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의 변명

장동화 한국도로공사 군포지사장 남서울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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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에 묘협이라는 스님이 있었다고 한다. 그 스님이 수행의 지침으로 지었다는 ‘보왕삼매론’에 이런 말이 있다. “억울함을 당해 밝히려고 하지마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수행자가 아닌 우리에게도 가르침을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나같은 범부야 따르기가 그리 쉽지 않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논리가 오히려 솔깃하다. 평생을 덕과 정의와 질서를 추구하며 살았던 대철학자의 신념을 한두권의 책으로 다 알 수는 없다. 타인에 의해 살고 죽음이 판가름나는 처지에서도 소크라테스는 끝까지 당당했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말 그대로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법정에서 자신을 고발한 사람들과 맞서 자신의 정당성을 밝히기 위해 펼친 변론이다. 생사를 초월한 어조가 그의 인품을 짐작하게 한다. 기원전 400년경의 일이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이야 커뮤니케이션 전성시대가 아닌가? 그럼에도 억울함을 참고 마는 것은 보왕삼매론의 가르침 때문일까?

남들이 일할 때 같이 땀 흘리고 남들이 노는 날까지도 우리는 더 바삐 움직여야 한다. 휴일에도, 한밤중에도 고속도로를 잠들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초급 간부만 돼도 24시간 긴장을 거둘 수가 없는 게 우리의 처지이다.

이렇듯 고속도로를 통해 남다른 보람을 찾을 수도 있지만 고객들의 질책이 한없이 야속할 때도 있다. 충청지역 3월 폭설이 그랬고, 지난 추석 연휴만 해도 너무하다 싶었다. 나흘에 걸쳐 고향으로 내려갔던 차량이 이틀 동안 한꺼번에 돌아와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고속도로 지·정체가 어느 정도 심각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고속도로를 수입해 올 수도 없는 일이다. 온 가족이 다 모인 고향집이 비좁고 불편한 정도보다 고속도로 지·정체가 편치 못할 일이며 교통사고로 고속도로가 잠시만 막혀도 죄인 아닌 죄인이 되고 마는 우리다.

요금소에서의 지·정체를 줄이기 위해 하이패스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해온 우리다. 굳이 오른손이 한일을 왼손까지 알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명절에 잠시 다녀갈 가족이 많다고 고향집을 열칸 스무칸 늘리지 못한다는 걸 누구나 알듯, 고속도로에 대한 온 국민의 마음도 그러했으면 어떨까 싶다.

우리의 앉을 자리를 넓히기 위해 늘어놓는 변명이 아니라 우리의 주인이자 고객들인 국민들에게로 한 발짝 다가서고 싶은 마음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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