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작은 꽃밭이 있다. 한해 동안 많은 꽃들이 피었다 졌다. 이제는 찬 바람 속에 감국이 한창이다. 며칠 전에는 꽃양배추를 심었다. 한 겨울 눈 속에서 붉은 잎을 자랑할 것이다.
호미 들고 화단에 서 있으면 저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 꽃밭에서 아주 살았다는 노랫말이 마음에 들어서일까? 백일홍, 채송화, 봉숭아, 분꽃, 해바라기, 섬초롱, 부처꽃…. 모종을 심을 때는 언제 자라 꽃을 피우나 싶지만 금방 커 저마다의 향기를 뿌려댄다.
꽃밭에 서서 생각해 본다. 꽃을 가꾸는 일은 아무래도 가르치는 일과 닮았다고…. 정원사는 꽃씨를 묻고 하루에도 몇 번씩 꽃밭에 들른다. 담임 반을 맡은 선생님도 녀석들이 어떻게 지내나 틈이 날 때마다 교실을 둘러본다. 가뭄은 타지 않는지, 해충의 피해는 없는지 궁금하듯 선생님도 뛰거나 싸우는 녀석은 없는지 외로움을 타는 아이는 없는지 살펴본다. 웃거름을 듬뿍 주고 가끔 북을 줘야 쑥쑥 자라듯 선생님은 늘 다정한 손길로 제자의 머리를 쓰다듬어 힘을 실어 준다. 때로는 잡념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꾸중을 내린다. 곁순 따는 일을 소홀히 한 국화가 큰 꽃을 피우지 못하듯, 잘못을 바로 잡아주지 않은 아이는 큰 사람으로 자라지 못한다.
선생님들에게는 아이들이 떠난 방학이 고통이다. 텅 빈 교실을 서성이다 못내 아이들이 보고 싶어 핸드폰 문자에 사랑을 실어 안부를 묻는다. 어떤 이는 제자들을 통째로 불러내 1박2일 캠핑을 다녀오기도 한다.
성의 없는 정원사가 가꾸는 꽃밭은 황폐하다. 바랭이, 개망초, 환삼덩굴 등으로 뒤덮인다. 성의 없는 선생님이 맡은 반 아이들은 어딘가 어수선하다. 교실 구석 어디서인지 낙서도 발견되고 창틀에는 먼지도 뿌옇다.
정원사가 “참, 아름답구나, 너희들”이라고 칭찬해 주면 꽃은 더 화사하게 피어난다. 선생님이 “너는 최고야.”나 “참 착해” 또는 “너는 참 성실하구나”라고 말을 던지면 아이들은 어느새 그렇게 변해간다. 칭찬을 듣고 자란 학생들은 스승을 평생 마음에 담고 산다. 훗날 “그때 선생님이 계셨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고백한다. 무심코 던진 말이지만 때로는 그것으로 모진 추위를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이다. 정원사가 꽃밭 가득 핀 꽃을 보고 여름날의 땀을 잊듯, 선생님들은 제자들이 세상에 향기를 뿌릴 때 뿌듯함을 느낀다.
노란 감국에 벌들이 잔뜩 달라붙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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