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30일 극장가를 찾은 영화 ‘썬더볼츠*’는 미국 인기 코믹스 기반 프랜차이즈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이하 MCU)’의 최신 작품이다. MCU의 출발을 알렸던 ‘아이언맨’이 2008년 관객에게 첫선을 보였던 걸 떠올려 보면 벌써 17년의 세월이 쌓였다. 자연스레 대중 역시 이들과 함께해 온 골수팬들부터 높아져 버린 진입장벽에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는 부류들까지 다양하게 포진한 상태다. ■ 모일 필요 없는 루저들?…‘억지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 ‘썬더볼츠*’는 전형적인 영웅과는 거리가 한참 멀어도 먼 사고뭉치들을 조명한다. 전직 첩보요원, 살인청부업자, 암살자, 용병 등이 한데 얽힌다. 음지에서 궂은일을 처리해 왔던 이들이 자신의 고용주로부터 버림받게 되는 순간을 응시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썬더볼츠’는 어두운 과거와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갈 동력과 명분을 잃어버린 채 표류하는 루저들이 모여 결성한 이들 팀의 활동명이다. ‘썬더볼츠’는 결성 목적, 이유, 명분이 온전치 않다. 팀을 꾸려도 그만, 꾸리지 않아도 그만일 뿐이다. ‘썬더볼츠’를 두고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나 ‘수어사이드 스쿼드’ 같은 안티 히어로 집단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이들의 행색을 보아 하니 특별한 목적과 동기도 없이 오합지졸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을 영웅으로 생각해주는 이들이 있는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훨씬 많다. 이렇게 말해볼 수 있겠다. ‘썬더볼츠*’는 ‘억지 영웅 만들기’ 프로젝트다. 극중 CIA 국장 발렌티나는 자신의 계획이 틀어지자 썬더볼츠 구성원들과 강화인간 실험체 센트리를 묶어 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어벤져스’라고 소개한다. 물론 그들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들이 영웅 집단이 되고 싶어서 됐는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서로 팀을 이루는 것 자체에 대한 필요성 내지는 유효성에 관해 의문을 표하고 있지 않나. 발렌티나는 그저 극중 자신의 비리를 감추기 위해 썬더볼츠를 이용했을 뿐이다. ■ MCU의 현주소를 인식…나를 돌아보는 영화 문제는 관객들의 현실에서도 이 같은 논의가 가능하다는 점인데 그건 바로 MCU의 인기가 최절정에 달했던 ‘어벤져스: 엔드 게임’(2019년년) 개봉 즈음 이후 2020년대 들어서는 길을 잃고 표류하는 가운데 억지로 썬더볼츠를 ‘뉴 어벤져스’로 만들 수밖에 없는 모순적인 환경이라는 걸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를 자조하듯 엔딩 크레딧에는 썬더볼츠가 어째서 어벤져스를 대체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하는 언론, 커뮤니티 등 미디어 환경 속 대중의 반응들이 나열된다. 더 중요한 건 2차 쿠키 영상에서 나오듯 썬더볼츠 구성원 자신들도 어벤져스를 스스로 대체할 수 있을지 확신과 우려가 뒤섞인 애매모호한 마음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 한마디로 ‘썬더볼츠*’는 MCU의 현주소를 스스로 인식하고 풍자하는 데 집중하는 영화다. 그러니까 ‘썬더볼츠*’는 지금 MCU가 처한 모든 상황을 단 하나의 영화로 압축한 근사한 축소판인 셈이다. 결국 이 영화의 가치는 이처럼 스스로를 내려놓고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데에서부터 찾아낼 수 있다. 내가 어떤지를 돌아보고 내 주변이 어떤지를 돌아볼 때 변화는 시작되기 때문이다. ■ 멀티버스의 편의주의를 거스르는 진심 어린 선택들 그렇다면 ‘썬더볼츠*’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는 이 영화가 멀티버스(다중우주)와 평행세계 개념으로 뒤덮인 현 시점의 MCU에서 어떤 존재가 될 수 있는지 따져 봐야 한다. 영화가 아무리 진정성 있는 서사를 구축하더라도 이들 역시 일회용 도구처럼 소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알고 있듯 이제 이 세계관에서 ‘진짜 유일한 나 자신’을 찾기는 어렵다. 