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지사 선거사(史)에 남은 논쟁이 있다. 2018년 지방선거에 등장했던 ‘조조론’이다. 시작은 남경필 당시 지사의 SNS 글이었다. “세상을 어지럽히는 동탁을 토벌할 수 있다면 기꺼이 조조가 되는 길을 택하겠다.” 한국당 재입당을 타진하고 있었다. ‘동탁’은 상대인 민주당을, ‘조조’는 당적 변경 결정을 시사한 듯했다. 이를 정면으로 반박하며 ‘논쟁’에 뛰어든 상대가 있었다.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대통령이다. “조조는 시류 따라 진영을 옮겨 다니지는 않았다”며 남 지사의 당적 변경을 비꼬았다. “유·불리를 가려 진영을 바꾸었고 의탁했던 동탁을 제거한 건 여포였다”고 했다. 축구 경기에서 수시로 유리한 곳을 찾아 골대를 옮기는 건 ‘반칙’이라고도 했다. 이 시장은 남 지사를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남 지사도 유력 후보인 이 시장과의 설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언론은 둘의 입씨름에 빠져들었다. 결국 둘이 본선을 향했다. 2026년 선거가 6개월여 남았다. 민주당 도지사 후보군의 하마평이 한창이다. 다선·최고위원급 인사로 추미애, 김병주, 이언주, 한준호 등이 있다. 경기도 정치를 대표하는 염태영, 박정, 강득구 의원 등도 있다. 현직은 김동연 지사다. 각종 여론조사에 현직 프리미엄이 나타난다. 최근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김병주 의원(남양주을)이다. 전략상 타깃을 김동연 지사로 정한 것 같다. 연일 ‘김동연 때리기’를 이어간다. 12일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주한미군 공여구역주변지역 지원 특별법 개정안 설명회다. 경기 북부지역과 직접적 이해관계에 있다. 북부 주민들의 관심이 적지 않은 사안이다. 그런데 이날도 ‘김동연 때리기’부터 했다. 앞선 최고위원회에서 경기도의 지역화폐 가맹점 등록 기준 완화를 비판했다. 연 매출 12억원에서 30억원으로 완화한 조치다. 이재명 정부와 방향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이것 말고도 많다. “경기도 소방공무원들이 초과근무수당을 받지 못하고 있다”(10일·최고위원회), “경기도가 노인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7일·충북 최고위원회), ‘김 지사의 도정이 이재명 정부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경기도 반박이 아름아름 나온다. 소방공무원 수당은 법률 판단이 엮여 있다. 노인 지원 예산 축소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하지만 김 지사는 입을 다물고 있다. 행정과 예산의 달인이지만 침묵하고 있다. 둘이 저마다의 선거를 치르고 있다. 그 방식을 두고 뭐라 할 건 없다. 다만 무대가 경기지사선거다. 경기도 정책을 무기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도민 앞에 져야 할 책임이 있다. 검증된 팩트로 공격할 책임, 잘못된 오류는 설명할 책임 말이다.
-어르신이 교통카드를 잊고 탑승한다. 버스 기사가 말한다. “그냥 타세요. 외상해 드릴게.” 다른 어르신이 승차한다. 지팡이가 먼저 오른다. 착석까지 한참 걸린다. 버스 기사는 ‘잘 앉으셨어요’라며 확인하고야 출발한다. 어느 할머니는 아예 내릴 곳을 버스 기사가 알려준다. “따님네 가시는 거죠. 이번에 내리세요.” -용인의 한 전원마을에서 목격되는 마을버스 모습이다. 훈훈함과 절박함이 함께 묻어난다. 그런데 마을버스가 위기다. 무엇보다 근무 환경이 열악하다. 경기일보가 한 구직 사이트의 채용 공고를 분석했다. 시내버스 기사가 월 356만~443만원이다. 전세·통근 등 특수 버스 기사는 350만~420만원이다. 반면 마을버스 기사는 280만~313만원이다. 월 급여가 100만원 가까이 적다. 생업인데 이렇다. 무조건 봉사만 요구할 수 있겠나. 문제의 시작은 한계에 온 경영난이다. 돈 되는 노선도 없다. 손님도 많지 않다. 정부·지자체 지원은 현실성 없다. 경기도의 마을버스 지원 항목에 두 가지가 있다. 수도권환승할인 지원금과 청소년할인 지원금이다. 