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나뭇 잎새 져버린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하략)
이 시의 작자 구르몽(1858~1915년)은 고종(高宗)과 같은 시대 사람이다. 시인과 최고통치권자로서 그렇다. 고종은 1864년 즉위, 1907년 강제 퇴위됐다. 재위기간 44년은 정말 격동의 시대였다. 신미양요, 임오군란, 갑신정변, 민란, 갑오농민전쟁, 청일전쟁, 노일전쟁…. 그 파도를 따라 충신열사와 우국지사들의 치열한 삶이 등대(燈臺)처럼 서 있다.
1905년 3월 만주 봉천에서 크로파트킹 지휘하의 러시아군 32만명과 오야마 이와오가 지휘하는 일본군 25만명이 격전을 벌였다. 7만명이란 사상자를 내면서 일본군이 당시 세계 최강 러시아 육군을 격파했다. 이때 사실상 동아시아 지도국이 결정된 것이다. 같은해 5월 일본군 연합함대가 러시아 발틱함대를 대한해협에서 격침시킨 건 긴 대결극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당시 최강국 영국을 등에 업은 일본의 승리였다. 1905년 9월 일본 동경 히비야 공원에선 러·일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9월5일 조인된 포츠머스협약에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총력전으로 이룬 승전의 대가가 너무 보잘 것 없다는 대중의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이 협약을 주선함으로써 동아시아 평화를 이룬 공로로 시오도르 루즈벨트는 19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격동의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했던가? 양반 자제들로 구성된 별기군 창설, 갑오개혁, 황제즉위식 거행, 독립신문 발간, 독립문 건립, 서북학회 등 학회 설립, 신식학교 개교 등등 많은 업적들이 있다. 침략군의 범죄행위 증명만으로는 부족하다. 갑오농민전쟁 때 조선인 사상자는 35만4천명(일본군측 기록·104주년 갑오농민전쟁 기념 논총)이었다. 의병운동, 민영환의 자결, 이재명의 이완용 암살기도, 헤이그 밀사사건, 신민회 사건 등을 넘어서는 교훈들을 찾아야 한다.
고종은 1882년 체결된 조미통상수호조약에 의거, 미국에게 ‘독립국’이란 외교적으로 맺은 약속을 준수할 수 있도록 지원을 요청하는 등 국권수호 의지는 갖고 있었다. 그러나 역량이 없는 의지는 수레가 없는 말과 같았다.
시인(詩人)과 최고통치권자(最高統治權者)는 비전과 책임의식이 달라야 한다. 시(詩)는 퇴고(推敲)가 가능하지만, 역사는 퇴고가 안된다.
그 시대의 등대불은 어디를 비췄던가? 와신상담(臥薪嘗膽)은 그때 무슨 의미로 쓰여졌을까? 길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만감이 교차한다.
구르몽의 시는 이렇게 끝난다.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낙엽은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오세구 경기도생활체육협의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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