다양성을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요소 중 하나라는 흥미로운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오늘 저녁은 친구와 선데이로스트를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세계는 지금] 이스라엘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최근 이스라엘 안팎이 혼란스럽다. 안으로는 라마단 달과 유월절이 겹치는 시기에 발생한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에서의 이스라엘 경찰과 무슬림의 충돌, 그리고 네타냐후 총리가 독단적으로 추진하는 사법개혁안을 둘러싼 야당, 시민단체, 군대 등 이스라엘 내부의 반대 시위 등으로 시끄럽고 밖으로는 알아크사 사원 충돌 문제로 주변 아랍국인 레바논과 시리아의 로켓포 보복 공격, 사법부를 무력화시키려는 사법개혁안에 대한 미국과 국제사회의 비난과 우려로 인해 이스라엘 안팎이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네타냐후 총리는 1996년부터 2021년 9월 총리직에서 물러나기까지 총15년간 총리직을 수행해 왔다. 다시 실권을 잡기 위해 작년 총선에서 우파 소수정당들과 손잡고 연정을 이뤄 의회 120석 중 64석을 얻어 총리직에 복귀한 후 추진한 것이 네타냐후법이라 불리는 사법개혁안이다. 서기 70년 로마의 예루살렘 공격으로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지는 디아스포라가 발생한다. 전 세계에서 핍박과 모욕의 세월을 견뎌온 유대인들은 1948년 5월14일 극적으로 지금 이스라엘 땅에 독립국가를 설립한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의 발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스라엘 건국 이전까지 팔레스타인이라는 아랍인과 소수의 유대인은 이 땅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살고 있었다. 그러나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선포는 아랍인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난민 신분으로 주변 아랍국으로 쫓겨나고 남아있는 팔레스타인인들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로 거주 지역이 제한돼 삶의 터전을 위협 받는 비극의 상황이 전개됐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3대 종교의 공동 성지로 국제법상으로 국제사회가 공동 관리하기로 약속된 도시다. 구약성경에 솔로몬왕이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세웠던 성전산이 위치한 곳이 예루살렘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후 부활하신 곳도 예루살렘이다.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아라비아반도 메카에서 천인마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날아와 하늘로 승천해 알라를 만난 장소 또한 예루살렘이다. 건국 당시부터 예루살렘을 자국 수도로 삼고자 했던 이스라엘의 강력한 의지와 언젠가 국가로 인정받게 되면 예루살렘은 당연히 자국의 수도가 돼야 한다는 팔레스타인의 오랜 의지는 예루살렘을 둘러싼 갈등과 분쟁의 도화선이 됐으며 폭력이 상시화되는 만성적 사회 갈등으로 고착된 중동 문제 중 가장 해결이 요원한 난제가 됐다. 극우 성향의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연정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우파 성향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스라엘 내에서 유대인 정착촌을 확대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입지를 최대한 축소시키겠다는 것이 이들의 정책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공존이 중동지역의 평화와 직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는 중동지역과 이슬람권의 정세에 오랫동안 구조적 변수로 작용해 왔다. 국제사회는 세계 평화를 위해 그동안 어떤 역할을 해왔을까? 중동지역의 평화를 바라는 진솔함이 있기는 한 것일까? 씁쓸한 마음이 교차하는 아침이다.

[세계는 지금]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그 이후

튀르키예와 시리아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지도 벌써 2개월이 넘었다. 2월6일 발생한 대지진 이후에도 두 번의 강진이 다시 발생했으며 9천여차례에 이르는 여진이 지속되고 있어 주민들은 여전히 심리적 공포 속에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달 15일에는 튀르키예 동남부 산리우르파와 아디야만주에서는 홍수까지 나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으며 지진 피해 이재민들의 임시주거지가 피해를 입었다. 현재까지 이번 지진으로 인한 양국의 사망자는 5만8천여명이며 부상자 수는 12만7천여명에 이른다. 이는 22만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이후 발생한 지구촌 최악의 지진으로 기록되고 있다. 튀르키예 재난관리청(AFAD) 발표에 따르면 이번 지진으로 아파트 52만채와 건물 17만여채가 붕괴되거나 부서진 피해를 당했다. 이로 인해 200만명이 넘는 국민들은 이재민 임시 정착촌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이 중 70%는 산발적으로 운영하는 비공식 정착촌에서 거주하고 있다. 임시 거주시설은 매우 과밀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비위생적인 생활환경으로 이재민들은 건강상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 레제프 아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최소 150억달러를 들여 1년 안에 주택 재건을 완료하겠다고 밝혔지만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라 발표를 신뢰하기 어렵다. 시리아의 경우에는 10만명 이상이 이재민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진 피해가 가장 심각한 북서부 지역은 정부의 지원이 미치지 않는 반군지역이라 체계적인 지원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현지 월드비전 구호사업 담당 직원의 보고에 의하면 가장 필요로 하는 도움은 이재민들이 머물 수 있는 안정적인 거주시설과 아동의 교육지원이다. 대지진 발생 이후에도 폭우와 푹풍이 수차례 발생해 30곳의 이재민 정착 지역의 임시 거주용 텐트 1천500여개 붕괴되거나 손상을 입는 등 추가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지진으로 이미 수많은 학교가 붕괴 및 손상을 입었으며 100개가 넘는 학교가 임시 거주지로 사용되고 있어 아동의 교육권도 심각히 침해 받고 있다. 월드비전은 초기 구호 단계에서 재난 복구 단계로 전략을 전환해 구호사업을 진행 중이다. 거주용 컨테이너, 텐트 등 비식량 물자 지원과 함께 안전한 식수 및 위생시설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또 아동의 교육권 보장을 위한 학교 시설 지원, 거주지 복귀 지원, 기초 보건시설 구축을 지원하고 있다. 긴급재난지원금과 바우처 지원을 통해 이재민들의 긴급한 생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으며 지진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주민들의 정신건강을 위한 심리정서 지원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이번 대지진의 영향을 받은 튀르키예와 시리아 국민은 2천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피해 지역이 광범위하고 피해 인원이 많다 보니 재난 복구 단계를 거쳐 도시 재건으로 이어지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6·25전쟁 당시 우리는 도왔던 형제 국가 튀르키예를 돕고자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심과 후원이 이어졌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이 조금씩 잊혀져 가는 이 시기에도 여전히 튀르키예와 시리아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다.

