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일본의 독도 도발

오키노시마는 일본의 섬이다. 일본에선 관광객들이 제법 찾는다. 독도에서 직선거리로 157.5㎞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다. 관할 지자체는 시마네현이다. 독도를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일본의 지방정부다. 10여년 전 이맘때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새삼스럽다. 시마네현청 건물 한복판에는 독도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려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현청 소재지인 마쓰에시(市)에서 오키노시마로 가기 위해 둘러야 하는 항구에도 예외 없이 그런 내용의 플래카드가 수두룩했다. 일본이 또 슬그머니 독도를 도발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일본 시마네현 지사가 정부에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각료 참석을 요청했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며 정부의 의연한 대응을 요구하는 서류도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시마네현은 매년 2월22일을 다케시마의 날로 정하고 행사를 열고 있다. 시마네현이 일본의 광역지방자치단체인 만큼 의미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일본은 2013년부터 13년 연속으로 이날 차관급인 고위 공무원을 보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시마네현의 요구에 대해 “문서가 도착한 만큼 검토하고자 한다”고 답변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최근 집권한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도 끼어들었다. 그는 “대신(장관)이 다케시마의 날에 당당히 나가면 좋지 않으냐”라고 반문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앞서 자민당 총재선거 당시인 9월27일 토론회에서다. 이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모두가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점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은 최근 한국과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 급유 지원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블랙이글스 일부가 독도 상공을 비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항의 의사를 전달하고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나라와 이웃 사촌으로 지내기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 많다. 그중에서도 독도 문제가 늘 으뜸이다. 툭하면 독도를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니 말이다.

[지지대] 청소년 운명의 날 ‘수능’

중학교 3년과 고등학교 3년까지 총 6년의 성적표가 나오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아니 유치원 3년과 초등학교 6년까지 더하면 무려 15년의 성과가 나오는 수능. 청소년의 운명이 달린 수능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중학교 2학년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수능은 자녀의 인생에서 ‘반드시’ 잘 치러내야 하는 시험이다. 물론 자녀가 그동안 공부해온 것에 운까지 더해져 매우 잘 치러내기를 기대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수능을 잘 치러 좋은 대학을 가고, 자녀가 좋은 직장에 다니는 등 인생이 잘되길 바란다. 올해 수능을 앞두고 많은 학부모들은 전국의 사찰과 교회 등을 찾아 자녀가 수능을 잘 보기 바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13일까지 이 같은 간절한 기도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모두가 자녀가 최선을 다해 실력을 발휘하고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마음으로. 다만 1994년 제2회 수능을 치러본 입장에서 생각해본 수능의 기억은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반드시 치르는 통과의례일 뿐이다. 수능을 잘 보면 좋은 대학을 갈 뿐 못 본다고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되레 수능이 끝나면 신나게 친구들과 놀 수 있다는 기대감만 크다. 과연 수능이 한 청소년의 인생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시험인가 하는 고민이 있다. 물론 좋은 대학이 인생을 바꿀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주변에 서울의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평범하게 사는 사람도 있고 지방 대학을 나와서도 성공해 잘사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당연히 자녀가 수능을 잘 보면 함께 기뻐해주고 노력한 만큼 결과가 좋지 않아도 나무라지 말고 격려해줘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를 잊지 말고 꼭 실천했으면 한다. 필자도 4년 뒤 자녀가 수능을 치르고 나면 꼭 그렇게 하겠다고 굳게 다짐한다.

[지지대] 생존을 위한 손재주

초기의 인류는 동물의 먹이로 태어났다. 약 233만~140만년 전 제4기 플라이스토세 시기에 살았던 ‘호모 하빌리스’. 고생물 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호모 하빌리스 유골 화석은 자신들이 포식자의 희생자였다고 답한다. 한 유골 화석의 두개골엔 검치호(당시 존재했던 고양잇과 육식동물)에게 뚫린 이빨 자국이, 또 다른 유골 화석 팔다리에는 악어에게 물린 흔적이, 어떤 유골 화석의 뼈마디 곳곳에선 하이에나 무리에게 공격당한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평균 키 1.2m, 왜소한 덩치에 약한 골격. 말 그대로 먹히는 존재, 생태계의 아래에 자리 잡혔던 인류였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환경 속에서도 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석기 도구의 사용이다. 자연의 돌을 단순히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쪼개고 깎아 원하는 형태로 가공했다. 그들은 대형 포식자가 남기고 간 동물의 시체를 가공한 석기를 사용해 살점과 뼈를 분해해 배를 채웠다. 석기로 직접 거주 형태 구조물을 만들어 혹독한 환경을 견뎌냈다. 99주년 점자의 날을 맞이한 2025년 11월4일. 후천적 시각장애인에 대한 점자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시각장애인의 92.6%는 중도시각장애인으로 조사됐고 이들이 기본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이고 주기적인 점자 교육 환경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실은 점자를 읽고 쓸 줄 아는 시각장애인은 100명 중 4명 미만 수준. 위에서 언급한 호모 하빌리스는 ‘손재주가 좋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유는 석기를 만들고 사용한 최초의 인류이기 때문이다. 눈이 아닌 점자판 위 손끝에서 세상을 읽어야 할 후천적 시각장애인들. 호모 하빌리스가 손재주를 부려 석기를 활용해 생존했듯이 점자 교육 활성화를 통해 후천적 시각장애인들의 손재주를 육성시켜 이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시급하다.

