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정보력에서 비롯된다

아직도 정확한 확인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지만 세간을 긴장시켰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은 시사하는 바가 자못 커 보인다. 먼저 공신력을 담보해야 할 정보기관이 정보능력에 심각한 허점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정보화 사회이며 치열한 정보 전쟁이 전개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정보기관은 정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예민한 정보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 지 불안감에 걱정이 앞선다. 게다가 공정한 보도를 요구 받고 있는 언론매체들이 국가적으로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내용을 제대로 검증도 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행태는 우리 국민들을 슬프게 한다. 국민들의 눈과 귀가 되어 깨끗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정보기관과 언론들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없는 답답함에 가슴이 메어져 온다. 국가의 존립과 국민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북한의 급박한 상황변화에 따른 안정적인 위기관리능력을 확보하여 국민을 불안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해주기를 간곡히 촉구한다. 우리 정부가 북한 및 주변국들의 급박한 상황을 인지하고 올바르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남북간의 긴밀한 대화와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즉 남북간의 불신과 대립의 국면을 종식시키고 ‘상생과 공영’의 개념을 바탕으로 통일시대 준비를 위해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집권 초기 대북정책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난 17일 북한이 남북대화를 제의하였고 우리 정부도 대북 쌀 지원을 무상지원 방식으로 바꾸고, 대규모 민간단체의 북한 방문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모처럼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듯하다. 남북관계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으므로 성급한 접근은 자제하되 어떤 계기가 조성되면 최대한 활용하여 발전적으로 전개시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미국 및 우방과 연계하여 다양한 시나리오와 철통같은 방위태세를 다지고 있다고 확신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하여 모든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는 사안이기에 중요성을 재삼 강조고자 하는 것이다.

‘보금자리 주택’에 거는 기대

주택 정책의 핵심은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게 하는 데 있다. 그래서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주택정책이 나오고, 주거 빈곤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주택개혁에 대한 기대는 한층 커진다. 그 중 하나가 임대주택이다. 경제성장의 지주 역할을 하고 있는 주택산업은 매년 높은 성장을 하고 있는데도, 특히 시장에서 밀려난 저소득층의 내 집 마련의 꿈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쪽방, 지하실, 비닐하우스 등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가구 수가 20%를 넘는다. 임대주택은 매년 늘지만 지금과 같은 공급 속도로는 이들 주거 빈곤층을 흡수하기에는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정부가 지난 주 ‘보금자리 주택’이란 명칭으로 발표한 서민주택공급정책도 이러한 절박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정책의 초점은 2018년까지 임대주택 150만호를 지어 임대주택 재고율을 선진국 수준인 12%로 올려놓겠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발표된 서민 주거안정 대책은 이명박 대통령이 지향하는 주택정책의 방향타이자, 서민주택정책에 있어 커다란 분수령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려되는 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이다. 지난 80년대 말 ‘영구 임대’에서 출발한 정부의 임대주택정책은 이후 ‘50년 공공임대’로 바뀌었고, 지난 정권에서는 ‘국민임대’로 명칭이 변경되었다가 이번에는 ‘보급자리 주택’이란 이름을 달고 나왔다. 이처럼 임대주택 정책은 정치적 상황에 따라 정책 기조와 건설 물량이 수시로 달라졌다. 일관성을 잃은 정책에다, 재원 조달과 가용 토지 확보 문제가 겹쳐 사업이 중단되거나 건설실적이 목표치에 미치지 못하곤 했다. 이것이 지난 20년간 추진해온 임대주택 정책의 현주소이다. 보금자리 주택 150만호 건설 계획이 과연 제대로 실현될 지, 의문을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택을 정부의 주요 공공 서비스로 삼고, 서민들을 위한 주택 보장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강화해야 할 때가 왔다. 그 출발점이 임대주택정책이다. 그러나 재원 조달, 사회의 부정적 인식으로 인한 가용 용지 확보의 어려움 등 적지 않은 난관이 가로놓여 있다. 때문에 임대주택 정책은 가다서다식으로 일관성을 잃고, 결국 정치적 구호로 끝나기를 반복해왔다. 보금자리 주택은 이명박 정부의 주택 정책 시험대이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필요하다. 서민들은 이번에야 말로 주거로 인한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인석 인천상공회의소 부회장