[세계는 지금] 영국과 한국의 정신 건강에 대한 인식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필자는 개인의 정신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익숙하지 않았다. 한국과 다른 동양 국가들은 대부분 개인의 심리적 어려움이나 고통을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힘든 사회적 분위기이고, 용기를 내 이야기를 했다 한들 이해 받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훗날 보험료 산정에 피해가 있을까봐 정신과 치료를 받지 못하게 하는 보험 컨설턴트도 흔하니 말이다.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이 고작 200년이 안 됐고, 2차세계대전 종식이 100년도 안 됐으니 인류의 심리치료 역사가 짧은 것은 이해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심리치료에 대해 활발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젊은 세대들이 나서 정신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어필하는 추세다. 영국의 다른 사회적 분위기를 체험하면서 정신건강 치료에 대해 한국이 억압적인 이유를 생각해봤다. 정신건강에 대한 폐쇄적 언어와 생각, 습관이 한국문화의 일부인 것처럼 돼버린 것은 몇 백 년의 세월 동안 세대를 거쳐 학습된 유교 관념이 제일 큰 이유일 것이다. 공자가 태어난 춘추시대의 중국은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공자가 처음으로 유교의 덕목을 창안한 목적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전쟁 없는 사회를 만들어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였다. 그래서 제시된 것이 ‘인(仁)’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덕적 마음을 학습시켜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전쟁의 시대가 끝나기를 소원한 것이다. 이러한 휴머니즘 사상으로 시작한 유교는 후대의 유교사상가들에 의해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체계와 서열에 순종하는 태도를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삼강오륜’ 같은 덕목들이다. 따라서 유교사상은 좋은 의도와 철학으로 시작된 것에 비해 어쩔 수 없이 다소 계급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의 의견이나 감정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어 정신건강까지 제대로 고려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유교가 상당히 여성차별적 요소를 가지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두 번째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6·25전쟁, 그리고 가난이라는 집단적 트라우마다. 6·25전쟁과 식민지 시대의 트라우마로 국민의 대부분은 아직도 ‘서바이벌 모드’로 살아가고 있다. 한국 특유의 이러한 생존 모드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지만 현대사회의 정신적 불안함과 끊임없는 경쟁사회를 만들어 어린이들부터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필자 또한 영국의 의료 시스템 아래에서 상담을 받아보면서 이곳 사람들은 우울증, 불안장애, 스트레스에 관한 대화를 자유롭게 하며 심리치료와 정신과 약 복용에 훨씬 접근이 쉽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것은 정부의 국민복지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개인이 정신적으로 이러한 체계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인식하지 않는다면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우리나라는 복지와 정책이 아무리 잘 구축돼 있어도 여전히 정신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개인이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의 사회다. 필자가 하고 싶은 말은, 영국이 월등한 나라라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먹고 살기에만 급급했던 ‘생존 모드’에서 벗어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한국의 이러한 사회적 생존모드는 과거의 큰 위기를 집단적 노력으로 다같이 이겨낸 초인적 힘이다. 그 위기를 이겨낸 이후에 그 생존모드에서 벗어나는 것 또한 엄청난 힘이 필요하다. 개인의 정신건강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약함의 증표가 아니라 바뀐 현대사회에서의 행복과 앞으로 나아감을 위한 발전의 증표다. 그러므로 정신이 아프면 자연스럽게 상담소나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정신장애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 친숙함과 접근성을 늘리는 것이 우리 국민의 행복과 발전을 위한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계는 지금] 무슬림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9월)을 가리킨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신의 계시를 받은 달이기 때문에 무슬림에게 라마단 달은 가장 성스러운 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슬람력은 음력과 같이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하는데 이슬람력에서 한 달은 29~30일이며 과거에는 사람이 직접 눈으로 초승달을 확인해 날짜를 계산했지만 현대에 와서는 천체망원경으로 초승달을 확인한다. 이슬람력은 윤달이 없어 태양을 기준으로 하는 현대의 서양식 달력과 비교했을 때 10일 정도 짧다. 따라서 매년 라마단은 대략 열흘씩 앞당겨 시작한다. 오늘날 무슬림 국가들은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모로코까지 지리적으로는 넓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국가별로 초승달 관측 시기가 달라 라마단 날짜가 조금씩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걸프협력회의(GCC) 국가의 무슬림들은 사우디의 최고사법평의회의 초승달 관측을 기준으로 라마단의 금식을 시작한다. 아랍어로 ‘타는 듯한 더위와 건조함’을 뜻하는 ‘라미다(ramida)’ 또는 ‘아라마드(ar-ramad)’에서 파생된 단어로 금식으로 인한 갈증과 고통을 의미한다. 우선 무슬림들은 낮 동안 금식을 하기 위해 해가 뜨기 전까지 간단한 아침식사 ‘수흐르(suhoor)’를 하고 해가 뜬 이후에는 해가 질 때까지 금식을 하며 해가 완전히 진 후에야 저녁식사 ‘이프타르(iftar)’를 한다. 또 라마단 기간 무슬림들은 신 알라와 더욱 깊은 관계를 맺기 위해 주변 사람들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자선을 한다. 음식뿐만 아니라 라마단 기간에는 흡연과 성행위 또한 금지되며 이를 통해 무슬림 신자들에게 인내심과 자제력을 가르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시선을 향하게 하고자 한다. 금식 또한 신에 대한 순종을 나타내는 행위인데 비(非)무슬림 입장에서 라마단의 단식이 비인간적이고 ‘박탈’의 시간으로 보일 수 있으나 이는 무슬림에게 금식이 가져오는 영적 성찰과 공동체를 위한 시간의 가치를 간과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라마단 기간은 신자들이 오롯이 자신의 신앙에 집중하고 종교적인 방식으로 이웃과 연결되는 기간으로 존중돼야 한다. 라마단 기간에는 무슬림이 아닌 외국인이어도 금식하는 사람 앞에서 먹거나 마시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각국의 주요 언론 매체를 통해 단식의 시작과 끝을 알리기 위해 일몰, 일출 시간을 중요하게 다룬다. 라마단 이후 휴일이자 축제의 기간인 ‘이드 알 피트르(Eid al Fitr)’는 한 달 동안 단식을 하고 기도를 올린 무슬림들을 위한 축제를 즐긴다. 이드 알 피트르는 ‘단식을 깨는 축제’를 의미하는데 라마단 못지않게 중요한 기간이다. 이드 알 피트르 동안에는 무슬림이 함께 무사히 라마단 달을 보낸 것을 기념하며 가까운 사람들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중동(이슬람 국가)과의 비즈니스를 계획하고 있다면 무슬림 국가들의 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필수불가결하다. 라마단부터 이드까지 비즈니스 소통이 늦어지거나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점을 충분히 고려해 접근하기 바란다.

