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85초 남은’ 지구 종말?

무섭다. 지구라는 행성이 85초만 지나면 멸망한다. 물론 실제는 아니고 설정일 뿐이지만 그래도 끔찍하다.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라는 지표가 알려주는 운명의 시간이 그렇다. 지구 종말 시계는 멸망까지 남은 시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외신에 따르면 미국 핵과학자회는 지구 종말 시계 시간을 자정 85초 전으로 앞당겼다고 발표했다. 해당 지표가 만들어진 1947년 이후 가장 자정에 근접했다. 해당 지표에서 자정은 의미심장하다. 자정은 더 이상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시점임을 보여준다. 자정에 초침이 가까워졌다는 건 그만큼 지구가 멸망에 다가갔음을 뜻한다. 미국 핵과학자회는 핵전쟁의 위협과 함께 무분별하게 확산 중인 인공지능(AI) 기술을 주요 위험 요소로 지목했다. 지난해는 어땠을까. 자정 89초 전이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자정에 4초 더 가까워졌다. 해당 지표가 처음 만들어진 1947년에는 자정까지 7분이 남아 있었다. 이후 옛 소련이 핵폭탄 실험에 처음 성공한 1949년에는 자정 3분 전으로 악화됐다. 인류가 멸망에서 가장 안전했던 해는 미국과 소련이 전략핵무기 감축에 합의한 1991년으로 자정 17분 전이었다. 이후 2020년 100초 전으로 유지됐다가 2023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핵무기 사용 우려가 커진 점을 반영해 90초로 가까워졌다. 미국 핵과학자회는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AI 도구 사용이 급증하면서 잘못된 정보와 가짜 뉴스를 증폭시킨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상이 지구촌 위협에 대처하려는 노력을 가로막는 데다 인류가 직면한 재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오랜 시간 힘들게 구축한 국제적 합의가 무너지면서 강대국 간 승자독식 구조 경쟁이 가속화하고 국제협력을 저해하고 있는 셈이다. 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이 장치가 문명의 이기(利器)가 돼야만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지구 멸망 여부를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지구 종말 시계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묵직하다.

[지지대] 넘쳐나는 오은영 박사

“내가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고민거리를 덜어준다는 명분으로 상대방이 내놓는 말. 조언(助言)이다. 자격증도 필요 없다. 그저 뚫린 입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그 말이 옳든 그르든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달콤한 말. 예의상 건넨 공감의 신호는 도움을 주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와중에 호기를 부추기는 술까지 곁들여지면 자칭 조언자는 어느새 오은영 박사로 빙의돼 있고 상대방은 금쪽이 신세로 전락한다. 물론 조언의 긍정적인 효과를 무시하는 건 아니다. 타인의 조언으로 인해 인생 역전에 성공한 사람도 분명 존재하니. 문제는 훈수를 두는 이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직장 상사, 학교 동창, 동네 형. 심지어 어쩌다 술자리 몇 번 가진 게 전부인 그냥 아는 사람까지. 공감과 경청 없이 남이 온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했던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며 나서는 이들.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잡지식을 마치 정답인 양 너무나 쉽게 제시하는 프로 참견러들. 고민에 되레 고민을 더하게 만드는, 조언이라기보다 발암 돋는 잔소리일 뿐이다. 곧 있으면 민족 최대 명절 설이다. 대한민국에서 남 걱정 대잔치(?)가 가장 격하게 펼쳐지는 날. 과거 ‘에듀윌’이 성인 29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전체 응답자 중 82%가 설 연휴에는 ‘가족 모임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고 응답했다. ‘명절에 가족이나 친지 모임이 부담스러운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취업·결혼 등 각종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라는 답변이 1위로 꼽혔다. 취업 못한 조카, 미혼인 이모, 투자에 실패한 외삼촌. 올해도 걱정해 줄 타깃이 넘쳐나겠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인척과 소소한 담소나 나누는 건 어떨까. 그래도 굳이 누군가 당신에게 조언을 구한다면 면도날 다루듯 신중히 입을 떼길 추천한다. 당신이 무심코 던진 말에 상대방이 베일지 모르니.

[지지대] 결심이 필요한 순간

“무슨 수를 써서라도 투기 잡겠다. 버티는 것보다 파는 것이, 늦게 파는 것보다 일찍 파는 것이 유리할 것.” 이재명 대통령이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조치 종료’와 관련해 3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밝힌 의지다. 최근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조치 종료가 뜨거운 관심사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양도소득세(타인에게 소유권을 넘길 때 발생하는 양도차익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에 가산세율을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2005년 처음 도입될 당시에는 1세대 3주택 이상 보유자에게 적용됐지만 2007년에는 1세대 2주택자까지 대상이 확대됐다. 이후 폐지와 부활, 유예 조치를 반복해온 이 조치는 5월 다시 시행된다. 이와 관련, 이 대통령은 연일 강경한 메시지를 내놓으며 유예 연장은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이날 역시 이 대통령은 SNS를 통해 “이전에도 실패했으니 이번에도 실패할 것으로 기대하고 선동하는 분들께 알려 드린다. 협박이나 엄포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필요하고 유용한 일이어서 권고드리는 것이다. 이번이 마지막 탈출 기회”라고 강조했다. 6년 전인 2020년.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주택을 여러 채 소유한 경기도 4급 이상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원 등에게 실거주 외 주택을 모두 처분하도록 권고했다. 다주택자는 승진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면서다. 고위 공직자에 대한 다주택 처분 조치는 지자체 가운데 처음이었으며 2급 이상 공직자에게만 권고한 문재인 정부안보다도 강력한 조치였다. 당시 경기도 소속 4급 이상 공직자 332명 중 다주택자는 28.3%(94명)에 달했고 이들의 당혹감과 불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실제 2021년 2월 인사에서 4급 승진 후보자 132명 중 다주택 보유자라고 신고한 35명은 승진 대상에서 배제됐다. 다주택자에 대한 이 대통령의 메시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강경하다. 이제는 다주택자들이 ‘결심(決心)’해야 할 순간이 온 듯하다. 실제 살고 있지 않은 집과 이별할지, 혹독하겠지만 끝까지 버티고 버틸지.

