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전봇대에 오줌을

박 훈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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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개들은 전봇대에 오줌을 싸는 걸까요?” 선배 문인에게 물었다. “그건 자기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서지. 그런데 오줌을 싸는 건 비단 개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싸긴 하는데, 그건 울분을 표하는 거래. 내가 확인해보진 못했지만, 어느 소설가가 내게 말해준 바로는, 일제억압시대에 일본이 끌어들인 대표적 문명 도구 중 볼썽 사나운 것 하나가 전봇대라는 거야. 그래서 당시 유명했던 소설가 한 분의 작품 속에, 술에 취해 울분을 토하며 전봇대에다 오줌을 갈기는 장면이 나온대. 그래서 그 이후 많은 사람들이 술만 취하면 전봇대에 울분과 함께 오줌을 퍼부었다고 하는군.”

이런 전봇대가 요즘 또 이슈가 됐다. ‘전봇대는 전주(電柱), 또는 전신주 등의 속어로 키 큰 사람의 별명으로도 쓰인다’고 사전 풀이가 되어 있다. 전기와 통신은 요즘 현대문명의 절대적인 이기로 공기나 물만큼 필수적이며 자연적인 도구이다. 자연적인 것이라고는 하지만 또한 인위적 물질문명의 상징으로 표현되곤 한다. 전깃줄과 함께 전봇대는 푸른 하늘에 걸려있는 흰 구름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든지, 마지막 숨을 고르며 넘어가는 빨간 석양을 몇등분해 놓는다든지, 쭉 뻗은 가로수들 사이에 끼어 나무들의 행진을 막아선다든지 한다.

단지 풍경과 미학 상의 문제만이 아니다. 도로나 토지, 구역, 건물 등의 건설문제로 사유재산에 침해를 주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선 고압철주가 사람의 건강은 물론 농작물에도 심각한 장애를 일으킨다고 주민들이 집단 항의를 하기도 한다. 폭풍우 등에 의해 전봇대가 쓰러져 전기와 통신 등이 끊어지면서 생활과 산업 등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한다.

필자는 그렇지 않아도 평소 지상의 전봇대에 대해 많은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제 대운하뿐만이 아니라 전봇대의 지중화 문제에도 커다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어쩌면 대운하보다도 더 시급한 문제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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