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한자 교육 의무화

몇 년 전 ‘심심한 사과’라는 말 때문에 ‘글을 해석하는 능력(문해력)’이 큰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몇몇 누리꾼이 “(마음의 표현 정도가) 깊고 간절하다”라는 뜻의 한자어 ‘심심(甚深)한’을 “하는 일이 없어 지루하다”라는 뜻의 우리말 ‘심심한’으로 잘못 알고 댓글을 달면서 시작된 논란이었다. 그 뒤로도 여기저기서 비슷한 사례들이 계속 터져 나오고 있다.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알고 ‘무운(武運)을 빌다’를 ‘운이 없기를 빈다’로 이해하고, ‘일탈(逸脫)’을 ‘일상탈출’의 준말로 생각하고.... “학생들에게 교과서 속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 데만 수업 시간의 절반을 써야 할 정도”라는 한 수도권 일반계 고교 사회과 선생님의 언론 인터뷰 증언은 문해력 문제가 지금 어떤 상황까지 와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해결할 방안은 이미 여럿 제시돼 있다. 학생들에게 독서와 신문 읽기를 적극 권장하고, 논리적인 글 쓰기와 토론 훈련을 시키고, 스마트폰의 과도한 사용을 자제시켜야 하며.... 다 맞는 처방이지만 모든 학교가 이를 균등하게 시행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이런 면에서 교육 당국이 한자(漢字) 교육을 학교 정규 수업으로 의무화했으면 한다. 문해력 문제의 대부분이 한자 단어를 모르는 데서 생기기 때문이다. 예전 중고등학교에는 대부분 일주일에 한 시간씩 한문 수업이 있었다. 그것이 2000년대 말쯤 없어졌는데 그 과정에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한문 수업은 한자 학습 시간으로 바꿔 계속했어야 할 일이었다. 우리말 단어의 절반 정도가 한자어인데 한자를 안 배운다는 것은 우리말을 안 배우겠다는 말이나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한자 교육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흔히 한문과 한자를 똑같이 보는 잘못을 범한다. 하지만 이 둘은 문장과 글자(단어)라는 큰 차이가 있다. 길든 짧든 문장인 한문은 대개 중국의 문학과 역사 등에 관한 지식이 꽤 있어야 제대로 해석할 수 있기에 무척 어렵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쓸 일은 많지 않은 만큼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굳이 머리 아프게 배우지 않아도 별문제가 없다. 반면 한자 단어는 중국어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늘 쓰는 ‘우리말’이기 때문에 꼭 배워야 한다. 그것도 전체가 5만자쯤 된다는 한자를 모두 배우는 것이 아니고 흔히 쓰는 500~1천자만 알아도 우리말 문해력이 엄청나게 올라간다. 인공지능(AI)이 무섭게 발전하는 시대라 해도 한자 교육의 중요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AI와도 우리 말과 글로써 대화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우리말 어휘를 모르고 제대로 이해를 못 하는데 어떻게 AI에 정확하게 질문을 하고, 얻어낸 답변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겠는가. 6·3 지방선거와 함께 교육감이 다시 뽑혔다. 교육감이 일선 학교들과 협의해 ‘한자 단어 교육’을 정규 수업 과정에 넣을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줄 것을 제안한다. ‘자치(自治) 시대’라니 전국 모두가 안 되면 인천만이라도 좋다. 마침 국가교육위원회가 최근 ‘문해력 특별위원회’를 발족하고 교과서에 한자를 함께 쓰는 방안을 다시 논의키로 했다니 시점도 적절하다.

[인천시론] 지방선거와 장애인의 권리

장애인복지사업의 지방 이양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그동안 장애인복지의 상당 부분은 지방정부의 책임 아래 운영돼 왔다. 따라서 지방선거는 단순히 지역의 행정 책임자를 선출하는 과정이 아니라 지역 장애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1월 27일, 전국에서 제일 먼저 출범한 인천지방선거장애인연대는 의미 있는 시도를 했다. 장애인을 정책의 수혜자가 아닌 정책의 주체로 세우고자 한 것이다. 그동안 장애인단체는 선거 때마다 공약을 요구하고 정책 개선을 촉구해 왔지만 이번에는 인천 장애인계가 직접 정책 요구안을 만들고 후보자들에게 질의하며 답변을 정책협약식을 통해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을 마련한 것이다. 사실 장애인의 정치 참여는 투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책을 제안하고 후보를 평가하며 지역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 역시 중요한 정치 참여이고 장애인 당사자가 정책 형성과정에 참여할 때 비로소 현실적인 대안이 만들어지며 정책의 실효성도 높아질 수 있기에 인천지역 장애인단체는 능동적으로 주변에서 중심으로의 정치참여를 선언한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 과정에서 인천지방선거장애인연대는 인천시장 후보들에게 장애인 정책 10대 요구안을 제안 했으며 주요 후보들과 정책협약을 추진해 장애인 정책을 선거의 의제로 끌어올리고자 노력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후보와 국민의힘 유정복 후보가 장애인계와 정책협약을 체결한 것은 그 자체로 장애인 정책의 중요성이 인천 지역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정책협약서와 협약식 사진 한 장이 장애인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거나 정책 실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공약집이나 공보물에 얼마나 그 제안이 반영됐는지, 그리고 선거 과정에서 이뤄진 약속이 실제 예산과 제도로 연결되는지 살펴보는 일은 선거 결과나 앞으로의 과제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지난 10개월간 인천 장애인계가 의제를 형성하고 연대체를 구성해 정책을 제안한 과정, 후보들이 이에 답하고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과정은 인천 시민사회와 장애인 당사자를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가 한 단계 발전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돌이켜보면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권을 비롯한 전반적인 권리는 역시 당사자들의 참여와 요구를 통해 발전해 왔다. 거리의 턱이 사라지고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공공시설의 접근성이 개선된 것은 바로 당사자의 문제 제기와 사회적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정치 참여 또한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정책의 대상에 머물지 않고 정책의 주체로 참여할 때 지역사회는 보다 풍부한 대안을 담아낼 수 있다. 장애인 정책은 소수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이동약자를 위한 환경이 결국 모든 시민의 편의를 높이듯이 장애인의 참여가 확대되는 사회는 민주주의의 폭 또한 넓어진다. 이번 2026년 전국동시지방선거 과정에서 인천지방선거장애인연대의 활동은 장애인 정책을 선거의 주변부에서 중심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의 한 과정이었다. 그 가치와 의미는 6월 3일, 선거가 끝난 후 당사자와 시민들에 의해 평가받게 될 것이며, 인천지역 장애인의 권리를 위한 정치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인천시론] 삼성전자 ‘유산 상속’ 싸움의 시각