[지지대] 얼어붙은 미네소타

미국인 사이에선 미네소타의 겨울과 애리조나의 여름 중 어떤 게 더 견디기 힘드냐는 질문이 오갈 만큼 미네소타의 겨울은 춥기로 유명하다. 미국 중북부에 있는 미네소타주의 최대 도시 미니애폴리스가 지난달 7일(현지 시간) 불법 이민자 단속 과정에서 37세 백인 여성이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더 추운 겨울을 맞았다. 특히 같은 달 24일 연방 요원의 총격으로 지역 의료인이 사망하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지역민 및 연예계와 스포츠계 등에서도 ‘공권력 남용’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26일 할리우드 매체 데드라인 등에 따르면 배우 내털리 포트먼은 선댄스 영화제에 ‘ICE 퇴출’을 요구하는 배지를 착용하고 등장해 “끔찍하다”고 표현했다. 또 28일 ESPN에 따르면 NBA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빅토르 웸반야마는 “매일 아침 일어나 뉴스를 볼 때마다 공포를 느끼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민간인 살해가 마치 용납될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치부하거나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상황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근 2건의 참혹한 총격 사건이 발생한 미니애폴리스는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있었던 지역이다. 당시 경찰의 과잉 진압에 목이 눌린 채 “숨 쉴 수가 없다”는 말을 남기고 숨진 조지 플로이드 사건은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구호를 내건 전국적인 시위와 운동으로 번졌다. 그만큼 이번 사건은 미니애폴리스 시민들에게는 큰 상처로 각인되고 있다. 무차별 이민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가 미네소타는 물론이고 미 전역으로 확산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프레티 사망 당시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엑스(X·옛 트위터)에 “폭력적이고 훈련받지 못한 경찰관들을 미네소타에서 즉시 철수시키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ICE는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지난해 9월 조지아주의 현대자동차 공장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을 구금한 바 있다. 체포된 이들 중 317명이 한국인으로 밝혀지면서 국내에선 반미 감정이 고조되기도 했다. 과연 ICE는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총을 꺼내 들어야 했을까. 시민과 우방의 국민에게 총격을 가하고 구금하는 행위는 혹독한 추위에 노출된 미네소타인들을 더욱 얼어붙게 했다. 다만 선을 넘은 공권력은 결국 심판받을 것이고 심판은 이미 이곳 한국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지지대] 中 두 장성의 명암

같은 시대를 살면서 이런 일이 발생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누구는 살아 있지만 척결당했고 누구는 세상을 떴지만 추앙받고 있어서다. 이웃 나라에서 벌어지는 드라마 같은 상황이 그렇다. 자세히 들여다보자. 두 인물 중 한 사람은 장유샤(張又俠)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이다. 또 다른 인물은 랴오시롱(廖錫龍) 전 중앙군사위원 겸 인민해방군 총후근부장이다. 이들은 모두 인민해방군의 엘리트 장성이다. 1970년대 베트남과의 전쟁에도 참전했던 베테랑이다. 이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외신에 따르면 새해 들어 장유샤가 부패 혐의로 숙청됐다. 공산당이 통치하는 국가에서 숙청은 목숨을 잃는 것보다 더 치명적이다. 살아 있어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서다. 인민해방군 기관지 해방군보는 장유샤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책임제도를 짓밟고 훼손했다고 날을 세웠다. 군에 대한 당의 절대적 지도력에 영향을 미치는 정치·부패 문제를 부추기고 당의 통치 기반을 위태롭게 했다고도 지적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랴오시롱은 별세한 뒤 우리의 국립현충원에 해당되는 바바오산 혁명묘지에 안장됐다. 런민일보는 랴오시롱의 투병 기간 시진핑 국가주석과 리창 총리 등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이 병문안했다고 전했다. 한정 국가부주석과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도 애도를 표시했다고 덧붙였다. 관영 신화통신도 오랜 기간 충성을 다한 공산주의 투사, 인민해방군의 탁월한 지휘관이었다고 보도했다. 인민해방군은 전통적으로 공산당의 군대인 탓에 전·현직 당 주요 인사들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다. 시진핑 집권 이후 인민해방군에 대한 견제가 지속되고 있는 배경도 장악력 강화에 무게가 실린다. 공산주의는 어느 정당보다 보여 주기식 정치에 능하다. 특히 당 간부의 부정부패에 대해선 숙청이란 표현을 사용할 정도로 엄정하다. 중국도 예외는 아니다. 외교가에선 시진핑 1인 체제의 중국 지도부가 장유샤 숙청 사건에 따른 부정적인 여파를 잠재울 목적으로 랴오시롱을 공산주의 전사로 띄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꼭 남의 나라 만의 지나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