‘천생연분, 평생원수’

‘천생연분, 평생원수’¶/유승호 금촌성심의원 원장¶¶오래전 모 TV에 할아버지 할머니 노부부들이 출연해 서로 퀴즈를 맞추는 프로가 있었다. 진행자가 ‘천생연분(天生緣分)’이란 문제를 보여주자 할아버지께서 할머니께 답을 구하는데 온갖 설명과 동작에도 할머니는 계속 동문서답이었다. 마침내 “긍께로, 우리 둘을 머시라 하남?” 할아버지 말씀에 “아!~ 진작 그라케 말하지~잉!”하며 무릎을 탁! 치면서 자신있게 정답을 꺼내는 할머니 말씀에 좌중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할머니의 명답(?!)은 바로 ‘펭셍웬쑤!’였다. 표준말로 ‘평생원수(平生怨讐)’. 꽃다운 이팔청춘에 만나 결혼한 후 반백년이 넘도록 살을 맞대고 살아온 노부부이건만, 사랑하는 마음과 배려하는 정성을 마음속에 감추고 짐짓 퉁명스럽고 무심한 체 대했던 세월동안 할머니께서는 당신을 향한 할아버지의 속마음이 정말 퉁명스럽고 무심했다고 판단했을게다. 평소에 진솔한 속마음을 보이고 알콩달콩한 표현을 아끼지 않았더라면 남들 보기에 멋진 황혼의 동반자라 할 수 있겠고, 자칫 무심할 수 있는 부부사이에서 작고 사소한 부분이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히 표현하고 산다는게 중요하다고 새삼 공감했다. 흔히들 ‘부부는 무촌(無寸)이다’,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이다’란 표현을 쓰는데, 전혀 모르는 남남끼리 만나서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고, 한평생을 같이하는 인생의 동반자 관계이다. 그만큼 허물없이 가까운 사이이고 심지어는 서로가 자신의 분신과 같은 소중한 존재가 바로 부부다. 그러나 한편으론 성격과 의견이 안 맞아 갈라서면 또다시 남남처럼 소원해지는 사이도 부부다. 다시말해 서로의 노력에 따라서 끊어지지 않는 단단한 고리가 될 수 있고 혹은 썩은 동아줄이나 비에 젖은 새끼줄처럼 쉽게 끊어져 갈라서는 고리도 될 수 있다. 이처럼 과정이나 결과에 있어 하늘과 땅처럼 극과 극이 될수 있는게 부부다. 사랑은 이미 지나간 과거를 돌이켜 주지는 않지만 다가올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기에 평생을 같이하기로 약속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성격과 의견차이로 이혼이 급증하는 현실속에 배우자에게 변화를 요구하기보다는 자신이 먼저 사랑과 배려를 솔선하는 마음자세를 갖자. 부부끼리 ‘천생연분’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평생원수’처럼 살 것인가는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유승호파주 금촌성심의원 원장