요즘 국내 증권시장이 뜨겁다. 이러한 주가 상승에는 총 시가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올해 1분기에 각각 57조2천억원, 37조6천억원의 역사적 이익 규모를 달성한 것이 크게 기여했다. 주식투자자들이 잘 아는 투자 지표로 주가수익률(PER·Price Earning Ratio)이 있다. 5월 중 삼성전자의 PER을 계산하면 6~7배로 나오는데 같은 반도체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의 16배와 비교하면 삼성전자의 주가가 마이크론에 비해 크게 저평가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마이크론보다 매출 및 이익 규모에 있어 모두 두 배 이상인 점을 고려하면 현재의 삼성전자 주가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불이익, 즉 ‘디스카운트’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이 ‘디스카운트’는 매출이나 이익 같은 회계 숫자가 아닌 정치적 안정성, 경제적 역동성, 합리적 의사결정 과정, 시장의 투명성, 건강한 노사관계 등에 의해 결정되며 이상의 요인이 긍정적일 때 ‘프리미엄’이 되기도 한다. 삼성전자의 이익 규모가 예상을 크게 뛰어넘자 그 분배를 두고 말이 많다. 노동자가 기업의 이익에 대해 우선적인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성경에도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신명기 25장 4절)’라고 나와 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은 당연하다. 주주들은 나름대로 회사의 소유권을 가진 정당한 주인이기 때문에 이익을 독점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법적으로 보면 매우 타당한 논리다. 오죽하면 정부가 국민배당제를 들고나왔을까. 처음으로 맞은 거액의 복권을 두고 싸운다고 하면 삼성전자와 관련된 분들에게 결례일까. 그런데 이러한 노사 양측 간의 갈등이 정부의 중재 노력마저 무색하게 할 정도로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이다.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파업이 진행된다면 100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고 한다. 노동자와 주주들에게 57조3천억원의 이익이 아니라 100조원의 손실이 발생해도 노동자들이 손실을 더 많이 책임지겠다고 시위하고 주주들은 자신의 소유 지분보다 더 손실을 담당하겠다고 주장할지 궁금하다. 어차피 법적으로 사전에 정해진 권리가 아니라면 이익이든 손해든 같은 기준으로 나누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일반 국민의 시각이 그렇다는 얘기다. 관혼상제 중에서 결혼식보다 장례식을 치른 후 자식 간에 금전적 분쟁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한다. 장례식 후에는 상속이란 예민한 문제가 통과의례처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겨진 유산의 크기가 클수록, 돈의 가치를 잘 아는 부자일수록 그 분쟁의 정도가 심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지금 삼성전자 노동자와 주주는 최고 글로벌 기업 중의 하나인 삼성전자의 금고에 쌓여 있는 돈을 나누려는 과정에서 국민경제를 볼모로 삼고 있지 않은지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갈등은 이해가 되지만 부자들의 유산싸움은 사회적으로 용인되기 어렵고 자칫 비난받기 십상이다. 일반 국민은 노조가 더 가져가든 주주들이 더 가져가든 큰 관심도 없고 영향도 받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파업으로 이어진다면 그 피해는 국민 모두의 손해로 이어진다. 경제학에 ‘부정적 외부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한 경제주체(삼성전자)의 경제행위(파업 등)가 제3자(일반 국민)에게 의도치 않은 손해를 입히는 경우를 말한다. 이는 시장 실패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정부 개입의 확실한 근거가 된다. 정부는 최악의 결과가 발생하기 전에 적절히 조처해야 한다. 국민에게는 6월3일 지방선거보다 더 급하고 더 중요하다.

[인천시론] 가정폭력 통합대응체계 서둘러야

3일 울산의 한 아파트에서 60대 남성이 이혼한 아내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은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다. 피해자가 과거 여러 차례 가정폭력과 스토킹 피해로 스마트워치를 지급받고 가해자가 전자발찌까지 착용하는 등 국가의 보호조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비극을 막지 못했다. 위험 신호가 반복되고 공권력이 개입됐으나 친밀한 관계 속에서 발현되는 집착과 폭력의 굴레를 완전히 끊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가정폭력은 일반적인 폭력 사건과 달리 독특하고도 치명적인 위해성을 지닌다. 폭력이 발생하는 장소는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이며 가해자와 피해자의 ‘친밀한 관계’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보복에 대한 공포뿐만 아니라 경제적 의존성, 자녀 문제, 그리고 ‘집안일’로 치부되는 사회적 시선으로 인해 외부 도움을 요청하는 데 심리적 장벽이 있다. 피해 여성이 이혼 후 남은 짐을 챙기러 갔다가 참변을 당한 이번 사건처럼 관계의 단절을 시도하는 순간이 오히려 가장 위험하다. 이는 가정폭력이 피해자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중대 범죄임을 뜻한다. 인천의 상황 또한 이러한 전국적인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인천은 인구 대비 가정폭력 신고율이 전국에서 상위권에 속한다. 이는 시민이 폭력 민감도가 높고 공권력에 도움을 요청하는 의지가 강하다는 지표로 볼 수 있으나 동시에 그만큼 많은 시민이 가정 내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높은 신고율에 비해 실제 사건이 형사 처벌로 이어지거나 피해자가 전문 지원기관으로 완벽히 연계되는 비율은 여전히 개선의 여지가 많다. 이에 대응해 인천은 보다 촘촘하고 실질적인 ‘인천형 피해지원체계’를 구축하는 데 박차를 가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분절된 지원체계를 하나로 묶는 통합적 대응이다. 상담소, 보호시설, 경찰, 법률지원 등을 초기 신고 단계부터 자립까지 ‘원스톱’으로 이어지는 광역단위 컨트롤타워를 강화해야 한다. 특히 올해부터 추진되는 행정체제 개편 과정에서 지역 격차 없는 안전 인프라를 갖추도록 해야 하며 물리적 접근성이 떨어지는 사각지대에는 찾아가는 상담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 시설의 내실화도 빼놓을 수 없다. 인천은 현재 피해자들이 긴급히 몸을 피할 수 있는 가족보호시설이 부족하고 주거지원시설의 공급 또한 전국 평균에 못 미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격리된 후에도 안정적으로 자립을 준비할 수 있도록 보호시설을 확충하고 전담변호사 지원제도 등을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또 경찰과의 협력을 통해 재발 우려 가정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해야 하고 스마트워치 등 신변보호 대책이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끊임없이 점검해야 한다. 가정폭력의 종식은 단순히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가 폭력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사회 전체가 지지 기반이 돼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울산의 비극이 우리에게 던진 과제는 무겁다. 국가와 지역사회가 개입했음에도 발생한 틈새를 메우기 위해 인천은 더욱 세밀하고 강력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가장 안전해야 할 공간에서 눈물 흘리는 이가 없는 도시, 그것이 미래도시 인천이 지향해야 할 진정한 목표다.

[인천시론] 일제 잔재 지명

인천시가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지리정보원과 함께 ‘일본식 표기 의심 지명(地名) 정비사업’을 벌이고 있다. 2020년 전국적으로 시작한 이 사업에 따라 인천에서는 그동안 138개의 땅이름을 대상으로 보고 조사했다. 그 결과 106개는 의심스러운 부분들이 있지만 그대로 두기로 했고 31개는 아직 조사 중이며 나머지 하나 ‘작약도(芍藥島)’는 일본식 지명으로 판명돼 원래 이름인 ‘물치도(勿淄島)’로 바꿨다고 한다. 아직 조사 중인 31개 지명 중에는 연수구 송도와 부평구 백마정, 옹진군 이작도 등이 들어 있다. 시는 이들을 좀 더 조사한 뒤 내년 중 지명위원회를 열어 변경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이 사업의 뜻은 짐작이 간다. 하지만 선정 기준이 분명치 않을 뿐 아니라 지명 바꾸기를 너무 가볍게 본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인천의 조사 대상인 138개의 땅이름 중에는 계양산이나 마니산처럼 고려 및 조선 초기부터 쓰인 이름들에 통일신라 때 생긴 강화 교동(喬桐)까지 들어있다. 이들이 왜 일본식 표기 의심을 받아 ‘정비’ 대상이 됐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반면 식민지 시기에 일본인이 지어 붙인 것이 분명한 연수동·효성동·창영동 등의 여러 이름은 아예 대상에서 빠져 있다. 아직 조사 중이라는 이름들도 문제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송도(松島)’다. 인천의 송도는 1936년 당시 인천시장 격이었던 일본인이 서울과 인천의 자산가와 상공인들을 모아 ‘송도유원주식회사’를 세우게 하고 그 결과로 이듬해 송도유원지가 문을 열면서 생긴 이름이다. 이는 앞서 1913년 부산에 송도해수욕장이 문을 열면서 송도라는 이름이 생긴 것과 똑같은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일본인은 그들이 예부터 일본의 3대 절경(絶景) 중 하나로 꼽는 미야기현의 ‘송도’나,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 모두 출전했던 군함인 ‘송도함’을 기려 우리나라 곳곳에 이 이름을 심어 놓았다. 따라서 송도는 일제가 남긴 이름이 맞는다. 하지만 그래도 이름을 바꾸는 것은 장단점을 따져 신중히 결정해야 할 문제다. 송도는 이전의 송도유원지에 이어 이제는 송도경제자유구역 등을 통해 인천뿐 아니라 전국, 아니 세계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름이 됐다. 이를 ‘일제의 잔재’라 하여 이제 다른 이름으로 바꾸면 엄청난 혼란이 생길 것이고 지금만큼의 지명도를 되찾는 데도 무척 오랜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그렇다고 이름을 바꿈으로써 이런 혼란과 피해를 감수할 만큼 강렬한 민족의식이 끓어오를지도 의문이다. 송도뿐 아니라 일제의 잔재 지명은 아직도 전국에 숱하게 널려 있다. 이들을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지는 하나하나 잘 살펴보고 결정할 일이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은 물론 중요하고 필요하다. 하지만 일제 잔재를 청산해야겠다면 우선 무엇이 진짜 잔재인지, 그것들이 왜 문제인지부터 제대로 따져봐야 한다. 더 나아가 진정 욕된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상대를 정확히 알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런 연구와 노력은 없이 광복되고 80년이 넘은 지금도 그저 해묵은 민족감정 수준에서 일본에 대응한다면 결국 손해를 보는 것은 우리 자신임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인천시론] 장애인의 날, 차별과 질문들