[지지대] 볼펜 돌리기 단상

엄지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 위에 얹혀 놓고 회전을 시도한다. 가운뎃손가락이 중심 축이다. 그러면 빙글빙글 돌아간다. 볼펜 돌리기 이야기다. 언제부터 비롯됐을까. 필자의 기억을 소환하면 1970년 중반으로 추정된다. 공부에 집중할 수 없거나 뭔가가 확연하게 생각나지 않으면 돌리곤 했다. 거리를 걸어가면서도 그랬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늘 자제를 당부했다. 그래도 상당수 학생은 지키지 않았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서다. 담임선생님은 결국 포기했다. 그리고 학생들이 돌리다 떨어뜨리지 못하게 신경을 쓰곤 했다. 시험기간에는 볼펜을 떨어뜨리거나 소음이 발생할 수 있으니 하지 말라는 잔소리도 들어야 했다. 그게 당시 일선 중고교 수업시간의 풍속도였다. 왜 그랬을까. 불안, 긴장이나 지루함을 분산하고 통제감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 반복 행동(피젯 행동)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분석이 우세했다. 가만히 있기 어려운 에너지 상태(과잉활동성)에서 작은 움직임으로 에너지를 소비하려는 경향도 원인으로 제시됐다. 심리학자들은 다리를 떨거나 손가락을 꼼지작거리거나 손톱을 깨무는 행동을 비슷한 사례로 들었다. 불안한 상황에서 몸의 움직임을 조절하려는 시도로 볼펜을 돌리는 행동이 나타날 수도 있다. 볼펜 돌리기를 영어권에선 ‘Pen Spinning’이라 한다. 레퍼토리의 증가, 고난도 기술 도전, 속도·횟수 경쟁, 프리 스타일 등으로도 즐긴다. 전용 펜이 있지만 상용 펜을 개조해 돌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고성능 개조 펜의 등장으로 기술도 다양하게 발전했다. 회전수, 연속 횟수 기록을 낼 때는 펜 길이가 20㎝ 이내로 정해지는 경우도 있다. 세계대회가 있고 일본에서 협회가 생긴 다음 한국, 프랑스, 미국, 태국 등지에서도 협회가 생겨났다. 기술도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올리기, 내리기, 역올리기, 역내리기 등이 있다. 요즘 MZ세대가 볼펜 돌리기를 즐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비붐세대의 사춘기 시절 볼펜 돌리기가 50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부활하고 있다. 습관도 돌고 도는 것일까.

[지지대] 재외동포청 ‘서울 이전’ 논란

요즘 인천이 재외동포청 이전 논란으로 시끌시끌하다. 김경협 재외동포청장이 한 언론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청사의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이전 검토를 밝히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당시 김 청장은 “업무 특성상 외교부와 긴밀히 협의해야 할 사안이 많은데 너무 떨어져 있어 이동하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며 청사 이전 논리를 폈다. 재외동포청이 외교부와 얼마나 긴밀하게 협의해야 할 사안이 많은지는 잘 모르겠다. 김 청장의 논리대로라면 제주도에 있는 외교부 산하 한국국제교류재단이나 성남의 한국국제협력단 등도 모두 광화문으로 가야 하는 걸까. 이 밖에 정부 각 부처의 외청과 산하기관 모두 원활한 업무 협의를 위해 본청의 지근거리로 옮겨야 하는 셈이다. 김 청장의 주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하고 전국을 5개의 초광역권(5극), 3개의 특별자치도(3특)으로 재편하는 ‘분권형 성장전략’ 추진과도 어긋나는 발언이다. 앞선 정부에서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해 추진한 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정책과도 궤를 달리하는 것이다. 특히 인천에 재외동포청은 단순한 정부 산하기관이 아니다. 재외동포청은 최초의 이민자를 떠나 보냈던 이산의 도시 인천이 재외동포의 수도로 거듭난 의미를 지닌다. 1902년 12월22일 인천 제물포항에서 첫 이민선이 떠나고 120여년이 지나 전 세계 193개국 700여만명의 재외동포가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고 있다. 이민자의 도시 인천이 재외 한인 사회의 실질적·정서적 구심적 역할을 맡는 역사적 상징성이자 도시 정체성을 품게 된 것이다. 재외동포청이 청사 임대료 문제나 재외동포의 이용 불편 등을 우려한다면 그 답은 청사 이전이 아닌 외교부, 인천시 등과의 소통과 협의를 통해 찾아야 한다. 한겨울에 애꿎은 시민을 밖으로 나오게 해 목소리를 높이게 만드는 것이 재외동포청이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지지대] 잊히지 않을 목소리

반세기가량 쌓인 응어리는 개인의 고백을 넘어 시대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 증언이 됐다. 경기도와 도여성가족재단은 다큐 영상 ‘2025 기지촌 여성 인권기록 아카이브-잊히지 않을 목소리’를 이달 초 공개했다. 2024년 ‘경기도 기지촌 여성 피해자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조례’가 제정된 데 따라 추진된 ‘기지촌 여성 인권기록 아카이브 사업’을 통해서다. 다큐에선 전쟁과 분단의 거대한 역사 속 그늘에 가려져 있던 기지촌 여성들의 삶이 생생하고 또렷하게 기록됐고 총괄백서도 제작됐다. 어쩔 수 없이, 혹은 영문도 모른 채 그곳으로 흘러 들어간 여성들의 삶은 비참했다. 국가는 한미동맹 유지와 안보 강화란 명분 아래 기지촌의 성매매를 묵인·조장했고 성병 검진 의무 등 인권을 침해했다. 한편으론 이 여성들을 애국자로 칭송하며 달러벌이에 나서도록 부추겼다. 동두천시 상봉암동엔 낙검자 수용소(성병관리소)도 생겼다. 미군이 ‘저 여자’라고 하면 이곳에 끌려가 페니실린을 맞았다.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한 1950년대 이후 의정부와 동두천, 평택, 파주 등에 형성된 기지촌에서 여성들이 겪었던 일이다. 역사는 기록되고 시대의 반성도 뒤따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지난해 9월5일 주한미군 기지촌에서 미군 ‘위안부’ 생활을 한 여성 117명은 미군 당국을 공식 고발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국가에 의한 여성 폭력의 상징이자 역사적인 현장인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는 지자체와 정부, 관계기관의 눈치보기 아래 500일 넘게 철거와 보존 사이 애타는 줄타기 중이다. 고령이 된 여성들은 그럼에도 꿋꿋하게 자신들의 삶을 드러내며 사회의 폭력과 편견에 맞서 저항한 주체임을 알리고 있다. “우리는 끝까지 갈거예요. ...빨리 돌아가시지 말고 끝까지 다 싸웠으면 좋겠어요.” 영상 말미에 여성들의 삶을 증언하는 데 함께한 연구자와 운동가들의 음성이 더욱 애절하게 귓가에 남은 이유다.