제조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조업이 크게 위축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우리 기업들이 중국과 동남아에 대규모로 진출한 결과이다. 서비스업에 대한 기대치까지 감안한다면 제조업은 이제 우리 곁에서 멀어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전체고용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2007년 기간중 20.3%에서 17.6%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제조업의 실질 부가가치 비중은 29.4%에서 34.5%로 상승했다. 의복, 가죽, 섬유, 목재 등 경공업이 크게 감소하고 화학제품, 영상음향 및 통신장비, 의료정밀기계 등의 고부가가치 산업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혹자는 우리나라에서 제조업을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말한다. 제조업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기는 끝났다는 것이다. 중국 등과 경쟁하기도 쉽지 않고 장기적인 아이템 찾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생산과 고용유발 효과가 크고 불확실한 경제환경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산업의 성장동력원인 제조업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미국발 금융 쓰나미를 실감나게 목격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투자은행과 보험사들이 줄줄이 부실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지 않은가. 세계경제가 휘청거리다 못해 공황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과다한 주택대출이 원인을 제공했지만 첨단 금융기법에 대한 과신이 단단히 한 몫 했음도 우리는 알고 있다. 리만브라더스 2만6천명, 메릴린치 6만명의 직원들은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 우리가 도입하고자 하는 선진 금융기법으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지도 모른다고 한다. 제조업이라고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실물이 받쳐 주기 때문에 맥없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이것만은 알고 넘어가자. 잘사는 나라, 흔히들 선진국들은 제조업을 아주 잘 보듬고 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위스를 관광으로 먹고 사는 나라 쯤으로 본다. 하지만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공업화된 나라이다. 금융중심지이자 무역항인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가장 공업화된 나라인데 1인당 제조업 생산고는 한국보다 35%, 미국에 비해 18% 높다. 지금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제조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먹거리는 제조업에서 찾아야 한다. 단단하기 때문이다. 금융서비스와 IT의 거품을 보면서 말이다. 홍용술 중소기업진흥공단 경기지역본부장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올해 7월1일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전면적으로 실시되었다. 노인복지 50년 역사상 가장 괄목할만한 변화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하기 어려운 노인들에게 신체활동, 가사활동 지원 등의 서비스를 제공, 노후생활의 안정과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사회보험제도’를 말한다. 바야흐로 국가수급권자만 보호하던 제한적 복지시대에서 요양이 필요한 노인이면 누구나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시대로 활짝 문을 연 것이다. 후기 고령 노인이 점점 증가추세에 있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바람직한 제도가 아닐 수 없다. 실시 후 두 달이 지났다. 아직은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기는 이르지만 현장에서 감지되는 몇 가지의 사례를 열거해 본다. 첫째, 중산층 이하의 가족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보험금 60%, 정부보조금 20%, 본인 일부부담금 20%로 이용할 수 있지만 이 중에는 식비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 식비 포함 50만~60만원을 가족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보편적 복지시대를 여는 제도로는 경제적 부담이 많다는 것이다. 둘째, 시설 현장에서는 인건비가 삭감되면서 사기가 저하되어 전문인력을 구할 수 없다. 노인의 건강등급과 수가에만 의존하는 제도 하에서 호봉제 방식이 적용될 수 없고, 능력 있는 직원들이 이탈하는 사례가 빈번하여 질 높은 서비스나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이 용이하지 않다. 그리고 행정서류가 난해하고 복잡하다. 셋째, 가족 해체현상이 더 가속화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아직까지는 체면 때문에라도 불편을 무릅쓰고 부모님을 가족이 모셨지만, 이제부터는 요양원의 입소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가족들이 요양보험료까지 내야 하니 이제는 노인들이 아프다고 마음대로 드러눕기도 힘든 세상이 되는가 보다. 노인은 지금도 끝까지 자식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데 말이다.

금성에서 온 아내와 잘사는법

명절 휴가 마지막날 남녀 간의 차이점을 일깨워주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를 다시 한번 꺼내 읽었다. 명절을 앞두고 텔레비전에서는 결혼을 위해 이민 온 동남아 여성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전을 부치는 모습, 절을 배우는 모습을 연일 보여주었는데, 느닷없이 이들이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남녀란 금성과 화성의 서로 다른 행성에서 살다 온 것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것 등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상대를 나에게 맞추어 변화시키려고 애쓰거나 맞서려고 하는 대신 그 차이를 편하게 받아들이면서 이해하면 더불어 잘 살 수 있다고 조언해 주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결혼이민 온 여성들은 자기는 금성으로부터 남편은 화성으로부터 지구에 이주해 와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혼자만 금성에서 남편과 시댁식구들이 계속 살아온 화성으로 시집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부부 간에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맞추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남편나라의 사고방식과 생활풍습에 맞추도록 강요당하는 것이 태반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한국사회 적응을 위해 외국인 아내들이 한국말을 빨리 익히는 것은 필수적이겠지만, 한국남편들은 아내가 살던 나라의 언어를 과연 몇마디나 알고 있을까? 사랑한다는 말 정도라도 아내의 나라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남편이 얼마나 될까?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7년도 국제결혼은 우리나라 전체 혼인건수의 11.1%나 차지하며, 이중 한국남자와 결혼한 외국인 여자의 수는 2만9천140명으로 국제결혼의 75.7%나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모두 잘 살아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2007년도 한국남편과 외국인 처의 이혼은 5천794건으로 전년보다 44.5%가 증가하였고 이들의 대부분(90.2%)이 채 4년도 살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어렵게 한국을 택해 결혼이민 온 아내들이 잘 적응하며 살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 아내나라의 풍습 등 차이점을 이해하고 아내나라의 말 몇마디라도 익혀 힘든 아내를 위로해 주고 아내나라의 명절도 기억하여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한다면 금성에서 온 아내와 훨씬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박숙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장