장애인의 날이 돌아올 때마다 “많이 나아졌다”,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라는 비슷한 말이 반복된다. 그러나 인천의 현장을 지켜보는 입장에서 이 말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 제도는 늘었다고 하지만 삶은 여전히 가로막혀 있고 여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문제는 부족함이 아니라 방향이다. 지금의 정책은 여전히 ‘보여주기식 개선’에 머물러 있고 그 사이에서 장애인의 권리는 일상적으로 배제되고 있으며 쉽게 끊어지고 있다. 필자는 ‘불편’이라는 말로 포장된 문제들이 사실은 명백한 ‘권리 침해’라는 것을 수없이 확인해 왔다. 이동권이 대표적이다. 저상버스가 늘었다고 하지만 정작 필요한 시간과 노선에서는 이용이 어렵고 지하철 역사에서 휠체어 이용자가 엘리베이터 고장으로 수십분을 기다리다 결국 이동을 포기하거나 평균 대기시간이 25분이라고는 하나 1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한 ‘장애인콜택시’라 불리는 특별교통수단 등의 사례들은 필자도 직접 겪었고 겪고 있는, 보통의 장애인들이 인천 곳곳에서 접하는 반복된 일상이다. 숫자는 채워졌지만 권리는 비어 있기에 이러한 불편들은 교육을 포기하게 만들고, 일자리를 제한하며, 사회적 관계를 끊어내는 구조적 문제로 작용한다. 생활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천지역 다수의 음식점은 여전히 경사로조차 없고, 지원사업은 존재하지만 생색내기에 그치며 그마저 절차는 복잡하고 실효성은 낮다. 점검과 단속 역시 형식에 그치면서 결국 장애인은 ‘들어갈 수 있는 곳’을 따로 찾아야 한다. 아울러 키오스크 확산 등 발전된 디지털 정보 기술 앞에서 장애인의 접근권은 제한되고 있으며 새로운 장벽이 되고 있다. 접근권과 선택권의 제한은 명백한 차별이다. 고용 문제 역시 심각하다. 많은 기업이 장애인 의무고용을 회피하고 부담금으로 대신하고 있으며 고용이 늘었다고 하지만 보호고용에 머무르거나 경력 개발의 기회 없이 주변부로 밀려난다. 이제는 정책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동권 보장은 ‘최소 기준’이 아니라 ‘보편적 권리’로 재설계돼야 한다. 단순히 시설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이용 가능성을 기준으로 점검해야 한다. 특히 인천광역시는 이동권 실태를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이용자 중심 평가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음식점을 비롯한 다중이용시설의 편의시설과 디지털 접근성은 법적 의무를 넘어 ‘표준 인프라’로 자리 잡아야 한다. 설계 단계에서부터 누구를 배제하는지 고민하지 않으면 기술은 차별로 작용한다. 마지막으로 고용 정책은 ‘양’이 아니라 ‘질’ 중심으로 전환해야 하며 부담금제도를 강화해 ‘고용 회피’가 더 이상 유리한 선택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의 이동권과 접근권, 노동권은 복지가 아니라 권리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며 이러한 권리는 선언이 아니라 실행으로 증명해야 한다. 또 당사자의 경험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가장 정확한 데이터이기에 ‘당사자 참여’가 보장된 정책을 현장에서 작동시켜야 한다. 장애인의 날은 기념과 축하의 날이 아니라 점검과 질문이 전제된 차별철폐의 날이어야 한다. 그래서 얼마나 바뀌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여전히 외면하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인천에서 반복되는 배제와 반인권 상황을 직시하고 이를 방치해 온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되어야 하며, 권리는 선언이나 기념으로 만들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바뀌어야 할 것은 장애인이 아니라 사회다.

[인천시론] 독서로 시작하는 AI 다양성 교육

새 정부 들어 2025년 교육부의 ‘모두를 위한 AI 교육’은 시대의 요구를 정확히 짚은 선언이다. 인공지능(AI)이 일상과 노동, 학습을 재구성하는 지금 AI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문제는 이 정책 속 ‘모두’가 실제로 누구를 의미하는가에 있다. 현장의 현실은 냉정하다. 현재의 AI 교육은 코딩, 데이터 활용, 디지털 역량 같은 기술 중심으로 설계돼 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이주민, 장애인, 노인 같은 사회적 소수자는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밀려난다. 언어 장벽, 접근성 문제, 디지털 격차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는다. 결국 ‘모두를 위한 AI 교육’은 이미 준비된 사람들을 위한 교육으로 축소될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AI 교육의 출발점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AI를 잘 사용하는 능력보다 중요한 것은 AI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기반은 기술이 아니라 문해력, 곧 읽고 이해하는 힘이다. 나아가 이 힘은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유통시키게 한다. 다문화사회로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이 문제는 더욱 절실하다.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 삶의 경험을 지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환경에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정보 처리 능력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AI는 번역을 제공할 수 있지만 맥락을 파악하고 이해를 대신하지는 못한다. AI는 정보를 연결할 수 있지만 관계를 형성하지는 못한다. 공존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해석 능력에서 출발한다. 이 때문에 독서는 다시 교육의 중심에 놓여야 한다. 독서는 지식을 축적하는 행위가 아니라 타인의 세계를 경험하는 과정이다. 낯선 삶을 이해하고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생각을 재구성하는 훈련이다. 이러한 과정은 사회적 소수자에게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주민에게 독서는 새로운 사회의 언어를 익히는 통로이고 장애인에게는 세상과 연결되는 확장된 감각이며 노인에게는 삶을 재해석하고 사회와 다시 이어지는 매개다. 이들에게 필요한 AI 교육은 기술 이전에 이해의 기반을 세우는 교육이어야 한다. 최근 인천시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읽걷쓰’ 교육은 이러한 방향을 보여준다. 세상을 읽고, 삶 속에서 경험하고, 다시 쓰는 과정은 지식을 단순한 정보에서 의미로 전환시키는 구조를 만든다. 학습자는 더 이상 정보를 소비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사고하고 표현하는 주체로 성장한다. 이는 AI 시대에 필요한 인간형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AI는 점점 더 많은 일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선택하고 왜 그것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그 판단력은 속도와 효율로 길러지지 않는다. 오히려 느리고 깊은 독서의 과정 속에서 형성된다. 따라서 ‘모두를 위한 AI 교육’이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방향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술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이해 중심 교육으로, 기능 습득에서 의미 해석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독서를 다시 놓아야 한다. 2월 국회와 인천교육청 공동 주관으로 ‘AI 시대 독서강국으로 가는 길’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여기서 AI 시대의 교육이 길러내야 할 것은 단순히 기술을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다름을 이해하고 타자와 공존하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인간임을 천명했다. 그 출발점은 여전히 분명하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독서교육이다.