[지지대] 지방선거가 중요한 이유

2022년 6월 1일. 우리는 지역에서 주민을 대표해 발로 뛸 ‘일꾼’을 우리 손으로 뽑았다. 4년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 6월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지방선거는 대통령선거나 국회의원선거(총선)와는 차이가 있다. 중앙정부를 책임지거나 이를 감시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라 지방자치를 책임질 생활밀착형 일꾼을 뽑는 선거이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2008년 6월4일까지 태어난 사람, 즉 유권자들은 4개월여 뒤 선거에서 인천시장, 인천시교육감, 군수·구청장, 광역의원(시의원), 광역의원 비례, 기초의원(군·구의원), 기초의원 비례 등 모두 7장의 기표지에 도장을 찍어야 한다.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있다면 8장. 이 한 장의 기표지가 자신의 삶 및 공동체의 4년을 바꿀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참일꾼을 뽑아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의 동네가 조금이라도 발전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뽑은 이 일꾼은 내 집 앞에 쓰레기가 쌓이지 않도록 해야 하고 쌓였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 같은 대(對)시민 서비스는 벌써 여덟 차례 지방선거를 통해 많이 좋아졌다. 다만 걱정도 있다. 인천과 경기 등 수도권은 좋게 말해 ‘전국 민심의 바로미터’로 불린다. 하지만 사실은 ‘중앙정치 따라가기’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중앙정치의 흐름이 아니라 내가 사는 동네 발전을 위해 일할 일꾼을 뽑아야 하는데도 말이다. 이미 이번 지방선거는 2025년 치러진 대선의 연장선일 것이란 예측이 나오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성숙한 시민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책임질 수 있는 공약인지 잘 살펴봐야 한다. 더욱이 정당 추천 없는 교육감선거의 경우 유권자들은 여전히 후보자가 누구인지, 정책과 공약은 무엇인지 잘 몰라 ‘깜깜이 투표’가 이뤄지기도 한다. 투표소로 가기 전 선거관리위원회가 보낸 공보물이나 인터넷에서 선거구별 후보자 정보를 꼼꼼히 볼 수밖에 없다. 우리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세상을 움직이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다. 이번 선거가 진정한 지방자치의 축제로 이어지길.

[지지대] “인생은 살아내야 하는 것”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청년 시절에는 경제적인 풍요로움으로 부러울 게 없었다. 그러다 한순간 모든 게 훅하고 사라졌다. 노름에 모든 재산을 송두리째 잃었다. 아내는 그를 말리다 결국 포기하고 코흘리개들만 남긴 채 훌쩍 떠났다. 그 충격에 아버지마저 세상을 떴다. 한번도 돈을 벌어본 적이 없었던 사내는 생계를 위해 그림자 극에 푹 빠진다. 어느 날 군인이 들이박쳐 시신이 즐비한 전쟁터로 끌고간다. 194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펼쳐졌던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영화 ‘인생’의 얼개다. 농부가 된 사내가 소를 끌고 가는 장면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농부도, 소도 다 늙었다. 밭갈이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농부의 다리에는 진흙이 잔뜩 묻어 있다. 농부와 소의 이름이 모두 푸구이(福貴)다. 마지막에서 이름을 통해 반전이 나온 셈이다. 국내에서도 개봉됐다. 1995년 1월26일이었다. 원작은 중국을 대표하는 전후세대 소설가 위화(余華)의 ‘살아간다는 것’이다. 원작은 ‘훠저(活着)’다. 여기서 ‘저(着)’의 품사는 동작이나 상태의 지속을 나타내는 조사다. 직역하면 ‘살아가다’나 또는 ‘살아있다’ 등이다. 영화에서도 이를 인용한 대사가 나온다. 문화대혁명 때 박해를 받고 죽음을 생각하는 지인에게 푸구이의 아내가 “살아가야 해요” 혹은 “살아있어야 해요”라고 나지막하게 읊조린다. 영화에는 문화대혁명과 함께 대륙을 아비규환의 대혼돈으로 몰아넣었던 대약진운동이 녹아 있다. 적게는 2천500만명, 많게는 5천만명이 이 참극으로 굶어 죽었다. 이 운동이 시작되고 인민공사라는 이름의 집단농장이 전국에서 꾸려졌다. 주인공의 20마지기 토지도, 두 마리 양도, 밥을 짓던 쇠솥도 모두 공출당하고 공동 경작에 공동 취사, 그리고 강철 제조를 목표로 하는 농촌 공업활동이 시작된다.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배반할 때 대가는 누가 치러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60년이 지난 현재도 유효하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피동적인 표현은 ‘살아낸다’는 능동적인 동사로 수정돼야 한다. 겨울밤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뜬금없이 드는 단상이 씀바귀보다 더 쓰다.