이 시대 삶의 가치는…

이 시대에 삶의 가치는…¶/이종필 수원시의원¶¶15년 전 쯤에 국회의원 비서관을 지낸 적이 있다. 지역에서 불우이웃돕기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일일찻집을 연다고 해 국회의원을 수행하고 그 곳을 찾았다. 찻집 안에 들어서니 그날의 행사를 주관하는 사람들이 반갑게 맞이하는데, 모두가 낯선 사람들이었다. 회장과 총무 등 임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함께 했다. 그들은 시내 곳곳에서 구두를 닦아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의 모임이었다. 일년에 한 번씩 자신들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데, 그들끼리 모으는 돈만으로는 부족하여 염치없지만 일일찻집을 열게 되었으며 폐를 끼치게 되어 송구스럽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에 국회의원은 그동안 어려운 여건 속에서 남을 위해 봉사해 온 마음과 노고를 치하하면서 “당신들도 넉넉하지 못해 하루하루 먹고 사는 분들이 굳이 이럴 필요가 있느냐”는 뜻의 말을 건네자, 그 중 젊은 한 사람이 언성을 높이며 “우리도 당당히 직업인으로서 인정받고 싶고 또 우리 같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봉사도 하지 말라는 것 입니까”라며 따지듯 되물었다. 한참동안 그 분들이 그동안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해 온 많은 일들을 듣고 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날 이후 당시 삼십대 초반의 젊은 필자는 그 동안의 삶에 대한 반성과 함께 가치관의 변화가 있었다.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는데 많은 고민과 시간이 필요했다. 상위그룹의 직업을 갖고 상류사회로의 진입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회, 권력과 물욕을 위해서는 주변과 이웃을 무참히 짓밟는 현실의 풍토 속에서 과연 어떤 삶이 바람직한 것일까? 솔직히 어떤 것이 정답인지는 모른다. 학문적 근거와 철학적 접근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무엇을 하며 사는 것보다, 구두 한 켤레를 닦아 모은 돈으로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삶이 더욱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이 존경받고, 도덕과 상식이 존중받는 그런 사회를 꿈꾸는 것이다. 중국 설화에 ‘花香千里行(화향천리행), 人德萬年薰(인덕만년훈)’이란 말이 있다. ‘꽃의 향기가 천리를 가지만, 사람이 쌓은 덕은 만년동안 그 향기를 지닌다’는 뜻이다.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할 지, 이 가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대목이다. 이종필 수원시의원