[지지대] 기술자들

영화 ‘기술자들’은 뛰어난 금고털이 기술자가 업계 최연소 헤커 및 인력조달 전문가와 팀을 이뤄 범죄를 저지르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검은손에 스카우트돼 인천세관에 숨겨진 1천500억원의 비자금을 40분 안에 훔치는 역대급 미션을 수행한다. 그 안에서 치밀한 작전, 배신과 반전 그리고 기술자들 간의 치열한 두뇌 싸움을 보여준다. 결국 금고털이 기술자가 검은손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면서 비자금의 진짜 주인이 된다는 결론이다. 흔히 ‘기술자(技術者)’는 과학적 지식과 수학적 원리를 활용해 실용적인 문제 해결과 제품, 시스템, 구조물 등의 설계·개발·구축 및 유지 관리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이들은 혁신적인 해결책을 찾고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안전성과 효율성을 보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건축, 컴퓨터, 기계, 전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상을 바꾸는 기술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되곤 한다. 교육 현장에는 다른 의미의 ‘기술자들’이 있다. A교사는 초등학교 교사로 하이러닝을 이용해 온·오프라인을 오가면서 수업을 하고 있다. 교실은 물론이고 교실 밖도 수업공간으로 활용된다. 교사와 학생들의 수업 몰입도에 교육계에서 인정받는 실력자다. 특수교사인 B교사는 다학년의 특수교육 대상 학생들을 한 반에 모아 각자의 학년 진도에 맞춰 수업을 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이 느닷없이 던지는 질문과 의문을 놓치지 않고 수업의 중요한 콘텐츠로 엮어 가며 학생이 주인공이 되는 수업을 이어 간다. 다른 특수교사들조차 ‘감탄스럽다’고 한다. 최근 한국 교사들이 다른 국가에 비해 교사 업무의 본질인 수업 외에 학부모 민원과 학생들의 언어폭력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고 한다. 이로 인해 교사가 된 것을 후회한다는 비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B교사처럼 천생 교단이 어울리는 이들의 모습에 미소 짓게 되는 건 왜 일까.

[지지대] “가끔은 신발을 벗어보자”

구두 수선이 천직인 어르신이 그랬다. “신발만 봐도 어디가 아픈지, 무슨 일을 하는지 감이 옵니다.” 신발은 가지 않는 곳이 없다. 밟지 않는 공간도 없다. 흙탕길이든 꽃길이든 어디든 간다. 그래서 신발에는 주인의 철학과 가치관 등이 배어 있다. 평생 자신을 있게 해 준 신념도 담겼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도, 타인의 시선도, 남이 세운 기준도 들어가 있다. 그런데 가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걸으면 달라진다. 이 모든 것에 대한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다. 성경에도 나온다.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신을 벗으라.” 어쩌면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신념도, 가치관도 내려놓을 수 있다. 신발을 벗으려면 믿음과 용기 등이 필요하기도 한다. 통상적인 고정관념 탓이다. 맨발이 되고 나서야 깨닫는 것은 수두룩하다. 필자도 맨발걷기에 대한 주변의 권고를 콧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어떤 벗은 황토를 보내줄 테니 집에서라도 걸으라고 했다. 얼마 전 산책길에서 아침 햇살에 빛나는 오솔길을 발견했다. 말로만 듣던 맨발걷기를 위한 길이었다. 물론 발바닥에 닿는 흙의 느낌이 처음에는 불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편안해졌다. 마음도 평안해졌다. 바닥은 딱딱하고 솔잎과 나뭇잎들이 나부꼈다. 속도는 느리지만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해졌다. 자연의 빛, 소리, 온도, 습도, 냄새 등 모든 것을 느낄 수 있는 건 덤이었다. 잠시 멈추고 이 감각을 깨우는 게 삶에서 얼마나 중심을 잡게 해주는지를 알 것 같았다. 맨발로 걸으려면 중심이 중요하다. 길의 굴곡이 있고 바닥이 딱딱하니 미세한 근육을 쓰게 되고 전신의 균형감도 필요하다. 최근 경기도내 공원 곳곳에 맨발길이 조성되고 있다. 경기도도 내년까지 ‘경기 흙향기 맨발길’ 1천곳을 조성키로 했다. 이미 올해 상반기 403곳을 조성했다. 오늘부터라도 동구 밖으로 나가 신발을 벗고 맨발로 황톳길을 걸어보자. 좀 차갑긴 하겠지만 신발을 벗는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적어도 삶의 무게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지지대] 부쩍 일찍 찾아온 추위

