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문화공간으로 확대되는 종교 시설

종교시설의 문화공간화에 대한 문화관광부의 정책적 접근은 사찰을 시작으로 기독교 종교시설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올해 처음 시범 실시된 이 프로그램은 기독교연합단체들을 통해 신청받아 도시지역 저소득층을 비롯, 농어촌지역 등 문화향수 소외지역들을 중심으로 선정돼 지난 4월 전국에서 모두 60곳이 선정돼 해당 교회에 1건당 1천만원 이내 사업비가 지원돼 운영되고 있다. 아쉽게도 인천에는 1곳도 선정된 곳이 없었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주민 밀집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선교 이외에도 어려운 이웃돕기,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 등 긍정적 영향을 추구한다. 따라서 문화공연 프로그램을 추진할 경우 주민들의 반응이 높은데다 자치단체도 많은 재원을 들이지 않고도 문화적 혜택을 받기 어려운 소외지역 주민들에게 문화향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공공성이 높은 사업이라고 생각된다. 얼마전 모 자치단체의 문화행사를 특정 교회가 주최했다는 이유로 다른 종교단체로부터 민원을 받았는데 현대 교회는 성도들만을 위한 단순한 예배와 선교목적의 폐쇄적인 공간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에게 안식을 주고 친근한 열린 공간의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의 장으로 거듭 나고 있다. 최근에 신축되는 교회는 과거의 권위와 위엄적인 모습을 벗어나 밝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클래식 전용홀 같은 목재 마감형태의 건축음향과 멀티미디어시설, 그리고 조명을 비롯, 내부에 카페와 인터넷룸까지 갖춰져 있으며 건축물 외관 자체가 도시의 아름다운 스카이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최근에 신축된 인천시 중구 송월교회는 완벽한 음향은 물론 공연장 환경에서 교향악단이 부러워할 정도의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지난 9월20일 인천종합문화회관은 처음으로 동구 제3교회를 시작으로 지난달 26일은 중구 송월교회에서 시립교향악단 공연을 열었다. 양 지역 모두 저소득층 밀집지역으로 인근에 문화공연을 즐길만한 장소도 마땅하지 않은 지역이다. 항상 예배만을 위해 찾던 교회에 이날 교회 성도는 물론 일반 주민들도 손자와 손녀, 그리고 가족과 함께 음악회를 관람했다. 공연이 끝난 후 밝고 웃음띤 얼굴로 돌아가는 주민들의 모습에서 앞으로 시립예술단의 찾아가는 공연은 물론 교회와 사찰의 문화공간화에 대해 문화관광부도 시범적으로 실시한 결과 매우 성과가 좋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만큼 지방자치단체도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추진할 사업이라고 생각된다.

감사하는 마음

평소 세상에 불평 불만으로 가득차 있던 사람이 우연히 신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불공평한 대접을 받고 있다면서 신에게 따지기 시작했다. 신은 그의 말을 다 듣고 측은한 마음에 원하는 소원 한가지를 들어 주겠다고 말했다. 대신 무엇이든 그의 소원을 들어주면 그의 이웃은 그 소원의 두 배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음에는 뛸듯이 기뻐했지만 생각을 거듭할수록 마음이 불편해짐을 느꼈다. “만일 내가 황금 한 덩어리를 얻는다면 내 이웃은 두 덩어리를 얻게 되겠지? 만일 내가 천하의 미인을 얻게 된다면 못생긴 얼굴에 장가도 못갈 것 같은 그 녀석은 천하절색을 둘이나 얻게 되겠지. 그래선 안돼. 그런 꼴은 절대 못봐!” 그는 이웃이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싫었다. 결국 신에게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신이시여! 제 한쪽 눈을 뽑아주세요.” 타인과의 비교의식으로 자신이 갖고 있는 소중한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지 못한 채, 욕심과 불평 불만으로 얼룩진 삶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야기인 것같다. 감사! 우리는 보통 감사를 마땅히 고마워해야할 일에 대한 필연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감사의 조건이 먼저 우선돼야 한다고. 그러기까지는 감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듯 마음의 문을 닫는다. 그러나 감사할 일이 이뤄지더라도 그 마음에는 만족해 하는 마음이 있기보다, 또 부족한 것을 또다시 채우려는 불만으로 자리잡게 됨을 우리는 살아가면서 경험한다. 감사는 선택이다. 하루를 시작할 때 밝고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로 시작할 수도 있고 불평 불만스러운 하루로 시작할 수도 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를 감사하며 살기로 선택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을 여기저기 뿌려놓자. 얼마 지나지 않아 감사할 일들이 생애 가득 수확될 것이다. 감사는 에너지이자 힘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감사는 또 다른 감사를 낳고 그것은 주위에 감사의 물결을 넘실거리게 한다. 이보다 더 좋은 마음이 어디 있으랴. 어려운 시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어려운 때는 상황적으로 감사할 조건을 찾기란 정말 힘들어질 수 있겠다. 그렇기에 이럴 때일수록 감사하는 마음과 힘이 더 절실히 필요하다. 단 하나만이라도 좋으니 감사하고 싶은 일에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주어보자. 놀랍게도 감사하고 싶은 일들이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것이다.

중년. 인생의 하프타임

“우리의 인생은 마치 해가 떠오르고 지는 과정과 같다. 태양은 아침에 어머니 바다의 자궁으로부터 나와 자신이 나왔던 어머니 바다로 다시 돌아가기 전까지 반원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인생은 아침 프로그램에 따라 삶의 오후를 살 수 없다. 아침에 대단했던 것처럼 생각됐던 것이 저녁쯤에는 시들하게 생각될 수도 있고, 아침에 진실처럼 보였던 것이 저녁에는 거짓으로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카를 융) 최근 한국사회의 고령인구가 증가하고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있는 시점에서 40대는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는 기준점에 서있다. 바로 이 40대를 ‘중년기’라고 부르며 이 시기에 신체적인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눈가에는 주름이 잡히고, 머리칼이 가늘어지며 근력이 약해진다. 중년의 심리적 고통을 통해 ‘심리적 출생’을 경험하기도 한다. 20~30대의 앞만 보고 성공을 향해 승승장구하던 자신있는 모습은 사라지고 더 이상 사회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불안 심리와 함께 생의 에너지가 자신을 향하는 내향성으로 변하게 된다. 많은 중년층들이 이 시기에 ‘낯설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심리적인 위축감을 느끼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정신분석학자 카를 융은 중년기를 ‘인생의 정오’라고 했으며 이 시기에 성숙을 위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영화 ‘즐거운 인생’에서 중년의 주인공들은 자아가 원하는 것과 현실의 역할에 따른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는 것을 잘 그려내고 있다. 인생의 전반부에서 중반부에 이를 때까지 개인은 역할에 따른 각자의 ‘페르조나’(Persona: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사용하던 가면에서 유래한 말로 한 사람이 사회적인 역할에 따라 달리 행동하는 것)를 형성해왔고 그 결과 보편적으로는 사회적 성공과 안정된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인생의 정점에서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다고 느껴질 때 갑자기 엄습해오는 절망감과 불안감에 당혹하게 된다. 이때문에 융은 중년기에서 그동안 자아가 집착해왔던 페르조나를 잠시 내려놓고 진정으로 자아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인생의 정오, 이제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아갈 자격이 되는 때이다. 강용 수원생명의전화 원장