[세계는 지금] 사우디-이란 베이징 합의와 중동의 역학구도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발표된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는 혼란했던 중동 정세의 안정이라는 희망적 서사를 가져옴과 함께 중동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오랫동안 중동의 앙숙으로 갈등과 견제의 대상이 돼왔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 이념을 주변국으로 확산시키려는 이란의 움직임을 사우디 등 수니파 왕정 국가들이 심각한 체제 위협으로 간주했고, 2016년 사우디가 반정부 시아파 성직자 셰이크 니므르 바크르 알-니므르를 비롯한 4명의 시아파 주요 인사를 테러혐의로 처형한 뒤, 분노한 이란 시위대가 주이란 사우디 대사관을 습격한 직후 사우디는 이란과의 단교를 선언했다. 이후 최근까지 양국은 서로를 중동 지역 내에서 가장 위협적인 세력으로 규정하는 등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렇다면 급작스러운 사우디-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의 배경은 무엇일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국가개혁프로젝트인 ‘사우디 비전2030’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국내외 위협요소의 제거가 전제돼야 한다. 빈 살만의 확고한 영향력 안에서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되는 사우디 국내 상황과는 달리 가장 큰 외부적 위협의 핵심인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는 ‘사우디비전2030’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한편 2018년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 이후 더욱 악화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이란의 입장에서는 이슬람 혁명 확산을 통한 중동지역 패권 확보 전략을 잠시 유보하고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실질적 경제이익을 택한 것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는 중동 지역과 미-중 관계의 역학구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베이징 합의 이후 사우디는 10년 넘게 단절했던 시아파인 알라위파가 통치하고 있는 시리아와의 관계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의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가 아랍 국가들 간에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고 있는 점이 시리아와의 관계 회복을 앞당긴 요인이다. 베이징 합의로 가장 큰 수혜를 본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번 베이징 합의로 중동 인프라 투자와 개발 진출의 확대와 함께 중동 석유와 가스의 안정적 구매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중동 관여를 줄이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자 추진 중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에 큰 충격과 부담을 안겨줌으로써 중동지역 내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가 갖는 함의를 통해 복잡하게 얽힌 중동지역 내 역학구도의 변화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할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우크라이나 분쟁 1년, 도움의 손길 여전히 필요

우크라이나 분쟁이 시작된 지 벌써 1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난 1년간 정든 고향을 떠나 루마니아, 폴란드, 몰도바 등 유럽으로 떠난 우크라이나 난민 수는 약 800만명에 이르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국내에서도 약 560만명에 달하는 실향민이 발생했다. 분쟁이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에서는 하루 평균 50명이 넘는 민간인 사상자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 분쟁이 장기화되며 우크라이나에서는 식량, 물, 위생, 주거 등 생활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요소들이 매우 취약한 상태이며 전력시설 파괴로 인해 겨울 기간 생존에 대한 위협이 증가해 자국을 탈출하는 난민 수가 증가했다. 우크라이나 국민 약 1천700만명이 긴급한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에서도 더 위협적이며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는 대상은 아동들이다. 월드비전에서는 이번 분쟁이 우크라이나 아동들에게 미치는 심리정서적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분쟁지역 아동 457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대상 아동의 83%는 자신의 안전에 대해 극도의 불안감을 나타냈으며 3명 중 1명 이상은 폭력을 가장 큰 불안의 요인이라고 꼽았다. 분쟁 중 경험하게 된 폭력, 박탈, 사망, 이주, 가족 분리 등은 아동들에게 심리정서적으로 매우 심각한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우울증, 불안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정신질환을 겪게 될 위험에 놓인 우크라이나 아동이 약 15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동의 교육권 침해도 심각한 문제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2천528개의 교육시설이 분쟁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실시간 수업 진행도 어려운 실정이다. 이웃 국가에서 난민생활을 하고 있는 아동들은 언어 등의 문제로 현지 학교의 교육 지원도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아동의 학업 중단 문제는 아동 발달에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정규 교육과정에서 배제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원래 교육 수준 상태로 회복할 가능성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월드비전은 지난해 2월 위기 발생 직후부터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접경 국가인 루마니아, 몰도바, 조지아에서 아동과 가족을 지원하는 구호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 1월 기준 총 65만6천여명에게 식량, 임시 거주지, 교육프로그램, 아동보호프로그램 등을 지원했다. 우크라이나 헤르손 등의 지역에서는 현지 파트너 기관과 협력해 아동들에게 심리사회적 지원과 안전한 공간을 제공하고 식량, 위생용품, 난방 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원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분쟁을 경험한 아동들이 신체적·정신적으로 온전히 건강을 회복하는 데에는 많은 자원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크라이나 분쟁이 언제 종식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아동들이 입을 피해는 앞으로 더욱더 커질 것이다. 분쟁이 종식돼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올 수 있도록 국제적인 연대가 강화돼야 하며 취약한 상황에 처한 아동들을 돕기 위한 우리의 관심과 지원도 계속돼야 한다.

[세계는 지금] 식민주의가 미치는 영향과 영국의 인식

콜럼버스가 쏘아 올린 신대륙 발견이라는 작은 공이 현대 인류와 역사에까지 연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평소에 인식하고 있을까. 유럽인들이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면서 16세기부터 시작된 식민주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과거에 머물러 있는 역사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은 현대인으로서, 특히 한국인으로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앞서 언급한 콜럼버스의 신항로 개척은 스페인을 시작으로 17세기 영국과 프랑스까지 식민화를 본격적으로 개시할 수 있도록 초석을 깔아준 역사적 사건이다.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 북아메리카 지역을 정복한 것에 잇따라, 특히 1780년대에는 영국인이 인도 전체를 식민지화해 유럽의 산업혁명을 발전시켰다. 이렇게 식민화를 통해 강대국으로 성장하던 영국은 19세기에 빠른 속도로 아프리카 지역까지 식민지화해 신제국주의의 화룡점정을 찍었다. 놀라운 경제적 성장을 이룬 당시 영국은 런던 항구에 전 세계의 물자를 가득 채운 선박과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에서 팔려온 노예들이 상품처럼 줄을 이었고 세계에는 제국주의를 정당화하는 사상이 만연했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서구식 근대화를 이루고 있던 일본은 이를 선망해 영국처럼 제국주의를 토대로 동아시아의 나라들을 닥치는 대로 정복하며 ‘동양의 떠오르는 태양’이라는 꿈을 이루고 싶어 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세계는 지배 국가들의 속국 투성이었다. 이러한 인류의 식민주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고 1900년대 중반까지도 끝까지 식민지를 내놓지 않으려 했던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등의 나라로 인해 장기간의 식민지 해방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인류의 끔찍한 역사의 잔재는 지금도 현대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표면적으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현상은 아직까지 뿌리 깊이 존재하는 인종차별주의와 외국인 차별 같은 사회적 불평등, 그리고 해방 이후로도 가난함을 벗어나기 힘들어 아무리 노력해 봤자 현실적으로 국가의 독립성을 여전히 얻기 힘든 전 식민지 국가들이다. 오히려 식민지 해방 이후 과거 제국주의로 빠른 경제적 성장을 이룬 나라들과 제3세계 국가 간의 빈부 격차가 더 심해졌을 뿐이다. 우리나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며 전 식민지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문화적, 경제적 성장을 달성했지만 언어 습관에서 여전히 일제의 잔재를 볼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기후변화나 지구온난화 같은 현재 인류세의 가장 큰 전 지구적 문제에 가장 많은 기여를 한 나라들은 대부분이 식민지 개척자들이지만 이의 후폭풍은 제3세계 나라들이 그대로 직면하고 있다. 제국주의는 환경에도 큰 영향을 준 것이다. 인정하기 싫지만 사람들의 보통 현재 세계에 대한 인식과 역사, 학문까지도 유럽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이러한 제국주의의 잔재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대한 현대 영국의 인식은 각양각색인데, 하나는 ‘좋았던 날’을 회상하며 과거를 찬미하는 시각과 또 하나는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고 지속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의 시각이다. 영국의 현대 교육은 후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많은 이슈를 파보면 파볼수록 제국주의의 영향이 뿌리 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실제로 다양한 과목에서 이러한 교육에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나는 과거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란 유학생으로서 이러한 영국의 고등교육을 경험해 나가는 과정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의 폭이 넓혀짐을 느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학살과 피로 얼룩진 시신들을 밟고 높게 서 있는 과거 지배자들인 ‘선진 국가’들을 향한 동경과 유럽 중심적 세뇌를 멈추고 진정으로 제국주의의 잔재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는 것일까. 이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식민주의가 이미 끝난 머나먼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이러한 비극적인 역사가 현대 사회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세계는 지금] 게임 강국을 꿈꾸는 사우디아라비아