스산하다, 당황스럽다. 어수선하다. 떠들썩하다.... 예년보다 일찍 찾아온 불청객 때문에 소환된 형용사들이다. 요즘 동이 트면 나누는 인사말 가운데 상당수가 “날씨가 쌀쌀하니 옷깃 꼬옥 여미시라”다. “밖에 나가실 때는 옷 따뜻하게 입으시라”는 덕담도 빠지지 않는다. 늦가을에 불쑥 찾아온 동장군이 불러온 풍속도다. 요즘 추위를 두고 말들이 참 많다. 우선 단풍 구경을 준비했던 이들로부터 나오는 푸념이 한결같다. “나무들이 놀라 단풍도 다 지겠다”며 입맛을 다신다. 실제로 길가의 은행나무 색깔은 아직도 연두색이다. 붉은 색깔을 띠어야 할 단풍나무 잎도 그렇다. 갑자기 떨어진 기온으로 비염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옷장 한구석에 처박아 뒸던 점퍼나 패딩 등을 꺼내며 구시렁거린다. 며칠 동안 한반도를 강타한 추위로 눈에 띄게 두드러진 특징에는 일교차도 있다. 물론 통상적으로 가을이 깊어지면 낮과 밤의 기온차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범위를 크게 벗어났다. 그래서일까. 늦은 밤이나 새벽에 찬 바람이 불어오고 코 점막이 건조해진다. 뺨을 스치는 바람결이 면도날 같다. 북풍한설이 따로 없다. 이 때문에 코 막힘이나 재채기 등 호흡기 증상이 쉽게 나타난다. 면역력 저하, 혈관 수축 등으로 감기나 심근경색 등 건강 문제도 신경이 쓰인다. 따뜻한 옷차림에 실내 환기, 수분 섭취 등이 필요한 대목이다. 다행스러운 건 기온이 다시 예년 수준으로 돌아왔다는 점이다. 기상당국은 31일부터 평년 기온 수준을 되찾겠다고 예보했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11월3일부터 또 추위가 엄습한다고 한다. 불현듯 1995년 발표된 육각수의 ‘흥부가 기가 막혀’ 대중가요 노랫말 끝부분이 떠올랐다. “그래도 난 내 길을 가/착한 마음 하나로 이 세상에 맞설 터/가을 끝자락에 불어 오는 찬 바람에 꽁꽁 얼어붙는 우리네 인심/흥부가 기가 막혀.” 계절을 뛰어넘어 닥친 추위가 서민들에겐 이래저래 기가 막히지 않을까. 2025년 가을은 또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다.

[지지대] 요즘 화두 ‘사다리 걷어차기’

‘10·15 부동산 대책은 주거 사다리 걷어차기’, ‘노인, 국민연금 수급 연령 상향은 복지 사다리 걷어차기’. 요즘 사회의 화두가 ‘수저색’에서 ‘사다리’로 옮겨 가는 분위기다. 그나마 수저계급론에는 살면서 색깔 하나쯤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라도 있었다면 사다리론에는 불신과 분노가 가득 차 있는 듯하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공성전에서 성벽을 오르는 적의 사다리를 발로 차 내 위치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전투 방식에서 유래한 말이다. 보호무역으로 부를 쌓아 선진국이 된 국가들이 같은 방식으로 발전하려는 후진국에 자유무역을 강요, 선진국 대열 합류를 저지한다고 꼬집은 장하준 런던대 교수의 저서 제목으로도 유명하다. 그럼 옛날 싸움 방식이나 신자유주의 이면을 지적한 책 제목이 왜 2025년 한국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을까. 부동산, 노인 복지 등 정책 변화가 옳고 그름을 떠나 ‘후발 수요만 막는다’는 인식을 심어준 탓이라고 본다. 일례로 서울 전체, 경기 주요 지역에 대출 규제 강화, 실거주 의무를 적용한 10·15 부동산 대책은 ‘대출이나 전세를 끼고 집을 산 뒤 갚거나 다른 집으로 옮긴다’는 전통적(?) 주택 취득 방식을 제한한 게 핵심이다. 하지만 명확한 공급 대책은 따라오지 않았다. 이에 ‘같은 방법으로 이미 집을 산 자들이 사다리를 끊는다’는 아우성이 속출하고 여당 최고위원조차 “사다리를 치우면 안 된다는 점에 공감한다”며 대안 없는 수요 억제에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상향된 국민연금 수급 연령, 국민통합위원회와 대한노인회 간 법정 노인 연령 상향 공감대 형성 역시 ‘신규 고령 수혜층 합류 저지냐’는 노노(老老) 갈등으로 번진 상황이다. 저출생·고령화, 경기 침체와 그에 따른 양극화 심화가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저해하고 있다. 갈등이 확대 재생산되는 각자도생 사회를 막기 위해 정부는 정책마다 ‘누구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할 것이다.

[지지대] 야생동물, 공포와 공존 사이

곰돌이는 귀엽지만 곰은 무섭다. 캐릭터로 만나는 곰은 푸근하고 귀엽겠지만 직접 만난 곰은 공포 그 자체다. 일본 이야기다. 최근 아키타현에 곰이 출몰해 사상자가 나왔다고 한다. 산에 사는 곰이 인가에 내려와 사람을 공격해 사망자까지 발생했다. 지자체 힘만으론 역부족이었는지 아키타현의 지사는 자위대 파견을 요청하겠다고 한다. 한국에선 길을 가다 곰을 만날 일이 거의 없다. 그 대신 멧돼지, 들개, 너구리 등과 마주칠 수 있다. 필자도 최근 동네 뒷산에 산책하러 갔다가 들개 무리를 만나 혼비백산한 적이 있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천천히 자리를 피하는 그 짧은 시간이 한없이 길고 공포스러웠다. 집에 돌아와선 들개를 포획해달라고 지자체에 즉시 민원을 넣었다. 야생동물이 도심에 나타나는 이유는 대부분 먹이 때문이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두려움을 무릅쓰고 사람들 사는 곳으로 내려온다. 그러다 위협적인 멧돼지는 포수의 총에 목숨을 잃기도 한다. 먹이가 부족한 이유 중엔 인간이 개발을 명목으로 자연을 훼손했기 때문이란 점도 있다. 야생동물의 도심 출현에는 인간의 책임이 일정 정도 있다. 그래서 야생동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우선 야생동물을 만났을 때 안전수칙을 지키는 것이다. 멧돼지를 만났을 때 소리 지르고 뛰지 않기, 너구리를 봤을 때 만지지 않기 등 서로를 자극하지 않는다.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필요하다. 자연 서식지를 보전하거나 복원하고 도심 곳곳에 생태통로, 동물 전용 다리, 터널을 만들 수 있다. 또 도시가 사람만의 공간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다양성 교육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산림면적은 전 국토의 약 60%이고 경기도는 50%를 넘는다. 야생동물과 함께 살아야 하는 환경이다. 산과 도시가 붙은 경우가 많다 보니 등산로와 마을 길에서 야생동물을 만날 확률도 높다. 야생동물은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지만 공존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공존은 작은 배려에서 시작한다.

