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미래] 전시 넘어 보전과 공존으로

기린을 실제로 바라본 적이 있는가. 사람 키를 훌쩍 넘는 앞다리에 몸보다 높은 목을 나무처럼 뻗은 이 신기한 동물을 직접 올려보면 경이로움에 ‘와아’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아프리카에 서식지를 둔 기린을 우린 언제든 볼 수 있다. 보여주는 목적으로 동물원과 체험 시설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전시동물이다. 최근 동물원에서는 전시에 대한 비판으로 교육, 보전 연구로 목적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전시동물은 여전히 존재하고 인간사회의 이해 관계 안에서 운명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또 목적이 교육, 보전 연구로 바뀐다고 해도 실효성과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동물의 미래는 겉돌게 된다. 실물로 보는 동물은 처음엔 사람들에게 감탄과 흥미를 유발한다. 움직이는 호랑이, 사자의 하품, 큰 덩치의 코끼리는 아이들에게 신선한 시각적 자극을 줘 관심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이 필요하다.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과연 교육의 전부일까. 우리가 동물 교육을 통해 얻어야 할 진짜 소양은 관심이나 감탄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알아가고 그들을 존중하며 공존하려는 삶의 태도야말로 교육의 본질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전시 중심’ 교육은 그 목적을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오늘날은 다양한 기술 발달로 동물 교육을 다른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는 시대다. 증강현실, 고화질 다큐멘터리 등은 오히려 자연 속 동물의 본모습을 왜곡 없이 전달한다. 사람들은 동물원의 좁은 철창 너머가 아니라 야생 공간 속에서 먹고 자라고 싸우는 동물의 삶을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다. 이는 단지 감각적 체험을 넘어 동물의 삶에 대한 존중과 경외를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된다. 또 체험동물은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동물을 만져야만 교감할 수 있다는 생각은 결국 인간 중심의 위안이다. 우리가 포근함을 느끼고 정서적으로 위로받는 경험은 반려동물과의 관계를 통해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낯선 동물을 반복적으로 사람 손에 맡기며 체험시키는 행위는 그들에게 감각적 폭력이 될 수 있다. 보전 연구라는 명분 또한 마찬가지다. 전시를 통해 멸종위기 동물의 존재를 알리고 관심을 끌어내는 일이 의미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보전이라 부를 수는 없다. 보전과 연구는 동물의 생존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그 시작은 ‘야생과 유사한 환경 조성’이다. 그리고 이 환경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생태계 전체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갖춰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어떤 동물이 어떤 환경에서 살아가는지 아는 것은 동물의 일생, 즉 한살이를 이해한다는 뜻이다. 무엇을 먹고 어디서 자며 언제 이동하고 주변의 동식물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를 아는 일이다. 이는 곧 생태를 이해하는 일이며 진정한 환경 조성은 인간의 눈에 보기 좋은 시설이 아니라 동물이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생태적 연결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 복합적인 이해야말로 앞으로의 동물 교육, 보전 연구가 반드시 포함해야 할 핵심 내용이다. 궁극적으로 야생 전시동물은 사라져야 한다. 동물은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지구에서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보여 주기가 아닌 ‘함께 살아가기’를 해야 한다. 성숙한 어른으로서 후손에게 지속가능한 공존을 물려주고 싶다면 이제 동물의 존엄을 마음 깊이 생각해야 할 때다. 기린의 눈을 들여다봐야 할 때다.

[함께하는 미래] 재생에너지를 촉진하는 원스톱서비스

지난 2월26일, 수원시 월암IC 교통광장에서 ‘서수원·월암IC 시민 햇빛발전소 건립 착공식’이 열렸다. 행사는 경기도민 1만1천여명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경기시민발전협동조합협의회 소속 39개 에너지협동조합이 의왕시 월암 나들목 인근 공공부지 2만7천㎡에 무려 5천200㎾에 달하는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하게 된 것을 널리 알리는 자리였다. 소식을 듣고 찾아온 시민들과 경기시민발전협동조합협의회 관계자, 그리고 도와 수원시, 의왕시의 공무원 등 200여명이 참석해 서로에게 축하와 격려가 담긴 인사와 함께 준공까지 안전하고 원만하게 공사가 진행되길 응원했다. 일반적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은 설치하고자 하는 당사자가 설치 가능성이 있는 부지를 발굴, 이를 관계 기관의 사전 검토를 통해 허가가 나면 규모에 따라 주무관청의 발전사업 허가를 받고 이후 해당 지자체의 개발행위 허가를 얻어 발전설비를 설치하는 과정을 밟는다. 이후 시설 설치가 완료되면 한전과 ‘계통 연계’라는 절차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모든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전문적인 과정으로 수많은 변수와 우여곡절이 존재해 장기간의 준비 과정과 많은 비용이 든다. 하지만 서수원·월암IC 시민 햇빛발전소는 이러한 난관을 상당 부분 민관의 소통과 협력을 통해 해결하는 모범적인 정형을 만들어 주목할 만한 성과를 이뤘다고 한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거부하며 온갖 의심의 씨앗을 퍼뜨리는 낡은 시대의 현실을 이겨내고 부지 발굴에서 인허가까지 재생에너지 확산을 가로막는 온갖 걸림돌을 하나하나 제거하면서 결국 착공이라는 결과까지 만들었다고 하니 그 노고에 아낌 없는 박수를 보낸다. 민관 협력을 통해 얻은 서수원·월암IC 시민 햇빛발전소의 귀중한 사례를 헛되게 하면 안 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하루빨리 재생에너지를 확산시켜 전 지구적이고 국가적인 과제를 달성해야 하는 중차대한 현실에서 그 역할의 일정 부분을 개인이나 소규모 발전사업자, 에너지협동조합에 감당하게 해야 한다면 국가와 지자체는 복잡한 절차와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그 누구도 포기하지 않도록 지원체계를 마련할 의무가 있다. 광역·기초지자체가 ‘부지 발굴에서 인허가까지 원스톱서비스’를 제공해 누구나 손쉽게 재생에너지를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체계를 갖추면 우리의 재생에너지 확산 속도는 훨씬 더 빨라질 것이고 시민의 관심과 참여도 더욱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행정은 지원체계를 구축하고 시민과 에너지협동조합은 에너지공동체를 조직하고, 발전 사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설치 후 운영·관리하면서 더 많은 시민이 에너지기본권을 행사할 수 있을 것이다. 매년 재난으로 인한 연간 보험금 지급액을 분석해 ‘기후재난보고서’를 발간하는 영국의 자선단체 ‘크리스티안 에이드’의 대표인 패트릭 와트는 “기후위기로 인한 인간의 고통은 정치적 선택을 반영한다. 가뭄과 홍수, 태풍(허리케인)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라며 “화석연료를 계속 태우고 배출량을 증가시키는 세계 정책들로 재난이 심화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이 쉽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세뇌된 익숙한 모든 방식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어떤 불행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재난의 판도라가 열리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이미 과학적으로 확인되고 검증된 행동을 과감하게 실천하는 것이 현재의 위험 확률을 줄이고 대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함께하는 미래] 트럼프 상호관세보다 더 심각한 미국의 경기 침체