올해 9월에 열리는 항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최초로 채택​됐다. e스포츠는 일반적인 스포츠와 달리 육체적인 능력보다는 정신적인 능력을 위주로 펼쳐 나가기 때문에 정신스포츠(멘털스포츠)로 분류되며 컴퓨터·비디오 게임을 통해 경쟁하는 스포츠 개념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게임 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고 프로게이머가 등장하면서 이전에는 게임을 단순 오락으로 치부하며 부정적이던 사회적 인식이 점차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오늘날 게임 분야는 유망한 신산업 중 하나로 e스포츠라는 장르가 탄생하게 됐다. e스포츠는 비디오 게임을 통해 이뤄지는 스포츠를 일컫는 말이다. e스포츠(전자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의 정의에 의하면 ‘게임물을 매개(媒介)로 하여 사람과 사람 간에 기록 또는 승부를 겨루는 경기 및 부대활동’을 말한다. e스포츠 산업은 2016년부터 매년 꾸준히 팬 층이 증가하며 그 열기가 나날이 뜨거워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e스포츠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며 향후 게임 강국을 꿈꾸는 나라가 있는데 바로 사우디아라비아다. ​◆ 사우디 국부펀드(PIF)의 e스포츠 투자 지난해 1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는 산하에 사비게임스그룹(이하 사비)을 신설, 독일 e스포츠 제작 회사인 ESL게이밍과 영국의 e스포츠 플랫폼인 FACEIT를 인수하고 본격적으로 게임 산업에 뛰어들었다. PIF는 일본의 캡콤과 넥슨의 지분을 인수하고 미국의 게임 회사 세 곳(일렉트로닉아츠, 테이크투인터랙티브소프트웨어, 액티비전블리자드)의 지분도 보유하게 됐다. 사비는 앞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250개의 게임 회사를 설립하고 3만9천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또 사비는 이를 통해 자국 국내총생산(GDP)에 대한 기여도를 500억리얄(약 19조원)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 사우디 e스포츠 시장에 대한 전망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보고서에 따르면 사우디 e스포츠 시장은 2021년에 10억달러에 달했고 2030년까지 68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동 지역에서 가장 큰 시장을 보유한 사우디는 걸프만의 게임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는데 물론 사우디가 넘어야 할 몇 가지 산이 있기도 하다. 다른 국제 시장에 비해 아직은 사우디의 게임 산업이 초기 개발 단계에 놓였기 때문에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할 필요가 있고 사우디 내에서는 게이머가 프로게이머로 성장하기 위한 뚜렷한 경로가 아직 없으므로 게이머가 경력을 쌓을 수 있고 공정한 경쟁이 진행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디가 가진 잠재력은 막강하다. 아랍에미리트(UAE)와 이집트는 2021년에 게임 산업을 통해 각각 5억2천만달러, 1억7천200만달러의 수익을 달성하며 사우디 다음으로 활발하게 게임 시장을 확대하고 있는데 현재 시장 규모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압도적이다. 세 국가의 시장 규모에서 사우디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8.7%에 달한다. 게이머 수는 이집트가 58.2%의 비중을 차지하며 사우디보다 많지만 현재 사우디 국부펀드 PIF가 게임 산업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사우디의 시장경쟁력은 중동 지역에서 1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젊은 연령의 인구가 많고 직업에 대한 수요가 막대한 국가다. 그렇기에 다양한 문화적·산업적 접근을 요하며 이제는 대한민국과 사우디아라비아가 동반 성장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가야 할 때다.

[세계는 지금] 중동 메가이벤트 사각지대, 인권을 생각하다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의 짧은 방한과 대한민국 8대 대기업 총수와의 만남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과 긴 여운을 남겼다. 사우디아라비아의 38세 젊은 개혁가가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메가 이벤트 ‘네옴시티’ 프로젝트는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사업이 됐다. 100% 신재생에너지로 운영되는 친환경 도시 ‘더라인’은 사막 한가운데 미래 도시 건설이라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의 이미지로 많은 한국 기업들을 ‘제2의 중동붐’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에 들뜨게 만들었다. 때맞춰 월드컵 사상 최초로 중동에서 개최된 2022 카타르 월드컵은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 3위, 원유 매장량 14위의 에너지 부국 카타르의 국가 이미지 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경제 메가 이벤트 추진과 더불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는 국제 스포츠 메가 이벤트 유치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2029년 동계아시아경기를 유치했고 2030년 월드컵 유치전에도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오는 7월 개막하는 2023년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 ‘Visit Saudi’라는 브랜드를 통해 아디다스, 코카콜라 등과 함께 후원사로 참여한다고 국제축구연맹(FIFA)이 발표했다. 2022년에는 천문학적 돈으로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상금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신생 골프리그 LIV투어를 출범시키면서 골프계를 흔들었고 세계적 축구선수 호날두를 사우디 알나스르팀에 영입함으로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제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 등 중동 산유국에 대한 소식은 한국 기업뿐 아니라 전 세계 기업의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부펀드(PIF), 신재생에너지의 가능성, 정보기술(IT)과 게임산업에 대한 전망, 문화산업과 관광산업 육성 등 사우디아라비아가 내놓는 정책 하나하나에 관련 업계가 귀를 기울이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를 필두로 중동 국가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진출 러시는 이미 시작됐다. 마치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골드러시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명과 암이 있는 법,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메가 이벤트 추진의 화려한 이면에는 인권이라는 어두운 그늘이 자리 잡고 있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 유치를 통한 ‘스포츠 워싱’에 대한 비판이 있고 카타르 월드컵 준비 과정에서 이주노동자 인권 탄압과 성소수자 문제 등이 심각하게 제기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 운전 허용, 마흐람(남성 후견인) 제도 폐지와 공공 장소에서 남성과 여성 성별 분리 제한 완화 등의 파격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들 국가 내부의 인권 현실은 여전히 척박한 상황이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억압과 불관용, 여성에 대한 인권 침해는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변하지 않는 한, 이들 국가가 보여주고 있는 ‘개혁’과 ‘긍정적 변화’는 공허한 울림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어두운 현실인 것이다.