철의 실크로드

기찻길은 우리의 삶에 참으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줬다는 생각과 함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우선 어릴 적 추억으로는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로 시작되던 동요에서부터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건 사과…. 긴 것은 기차”로 길게 이어지던 우리말 놀이 등 어린 시절의 기차는 우리에겐 꿈이요 설렘의 대상이었다.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산모퉁이를 돌아 나오는 기관차의 꽁무니로 연 걸리듯 끝없이 이어지던 열차를 하나 둘 세면서 걷던 시골길과 비라도 내리는 휴일이면 아득하게 귓전을 울리던 먼 기적소리 등은 첨단 과학문명과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에도 잊을 수 없는 향수에 젖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기찻길은 어린 동심이 꿈과 희망을 키우며 살아가는 곳이고 새로운 지역과 교류하며 젊은 기상이 어우러져 사랑과 추억 등이 싹트는 곳이다. 기찻길은 국가발전의 대동맥이며 삶에 지친 현대인들이 활력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레저문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어디 그뿐이랴. 설날이나 추석 등 명절이면 부모 형제를 만나러 고향을 찾아가는 효행의 길이기도 하다. 이처럼 기찻길은 생산의 길이며 희망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고속철도를 운영함으로써 우리의 기찻길은 첨단 과학기술의 집적체인 KTX열차가 대한민국의 자긍심을 싣고 달리는 길이 됐으며, 남북을 이어 세계로 달려가는 ‘철의 실크로드’이자 디지털 문명과 아날로그적 정서가 공존하는 ‘퓨전로드’인 것이다. 이제 기찻길은 우리의 추억과 낭만의 길을 지나 한반도 냉전해소와 인류번영의 기찻길로 새롭게 한단계 도약할 수 있게 된다. 철도는 대량 수송이 가능한 친환경 교통수단으로써 도심의 교통 혼잡을 해소할 수 있고 다른 교통수단들에 비해 정시성과 안전성 등이 월등히 높아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 철도는 영업거리 3천390㎞에 불과하고 시설이나 장비 등이 열악한 실정이므로 활발한 물적·인적 교류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위해 정부차원의 과감한 투자와 시설확충이 필요하다. 과밀화와 집적화 등으로 교통난이 심각한 수도권에서 2천400만 주민들의 교통편의 증진과 교통난 해소 등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앙선·경춘선·경의선·경원선·수인선 복선전철화사업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 특히 경부선 서울~시흥간 선로용량 부족 해결을 위한 우회노선 건설과 남북철도 운행에 대비한 투자도 부지런히 준비하는 등 국민 모두가 따뜻한 관심과 사랑으로 철도네트워크 구성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곽노상 코레일 수도권남부지사장

사람중심의 균형시책을

국토균형발전이란 명목으로 노무현 정부는 5년 내내 도시개발 정책을 발표하면서 이로 인해 전국이 균형발전보다 엄청나게 땅값이 오르면서 국가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전국적으로 평균땅값은 25.2%가 올랐고, 지가는 지난 1992년부터 2002년까지 10년 동안 10.2% 떨어지면서 안정됐던 상태였다. 땅값 상승은 기업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어 해외로 공장을 내모는 등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았고 그결과 취업난만 가중시켜 이태백, 사오정, 오륙도 등 신조어들이 난무한 게 현실이다. 차기 정권은 국토균형개발이란 시대착오적인 목표부터 버려야한다. 지금 필요한 건 균형개발이 아니다. 모든 국민들이 잘사는 일이다. 모든 국민들이 잘살기 위해 모든 국토가 도시로 발전돼야 하는 건 아니다. 농촌은 농촌으로, 전원은 전원으로 남겨 특성을 살리면서 도시로 개발할 곳은 집중적으로 개발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같은 과정을 거쳐 경제성장의 혜택이 모든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과감하게 세원을 이전하는 등 지방의 자율성을 높이는 정책이 필요하다. 장소에 초점을 맞춘 균형개발정책은 이미 20세기의 흘러간 지역발전론이다. 흘러간 이론에 매달려 21세기에도 국토균형개발에 집착하는 동안 다른 나라 다른 도시들은 저만큼 앞서나가고 있다. 그동안 성장의 견인차 노릇을 해온 경기도는 온갖 규제로 발목을 잡혀 그나마 있던 경쟁력조차 잃어가고 있다. 정부의 2단계 균형정책 후속조치와 관련해 정부가 채택한 정책수단인 지역분류제도나 조세경감제도 등의 후속조치는 내용과 절차에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실업률 1인당 GRDP를 적용하지 않고 편협하고 유사한 지표 중복 적용과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갈등 비화 등도 우려되고 있다.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이 되는 수도권 중소 기업들에 경영부담을 가중시킴은 물론 기업활동에 대못질을 하는 것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예상된다. 이러한 정부의 균형개발정책으로 규제천국 경기도는 인구와 취학 대학생은 전국 최대이면서도 종합 국립대학이 전무하며, 전국에서 가장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는 곳인데도 국립박물관은 한곳도 없다. 온갖 규제에 다 묶여 자유로운 땅이 하나도 없는 지역이 경기도이며, 경기서남부와 동북부지역은 너무도 차이가 많아 균형발전이 절실하다. 그 반대로 주민 기피시설은 경기도에 가장 많이 밀집돼 있다. 예를 들면 화장장, 분뇨처리장, 정신병원과 사격장과 훈련장등으로 경기도면적의 22%, 경기북부지역의 41%가 군사시설보호구역이다. 미군부대의 90% 이상이 경기도에 집중돼 있으며 2천300만 수도권 시민들을 위해 경기도 면적의 20% 이상이 상수원 보호규제에 묶여 있다. 이러한 경기도의 역차별을 해소하고 국가경쟁력과 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서라도 차기정권은 국가균형발전계획을 재고해야 한다. 조흔구 의정부 YMCA 이사장