[인천시론] 성별임금격차 해소, 지역사회가 답

성별임금격차는 남성과 여성 근로자 간 평균 임금의 차이를 나타내는 지표로 한 사회의 성평등 수준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우리나라의 성별임금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이후 지금까지 가장 심각한 수준을 보여 왔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의 성별임금격차는 31.2%로 OECD 평균 11.4%의 두 배를 훌쩍 넘었으며 2024년에도 여전히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여성들은 돌봄·서비스 등 저임금 직종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고 출산·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이후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일자리로 재진입하는 경우가 많다. 조직 내 유리천장은 여성의 고위직 진출을 제한하고 동일 직무에서도 평가·보상·협상 기회의 차이로 임금 불평등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성 역할 고정관념, 돌봄 지원과 육아휴직제도의 한계가 더해지면서 임금 격차는 더욱 고착화되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여성 인력의 활용을 제한함으로써 국가 생산성과 성장 잠재력을 낮출 뿐아니라 성 불평등을 초래해 결혼·출산 의향을 위축시키고 사회통합을 저해할 수 있다. 여성의 낮은 생애 소득은 자산 축적을 어렵게 만들고 이로 인한 가구 소득 격차와 노후 빈곤 위험을 높이는 등 전 생애에 걸친 삶의 질이 저하될 수 있다. 국제사회는 이미 성별임금격차를 줄이기 위해 임금투명성과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강화해 왔다. 유럽연합(EU)은 임금 투명성 지침을 통해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의 성별임금 정보 공개를 확대하고 있고 독일은 임금 정보 요구권을 보장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대규모 기업의 성별임금격차 보고를 의무화했으며 아이슬란드와 캐나다는 더 강한 공시와 인증 체계를 도입했다. 핵심은 임금을 보이지 않게 두지 않는 것이다. 임금이 드러나야 차별도 드러나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2023년 1월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 2027년)’을 통해 성별근로공시제 도입 계획을 공식화하며 성별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에 나섰다. 이에 따라 공공 부문과 민간기업의 성별 임금 및 고용 현황을 보다 체계적으로 공개하고 임금 정보의 투명성을 높여 구조적 격차를 완화하려는 ‘고용평등 임금공시제’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준비 단계를 거쳐 2027년부터 임금공시제를 본격 실시할 계획이다.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서울은 성평등임금공시제를 선도적으로 시행, 공공기관과 민간기업의 자발적 개선을 유도하고 있다. 인천 역시 2023년 ‘인천광역시 성별임금격차 개선에 관한 조례’를 제정, 공공기관 임금 실태조사와 개선 방안을 마련한 바 있다. 무엇보다 공시제가 임금 정보의 투명성을 높여 성별임금격차를 완화할 핵심 제도이므로 현실적이고 신뢰성 있는 공시체계 구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별임금격차 해소는 더 이상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성평등한 지역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 모두의 핵심 의제다.

[인천시론] 고3의 소풍

이른바 ‘졸업정원제’ 시행으로 대학 입학 정원이 많이 늘어나기 전인 1979년, 필자는 동인천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그때 대학입시가 인문계 고교의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학교에 주는 압박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러했기에 어느 학교든 고3 학생들의 소풍은 생각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꽃 피는 4월 봄날에, 지금은 없어진 청학풀장으로 소풍을 갔다. 당시 교장선생님이 “고3이라고 왜 소풍을 안 가느냐”라며 우리를 풀어준 덕분이다. 지금 학생들은 무엇인지도 모를 교련복을 입고, 기타를 치며 친구들과 신바람이 났던 당시의 사진들을 갖고 있다. 그날 하루 소풍 때문에 우리의 대학입시에 엄청난 피해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동창들을 만나면 거듭 얘기가 나올 만큼 좋게 남아 있다. 그 교장선생님은 이 가치를 알고, 추진할 만큼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갖추셨던 듯하다. 그 소풍은 꽤 예외였지만 그 시절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소풍과 수학여행, 체육대회 등의 바깥 활동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들은 휴식을 넘어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는 중요한 교육과정이었다. 간혹 사고나 문제도 있었지만 그 가치나 순기능을 덮을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활동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고라도 날까 봐 체육대회를 안 하고 소풍이나 수학여행도 꺼린다. 어쩌다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학부모의 험악한 항의는 물론 교육청의 감사가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기야 군대에 가서 훈련받고 병생활관 생활을 하는 것까지 부모들의 온갖 민원과 항의가 들어오는 판에 학교가 온전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일 듯도 하다. 급기야 이제는 안전사고 위험에 더해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상(賞)을 주는 것의 ‘불공정함’을 따지는 학부모들 때문에 졸업식마저 제대로 못 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과연 이런 현상을 ‘시대 흐름’이라는 말로 그냥 덮고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학교는 서로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하면서 공동체의 삶을 배우는 예비 사회다. 교과서 공부로 지식을 넘겨받기만 하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지금의 눈으로는 예전의 학교생활이 인권 침해와 불공정·불합리의 범벅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문제가 무척 많았다. 하지만 그 시절을 겪어내며 공동체를 배우고, 바로잡고, 지켜낸 사람들이 보란 듯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우리의 학교에서 소풍과 체육대회, 수학여행, 동아리 모임 같은 여러 교과서 밖의 활동이 활발하게 살아났으면 한다. 이는 학교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어디에 두는가 하는 ‘교육철학’의 문제다. 거기서 생기는 문제들조차 함께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또 하나의 좋은 교육의 장(場)으로 만들 수 있다. 가뜩이나 학생들이 휴대폰과 컴퓨터에 찌들어 갈수록 사회성과 공동체 의식을 잃어가고 있지 않은가. 겨울이 가고 다시 새봄, 새 학기다. 인천의 선생님들과 교육 행정가들만이라도 고3을 소풍 보낸 그 교장선생님처럼, 학생들의 건강한 바깥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하는 소신과 철학을 보여줬으면 한다.

[인천시론] 색동원 사건이 남긴 메시지

3월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된 장애인권리보장법은 장애인의 기본권, 자립생활 및 탈시설 정책, 소득보장 및 생활지원, 권리보장 체계 구축을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이 법안은 20년간 장애 관련 자원들이 요구한 인권 보장 기본법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인천이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간 지지부진했던 법제화의 진행을 촉진한 계기가 다름 아닌 강화도 색동원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장애인 생활(거주)시설이 탈시설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그것을 보장하는 법제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장애인 시설 출신들에 대한 종단적·시계열적 분석을 통해 탈시설이 인권적인 지원과 삶의 질 확보에 유효하다고 입증한 미국의 펜허스트 사건, 부당한 시설 수용이 장애인 차별에 해당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한 Olmstead v. L.C. 판결, 탈시설이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철학과 이를 보장하는 지원 체계를 법으로 제정한 스웨덴 등의 사례가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이는 불필요한 시설 수용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며 세계는 이미 시설 중심의 복지에서 지역사회 중심의 권리 보장 체계의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수십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장애인 수용 생활(거주)시설에서 장애인 차별과 반인권적 범죄 행위가 일어났으며 가장 비극적인 것은 피해자들은 갈 곳이 없어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지는 소위 ‘시설 뺑뺑이’를 돌고 있는 사건 이후의 모습에 있다. 필자 역시 작년 12월 중순에 있었던 강화도 소재 시설 조사에 이어 이번 3월10일부터 13일까지 민·관·경 합동 시설조사에서 많은 문제점과 색동원 및 해바라기를 비롯한 타 시설에서 입소한 사람들이 다수 존재함을 확인했다. 폭력의 현장에서 벗어나도 다시 도달하는 곳이 결국 또 다른 담장 안이라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 장애인이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자리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음을 증명한다. 이제 우리는 물어야 하고 답해야 한다. 왜 그들은 다시 시설로 가야만 하는가. 그 답은 명확하다.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이 아닌 존엄한 권리의 주체로 세워야 하며 탈시설과 지역사회 자립 도모를 보장해야 하고, 이를 위해 국회가 추진하고 있는 장애인권리보장법과 함께 장애인권리보장조례 제정을 바탕으로 그 토대를 만들고 제공해야 하는 것에 있음을. 조례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지역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인천시의 정책 전반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도록 하는 제도적 틀이 필요하다. 특히 조례에는 장애인 정책 종합계획과 시행계획, 장애영향평가, 정책 참여, 권리침해 대응, 탈시설 및 자립생활 등의 내용이 담겨야 한다. 색동원 사건은 우리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장애인을 시설 안에서 보호하는 사회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권리 사회로 나아갈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이번 사건 이후 인천이 반드시 고민해야 할 과제다. 이제 국가와 인천지역사회는 응답해야 한다. ‘나중에’라는 비겁한 유예 대신 국회는 지금 당장 실효성 있는 장애인권리보장법을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통과, 제정해야 하며 지역에서는 장애인권리보장조례를 제정해야 한다. 장애인을 시설이라는 감옥에서 해방해 우리의 평범한 이웃으로 되돌려 놓는 것, 그것이 색동원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뒤늦게나마 건넬 수 있는 진정한 사죄이자 책임 있는 답변이며 인천시장애인권리보장조례 제정은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인천시론] 인천, 믿을 만한 ‘어른 도시’