여러 우주에 걸쳐 수많은 토니 스타크(아이언맨)가 존재하고 심지어 외계 종족이 변장한 존재가 내가 알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어서다. 앞으로 나올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다. 제작진은 편의에 따라 이미 1번 토니를 ‘어벤져스: 엔드게임’에서 죽였고 2번 토니를 희대의 빌런 닥터 둠으로 매만져 ‘어벤져스: 둠스데이’(2026년)에 등장시키려는 계획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존재의 도구화가 너무나 손쉬워진 지금 ‘썬더볼츠*’는 어떤 길을 제시했는가. 캐릭터의 조형과 빌드업에 있어 굉장히 귀찮고 힘든 경로를 스스로 택하지 않았나. 옐레나를 비롯한 썬더볼츠 구성원들은 각자의 과거를 마주하고 고립된 밥에게 손길을 내밀어 그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돕는다. 옐레나도 밥도 모두 언제 어디서든 공존하는 수많은 존재들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니 취향에 따라 입맛에 따라 영화 제작진의 편의에 따라 적당한 구실을 대면서 345번 지구의 옐레나, 142번 지구의 버키, 2944번 지구의 밥을 한데 모아 팀을 이루면 될 일이었다. 더욱이 최근 MCU의 영화 제작 기조로 보면 이런 루저들의 서사따윈 구축할 필요가 없지 않았나. 하지만 ‘썬더볼츠*’는 비록 이들이 고유한 존재가 아닐지라도, 어느 우주에서는 이들보다 더 나은 존재들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을지라도 지금 이 시점에 이곳에 모인 이들이 서로 부대끼고 뒹굴며 스스로를 마주하고 과거를 극복하는 과정을 굳이 담아 내려고 하는 셈이다. 멀티버스에선 언제나 캐릭터가 손쉽게 소비된다. ‘데드풀과 울버린’(2024년)에 등장했던 뱀파이어 헌터 ‘블레이드’ 역시 그 캐릭터를 오랫동안 연기했던 웨슬리 스나입스가 팬 서비스 차원에서 등장했을 뿐 캐릭터에서 대한 헌사나 존중을 보여준 건 아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2021년)에 등장했던 두 명의 스파이더맨(토비 맥과이어, 앤드루 가필드) 역시 서사의 기능적인 전개를 위해 동원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던 걸 떠올려 보자. 그런 점에서 멀티버스 사가의 여러 작품과 향후 나올 어벤져스 5·6편의 가교 역할을 수행하는 ‘썬더볼츠*’가 택한 노선은 멀티버스 사가에서 그간 느껴보지 못했던 감흥을 선사한다. 이들이 어벤져스든 아니든 그건 상관없다. 같이 육체를 맞대고 마음을 나누는 교감이 전해진다면 그걸로 됐다.
포천미디어센터가 오는 5일 영화 ‘귤레귤레’ 시사회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영화제작사 ㈜필름초이스와 협업으로 마련됐으며, 포천미디어센터 4층 '미디어 상영관'과 '미디어 라운지'에서 총 3차례 상영된다. 영화 ‘귤레귤레’는 고봉수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이희준, 서예화, 신민재, 정춘이 출연한 작품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과거와 이별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 이 영화는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으며, 오는 11일 정식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시사회는 오전 10시와 오후 2시에 ‘미디어 상영관’에서 1•2회차가 진행되며, 오후 7시에는 ‘미디어 라운지’의 대형 스크린에서 메인 상영이 예정돼 있다. 특히 오후 7시 상영 전에는 영화제작 관계자의 환영 인사도 마련돼 있어 관객과의 교감이 기대된다. 참여 신청은 ‘경기공유서비스를 통해 선착순으로 접수할 수 있으며, 자세한 문의는 포천미디어센터로 하면 된다. 김순천 ㈜필름초이스 대표는 “지역과 함께하는 시사회는 영화의 감동을 나누는 의미 있는 자리”라며 “앞으로도 지역 중심 문화 행사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윤숭재 포천시 홍보담당관은 “이번 시사회는 시민 중심의 영상문화 저변 확대를 위한 시도”라며 “포천미디어센터가 지역 미디어문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영화, 드라마, OTT 콘텐츠 등 볼 것 찾는 사람들을 위한 '핫한 플레이리스트'를 알려주는 '핫플체크'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딩'이 개봉 첫 날인 17일 42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해 박스 오피스 1위에 오르며 30년간 이어진 시리즈의 저력을 보였다. 