새터민

언론으로만 접했던 새터민(탈북) 여성들을 가까이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올해들어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가 새터민 여성들을 위한 일일직업체험교육을 매월 운영하게 된 게 그 계기이다. 필자는 그동안 주중(駐中) 한국대사관에 진입하기 위해 애쓰는 북한 동포들에 대한 이미지 정도 밖에 없었다. 심지어 ‘새터민’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했을 정도로 관심 밖의 일이었다. 새터민 여성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차원으로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막상 새터민 여성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하면서 여러가지를 느끼게 됐다. 처음에는 그 규모에 놀랐다. 매월 100여명의 새얼굴들을 접하게 되면서, 많은 새터민들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국사회에 이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건 비단 새터민들 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한 일이라는 사실도 절감했다. 그것은 더이상 ‘새터민’들만의 일도, 이를 담당하는 관계 행정기관만의 일도 아니라 바로 내 이웃과 내 자녀와 긴밀히 연관된 문제임을 실감했다. 또 다른 한편 이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우려가 교차되는 게 솔직한 심경이었다. 경기도여성능력개발센터에서 많은 전업주부들의 교육과 취업을 목격해온 필자로선 이 여성들이 사회에서 부딪치게 될 장벽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교육받아 나름의 사회적 배경이 있는 여성들에게도 쉽지않은 사회생활인데, 새터민 여성들이 한국 사회를 헤쳐나가기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을까, 이들은 그 속에서 버텨나갈 무슨 자원을 갖고 있나 하는 생각들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새터민 여성들은 하나같이 씩씩하고 밝았다. 열심히 강의에 경청하는 귀와 열정으로 반짝거리는 눈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를 보며 새터민 여성들이 경험했을 수많은 인생 역경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고 성공하는데 훌륭한 자원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생겨났다. 마치 이곳에서 만난 많은 전업주부들이 특별한 사회경험은 없더라도 가정생활을 통해 쌓아온 ‘갈등중재’와 같은 경험들이 훌륭한 사회적 자원으로 전환된 것처럼, 이들이 가진 한국 정착까지의 경험도 적절한 사회적 지원과 관심, 그리고 포용력이 수반된다면 우리 사회의 발전적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필자가 만난 그 반짝거리는 여성들이 언젠가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멋진 여성들이 돼 재회할 수 있길 기대해본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옛날 중국에 묘협이라는 스님이 있었다고 한다. 그 스님이 수행의 지침으로 지었다는 ‘보왕삼매론’에 이런 말이 있다. “억울함을 당해 밝히려고 하지마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수행자가 아닌 우리에게도 가르침을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같은 범부야 따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논리가 오히려 솔깃하다. 평생을 덕과 정의와 질서를 추구하며 살았던 대철학자의 신념을 한두권의 책으로 다 알 수는 없다. 타인에 의해 살고 죽음이 판가름나는 처지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당당했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말 그대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과 맞서 자신의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 펼친 변론이다. 생사를 초월한 어조가 그의 인품을 짐작하게 한다. 기원전 400년경의 일이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이야 커뮤니케이션 전성시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억울함을 참고 마는 것은 보왕삼매론의 가르침 때문일까? 남들이 일할 때 같이 땀 흘리고 남들이 노는 날까지도 우리는 더 바삐 움직여야 한다. 휴일에도, 한밤중에도 고속도로를 잠들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급 간부만 돼도 24시간 긴장을 거둘 수가 없는 게 우리의 처지이다. 이렇듯 고속도로를 통해 남다른 보람을 찾을 수도 있지만 고객들의 질책이 한없이 야속할 때도 있다. 충청지역 3월 폭설이 그랬고, 지난 추석 연휴만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나흘에 걸쳐 고향으로 내려갔던 차량이 이틀 동안 한꺼번에 돌아와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고속도로 지·정체가 어느 정도 심각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고속도로를 수입해 올 수도 없는 일이다. 온 가족이 다 모인 고향집이 비좁고 불편한 정도보다 고속도로 지·정체가 편치 못할 일이며 교통사고로 고속도로가 잠시만 막혀도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마는 우리다. 요금소에서의 지·정체를 줄이기 위해 하이패스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해온 우리다. 굳이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까지 알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명절에 잠시 다녀갈 가족이 많다고 고향집을 열칸 스무칸 늘리지 못한다는 걸 누구나 알듯, 고속도로에 대한 온 국민의 마음도 그러했으면 어떨까 싶다. 우리의 앉을 자리를 넓히기 위해 늘어놓는 변명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자 고객들인 국민들에게로 한 발짝 다가서고 싶은 마음에서다.

와신상담(臥薪嘗膽)