수확기 농촌도둑 뿌리뽑자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자를 도둑이라 한다. 도둑의 호칭도 다양하다. 도적(盜賊)과 강도(强盜) 외에도 산속에 사는 도둑이라 하여 산적(山賊), 바다를 오가면서 재화를 강탈하는 해적(海賊), 의롭지 못한 부잣집 재산을 훔쳐 구차한 사람을 도와준다는 의적(義賊), 세상에 해를 끼치는 못된 도둑인 비적(匪賊), 큰 도둑인 대도(大盜) 또는 거적(巨賊), 대들보 위의 군자라 하여 양상군자(梁上君子)라고도 한다. 이러한 도둑 외에 벼룩의 간도 능히 빼 먹을 만한 자, 정말로 천벌을 받아야 마땅한 도적이 있다. 바로 수확기에 접어든 농촌에서 농산물 도둑질에 활개를 치는 농적(農賊)이다. 매년 수확기가 되면 농민들은 풍요를 거두는 보람과 즐거움을 만끽할 틈도 없이 도둑들 때문에 긴장과 불안 속에서 지낸다. 농민이 쌀 한 톨을 생산하기까지 여든 여덟 번의 손이 가야 된다고 해서 쌀 미(米)자는 八十八 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쌀이 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인 건조를 위하여 널어 놓은 벼를 딱 한 번의 손질로 거두어 가는 도둑, 몇 년간 고이 가꾼 인삼을 캐 가는 도둑, 사과· 배·밤 등 오곡백과 도둑은 물론 사슴뿔 잘라 가고, 출하 앞둔 가축에다 심지어는 생계수단인 고가의 농기계까지 훔쳐 가는 도둑 등등 농촌에서 힘없는 농민들을 상대로 파렴치한 도둑질을 한다. 도둑 맞은 농민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자. 수많은 땀과 시간을 들여 마치 자식처럼 키워서 겨우 결실을 보려는 찰나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 심정은 하늘이 무너지고 원통함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요즈음 가뜩이나 어려운 농촌에서 갈수록 대범해지고 지능화 되는 도둑질이 극성을 부린다면 농촌사회는 불안과 분노로 피폐해 질 것이 자명하다. 문제의 심각성에 경찰청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농민들 스스로도 자구책을 꾀하고 있으나, 열 명의 경찰이 한 명의 도둑을 잡기가 어렵다고 하듯이 도둑을 잡는 데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 민·관이 합심해서 효율적인 경계태세를 갖춰 도둑을 사전에 방지하고 과학적인 시스템을 보강하여 도둑을 반드시 잡아야 한다. 그래서 문을 열어 놔도 도둑이 없었던 예전의 농촌으로 돌려놔야 한다.

정체성 고민

정체성 고민¶/강현재(구성고등학교 교장)¶¶근래에 들어 ‘내가 누구인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아니 이 표현은 적합하지 않을지 모른다. ‘내가 무엇인가?’가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30대까지만 해도 분명 ‘나’는 ‘정신’이라고 생각했었다. 이 판단이 옳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는 차치하고 그리 생각했었다. 어쩌면 정신과 육신, 이성과 감정이라는 서양식의 이분법적 사고의 영향일 수도 있으며 나아가 육신과 감정보다는 정신과 이성이 우위에 있어 이것이 육신과 감정을 조절하고 지배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정신이 육신의 제약을 받고 이성이 감정에 뒤흔들리는 현실을 절감하면서 의혹이 커지고 그 과정에서 이 양자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상적인 ‘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만한 태도로 혹사시켰던 육신을 잘 다독여야 한다는 것도 느꼈다. 그러다 때로는 이런 나를 관찰하고 되새겨 보고 있는 나를 의식하면서 이것이 ‘나’인가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인간의 두뇌활동이 호르몬의 영향을 받으며 이는 또 인체 내에 있는 효소들의 화학작용과 관련된다는 과학계의 연구 결과를 접하면서 다시 혼란스러워진다. 그렇다면 의문을 품는 나를 바라보고 나의 생각을 점검하는 ‘나’의 사고활동도 내 몸 안의 효소 작용에 의한 호르몬의 영향인가. 나는 부분이면서 전체인지, 그냥 전체이면서 부분을 의식하는 것일 뿐인 것인지, 그렇다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지 의문이 꼬리를 문다. 이런 생각은 때로 나와 사회의 관계 쪽으로 가지를 뻗어 나가기도 한다. 인간이 만들어 낸 사회 체제나 문화 양식은 사실 인간이 이들을 부린다기보다 인간이 이들 요소로 참여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인간은 어쩌면 끝없이 자기보다 더 큰 존재(그것이 신일 수도 제도나 체제일 수도 있다)를 상정하고 그에 의탁해서 자신을 조절하고 위안을 얻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만약 인간이 상정한 어떤 존재들이 우리의 인지 능력 밖에서 실제로 존재하고 사유한다면 우리 인간을 어떻게 판단하며 그들 스스로를 무엇이라 정의하고 싶어 할까. 우리가 만들어 낸 제도들을 의견 합의를 통해 의미를 부여하지도 규정하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이 스스로를 정의한다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과연 뭐라고 할까. 그들도 나처럼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까. 강현재 구성고등학교 교장