이번 영화에서는 디지털 세계를 장악하고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미지의 존재 '엔티티'를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포드코바'를 손에 넣기 위해 IMF(임파서블 미션 포스) 요원 '에단 헌트(톰 크루즈)'가 다시 한 번 불가능한 미션에 나선다. 톰 크루즈는 CG에 의존하지 않고 고공 비행, 수중 촬영, 맨몸 다이빙 등 고난도 액션을 직접 소화했다. 특히 2400m 상공에서 회전하는 비행기에 매달리는 장면은 헐리우드 익스트림 스턴트의 정점을 보여준다. 또한 '에단 헌트'를 비롯한 IMF 팀원들의 호흡이 돋보인다. '루서'와 '벤지' 등 기존 시리즈의 익숙한 얼굴들에 더해 지난 시리즈부터 새롭게 합류한 '그레이스', '파리', '드가'가 가세하며 시리즈 사상 가장 강력한 팀플레이를 완성했다. 미션 임파서블의 8번째 이야기 '미션 임파서블 : 파이널 레코딩'은 전국 극장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자료 출처 ㅣ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드라마, OTT 콘텐츠 등 볼 것 찾는 사람들을 위한 '핫한 플레이리스트'를 알려주는 '핫플체크' 영화 '승부'는 바둑이 국민 스포츠로 불리던 시절 세계 최강의 타이틀을 거머쥔 전설의 국수(國手) 조훈현(이병헌)이 전주의 바둑 신동 이창호(김강훈)을 제자로 삼으며 있었던 바둑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대결을 바탕으로 한 극적인 서사가 담긴 내용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실존 인물들과 배우의 외적인 모습은 물론 패션, 습관까지 공부해 싱크로율을 높였다. 특히 대국 현장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넘치는 순간을 손가락 관절까지 세밀하게 연기로 표현해 몰입감을 더한다. 승부의 김형주 감독은 두 사람의 실제 관계를 영화에 녹이기 위해 두 사람의 인터뷰와 함께 당시 기사자료와 영상자료를 참고했다고 밝혔다. 그를 토대로 조훈현과 이창호를 연기한 두 배우가 만들어낸 팽팽한 심리전은 관객으로 하여금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영화 '승부'는 개봉 4주차에 누적 관객수 189만명을 넘으며 흥행 중이다. 자료제공 ㅣ ㈜바이포엠스튜디오
인천시가 주최하고 인천영상위원회가 주관하는 제13회 디아스포라영화제가 오는 5월16일 막을 올린다. 3일 시에 따르면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아시아 유일의 디아스포라를 주제로 한 영화제로, 올해로 13회를 맞았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자신들의 문화를 지켜온 이주민들의 삶을 의미하는 말로, 영화제는 다양한 이주의 역사를 간직한 인천에서 화합과 공존, 존중의 가치를 조명하며 진정한 소통과 교류의 장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이번 영화제에는 총 58개국에서 794편의 작품이 접수해 역대 최다 출품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전문가 심사를 거쳐 장편 8편, 단편 31편이 최종 선정, 출품작 외에도 국내외 초청작들이 디아스포라라는 공통 주제를 중심으로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시는 개막작으로 재일동포 출신 전진융 감독의 ‘국도 7호선(Route 7)’을 선정했다. 이 작품은 분단이라는 아픔 속에 살아가는 재일동포의 삶을 진지하게 조명한다. 영화제 개막식은 오는 5월16일 오후 7시 인천아트플랫폼에서 열린다. 행사는 5월17일부터 20일까지 인천아트플랫폼과 애관극장, 인천미림극장에서 열린다. 이 밖에도 시는 감독 및 배우와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 아카데미 프로그램, 디아스포라 플리마켓, 야외 공연 및 상영,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준비했다. 개막식에는 재외동포와 이주민이 인천 시민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화합의 장을 만들고, 가수 십센치(10CM)의 축하 공연도 예정돼 있다. 