시몬, 나뭇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하략) 이 시의 작자 구르몽(1858~1915년)은 고종(高宗)과 같은 시대 사람이다. 시인과 최고통치권자로서 그렇다. 고종은 1864년 즉위, 1907년 강제 퇴위됐다. 재위기간 44년은 정말 격동의 시대였다. 신미양요, 임오군란, 갑신정변, 민란, 갑오농민전쟁, 청일전쟁, 노일전쟁…. 그 파도를 따라 충신열사와 우국지사들의 치열한 삶이 등대(燈臺)처럼 서 있다. 1905년 3월 만주 봉천에서 크로파트킹 지휘하의 러시아군 32만명과 오야마 이와오가 지휘하는 일본군 25만명이 격전을 벌였다. 7만명이란 사상자를 내면서 일본군이 당시 세계 최강 러시아 육군을 격파했다. 이때 사실상 동아시아 지도국이 결정된 것이다. 같은해 5월 일본군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를 대한해협에서 격침시킨 건 긴 대결극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당시 최강국 영국을 등에 업은 일본의 승리였다. 1905년 9월 일본 동경 히비야 공원에선 러·일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9월5일 조인된 포츠머스협약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총력전으로 이룬 승전의 대가가 너무 보잘 것 없다는 대중의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이 협약을 주선함으로써 동아시아 평화를 이룬 공로로 시오도르 루즈벨트는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격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양반 자제들로 구성된 별기군 창설, 갑오개혁, 황제즉위식 거행, 독립신문 발간, 독립문 건립, 서북학회 등 학회 설립, 신식학교 개교 등등 많은 업적들이 있다. 침략군의 범죄행위 증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갑오농민전쟁 때 조선인 사상자는 35만4천명(일본군측 기록·104주년 갑오농민전쟁 기념 논총)이었다. 의병운동, 민영환의 자결, 이재명의 이완용 암살기도, 헤이그 밀사사건, 신민회 사건 등을 넘어서는 교훈들을 찾아야 한다. 고종은 1882년 체결된 조미통상수호조약에 의거, 미국에게 ‘독립국’이란 외교적으로 맺은 약속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요청하는 등 국권수호 의지는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역량이 없는 의지는 수레가 없는 말과 같았다. 시인(詩人)과 최고통치권자(最高統治權者)는 비전과 책임의식이 달라야 한다. 시(詩)는 퇴고(推敲)가 가능하지만, 역사는 퇴고가 안된다. 그 시대의 등대불은 어디를 비췄던가? 와신상담(臥薪嘗膽)은 그때 무슨 의미로 쓰여졌을까? 길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만감이 교차한다. 구르몽의 시는 이렇게 끝난다.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오세구 경기도생활체육협의회 사무처장

동네에서 문화의 향기가…

지난달 9일 성남 태평4동 주민자치센터에선 ‘어린이 기자단’이라는 기자증을 목에 걸고 사진기와 수첩, 캠코더 등을 손에 든 아이들로 왁자지껄 동네 이야기 마당이 펼쳐졌다. 성남문화재단이 2년째 ‘우리동네 문화공동체 만들기’ 사업을 펼치고 있는 성남시 태평동의 ‘꿈꾸는 아이들’이 준비한 태평4동 어린이 기자단 발족 및 한울뉴스 창립 기념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고사리 손으로 제작한 동네신문에는 지난해부터 동네 주민들과 함께 작업한 ‘동네 미술관’을 탐방하면서 ‘그림있는 동네풍경’과 금빛초등학교에 그려진 벽화를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가을운동회를 6㎜ 영사기에 직접 담은 금빛초교 5학년 송채연 아나운서의 보도로 ‘태평4동 어린이 뉴스’를 발표할 땐 어린이 기자단의 환호성으로 동사무소가 들썩들썩할 정도였다. 성남문화재단은 지난 2005년 10월 5대 정책사업의 하나로 성남지역 동네 45곳은 마을의 독특한 문화를 꽃피우고 문화공동체를 주민들 스스로 만들어 가자는 취지에서 1단계 3개년 계획을 시의회에 제출, 승인받았다. 45곳의 유형들을 분석해 골목길·아파트·공단·시장·상가유형으로 나누고 3년 동안 5곳을 시범동네를 선정해 성남문화재단과 예술가가 직접 주민들과 만나 사례를 창출하고 그 과정을 ‘프로젝트 북’으로 상세하게 엮어 내는 것이다. 지난해는 첫번째 사례로 ‘태평4동에서 동락태평(同樂太平)하세!’라는 제목으로 골목길 유형을 시도했고 올해는 은행2동 주공아파트와 상대원1동 공단 작업이 현재 한창 진행되고 있다. ‘나눔이 즐거운 Art-Pool’은 20년 전 아파트 내 지어진 수영장으로, 방치된 공간을 주민들의 모임과 프로그램을 통해 ‘예술 수영장’으로 바꿔내고 있다. 아트풀 홈페이지(www.art-pool.or.kr)는 풀장댄스, 씨네풀, 풀장놀짱, 풀장이 환상이야, 낄낄마녀의 동화읽기, 미디어 워크숍, 은행동 UCC 등 주민들의 예술놀이터로 분주하게 돌아간다. 성남문화재단은 시범사례들이 끝나는 내년부터는 2단계 5개년계획을 준비하기 위한 동네 45곳 워크숍을 준비할 계획이다. 동네마다 스스로 문화공동체를 창조해 나가는 주체를 형성하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과 컨설팅 매뉴얼을 차근차근 쌓아 나가고 있다. 주민들의 일상적 삶이 배어 있는 동네 곳곳에서 문화예술의 향기가 은은히 퍼져나가는 도시야말로 진정 ‘문화의 도시’라고 할 만하다.

꽃밭에 서서

학교에 작은 꽃밭이 있다. 한해 동안 많은 꽃들이 피었다 졌다. 이제는 찬 바람 속에 감국이 한창이다. 며칠 전에는 꽃양배추를 심었다. 한 겨울 눈 속에서 붉은 잎을 자랑할 것이다. 호미 들고 화단에 서 있으면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꽃밭에서 아주 살았다는 노랫말이 마음에 들어서일까? 백일홍, 채송화, 봉숭아, 분꽃, 해바라기, 섬초롱, 부처꽃…. 모종을 심을 때는 언제 자라 꽃을 피우나 싶지만 금방 커 저마다의 향기를 뿌려댄다. 꽃밭에 서서 생각해 본다. 꽃을 가꾸는 일은 아무래도 가르치는 일과 닮았다고…. 정원사는 꽃씨를 묻고 하루에도 몇 번씩 꽃밭에 들른다. 담임 반을 맡은 선생님도 녀석들이 어떻게 지내나 틈이 날 때마다 교실을 둘러본다. 가뭄은 타지 않는지, 해충의 피해는 없는지 궁금하듯 선생님도 뛰거나 싸우는 녀석은 없는지 외로움을 타는 아이는 없는지 살펴본다. 웃거름을 듬뿍 주고 가끔 북을 줘야 쑥쑥 자라듯 선생님은 늘 다정한 손길로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힘을 실어 준다. 때로는 잡념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꾸중을 내린다. 곁순 따는 일을 소홀히 한 국화가 큰 꽃을 피우지 못하듯, 잘못을 바로 잡아주지 않은 아이는 큰 사람으로 자라지 못한다. 선생님들에게는 아이들이 떠난 방학이 고통이다. 텅 빈 교실을 서성이다 못내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핸드폰 문자에 사랑을 실어 안부를 묻는다. 어떤 이는 제자들을 통째로 불러내 1박2일 캠핑을 다녀오기도 한다. 성의 없는 정원사가 가꾸는 꽃밭은 황폐하다. 바랭이, 개망초, 환삼덩굴 등으로 뒤덮인다. 성의 없는 선생님이 맡은 반 아이들은 어딘가 어수선하다. 교실 구석 어디서인지 낙서도 발견되고 창틀에는 먼지도 뿌옇다. 정원사가 “참, 아름답구나, 너희들”이라고 칭찬해 주면 꽃은 더 화사하게 피어난다. 선생님이 “너는 최고야.”나 “참 착해” 또는 “너는 참 성실하구나”라고 말을 던지면 아이들은 어느새 그렇게 변해간다. 칭찬을 듣고 자란 학생들은 스승을 평생 마음에 담고 산다. 훗날 “그때 선생님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고백한다. 무심코 던진 말이지만 때로는 그것으로 모진 추위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정원사가 꽃밭 가득 핀 꽃을 보고 여름날의 땀을 잊듯, 선생님들은 제자들이 세상에 향기를 뿌릴 때 뿌듯함을 느낀다. 노란 감국에 벌들이 잔뜩 달라붙은 가을이다.