환상

환상¶/하석용 인천시민회의 의장·경제학박사¶¶세월의 흐름을 넘어서 지워지지 않고 찌릿한 감동을 남기는 영화 몇 편에 대한 기억이 있다. 마음의 행로, 애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여로…. 대체로 극적이기는 해도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들이다. 글쎄, 실사구시적인 성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대체로 ‘말 되는’ 스토리를 가진 극(劇)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 들어서는 좀처럼 극장에 갈 일이 없다. 극장가에 넘치는 작품들이 판타지 일색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극이라는 것이 현실 그 자체를 보여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저마다 감동을 느끼는 방법과 영역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반지의 제왕’이나 ‘캐리비언의 해적’이 설치는 문화판에 대해 입맛이 떫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뒤로 흐른 장구한 세월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경험하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래서 이제 인간들은 지치고 권태로움의 극한에 다가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현상으로 온 세계가 마약과 알코올에 취하고 문화의 모든 영역을 판타지가 뒤덮어 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맞아 죽을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종교가 가지는 환상적 요소까지를 감안한다면 정말 세상은 판타지의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판타지가 갖는 삶에 대한 강한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한다. 절망하는 인간에게 희망을 갖게 하기도 하고 새로운 삶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심심해 죽겠는 인간에게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고 지쳐서 멍청하게 정지해 버린 두뇌의 회전에 자극을 주기도 한다. 인류의 많은 금자탑 같은 문화적 업적들이 판타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삶의 모든 부문들이 판타지로 돌아가서는 곤란한 일이 아니겠는가. 판타지의 문화적 기능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와 경제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판타지여서는 안 되는 것이지 싶다. 이 영역은 인간들의 기본적인 생존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필연의 목표로 삼아야 하고, 따라서 장난이 허용될 수 없는 범주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와 경제에는 너무도 판타지가 많아 보이니 어쩌면 좋은가. 747, 부동산 경기부양, 동북아 중심, 동양의 두바이, 물류중심, 금융중심, 명품도시, 디자인, 개혁, 개혁… 국민의 뜻, 아니… 그 많은 정치인들의 구호 판타지…. 하석용 인천시민회의 공동의장

그리운 고향

그리운 고향¶/방광업 경기도시공사 경영관리본부장¶¶벌써 가을이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로 이제 며칠 후면 추석이 다가온다. 최근 몇 년 사이 나에게는 고향의 그리움이 가슴 속으로 파고 든다. 고향을 떠나온 지 수십년이 지났다. 직장을 따라 수원으로 온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세월이 구름처럼 흘러갔다. 그간 젊었을 때에는 공휴일도 없이 일에 파묻히고 생활에 쫓겨 세월의 흐름을 잊고 살았다. 그래도 일 년에 한 두 번은 선영에 벌초도 하고 친지를 보러가곤 하였지만, 인생 육십고개 언덕에 서서 뒤돌아보니 고향이 더더욱 그리워 진다. 고향이란 과연 무엇일까. 고향이 무엇이기에 나이가 들어 갈수록 자석처럼 마음이 끌리어가는가. 누군가 고향은 어머니품과 같다고 하였다. 철모르고 뛰놀던 어린시절, 시냇가에서 발가벗고 동무들과 물장구치며 송사리, 미꾸라지를 잡던 일들, 들과 산을 뛰어다니며 산딸기, 머루 등을 따먹던 기억들이 아련히 떠오른다. 언제나 고향의 모습들은 우리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들녘 아침풀잎에 맺힌 이슬방울, 장대끝에 앉은 고추잠자리, 밤하늘의 반딧불이 그리고 파란보리밭 물결 위 종달새 울음 소리들은 삶에 지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편안하게 해주고 새로운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그러나 우리가 살던 초가집, 마을 어귀의 성황당, 강가의 금모래 사장과 아름다운 산하들, 그 옛날의 정겹던 모습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혹 우리가 버린 옛것들 가운데 정말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고 그리고 내일이 오듯이, 무릇 옛것이 있어 새것이 나고 우리의 생이 이어지는 것이 아닌가. 옛것에 대한 그리움은 이러한 연유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본질은 사물의 외형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속 내면세계에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 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의 쇼크’에서 현대인은 갈수록 새로운 문화와 경제 쇼크에 급격히 휩싸이게 될 것이며 그 충격으로 방향감각을 상실하는 것이 최대의 비극이라고 말하였지만, 나는 그보다도 우리의 마음속 고향을 잊어버리는 것이 더 큰 충격이며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냇물에서 돌멩이를 치우면 노래를 잃어버린다고 했던가.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잊혀진 고향의 향기를 다시 느끼는 순간 지금까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던 삶의 모든 것들이 바람결에 나부끼는 나뭇잎처럼 허공 속으로 사라져 간다. 방광업 경기도시공사 경영관리본부장