윤도영 시 문화체육국장은 “시민들의 관심과 성원을 바탕으로 인천을 넘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봉준호 감독의 SF영화 '미키 17'이 개봉 한 달을 맞았지만 여전히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키 17의 흥행 비결과 매력은 무엇인지, 지난 ‘제43회 영평상’ 시상식에서 신인평론상 우수상을 수상한 경기일보 송상호 기자가 짚어봤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영화, 드라마, OTT 콘텐츠 등 볼 것 찾는 사람들을 위한 '핫한 플레이리스트'를 알려주는 '핫플체크' 누적 판매 부수 1,000만 부를 달성하며 ‘K-오컬트의 바이블’로 자리매김한 이우혁 작가의 소설 '퇴마록'이 한국형 애니메이션 영화로 재탄생했다. '퇴마록'은 현대 한국을 배경으로 무협, 엑소시즘, 도술, 힌두교, 동서양의 신화 등 다양한 요소를 혼합해 세계관이 탄탄한 판타지 소설 '퇴마록'을 원작으로한다. 특히 애니메이션에서는 퇴마록의 초반부인 해동밀교에서 절대악의 힘을 얻기 위해 금기를 깨는 '서교주'(황창영)와 도움을 청하는 '장호법'(홍상효)이 만난 파면당한 신부 '박윤규'(최한) 외 특별한 능력을 가진 퇴마사들이 맞서는 내용을 담았다. 박신부와 외에도 양아버지인 서교주에게 위협받는 천재적 재능을 가진 '준후'(정유정), 동생의 복수를 위해 무공을 익힌 '현암'(남도형) 등 각자의 상처를 안고 한 팀이 되어 서교주와 맞선다. 영화는 특히 탱화 등 동양적 색채와 함께 국악을 기반으로 한 오케스트라를 활용해 K-오컬트의 분위기를 살린다. 3D 그래픽 작업물을 2D애니메이션이나 카툰 느낌을 주는 것이 특징인 '3D 카툰 렌더링'기법으로 입체적이고 회화적인 영상미가 가득하다. 각기 다른 능력을 지닌 캐릭터들의 타격감 넘치는 액션과 동서양 오컬트가 섞인 세계관 속에서 몰입감 넘치는 전투가 보는 재미를 더한다. 애니메이션 영화 '퇴마록'은 베트남·인도네시아 등 해외 12개국 판매 소식을 알리는 동시에 현재 누적 관람수 45만 명을 돌파하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 미국의 영화 감독 로버트 애거스의 ‘노스페라투’가 극장가를 찾았다. 개봉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바로 동명의 영화 리메이크 버전이라는 이유에서다. 이번 ‘노스페라투’는 독일 감독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가 연출한 1922년작의 두 번째 리메이크다. 친숙하지만 고리타분한 흡혈귀의 현대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올록 백작, 즉 노스페라투는 흡혈귀다. 설화와 민담 속 흡혈귀는 그간 매체 속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려 왔다. 영어로는 뱀파이어로 부른다. 그 이명(異名)인 드라큘라와 노스페라투 역시 이제는 흡혈귀 하면 떠오르는 고유명사가 됐다. 대중에게 친숙한 흡혈귀 캐릭터는 여러 변주와 각색을 거치면서 오랜 기간 우리 곁에 살아 남았다. 드라큘라는 1897년 영국 작가 브램 스토커의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고 이후 선보인 노스페라투는 영화화 작업에 있어 드라큘라의 판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제작진이 몇 가지 특징을 손봐 만들어낸 존재다. 또 2000년대 이후 등장한 ‘트와일라잇’ 역시 뱀파이어들의 로맨스를 소설과 영화로 풀어내 인기를 끌었던 시리즈다. 영화 ‘블레이드’ 시리즈에서는 반은 인간이고 반은 뱀파이어인 뱀파이어 헌터 블레이드(웨슬리 스나입스)가 뱀파이어들과 대결을 벌이면서 호쾌한 액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제 필요한 질문이 있다. 왜 흡혈귀 캐릭터인 노스페라투가 지금 이 시점에 왜 우리 곁에 다시 소환돼야만 했을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22년작 ‘노스페라투’의 도입부는 어떠했나. “독일 위스보그(가상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고 극의 도입부와 실질적인 서사 사이 경계를 명확히 표현해냈다. 최신작은 어떠했나. 애거스 감독은 동시대 관객과 영화 속 배경을 연결 지으려 했다. 진보한 미술과 분장 기술을 통해 당대 시대상을 구현해낸 시도를 보면 그런 점이 느껴진다. 이 때문인지 ‘1838년 독일’을 자막으로 띄우면서 시작하는 이번 ‘노스페라투’가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풀어낼 생각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선택으로 얻는 효과는 무엇일까. 액자식 구성을 포기한 덕분에 관객들은 이 고리타분한 흡혈귀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와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다 손쉽게 인식하게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노스페라투가 잊혀 가는 설화 속 존재로만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뤄볼 때 최신작 노스페라투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바로 올록 백작의 손아귀 그림자가 마을을 덮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외딴 성에 혼자 살던 노스페라투가 주인공 부부가 사는 마을로 진입한 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집 안에서 창밖을 향해 손을 든다. 