[지지대] ‘사천피’ 좋긴 좋은데

코스피가 27일 사상 처음으로 장중 4,000 선을 돌파했다. 삼성전자 주가도 개장 직후 주당 10만원을 넘기며 마침내 ‘10만 전자’ 시대를 열었다. 정부가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에 힘을 쏟자 투자심리가 개선된 영향으로 보인다. 코스피는 올해 들어서만 64%가량 상승해 그야말로 ‘역대급 불장’을 기록 중이다. 이렇게 좋게만 지난다면 ‘동학개미운동’도 끝날 거다. 하지만 흥분보다는 냉정이 필요하다고 전하고 싶다. 주가가 오르는 이유가 탄탄한 실물경기의 뒷받침에 있는지, 아니면 과도한 기대와 유동성에 의한 일시적 상승인지 따져볼 시기이기 때문이다. 최근 상승세는 정부 정책, 외국인 자금 유입, 글로벌 회담 기대감 등이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이달 외국인 누적 순매수 규모는 5조2천300억원에 달한다. 반면 개인이나 기관의 투자자 비중은 순매도세가 우위를 보일 때가 많았다. 시장을 지탱하는 힘이 ‘실적’보다는 ‘기대감’에 치우쳐 있다는 방증이다. 앞으로의 변수 또한 적지 않다. 29, 30일 각각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과 미중 정상회담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지지부진하던 관세 협상을 마무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고 글로벌 무역 갈등으로 시끄럽던 시장 상황도 종식될 수 있다.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다면 상승세는 이어질 수 있겠지만 반대의 경우 외국인 자금이 다시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결정, 마이크로소프트·애플·아마존 등 주요 빅테크 기업의 3분기 실적 발표 등이 시장을 흔들 요인으로 남아 있다. 2021년 코스피가 3,000 선을 돌파했을 때도 비슷한 낙관론이 퍼졌지만 불과 몇 달 만에 지수는 2,400대까지 떨어졌다. 희망의 끝이 조정이었던 과거가 있어 이 분수령을 주의해서 보자는 의미다. 지금 시장엔 불확실성이 잔존한다. ‘사천피’를 넘어 ‘오천피’로 가야 한다는 기대는 이해하지만 그만큼 리스크 관리가 절실하다. 기업 실적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정책 효과가 단기 부양에 그친다면 상승세는 오래가지 못한다. 투자자는 시장의 열기에 휩쓸리기보다 금리·환율·수출지표 같은 기본 경제 변수를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 파란 불장은 요란하게 다가와도 빨간 버블은 조용하게 스며든다. 코스피 4,000 돌파를 자축하면서도 중심을 잡는 시선이 필요한 시기다.

[지지대] 중국서 열린 대만 광복절 행사

만약 북한이 평양에서 대한민국 광복절 기념식을 개최한다면 어떨까. 어처구니 없는 억측이고 논리적으로도 성립될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 이와 비슷한 행사가 벌어졌다. 중국이 25일 대만 광복 기념 행사를 마련했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은 이날 베이징 국빈관에서 대만 광복 기념일을 축하하는 리셉션을 열었다. 행사에는 왕후닝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등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한 것으로 파악됐다. 왕 주석은 “중화민족 전체의 이익과 장기 발전의 관점에서 다함께 통일의 대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대만은 즉각 대응에 나섰다. 대만 고위 관계자는 “대만 광복절은 중국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일본과의 전쟁에 실질적 공헌이 없었던 중국 공산당과도 관계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는 중국과 대만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왜곡된 역사 서사와 편파적인 정치 프레임을 강화하려는 시도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중국은 최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대만 광복절인 10월25일을 중국의 기념일로 지정해 국가 차원에서 기리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사실 대만 광복 기념일은 1895년부터 일제 식민치하에 있던 대만이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같은 해 10월25일 중화민국 국민정부에 반환된 것을 기리는 날이다. 대만에선 국민당 집권 시기에는 법정 공휴일이었으나 2000년 집권한 민진당 정권이 중화민국에 반환된 것을 ‘광복’으로 볼 수 없다며 공휴일에서 제외했다. 민진당은 대만 고유의 역사를 강조하면서 토착 원주민이나 본성인(명·청 시대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한족) 입장에선 국민정부도 대만을 무력으로 점령한 외부 세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다 올해 다시 법정 공휴일로 회복했다. 일각에선 중국의 대만 광복 기념일 개최는 대만 문제에 대해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30일 얼굴을 맞댄다. 미국이 중국의 대만 광복 기념 행사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궁금하다.