[지지대] 푸에블로호 나포사건

그해 겨울은 유난히 매서웠다. 두 뺨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면도날보다 날카롭고 예리했다. 입김을 불면 금방 고드름으로 변할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었다. 이런 가운데 당시 초등학생인 필자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귀를 의심했다. 미국 해군 정보수집함 1척이 동해 공해상에서 북한 해군에 의해 나포됐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후 미국 해군 승무원 83명이 11개월간 억류됐다. 미국은 유엔에 제소했고 군사적 대응(항공모함 파견 등)과 북한과의 비밀협상도 병행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영해 침범을 인정했다. 승무원 송환에도 합의했다. 미국은 11개월 뒤 판문점에서 사과문에 서명했다. 승무원 82명, 시신 1구 등을 송환하면서 사건은 마무리됐다. 1968년 1월23일 일어난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의 서사다. 미국 해군 역사상 외국 군대에 의한 군함 피랍의 첫 사례였다. 푸에블로호는 현재까지도 북한 평양 대동강에서 전시되고 있다. ‘푸에블로’라는 외국어도 생소했다. 스페인어로는 ‘우리 동네’ 또는 ‘고향’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미국 뉴멕시코나 애리조나, 텍사스 등지에 거주하는 원주민을 부르는 명칭이기도 했다. 실제로 미국 콜로라도주 남동부에 이 같은 지명의 작은 도시도 있다. 이 사건으로 북미 관계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본격적인 냉전시대의 개막이었다. 앞서 같은 해 1월21일에는 북한 무장간첩이 서울 한복판을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124군부대 무장게릴라 31명이었다. 이들은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새벽을 틈 타 서울로 침투했다. 북한은 대남 적화공작을 위해 유격전 특수부대를 조직해 습격을 준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과 민간인 등이 희생됐다. 일당 가운데 김신조는 생포되고 31일까지 28명이 사살되면서 마무리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북한의 비정규전에 대비하기 위해 향토예비군 창설을 서둘렀다. 남북관계는 최악의 긴장 사태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안보 현실은 이들 사건들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까. 오래된 책갈피에서 케케묵은 사건을 꺼낸 까닭이다.

[지지대] 교학상장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 4번 출입구에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라는 글귀를 담은 커다란 액자가 걸려 있다. 교학상장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서로를 성장시킨다’는 진리를 담은 말로 중국 오경(五經)의 하나인 ‘예기(禮記)’ 중 ‘학기(學記)’ 편에 등장한다. 흔히 교육은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교학상장이라는 말은 교육이 결코 일방적일 수 없음을 일깨워준다. 누군가를 가르쳐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공통적으로 느끼는 게 있다. 내가 완벽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막상 설명하다 보면 막히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가르치는 과정은 본인의 지식 체계를 가장 철저하게 점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역설적으로 완성된 앎을 증명하는 것이 가르침이다. 학습자의 눈높이에 맞춰 복잡한 이론은 정리하고 예상치 못한 질문에 답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가르침은 단순히 지식을 베푸는 행위가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의 앎을 정교하게 다듬는 ‘최고의 학습법’이 되는 것이다. 그 이유에서인지 유명 수학 강사가 ‘남을 가르치듯이 공부하라’고 외쳤나 보다. 배움은 스승에게 자극이 되기도 한다. 배우는 이의 열정과 참신한 질문은 가르치는 이에게 새로운 영감과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결국 배움이라는 행위는 스승의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함께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동행의 과정임을 느끼게 한다. 교학상장은 요즘처럼 지식의 수명이 짧고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는 ‘소통’을 뜻하기도 하다. 교육뿐만 아니라 다양한 방향에서 그 참뜻을 되새겨 볼 일이다. 병오년 1월,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내 몸이니 잘 안다고 자신했던 건강과 서로 잘 안다고 생각했던 가족에서 직업까지, 안다고 생각한 것들을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걸까. 올해는 교학상장의 뜻을 새기며 좀 더 성장하는 한 해가 되길 바라본다.

[지지대] 한파 속 노숙인 보호책, 이제 변해야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최강 한파가 일주일여간 이어질 예정이다. 모두가 강추위를 걱정하겠지만 이 시기가 가장 혹독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지하철역을 비롯한 거리 곳곳에서 살아가는 노숙인들이다.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노숙인은 보호시설이나 쉼터에서 지내는 ‘생활시설 노숙인’과 그조차 없이 거리에서 지내는, 한파 때 사고 위험이 큰 ‘거리 노숙인’으로 나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과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8월 공개한 노숙인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경기도 1천84명, 인천에 538명의 노숙인이 있으며 거리 노숙인은 경기도 184명, 인천 96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거리 노숙인이 위험한 이유는 시설에 머물기를 스스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거리 노숙인의 상당수는 알코올의존성이 강한데 보호시설에서는 금주, 엄한 단체생활 규칙을 요구하기에 갈등이 빚어지고 시설 입소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매년 최강 한파가 몰아칠 때면 지하철, 버스터미널 등이 있는 지자체는 거리 노숙인과 쫓고 쫓기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노숙인 동사(凍死) 등 사고를 막고자 거리 노숙인을 찾아 헤매고 노숙인은 이들을 피해 더 깊숙이 숨어든다. 문제는 ‘본인이 시설에 있기 싫다는데 뭘 더 어떻게 하란 것이냐’라는 반문에 기대 노숙인 보호 정책엔 변화가 없고 매년 같은 현상과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사연을 포함해 사회복지 분야 전문가들은 수년 전부터 노숙인을 ‘비가시화 대상’, 어디론가 치워야 하는 존재로 규정하고 일률적 수용을 강제하는 보호 정책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하고 있다. 청년 거리 노숙인도 등장하는 만큼 거리 노숙인 시설 수용 과정에서의 사생활 보호, 알코올의존증 치료와 자립 지원 병행 등 달라진 정책을 고안, 수행해야 할 시기다.