취임 후 50일 만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첫 번째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감세와 규제 완화를 통한 황금시대를 예고했던 그는 과도기에는 경기가 침체될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이러한 말 바꾸기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지난 10일 하루에 다우지수 2.08%, 스탠더드앤드푸어스500 2.7%, 나스닥은 4.0% 폭락했다. 주가 폭락의 직접적 원인은 불황에 대한 우려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이고 재무장관까지 나서 경제 성장의 둔화 가능성을 시인했다. 이에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은 경기 침체 위험도를 상향 조정했다. 앞으로 남은 50일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이러한 우려를 완전히 불식시키지 않으면 그가 주가 상승을 견인할 것이라는 트럼프 풋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경기 침체 가능성이 커진 가장 중요한 요인은 관세 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심화다. 계란 한 알이 1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폭등하면서 미국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국가로부터 계란을 수입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작년 선거에서 핵심 쟁점이었던 인플레이션을 조만간 제어하지 못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중간선거에서 패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치 방식에 대한 불만도 무시할 수 없다. 50일 동안에 트럼프 행정부는 무려 83개의 대통령 행정명령을 통해 경제·외교·국방·원조·이민·정부조직 개혁을 밀어붙였다. 특히 각 부처의 업무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정부효율부(DOGE)가 기존 부처의 조직과 예산을 일괄적으로 감축하라고 요구하다 보니 정부효율부와 기존 부처 사이의 갈등 및 반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정부효율부에 대한 반감은 일론 머스크가 경영하는 테슬라 주가가 하루 만에 15% 급락했다는 사실에 잘 반영돼 있다. 현재 우리 경제는 미국의 경기 침체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취약한 상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전국 50인 이상 508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기업규제 전망조사’에서 ‘올해 경제위기가 1997년보다 심각’(22.8%)하거나 ‘1997년 IMF 위기 정도는 아니지만 상당한 위기가 올 것’(74.1%)으로 답변했다. 자영업자 수는 지난해 11월 570만명보다 20만명 이상 감소한 550만명으로 IMF 외환위기가 발생한 1998년의 561만명보다도 적다. 원-달러 환율도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400원대를 석 달 이상 유지하고 있다. 대외 충격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대외경제정책의 초점을 상호관세 협상에서 경기 침체 대비로 빨리 전환해야 한다. 미국의 경기 침체는 관세 인상보다 우리 경제에 훨씬 더 심각한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관세는 특정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약화시키지만 경기 침체는 수출 전반을 감소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환율과 금융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정부가 금융시장과 환율을 조속히 안정시키지 못하면 미국의 경기 침체가 제2의 IMF를 불러일으키는 촉매로 작용할 수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한국은행에 제공한 300억달러 규모의 통화스와프 덕분에 잘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방위분담금 9배 인상을 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자금을 지원해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따라서 미국의 도움을 기대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인공지능과 시니어

흔히 인공지능(AI)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처럼 여겨진다. 모든 첨단 기술이 그렇듯 빠르게 적응하는 능력은 주로 젊은 세대의 몫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매킨지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Z세대의 절반과 밀레니얼세대의 60% 이상이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반면 65세 이상 시니어층의 활용률은 20%에 불과하다. AI와 노년층을 연결하는 담론 또한 주로 돌봄, 말벗, 건강 관리 등 ‘수혜자’로서의 위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AI 시대 시니어들의 경쟁력을 간과한 것이다. AI의 장점은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능력이며 이는 플랫폼에 접근할 수 있는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제공된다. 따라서 AI 시대의 진정한 개인 경쟁력은 데이터화하기 어렵고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원천 경험’에서 비롯되며 바로 이 지점에서 시니어들은 오히려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AI는 데이터를 빠르게 분석하고 패턴을 발견하는 데 탁월하지만 최종적인 판단이나 복잡한 맥락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다. AI는 윤리적 판단, 전체적인 맥락 파악, 인간에 대한 공감 능력과 설득력 발휘 등에서는 취약한 반면 특정 분야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아온 시니어들은 자신만의 경험 데이터를 기반으로 직관과 통찰력을 발휘해 이러한 AI의 약점을 효과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시니어들은 AI가 제시하는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현실에 최적화된 선택을 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다.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는 AI의 답변 속에서도 오류나 비약, 허점을 짚어내는 현장 경험으로 축적된 직관과 통찰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니어들의 경험과 지혜가 AI의 막대한 데이터베이스 및 추론 능력과 결합될 때 비로소 AI 시대가 요구하는 혁신이 탄생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미국의 벤처캐피털 ‘브릴리언트 마인드’는 50세 이상의 창업가들을 중점적으로 지원, “시니어의 지혜야말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혁신의 원천”임을 강조하면서 정년이나 은퇴 같은 고정관념은 AI 시대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일부 로펌에서도 고참 변호사의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AI에 학습시켜 신입 변호사의 업무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숙련된 지혜를 공유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이러한 물결에 동참하고 있다. 물론 단지 나이만으로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의미 있는 경험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소화해 독창적인 통찰력을 가진 시니어들만이 AI 시대의 새로운 기회를 활용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다. AI 시대에 경쟁력 있는 시니어가 된다는 것은 풍부한 스토리를 지닌 매력적인 인간으로 성숙해 간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자신만의 경험을 새로운 기술에 접목하는 ‘젊은 시니어’와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성숙한 주니어’들이 함께 만들어갈 미래 사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귀중한 지식 창고이자 AI 시대의 능동적인 창조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그런 세상일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실험을 위한 생명의 무게

귀여운 햄스터가 인류와 맺은 최초의 신분은 실험동물이었다는 사실을 아는가. 햄스터는 작고 세대교체가 빠르고 다루기 편하다는 이유로 1930년대부터 실험동물이 됐다. 실험설치류는 햄스터와 기니피그를 포함해 마우스와 래트가 주를 이룬다. 이들은 감염병과 암 치료, 신약 개발, 식품과 화장품의 독성실험 연구에 사용돼 왔다. 연중 사용되는 실험동물은 미국에서만 최소 2천만마리로 추정되며 설치류가 그중 90%를 차지한다. 중국, 러시아, 유럽 등의 자료를 합하면 규모는 몇 배수가 될 것으로 판단한다. 동물실험연구는 오늘날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과도한 맹신과 불필요한 이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실제 동물실험 결과가 인간에게 적용되지 않는 연구나 교육 목적의 해부 수업은 굳이 동물을 사용해야 했느냐는 비판을 받는다. 실험을 위해 일부러 질병을 주입하는 동물이 있다. 이들은 사는 동안 큰 고통을 받는다. 실험 특성에 따라 고통의 단계도 다르다. 김진석 박사는 자신의 저서 ‘동물의 권리와 복지’에서 위해의 수준을 4단계로 설명했다. 1단계는 관찰 위주의 실험으로 동물이 해를 입지 않는다. 2단계는 한 번의 표본 채취로 작은 불편이 존재하며 3단계는 표본이 자주 채취되거나 억류되는 실험으로 중간 수준의 불편을 겪고 4단계는 본능적 생리를 박탈함으로써 심각한 위해에 직면한다. 동물들은 실험 내내 숱하게 중등도 이상의 고통을 받는다. 다행히 전 세계적으로 이들을 위한 복지 전략으로 ‘3R’s 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동물실험을 대체할 방법을 찾고(Replacement), 실험에 이용되는 마릿수를 줄이며(Reduction), 고통과 불편함을 최소화할 수단을 취하라(Refinement)는 뜻이 담긴 이 법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통해 시행되고 있으나 실험동물에게 실질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구체적 조치는 여전히 부족한 실정이다. 실험동물로 만들어졌으나 실험에 쓰이지 못하는 동물에 대한 대책은 없으며 실험이 끝나 쓸모를 다한 이들이 어떤 죽음을 맞이하는지, 산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보장의 노력과 관심은 너무나 적다. 그래서 실험동물의 사전·사후 대책에 관한 최소한의 정책과 관리 방안이 꼭 필요한 실정이다. 위대한 연구일수록 실험동물의 기여는 훌륭하고 이들의 고통이 대신한 비용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작은 동물의 노고를 인정하는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과학적 성과에 초점을 둔 해석만으로는 실험동물이라는 ‘생명’의 가치를 온전히 헤아릴 수 없다. 그들의 희생이 연구의 성공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따라서 실험동물의 희생은 값으로 환산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무게로 이야기돼야 한다. 실험동물이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으며 실험의 일부로 평가된다 해도 그들은 물건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다. 태어나기 전부터 누군가를 대신할 운명을 부여받는 생명이 있는가. 우리는 과연 그들의 삶과 죽음을 연구 성과를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만 여겨야 하는가. 실험동물의 희생을 이야기할 때 그들의 존재를 존중하고 책임지는 태도가 먼저 논의돼야 한다. 작은 몸을 가진 햄스터 한 마리, 실험대 위의 쥐 한 마리에게 우리가 지고 있는 빚은 연구 성과라는 명목으로 덮어둘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과정에서 인정하고 갚아 나가야 할 묵직한 몫이 아닐까.