[지지대] 기본재산

기본재산 논란이 뜨겁다. 경기문화재단 이야기다. 기본재산은 법인 설립 당시 출연한 재산이거나 기부 또는 무상으로 취득한 재산으로 법인의 재정적 기반이 되는 예산을 의미한다. 경기문화재단은 1997년 경기도가 출연한 목적성 기금을 기반으로 시작됐다. 재단은 이 기금을 종잣돈으로 활용해 이자 수익을 냈고 문화예술진흥사업에 활용해 왔다. 규모는 1천200억원에 달한다. 경기도에선 도의 재정 상황이 어려운 만큼 운영비에 이 재산을 활용하라는 입장이다. 재단은 ‘곤란하다’고 항변한다. 기본재산 활용에 관한 명확한 기준이 없고 한번 기금을 활용하기 시작하면 깨진 독에서 빠지는 물처럼 순식간에 바닥 날 수 있다는 거다. 선례도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기금은 한때 5천800억원 규모였다. 십수 년간 재정 확충 없이 사업비 부족분을 기금에서 헐어 쓴 결과 현재 6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재단법인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법적인 문제도 우려한다. 문화재단의 기본재산 활용을 둘러싼 고민은 타 지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 300억원 규모의 기본재산을 가진 부산문화재단은 지난해 ‘기본재산 운용 효율화 전략 수립 연구용역 결과 보고회’를 열고 기본재산을 단순 소진용 운영비나 사업비로 활용하는 것은 지양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해 지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할 토대를 마련하기로 했다. 경기문화재단에서도 기금을 깬 사례는 있었다. 2020년 코로나19 때였다. 공연과 전시가 중단되면서 문화예술인들의 생계가 끊겼고 창작 활동이 멈췄다. 재단은 창립 이래 처음으로 기본재산을 활용해 50억원을 긴급 편성했다. 활용에 관한 기준은 없었지만 ‘기금은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기본재산, 이 돈을 만들어 준 주인은 경기도가 맞지만 문화예술진흥기금이기에 이 돈을 통해 문화예술진흥, 예술인들을 위해 써 왔다. 실체적 주인은 문화재단도, 경기도도 아니다. 예술인들이다.” 오랫동안 관련 기관에 몸담았던 인사가 말했다. 문화예술인들에게 ‘기금은 이럴 때 사용하란 것’이란 얘기가 지금도 나올까. 당장 급하다고 기금 활용부터 들이미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이 기금을 어떤 기준으로 어떤 근거로 활용할지, 기금 확장성을 위해 어떤 대안을 마련할지 열린 논의를 하고 조례 제정이나 세부 규정을 세우는 게 우선이다. 지금은 이런 논의가 필요한 때다.

[지지대] 작은 어촌 마을의 기적

작은 어촌 마을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이 동네 축구단이 프로축구 챔피언에 올라서다. 유럽의 이야기다. 화제의 주인공은 스웨덴 프로축구단인 미엘뷔 AIF(이하 미엘뷔)로 이 나라 프로축구 1부리그 챔피언에 올랐다. 창단한 지 86년 만의 일이다. 외신에 따르면 해당 축구단의 연고지는 인구 1천450명인 헬레비크라는 작은 어촌 마을이다. 발트해를 끼고 있다. 대다수 주민은 고기잡이가 생업이다. 미엘뷔는 그런 곳을 연고로 하는 구단이다. 이런 가운데 미엘뷔는 최근 스웨덴 예테보리의 감라 울레비에서 펼쳐진 IFK 예테보리와의 경기에서 상대 팀을 2 대 0으로 꺾었다. 2025 알스벤스칸 27라운드 원정경기였다. 승점 66(20승 6무 1패)은 이날 승리로 해당 구단이 거둔 기록이다. 이어 정규 리그 종료 세 경기를 남기고 2위 함마르뷔 IF(승점 55)와 승점차를 11로 벌리며 우승을 확정했다. 남은 경기 결과에 상관없이 말이다. 창단 이후 처음으로 1부리그 정상에 오른 감회는 어떨까. 역대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2차 예선 출전권도 거머쥐었다. 스웨덴 1부리그에선 16개 구단이 경쟁한다. 이 리그의 단골 챔피언은 말뫼 FF, 예테보리 등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달랐다. 그동안의 흐름을 들여다보자. 2019년 2부리그에서 우승했다. 이어 2020년부터 1부리그로 승격했다. 하지만 지난해까지 중하위권을 전전하는 데 그쳤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개막 7경기 연속 무패(5승 2무)로 질주했다. 8라운드에선 졌지만 이후 19경기 연속 무패(15승 4무)로 조기 우승을 확정했다. 27라운드까지 49골을 쏟아내는 동안 실점은 17골에 그쳤다. 득점에선 16개 구단 가운데 2위였지만 실점은 공동 2위인 함마르뷔와 가이스보다 10골이나 적었다. 승리에 치중하고 실점은 최소화했다. 스포츠 세계에선 실력이 승부를 결정한다. 그만큼 냉정하고 솔직하다. 이런 논리가 정치 및 사회 분야로도 적용돼야 하지 않을까.