최근 ‘아기와 어른의 차이’에 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기는 작고 연약하며 불만이 있으면 바로 울음으로 표현한다. 어른은 웬만한 변화나 고통은 참을 수 있다. 아기가 감사하는 법을 배우기까지 최소 10년이 걸린다. 당연히 어른이 아기를 돌보고 이해해야 한다. 아기와 어른의 관계는 단지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는다. 가정, 학교, 기업 등 모든 조직에 적용될 수 있다. 특히 문화적·지정학적 특징을 다양하게 보유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에 적용하면 각자의 본질적 역할과 의무를 매우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해결하는 단초를 발견할 수도 있다. 인천시는 수도권에 위치하고 인구는 300만명이 넘는다.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유일한 광역자치단체다. 세계적인 물류 허브로서 인천국제공항이 있고 국내 2위의 인천항이 있다. 그리고 역대 대통령선거 결과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인천시의 유권자 성향이나 정치 지형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표본선거구와 다름없다. 인천경제자유구역은 바이오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자유구역을 주도하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외국 대학을 5개나 유치해 4천500명 이상의 학생이 수학하고 있다. 즉, 인천은 어른인 셈이다. 미래의 지속가능성 관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어른은 강도가 들거나 전쟁이 나지 않는 한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어른이 겁먹으면 아기들은 공포에 질리기 때문이다. 계획을 세우고 가족과 이웃 등 구성원과 함께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것이 어른이다. 2월12일 ‘해사국제상사법원(해사전문법원) 설치를 위한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사전문법원 설치를 위한 모든 법적 절차가 마무리되면 인천과 부산이 해당 지역별로 해사·상사 사건을 처리한다. 향후 해사법원에 대한 수요나 확장 가능성을 고려하면 해사전문법원이 인천에 단독으로 위치하면 좋겠지만 당장의 현실도 무시할 수 없으니 매우 어른스러운 결말이라 여겨진다. 나아가 인천만이 가진 국제적 환경을 활용해 경제자유구역청을 아시아 최고의 경제 허브로 키우고 재외동포청과 협력해 함박마을 같은 외국인 거주지역을 잘 돌보는 것도 어른으로서 인천의 장점이자 역할이다. 그러나 녹색기후기금(GCF), 극지연구소 등은 여전히 어른인 인천이 돌봐야 할 아기들이다. 국제기구 등을 지역 내 산업과 연계해 발전시키는 것이 유치를 위한 홍보 못지않게 중요하다. 그래야 제2의 제3의 국제기구, 글로벌 기업들이 믿을 만한 어른 ‘인천’을 찾는다. ‘자신들은 제품을 쓰지 않고 선전만 하면 사기, 직접 사용하면 홍보’라는 말이 있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의 보급, 유튜브 같은 플랫폼의 확산으로 개인이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고 공유하는 ‘1인 방송 시대’가 된 지 오래다. 국제기구나 행사를 유치하기 위한 선동 및 정치적 수사는 이제 효과가 없다. 아기를 잘 돌보는 어른만이 다른 아기를 돌볼 기회를 얻는 것 같이 기존의 ‘아기’를 잘 돌보고 있는지 그러한 협력체계가 인천지역 내에 잘 형성돼 있는지 돌아볼 때다. 이제 석 달 남짓이면 새로운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선출된다. 부디 이번에는 멀쩡한 보도블록을 교체하는 예산 낭비형 정책 공약이 난무하지 않기 바란다. 그 대신 인천이 가진 좋은 기반과 여건을 잘 활용하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지난 수십년간 국가 차원에서 반복된 정책적 낭비가 인천에서 멈추기를 소망한다. 아기처럼 울기보다 어른스러운 문제 해결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인천이 가진 장점을 잘 세어보자! (Count your blessings!). 바야흐로 ‘어른 도시’ 인천이 앞장서 시범을 보일 때다.

[인천시론] 인천형 가족정책 패러다임 시급

사회구조가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가족이 수행해 온 다양한 기능이 약화되고 그 대신 가족의 역할을 국가와 사회가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됐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2005년 ‘건강가정기본법’이 제정, 국가 차원의 가족정책이 본격화했다. 이후 지난 20년간 유자녀 가족에 대한 지원을 중심으로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등 정책 대상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왔다. 같은 시기 가족을 둘러싼 사회환경과 개인의 삶의 방식 또한 빠르게 변화해 왔다. 혼인과 출산을 전제로 한 가족 모델은 더 이상 표준적인 삶으로 기능하지 않게 됐으며 가족은 개인의 전 생애에 걸쳐 구성과 재구성이 가능한 유동적인 관계가 됐다. 이로 인해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개인의 선택은 증가한 반면 불안정성의 확대로 인한 개인의 생애 전략은 강화됐다. 이를 반영하듯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인식은 감소하고 있는 반면 해도 좋고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견해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비혼, 동거, 이혼이나 재혼, 무자녀 등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수용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2023년 가족실태조사’에 의하면 청년층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동의가 6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 구성의 다양화와 함께 가족단위 거주 형태가 감소하고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취업 준비 과정에 있는 청년층에서부터 비혼과 이혼을 선택한 중장년, 사별 이후 혼자가 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세대 전반에 걸쳐 1인 가구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가구의 분화가 단순한 생활양식의 변화에 그치지 않고 돌봄 공백, 사회적 고립, 정신건강 위기, 고독사 위험 등 ‘위험의 개인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6년 ‘제1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수립된 이후 올해는 제5차 기본계획 수립을 앞두고 있다. 지난 20년간 가족센터 확충, 아이돌봄 및 다양한 가족 지원, 가족상담 서비스 등 가족정책의 양적 확대라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인구구조 변화와 1인 가구의 급증 등과 같은 새로운 정책환경 변화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제5차 기본계획은 기존 정책의 단순한 연장이 돼서는 안 된다. 이제는 ‘가족을 지원하는 정책’에서 ‘관계와 돌봄을 설계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 핵심은 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을 뛰어넘어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망과 지역사회 공동체를 정책 범주에 포함시키는 등 가족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혼자 살아도 혼자가 아닌 도시, 위기 상황에서 즉시 연결될 수 있는 도시를 조성하는 일은 고립의 시대를 맞아 지방정부가 수행해야 할 새로운 가족정책의 방향이다.