[세계는 지금] 떠오르는 IT 시장 ‘중동’

중동이 중요한 정보기술(IT) 시장이자 허브로 부상하고 있는 배경에는 중동의 평균 연령이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인 25세 이하이며 대다수 인구가 신기술과 스마트 기기 사용에 적극적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중동의 젊은 인구는 IT 산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해 아랍에미리트 전체 인구의 87%가 유튜브를, 81%는 페이스북을 사용 중이며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왓츠앱(87%), 인스타그램(78%), 트위터(71%) 등 소셜미디어 플랫폼의 이용률이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작년 중동 국가의 IT 관련 예산 규모는 총 133억달러였고 2021년 대비 IT 서비스(9.6%)와 소프트웨어(8.0%) 부문에서 예산이 증가했다. 중동은 국가 차원에서 교육, 물류, 헬스케어, 공공 영역 등 사실상 분야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 중이기 때문에 향후 IT 분야는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중동에서는 IT 산업과 관련된 국제 전시회 및 포럼을 매년 개최하고 있는데 국제 전시 등을 통해 IT 관련 최신 기술을 소개하고 자국의 IT 산업을 홍보하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아랍에미리트(GITEX), 사우디(LEAP, BIBAN), 이집트(Cairo ICT), 터키(Mobile Fest)가 있다. 중동 정보통신기술(ICT) 시장을 견인하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IT 및 통신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우디 통신정보기술부는 향후 2만5천개의 ICT 관련 직업을 창출하고 IT 기술 시장의 크기를 50% 증대시키기 위해 기술 개발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2019~2023년 ICT 전략을 도입한 바 있다. 지난해 사우디의 ICT 시장 규모는 334억3천만달러였고 올해에는 5.6%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전 2030과 네옴시티 등 정부 주도의 거대 프로젝트는 모두 ICT 기술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앞으로 이 시장의 발전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사우디 정부는 2030년까지 전 세계 인공지능(AI) 분야에서 국가 순위 15위 진입을 목표로 데이터·AI 국가 전략을 수립했고, 전략의 일환으로 글로벌 기업과의 기술협력 및 정부 투자 확대를 추진 중이다. 사우디의 네옴시티 건설이 대표적인 AI 기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네옴 프로젝트는 서울의 44배 면적에 AI 및 IT 첨단기술을 포함해 5천억달러가 넘는 자금을 투입해 세계 최대의 인공 스마트 시티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랍에미리트의 경우 2017년 ‘UAE AI 전략 2031’을 발표한 이래 다양한 산업에 AI 기술을 도입해 비용을 최대 50% 절감하고자 관련 법을 제정하고 AI 기업을 유치·육성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 중이다. 아랍에미리트는 AI 기술이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의 약 14%(960억달러)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으며 이미 교육, 의료, 우주, 운송 및 항공 산업에 AI 기술을 활발하게 적용하고 있다. 특히 AI 기술을 활용해 2030년까지 전체 차량의 25%를 자율주행차량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현재 실행 중이다.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두바이 인터넷 시티(1999년), 두바이 실리콘 오아시스(2005년) 자유무역지대를 설립해 ICT 산업을 전문으로 하는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 또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산업 클러스터를 통해 강화되고 있는 IT 분야는 클라우드 컴퓨팅 분야로 2026년까지 최대 10억달러의 추가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또 아랍에미리트는 에너지, 석유 및 가스, 항공 산업에 있어서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만큼 사이버 공격으로부터 산업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핵심이다. 따라서 사이버 보안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중동 주요국에서 IT 기술이 적용되고 확장되고 있는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제2의 중동 붐이 일어 의미있는 협업의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길 바란다.

[세계는 지금]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피해와 긴급구호사업

튀르키예와 시리아 대지진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양국의 사망자 수가 13일 기준으로 3만명에 달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 사망자가 10만명을 넘길 확률이 26%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이는 지진 직후 0%에서 전망치가 계속 오르는 있는 상황이다. 월드비전은 지진이 발생한 당일, 카테고리 III 대응을 선포하고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긴급 구호활동을 시작했다. 카테고리 III는 월드비전의 가장 높은 재난대응 단계로 전 세계 월드비전 파트너십이 이번 재난에 공동 대응해 전체 이재민 인구 중 10% 지원을 목표로 구호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초기 긴급구호 단계로 인명 피해가 더 이상 확대되지 않도록 임시거주시설, 식량, 의약품, 난방용품 등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구호사업 상황을 보면 튀르키예는 각국 정부와 비정부기구(NGO) 단체 등의 지원이 정부 통제하에 진행되고 있지만 시리아의 상황은 이와는 다르다. 시리아는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알 아샤드 정권과 반군 간의 내전이 12년간 진행 중인 국가다. 오랜 내전으로 인해 약 680만명이나 되는 난민이 발생했으며 반군이 장악한 시리아 북서부 지역은 지진 발생 전부터 이미 기초보건 및 의료 서비스가 붕괴된 상태였다. 시리아 전체 인구의 67%가 인도적 지원을 필요로 할 정도로 매우 열악한 국가적 상황 속에서 이번 지진 피해를 입게 됐다. 시리아 정부는 지진 발생 후 “시리아에 대한 구호는 시리아 정부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발표한 후 반군 피해 지역으로의 인도적 구호 물자 이동을 정부가 통제하고 있다. 지진이 발생한 지 3일이 지난 후에야 인도적 지원 경로를 통한 구호 물자가 수송될 정도로 시리아 북서부 지역에 대한 지원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시리아 북서부 지역에 대한 구호를 확대하기 위해 튀르키예를 통하는 구호 통로를 추가하는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의 반대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시리아 지역의 아동 보호 문제도 크게 대두되고 있다. 오랜 기간 내전을 겪으며 고통 받고 있던 아동들은 이번 지진으로 인해 더욱더 취약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아동들이 집을 잃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중 일부 아동들은 보호자의 사망 등으로 보호자와 분리돼 착취와 학대의 위험성에 놓여 있다. 또 저체온증, 수인성 질병 등 다양한 위험에 노출돼 있어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한국 정부는 초기 500만달러 규모의 인도적 지원 제공과 역대 최대 규모의 긴급구호대를 현지에 파견해 지진 피해를 돕고 있다. 민간단체를 통한 기부금 모금과 지원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초기에 인명 구조 및 이재민 보호에 지원이 집중되고 있다면 향후에는 도시 재건 사업과 재난 예방 등 장기적 계획으로 구호 사업이 전개된다. 피해 국가의 온전한 회복을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보내고 있는 관심과 지원이 장기적으로 지속돼야 한다.