[함께하는 미래] 광장의 빛을 재생에너지로

최근 미국 국립빙설자료센터(NSIDC)의 데이터를 영국 BBC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2월13일까지 5일 동안 북극과 남극의 해빙 총 면적은 1천576만㎢로 이는 같은 기간 2023년 1~2월 기록된 종전 최저치인 1천593만㎢를 경신한 수치라고 한다. 2년전보다 무려 우리나라 면적의 약 2배 가까이 해빙이 녹아내린 셈이다. 해빙 면적이 줄어든 만큼 지구는 평형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지구촌 곳곳에 인간이 과학기술로도 예측하기 어려운 천재지변으로 재난을 만들어 낼 것이다. 가속화되는 지구온난화로 모든 지표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데 지구 반대편에선 지난 세기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나라의 수장이 취임하면서 내뱉은 일성이 우리가 닥친 현실을 다시금 되뇌게 했다. 소위 초강대국 최고 책임자의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취임사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와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 그 도발적인 망언은 과거 30여년 동안 힘겹게 기후 보호를 위해 쌓아 온 공든 탑을 도미노처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며, 온갖 시련을 딛고 기후 대응을 위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실현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로 하여금 당분간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화석연료로의 회귀에 대한 공포에 치를 떨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 국회 입법조사처는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더라도 에너지 전환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우리나라처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최소한 ‘탄소중립 기본법’으로 정한 에너지 전환을 충실히 이행해 에너지 안보와 탄소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국익에 부합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이 현실로 다가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강대국의 패권주의와 일방주의가 횡행하면 약소국은 발등에 놓인 여러 급한 불을 동시에 꺼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명한 대처 없이는 나라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될 수 있다. 정치 일정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광장을 통해 새로운 사회를 위한 수많은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장기간 불통과 일방통행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누적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간절한 민의의 외침이다. 무엇보다도 우선해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 불과 몇 해 전 수많은 논쟁 및 갈등을 동반한 공론화 과정과 국민적 합의를 통해 그나마 마련한 2050 탄소중립 선언과 계획이다. 최근 무도함에 뿌리까지 흔들리기를 반복했지만 시민 스스로가 키운 불씨는 다행히 완전히 꺼지지 않았고 수많은 난관 속에서도 서서히 싹을 틔우고 있다. 자주성과 지속가능성을 모태로 시민 누구나 주인이 돼 재생에너지를 통해 현재와 미래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자 하는 에너지협동조합의 활동이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 명료하다. 시민 모두가 에너지 생산과 이용의 주인이 되자는 것이다. 우수가 지나고 곧 동면하던 개구리가 놀라서 깬다는 경칩인데 이 절기에 겪는 한파가 현 시국을 닮았는지 쉽게 끝나지 않고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애태운다. 날씨가 널뛰어도 해는 어김없이 봄을 재촉한다. 서둘러 마무리하고 보습을 닦고 쟁기질을 준비하는 농부처럼 무너진 살림살이와 새까맣게 멍든 마음을 치유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다시는 이 땅에 발을 동동 구르는 일이 반복되서는 안 된다.

[함께하는 미래] AI 쇄국정책으로 딥시크를 막을 수 없다

지난달 중국의 헤지펀드 회사 환팡퀀트 소속 인공지능 연구기업 딥시크(DeepSeek)가 전 세계 인공지능(AI) 산업에 큰 충격을 줬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통제 때문에 성능이 낮은 H800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딥시크의 R1 모델이 가장 강력한 성능을 가진 H100 칩을 활용한 오픈AI의 o1 모델과 대등한 기술력을 보여줬다. 더 놀라운 점은 자본금 1천만위안(약 19억9천만원)으로 설립된 딥시크의 R1 개발비가 1천570억달러(약 208조원)의 가치를 가진 오픈AI의 챗GPT 개발비의 5.8%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딥시크 충격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양면적이다. 한편에서는 AI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산업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식 다음 날인 지난달 21일 미국 오픈AI, 오라클, 일본 소프트뱅크가 참여하는 총 5천억달러 규모의 ‘스타게이트(Stargate)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이틀 뒤에는 자유로운 기술개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의 AI 규제를 철폐하는 ‘AI에서 미국 리더십을 위한 장벽 제거’ 행정명령이 공포됐다. 한편으로는 미국 관공서와 군부대는 딥시크 R1의 사용을 금지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처리 방식이 불분명해 R1에 보안 침해 가능성과 함께 개인정보 유출이 의심된다는 이유에서다. 기기 정보, IP 주소, 키보드 입력 패턴 등이 불법적으로 수집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면서 미국 의회는 틱톡 금지 법안과 유사한 딥시크 금지 법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업정책이 논의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AI기본법’을 제정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글로벌 인공지능 3대 강국(G3) 도약, 중소벤처기업부는 AI생태계 활성화를 목표로 올해 대규모 재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반면 행정안전부는 이달 4일 중앙부처와 17개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생성형 AI 사용에 유의해 달라고 요청하고 이에 외교부, 국방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외부망과 연결 가능한 업무용 PC에서 딥시크의 사용을 차단하는 등 보안정책까지 언급되고 있다. 미국처럼 대규모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가성비가 훌륭한 딥시크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면 우리나라가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과의 격차를 줄이지 못할 것이다. 올해 우리나라 예산 중 AI 관련 예산은 총 1조8천억원으로 미국의 200억달러(약 29조원), 중국의 1천917억위안(약 39조원)에 비해 턱없이 적으며 민간투자(2023년 기준)에서도 우리나라가 13억9천만달러로 미국(672억2천만 달러)은 물론이고 중국(77억6천만달러)보다도 훨씬 적다. 중국 AI 산업의 저력은 풍부한 연구인력에 있다. 중국 내에만 생성형 AI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이 700개가 넘는다. 미국 폴슨연구소의 ‘글로벌 AI 인재 현황 2.0’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미국 기업과 연구기관에 소속된 최상위 AI 연구자의 47%가 중국 대학 졸업자이며 미국 대학 졸업자는 18%에 불과했다. 미중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이다. 2025년 처음으로 네이처 인덱스의 2~11위를 중국 대학이 차지했다. 1위인 하버드를 제외한 스탠퍼드(12위), MIT(13위), 옥스퍼드(14위), 도쿄대(15) 모두 중국 쓰촨대(11위)에도 추월당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중국에서 제2, 제3의 딥시크가 나오는 것은 시간문제다. 생성형 AI에 대한 정책은 기술·산업 육성과 보안 침해 방지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 제한된 재원과 인력으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가성비가 좋은 중국 AI 모델을 적절히 참고해야 한다. 중국 AI 모델의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쇄국정책은 기술 발전을 촉진하기보다 후퇴시킬 가능성이 더 높다. 정부와 업계는 보안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 딥시크의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함께하는 미래] AI 빈부 격차