[인천시론] 말의 해

말은 ‘마력(馬力)’이라는 힘의 단위를 만들어낼 만큼 강하고 튼튼한 동물이다. 특히 몽골을 비롯한 아시아 북방지역의 말들은 큰 덩치와 멋진 갈기, 탄탄한 몸매로 무척 강렬한 인상을 준다. 아주 오랜 옛날, 아마도 만주와 몽골 일대에 살던 유목 민족들을 통해 이 말과 만나게 됐을 우리의 선조들은 그 힘과 당당한 모습에 꽤나 압도(壓倒)됐던 듯하다. 말과 관련한 우리말의 여러 단어나 이야기들이 이를 알려준다. 그 사례 중 하나로 윷놀이에서 사용하는 사위의 이름 ‘도, 개, 걸, 윷, 모’의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는 ‘모’가 있다. 이 사위의 순서는 몸집이 얼마나 큰지와 얼마나 빠르게 달리지에 따라 정해진 것으로 본다. 이중 ‘모’는 말을 뜻하는데 많은 언어학자가 우리 고대어에서 말이 ‘모’나 ‘몰’과 비슷한 발음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옛날 만주어나 몽골어에서 말을 가리킨 단어와 연관돼 있다. 이 밖에 ‘도’는 돝(돼지), ‘개’는 개, ‘걸’은 양 또는 노새, ‘윷’은 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 또 우리 옛말에서 ‘말’은 지금도 산마루 같은 단어에 쓰이는 것처럼 ‘높은 곳’이나 ‘꼭대기’를 뜻하는 ‘마루’, 그리고 맏아들에서처럼 ‘가장, 최고’라는 뜻의 ‘맏’과도 통하는 말로 쓰였다. 그리고 말벌, 말잠자리 등의 단어에서 보듯 지금도 ‘말-’이라는 접두사는 ‘크다’는 뜻을 갖는다. 이는 땅 이름에서도 나타난다. 전국 곳곳에 말고개, 말치고개, 말재, 말바위, 말무덤 등의 지명(地名)이 널려 있다. 이를 한자로 바꾼 마현(馬峴), 마치(馬峙), 마산(馬山), 마령(馬嶺), 마분리(馬墳里) 등의 이름도 여럿 있다. 이런 곳들에는 흔히 “그 모양이 말처럼 생겼다”거나 “죽은 말을 묻은 곳”이라는 식의 설명이 따르곤 한다. 하지만 사실 이 중 대부분은 말과는 관계없이 ‘크다’는 뜻으로 ‘말/마-’를 쓴 것이다. 큰(높은) 고개, 큰 바위, 큰 무덤...이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나라에서 말을 기른 목장이 있었던 서울 성동구의 마장동(馬場洞)이나 먼 길을 오가던 말에게 죽을 먹이며 쉬게 했던 서울 양재동의 말죽거리처럼 실제로 말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 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말은 또한 우리의 옛이야기 속에서 흔히 상서로운 일과 관련해 등장한다. 특히 삼국유사 속의 금와(金蛙)나 박혁거세 신화에서는 왕(王)의 탄생을 알리는 신성한 전령사(傳令使)의 역할을 맡는다. 그만큼 말은 예부터 우리 민족에게 여러 면에서 좋은 일이나 기운을 가져다주는 동물로 인식되고 있다. 곧 설이다. 십이지(十二支)와 연관된 한 해의 띠는 음력에 맞추는 것이 정석(定石)일 테니 실제 말의 해는 오는 설부터 시작이다. 국내외 정세가 두루 어수선하고 서민경제에 진 주름은 좀처럼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요즘이다. 많은 사람이 바라는 것처럼 올 한 해가 힘이 넘치는 적토마(赤免馬)의 기운으로 날아올라 이런 문제들을 속시원하게 해결해 주면 좋겠다.

[인천시론] 색동원 사건, 인천이 나서 풀기를

김민석 국무총리가 지난달 30일 색동원 성폭력 의혹 사건에 대해 범부처 합동 TF 구성을 긴급 지시한 것은 사안의 심각성을 방증하는 것이며 전국 전수조사와 특별수사팀 편성, 제도 개선까지 지시한 만큼 정부와 인천시, 강화군의 책임 있는 조치가 지금부터 시작돼야 한다. 인천판 도가니 사건이라 할 수 있는 강화군 중증발달장애인 시설인 색동원에서 발생한 성폭력 의혹과 다수의 피해자 보고는 단순한 개인의 일탈과 범죄 행위를 넘어 오래된 제도적 미비로 인한 방임과 사회적 무관심의 결과로 보인다. 장애인 거주시설은 편의와 비용 절감의 명분으로 장애인의 삶을 개인화·격리시키고 권리 침해가 은폐되기 쉬운 환경을 만든다. 정부와 지자체는 세밀한 중장기적인 탈시설 로드맵을 마련해 주거, 의료, 활동지원, 교육, 고용을 연계한 지역사회 서비스망을 확충해야 한다. 또 하나의 핵심은 인권 중심의 인식 전환이다. 장애인을 ‘불쌍한 대상’이나 ‘관리 대상’으로 보는 시선은 폭력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토양이 된다. 학교와 공공기관, 특히 장애인 관련 시설에서의 장애인 인권교육의 진행 방식을 전면 재검토하고 시설 종사자의 윤리 교육과 전문성 강화, 철저한 외부 감시 체계 적용으로 인권 침해의 위험 요인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법과 제도의 보완도 필요하다. 필자가 2025년 12월15~17일, 3일간 강화경찰서와 진행한 강화도 장애인 거주시설 정기전수조사에서는 조잡한 설문지, 중증발달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조사방법, 과거 조사 시 시설 측의 거주인들에 대한 자료 미공개 등을 확인하고 이전의 시설조사가 얼마나 형식적으로 진행됐는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 예방이 목적인 정기조사가 형식적이고 빈약하게 이뤄졌기에 색동원 사건은 사실상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번에 실시될 전국 전수조사를 시작으로 장애 인권 전문가의 참여 조사, 피해자 보호를 위한 신속한 분리와 지원 절차, 엄정한 가해자 처벌, 재발방지 대책 등을 법제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역사회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한다. 장애인의 삶은 지역사회에서 이뤄진다. 지역의 자치단체, 공공 및 민영 기관, 기업, 시민단체가 협력해 장애인의 사회참여 기회를 넓히고 종전 지역 기반의 지원과 모델을 더욱 강화하고 확산해야 한다. 장애인이 시설과 가정에서 보호·격리 수용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에 나와 일상에서 많이 보이는 사회가 곧 배제와 폭력을 줄이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색동원 사건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할 것인가, 아니면 피해자의 존엄과 모든 시민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사회로 전환할 것인가. 국무총리의 지시가 아니라면 인천은 이 문제를 풀 역량이 없다는 것인가. 시급한 수사와 제도 개선은 출발일 뿐이며 근본적인 변화는 지역사회와 시민사회, 정부가 함께 만드는 지속적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역량과 지혜를 모아 인천이 나서 풀어야 한다.

[인천시론] 이주시대, 공존의 교육으로

인천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미리 보여주는 도시다. 공항과 항만을 통해 세계와 연결된 도시, 다양한 국적과 언어, 문화가 일상적으로 교차하는 도시. 인천의 학교 역시 이미 다문화·이주 사회의 전면에 서 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이주배경 학생을 어떻게 한국 사회에 적응시킬 것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머물러 있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한국 학교는 어떻게 다문화·이주 사회와 함께 변할 것인가”라고 말이다. 프랑스 교육의 경험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프랑스는 오랫동안 공화국 보편주의를 강조하며 모든 학생을 동일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차이는 사적인 영역으로 밀려났고 학교는 시민의 동일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민자와 다수 집단 사이의 간극이 확대됐다. 다양성을 보지 않으려는 보편주의는 오히려 불평등을 은폐하는 장치가 됐다. 한국의 다문화교육 역시 유사한 길을 걸어왔다. 한국어 능력 향상, 한국 문화 이해, 학습 결손 보충이 주요 정책 목표였다. 물론 필요한 정책이지만 이 접근은 이주배경 학생을 ‘부족한 존재’로 전제하는 결손모형에 머물 위험이 크다. 이주배경 학생은 이제 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학교 문화를 변화시키는 주체로 이해해야 한다. 상호문화학교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한다. 상호문화학교는 상호문화교육을 행하는 교육의 장이다. 이 학교에서는 특정 집단이 다수 문화에 동화되는 교육과정이 아니라 학교 공동체 전체가 서로의 문화 속에서 변형되고 재구성되는 교육과정을 실행한다. 문화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의 실천이며 학교는 서로 다른 규범과 가치가 만나는 사회적 공간이다. 상호문화학교는 문화적 특수성을 존중하면서도 사회적 결집을 가능하게 하는 관계적 보편성을 교육의 목표로 삼는다. 학교는 결코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상호문화학교는 이러한 타자화 구조를 해체하는 교육혁신 프로젝트다. 교사는 차이가 차별로 전환되는 과정을 이해하고 중재하는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인천시교육청이 다문화교육정책의 일환으로 상호문화학교 모델을 선도적으로 도입했다. 인천 논현동 소재 세계로국제중고등학교가 바로 이 모델을 도입한 학교다. 상호문화학교를 선언한 이 학교에서는 다문화·이주 사회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여는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 이 학교에서는 이주배경 학생과 정주배경 학생이 함께 공부하며 교사 상호문화 역량 연수, 탈동화적 교육과정 재구성, 차별 대응 제도화, 이주배경 학부모와 지역사회 거버넌스가 작동된다. 이는 단순한 다문화교육정책이 아니라 위대한 학교 문명 전환 프로젝트다. 상호문화학교는 ‘이주배경 학생만을 위한 학교’가 아니다. 그것은 모든 학생을 위한 미래 학교의 모델이다. 다양성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교육 혁신의 자원이다. 인천교육이 이 전환을 전면적으로 모든 학교로 확대할 때, 학교는 배제와 동화의 공간이 아니라 공존과 혁신의 공간이 될 것이다. 이주 시대의 상호문화교육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이제 인천이 그 공존의 길을 열어야 한다.