[세계는 지금] 영국의 파업

지난 겨울부터 영국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파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번 파업은 교사와 공무원, 박물관 직원, 철도 기관사와 버스운전사, 간호사 등 50만명이 넘는 공공 부문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엄청난 규모의 파업이다. 이같이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나선 이유는 지금 영국이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난과 물가로 인한 생활고 때문이다. 그러나 노조의 요구대로 임금을 올리면 인플레이션이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로 수낵 총리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대규모 파업의 파도에 당연히 대학 노조도 빠질 수 없다. 필자는 영국의 대학에 입학해 1학년을 시작했을 때부터 매년 강사들과 학교 직원들의 파업을 경험해 왔다. 필자의 영국인 친구들의 의견을 토대로 파업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생각이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임기 끝 무렵부터 긍정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한 번 시작하면 많은 사람들이 피해 아닌 피해를 입게 되는 파업이라는 특성 때문에 보수당, 노동당 관계없이 일단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보수당을 지지하는 베이비붐 세대는 원래 노동자들의 파업에 부정적인 의견들이 많았지만 국민들이 팬데믹이라는 혼란의 시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바뀌어 지금은 보수당 지지자들도 노동당과 파업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번 영국의 대규모 파업은 전역의 대학 교직원 7만여명이 참여하며 전례 없는 대학노조 파업 규모를 달성했다. 필자의 학교 또한 곧 있을 파업으로 인한 수업 취소에 관한 정보를 발표했다. 대학이 파업으로 수업 취소하면 학생들이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유학생들은 보통 자국 학생들보다 두 배가 넘는 학비를 지불하기에 강사들은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인종과 성별에 따른 임금 불평등과 불안정한 교직원의 계약 구조 등 자신들이 파업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며 학생들과 미팅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전에는 학생들의 불만이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이번 파업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오히려 지지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나 또한 노동자로서 매우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며 일했던 경험이 있기에 예전보다는 대학 강사들의 파업에 지지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영국에서 산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라도 파업을 필연적으로 자주 겪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필자는 파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최근에 와서야 가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노조의 파업에 대한 영국 국민 및 정부 정서와 그 발전 과정을 볼 수 있었고, 나는 우리 정부가 파업 자체를 재앙이나 불법이라고 눈치 주는 분위기의 사회를 조성해 왔다는 사실과 나조차도 그런 사회에 적응해 있었다는 것을 자각했다. 어쩌면 파업은 우리의 삶에 있어 꼭 필요하지만 평소에 자각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부재로 그들의 중요성을 알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자유로운 영국이라도 노조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불편함’이 아니라 결국 너무도 중요한 인권의 문제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노조관도 시대에 발맞춰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세계는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와 국부펀드

중동 지역 주요 국부펀드로 사우디아라비아의 PIF 및 중앙은행 SAMA 외에도 카타르 투자청(QIA)과 쿠웨이트 투자청(KIA), 아랍에미리트의 무바달라 투자회사와 아부다비 투자청(ADIA) 등을 꼽을 수 있다. ■ 사우디 국부펀드 PIF 1971년 국왕령으로 설립된 PIF는 1953년 설립된 쿠웨이트 투자청과 함께 걸프 지역 내에서 가장 오래된 국부펀드다. 그러나 PIF가 처음부터 사우디 정부의 글로벌 투자기관의 역할을 했던 것은 아니다. 설립된 이래 수십년간 PIF는 사우디 정부의 사우디 공기업에 대한 정부 소유 지분의 지주회사로서만 존재했기 때문이다. PIF의 역할이 점차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살만 국왕 즉위 직후, 2015년 PIF의 관할 기관이 바뀌면서부터다. 기존에는 재무부에서 관리해 왔으나 2015년 3월 각료 이사회의 결정으로 무함마드 왕세자가 지휘하는 경제개발위원회(CEA) 산하로 옮겨지면서 PIF에는 보다 큰 자율성과 국가적 책임이 주어졌다. 본격적으로 PIF가 사우디 정부의 글로벌 투자기관으로 변화한 것이다. PIF는 최근 몇 년간 미래형 첨단기술 분야에 매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를 비롯해 우버, 테슬라, 버진갤럭틱, 루시드모터스 등 주요 기업에 투자하며 아부다비 및 쿠웨이트에 이어 걸프의 중추적인 국부펀드로서 주목받은 바 있다. PIF는 세계 10위 안에 드는 국부펀드로 운용 자산 규모가 6천200억달러(약 760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일본 증시에 상장한 넥슨 지분을 매입해 지분 9.14%로 2대 주주가 됐고 엔씨소프트의 2대 주주(9.26%)로 올라서기도 했다. 두 회사에 투자한 금액만 약 3조원에 이른다. ■ 사우디 국부펀드의 자회사 PIF Jada PIF Jada는 사우디 공공투자기금(PIF)이 전액 출자한 자회사다. 이는 사우디 빈 살만 왕세자가 주도하는 공공 투자기금으로 벤처캐피털과 사모펀드의 생태계 촉진과 혁신산업 및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경제 다각화를 지원하고 있다. 현재 Jada는 정보기술(IT), 금융, 게임, 부동산 등의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최근 중동 투자사들과 대한민국의 교류가 활발하다. PIF Jada와 SVC 모두 대한민국의 게임과 이커머스, 인공지능(AI) 분야를 비롯해 스타트업 기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PIF는 지난해 7월 국내 게임 디자인 및 개발 스튜디오인 시프트업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이는 지금까지 대형 상장사 위주로 투자한 것에서 나아가 유니콘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까지도 탐방에 나선 것이라 볼 수 있다. 최근 자본시장이 얼어붙으며 투자금을 찾지 못했던 스타트업 기업에 투자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앞으로 중동 투자사들에 맞춰 대한민국 유망 기업들이 전략적인 해외 투자 유치를 준비해 세계로 뻗어나가기를 응원한다.