시내버스 지원은 이보다 다양하다. 적자노선 지원금, 공영차고지 조성비, 서비스 개선비, 저상버스 구입비 등이다. 마을버스에도 적자 노선 많고, 차고지 필요하고, 서비스 개선해야 하고, 좋은 버스 구입해야 한다. 그런데도 없다. 올해 지원된 경기도의 예산 규모를 보면 마을버스에는 27억5천만원, 시내버스에는 2천909억원이다. 정책 때문에 경영이 악화된 경우까지 있다. 2007년 시행된 수도권통합환승할인제가 그렇다. 환승할 때 일정 금액이 자동 할인된다. 시내버스와 마을버스의 할인 폭이 같다. 기본요금이 낮은 마을버스다. 상대적으로 손해다. 그래서 올해 마을버스 총 환승손실액이 1천7억원이다. 보전받는 금액은 288억원이다. 719억원이 운수사의 손실로 넘어갔다. 시내버스와 이렇게 차별해도 좋을 근거가 있나. 마을버스의 공공성을 가벼이 보는 건가. 일본을 얼핏 보자. 운영손실 보조금 제도가 있다. 버스 구입비 보조금 지급도 많다. 우리 체계와 차이점은 있다. 일본 지자체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일본의 마을버스 정책이 우리의 그것보다 좋다고 단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중교통 정책에서의 위치를 비교해 보자는 것이다. 우리보다 중하게 매겨져 있음은 분명하다. 시내버스에 돈 주는 이유는 공공성 때문이다. 마을버스도 공공성이 크다. 교통복지의 당당한 핵심이다. 경기도에 운행 중인 마을버스만 3천여대다. 22개 시·군, 826개 노선에서 오간다. 전국 마을버스의 60%를 차지한다. 이 역시 경기도가 선도해야 할 영역이다. 도, 시·군, 업체, 시민단체가 함께하는 토론의 장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조국을 등져야 했다. 불과 스물세 살 때였다. 홀몸으로 난민선에 몸을 실었다. 초등학교 교사라는 직업도 접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1961년이었다. 청년은 왜 정든 산하를 떠나 프랑스로 가야만 했을까.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전쟁이 한창이었다. 무려 한 세기가 넘도록 참화는 계속됐다. 그 포화 속에서 어머니와 누이를 잃었다. 알제리 출신 샹송 가수 앙리코 마시아스의 고단한 삶의 궤적이다. 교사에서 가수로 변신했다. 그동안 강산은 두 번이나 바뀌었다. 그리고 그의 처절한 고통과 슬픔은 노래에 오롯이 담겼다. ‘녹슨 총’의 탄생이다. 1984년이었다. 그새 그는 마흔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노래의 제목부터 의미심장했다. 녹이 슨다는 건 쇠붙이가 산소 및 이산화탄소와 결합한 화학작용에 의해 산화해 빛이 변하는 현상이다. 오랫동안 쓰지 않고 버려두면 낡거나 무뎌진다. 총이 오랜 시간 쏘지 않아 그렇게 됐다는 의미다. 노랫말을 음미해보자. “어느 날인가 한 병사가 집이 있는 마을로 달려갔습니다/이를 위해 어두운 수풀 속 어디엔가 녹슨 총을 버렸습니다/누가 사랑보다 전쟁을 더 좋아하겠습니까/녹슨 총보다, 더는 쓸모없는 녹슨 총보다 멋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 비해선 덜 알려졌다. 하지만 놀랍도록 처연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이 ‘자화상’을 통해 그랬다.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바람이었다”라고 말이다. 앙리코 마시아스를 가수로 만든 건 팔 할이 조국의 독립전쟁이었다. 유엔은 그를 평화대사로 임명했다. ‘평화의 가수’라는 호칭도 수여했다. 총이 녹슨다면 평화를 지킬 수는 없는 걸까. 그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병사가 숲에 버린 녹슨 총이라고 했다. 전쟁에 대한 으름장이어서다. 명쾌한 반전이다. 애수에 젖은 듯 굵직한 저음의 목소리가 가슴 깊은 곳을 울린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현재도 진행 중인 전쟁을 생각한다. 팔십이 넘은 그는 지금도 노래하고 있다.