칭찬과 아부

칭찬과 아부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칭찬은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함, 또는 그런 말’을 의미하고 아부는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림, 또는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하고 있어 둘 사이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둘 사이를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가 적지 않다. 칭찬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온갖 아부들이 난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 둘에 대한 명확한 경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칭찬과 아부는 분명 다르다. 그 차이점에 관해 깊이 있게 고민한 건 아니지만 필자는 상대방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하게 된 동기를 기준으로 칭찬과 아부를 구별하고자 한다. 만일 상대방이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을 하게 된 동기가 그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면 그 말은 분명 칭찬이다. 반대로 그 동기가 종국에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아부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말을 하는 사람의 동기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좀 더 현실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칭찬은 그 속성상 윗사람이 자신의 아랫사람이나 후배에게 자주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윗사람들로부터 듣는 긍정적인 말들은 칭찬으로 추정해도 무방하다. 반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긍정적인 말들은 아부일 가능성이 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부는 훌륭한 출세의 수단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듣기 좋은 말은 그 말의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유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아부문화는 유독 그 정도가 심각한 것 같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조직생활을 하는 상당수의 침묵하는 다수는 필자의 위 결론에 공감을 표시할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칭찬의 상대방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아마도 그 상대방은 후배나 부하가 아니라 선배나 상사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그 칭찬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터득한 요령일지도 모른다. 부디 이러한 요령이 없이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지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한다. 민기영 변호사

보이지 않는 일상의 행복

결혼 생활 25년만에 남편과 함께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말로만 들어오던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3개국을 선택해 연합여행으로 대부분 낯선 동행이 시작됐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스위스 취리히 공항을 경유, 프랑스까지 14시간의 긴 비행시간을 기내에서 주는 식사와 음료 등을 마시며 귀에는 헤드폰을 착용하고 흘러간 추억의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몸을 맡겼다. 7시간의 시차로 한낮에 한국에서 이륙했지만 착륙시간을 알려주는 안내방송과 함께 상공에서 내려다 보이는 스위스는 또 다시 대낮으로 새파란 융단을 잘 정리해 놓은 병풍과도 같은 푸르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녁 무렵 프랑스에 도착하자 인솔자가 또박또박 주의사항들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여러분, 유럽에선 1회용 용품이나 물은 공짜가 없습니다. 화장실도 대부분 유료이므로 급하신 분은 미리 말씀해주셔야 긴 이동시간에 무료 화장실을 찾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 물 욕심은 버리는 게 좋겠죠?” 둘째날 여행지는 루이 14세의 절대 왕권을 상징하는 베르사이유궁전과 절도 있게 두줄 종대로 잘 다듬어진 정원 숲을 관광하고 예술의 거리 몽마르뜨의 언덕을 오르자니 파란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의 무리도 지나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리듬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이 때 동상인 듯 서 있던 예술인이 얄궂은 포즈를 취하는 풍경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잠깐의 개인시간을 얻어 카페에 들러 한잔의 차로 옛 예술인의 자취를 더듬어 보기도 하고 시장기가 돌 무렵 식당가로 발길을 옮겼다. 일행은 정해진 자리에서 빵과 스파게티 접시를 비우고 와인 한잔으로 목도 적셨지만 갈증을 느꼈다. 한국에서라면 어디서나 쉽게 설치된 정수기나 커피자판기가 아쉬운 줄 몰랐건만 커피 한 잔이나 물 한 잔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다니. 아니나 다를까. 식사가 끝나자마자 남은 물을 빈 병에 담아 가방에 넣는 일행이 보였다. 가이드가 웃으며 한마디 쏟아낸다. “하하. 물 욕심들 내지 말라고 그랬죠?” 내 나라 한국에선 별 어려움 없이 얻어졌던 행복을 그동안 몰랐던 것이다. 마지막 여행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르신 한분이 등 뒤에서 속삭여 물으셨다. “돌아가는 날인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아, 예! 그동안의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아요. 역시 내 나라가 최고예요.”