우리의 문화와 색채

제법 분주한 일상이 가득한 현대인은 휴일이면 그나마 도심을 벗어나려는 듯 바쁘게 외곽으로 빠져나간다.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도심 가득한 현란한 간판 색채에 익숙해진 탓인지 현대인은 색채감이 둔감하다. 늘 보아오던 색채인데, 요즘의 우리는 오방색이 무엇인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오방색은 유채색인 파랑, 빨강, 노랑과 무채색인 하양과 검정색 5가지 색으로, 파랑은 동쪽과 봄, 매화를 상징하고, 빨강은 남쪽과 여름 난초를 상징한다. 노랑은 중앙과 땅을 상징하고, 벼의 풍년을 의미한다. 하양은 서쪽과 가을 그리고 국화, 빛의 근원인 하늘을 상징한다. 까망은 어두움 그리고 겨울을 상징하고 북쪽을 의미한다. 이처럼 우리의 선조들이 정한 오방색은 자연의 색인 동시에 생활 속에서 그 절기에 따라 각기 따른 특성과 의미를 가진 색이기도 하다. 또한 사방을 모두 상징하는 대표 색이기도 하며, 계절과 자연의 색채의 고유색을 대표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의 삶에서 현대에 맞는 새로운 오방색을 창조적으로 되찾아야 한다. 어르신들의 그림 속에 담겨진 색채에는 우리의 오방색이 담겨 있다. 어르신들이 생활 속에서 사용하던 색채가 그대로 어르신들의 그림 속에서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어르신들의 그림 속 색채가 지난 시절의 삶을 반영한 색채라면, 젊은 세대의 색채에는 앞으로 나아갈 부분의 창의성을 엿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이 느껴진다. 우리의 삶이 그래왔듯이 과거의 삶과 오늘의 삶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것이 필요하다. 전통사회와 현대사회의 문화가 적절히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창조적인 문화가 피어나기를 기대하며 색채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러한 것은 결코 시장에서 살 수 없는 것이며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영 실버아트센터에서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어르신들 삶이 고스란히 그림이 되고, 우리의 색채로 드러나고, 문화로 드러난다. 여기에 우리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찾고 오늘에 의미 있는 우리의 것을 만들어 가고자 한다. 그렇게 찾아가는 여정이 영 실버아트센터에서의 활동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는 것이다. 옛 것과 오늘의 것이 적절히 어우러져 새로운 문화의 전형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며, 그것이 새로운 문화 창조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것을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것을 통해 작은 문화의 씨앗을 만들고자 한다. 오래 전 우리 삶 속의 오방색은 오늘의 의미를 가지는 새로운 오방색과 문화로 거듭날 것이다. 신현옥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장