뻗친 손의 그림자가 칠흑이 내려앉은 마을 전역을 덮어 까맣게 물들인다. 이 장면은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먼저 올록 백작의 존재가 전설 속의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라 실재하는 위협으로서 마을에 당도했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측면에서다. 또 주인공 부부뿐 아니라 공동체를 향한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표현해냈다는 점에서도 언급할 만하다. 사실 손아귀를 뻗치는 이 장면은 원작을 향한 오마주에 가깝다. 원작에서도 노스페라투가 대상에게 접근할 때나 누군가에게 공포로서 자리매김할 때 항상 그의 육신이 아닌 그림자가 돋보이는 방식으로 연출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따져봐야 하는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번 영화가 원작의 흔적에 머무른 채 그 후광에 기대려는 작품인지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고전을 빌려와 각색과 변주를 줄 때 창작자의 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 알 수 있는 척도여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영화는 감독의 고민이 치열하게 묻어나는 산물이다. 그는 캐릭터의 유명세에 편승하거나 게으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 대신 영화에 들어차 있는 요소는 동시대 관객과 고전을 어떻게 하면 연결지을 수 있는지 다양한 방안을 탐색하는 시도들이다. 변치 않는 고전을 대하는 창작자의 시선 이 고민이 묻어나는 중요한 구간은 바로 엔딩이다. 올록 백작의 최후가 어떠했나. 우리가 아는 흡혈귀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동틀 무렵 닭 울음 소리가 들려오고 햇빛을 받아내는 흡혈귀는 고통스러워하며 사라진다. 하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노스페라투의 몸이 소멸하는 대신 육체의 모든 구멍에서 피를 토해내며 뻣뻣하게 말라비틀어진다. 사라지지 않고 그의 껍데기는 엘렌의 몸 위에 포개진 채 그대로 있다. 엔딩에서 감독이 포개진 두 존재의 몸을 부감(수직으로 피사체를 내려다보는 구도)으로 담아냈다는 데 주목해 보자. 악마로부터 흡혈당해 결국 생을 마감한 엘렌. 그 위에서 피를 토하며 역시 생명을 다한 올록 백작의 육체. 재밌게도 이 구간에서 감독은 이들의 모습을 측면에서 응시하지 않고 마치 신의 시점으로 내려다보길 선택했다. 이 영화가 고전을 빌려와 엘렌의 주체적인 면모를 강화한 재해석 버전이라는 점을 미뤄 보면 이 선택은 바로 엘렌의 행위와 결단으로 벌어진 사건의 경위를 순수한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려는 의지의 산물처럼 비친다. 엘렌의 마지막 선택이 본인의 욕망을 채우는 등 스스로를 위한 것이었을지, 남편을 살리기 위한 것이었을지, 정말 자기희생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구하기 위함이었을지, 순전히 본능과 호기심에 사로잡혀 충동적으로 관계를 나누기 위함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영화 역시 그에 대한 명확한 단서나 가치 판단은 보류한 채 엘렌의 선택을 부감으로만 응시하는 것이다. 즉, 영화는 지금 이 시점에 고전을 빌려온 데 대해 관객에게 검증 내지는 판단을 받고 싶어하고 있다. 과정이 어찌 됐든 결과는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 고전의 내용은 바뀌지 않고, 재해석과 각색이 들어가더라도 이야기의 큰 줄기는 변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같은 엔딩의 묘사에서 감독이 선택한 연출법은 고전을 현대화하는 작업에서 창작자가 어떤 고민을 해야 하는지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연말연시 국내 극장가를 강타한 영화 ‘서브스턴스’는 2024년 개봉한 독립예술영화 가운데 외화 관객 수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작지만 강한 돌풍을 보여줬다. 