지역기업, 사회적 책임 넘어 투자로

메세나란 고대 로마의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섬기던 정치가 마에케나스(Gaius Clinius Maecenas)가 예술가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지원한 데에서 유래한 프랑스어이다. 지난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후원회가 발족하면서 ‘스폰서’나 ‘패트런’이 아닌 ‘메세나’란 용어를 처음 쓴 뒤로 세계 각국에서 전파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994년 순수 민간기업으로 구성된 한국메세나협의회가 창설되면서 예술과 문화 등에 대해 지원·후원해주고 있다. 지방에서는 지난 2004년 광주광역시가 제일 먼저 메세나협의회를 구성했고 최근에는 경남을 비롯, 인천에서도 문화재단과 문화원연합회 등이 추진되고 있다. 국가가 감당해야할 범위가 한없이 넓어지면서 생태학적 조직인 기업도 영향력이 점차로 증대함에 따른 사회적 책임의 의무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메세나협의회 자료에 따르면 국내 기업들의 문화예술 지원액수는 지난 2004년 1천710억원, 지난 2005년 1천800억원, 지난해 1천840억원 등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기업재단을 통한 장학사업, 복지관, 양로원 등 지원사업에서 최근에는 기업과 연관된 지역에 공공시설물을 직접 시공해 기증하는 사례들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 사례 첫번째로 지난 1995년 SK그룹은 자사 소유인 수원시 팔달구 소재 토지에 1천700석 규모의 도서관을 시공해 수원시에 기증했다. 두번째로 지난 2003년 제일모직㈜가 500억원을 투입해 대구 북구 칠성동 옛 제일모직 부지에 1천508석 규모의 오페라하우스를 지어 대구시에 기증했다. 세번째로 지난 2005년 인천 기업인 동양제철화학㈜ 창업자인 故 이회림 회장이 평생 수집한 유물 8천437점과 송암미술관 건물 및 부지(학익동 소재 공시지가 120억원 상당)를 인천시에 기증했다. 인천 남동구 논현동에 에코메트로라는 브랜드로 아파트를 시공하고 있는 한화건설도 아파트단지 내 부지 9천900㎡에 문화회관(건축비 200억원 상당)을 시공, 남동구에 기증할 계획이다. 기업들도 이제는 과거의 자선적 기부활동에서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과 창조경영 이미지 제고, 개발부지 인지도 향상 등 윈윈전략으로 공공문화시설 확충과 접목해 추진하고 있다. 공공문화시설을 확충하는데는 엄청한 사업비가 소요되고 있어 늘어나는 문화적 수요욕구를 지방자치단체 재정으로 감당하는데 매우 벅차다. 인천의 지리·지역적 측면에서 혜택받고 있는 기업들을 비롯, 대규모 개발을 계획하고 있는 시행업체들도 사회적 투자측면에서 이러한 사례들을 더욱 활성화하길 기대해 본다.

신사임당, 그 뒷 이야기

절묘한 예술세계 경지에 이른 신사임당은 우리 역사적 위인으로 기록되며 이이(李珥) 선생의 어머니로 사대부 부녀에게 요구되는 덕행과 재능 등을 겸비한 현모양처로 칭송받고 있다. 그녀는 남성우위의 허세를 부리는 남편을 만나지 않음으로써 그저 한 아녀자로서 역사 속에 잊혀진 인물이 되지 않았다. 유교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고 귀를 기울이는 도량 넓은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외조부의 학문은 어머니를 통해 그녀에게 전수됐으며 무남독녀로 출가 뒤에도 부모와 함께 친정에 살아 시가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이나 육체적 분주함이 없었다는 점 역시 그녀의 재능을 펼쳐 보이는데 보탬이 됐다. 이에 따라 그녀는 비교적 자유롭게 소신껏 일상생활과 자녀교육을 행할 수 있었다. 친정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 그녀의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 도량 넓은 시어머니 역시 당대의 위인이 아닐 수 없다. 한사람의 위인은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훌륭한 조부모와 부모 밑에서 자라 훌륭한 어머니를 둔 남편을 만났고 이 덕분에 세상에 그녀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부를 축적하거나 명성을 위해 나의 가족에게 소홀하진 않았는가. 아이들이 지금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작은 위인의 모습을 보여주자. 우리는 어려서 존경하는 분을 물으면 스승과 부모를 들었다. 우리의 부모가 세상에서 인정받는 위인이기에 존경한 건 아닐 것이다. 낳아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키워주신 부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남들이 다 하니까 우리도 남들 보내는 똑같은 학원에서 상자 안에 담긴 병아리처럼 키우고 있진 않은가. 아이들에게 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치자. 부모로서 삶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것의 순서가 부나 명예임을 가르치지 말자.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먼저 가르치고 그것이 삶을 살며 기준으로 삼는 첫번째임을 가르치자. 얼마 전 성병인자를 얻고 양육포기각서를 쓰고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겨둔 채 가출을 일삼던 노래방도우미로 일하던 10대 엄마가 병을 안고 태어난 갓난 자식을 키울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병실과 차디찬 골목길에 두번 내다 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녀를 욕할 것인가? 아이를 낳은 엄마와 그 엄마를 키운 부모와 그 부모가 태어난 나라의 관리들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골프를 즐기고 있는 시간에 이름 모를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전문계高 정상화의 조건

교육부는 실업계 교육 활성화를 위해 지난 4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 직업분야 고교의 명칭을 실업계고교에서 전문계고교로 변경했다. 도내에는 상업계고교 69곳, 공업계고교 41곳, 농업계고교 12곳 등 모두 124곳의 전문계고교에서 9만여명이 직업교육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신입생이 정원에 미달되는 학교가 적지 않고 지원율도 저조해 전문계고교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최근 5년 동안 전문계고교 졸업생 진로현황을 보면 대학 진학률이 지난 2002년 43.8%, 지난 2003년 52.55%, 지난 2004년 59.69%, 지난 2005년 68.02%, 지난해 67.9% 등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전문계고교 졸업생 10명 중 7명이 대학에 진학하고 3명 정도가 취업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계고교 대안으로 등장한 특성화고교는 더 심각하다. 도내에는 공립 3곳, 사립 6곳 등 9곳의 특성화고교가 있는데 취업 학생 수는 졸업생의 10% 수준에 그치고 90%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기능인력 양성이라는 전문계고교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법 하다. 그러나, 대졸 사원이 고졸 사원보다 임금이 45% 높은 게 현실이고 보면, 취업 보다는 대학 진학을 선택하는 전문계고교 졸업생들의 선택도 이해가 간다. 문제는 기업들이 대졸 사원을 활용하기 위해선 처음부터 재교육시켜야 한다고 볼멘 소리를 하고 있는 점이다. 대학 교육은 산·학연계가 어려워 재교육에 시간을 허비하고 일선 현장은 인력난에 시달려 외국인 노동자들로 부족한 인력을 때우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내년 도내 전문계고교 입학정원 대비 1만명 정도가 부족하다는 도교육청의 예비조사 결과를 봐도 전문계고교 정상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가 시급하다. 전문계고교 출신인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마이스터고교 50곳을 만들어 직업교육을 활성화시키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전문계고교 활성화를 위해 학비 면제, 외국어교육, 해외연수 및 취업, 진학 지원 등 과감한 투자 실시와 우수 교사 배치, 학과 편성의 자율성 부여 및 교원에 대한 규제 철폐 등을 통해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만 하다. 학력과 능력이 꼭 정비례하는 건 아니다. 기업들도 장기적으로는 직원의 학력보다는 능력을 기준으로 합당한 보수를 주는 임금체계를 마련하는 것도 전문계고교 정상화의 실효성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스트레스, 또 하나의 시각