[인천시론] 박사모 술이 가리키는 한국 경제

지난해 12월12일, 필자가 근무하는 한국뉴욕주립대에서 졸업식이 거행됐다. 한국과 미국의 국가가 차례로 연주되는 등 이색적인 순서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지도교수가 졸업생의 박사모 술(tassel)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옮겨주는 장면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에 맞춰 석사와 학사 졸업생 모두 학위모의 술을 왼쪽으로 넘긴다. 이 짧은 동작은 단순한 의식 절차에 그치지 않는다. 그동안 개인의 성장을 위해 노력한 졸업생의 성취를 축하하는 동시에 이제는 학위를 받은 엘리트로서 삶의 방향을 사회로 돌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대학이라는 고등교육 체계는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한 사회가 개발하고 지지해 온 최상의 인재 양성 시스템이다. 고등교육을 마친 사람은 선택받은 소수이며 국가와 사회는 이들에게 한 단계 높은 책임을 요구한다. 졸업생들이 ‘나의 성공’을 넘어 ‘우리 공동체’를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졸업식, 특히 학위모의 술을 옮긴 이후에는 개인적 성취와 공동체 발전의 균형을 추구해야 하는, 이른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자연스럽게 적용된다. 이러한 균형은 경제학의 두 가지 기준인 효율성(efficiency)과 공평성(equity)으로도 설명된다. 효율성은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영역이다. 경쟁을 통해 더 나은 성과를 추구하고 개인의 능력과 노력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이다. 한편 공평성은 사회적 정의의 영역이다.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기회와 혜택을 균형 있게 보장하는 기준이며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 전체의 조화를 중시한다. 경제 주체로서 소비자와 기업은 생존을 위해 효율성을 추구하지만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공평성의 문제가 반드시 제기된다. 1960~70년대 우리나라 같은 개발도상국은 경제성장이라는 효율성을 위해 공평성을 일정 부분 희생한 것이 역사적 현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기업이 법을 어기거나 소비자의 희생을 담보로 이익 추구에 몰두한다면 절대 공정하지 않다. 정부 역시 기업과 함께 경제를 발전시키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한편 국민의 안전과 소득재분배라는 기본적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 필요하면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고통스러운 정책 결정도 감내해야 한다. 경제 발전을 달성한 국가일수록 이러한 책임은 더욱 무겁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정부 부채와 민간 부채, 환율 변동, 경기 양극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정책 시행 방향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환율 안정을 위해 금리를 올리면 신용경색과 민간 부문의 채무불이행, 중소기업 도산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반대로 금리를 내리면 부동산 가격 급등과 환율·수입물가 상승으로 물가 불안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졸업식장에서 박사모 술을 사회를 향해 옮기는 순간처럼 우리 경제 정책 역시 과거의 틀을 넘어서야 한다. 어렵지만 필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정책 담당자들에게 졸업생들의 이 작은 의식이 던지는 메시지를 되새겨 보길 권한다. 지금은 대전환의 시대이고 치우치지 않는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야 할 때이다.

[인천시론] 아동친화도시 사업 적극 지원을

인천시는 지난해 12월31일 유니세프아동친화도시 최초 인증을 받았다. 2018년 유니세프아동친화도시 추진 지방정부협의회에 가입한 후 8년 만에 이룬 쾌거다. 인천시가 아동친화도시를 조성하는 동안 유니세프한국위원회는 2024년부터 새로운 인증 평가체계를 정비하면서 일정 기간 인증 신청을 중단한 바 있다. 이에 인천시는 새로운 인증 평가체계에 따라 ‘제2차 인천광역시 아동친화도시 조성 기본계획(2025~2028년)’을 수립하고 같은 해 12월 최초 인증을 신청했다. 광역단위 아동친화도시 인증 평가지표는 기초자치단체 아동친화도시 조성 지원, 아동 참여기회 보장, 광역-기초간 협력기구 구성 등이 포함돼 있어 기초자치단체와 달리 인증 추진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아동친화도시란 유엔아동권리협약에 담긴 아동의 권리를 온전히 실현하고 아동이 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아동친화적인 환경을 갖춘 지역사회를 말한다. 2022년 기준 40개국이 추진 중이며 우리나라는 2015년 27개 지방자치단체가 ‘유니세프아동친화도시 추진 지방정부협의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아동이 살고 성장하는 도시환경의 질적 개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도시화율은 이미 2021년 기준 90.7%로 매우 높은 수준이며 수도권은 97.1%에 달하는 등 도시 중심의 인구 구조가 정착된 상태다. 과연 도시에서의 삶은 아동이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아동권리를 보장하고 있을까. 1월 현재 111개 지방자치단체가 아동친화도시 인증을 받았다. 이는 전체 지방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이 아동친화도시 조성에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광역단위로는 부산과 광주가 2019년 최초 인증을 받았고 2023년 대구, 2025년 6월 제주에 이어 인천이 다섯 번째로 인증을 획득했다. 그러나 인천은 기초자치단체별 아동친화도시 조성 여건의 차이가 큰 것이 특징이다. 서구는 2017년 최초 인증을 받은 후 2021년에 상위 인증을 받았으며 동구는 2018년 최초 인증과 2023년 상위 인증을 받았다. 남동구와 부평구는 각각 2021, 2024년 최초 인증을 받았다. 그러나 미추홀구와 계양구는 관련 조례는 있으나 연수구, 중구, 강화군, 옹진군은 아직까지 조례도 찾아볼 수 없다. 아동친화도시 인증 여부만으로 해당 지역이 아동권리를 온전히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천시가 진정한 광역단위 아동친화도시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아동친화도시 조성 여건에 대한 지역 격차를 어떻게 해소해 나갈지 고민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광역-기초간 협력기구를 구성하고 이를 활성화해야 하며 각 지역 특성에 기초해 아동친화도시 조성 사업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

[인천시론] ‘쉬었음’ 청년 증가추세

최근 청년층의 비노동력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15~29세의 인구는 2015년 약 938만명에서 2024년에 811만명으로 감소한 반면 청년 ‘쉬었음’ 인구는 동일 기간 30만7천명에서 42만1천명으로 증가했다. ‘쉬었음’ 인구는 국가데이터처 경제활동인구조사에서 비경제활동인구의 최근 1주간 주된 활동 상태의 응답 유형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 고용시장에서 노동공급 측면의 큰 변화 중 하나가 ‘쉬었음’ 인구의 증가로 이는 청년 비경제활동인구의 구성이 질적으로 크게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최근 사회적으로 주목받는 이 ‘쉬었음’ 청년은 니트의 하위 개념으로 2020년대 들어 청년고용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과 정부 정책의 관심 대상으로 새롭게 떠올랐다. 니트가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만 소속 없이 실업 상태인 인구와 비구직 인구를 포괄하는 개념이라면 최근의 ‘쉬었음’ 인구는 비구직 니트 중에서도 ‘쉬었음’ 사유에 해당하는 인원으로 한정된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배경은 다양하다. 거시경제적 요인으로는 청년 일자리 부족과 노동시장 수요 부진이 핵심으로 꼽힌다. 사회적 요인으로는 가족배경, 성별, 교육수준 등이 청년 비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대 여성 청년의 경우 취업구조에서의 불리함 때문에 직업훈련이나 추가 교육에 참여함으로써 경제활동을 늦추고, 가족의 소득수준이나 부친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을수록 장기간 비경제활동으로 지낼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적 요인으로는 우리 사회의 높은 눈높이와 낮은 일자리 만족도가 작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하에서 청년들이 임시직이나 저임금 직장을 기피하고 준비 기간을 늘려서라도 더 나은 일자리를 찾으려는 ‘합리적’ 태도가 나타났다. 이러한 맥락에서 취업이 지연된 청년 중 상당수가 취업준비형 비경제활동인구로 남아 있고 일부는 아예 구직을 단념한 니트족으로 전환되고 있다. 심리·개인적 요인으로는 비경제활동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정서적 어려움과 태도 변화에 주목한다. 니트 상태를 경험한 청년들은 그 이전 생애에 가정 내 정서·경제적 지원 부족, 학교 부적응 및 따돌림 등의 어려움을 겪었고 진로탐색 기회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심리·개인적 특성은 청년 개인에 따라 상이하지만 전반적으로 낮은 자기효능감, 불안정한 정체감, 미래에 대한 불안수준이 높았다. 왜 어떤 청년들은 ‘쉬면서’ 구직활동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일까. 사회 진입의 단계에서 경제활동에 적극적일 필요가 있는, 신체적으로 가장 왕성한 활동이 기대되는 청년들이 황혼기를 맞이하는 고령층보다 쉬었음 형태의 비경제활동 비중이 더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청년 쉬었음 현상은 단순히 고용 문제를 넘어 사회가 공동체 구성원의 기본적인 권리와 삶의 질을 보장해야 할 중요한 인권적 문제로 접근하고 지속적이고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심과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인천시론] 축현역, 싸리재역