영화를 연출한 프랑스 출신 코랄리 파르자 감독은 2017년 ‘리벤지’에 이어 두 번째 내놓은 장편을 통해 전 세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관객과 평단이 ‘서브스턴스’를 주목하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이를 종합하면 호러와 스릴러 장르의 쾌감이 현실 풍자와 결합된 모양새가 뛰어나다는 의견으로 귀결되고 있다. 쉽게 생각해 보면 서브스턴스는 미디어에서 재생산되는 아름다움의 허상을 지적하면서 이상적인 미의 기준에 사로잡힌 현대인, 그 가운데 특히 여성의 초상을 전시하고 고발한다. 이때 우리는 이 작품을 보면서 간단한 구조를 만들어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데미 무어)’는 왕년에는 잘나가던 배우였지만 중년에 접어들면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에어로빅 쇼 진행자로 전락해 버린 비운의 스타다. 그의 세포가 분열해 탄생한 클론 ‘수(마거릿 퀄리)’는 젊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대중의 호응을 한몸에 받는 차세대 스타로 발돋움한다. 극중 수는 엘리자베스를 극도로 혐오하면서 그가 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란다. 엘리자베스 역시 똑같다. 자신의 처진 피부, 힘이 없어진 모발, 꺼져 가는 생명력과 대비되는 수의 젊고 생기 넘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괴감과 박탈감이 커져 가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가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났지만 문제는 수가 엘리자베스로부터 태어난 존재이기 때문에 둘은 절대 끊어질 수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즉,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고 떼어내고 싶지만 떼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자. 우선 엘리자베스와 수의 구도는 묘하게 선배 감독들과 파르자 감독 사이 관계와도 겹쳐진다는 점을 언급하고 싶다. 파르자 감독 역시 그간 서구 사회 남성 중심의 영화 제작 환경에서 적응과 충돌을 반복해 왔을 테다. 그런 그가 끌고 온 페미니즘 영화는 그가 현실에서 느낀 지점들을 작품으로 발화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때 파르자 감독이 서브스턴스에 녹여낸 연출 기법들을 잘 살펴 보자. 그는 남성 선배 감독들이 만들어낸 작품의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빌려온 데다 그들의 영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지점도 대놓고 드러냈다. 숨길 생각이 없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서브스턴스는 ‘여성 신체의 대상화’라든가 ‘미디어 환경에서 소비되는 그릇된 여성 이미지나 이상적인 미의 기준’에 철퇴를 내리는 작품이다. 그런 작품이 역설적으로 남성 감독들의 전유물에 기대고 있는 셈이다. 결국 서브스턴스는 새로운 영화가 전혀 아니다. 서브스턴스를 보면 떠오르는 이름이 제법 많다. 영화 자체가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비디오드롬’ 같은 신체 변형, 보디 호러 영화에 빚지고 있으며 데이비드 린치 영화에서도 모티브를 따왔고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이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앨프리드 히치콕의 ‘사이코’ 등을 오마주하는 등 감독이 영향받은 수많은 작품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기 때문이다. 대중 역시 각종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지에서 이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레퍼런스와 오마주 요소들을 정리하면서 ‘서브스턴스 2차 즐기기’에 몰입하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때 사람들은 주로 이 작품이 선배들의 영화에 얼마나 많은 영감을 받았는지, 또 어느 정도로 오마주를 훌륭하게 해냈는지에 집중할 뿐 작품 자체의 고유한 매력을 즐기는 데엔 그다지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중은 이 영화를 어떻게 소비하고 즐기는가. 