[지지대] 국가의 신뢰

최근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우리 국민 납치·감금 사건은 국제 범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했다. 구직을 빌미로 유인된 청년들이 불법 온라인 범죄조직에 의해 갇히고 폭력과 협박 속에서 탈출을 시도해야 했다. 미처 벗어나지 못하고 싸늘하게 죽음을 맞이한 청년의 사연은 분노를 자아냈다. 이런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것은 단순한 피해의 비극만이 아니라 위기 속에서 작동해야 할 국가 시스템의 본모습이었다. 국제사회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 예방하는 것은 물론이고 현지 공관의 인력과 장비, 본국과의 정보 전달망에 대한 신속한 연결이 생사를 가르는 변수였다. 9월에는 미국 조지아주에서 미 이민당국의 한국인 대규모 구금 사태가 발생했다. ‘동맹국’이라는 단어에 익숙한 우리는 그 충격이 클 수밖에 없었다. 300여명의 우리 국민이 타국에서 수갑을 찬 채 구금시설에 억류된 상황은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국가의 무게는 여기서 여실히 드러났다. 어느 나라에서나 완벽히 보호받을 수 있겠다는 굳은 신뢰가 깨진 것이다. 우리는 국민 보호라는 외교의 본질을 얼마만큼 실천 가능하게 만들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025 정상회의가 31일부터 우리나라에서 열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정상들이 대한민국에 모인다. APEC 정상회의 중 여러 정상회담이 예고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국제적 영향력과 외교력 증대의 기회가 되기 바란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번영을 위한 자리인 만큼 해당 지역을 시작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대한민국 국민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이제 여권의 색깔보다 그 안에 담긴 국가의 신뢰를 생각할 때다. 세계 곳곳을 누비는 한국인이 늘어난 만큼 우리의 외교는 더 세밀하고 체계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어디서든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는 국적’이 진짜 선진국의 자격 아닐까.

[지지대] 암표, 어쩔 수가 없나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33년 팬으로서 하루하루 행복함에 취해 있는 요즘이다. 7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1999년 이후 목말라 있는 ‘우승’의 기회가 보이기도 하고. 그런데 딱 한 가지가 아쉽다. 입장권을 구할 수 없어 야구장에 갈 수 없다는 것. 대전에서 열리는 플레이오프 1차전 티켓 예매일인 15일. 이날 예매는 KBO가 지정한 전문 회사를 통해 인터넷 홈페이지 예매와 전화 예매로 진행됐는데 예매 시작 시간인 오후 2시에 딱 맞춰 홈페이지에 접속했지만 대기순번 16만번째라는 표시가 떴다. 경기가 열리는 대전야구장이 최대 1만7천명 입장이 가능한 것을 감안하면 입장이 불가능한 순번이다. 전화 예매는 1시57분부터 먹통이다. 티켓 예매 사이트가 먹통이 되던 순간 이미 중고 거래 사이트인 ‘티켓베이’에는 1장에 30만원이 넘는 가격으로 표가 거래되고 있었다. 대구에서 열리는 플레이오프 3차전 티켓 예매 상황 역시 마찬가지다. 연인이나 친구와 둘이 야구 보러가면 100만원, 4인 가족이 가려면 150만원은 지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정부와 KBO는 앞서 암표 거래를 철저히 막겠다고 했지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내용을 보면 지난해 기준 티켓베이의 거래 건수 기준 상위 1%(441명)의 거래 건수는 12만2천745건으로 전체의 41.2%를 차지하고 거래 금액은 298억원에 달했다. 1인당 연간 278장, 평균 6천700만원어치를 거래한 것으로 온라인 암표상이 조직화·사업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국내 4대 프로스포츠 관련 온라인 티켓 암표 신고는 최근 1년 동안 4만건에 달하지만 적발은 겨우 4건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30년 전 암표 거래는 경기 당일 경기장 앞에서 은밀하게 이뤄졌지만 이제는 24시간 온라인에서 대놓고 거래된다. 관계기관은 언제까지 ‘눈 뜬 장님’으로 있을 것인가.

[지지대] 청산리대첩 105주년

만세운동으로 일제의 폭력에 맞서 독립투쟁을 선언했다. 손에 손잡고 태극기를 흔드는 물결이 온누리를 뒤덮었다. 많은 이들이 일제의 총칼 앞에서 쓰러져 갔다. 1919년 봄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3·1운동이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도도한 물결은 중국으로 이어졌다. 저항의 방식도 무저항에서 무장 투쟁으로 바뀌었다. 독립군 부대가 속속 결성됐다. 연해주와 만주 등지를 중심으로 일본군에 대항하는 소규모 전투들도 본격화됐다. 이런 가운데 중국 지린성 화룡현 청산리에서 독립군의 위대한 승리 소식이 들려왔다. 승전의 주축은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북로군정서와 홍범도 장군이 지휘하는 대한독립군 등 독립군 연합부대였다. 청산리대첩이 그랬다. 1920년 10월20일이었다. 그 늠름한 역사의 현장으로 더 들어가 보자. 일본군이 독립군을 에워쌌다. 일본군 기병부대가 산림 속으로 들어섰다. 이때였다. 숲에 매복해 있던 독립군이 일제히 사격을 가했다. 일본군 500여명이 궤멸됐다. 160리를 강행군해 일본군의 포위망도 뚫었다. 이 전투에서 살아 도망친 일본군 병사는 단 4명뿐이었다. 일본군은 상급 부대에 병력 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독립군은 이미 고지를 먼저 점령하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를 알 리 없는 일본군이 또다시 쳐들어 왔다. 1천명 대 1만명의 혈전이었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독립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싸움에 임했다. 물론 희생도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독립군의 기관총대장 최인걸은 기관총수가 모두 부상을 당하자 자신의 몸에 총열을 묶어 놓고 기관총을 쏘기도 했다. 최인걸 대장을 비롯해 후면 독립군 1소대는 전원 전사했다. 이틀 후 일본군은 사상자 1천여명을 내고 마침내 퇴각했다. 이후 적의 사상자는 3천300여명에 달했다. 독립군 사상자는 100여명에 그쳤다. 일본군 1만여명을 상대로 거둔 가장 큰 승전이자 항일 무장투쟁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망국 10여년의 원한에 사무친 독립군이 만주에서 거둔 최대의 승리였다. 105년 전 오늘의 이야기다.