우리나라에는 ‘수리산, 수리바위, 수리봉’처럼 ‘수리—’라는 이름을 가진 땅들이 곳곳에 퍼져있다. 그리고 이런 곳에는 으레 “모양이 독수리를 닮았다”거나 “수리가 새끼를 낳은 곳”이라는 식의 해석이 달리곤 한다. 하지만 이는 객관성이 전혀 없으며, ‘수리’의 뜻을 몰라 생긴 잘못일 뿐이다. 원래 고구려말인 우리말 ‘수리’는 산(山)이나 ‘높은 곳’을 뜻하며 지금도 머리의 맨 위를 뜻하는 ‘정수리’ 등의 단어에 쓰이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세월이 흐르면서, 또 지역에 따라 원형(原形)인 ‘수리’ 외에도 ‘사리, 서리, 소리, 살, 설, 솔, 술, 수락, 시루, 수레, 쓰리...’ 등의 다양한 변형을 갖게 됐다. 이 변형 중에 ‘싸리’도 있는데 인천 중구 경동의 ‘싸리재’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축현(杻峴)’이라는 한자 이름도 갖고 있다. ‘싸리나무(杻) 고개(峴)’라는 뜻이다. 하지만 이곳에 실제로 싸리나무가 많았음을 입증할 사진이나 문서 등의 증거자료가 발견되지 않는 만큼 싸리재의 ‘싸리’는 ‘수리’의 변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곳 싸리재는 느슨한 언덕 지대여서 높은 고개라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주변 지역보다 조금 더 높으면 ‘수리’라 부르기도 했기에 이런 이름이 생긴 것이다. 이곳 싸리재, 곧 축현 때문에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인 인천~노량진 32.8㎞의 경인철도가 개통될 때 이곳에 축현역이 생겼다. 지금 동인천역의 전신(前身)이다. 이 축현역은 1926년 ‘상인천역(上仁川驛)’으로 이름이 바뀐다. 그 이유가 재미있는데 당시 자료를 보면 “축현역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인천에 있는 역인지 잘 몰라 제때 내리지 못하고, 축현역에서 내려야 하는 여객이 (다음 역인) 인천역까지 가서 내리는 사례가 빈번했기 때문”이라고 나와 있다. 이 상인천역은 광복 뒤인 1947년 8월 일제강점기 이전의 이름을 되찾는다는 뜻에서 다시 축현역으로 바뀌었다가 1955년 7월 동인천역이 됐다. 당시 신문 기사에는 “한자음(漢字音)과 국문으로써 구별하기 곤란해 축현역을 부르기 쉬운 동인천역으로 바꿨다”라고 실려 있다. 이는 ‘杻峴’이라는 한자가 어려워 많은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어디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알기 쉬운 이름으로 바꿨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인천시가 요즘 이 동인천역의 이름을 바꾸는 문제를 연구 중이다. 고유한 특색이 없이, 동서남북의 방위만 따져 지은 이름들을 새롭게 바꿔보려는 ‘방위식 명칭 변경 용역사업’에 따른 것이다. 동인천역은 방위식 지명일 뿐만 아니라 인천의 동쪽이 아닌 서쪽에 있어 실상에도 맞지 않는다는 점에서 연구 대상에 포함됐다. 그런데 동인천역이라는 이름의 대안으로 축현역이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최종 결정은 이번 연구용역 결과에 대한 주민공청회와 시 지명위원회를 거친 뒤 국가철도공단이 한다. 옛 이름을 되찾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데 갈수록 한자를 모르는 세대들이 “한자음과 국문으로써 구분하기 곤란한” 축현역을 어찌 생각할지, 정겨운 우리말로 그냥 ‘싸리재역’이라 하면 어떨지..., 여러 생각이 든다.

[인천시론] 장애인거주시설의 반인권 행위

2012년 10월24일, 인천에서는 세계장애인대회가 열렸다. 당시 필자는 2012 아시아장애인포럼(APDF) 한국조직위원회 콘퍼런스단 단장을 맡아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을 지적한바 있다. 중점적으로 제안한 것은 대회에서 도출된 결과물들이 유엔의 주요 협약인 장애인권리협약(CRPD)과 연계성을 가지고 실효성이 담보돼 작용하기 위해서 당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고 이를 바탕으로 문제점 파악과 대안 마련을 모색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50개 조항의 평등, 비차별의 원칙을 담아 2006년 제정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협약 가입 국가들이 이행 상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장애인대회를 앞두고 우리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원주 귀래 사랑의집 사건이 발생했다. 사랑의집 사건은 장애인 거주시설을 운영하면서 장애인의 탈주에 대비해 팔꿈치부터 팔목까지 문신으로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새기고 후원금 착복, 폭행, 사망자 냉동고 방치 등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진, 대표적인 장애인 거주시설 반인권 사건이었다. 당시 장애계는 세계장애인대회에 즈음해 시설 수용 정책이 가지는 한계와 반인권적인 측면, 시설정책의 고수가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이 담고 있는 탈시설 자립생활의 원칙을 위반하고 있는 것 등을 정부 당국이 수용해 협약의 실질적인 이행과 각국 정부가 반면교사로 삼길 바라는 기대를 안고 콘퍼런스에서 사례로 드러내며 공론화했다. 그러나 세계장애인대회 이후 각국 정부의 능동적인 변화와 이행과는 달리 우리 정부와 관련 자원들은 탈시설정책에 미온적이었으며 반인권 행위 재발 방지에 대한 대책도 소극적이었다. 불행한 상황이 발생하면 피해자 분리조치와 피해 복구의 원칙,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조사(수사)와 처벌의 원칙, 관련 자원의 사과 및 사안별 재발방지 대책의 수립의 원칙 등 어느 하나도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으며 이런 와중에 사랑의 집 가해자는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임에도 3년6개월 징역형이라는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고 적반하장식으로 SNS와 각종 매체에 자신의 무고를 주장하는 뻔뻔한 행위를 일삼았다. 이러한 일들의 반복, 연장선으로 인천지역에서는 연수구 장애인거주시설 학대사건, 영흥도 장애인거주시설 사망사건 등이 이어졌으며 최근 강화도의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반인권행위가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차별받고, 폭력을 당하고, 죽어야 이러한 일들이 멈출까? 우리가 주목하고 경계해야 할 점은 인권의 원칙에 위배되는 가치전도와 무관심, 이를 방지하는 사회적 안전망의 미비가 바로 반인권적 패륜 범죄행위의 재발로 이어지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지켜낸 민주주의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는 점이다. 잊혀질 만하면 언론에 의해 알려지게 되고 마지못해 떠밀리듯 대응하는 공공 부문과 관련 단체들의 반복적 대처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현재 강화를 포함한 인천 지역은 장애인 거주시설 전수조사 중이다. 조사원 교육을 포함한 조사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채 조사가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부디 이 조사를 계기로 시설 내 인권보장의 향상과 탈시설 로드맵의 가속화가 이뤄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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