지난주 생성형 인공지능 챗GPT 접속 중단 사태는 현대사회에서 인공지능(AI)이 얼마나 깊숙이 뿌리내렸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챗GPT가 다운됐다고? 그럼 이제 나보고 ‘생각’을 하란 말이야”라는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유저의 농담은 AI가 현대인의 사고와 업무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생성형 AI가 본격적으로 세상에 등장한 지 2년 남짓. 이제 AI 없는 세상은 점점 과거의 일이 돼 가고 있다. 젊은 세대들이 내비게이션 및 구글 맵 없이 해외여행을 하거나 낯선 길을 운전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것처럼 AI 없이 살아가는 세상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가 우리 눈앞에 성큼 다가오고 있다. AI는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만 있으면 누구나 공평하게 접근 가능한 기술로 보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정보 격차는 점차 심화되고 있으며 AI 활용 능력은 이제 경제적 여건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챗GPT의 경우 누적 사용자 수가 약 1억8천만명에 달하지만 월 20달러의 유료 버전 사용자는 3~5%, 월 200달러의 프로 버전 사용자는 1% 미만에 그친다. ▲추론 능력 ▲데이터의 질 ▲응답 속도 ▲사용자 인터페이스 등에서 고가의 서비스가 월등히 뛰어난 성능을 제공함은 자명한 사실이다. 보도대로 월 2천달러의 초고가 서비스가 출시된다면 이러한 AI 성능 격차는 개인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러한 AI 빈부 격차는 국가와 기업 차원에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한국 정부의 연간 예산에 달하는 720조원을 AI 인프라 구축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글로벌 기업 메타는 맨해튼 면적에 버금가는 초대형 데이터센터 구축 등에 약 93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민간 영역과 함께 2027년까지 65조원 투자를 목표로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불균형 속에서 지난주 중국의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는 AI 패권 구도의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는 혁신적 사례를 제시했다. 젊은 천재들이 모여 있는 이 회사는 물량보다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통해 기존 AI 개발 모델의 5% 정도에 불과한 비용으로 챗GPT에 필적하는 성능의 AI를 개발했으며 이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개인용 PC와 전기료만 있다면 누구나 최고 수준의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 셈이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AI 산업을 주도하던 엔비디아의 주가는 하루 만에 17% 폭락하며 시가총액 900조원이 증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딥시크의 기술력, 안정성과 신뢰성에 대한 의문,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 등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하지만 딥시크는 창의적 아이디어와 혁신이 막대한 자본과 물량 공세를 넘어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증명했다. 이는 투자와 인프라에서 뒤처지고 있는 한국이 창의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으로 여전히 국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더 많이’와 ‘더 크게’가 어려울 때는 혁신으로 무장한 ‘더 스마트’한 접근이 해결책인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외교 동물의 삶

1479년(성종 10년) 당시 백성들은 처음 보는 생명체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코끼리 두 마리. 이 거대하고 이국적인 동물은 명나라 황제의 선물이었다. 처음에 코끼리는 조선 백성들에게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그러나 인기도 잠시, 코끼리는 너무 많이 먹었고 풀, 곡류 같은 농작물 조달은 점차 비용 부담으로 다가왔다. 여기에 코끼리 탈출 사건과 코끼리로 인해 사람이 죽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불만을 품는 백성들이 늘었다. 천덕꾸러기가 된 이들의 기록을 종합하면 오랜 귀양살이와 영양 부족, 추운 조선의 기후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통받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국가 간 우호 관계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 정치적 목적이 담긴 동물, 이들의 이름은 외교 동물이다. 과거 이들은 생명체임에도 불구하고 물건으로서 거래의 대상이 됐다. 겉으로는 화려한 이목이 쏠렸으나 실제 그들의 삶은 매우 열악하고 비참한 것이 현실이었다. 19세기 문화적 연결을 상징하기 위해 영국으로 간 호주 캥거루는 부적절한 영양과 날씨로 질병에 시달렸고 비슷한 시기 유럽 왕실로 간 아라비아말은 역시 음식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이른 나이에 폐사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사육정보를 통해 여러 건강 문제를 개선했다. 그러나 여전히 외교 동물의 삶을 바라보며 걱정하는 목소리는 존재한다. 중국의 외교 동물 판다는 임대 형식으로 고액을 받고 제공되며 기간이 종료되면 중국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만일 타국에서 새끼가 태어나도 이들은 중국의 소유가 돼 번식 적령기가 오기 전에 자국으로 반환돼야 할 의무가 있다. ‘푸바오’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판다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지난해 중국으로 돌아갔다. 푸바오는 태어나고 자란 한국을 떠나 낯선 환경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이동은 단순한 환경 변화가 아니라 정서적 단절과 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이는 현재의 외교 동물이 여전히 정치·경제적 목적으로 이용되며 동물 자체의 행복과 복지는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외교 동물에 대한 충분치 못한 배려는 인류 사회와 정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상업 논리와 화려한 외교 정치의 그늘에서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으며 생명을 다루는 윤리적 문제와 정서적 상실감에 직면한다. 이러한 부작용은 결국 국가 간 신뢰를 강화하고자 했던 외교 본연의 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외교 동물의 삶에는 국격이 보인다. 이제는 푸바오의 이야기를 통해 외교 동물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단순히 판다를 귀여운 동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생명이 지닌 고유한 가치를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준 사랑만큼 그들의 삶에도 존엄과 안정이 보장돼야 한다. 외교 동물은 단순한 상징물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생명이 조화를 이루며 공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돼야 한다. 푸바오 같은 외교 동물이 우리의 삶에 준 기쁨이 그들 스스로에게도 행복으로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이 이제 우리의 몫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그 몫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할 때 대한민국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이런 한 해가 돼야 한다

지난 9일 기상청은 2024년이 113년 관측 이래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불과 최근 30년 전보다 연평균 기온이 2도나 높아진 것으로 더 이상 한반도는 기후변화의 ‘안전지대’가 아닌 ‘취약지대’임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과 동시에 지구 평균 기온을 높이는 나라, 즉 ‘기후 악당’ 국가임을 실시간 증명하고 있다. 기후 변화와 관련된 기사를 접할 때마다 마음 한편에 그 결과가 조금이라도 빗나가기를 바라지만 항상 그 기대는 속절 없이 무너져 미래를 어둡게 한다. 전 세계 어떤 국가나 정부, 지구인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의 지름길이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이미 과학적 사실과 검증으로 확인되고 합의된 결과이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지극히 정상적이고 보편 타당한 경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속도와 양은 우리가 선택한 정부의 성격과 공동체의 준비 정도에 따라 결과는 매우 큰 격차를 보인다. 기후위기 해결책은 어떤 권력을 가진 특정인에게 헛되게 맡겨진 것이 아니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날뛰고,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는 시절이다. 결국 기후위기의 해결책도 조직된 시민의 힘에 있다. 그 힘의 크기가 경로를 바로잡고 속도를 배가시키고 양도 결정할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국가 기간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에 대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관련 전문가·지역주민·현장 운동가들은 한목소리로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환경성, 주민 수용성, 형평성 등의 관점에서 입법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인식을 같이했다. 현재의 ‘전원개발촉진법’ 하에서도 결국 형식적인 주민 참여, 정보 비공개, 일방적인 의견 수렴, 현실과 괴리된 보상 방식 등으로 갈등은 커지고 기간은 더 길어지고 있는 상황인데 본질을 외면한 채 전력망 건설 기간만 단축시키려는 법안이 현재의 상황을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이다.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전력 산업과 전력 시장의 구조 개편, 분산형 전력망, 전력 계통의 운영 기준과 운영 기술의 선진화, 에너지 저장장치 확대 등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무도한 시절을 이겨내면 새로운 세상을 향한 밑그림을 그리는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다. 그 시작은 장밋빛 청사진보다는 현재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보듬고 감싸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가장 현실적이고 창의적인 대안이 나온다. 모래성처럼 파도에 휩쓸려 흔적 없이 허물어지는 것이 아닌 장기간의 험난한 여정을 함께 이겨낼 수 튼튼한 초석을 놓아야 한다. 이미 현실이 된 기후재난을 우리 모두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2025년 새해는 씨줄에 날줄이 걸리고 날줄에 씨줄이 걸리는 것처럼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묶고 서로에게 묶여 전체가 되고 방향이 되고 면적이 되기 바란다. 각기 다른 과정을 통해 삶과 생존, 사회생활에 필요한 생필품도 만들어내며 문화도 일으키고 의식도 일깨우기를 바란다. 진정 우리 사회의 상식과 정의, 기본과 순환고리가 지켜지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생로병사의 순환 속에서 깊은 위로와 애도를 표하는 일들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감히 뭐라 위로하고 어떻게 아픔을 나눠야 하는지 가늠조차 힘든 일들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상식을 목격하고 행동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세대와 세대를 이어 희망이 샘솟기를 바란다. 이런 한 해가 돼야 한다.