사실 서브스턴스는 여지없이 몸의 영화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신체의 변형과 훼손을 통해 인물들이 어떤 감정과 생각에 몸담고 있는지,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때 관객들은 감각이 강조되는 이 여정을 따라가면서 인물들과 동기화될 수 있지만 어쩐지 이 영화에선 그 작업이 어려워 보인다는 점에 주목하자.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몸을 몸 자체로 다루는 게 아니고 몸을 이미지처럼 다룬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눈에 띄는 일부 관객의 반응이 있다. 혹자는 이 영화를 보고 소셜 미디어 댓글 창에 “영화 속 수 배역을 맡은 마거릿 퀄리가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모습을 스크린에 영원히 박제해 놓았다. 너무 매력적으로 나오더라”는 식으로 적어 놓았다. 현대사회 속 자신을 갉아먹으면서 극한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태를 고발하는 영화를 보고 이런 반응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가 바로 씁쓸함을 더욱 짙게 만든다. 이 같은 요소들은 역으로 삭막한 현실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성들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를 펼쳐 놓을 때나 여성만이 다룰 수 있는 여성의 서사를 이야기할 때조차 남성들의 흔적에 기대야 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번 작품 개봉을 계기로 드러난 셈이다. 게다가 과도한 레퍼런스와 오마주 요소들이 곳곳에서 보이는 탓에 사람들은 여성 신체를 다루는 작품의 진정성 내지는 몸의 화두라는 묵직한 지점들에 집중하는 대신 이 작품 속 이미지만을 가볍게 소비하고 있다. 틱톡 등의 플랫폼에서 인플루언서들이 영화 속 괴생명체를 따라한 분장 영상이 유행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맥락에서 서브스턴스가 의미 있는 이유는 바로 작품 자체만으로는 감독의 의도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다수의 대중이 작품을 소비하고 가공하는 행태가 재생산됐기 때문에 이 영화가 겨냥한 현실과 동기화 지점이 늘어난 셈이다. 그렇기에 서브스턴스는 영화와 현실 사이 상호작용을 들여다볼 때 더욱 그 가치를 음미하는 사례가 된다. 현실은 영화보다 무섭다.
홍콩 배우 양조위(량차오웨이)의 이름 석 자는 스크린뿐 아니라 대중문화계 전반에서 여전히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다. 새해를 맞은 첫날에도 양조위와 탕웨이가 출연했던 ‘색, 계’가 오랜만에 극장가에 걸려 관객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지난해 12월18일부터 31일까지 CGV에서는 양조위 배우전을 통해 그의 주요 출연작도 만날 수 있었다. ‘화양연화’, ‘중경삼림’을 비롯한 왕가위(왕자웨이) 감독의 영화에서부터 ‘무간도’ 시리즈,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소개됐던 ‘암화’까지 스크린을 수놓았다. 양조위는 1990년대뿐 아니라 나이가 들어서도 중후한 매력을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미국 인기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영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에서 메인 빌런 웬우 역을 맡아 보여준 그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할리우드 슈퍼히어로 장르물에서 펼치는 다채로운 액션을 소화하기엔 이미 그의 육체가 많이 노쇠했고 전성기에서 내려온 홍콩 배우가 미국의 상업영화에 나온다는 소식에 여론도 설왕설래하지 않았나.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언론과 평단, 커뮤니티 등지에서 나오는 반응은 하나같이 “역시 양조위는 양조위다. 죽어가던 영화를 양조위가 살렸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양조위인가. 우리는 왜 여전히 양조위를 찾을 수밖에 없을까. 사실 양조위에 관해 이야기할 때 항상 언급되는 요소가 있다면 바로 그의 눈빛과 얼굴이다. 모두가 찬사를 보낸다. 우수에 찬 그의 깊은 눈동자 속에는 사랑과 시련을 비롯해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넘실대고 있지 않나. 