정조필(正祖筆) ‘파초도(芭蕉圖)’는 조선시대 정조(재위 1776∼1800년)의 그림으로 바위 옆에 서 있는 한 그루의 파초를 그렸다. 정조는 시와 글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이 그림은 가로 51.3㎝, 세로 84.2㎝로 단순하면서도 균형적인 배치를 보여준다. 먹색의 짙고 옅은 정도 및 흑백의 대조는 바위의 질감과 파초 잎의 변화를 잘 표현했다. 그림 왼쪽 윗부분에 정조의 호인 ‘弘齋(홍재)’의 백문방인(白文方印)이 찍혀 있다. 형식에 치우치지 않은 독창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이 그림은 글씨와 그림 및 학문을 사랑한 정조의 모습과 남종화의 세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정조필 국화도(보물)와 함께 조선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국가유산청 제공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또다시 시민의 삶을 옥죄고 있다. 9월 발표된 ‘1기 신도시 정비사업 후속방안’과 10월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은 제목만 달랐을 뿐 성남시의 재건축 추진을 옥죄고 시민의 불이익을 가중시킨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고 지방정부의 자율을 묶어 두며, 결국 시민이 피해를 떠안는 구조다. 국토교통부는 9월 발표에서 분당만을 불합리하게 배제했다. 2026년 재건축 허용 물량을 1만2천가구로 묶어둔 채 이월마저 불가능하도록 통제했다. 재건축 수요가 가장 크고 노후화가 심각한 분당만 규제의 직격탄을 맞은 셈이다. 일산, 중동, 평촌, 산본 등 다른 신도시에만 4만4천가구를 추가 배정하며 연차별 물량 초과를 허용한 것과 대비된다. 행정의 잣대가 아니라 정치의 계산이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누구를 위한 주택 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시민들은 같은 법 아래서 결과는 다르게 적용되는 ‘정책의 역차별’을 체감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주 여력 부족’을 이유로 들었다. 그러나 이 논리는 스스로 모순이다. 성남은 이미 도시화가 포화 단계에 이르러 더 이상 신규 개발이 가능한 부지가 거의 없다. 이주 여력을 확보하려면 개발제한구역(GB) 해제가 필수인데 그 권한은 국토부가 쥐고 있다. 이에 시는 보전 가치가 낮은 GB 해제와 이주단지 조성 방안을 수차례 건의했으나 국토부는 번번이 거부했다. 스스로 문을 잠가놓고 “나갈 길이 없다”고 말하는 격이다. 더구나 분당은 광주와 용인 등 인접 도시와 생활권이 맞닿아 있다. 광역적 관점에서 이주 분산이 충분히 가능함에도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은 행정편의주의이며 책임 회피의 전형이다. 10월15일 발표된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은 이 위에 또 하나의 족쇄를 채웠다. 성남 전역을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일괄 묶어 버린 것이다. 이 3중 규제는 시민의 재산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를 동시에 제약하며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추진 동력을 급속히 약화시킨다. 정부가 말하는 ‘시장 안정’은 결국 ‘지방 통제’에 가깝다. 공급 확대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공급을 담당해야 할 지자체의 손발을 묶는 정책이 무슨 실효를 갖겠는가. 행정은 시간을 나누지만 시민은 오늘을 살아간다. “이월은 안 된다”, “입주 연도는 2029년까지”라는 식의 책상 위 행정이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주민의 삶은 하루하루 이어지는데 국토부는 연도 단위의 문서로 그 삶을 재단하고 있다. 노후 아파트에서 안전을 걱정하며 사는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서류 속 물량표가 아니라 실제 공사와 체감할 수 있는 변화다. 정부는 이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분당의 재건축은 투기가 아니다. 