[함께하는 미래] F 학점도 아까운 F4 회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여하는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인 이른바 ‘F4 회의’가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치 문제까지 깊이 관여하고 있다. 이창용 총재는 지난 2일 신년사에서 “최상목 권한대행이 대외신인도 하락과 국정 공백 상황을 막기 위해 정치보다는 경제를 고려해 어렵지만 불가피한 결정을 했다”고 주장했다. F4 회의가 경제와 정치를 정상화하는데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기여하고 있을까. 시장의 평가는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유행어에 담겨 있다.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령이 발동되기 훨씬 전부터 해외투자자들은 물론이고 국내투자자들이 F4 회의를 불신임했던 것이다. 재정적자는 2년 연속 증가했다. 2023년 87조원, 지난해에도 30조원의 적자가 발생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정부는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 주택도시기금, 공공자금관리기금 등을 동원했다. 원화와 외화를 합친 외평기금 잔액은 2023년 말 기준 274조원이었다. 국세 수입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이 기금에서 2023년에 19조원, 지난해에도 4조원와 6조원이 각각 사용됐다. 환율이 불안정한 상황에서 외국환평형기금의 축소는 시장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시장의 냉혹한 평가는 ‘셀 코리아(Sell Korea)’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 7~11월 미중 반도체 전쟁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반도체 기업 주식이 많이 매도됐다. 12월 이후에는 비상계엄령과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정치적 불확실성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을 가속화시켰다. 외국인 보유 시가총액이 지난해 7월10일에서 올 1월7일 사이 약 190조원 줄었다. 그 결과 전체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외국인 지분도 같은 기간 3.08% 하락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내국인 투자자 속칭 ‘서학개미’의 해외 증권투자 증가다. 한국은행의 ‘2024년 3분기 국제투자대조표 잠정치’에 따르면 통계를 집계한 후 처음으로 우리나라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액(9천969억달러)이 외국인의 국내증권투자액(9천575억달러)을 제쳤다. 외국인과 내국인의 자본 유출은 원화 평가절하로 이어졌다. 원-달러 환율이 지난해 12월2일 이후 1천400원대를 지속하고 있다. 1990년 환율변동제를 도입한 이후 환율이 1천400원대를 3주 이상 지속했던 사례는 1997년 외환위기(1997년 12월9일~1998년 3월20일)와 2008년 금융위기(2008년 11월17일~12월9일)밖에 없었다. 이런 점에서 현재 상황은 금융위기 직전과 매우 유사하다. 이창용 총재의 주장과 반대로 현재 상황에서 F4 회의는 경제보다 정치를 더 고려해야 한다. 투자자들이 현재 가장 우려하는 문제는 경제정책이 아니라 정치적 불확실성이다. 정치적 혼란이 지속되는 한 어떤 경제정책도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속한 사법 처리만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재판 과정이 길어질수록 탄핵의 경제적 충격은 커질 것이다. 지금은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함께하는 미래] AI, 증가상현실과 메타버스

메타버스의 거품이 가라앉은 후 한동안 침체됐던 증가상현실 분야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해 12월13일 구글과 삼성은 혼합현실 헤드셋 ‘프로젝트 무한’으로 약 10년 만에 XR 시장에 복귀했으며 메타는 혁신적 디자인과 사용자 편의성을 앞세운 스마트 글래스 ‘오라이온’을 지난해 9월 선보였다. 오랫동안 침묵을 유지해 온 애플 역시 같은 해 5월 첫 증강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를 출시하며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구글의 AI 시스템 ‘제미나이’는 프로젝트 무한을 통해 고도로 개인화된 인터랙티브 경험을 제공하며 메타의 AI는 사용자가 바라보는 사물의 맥락을 파악해 영화 속 인공지능 비서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처럼 XR 헤드셋은 AI와의 결합을 통해 단순한 디지털 기기를 넘어 우리의 비서이자 지적 동반자로 진화하고 있다. 사용자들은 이제 3차원으로 구현된 구글 맵 속의 공간을 실제로 탐험할 수 있으며 의사는 눈앞의 공간에 펼쳐진 환자 데이터를 AI와 함께 실시간으로 분석하며 진료를 진행한다. 산업 현장의 작업자들은 증강현실(AR) 매뉴얼과 AI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복잡한 조립 작업을 수행하며 해외 파트너들과는 언어 장벽 없이 마치 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협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이 모바일 휴대폰처럼 대중화되기까지는 여전히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오라이온의 프로토타입 제작 비용은 현재 약 1천500만원에 달하며 향후 몇 년간 상용화 계획이 없다. 애플이 야심차게 출시한 비전 프로 역시 킬러 콘텐츠 부족 등의 이유로 초기 판매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 분야의 중요성은 단기간의 투자 회수보다는 미래의 파급력에 있다. AI와 공간 컴퓨팅이 결합된 메타버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융합해 인류 사회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잠재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래 사회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메타는 수십조원 규모의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있으며 다른 빅테크 기업 역시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 중국 또한 ‘디지털 실크로드’ 전략과 적극적인 가상현실(VR) 육성 정책 등을 통해 정부와 기업의 역량을 결집, 독자적인 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주도권 경쟁에서 점차 밀려나는 모양새다. 많은 지자체와 단체들이 비전이나 기술적 이해 없이 메타버스의 유행에 너도나도 편승하더니 어느새 메타버스라는 단어가 정부 지원 사업이나 투자에서 금기어처럼 취급되고 있다. 장기적 비전과 과학적 분석 없이 새로운 키워드 중심의 유행만 반복되는 관행이 낳은 결과다. 마크 저커버그는 XR를 ‘최후의 플랫폼’이라고 표현했다. 메타버스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기술과 문화가 만나는 국경 없는 새로운 통합 영토인 것이다.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거시적 어젠다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 새로운 영토에서 대한민국이 차지할 자리는 그리 넓지 않을 것이다.

[함께하는 미래] 동물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공생’