또 그의 얼굴은 어떤가. 미간에 잡힌 자그마한 주름에도 기구한 사연이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서려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진다. 대사 한마디 없는 청각장애인 연기를 선보였던 1989년작 ‘비정성시’에서의 인상적인 모습도 떠오른다. 이처럼 삶의 굴곡과 감정의 파형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레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다. 이때 함께 눈여겨봐야 하는 요소는 바로 그의 신체다. 문제는 양조위의 육체 자체는 눈길을 끌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왜소해 보이고, 대중이 선망하는 미의 기준인 근육질도 아니고, 키가 월등히 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재밌게도 역설적으로 양조위를 떠받치고 있는 요소 중에 빼놓으면 안 되는 게 있다면 바로 그의 얼굴과 눈빛이 아니라 그의 몸이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눈길 가지 않는 평범한 보통의 신체이기에 그는 누군가를 연기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그 캐릭터와 그 배역에 혼연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가 입은 옷도 의상팀에서 준비해준 게 아니라 길거리의 행인에게서 빌려온 것처럼 느껴진다. 그의 얼굴 화장이나 세팅된 머리조차도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생생한 현장감으로 둘러싸여 있다. 재밌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아비정전’ 촬영 당시 왕가위 감독이 양조위에게 건넸던 조언이 있다. 당시 왕가위 감독은 똑같은 장면을 32회나 촬영한 끝에 오케이 사인을 냈고 양조위는 당연히 불만을 터뜨렸다. 이때 감독은 양조위에게 “얼굴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연기를 해야 한다”고 설명하면서 화를 내던 양조위를 납득시켰다고 전해진다. 양조위는 ‘아비정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왕가위와의 인연을 쌓게 됐다. 그 영향 덕분인지는 몰라도 양조위는 ‘중경삼림’, ‘해피투게더’, ‘화양연화’, ‘일대종사’ 등 이후 왕가위와 함께 작업한 작품 속에서 얼굴과 눈빛으로만 승부를 보지 않았다. 그는 매 작품 사소한 몸짓과 움직임, 심지어 꿈틀거리는 입가와 힐끗대는 눈동자만으로도 공간과 분위기를 지배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도 했다. 이처럼 왕가위 감독과의 궁합이 좋았으나 사실 양조위가 누구와 작업하든 작품에 휘둘리지 않고 본인만의 확고한 영역을 구축했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안 감독의 ‘색, 계’(2007년)에서 양조위는 그간 연기해 왔던 캐릭터들과 비교하면 다소 이질적인 면모를 풍기는 인물을 연기했다. 양조위의 매력은 공간에 녹아들고 분위기에 동화된다는 데에 있지만 ‘색, 계’는 그럴 수 없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양조위는 감정을 분출하고 존재감을 시종 각인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았다. 감정을 알 듯 말 듯 숨기거나 위장했던 ‘화양연화’에서의 연기와는 정반대의 환경이 아니었나. 그런데도 양조위는 벨트를 풀어 상대방을 때리는 납득하기 어려운 가학적인 순간조차도 관객들을 매혹하는 데 성공했다. 그건 바로 그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요소에 일부러 주도권을 내주다가도 순식간에 그 주도권을 가져오는 연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상대를 바라보는 눈빛뿐 아니라 벨트를 쥔 손과 그로 인해 반응하는 신체의 말단 요소 하나하나까지 섬세한 감정을 부여해낸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우리가 양조위를 바라볼 때는 단순히 얼굴과 눈빛이라는 상투적인 요소에만 매몰되면 안 된다. 중요한 건 양조위라는 존재 자체다. 오로지 그의 눈빛만 있다면 분위기를 사로잡을 수 없다. 중요한 건 그의 눈빛과 함께 포착되는 눈가의 주름, 반듯하게 정리된 머리카락, 다림질된 셔츠 그리고 그가 응시하는 상대방 따위의 요소들이 함께 양조위라는 존재의 당위성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