요즘처럼 경쟁과 갈등이 치열한 산업사회에서, 그 사회에 구조·기능적으로 적응하기 위해 현대인들의 대부분은 많은 신체적 감정적 심리적 부담감을 안고 살아간다.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잘 써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느낀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며 우리를 스토커처럼 끈질기게 쫓아다니며 못살게 구는 이것의 정체는 무엇일까? 스트레스의 어원은 “팽팽하게 죄다”에서 기인한다. 일반적인 정의로 정서적 불안이나 근심, 걱정, 또는 심리적 압박감에 기인해 나타나는 행동표현으로 심리적 원인을 동반한다. 육아 스트레스, 입시 스트레스, 부동산 스트레스, 취업 스트레스 등 그 종류가 점점 구체화되고 다양해지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 싸움 원인 중 첫번째가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관계지향의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스트레스는 회피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이 삶의 과정으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모든 스트레스가 문제를 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적당량의 스트레스는 목표를 성취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주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다. 개개인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반응하는 가는, 그 개인이 그 상황을 주관적으로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이냐에 달려 있다. 일어난 사건은 변화시킬 순 없지만 그 사건을 보는 자신의 시각은 바꿀 수 있다. 즉 우리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단기적인 스트레스를 전화위복의 기회로 받아들여 불안은 확신과 용기가 되고 무력감은 의지와 자신감으로 변할 수 있다. 스트레스를 극복해 결과적으로 자신의 능력과 지식에 대한 신뢰가 성장하는 큰 계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에 대한 긍정·역설적 접근을 통해 스트레스의 만성화를 막을 수 있다. “우주삼라만상에는 버릴 게 하나도 없다”는 글귀가 생각난다. 스트레스를 너무 억제하다 보면 감각의 섬세함이 죽어가면서 감정의 빈곤함이 생길 수 있다. 스트레스 자체를 무조건 싫어하고 회피할려고 하기보다는 역발상적으로 스트레스를 자신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는 친구로 생각함이 어떨런지.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이렇게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건 지나친 표현일까? 성장의 근원! 스트레스! 김유신 김유신치과 원장

가족으로부터의 트라우마

인간은 누구나 우리를 양육해주는 보호자 밑에서 유년기를 보낸다. 그것이 부모일 수도 있고 친척일 수 있고 보육시설 관계자일 수 있다. 어느 형태든 우리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 ‘사람’들과 상호작용하며 세상을 배워간다. 아기는 보호자가 항상 곁에 있다고 생각하며 안정감을 느끼려 하고(대상항상성), 자신을 돌봐주는 대상과의 관계성을 통해 세상을 정의 짓는다.(대상관계) 그러한 유년기에 대상항상성과 대상관계 등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상태에서 성장하게 되면 ‘트라우마’(과거의 충격이 현재까지 미치는 것을 말하는 정신의학용어)가 돼 성인기를 지배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성인이 됐는데도 지나치게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불신하고 타인과 상호작용을 원만히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말을 잘 들어보면 결국 그가 원하는 것은 가족의 관심과 사랑이었음을 잘 알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의 관심과 사랑의 부재가 트라우마가 돼 성인기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주로 분노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같은 트라우마가 만들어내는 인간의 감정은 분노이며, 분노는 사랑받지 못해 생기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성장하며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든지 이러한 트라우마를 조금씩이라도 가질 수 밖에 없으며 트라우마 속에서 유아적 환상을 만들어낸다. 유아적 환상은 타인을 이상적 부모, 혹은 욕구를 충족 시켜줄 대리인 등으로 착각하며 관계를 맺게 한다. 성숙한 인간이란 바로 이같은 유아적 환상에서 벗어나 나의 욕구를 인정하며 동시에 타인의 욕구도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이다.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는 이러한 개인의 무의식적 욕구와 기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타인과의 갈등과 마찰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은 타인과의 갈등을 무조건 남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자신의 욕구와 타인의 욕구를 통찰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오늘을 계기로 자신을 한번 돌아보자.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돼 다툼을 일으키지는 않았는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기보다는 나의 욕구를 먼저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강용 수원생명의전화 원장

기차를 타고 유럽까지

지난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문이 발표됐다. 이 가운데 교통분야는 철도부문에 문산~봉동간 철도화물 수송·경의선 개보수 협의·북경올림픽 응원열차 운행, 도로부문에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공동 이용을 위한 개·보수, 항공부문에 백두산 직항로 개설 등 상호 발전을 담은 미래비전이 제시됐다. 남북간 단절된 교통을 잇고 대륙연결 철도, 항공, 고속도로 등 막혔던 국토의 대동맥을 연결하는 계기가 되므로 교통분야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기대와 함께 크게 환영해 마지않는다. 아름다운 강산과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국토면적이 작아도 경제규모나 기술력은 선진국 수준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반도의 지리적 특성과 반세기 동안 분단돼 북쪽의 광활한 대륙으로 뻗어 나가는 통로가 막혀 국가 발전에 지장이 많았다. 하루 빨리 남북간 철길을 연결, 평화공존의 기반을 닦음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지를 거쳐 유럽까지 기차를 운행할 수 있길 바란다. 지난 5월17일 남북철도 연결을 위한 열차 시험운행이 있던 날 분단 반세기를 잇는 쾌거라며 온 국민들이 환호성을 울리던 때가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는 1회성 시험운행이 아닌 항구적으로 기차가 운행되는 것이다. 남북간 철도 연결로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이 철도를 이용해 원자재와 생산제품 등을 수송하면 물류비가 4분의 1로 절감되고 수송기간도 1~3일 단축된다. 열차로 대량 수송하면 개성공단 투자유치 등 남북 경제협력과 경제적 파급효과로 국가 경쟁력이 향상될 것이며 활짝 열린 육로를 통해 인적·물적교류가 활발해져 남북통일의 교두보를 마련하는 상징적 의미도 크다. 앞으로 중국횡단철도(TC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등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거쳐 유럽대륙까지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가 열리게 될 것이다. 대륙철도가 유럽까지 연결되면 해상운송보다 거리가 7천㎞ 단축되고 운행시간도 7일 이상 빨라져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아시아 및 시베리아 등지를 거쳐 유럽까지 오가며 이국의 정취와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이제 부산에서 기차를 타고 유럽까지 여행하는 날도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대륙철도가 운행되면 분단조국의 장애요인을 극복하고 평화와 번영의 무드 속에 세계로 향한 우리 민족의 기상을 유감없이 펼쳐갈 수 있다. 누구나 한번쯤 꿈꿨던 대륙횡단 기차를 타고 우랄산맥을 넘으며 다양한 민족 문화와 역사를 경험하고 우람한 대자연의 신비에 벅찬 감회를 느낄 그날, 이제 꿈이 아닌 현실이 된다.