일본의 신칸센 고속열차, 비행기 엔진, 항공기 날개, 풍력 터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물총새다. 물총새는 물고기를 발견하면 재빠르게 물속으로 뛰어들어 사냥한다. 이때 사냥 성공의 핵심 도구는 뾰족한 부리다. 물의 저항을 크게 줄여 공격 속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인류는 물총새의 생체 특성을 연구해 빠르고 소음이 적은 고속열차를 만들었다. 또 이를 비행기와 풍력 터빈에도 응용했다. 자연에서 발견된 구조나 시스템을 모방해 기술적으로 응용하는 기술을 ‘생체모방과학’이라 한다. 실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예는 다음과 같다. 모기의 입 구조를 모방한 주사침은 환자의 통증을 줄여줬고 박쥐의 초음파 위치추적시스템은 자율주행차 개발에 영감을 줌과 동시에 드론에도 응용됐다. 도마뱀붙이의 발바닥 구조를 보고 강력 접착 테이프를 만들었으며 거미줄의 강도와 유연성을 모방한 합성섬유는 방탄복, 의료 봉합사, 심지어 로봇팔에도 사용되고 있다. 북극곰 털은 속이 비어 있는데 이를 모방해 효율적인 단열재를 개발하는가 하면 사막의 흰개미 둥지가 지닌 독특한 자연 환기 시스템을 활용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 짐바브웨의 이스트게이트센터처럼 에어컨 없이도 시원하게 유지되는 친환경 빌딩이 설계됐다. 이처럼 식물과 동물에서 발견한 원리는 새로운 기술이 돼 우리 일상에 효율과 편리를 제공한다. 생체모방과학을 통해 실생활의 지혜를 얻었다면 인문학적 측면에서는 ‘공생(共生)’을 배울 수 있다. 공생이란 동물 또는 식물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사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 예로 개미는 포식자로부터 진딧물을 보호해주고 진딧물은 개미에게 단물을 먹게 해준다. 말미잘과 흰동가리, 소와 반추위 미생물들도 비슷한 공생 관계에 있다. 흡혈박쥐는 사냥에 실패한 동료에게 자신의 피를 나눠 주기도 하고 늑대 우두머리는 어리거나 늙고 상처 입은 동료를 보호하기 위해 애쓴다. 이러한 행위가 당장은 동물 집단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서로의 결속력을 강하게 만들어 생존을 유리하게 한다. 즉, 남을 위하는 행동이 나에게 이익으로 돌아온다.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저서 ‘국부론’을 통해 보이지 않는 손의 결과로 이타주의를 언급했으며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호혜적 이타 행동이 개인 또는 유전자에 이익을 준다고 이야기했다. 이타주의는 겉으로는 타인을 위한 행동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개인에게도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1980년대 에티오피아 기근으로 수백만명이 굶주렸을 때 퀸 같은 당대 음악가들이 참여한 라이브 에이드 콘서트는 많은 돈을 모아 소중한 생명을 살렸다. 그뿐만 아니다. 우리는 오늘날 세계 각지에서 재해 복구를 위한 도움의 손길을 본다.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노력이 커 간다면 언젠가 내가 예기치 않은 일을 겪을 때 사회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20세기 아프리카 사막화가 심해졌을 때 케냐의 환경운동가 왕가리 마타이를 중심으로 그린벨트운동이 시작됐는데 이는 아프리카에 수천만 그루의 나무를 심는 계기가 됐다. 이후 사막화 지역이 줄어들었고 동물 서식지가 복원된 곳도 있었으며 지역주민들은 다시 농업을 통해 생계를 이어 나갔다. 동물을 보호하고 모두의 환경을 걱정한 마음이 나와 내가 속한 사회에 작지 않은 선물로 돌아온 것이다. 공생은 나를 둘러싼 다른 생명체를 생각하는 이타주의에서 비롯된다. 내가 소중한 만큼 남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 이것이 인류가 지혜롭게 사는 길이자 자연과 동물에게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함께하는 미래] 불확실성을 넘어

폭염 지나 폭설로 시작된 가을 그리고 뒤늦은 겨울, 올해를 쉽게 잊지 못할 것 같다. 아니, 살아가는 동안 그 낯섦과 익숙함에 적응해야 할 것 같은 걱정에 불안감이 엄습한다. 기후변화가 인간에게 가져올 위기와 그 재난의 크기와 여파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불확실성이 짙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득한 까닭이다. 당장 확인되지는 않지만 지구생태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을 것이기에 다가올 미래는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요동치기를 감히 소원한다. 올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 확실해진 가운데 지난달 198개 당사국을 포함해 6만여명이 참석한 제29차 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개최됐다. 하지만 총회는 전 세계 기후시민의 바람에는 턱없이 부족한 합의로 마무리됐다. 지난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언급한 대로 지구가 온난화 단계를 넘어 ‘끓어오르는 시대’가 확실시돼 2018년 파리협정에서 정한 1.5도 목표를 이탈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국가별 누적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상위 20개국 중 16번째 국가임에도 석탄화력발전소 신규 건설 금지나 보조금의 폐지에 참여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일까.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의 작황 부진으로 주된 식품의 원재료인 밀가루와 팜유, 치즈를 비롯한 기후식품인 커피 원두 등의 가격이 상승했다. 세계식량 가격지수가 수직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위 ‘기후플레이션’이 심상치 않다.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 식량자급률이 낮은 나라에서 주요 먹거리 식품에 대한 물가상승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이는 결국 사회보장이 취약하고 빈부의 격차, 소득불평도가 높은 나라일수록 취약계층의 삶은 더 나락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확실성은 정치적 불안정과 사회적 역동성에 따라 커진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은 과거엔 자료의 부족, 주요 핵심 사안에 대한 이해 부족, 과학자들 간의 의견 불일치 등에 의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문제들에서 나타났으나 최근에는 그런 진단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경로 이행을 방기하거나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확인된 방법을 거부하는 것에서 커진다. 오스트레일리아연방 남호주는 2027년까지 총공급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를 법제화할 예정이라고 한다. 수전 클로즈 부총리 겸 기후장관은 “에너지 전환은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며 세계를 선도하는 기후법, 일관된 정책 그리고 지원적인 계획 시스템이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처한 조건과 준비된 정도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에너지원을 선택할 것인지는 다르지 않다. 12월, 한 해를 마무리할 시점인데 그냥 보내기는 아쉬웠던 탓일까. 꼭 반듯하게 지켜온 것만은 아니지만 우리의 삶과 사회 전반을 뿌리째 뒤흔드는 사태가 발생했다. 개인과 사회의 정신적 충격과 마음의 상처는 누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그것만큼이나 응당 죄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곧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다양한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이다. 모든 낡은 ‘이, 것, 곳’과의 결별과 함께 현재와 미래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열려 있기를 기대한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고, 누구나 에너지 생산과 이용에 주인이 되고, 괜찮은 일자리로 정의로운 전환으로 인한 고통이 최소화되는 따뜻한 공동체를 소망한다.

[함께하는 미래] ‘트럼프 리스크’, 새 안보팀이 대비해야

트럼프 행정부 2기를 주도할 내각과 백악관의 윤곽이 구체화되면서 트럼프 리스크에 대한 우려도 심화되고 있다. 경험이 부족하고 극단적 견해를 가진 측근들이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트럼프 당선인의 지시를 좌고우면하지 않고 밀어붙일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 2기는 바이든 행정부는 물론이고 1기와도 다른 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가장 심각한 리스크는 관세 인상 위협이다. 이는 중국, 러시아 같은 경쟁국 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회원국에도 예외가 없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25일 국경에서 마약과 이민자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으면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오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즉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그에게 전화해 국경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플로리다 마러라고 사저로 찾아가 트럼프 당선인에게 마약 억제와 이민자 차단 방안을 설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도 확전에서 휴전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이후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수복할 때까지 싸운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의 서진을 막기 위해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군사·경제 원조를 제공했다. 반면 미국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는 전쟁이 아니면 참전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트럼프 당선인은 우크라이나에 휴전을 압박했다. 이에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영토 수복 목표를 잠정적으로 유보하는 대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조건으로 휴전협상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행정부 2기 대중 정책 역시 바이든 행정부와 다를 것이다. 시급한 현안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 때리기에 나설 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주변국들과 협력해 중국을 포위하기보다는 시진핑 주석과 담판을 통해 양보를 받아내려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P)를 취임 후 폐기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하기도 전에 트럼프 리스크는 전 세계를 이미 강타하면서 경쟁국은 물론이고 동맹국도 정책 전환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바이든 행정부와의 밀월에 아직도 도취해 있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은 러시아에 파견된 북한군의 전쟁 참여 정도에 따라 우크라이나 정부에 무기를 지원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8월 캠프데이비드에서 합의한 한미일 협력 방안이 트럼프 시대에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은 트럼프 당선인의 공약에 부합하지 않는다. 현재까지 내정된 트럼프 행정부 2기 안보팀의 관심사는 방위비 분담, 북한 핵 협상, 전략자산 전개, 주한미군 지위 등이다. 미국의 정권 교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트럼프 행정부 2기에 최적화된 새로운 안보팀이 필요하다. 바이든 행정부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경험이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도 잘 통한다는 보장이 없다. 캠프데이비드 협상에 참석했던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지난 9월 사퇴했으며 바이든 대통령도 내년 1월 퇴임하기 때문에 3국 정상들의 인적 유대도 사라졌다. 이달 예정된 전면 개각에서 트럼프 리스크를 잘 이해하고 관리할 수 있는 안보팀이 발탁되기를 기대한다.