주거권이자 안전권이며 노후 도시를 미래 도시로 바꾸는 국가적 과업이다. 정부의 통제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이다. 지방정부가 현장에서 시민과 부딪치며 해결책을 찾고 있을 때 중앙정부는 지원자이자 파트너가 돼야 한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의 주거 안정을 말한다면 형식적 수치와 행정 논리에 매몰된 지금의 방식을 버리고 실질적 형평과 장기적 안목으로 정책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길을 막고 길이 없다고 말하는 정부의 행정은 시민의 삶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성남시는 1기 신도시 중 최초로 ‘재건축 지원센터’를 설치하고 4회에 걸쳐 권역별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정부의 불합리한 정책으로 인한 성남시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시민과 함께, 품격 있게, 그러나 단호하게 도시의 미래를 바로 세워 나가겠다.
둔황 막고굴(莫高窟) 천불동(千佛洞). 천불은 ‘많다’는 의미다. 부처님 모신 석굴은 남쪽 492개, 승려들이 살았던 북쪽 240여개 등 전체 석굴 수는 730여개다. ‘종교와 신(神)’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문화다. ‘신과 종교’는 인류가 창조한 가장 위대한 발명품의 하나라는 말이 있다. 신을 발명한 인간은 신도 인간처럼 선물을 좋아하고 화려한 집에서 살기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제물과 공물을 신에게 바치고 많은 돈을 들여 신이 사는 화려한 성전을 건설했다. 자기가 믿는 신이 최고의 신이라 생각하고 다른 신을 믿는 종족과 전쟁을 벌이고 이교도를 박해하기도 했다. 실크로드는 ‘종교의 길’이다. 서쪽에서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기독교 등이 동쪽 중국으로 왔다. 막고굴의 앞면은 작은 개천이 흐르고 뒤쪽은 밍사산 절벽이다. 작은 실개천이 흐르는 양옆은 포플러 나무가 무성하다. 이곳 개천의 진흙으로 불상을 만들고 물은 승려들의 식수원이다. 실크로드 여행에서 꼭 한 도시만 가라고 한다면 둔황석굴을 가야 한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둔황석굴의 시작은 서기 366년 ‘낙준’이라는 떠돌이 승려가 밍사산 옆을 지나다 관세음보살이 현신하는 것을 보고 절벽 바위에 굴을 파고 수도를 시작한 것이 시작이다. 역대 왕조가 492개의 석굴을 조성했는데 당나라 때 가장 많이 만들었다. 당나라 시대 225개, 수나라 97개, 토번(티베트) 시대에 70개가 조성됐다. 둔황석굴은 세 가지 문화적 가치가 있다. 첫째는 진흙으로 빚은 수많은 부처와 보살 소상(塑像)이 약 1천700개라고 한다. 부처 소상은 무게와 크기 때문에 약탈을 면해 온전하게 보존돼 있다. 부처, 보살 등 소조불(塑造佛)은 근처 개천의 진흙으로 만들었다. 장인들이 진흙에 볏짚, 양털, 꿀, 광물질 등을 섞어 만든 것으로 천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두 번째는 모든 석굴의 벽면과 천장을 화려한 그림으로 채색한 엄청난 벽화다. 석굴 전체 벽화 길이가 5m 폭으로 계산하면 50㎞에 달한다고 한다. 부처 소상과 벽화의 안료는 공작석(초록색 염료), 청금석(푸른색 염료) 등 서역에서 수입한 값비싼 안료로 만들었다. 세 번째는 17호 장경동 석굴에서 발견된 4만여권의 장서다. 17호굴(관리상 일련번호)은 ‘도서관 석굴’ 장경동(藏經洞·Library Cave )이라 부른다. 둔황석굴이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1900년 17호 장경동 발견 때문이다. 장경동 석굴은 세 사람이 주역이 있다. 청나라 말기 도교 도사인 왕원록(왕도사), 영국의 오렐 스타인, 프랑스의 폴 펠리오다. 900년 동안 숨겨져 있던 장경동 17호 석굴을 발견한 얘기는 매우 흥미롭다. 왕도사는 19세기 말 청나라 군인 출신으로 제대 후 도교 도사가 된 사람이다. 1900년 장경동 석굴 발견 당시 왕도사는 폐허 수준인 16호 석굴에서 조수 한 사람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왕도사는 조수를 크게 꾸짖는 일이 발생했다. 