민족국가에서 다민족 국가로 이행

우리는 민족과 국가를 동일한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인은 단일 민족이고 한국은 단일 민족이 세운 국가라는 믿음 때문에 무의식 중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민족이라는 말은 백개의 성(百姓)이 합쳐졌다는 말이다. 따라서 단일민족이라는 말은 애당초 성립되지 않는다. 선사시대부터 이 땅에 수많은 인구가 살았다.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토기를 남겨놓은 인구는 수만 명으로 추정되고 그 이후 청동기 시대가 되면 수만 개의 고인돌을 남겨놓은 인구는 추정하기조차 어렵다. 그들은 누구인가? 이런 인구들이 갑자기 한반도에서 떠났다고 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따라서 그 사람들의 다양한 유전인자가 우리에게 전달되어 있을 것이다. 특히 고인돌을 만든 사람들은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벼농사를 지어온 농사꾼들이다. 고인돌의 고향은 따뜻한 동남아시아이다. 중국에서는 유행하지 않았던 문화이다. 옛날부터 한반도 주민들은 동남아 주민들과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현대 한국인의 언어가 유목민 언어계통인 알타이어가 된 것은 신라시대 이후 부터이다. 그전에 벼농사 기술자들이 사용하던 언어인 한어(韓語) 중에 쌀, 벼, 풀, 씨등 기초 어휘들은 모두 고대 인도어계통이라는 연구 보고가 있을 정도로 남아시아적인 문화가 이 땅에 먼저 자리 잡고 있다. 한국문화의 기초는 그래서 처음부터 2차원적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북아시아적인 문화를 수용하는데는 관대하면서도 남아시아와의 인적·물적 교류에 대한 현상에는 본능적인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 매일같이 농경문화의 소산인 쌀을 먹고 살면서도 언어의식은 유목민적이다. 그래서 한국인의 의식은 혼란스러운지 모른다. 문화의 계통을 확실하게 분류해 보지 않은데서 연유한 것이다. 지난 2000년 인구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성씨는 286개이고 귀화인의 성씨는 442개나 된다. 이 귀화인들의 유전인자가 세월이 지나면 토착인구의 유전인자를 압도해 버릴지도 모른다. 그런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다. 현실적으로 보아도 현재 한국의 농촌 총각의 3분의 1이 동남아 출신 신부와 결혼하고 있다. 그 여인들이 낳은 아이들은 재론의 여자가 없이 모두 한국인이다. 그 아이들을 혼혈인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이미 우리 몸속에 선사시대부터 남아시아인들의 유전인자가 흠뻑 배어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육아와 교육도 한국정부가 책임져야한다. 농촌 마을에서는 외국인 며느리들을 보듬어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하고 초등학교 학생들부터 이방인과 함께 사는 연습을 해야한다는 내용이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것은 늦었지만 다행한 일이다. 그것이 현실이며 그것만이 한국의 미래를 조화롭게 하는 길이다. 서양의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가 발전한 원동력의 핵심은 포용성이었고 현대에 와서 중국과 미국이 다민족 국가로서 번영하고 있는 모습은 국가 발전의 좋은 교과서가 된다. 순혈주의는 한국 역사상 몽골의 침입과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민족단결의 한 방편이었다. 이제 한국은 세계 11위의 경제국다운 새로운 사회철학이 필요한 시점을 통과하고 있다. 국가 발전의 속도만큼이나 빠른 의식구조의 개선이 필요하다. 김병모 고려문화재연구원장 한양대 명예교수

행정감사, 파트너가 아쉬워

경기도의회는 다음달 13일부터 22일까지 경기도에 대한 행정사무감사를 펼친다. 경기도의원들은 각자 관심있는 분야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는 사업 집행에 대한 자료를 집행부에 요구하고 이제 이달말이면 집행부가 제출한 자료를 검토하고 감사하게 된다. 행정사무감사의 기본목적은 처음에 수립된 계획과 목표, 또는 법규와 절차 등과 일치되도록 행정처리가 됐는지를 도민들을 대변해 꼼꼼하게 살펴보고 입법활동에 반영함과 동시에 잘못된 점은 시정·건의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징계·문책할 수 있는데 있다. 필자는 지난해 초선 경기도의원으로서 처음 행정사무감사에 참가했고 올해 두번째 임하게 된다. 지난해도 그랬지만 올해도 행정사무감사 자료 요청을 준비하면서 마음에 무거운 부담이 밀려온다. 여러가지 구조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보사여성위원회는 경기도의 보건·복지·여성분야 국 4곳을 비롯, 직속 기관인 보건환경연구원과 사업소 3곳, 출연법인 3곳 등을 5일 동안 감사해야 하고 행정사무감사 결과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 복지건강국만해도 1년 예산이 2조4천억원이고 사업 건수만 해도 수십건인데 어떻게 하루만에 감사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보좌관도 없는 의원이 혼자 행정사무감사 자료 요청목록을 작성하고 집행부가 보내온 사업결과들을 검토해 짧은 시간에 문제점을 찾아내 개선을 요구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국회의원들이 보좌진 6명에 인턴 2명도 부족하다고 하소연하는 것을 들을 때, 1천100만명의 경기도를 대변해야 하는 경기도의원들의 난감함은 짐작될 것이다. 서울 종로구는 올해부터 동사무소 행정사무감사부터 구민들의 소리를 듣고 이를 반영하는 ‘열린 감사’를 실시한다고 한다. 행정사무감사 착수 전 대상 업무들에 대한 민원과 요구사항 등을 구민들로부터 접수받아 이를 감사에 반영, 구민들의 소리에 부응하고 행정의 투명성과 청렴성 등을 높이며 신뢰받는 구정을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들이 자리를 매김하면 지방자치가 정착될 것이다. 이와 아울러 한가지 도민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도민들이 경기도의원들과 함께 파트너가 돼어 도정을 모니터링하고 경기도의원들을 도와준다면 도민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는 건강한 행정이 이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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