[함께하는 미래] 예술·과학·산업의 융합이 만드는 미래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매년 9월 개최되는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세계 최대의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로 예술과 과학, 산업의 융합을 통해 미래를 선도하는 혁신의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BMW, HP 등 글로벌 기업들이 파트너로 참여하며 전 세계의 예술가, 과학자, 기술자들이 모여 상상력과 기술을 결합하고 현실 문제 해결과 사회 변화를 위한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장이 되고 있다. 1979년 시작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중심에는 바이오, 미래 모빌리티, 인공지능 등 미래 산업의 핵심 분야에서 예술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연구를 수행하는 ‘퓨처랩(Future Lab)’이 있다. 이 연구소는 지멘스와 협업해 의료 영상을 예술적으로 재해석한 ‘버추얼 아나토미’, 와콤과 협업해 생체신호를 그래픽화하는 ‘라이프 잉크’, 도이치텔레콤과 공동으로 진행하는 차세대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통해 예술 기술 융합으로 산업 현장에서 실질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연구를 수행하고 맞춤형 컨설팅 프로그램으로 기업 혁신을 위한 실질적인 솔루션을 제공하며 기업과 예술, 과학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문화, 기술과 산업뿐 아니라 도시와 지역사회의 혁신까지 이끌어내고 있다. 자신들의 노하우와 연구 결과물을 바탕으로 지역 연구개발(R&D)과 교육을 혁신하고 공장과 폐우체국을 창조 산업의 허브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등의 문화와 기술의 창의적 융합으로 낙후돼 가는 철강산업 도시였던 린츠는 디지털 아트와 혁신의 글로벌 허브로 변모하면서 2014년 유네스코 미디어 아트 창의도시로 지정돼 연간 1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 도시와 지역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된 것이다. 린츠와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사례는 기술혁명 시대의 경쟁력이 창의적 생태계 구축에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한 기술 개발이 아닌,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통해 창조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혁신을 이끌어 내는 국가와 도시만이 미래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것이다. 올해에는 전 세계 67개국, 1천260개의 프로젝트가 참가한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출품작의 25%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작품이었다. 증강현실과 인공지능 혁명의 시대는 지난 몇십년보다 기술과 예술과 산업과 사회의 변화가 더욱 밀접해질 수밖에 없는 시대이며 그것을 선도하는 새로운 씨앗들이 이곳에서 뿌려지고 있는 것이다. 과학, 문화의 유기적인 융합은 창의성과 혁신의 원천이며 다가오는 메타버스와 인공지능 혁명 시대의 핵심 동력이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 린츠시가 만들어낸 예술과 과학, 산업의 싱크탱크와 허브의 구축이 우리에게도 시급한 이유다.

[함께하는 미래] 믿음과 행복을 전하는 말(馬) 이야기

사막의 낙타, 남미 고지대의 라마는 약 4천년 전부터 사막과 고산지대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사람의 이동을 활성화하고 인류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물자를 보급해 주던 동물이다. 이와 달리 대평원을 달리는 데는 말(馬)만한 동물이 없었다. 말은 5천500년 전 중앙아시아에서 최초로 가축화됐고 이후 4천200년 전 서부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또다시 가축화돼 이동과 운송을 위해 인류와 길고 긴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최고속력 시속 60~70㎞, 하루 최대 이동거리 100㎞를 달리는 말이 인류사에 가져다 준 업적은 실로 눈부셨다. 특히 기원전 334년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스에서 출발해 페르시아와 인도까지 거대한 제국을 확장하는 원정에서 말은 중요한 교통수단이자 전투 도구였다. 이후 13세기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 제국은 말을 이용해 유라시아 전역을 빠르게 정복했고 중세 유럽에서는 기사가 말을 타고 싸우는 것이 군사 전술의 핵심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고구려와 발해의 기병대, 고려의 기마무예, 조선의 파발제 같은 통신제도를 통한 말의 활약은 독보적이었다. 19세기 유럽 이주민들이 북미에서 서부 개척지를 탐험하고 정착해 농장을 일구기까지 말은 미국의 개발과 경제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말은 참호전 격전지에서 병참과 물자 수송을 담당했다고 하니 인류 역사의 시작부터 불과 100년 전까지 이동과 수송, 전쟁과 교통에 기여한 말의 헌신은 상상을 초월한다. 만일 말이 없었다면 인류 사회는 느리게 발전했을 것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법하다. 왜 하필 말일까. 잘 달리는 동물에는 얼룩말이나 사슴도 있고 힘 좋은 동물에는 코끼리나 소를 따를 자가 없다. 그런데도 굳이 말이어야 했던 이유는 기동성과 지구력을 모두 갖춘 신체적 덕목이 선행됐겠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사람을 믿고 따르는 말 고유의 성격이 신뢰와 행복감을 전해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말은 운송·통신을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스포츠, 레저, 관광 같은 새로운 일을 맡아 인간 사회에 남게 됐다. 특히 신체 균형을 바로잡고 마음 치유를 돕는 재활 승마는 자폐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말에게 의지해 더 나은 세상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성취감과 도전정신을 북돋우고 심리적 안정과 자아 존중감을 되찾게 한다. 자유롭고 강인한 말은 신뢰의 아이콘이 돼 인류의 새 시대를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속담에 ‘안정적인 친구를 원한다면 말을 길러라’는 말이 있다. 말이 얼마나 헌신적인 믿음과 안정을 주는 동물인지 알 수 있는 이야기다. 윈스턴 처칠은 “훌륭한 말을 타고 있을 때가 가장 좋은 자리에 있는 것”이라 했다. 말에서 느끼는 자유로움과 행복감이 매우 큼을 의미한다. 경주마, 승용마, 조랑말, 은퇴마. 먼 훗날 세월이 흘러 지금 하는 말의 역할이 쓸모없어진다 해도 미래의 말은 여전히 인류의 좋은 파트너로 새 역할을 찾아갈 것만 같다. 수천년간 쌓아온 깊은 역사적 유대를 바탕으로 하는 고마운 말이기에 우리 인류가 앞으로 말과 함께할 공존의 관계를 더 소중히 준비하고 가꿔 나갔으면 좋겠다.