[지지대] 각자가 매기는 가치의 차이

아이브 장원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해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은 인천 계양구 한 디저트 가게를 방문했다. 두바이쫀득쿠키, 그게 뭐라고. 한눈에 봐도 길어 보이는 줄은 지도 앱으로 확인해 보니 188m였고 줄을 설까말까 고민하던 찰나에도 계속 길어져 결국 대열에 합류했다.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디저트 가게 안내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줄 맨 끝자락으로 다가와 “4시간 정도 예상하셔야 해요”라고 외치자 2명이 대열에서 이탈했다. 설마 4시간이나 걸릴까 싶어 기다림을 시작했지만 30분에 고작 20m를 이동했음을 알아차렸을 땐 후회가 몰려왔다. 이미 흘러버린 30분이 아까워 계속 기다렸고 결국 줄을 선 지 2시간50분이 지나서야 두쫀쿠를 손에 쥐었다. ‘장원영은 그 이름값만으로도 많은 사람이 3시간을 길거리에 투자하게 할 만큼 대단하구나’라고 막연히 생각하며 처음 두쫀쿠를 입에 넣는 순간, 장원영 역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인증을 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유명인임에도 SNS를 통해 인증할 땐 얼마나 자신이 있었으면 그랬을지마저 공감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누군가는 긴 줄을 보며 촬영하기도 했고 또 누군가는 지나가며 “난 절대 저렇게 못해”, “저 정도는 아니지 않나”라고 얘기했다. 일부러 들리게 말했겠냐만 들렸고 그 말 속에는 은근한 자주적 판단이 섞여 있다고 느꼈다. 누군가는 ‘굳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긴 줄을 선 사람들은 두쫀쿠가 아닌, 두쫀쿠에 매긴 가치에 투자를 한 것이리라.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기준으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 운동, 공부, 또 누군가는 한잔의 커피와 긴 대화에 시간을 쓰기도 한다. 스스로 의미가 있다고 믿어서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타인이 세운 가치 판단 기준을 너무 쉽사리 재단한다. “그럴바에 차라리...” 같은 말로. 오랜 기다림 끝에 그들이 손에 쥔 두쫀쿠는 단순한 쿠키가 아니라 추억이자 경험이며 일상을 구성하는 소재다. 사람은 모두 자신이 믿는 가치를 선택, 투자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이 모여 하루가 되고 결국 그 사람이 된다. 누군가의 시간이나 노력을 쉬이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는 그 사람의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지지대] 묘청의 난, 기억해야

나라를 세운 지 무려 217년이나 지났다. 위기가 찾아왔다. 중앙 집권세력과 지방분권이 대립했다. 정치는 불안정했고 권력 다툼도 이어졌다. 문벌귀족 중심의 개경(개성)과 서경(평양) 세력의 갈등이었다. 나라 밖 정세도 만만찮았다. 대륙에선 금나라가 급성장했고 여진족의 침입도 잦았다. 고려 중기의 서사다. 이런 가운데 수도를 개성에서 평양으로 옮기자는 서경천도운동이 시작됐다. 승려이자 문신인 한 인물을 중심으로 개경 중심의 유교적 정치체제에 반발해 깃발을 들었다. 금나라 정벌론과 서경천도론도 내세웠다. 평양성 축성과 성곽 개수도 진행됐다. 그 시작이 1135년 1월19일 아침이었다. 역사는 이 사태를 주도했던 승려의 이름을 따 ‘묘청의 난’으로 정리했다. 1년여간 이어졌지만 실패로 결말이 맺어졌다. 묘청의 행적을 살펴보자. 그는 서경파 신하의 추천으로 인종의 왕사로 임명됐다. 관료들이 참석하는 회의에서 서경천도론을 펼쳤지만 김부식 등 보수세력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다. 당시의 정치제체를 오늘날의 버전으로 따지면 개성 세력은 유교를 숭상하는 기득권이었고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자는 측은 불교를 신봉하는 개혁세력이었다. 묘청은 유교를 신봉하는 관료의 사대적이고 유약한 태도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중국처럼 왕을 황제라고 부르자는 ‘칭제건원’도 주창했다. 연호도 중국의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사건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고려 내부의 개혁 요구와 지방 세력의 성장, 그리고 불교적 왕권 강화에 대한 시대적 흐름을 반영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천 년 이래 대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독립당 대 사대당의 싸움이었고 진취사상 대 보수사상의 싸움으로 규정했다. 우리의 종교, 학술, 정치, 풍속 등이 사대주의의 노예가 된 원인이 바로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실패한 데 있다고 지적했다. 유가의 사대주의가 득세해 고구려적인 기상을 잃었다고 애석해 하기도 했다. 옛날 이야기만 꺼내면 손사래를 치는 젊은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대목이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어서다.