조수는 담배를 피우면서 화를 삭이다가 16호 석굴 벽면에 담뱃대를 툭툭 털었는데 벽에서 울림이 있는 공명 소리를 듣게 된다. 왕도사와 조수는 이상하게 생각해 벽을 허물었더니 벽 속에 작은 굴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곳에 4만여점에 달하는 각종 종교의 경전, 계약서류, 편지, 비단 그림 등이 들어 있었다. 석굴의 폐쇄된 연도는 조사한 결과 1002년이다. 900년 동안 잠자고 있던 타임캡슐이 개봉된 것이다. 인도에 있던 영국인 고고학자 겸 탐험가 스타인은 둔황에서 많은 고문서가 발견된 소문을 들었다. 그는 둔황에 와서 1907년 왕도사를 설득해 7천여점의 문서를 사 갔다. 이후 고문서 소문을 들은 프랑스 탐험가 펠리오도 1908년 둔황에 도착해 역시 7천여점의 문서를 사 갔다. 장경동 서적은 한자, 산스크리스트어, 티베트어, 소그드어, 호탄어 등 다양한 언어로 작성된 고대 문서의 타임캡슐이다. 희귀한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 경전도 있고 히브리어로 된 기독교 기도문 등 다양한 종교자료가 있다. 사서(史書)에 없는 서민들의 실상, 없어진 고대 문자, 사라진 마니교 등 경전 등이 귀중한 ‘둔황학’의 배경이다. 1908년 펠리오가 가져간 서적 중에 혜초 스님(704~787)이 쓴 ‘왕오천축국전’이 포함돼 있었다. 왕오천축국전은 제목도 없고. 저자 이름도 없고, 앞뒤 표지가 없는 6천여자의 요약본 서류였다. 펠리오는 이 문서를 연구해 1909년 당나라 혜초 스님의 여행기라는 사실을 논문에 발표했다. 1915년 일본 학자 가카쿠스 준지로가 혜초의 국적이 당나라가 아닌 ‘신라’ 승려임을 밝혔다. 왕오천축국전은 혜초가 723년경부터 727년까지 4년간 인도의 오천축(동서남북과 중앙)과 중앙아시아 40여개국을 다녀온 여행기다. 중국 광저우에서 배를 타고 동인도로 갔다가 귀국은 파미르고원과 타클라마칸사막 등을 거쳐 육로로 왔다. 왕오천축국전은 간략한 자료지만 1천300년 전 중앙아시아 오아시스 국가의 풍속, 종교, 사회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사료다. 원본은 상중하 3권으로 추정되는 데 분실됐다. 혜초는 인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 동북부 등을 다녀온 최초의 한민족 모험가이자 세계인이다. 지금으로부터 1천300년 전 20대 신라 젊은이가 혈혈단신 인도와 유라시아 대륙의 무전(無錢)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오늘날 세계로 향하는 우리 청년들에게 멋진 모델이다. 둔황석굴에 신라 관련 석굴 두 개가 더 있다. 61호 석굴의 벽화 ‘오대산도’에 신라 사찰 송공사와 신라인 5명의 그림이 있다. 355호 석굴은 조우관을 쓴 신라인 2명이 나온다. 경주에서 사신으로 장안에 갔던 관리들이 왕족의 부탁으로 멀리 둔황에 간 흔적이다. 신라인들이 실크로드 중심도시 둔황까지 진취적으로 왕래했던 역사적 흔적을 확인하고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긴급 체포됐다. 내란을 선동·선전한 혐의다. 특검이 청구한 체포영장을 법원이 발부했다. 형사소송법에 관련 규정이 있다.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이유가 있고,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았을 때다. 황 전 총리는 고발된 혐의가 있다. 세 차례 특검 출석을 거부했다. 두 차례 압수수색도 무산됐다. 황 전 총리 거부 또는 지지자들의 방해가 있었다. 체포 요건에 해당한다고 특검은 봤다. 당초 고발된 혐의는 SNS 글이다. “나라를 망가뜨린 종북 주사파 세력과 부정선거 세력을 이번에 반드시 척결해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도 체포하라”. 계엄 당일인 12월3일 올린 주장이다. 대통령의 계엄에 대한 소감과 지지를 담고 있다. 진보 성향의 인터넷 매체가 고발했다. 내란 선전·선동 혐의였다. 이 외의 혐의에 대해서는 12일 현재 확인되는 게 없다. 이견이 있다. 그는 대선을 치른 정치인이다. ‘종북 주사파 세력’은 이념적 구획이다. 정치적 스팩트럼으로 분류된다. ‘부정선거 세력’도 그렇다. 