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항로에서 혼자 가는 길은 없다. 나침반(羅針盤)만 있으면 또 다른 길이 개척되기도 한다. 큰 길, 작은 길뿐만 아니라 교차로, 종착점과 더불어 복선(複線)으로 달리는 길도 있다. 사회적으로 적용하면 노선(路線)이나 이념이라 칭할 수 있다. 실천은 또 다른 문제다. 실천을 위해서는 선택이란 과정이 등장한다. 즉 선택을 위해서는 결심을 필요로 한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1910년 한국사회를 담당하는 주된 교육기관은 서당이었다. 전국적으로 1만6천540곳, 교원 1만6천773명, 아동은 14만1천604명 등이었다. 보통학교는 173곳, 교사 749명, 학생 2만194명 등이었다. 그밖에 종교학교, 외국어학교, 실업학교, 중고교 등이 있었다. 당시 한반도 인구는 1천300만여명에 불과했다. 이렇게 교육기관과 학생이 많았으나 신문물 시대에 맞는 경쟁력이 없었다. 그 결과 조선이 일본에게 병합당하는 국가적 수모를 당했다. 이에 따라 선각자들은 신식학교 신설을 통한 교육입국을 통해 조선의 독립을 추구했던 것이다. 이렇게 연마한 역량이 그 이후 한민족 성장사에 밑거름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3·1운동 등 이후 한민족운동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 수학을 위해 필요한 수학능력과 인적자원에 대한 기초기준은 국가가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각 대학에 맞는 인력선발의 기준은 국가가 정할 수는 없다. 기업, 대학, 지방자치단체가 자율과 창의를 추구하는 분권국가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홉스는 “추론은 계산을 뜻한다”고 설파했다. 기계론적 사고를 모두 수용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일과 우선순위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동기의 순수성에만 매달려, 문제제기만 반복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미신(迷信)이다. 21세기는 유능한 인적자원이 국가경쟁력을 견인하는 지식기반사회이다. 인재 1명이 1만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이다. 대학진학률 83%인 한국과 대학진학률 27%인 싱가포르와 어느 나라가 선진국인가?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여 국가경쟁력 강화를 추구하는 싱가포르가 앞서가는 교육시스템인 것이다. 이제 결심할 때가 됐다. 21세기 글로벌 경쟁시대에 교육과 인적자원에 대해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나라는 무한정 평준화 교육만 추구하는 것도 문제이다. 앞으로는 평준화 교육과 영재교육이 조화를 이루는 노력이 필요하다. 불안과 한계를 인정하는 결심이 필요하다. 오세구 경기도생활체육협의회 사무처장
오피니언
오세구 경기도생활체육협의회 사무처장
2007-12-1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