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과 아부의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사전적으로는 칭찬은 ‘좋은 점이나 착하고 훌륭한 일을 높이 평가함, 또는 그런 말’을 의미하고 아부는 ‘남의 비위를 맞추어 알랑거림, 또는 남의 환심을 사거나 잘 보이려고 알랑거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풀이하고 있어 둘 사이의 경계가 매우 뚜렷한 것 같지만 현실적으로는 둘 사이를 구분하기 애매한 경우가 적지 않다. 칭찬이라고만은 볼 수 없는 온갖 아부들이 난무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이 둘에 대한 명확한 경계 설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칭찬과 아부는 분명 다르다. 그 차이점에 관해 깊이 있게 고민한 건 아니지만 필자는 상대방에게 기분 좋은 말을 하게 된 동기를 기준으로 칭찬과 아부를 구별하고자 한다. 만일 상대방이 듣기에 기분 좋은 말을 하게 된 동기가 그 상대방을 위한 것이라면 그 말은 분명 칭찬이다. 반대로 그 동기가 종국에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이는 아부라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말을 하는 사람의 동기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불가능하다. 따라서 좀 더 현실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칭찬은 그 속성상 윗사람이 자신의 아랫사람이나 후배에게 자주 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윗사람들로부터 듣는 긍정적인 말들은 칭찬으로 추정해도 무방하다. 반대로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긍정적인 말들은 아부일 가능성이 크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부는 훌륭한 출세의 수단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듣기 좋은 말은 그 말의 진실 여부와 관계없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매우 유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우리나라 아부문화는 유독 그 정도가 심각한 것 같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조직생활을 하는 상당수의 침묵하는 다수는 필자의 위 결론에 공감을 표시할 것이라고 감히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칭찬의 상대방이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아마도 그 상대방은 후배나 부하가 아니라 선배나 상사인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물론 그 칭찬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이는 아마도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터득한 요령일지도 모른다. 부디 이러한 요령이 없이도 당당하게 살아가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지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한다.
민기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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