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일상의 행복

문 애 숙 고향을 생각하는 주부들의 모임 경기도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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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 25년만에 남편과 함께 해외여행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말로만 들어오던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 3개국을 선택해 연합여행으로 대부분 낯선 동행이 시작됐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스위스 취리히 공항을 경유, 프랑스까지 14시간의 긴 비행시간을 기내에서 주는 식사와 음료 등을 마시며 귀에는 헤드폰을 착용하고 흘러간 추억의 노래를 들으며 그렇게 몸을 맡겼다. 7시간의 시차로 한낮에 한국에서 이륙했지만 착륙시간을 알려주는 안내방송과 함께 상공에서 내려다 보이는 스위스는 또 다시 대낮으로 새파란 융단을 잘 정리해 놓은 병풍과도 같은 푸르름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저녁 무렵 프랑스에 도착하자 인솔자가 또박또박 주의사항들을 일러주기 시작했다. “여러분, 유럽에선 1회용 용품이나 물은 공짜가 없습니다. 화장실도 대부분 유료이므로 급하신 분은 미리 말씀해주셔야 긴 이동시간에 무료 화장실을 찾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즐거운 여행을 위해 물 욕심은 버리는 게 좋겠죠?”

둘째날 여행지는 루이 14세의 절대 왕권을 상징하는 베르사이유궁전과 절도 있게 두줄 종대로 잘 다듬어진 정원 숲을 관광하고 예술의 거리 몽마르뜨의 언덕을 오르자니 파란 잔디밭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시민들의 무리도 지나 거리의 악사가 들려주는 리듬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이 때 동상인 듯 서 있던 예술인이 얄궂은 포즈를 취하는 풍경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잠깐의 개인시간을 얻어 카페에 들러 한잔의 차로 옛 예술인의 자취를 더듬어 보기도 하고 시장기가 돌 무렵 식당가로 발길을 옮겼다.

일행은 정해진 자리에서 빵과 스파게티 접시를 비우고 와인 한잔으로 목도 적셨지만 갈증을 느꼈다. 한국에서라면 어디서나 쉽게 설치된 정수기나 커피자판기가 아쉬운 줄 몰랐건만 커피 한 잔이나 물 한 잔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다니. 아니나 다를까. 식사가 끝나자마자 남은 물을 빈 병에 담아 가방에 넣는 일행이 보였다. 가이드가 웃으며 한마디 쏟아낸다. “하하. 물 욕심들 내지 말라고 그랬죠?”

내 나라 한국에선 별 어려움 없이 얻어졌던 행복을 그동안 몰랐던 것이다.

마지막 여행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르신 한분이 등 뒤에서 속삭여 물으셨다. “돌아가는 날인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아, 예! 그동안의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아요. 역시 내 나라가 최고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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