[함께하는 미래] 기후시계탑 앞에서

지난해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에 참가한 198개 당사국들은 기후재난의 최소화를 위해 지구 평균기온 1.5도 상승 억제를 목표로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용량을 3배로 확충하고 에너지 효율을 2배로 증대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이를 회피하고 싶은지 아직도 ‘시곗바늘을 디지털로 할까, 아날로그로 할까’ 등 소모적인 논쟁을 주도하면서 그나마 남은 탄소 예산을 개인의 일탈처럼 소진하고 있다. 이미 일어난 과거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절박한 선택의 기로에서 그 원인에 대한 진단이 과학적으로 분명하고 해결 방안도 이미 기술적으로 일반화된 방법으로 충분하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사실이다. 또 전환의 시점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부담도 현 세대보다 미래 세대에게 전가되고 있다는 사실도 이미 경험하고 있다. 낡은 것과 얽힌 고리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국민의 시곗바늘과 정부와 국회의 시곗바늘이 같아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2022년 국회 ‘국민동의청원’으로 모아진 ‘탈석탄법’ 제정을 원하는 시민의 바람은 21대 국회의 임기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됐다. 하물며 새로운 개념으로 등장한 ‘탄소중립’이라는 용어마저 우리에게 인식되기도 전에 마치 연기처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무엇보다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인데 선출된 공복이 오히려 지배하려는 모양새인지 최근에는 이마저 언급되는 것조차 꺼린다. 22대 국회는 ‘정의로운 탈석탄법’으로 거듭나야 한다. 초기 화석연료 문명을 개척했던 유럽연합의 변신은 놀라운 정도다. 의회에서 지난해 재생에너지 목표를 2030년까지 기존 32%에서 42.5%로 상향시켰고 45%까지 확대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세부적인 실행계획까지 법제화하는 것으로 전환의 시대에 부응하는 그들의 의지와 철학을 담았다. 하지만 우리는 2030 온실가스감축목표가 법제화돼 있음에도 이를 뒷받침하는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계획’이나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전혀 그런 의지가 읽히지 않는다. 온갖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짜집기하고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과학적으로 기술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신규 사업을 제시하기 바쁘다. 마치 거꾸로 가는 기후에너지 정책생산소처럼 국민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재생에너지를 생산·이용하는 누구에게나 나침반이 되도록 법제화가 우선이다. 특히 이달부터 2016년부터 시행되던 ‘1㎿ 이하 소규모 신재생에너지 계통접속보장제도’가 폐지됐다. 지난 9월부터는 광주광역시, 전남·북, 강원도에서는 2032년까지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사업 허가가 불가능하게 됐다. 정부와 한전은 전력계통 안정성 확보를 방기하고 그 부담을 소규모 재생에너지 사업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후위기시대 재생에너지의 생산과 이용은 시민의 기본권이다. 정부와 국회는 ‘재생에너지 계통연계 의무화’로 화답해야 한다. 곧 정부와 국회에서 내년도 예산 심의가 이뤄진다. 정부의 정책 브리핑을 통해 홍보된 예산안 핵심 사업을 살펴보니 한숨부터 나온다. 기후재난으로 우리의 삶이 위협받고 있다. 우리의 권리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 디지털로 돌아가는 국회 기후시계탑의 시곗바늘을 아날로그로 바꿔야 할까.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가 아니라 작동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함께하는 미래]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지원, 어떻게 할 것인가

북한이 러시아에 병력 1만명을 파견하면서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공격용 무기 제공을 미국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협의하고 있다.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에 따르면 우리의 주적인 북한이 러시아를 지원하면 우리는 러시아의 주적인 우크라이나를 도와주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이 지원이 우리나라 국가안보를 강화하는 데 기여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언제 어떻게 줄 것인가에 대한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모든 국가안보 정책의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은 ‘국가이익’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이 우리나라의 이익에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아직 없다. 현재 우리가 당면한 가장 큰 위협은 북한의 핵무기 공격이다. 그런데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이 대북 억지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 개입하는 것이 우리나라의 안보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연루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어느 동맹국이 개입한 전쟁에 나머지 동맹국들이 자국의 의지와 관계없이 휘말리게 되는 상황에서 이 위험은 더욱 커진다. 미국은 러시아와 직접적 군사 충돌을 막기 위해 개전 후 2년 동안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를 직접 타격할 수 있는 공격용 무기를 제공하지 않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주장했듯이 미국은 이 전쟁이 러시아와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요구에 계속 미온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가입하면 러시아-우크라이나전쟁에서 러시아-NATO 전쟁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연루 위험은 대리전에 대한 우려와 연결돼 있다. 대리전은 분쟁의 당사국이 직접 충돌하지 않고 동맹국이나 관련국이 적대국과 싸우도록 만드는 전쟁을 의미한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NATO를 대신해 러시아와 싸우고 있다. 만약 우리가 보낸 공격용 무기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북한군을 살상하는 데 사용되면 한반도의 긴장은 급속하게 고조될 것이다. 최악의 경우 우리나라가 NATO와 우크라이나를 대신해 북한과 무력으로 충돌하게 되는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 정부는 NATO 회원국도 아니며 군사동맹국도 아닌 우크라이나를 위해 병력과 무기를 희생해야 할 명분과 근거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 않다. 공격용 무기 지원의 실질적 효과에도 주목해야 한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지난 6월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조약 체결 이후 러시아와 북한의 밀착을 견제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에 지원은 러-북 관계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파병의 대가로 러시아는 북한에 식량과 에너지는 물론이고 핵 및 미사일과 관련된 기술을 제공하고 있다.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정찰 및 항법위성, 대륙간탄도탄(ICBM) 재진입, 핵잠수함 건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기술을 전수받는다면 그동안 국제사회가 부과했던 대북 제재는 사실상 무력화된다. 중차대한 국가안보 문제가 정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정부는 이 문제들을 국회와 우선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초당적 합의에 기반을 두지 않은 정책은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것이다. 여야가 잘 논의해 안보 불안을 조속히 해결해 주길 기대한다.

[함께하는 미래] 행운•불운을 비추는 거울 ‘고양이’

고양이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작지만 다부진 체격, 게으름, 날렵함, 반짝이다가도 게슴츠레한 눈,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 일본의 마네키네코, 행운과 불행. 이처럼 다양하고 대조적인 개념이 동시에 떠오르는 대상이 있나 싶다. 개뿐만 아니라 고양이는 자연스럽게 사람과 함께 지낸 반려동물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사뭇 개와 다르다. 반려견이 인간 생활사에 풍덩 담긴 ‘묵은지’라면 고양이는 잘 익은 ‘김치와 겉절이’다. 열 반려견 안 부러운 애교쟁이 ‘실내냥이’에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는 ‘길냥이’까지 사는 모양이 다양하다. 고양이는 1만년 전 농경이 태동한 마을에 쥐를 잡기 위해 먼저 왔고 스스로 길들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그들은 적절한 거리 두기로 야생성을 간직하고 있다. 나를 잃지 않고 남에게 물든 이 현명함이 고양이가 지닌 정체성이 아닐까 한다. 나 자신을 지키는 힘은 세상을 사는 원동력이다. 또 남을 돕는 유용한 그릇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그릇은 거울과도 같아 나와 남을 동시에 비춘다. 고양이의 조상, ‘아프리카 들고양이(Felis lybica)’는 인류와 함께하면서 ‘집고양이(Felis catus)’가 됐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쥐로부터 식량 창고를 지켜낸 공을 높이 인정받아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고양이는 파라오를 보호하고 서민의 식량을 지키는 신으로 칭송됐고 행운, 정의, 다산의 상징이 돼 수많은 미라, 조각상, 벽화로 재탄생했다. 이집트인들은 고양이가 가져온 이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해했다. 세월이 흘러 유럽까지 퍼진 고양이들은 농업 사회에 큰 도움을 주며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이어갔다. 그러나 13세기부터 균열이 생겼다. 중세 유럽에서는 과학을 반기독교적 사상으로 믿고 지식을 탐구하는 사람들을 마녀로 몰았다. 무지가 낳은 미신은 고양이를 악마로 규정했고 오랜 기간 마녀사냥과 동시에 고양이 숙청이 자행됐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쥐벼룩에 기생하는 세균으로부터 발생한 흑사병은 14세기부터 발생해 10년 동안 최소 3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18세기까지 창궐했다. 원인은 여전히 논란 중이나 당대에 만연했던 사회 풍조에 대해 한 번쯤 인과관계를 생각해 볼 일이다. 중세 유럽인들은 고양이의 유입을 비뚤어진 사회적 시각으로 해석했고 되돌아온 부메랑은 처참했다. 고양이는 먼저 인간에게 다가왔고 공생(共生)했다. 서로에게 식량을 줬고 터전을 나누며 존엄을 인정해 왔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인간의 관점이 왜곡되고 정신이 황폐해질 때, 고양이는 악행의 피해자가 돼 인간이 지닌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소설 ‘검은 고양이’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고양이를 아꼈다. 그러나 알코올 중독이 심해질수록 파괴된 자아상은 학대로 대변됐다. 이런 모습은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최근 기사를 검색하면 동물 학대의 동네북은 늘 고양이다. 가끔 생각한다. “고양이야 도망가”라고. 왜 이렇게 당하면서 사람 곁에 있는지 묻고 싶기도 하다. 그럴 때 이 작은 생명체는 느긋한 눈빛으로 이런 대답을 하는 것만 같다. 고마우니까 곁에 남는 거라고. 그래서 사람이 사람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때까지 거울이 돼 비춰 주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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