[세계는 지금] 중동외교와 서희의 전략

외교란 국가의 이익을 위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과거 정치, 경제, 군사 분야 등에 한정돼 있던 외교의 영역이 문화, 예술을 포함한 국민 생활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외교의 딜레마는 나라별로 상이한 외교환경이 존재하고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시각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오늘날 한국의 외교안보 환경은 한반도, 동북아, 세계 차원의 각종 전통, 비전통, 신흥 안보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해 그 파괴력이 가중되는 ‘퍼펙트 스톰’의 상황에 있어 한국의 평화, 안보, 번영, 국익을 크게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강대국의 이해가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와 더불어 안전, 평화 등이 국제관계에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아울러 해외에서 대부분의 에너지 자원과 물자를 수입해 우리의 지식과 노동력, 기술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특수한 구조를 갖고 있는 나라다. 그만큼 국제관계와 외교력의 중요성은 더욱 배가되는 것이다. 최근 한국 외교 전략에 대한 필요가 증가하게 된 배경에는 2019년 한국이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에 진입함에 따라 중견국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인식하게 되면서 점차 ‘한국적’ 외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고, 세계화의 진전과 더불어 외교 대상국이 늘고 외교 사안이 복잡해지면서 한국이 독자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외교안보 업무가 급증해 외교 분야에서 전략적 사고, 문제 해결 역량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기묘년 새해를 맞아 ‘아랍에미리트의 적은 이란이다’라는 대통령의 발언이 정계와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주요 20개국(G20) 회원국인 한국의 국제 역량은 이미 세계적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중동지역에서 한국의 위상과 입지는 정치, 경제, 문화 분야와 더불어 외교적으로도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중동의 산유국이자 에너지 부국인 아랍에미리트와 이란은 한국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파트너이자 동맹국이다. 특히 서방의 경제 제재로 난관에 봉착해 있는 이란은 중동지역에서도 정치, 외교, 경제적으로 잠재력이 상당히 큰 나라다. 변동성이 높고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중동지역의 정세는 더 이상 ‘아랍국가와 이란은 적’이라는 이분법적이고 단선적인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변화했다. 적대국이었던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모로코 등 아랍국가들이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머지않아 아랍국가의 수장인 사우디아라비아도 이에 동참할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 상황을 접하며 급변하는 중동지역에 대한 우리 정부의 분석적이고 통시적인 전략적 사고와 전략외교에 대한 아쉬움을 절감한다. 동시에 외교 담판으로 거란의 위협으로부터 오히려 강동 6주를 획득한 고려시대 서희의 전략적 지혜가 생각나는 시점이다.

[세계는 지금] 카타르와 스타트업

2022 카타르 월드컵이 끝났다. 이로써 카타르는 중동지역 최초의 월드컵을 치른 국가가 됐다. 카타르 월드컵 종료 후 포스트 오일 시대를 대비한 카타르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는 시점이다. 카타르 국영 은행인 QNB는 카타르 최초의 상업 은행으로 설립됐는데 현재 카타르에서 가장 큰 은행이자 중동 및 아프리카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금융기관 중 하나다. 2013년 QNB그룹은 이집트에서 두 번째로 큰 민간 은행인 QNB 아흘리를 인수했고 2016년에는 터키 파이낸스뱅크 AŞ의 지분 99.88%를 인수했다. 또 토고에 본사를 둔 범아프리카 은행인 에코뱅크의 지분 20%, 요르단에 본사를 둔 HBTF, 아랍에미리트(UAE)에 본사를 둔 CBI의 지분 40%를 인수하는 등 적극적인 글로벌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는 네트워크 확장을 통해 중동, 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에서도 영향력을 미치는 글로벌 금융 플랫폼이 되겠다는 그룹의 비전을 위한 실행이다. 이 외에도 홍콩, 인도, 베트남 등에 지사를 세우기도 했다. 그룹은 자회사이자 투자사인 QNB 캐피털을 통해 카타르 및 글로벌 기업에 다양한 투자를 하고 있다. QNB 캐피털은 걸프협력회의(GCC) 지역에서 전문적인 기업 재무팀을 보유하고 인수합병, 주식 및 부채 자본 시장, 프로젝트파이낸싱 등의 자문 서비스를 하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QNB그룹은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으며 글로벌 네트워킹, 스포츠 이벤트 후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번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QNB도 월드컵 관련 서비스를 선보인 바 있다.  QBIC는 카타르의 스타트업 지원과 기업 성장을 돕는 비즈니스 인큐베이션 센터다. 성장잠재력이 높은 스타트업 기업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QBIC는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창업가가 회사를 시작하고 성장시킬 수 있도록 지원한다. 스타트업 기업의 지원부터 기업 성장, 제조 관련 프로그램, 코칭 프로그램, 파트너를 찾아주는 프로그램 등 기업의 성장 단계에 맞춰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또 다양한 분야의 전문 엑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이 있는데 첫 번째는 카타르 관광청(QTA)과 함께하는 QBIC 관광 섹터다. 관광업 관련 비즈니스 아이디어를 관광상품 또는 서비스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두 번째는 디지털 앤드 비욘드 섹터다. 카타르에 기반을 둔 유망한 기술 중심 신생 기업 및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전문 인큐베이터다. 카타르의 차세대 혁신 비즈니스가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전반적인 서포트와 자금 지원 솔루션을 통해 카타르에 성공 사례를 유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카타르 내에서 제품을 제조하기 위해 노력하는 혁신적인 기업가를 지원하는 전문 제조 및 산업 인큐베이터다. 솔루션에는 교육 프로그램, 신생 기업을 위한 산업 워크숍, 식음료를 포함한 다양한 산업에 적합한 제조 시설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전문적인 지원 외에도 인큐베이터는 기업이 스스로 자리를 잡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또 멘토링 및 코칭을 통해 스타트업에 성장과 성공을 위한 지침을 제공하기도 한다. 카타르는 막대한 자본은 있지만 기술 기반이 부족한 국가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기업에는 매우 중요한 협력 포인트가 될 것이라 본다. 중동에 대한 흥미 위주의 관심보다는 보다 현실적인 대응 전략에 따른 장기적인 협력을 권한다. 사실 비즈니스 측면으로 봤을 때도 중동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지금] 아프가니스탄에서의 NGO 여성 활동 금지조치와 구호사업