[지지대] 붉은발말똥게Ⅱ

갯벌에 나가면 지척에서 채였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팔 할이 그랬다. 붉은발말똥게 이야기다. 등은 개구쟁이 소년의 흙투성이 무릎을 닮았다. 다리에는 갈색 털이 덮였다. 붉은빛을 띠는 갑각 앞부분과 집게다리 등도 특징이다. 집게발 등에 돌기가 나 있고 갑각 옆 가장자리에는 눈뒷니(눈 뒤쪽에 튀어나온 부분) 1개가 뚜렷하다. 눈 사이 이마에 굴곡도 있다. 짙은 회색 갯벌에 숨어 있으면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호미 한 자루 들고 나가 반나절이면 소쿠리가 제법 수북해진다. 그만큼 한반도 바닷가에 널렸었다. 말똥과 비슷한 냄새도 났다. 죽은 물고기, 곤충이나 떨어진 나뭇잎 등 유기물이 섞인 흙을 먹는 습성 때문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이름도 그렇게 붙여졌다.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녀석들은 갯벌처럼 축축한 습지에선 살지만 아가미로 호흡해 마른 땅에선 살 수 없다. 그래서 이 녀석들의 주 서식지가 바닷가다. 그런데 연안과 갯벌이 개발 및 매립되면서 서식지 급감으로 멸종 위기에 처했다. 그 천덕꾸러기의 머리가 백발이 되는 동안의 세월이었다. 하긴 강산이 다섯 차례나 바뀌었는데 그대로라면 이상할 듯싶다. 그래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1월의 멸종위기 야생동물로 선정했다. 이 분류에 들어가면 소멸 위기에 놓였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아직도 수도권에서 이 녀석들을 목격할 수 있는 곳이 있어 반갑다. 안산 갈대습지가 그렇다. 안산환경재단과 서울대 연구팀이 600m 구간에서 최대 500여개체 서식(경기일보 2025년 5월23일자 8면)을 확인했다. 안산시는 이곳이 수도권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서식지라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시화호 최상류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염분이 적은 진흙 지형과 넓은 갈대 군락이 형성돼 있어 붉은발말똥게 먹이활동과 은신에 적합한 서식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분석했다. 자연은 늘 우리 곁에서 다소곳하게 공존한다는 고정관념은 수정돼야 한다. 붉은발말똥게가 던지는 메시지가 제법 묵직하다.

[지지대] 말뿐인 쇄신 끝내야... 조합장선거 앞 농협

농협중앙회가 또다시 ‘조직 쇄신’을 내걸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뭇매를 맞은 각종 비위 의혹에 이어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특별감사 중간 결과에서 방만 경영 등 여러 문제가 추가 지적되면서다. 연신 ‘혁신’을 외쳐왔던 농협은 13일 대국민 사과까지 하며 후속 조치 중 하나로 농협개혁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회를 통해 그동안 내부적 관행으로 묵인됐던 불합리한 제도 전반을 손볼 계획이다. 많은 구상안이 나온 가운데 특히 농축협 조합장을 비롯한 임원 선거제도에 대한 개선을 약속한 게 눈에 띈다. 내년 3월 제4대 전국동시조합장선거(이하 조합장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조합장선거는 공직선거와 비교하면 인지도가 낮지만 주어지는 힘은 다르지 않다. 선거에서 선출되는 조합장은 조합의 대표권은 물론이고 예금과 대출 등 신용사업, 생산물 판매 등 경제사업을 펼칠 수 있다. 농협중앙회 대의원에 오를 기회도 주어진다. 거대 선거이기에 선거 전후마다 관련 잡음도 피할 수 없었다. 다가오는 조합장선거에서는 그러한 마찰을 막아야 하기에, 진정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기에 농협개혁위원회의 향배가 주목된다. 현직 조합장의 임기 만료 180일 전인 9월21일부터 조합장선거 사무는 관할 선거관리위원회로 위탁된다. 그전에 개혁위원회의 세부 방향이 정해져 공정 선거를 위한 기틀을 닦아야 한다. 전면적 변화를 꺼내든 지금, 관건은 속도와 실천이다. 조합장선거는 농협 권한 구조의 출발점이자 그동안의 관행과 잡음이 반복돼 온 ‘현장’이었다. 개혁위원회가 출범 자체에 그친다면 이번 쇄신 역시 ‘선언’ 정도에 머물 우려가 있다. 마침 올 초부터 조합장선거를 위한 선거관리사무국도 운영을 시작한 터다. 약속한 대로 금품·향응 제공 행위자에 대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도입, 부정선거 상담·신고센터 운영, 부정선거 적발 농축협 및 조합원에 대한 무관용 원칙 적용 등이 강화되기 바란다. 전국동시지방선거와 비교하면 남은 시간이 꽤 길다. 농협 혁신의 성적표가 이번 조합장선거로 드러날 수 있기에 돋보이는 ‘개혁’이 요구된다.

