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그 뒷 이야기

전 동 욱 조리사협회 경기도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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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묘한 예술세계 경지에 이른 신사임당은 우리 역사적 위인으로 기록되며 이이(李珥) 선생의 어머니로 사대부 부녀에게 요구되는 덕행과 재능 등을 겸비한 현모양처로 칭송받고 있다. 그녀는 남성우위의 허세를 부리는 남편을 만나지 않음으로써 그저 한 아녀자로서 역사 속에 잊혀진 인물이 되지 않았다. 유교사회임에도 불구하고 아내의 자질을 높이 평가하고 귀를 기울이는 도량 넓은 남편을 만날 수 있었다.

외조부의 학문은 어머니를 통해 그녀에게 전수됐으며 무남독녀로 출가 뒤에도 부모와 함께 친정에 살아 시가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이나 육체적 분주함이 없었다는 점 역시 그녀의 재능을 펼쳐 보이는데 보탬이 됐다. 이에 따라 그녀는 비교적 자유롭게 소신껏 일상생활과 자녀교육을 행할 수 있었다. 친정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해줘 그녀의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준 도량 넓은 시어머니 역시 당대의 위인이 아닐 수 없다.

한사람의 위인은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훌륭한 조부모와 부모 밑에서 자라 훌륭한 어머니를 둔 남편을 만났고 이 덕분에 세상에 그녀를 널리 알릴 수 있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부를 축적하거나 명성을 위해 나의 가족에게 소홀하진 않았는가. 아이들이 지금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의 사랑스런 아이들에게 작은 위인의 모습을 보여주자. 우리는 어려서 존경하는 분을 물으면 스승과 부모를 들었다. 우리의 부모가 세상에서 인정받는 위인이기에 존경한 건 아닐 것이다. 낳아주고 입혀주고 재워주고 키워주신 부모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남들이 다 하니까 우리도 남들 보내는 똑같은 학원에서 상자 안에 담긴 병아리처럼 키우고 있진 않은가. 아이들에게 고기를 낚는 법을 가르치자. 부모로서 삶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것의 순서가 부나 명예임을 가르치지 말자.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먼저 가르치고 그것이 삶을 살며 기준으로 삼는 첫번째임을 가르치자.

얼마 전 성병인자를 얻고 양육포기각서를 쓰고 아이를 시어머니에게 맡겨둔 채 가출을 일삼던 노래방도우미로 일하던 10대 엄마가 병을 안고 태어난 갓난 자식을 키울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병실과 차디찬 골목길에 두번 내다 버린 사건이 있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녀를 욕할 것인가? 아이를 낳은 엄마와 그 엄마를 키운 부모와 그 부모가 태어난 나라의 관리들이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고 골프를 즐기고 있는 시간에 이름 모를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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