2009년 영국 BBC에서는 탈레반에 억압당하는 파키스탄 주민들의 이야기를 글로 써줄 현지인을 찾고 있었다. 당시 탈레반은 9·11테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축출된 후 이웃 나라인 파키스탄 북서부로 본거지를 옮겨 지역주민들을 억압하고 있던 시기였다. 탈레반의 위협에 누구 하나 글을 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지만 11세의 어린 소녀 말라라 유사프자이는 용기 있게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말라라는 BBC 블로그에 3개월 동안 ‘파키스탄 여학생의 일기’라는 글을 연재하며 열악한 여성의 인권 문제를 알렸으며, 이로 인해 중동지역 여성 인권 문제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말라라는 2012년 탈레반의 총격으로 머리와 목에 관통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진다. 말라라는 열다섯 살에 유엔 총회에 나서 전 세계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이 배움의 권리를 누리게 해달라고 호소했고 이듬해 그녀는 최연소 노벨평화상을 받는다. 2021년 8월 미군 철수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에는 탈레반이 20년 만에 재집권했다. 이슬람근본주의 집단인 탈레반이 재집권할 당시에는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탈레반 내 강경파들에 의해 여성의 교육 등 인권 문제는 점점 더 열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대부분의 중등학교는 여학생을 받지 않고 있으며 지난해 12월부터는 여성의 대학 교육까지도 금지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여성 교육 금지령에 항의하는 시위가 일어났지만 탈레반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있다. 탈레반은 최근 이슬람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는 명분으로 비정부기구(NGO)에서 여성이 활동하는 것을 금지하는 조치를 취했다. 아프가니스탄에는 3천명이 넘는 여성이 NGO에서 활동하며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도움이 필요한 여성과 아동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가는 데 있어 여성 직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에 이번 조치로 인해 구호사업 진행에 상당한 차질이 예상된다. 월드비전은 탈레반 정권의 여성 NGO 활동 금지 결정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이러한 결정을 즉각 철회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아순타 찰스 아프가니스탄 월드비전 회장은 성명을 통해 인구의 절반 이상이 구호단체의 인도적 지원에 의존해 생활하고 있는 상황에서 NGO 여성 활동 금지 결정으로 인해 수많은 주민들은 더욱더 고통스러운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탈레반 정부를 향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찰스 회장은 여성으로서 본인도 탈레반의 NGO 여성 활동 금지 조치에 해당되는 당사자이기도 하다. 탈레반 정부의 여성 NGO 활동 금지 조치에 따라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등 여러 구호단체에서 진행하고 있는 인도적 지원 사업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고 있다. 이슬람 율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진행된 탈레반의 반인권적 금지 조치는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생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보다 강경한 대응을 통해 거꾸로 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여성 인권시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세계는 지금] 영국의 크리스마스

시간은 언제나 그랬듯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고 금방 지나가 우리는 금세 새해를 맞이하게 됐다. 대부분의 연말과 새해를 영국에서 혼자 보내는 필자는 운좋게도 이번 연말을 영국인 친구와 보내면서 영국의 크리스마스문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영국에서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도 널리 기념 되는 가장 큰 명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연말이면 길가와 집 안에서 크리스마스 느낌이 나지만 1년 중 가장 중요한 날인 유럽의 크리스마스와는 비교가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은 급의 명절이기 때문이다. 연말이 점점 다가오면서 10월이 끝나갈 때쯤이면 영국에선 핼러윈을 기념하는데 핼러윈의 풍습은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듯이 아이들이 유령 또는 여러 캐릭터의 모습으로 분장하고 이웃집을 돌며 사탕을 받아 간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주로 분장하고 파티를 하기도 한다. 핼러윈이 끝나고 11월에 돌입하면 영국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크리스마스를 위한 준비를 한다. 사람마다 얼마나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지에 따라 집을 꾸미기 시작하는 시기도 다르다. 그러다가 12월이 되면 ‘어드벤트 캘린더’라 불리는 강림절 달력을 열기 시작한다. 어드벤트 캘린더는 크리스마스 당일 전날인 12월1일부터 24일까지 기재돼 있는 달력으로 보통은 각각의 날짜에 맞춰 열어 볼 수 있는 작은 선물이 들어있다. 이렇게 크리스마스가 오는 날까지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며 사람들은 24일동안 매일 하나씩 그날의 선물을 열어본다. 이러한 이유로 11월 즈음부터 슈퍼마켓에 가면 과자와 초콜릿 등이 들어있는 어드벤트 캘린더가 진열되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연말 분위기가 점점 형성되면서 영국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연극을 준비, 부모를 초대해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학수고대하며 기다리다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이 되면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집 안에서 느낄 수 있다. 모든 명절이 그렇듯이 영국에서도 집집마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고유의 다른 전통이 있다. 가족보다는 연인과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는 한국의 크리스마스와는 달리 영국에서는 대부분 온 가족이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고 카드게임이나 보드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때는 어차피 외출해 봤자 문을 연 가게도 없기 때문이다. ‘멀드 와인’이라고 불리는 따뜻하고 크리스마스 향이 나는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장작불을 지피는 집도 있어 이 시기에 밖을 돌아다니면 나무 타는 냄새가 은은하게 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영국 사람들도 눈이 오는 화이트크리스마스를 소원하지만(런던에는 눈이 거의 오지 않기 때문에) 대중교통이 대부분 먹통이 되는 터라 막상 눈이 오면 사람들이 불평하는 영국스러운 정서도 있다. 크리스마스이브를 그렇게 보내고 25일이 되는 밤 12시에 맞춰 각자 선물을 하나씩 뜯어보고 잠에 든다. 다음 날 크리스마스 아침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 트리 밑에 놔둔 선물을 열어 보고 서로에게 사랑을 담아 써준 카드를 읽는다. 그러고는 모두 식탁에 둘러앉아 크리스마스 만찬을 즐긴다. 이때 식탁에 오르는 영국만의 독특한 크리스마스 대표 음식으로 칠면조, 크랜베리 잼, 그레이비, 그리고 브러셀스프라우트라 불리는 작은 양배추와 감자, 당근 등을 먹는다. 만찬을 즐기고 나면 영국의 전통 푸딩인 크리스마스 푸딩을 먹는데 이 푸딩은 먹기 전에 도수가 높은 술을 위에 붓고 불을 붙인 다음 그 불이 꺼질 때까지 기다리다 크림을 부어 먹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이렇게 영국인들에게 1년 중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매우 가족적인 행사다. 선물도 준비해야 하고 만찬을 위해 음식 준비도 많이 해야 해 피곤한 날이기도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진심으로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크리스마스를 즐거워하고 1년 동안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진정한 명절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며 후회 없는 새해를 보내리라 다짐했던 더없이 따뜻한 성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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