[지지대] 1월, 결심과 실패의 달

1962년 1월1일, 영국 런던의 한 오디션장에 네 명의 청년이 들어섰다. 부푼 꿈을 안고 진행한 오디션이었지만 결과는 참담한 불합격이었다. 심사위원들은 “기타 치는 그룹은 이제 한물갔다”며 그들을 혹평했다. 거절과 실패를 맛본 이들은 얼마 뒤 EMI와 계약을 했고 전설이 됐다. ‘비틀스’의 데뷔 이야기다. 1월 그날의 실패가 없었다면 록의 전설이 있었을까. 실패 하면 떠오르는, 빼놓을 수 있는 인물이 있다. 축음기와 상업용 전구를 발명한 토머스 에디슨이다. 그는 전구를 개량하고 시판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셀 수도 없는 실패 끝에 결국 발명에 성공했고 그 결과 현대의 전기 문명이 시작됐다. 우리에게도 1월은 비틀스 및 에디슨과 비슷하다. 결심하고 실패하는 계절이다. 우리는 1월이 오면 과거와 다른 나로 변하겠다고 다짐한다. 헬스장에 등록하고 금연과 금주를 약속하고 어학공부를 시작한다. 지난해 연말에 샀던 2026년판 다이어리에도 그날의 기록을 빠짐없이 쓰기로 한다. 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 했던가. 단단히 먹은 마음은 진정 사흘을 가지 못하는 것인가. 1월 중반이다. 야심 찬 계획은 2주 만에 삐걱거리고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혔을 수 있다. 오히려 1월에 일찍 넘어진 것이 다행이다. 남은 11개월을 더 단단하게 보낼 수 있는 예방주사를 맞은 셈이니까. 1월에 겪은 시행착오는 남은 1년을 버티게 해줄 훌륭한 오답노트다. 비틀스가 그랬듯 1월의 실패는 ‘끝’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잡으라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작심삼일? 결심이 3일도 못갔으면 다시 마음먹고 행동하면 된다. 실패했다면 다시 해보자. 에디슨이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단지 작동하지 않는 방법을 1만가지 찾아낸 것이다.” 뭐가 두려운가. 다시 해보자. 용기 내서 자신의 목표를 향해 조금씩 나아가보자.

[지지대] 깜깜이, 정말 차별적 단어일까

2020년,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이 나라를 뒤덮었을 때 기자들에겐 논제 하나가 던져졌다. 시작은 정은경 당시 질병관리청장의 브리핑에서 시작됐다. 어디에서 감염됐는지 모르는 감염을 일컬어 ‘깜깜이 감염’이라 부르던 걸 ‘감염 경로 불명’으로 칭하겠다고 한 뒤부터다. ‘깜깜이’가 장애 차별적 발언이라는 게 이유다. 얼마 전 제목에 그 단어를 썼다. 선거 관련 기사에서다. 다시 돌아온 선거철, 그 단어가 가장 잦게 등장하는 시기를 맞아 한번은 ‘깜깜이’가 정말 차별적 단어인지 생각해보고자 한다. 깜깜이는 깜깜하다라는 형용사가 명사화해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어원인 깜깜하다의 표준국어대사전상 의미는 ‘아주 까맣게 어둡다’, ‘희망이 없는 상태에 있다’, ‘어떤 사실을 전혀 모르거나 잊은 상태’다. 깜깜이는 국어사전에 올라 있진 않지만 국립국어원의 온라인 사전인 우리말샘에 ‘어떤 사실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하는 행위, 또는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라고 규정돼 있다. 정은경 청장이 썼던 ‘불명’을 한글로 푼 것과 뜻이 같다. 아니 불에 밝을 명, 밝지 않다, 즉 어둡다는 뜻이다. 뜻 어디에도 차별적 표현이 보이지 않다. 어둡다는 게 곧 차별을 뜻한다는 게 아니라면 어디에서 차별을 찾아야 할까. 과거 자주 쓰기도 했던 ‘눈 먼 돈’이나 ‘절름발이 행정’, ‘귀머거리 기관’ 같은 표현과는 다르지 않나. 누군가 특정 단어에 부정적 의미를 부여하면 가끔 그 단어를 사용하는 자체로 인식에 문제가 있는 이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자살을 자살로 쓰면 제재를 받고 ‘극단적 선택’으로 써야 한다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극단적이라 해도 생명을 선택으로 끝낼 수 있다고 여기게 하는 단어가 더 문제 아닐까란 생각이 들던 날처럼, 생각이 많아졌다.

[지지대] 애치슨 라인

미국의 주무 장관이 파격적인 정책을 발표했다. 태평양과 극동지역 방어선인 ‘애치슨 라인’에서 한반도를 제외한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1950년 1월12일 오전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였다. 애치슨 라인은 당시 미 국무장관인 딘 구더햄 애치슨의 성을 따 붙여진 명칭이었다. 물론 애치슨 라인에서 배제되는 국가에는 대만과 인도차이나 등도 포함됐다. 이 정책은 1년 전 하원의 승인을 받았다. 그의 연설 첫 부분을 들어보자. “태평양과 극동 문제를 감안할 때 군사적인 고려에만 집착하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문제들은 군사적인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요약하면 애치슨 라인의 바깥 국가들이 침략을 당하면 먼저 침공을 당한 국가가 스스로 저항해야 하고 유엔 아래 문명 세계 차원에서 지원해야 하며 군사적 해결책에만 집착하는 건 옳지 않다는 논리다.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지구촌 질서를 주도했던 강대국 관료 발언의 반향은 컸다.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던 언론인들도 두 귀를 의심했다. 신생국인 대한민국의 이름도 생소했지만 태평양과 극동지역 방어선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내용도 그랬다. 미 국무부는 같은 해 4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애치슨 라인을 공식화했다. 미 국가안전보장회의는 북한 침입 시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겠다는 의견도 내놨다.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한반도의 애치슨 라인 포함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미국은 대한민국이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없어 애치슨 라인에서 제외됐거나 대한민국의 방위를 포기하는 게 아니라며 원조를 약속했다. 그리고 그해 6·25전쟁이 발발했다. 역사의 눈길은 이 대목에 집중됐다. 한반도의 애치슨 라인 배제가 당시 소련과 중국 판단에 영향을 끼쳐 북한의 남침을 방조했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려서다. 이 같은 주장은 수십년간 이어진 냉전시대에 자본주의 진영 전략을 합리화하는 논리에도 유효하게 적용됐다. 반성과 통찰이 없으면 잘못 된 역사는 반복되기 마련이다. 미국, 중국, 러시아의 패권 경쟁 한복판에 있는 우리로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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