[지지대] 고양이의 해

조물주가 동물들에게 모이라고 했다. 선착순으로 12마리까지 띠를 정해주겠다고 제안했다. 1등을 하고 싶던 쥐가 꾀를 내 고양이에게 시간을 늦게 알려줬다. 13번째로 들어온 고양이는 띠를 못 받았다.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고양이는 쥐를 철천지원수로 여겼다. 틈만 나면 잡아먹기 위해 별렀다. 쥐는 멀리서 고양이 그림자만 봐도 줄행랑을 쳤다. 이후로 고양이와 쥐는 앙숙관계로 지내고 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픽션이다. 그래서일까. 동아시아에서 내려오는 십이지(十二支) 동물에는 고양이가 빠졌다. 해마다 상징 동물을 두는 건 시간을 12가지 종류의 동물과 대응시키는 얼개에서 비롯됐다. 십이지 동물에는 개도, 토끼도 들어간다. 심지어 상상의 동물인 용도 포함된다. 그런데 고양이는 빠졌다. 십이지에 고양이가 들어갔더라면 ‘고양이의 해’나 ‘고양이띠’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학술적으로 국내에서 고양이의 해가 없는 나름의 배경은 있다. 이 같은 개념이 처음 생겨날 때 고양이가 흔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학계는 중국을 비롯해 동아시아 일대에 처음 고양이가 유입된 시기는 대략 기원전 200년 전후로 보고 있다. 그럴만도 하겠다. 서양은 어떨까. 스코틀랜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알 스튜어트가 ‘고양이의 해(Year of the Cat)’를 발표했다. 1967년 끝 무렵이었다. 이 노래에서 고양이의 해는 황도대를 가리킨다. 황도대는 태양이 1년간 천구를 가로지르는 외견상의 경로인 황도를 중심으로 한 천체 경도의 띠다. 태양과 달을 비롯해 행성들이 이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노랫말을 들어보자. “고양이의 해/아침에 그녀와 함께 있어요/그리고 당신은 선택을 포기하고 티켓을 잃어버렸습니다/그래서 나는 머물러야 해요/하지만 밤의 북소리는 여전히 남아 있어요/당신이 태어난 날의 리듬 속에서/그녀를 떠나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알잖아요.” 고양이의 해를 만들 방법은 없을까. 귓가로 흘려들으면서 문득 드는 단상이었다.

[지지대] 특검의 자충수

바둑에 자충수(自充手)라는 용어가 있다. 스스로 자신이 나아갈 수 있는 활로를 채우는 수를 뒀을 때, 쉽게 스스로 가져온 불리한 결과를 말한다. 바둑에서 가장 흔한 패배의 원인이자 모든 걸 수포로 돌릴 수 있는 수다. 양평군이 연일 울분을 토하고 있다. 양평에서 나고 자라 군민을 위해 봉사해 오던 한 공무원의 죽음 때문이다. 특검의 수사를 받고 온 다음 날 작성한 메모에는 강압, 무시, 수모, 멸시, 강요 같은 단어가 18번이나 나온다. 21장 분량의 유서에도 같은 취지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다. 동료 공무원, 지역주민, 정치권까지 가리지 않고 일제히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한다. 이런 목소리가 커진 건 특검이 스스로 불러온 자충수 때문이다. 특검 조사의 부당함을 말하다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수사의 정당성, 범죄 성립 여부 같은 것을 따지기 전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특검은 일단 이 죽음에서 잘못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문 밖 배웅을 이유로 강압수사는 없었다고 했다. 유서가 남겨진 변사 사건에서 유족의 반대에도 부검을 했다. 두 번째 자충수다. 통상 검찰·경찰의 수사지침들과 맞지 않은 행보다. 원본이 아닌 촬영본 유서를 유족에게 보여줬다. 석연치도, 일반적이지도 않은 행동으로 의혹을 남겼다. 그리고 15일, 고인이 서명하며 괴로웠다고 말한 조서의 열람·등사를 거부했다. 당사자 사망으로 변호인과의 수임 계약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거다. 고인이 왜 괴로워했는지 보여줄 조서를, 숱한 의혹이 쏟아짐에도 제공하지 않는 것 역시 통상의 검찰 수사와 차이를 보인다. 특검이 성과에 급급해 자충수를 뒀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검은 감찰 수준으로 수사 방식과 과정을 살피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러 번 둔 자충수는 그 정도로 거둘 수 없다. 지금이라도 객관적으로 이 죽음의 진실을 가려줄 별도의 조사 기관이 필요하다.