증명되지도 않았고, 증명하지도 못한 주장이다. 그저 그가 속한 정치집단의 구호다. 한동훈 전 대표 체포 주장도 그렇다. 전·현직 대표라는 경쟁 관계다. 경쟁자를 향한 격한 정치 공격으로 볼 수 있다. 어차피 선동은 정치 실현의 수단이다. 선동 범죄와는 구별된다는 논리다. 요는 시점이다. 정치가 첨예하다. 8일 대장동 항소 포기가 등장했다. 검찰 반발과 ‘7천억원 포기’로 이어진다. 11일에는 ‘내란 특검 TF’안이 등장했다. 국무총리가 제안했고 대통령이 승인했다. ‘내란 연루자 색출’ 얘기가 있다. 12일 새벽 조태용 전 국정원장이 구속됐다. 12일 오전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체포됐다. 두 건 모두 ‘내란’ 관련이다. 이게 모두 11~12일 사이의 상황이다. ‘대장동’과 ‘내란’의 정면 충돌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 들어 가장 날카롭다. ‘적폐 청산 카드 등장’이라는 해석이 있다. 여러 언론이 내리는 진단이다. 바로 이 한복판에 등장한 황 전 총리 체포다. ‘황교안式 언어’의 가벌성(可罰性)이 주목한다. ‘선동 정치’와 ‘선동 범죄’의 어느 쪽이 될 것인가.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책임’의 어느 쪽이 될 것인가. 향후 적폐 청산 수사의 기준이 될 수 있다. 영장이 청구됐으니 또 한번 법원이 판단할 것이다.
정부가 2020년부터 국비 매칭 사업들을 지방에 이양하고 있다. 지방 분권 강화와 자율성 확대 취지다. 그러나 사업은 넘기면서 재정 지원은 손놓고 있다. 이양 당시 국비 규모로 묶은 보전금만 내려보낸다. 그러나 복지나 공공 서비스 수요는 갈수록 확대 일로다. 여기에 물가 상승까지 가세한다. 사업을 넘겨 받은 지방정부 살림살이를 위협할 지경이다. 이 때문에 인천시 재정자립도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분권이 아니라 떠넘기기인가. 정부는 2020년부터 4년 동안 모두 80개 사업을 지자체 사업으로 이양했다. 2020년 1단계로 공립미술관 건립 지원, 문화·관광자원 개발, 생태하천 복원 등 39개 사업을 이양했다. 2022년부터 2단계 이양이 시작됐다. 1차로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공공형 어린이집 운영, 신중년 사회공헌 활동 지원 등 26개 사업이 넘어왔다. 2023년 2차 이양에서는 어린이보호구역 및 위험도로 개선, 여성범죄 인프라 강화, 실종·아동학대 대응 등 15개 사업을 추가했다. 그러나 지방 이양 이후 이들 사업의 사업비는 갈수록 불어난다. 1단계 이양 48개 사업의 예산은 586억원에서 올해 822억원으로 늘어났다. 40%나 팽창한 것이다. 2단계 41개 사업은 1천697억원에서 올해 2천183억원으로 30% 증가했다. 왜 그런가. 해마다 복지나 공공 서비스 지원 대상은 확대된다. 여기에 인건비나 물가는 계속 오른다. 대표적으로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사업을 보자. 국비 70%, 인천시비 15%, 구·군비 15%의 사업이다. 그런데 이양 이전 13억원이던 인천시비 부담이 올해 141억원으로 불어났다. 지원 대상 확대, 인건비·물가 상승으로 돈이 10배 이상 더 들어간다. 하지만 정부는 지방 이양 보전금에 이런 사정들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이양 당시 국비 규모에 해당하는 보전금만 지원한다. 5년 사이 사업비는 30~40% 커졌지만 정부 보전금은 제자리걸음이다. 게다가 정부는 2027년부터 이 보전금마저 중단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러니 지방정부만 죽을 맛이다. 인천시의 경우 이 때문에 재정자립도가 지방 이양 이후 13%포인트나 떨어졌다. 이러니 지방 이양이 아니라 ‘지방 전가’라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시민 일상의 삶을 보살피는 이들 사업의 지속가능성이 흔들릴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이런 판에 정부 보전금까지 중단한다니. 사업만 넘긴다고 지방 분권이 이뤄지지 않는다. 이에 상응하는 재정 분권 방안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