[지지대] 제2의 ‘아덴만 여명 작전’을 기원하며

2011년 1월21일 새벽 소말리아 앞바다. 대한민국 해군 청해부대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된 삼호해운 소속 선박 삼호주얼리호에 침투, 5시간여의 교전 끝에 선원들을 구출했다. 한국군이 해외에서 수행한 최초의 인질 구출 작전. 한국인 8명을 포함한 21명의 선원 전원을 구출한 이 작전은 당시 한민구 합참의장의 제안에 따라 ‘아덴만 여명(黎明) 작전’으로 명명됐다. 2025년 7월. “캄보디아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경북 예천 출신 대학생 A씨가 한 달 뒤 캄보디아 깜폿주 보코산 지역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현지 경찰은 검안에서 A씨의 사망 원인을 ‘심장마비(고문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로 기재했다.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국민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고 동남아시아 국가 전반에 대한 불신과 함께 캄보디아 감금·납치 피해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 외교부 조사 결과, 캄보디아로 떠난 뒤 연락이 두절되거나 범죄에 연루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국민 수는 수십명. 범죄 조직에서 극적으로 벗어난 구조자들의 입에서는 감금과 구타는 물론이고 전기고문까지 당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동남아에 납치 감금돼 살해된 한국인의 피해 내용을 다룬 영화 ‘범죄도시’ 실사판이 캄보디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덴만 여명 작전 14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이 또다시 자국민 보호 역량을 입증해야 할 시험대에 섰다. 구출 작전을 펼칠 여건은 과거보다 좋지 않다. 작전 무대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선박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아닌 캄보디아 전역. 구조를 요하는 대상자도 8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상황을 탓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국가의 존재 목적과 근본적인 사명. 바로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대한민국의 국격과 해군의 위상을 전 세계에 떨친 아덴만 여명 작전이 다시 한번 캄보디아에서 재현되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간절히 기원한다.

[지지대] 인천 국감, 정쟁만 하면 시민 외면

국정감사(國政監査). 국회가 국정 운영 전반에 관해 실태를 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입법 활동과 예산 심사를 위한 필요한 자료와 정보를 획득하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국정에 대한 감시·비판으로 잘못된 부분을 적발 및 시정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대표적 기능인 입법 기능으로 해마다 정기적으로 이뤄진다. 이 같은 국회의 국정감사는 정부 등 수감 기관에 대해 여러 가지 수인의무(受忍義務)를 부여하고 이를 보장하기 위한 강제력도 가진다. 인천에서는 주로 2년에 한 번씩 인천시와 인천시경찰청 등에 대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이뤄져 왔다. 올해는 20일 열린다. 2023년 이후 2년 만이다. 하지만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국회의원들의 정쟁만 벌어지다 정작 인천시의 정책 현안 등은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있다. 민주당은 2024년 12·3 비상계엄 당시 인천시청 청사 폐쇄 여부, 유정복 인천시장의 당일 일정 및 동선 등을 캐물으려 한다. 반대로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의 공격으로부터 같은 당인 유 시장의 엄호에 나설 것이다. 민주당은 또 4월 유 시장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출마 당시 공무원을 동원했다는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에 대한 경찰 수사도 이슈화할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국민의힘은 경찰의 수사가 2026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노린 의도적 수사라는 주장을 펴며 유 시장의 방어에 나설 예정이다. 올해 국정감사는 사전적 의미대로 인천 시정에 대한 감시·비판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시민들은 국회의원이 인천까지 와서 2~3시간 동안 얼굴을 붉히며 정치적 말싸움을 하다 갑자기 화해해 함께 점심 먹으러 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지대] 찌아찌아족과 한글

눈을 의심했다. 낯선 나라 시골 거리에 한글로 쓰인 간판이 수두룩했다. 교통표지판도 한글투성이었다. 20여년 전 찾았던 인도네시아 변방의 추억이다. 그곳의 지명은 술라웨시주 부톤섬 남부 바우바우였다. 이곳에 사는 주민들을 찌아찌아족이라 부른다. 700개가 넘는 이 나라의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다. 찌아찌아는 이들의 표현으로는 ‘아니요’란 뜻이다. 인구는 9만3천여명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최근 서양 언론으로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민족 정체성 보전에 성공해서다. 그것도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자인 한글을 도입해 운용해서다. 한글이 이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간 시기는 2009년이다. 이들은 고유의 말을 쓰지만 수천년 동안 그 말을 표기할 자체 문자가 없었다. 그러다가 부족장 회의를 거쳐 한글을 문자체계로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한국에서 파견된 교사와 한국 연수를 거친 현지인 교사 등이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옛 한글과 현대의 한글을 섞어 그들만의 독특한 문자 체계도 만들고 있다. 각종 전승을 통해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 등이 이를 비중 있게 다뤘다. 이 신문은 “사라져 가던 언어에 생명을 줬다”고 표현했다. 구전으로 내려오던 고유한 언어를 한글로 기록하고 공공기관 등 일상에도 정착됐다고도 보도했다. 사실 찌아찌아족과 한글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음절 위주 언어인 한국어와 발음이 비슷하다. 이후 15년이 지난 현재 찌아찌아족 아이들은 학교에서 한글로 조상들의 언어를 익히고 있고 이를 위한 자체 교과서도 존재한다. 한글을 받아들여 고유어와 문화를 보전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한글을 가르칠 교사가 부족해 한때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2020년 한글로 된 찌아찌아어 사전이 발간되면서 다시 추진동력을 얻었다. 이들은 한글을 토대로 자신들의 올곧은 지혜와 조상들의 역사, 기억 및 부족의 정체성 등을 다음 세대에 전수하고 있다. 언어가 사라지면 정체성도 함께 사라진다. 이 같은 명쾌한 진리를 구체화하는 현장에 한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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