만날 수 없는 평행선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 이행을 촉구하는 북한과 성의 있는 대화를 촉구하는 우리 정부, 남과 북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인가. 최근 북한의 입장이 매우 곤혹스러워 보인다. 미국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 삭제를 촉구하면서 핵 신고서 검증을 미루고 있으며, 지속된 흉년으로 인한 식량난은 더이상 원조 없이는 해결이 불가능한 상황에 있다. 북한 당국이 우리 정부의 지원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지만 민간차원의 지원은 받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세계식량계획(WFP)도 5억달러에 상당하는 식량지원을 결의하고 우리 정부에 3차에 걸쳐 지원을 요청하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10년만에 다시 대두되고 있는 북한의 붕괴론이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적으로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두 선언을 포함한 모든 남북간 합의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행방안을 협의하자”면서 대화의 물꼬를 열어 보려 노력하면서도 대북 식량지원에 대해서는 세계식량계획(WFP)의 3차에 걸친 지원 요청과 일부 국회의원들의 식량지원 재개 주장에도 함구한 채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인도적 차원에서의 식량 지원은 가능하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었으며, 새로 임명된 이기택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도 “대북 식량지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등 여러 정황에 따르면 시간의 문제이지 인도적인 대북 식량지원은 조만간 이루어 질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여러가지 사안들에 대해 남북간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쉬운 해결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협상의 성패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같다. 서두르기 보다는 남북관계나 대내외 정세가 뒤틀리고 심하게 꼬일지라도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인내하면서 대화를 통해 신뢰를 두텁게 하려는 노력을 지속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서로 의지하면서 하나 되어 함박웃음을 지을 순간이 멀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지나친 낙관 때문일까.

혐한(嫌韓)의 뿌리

혐한(嫌韓)의 뿌리¶/이인석 인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서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2010년까지 양국의 교역 규모를 2천억 달러로 확대하자는 제안을 했다. 이는 한일·한미 교역량을 합한 것보다 많은 것으로, 이제 한국과 중국은 바지와 허리띠 같은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경제의 국경이 낮아지는 것과는 달리, 마음의 장벽이 양국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편견과 몰이해로 인해 세워진 장벽인 것이다. 중국에 나가 있는 한국 기업 가운데 현지 종업원들의 분노를 사는 일을 하거나, 체면이나 자존심을 해친 사례가 적지 않다. 중국인에게 있어 체면과 자존심은 호랑이에 비유하자면 가죽과 같은 것이다. 중국인의 낮은 임금에만 관심을 쏟는 동안 이들 가슴 속에 혐한(嫌韓)이 싹튼 것이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의 60%는 중국인들이다. 코리안드림을 안고 왔다가 차별이나 멸시 등 마음의 상처를 입고 돌아간 중국인들이 많다. 매년 2만여명의 중국인 유학생이 오지만, 한국 사람들로부터 편견과 모멸감을 느꼈다는 유학생도 적지 않다. 자신의 경험을 들어, 중국 친구들에게 한국에 오지 말라고 인터넷에 올리는 경우도 있다. 근로자든 유학생이든 중국에서 친한 세력이어야 할 이들이 반대로 혐한 정서 확산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의 한 언론매체가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좋아하지 않는 이웃나라’에 한국이 1위로 뽑혔다. 이렇듯, 민심으로 변한 혐한(嫌韓)감정이 베이징 올림픽 경기장에서는 한국팀이 아닌 일본팀을 응원했던 것이다. 한국과 중국 사이에는 냉전 40년이라는 역사적 공백이 가로 놓여 있다. 서구를 향해 살았던 한국인들은 이 시기에 중국인들은 무슨 꿈을 꾸고 있었는지, 또 무엇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알지 못한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은 대부분 과거 헐벗고 굶주렸던 시대의 중국인 모습이다. 과거의 눈으로 보려고 하는한, 현대 중국인은 우리 시야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혐한의 진원지 가운데 하나는 우리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린 편견이다. 편견이나 선입견이 국민감정을 자극할 경우 바로 폭약이 될 수 있다.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린 현대 중국인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 때다. 이인석 인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수도권 규제완화와 지역균형발전

지역 불균형 발전에 대한 비판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과도한 지역 불균형 발전이 국가의 지속적인 성장을 방해한다는 실용주의적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지역 불균형 발전은 빈익빈 부익부와 마찬가지로 정의(justice)론적 관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무론적(deontological) 입장이다. 참여정부는 지방분권, 지방분산, 지방분업 등 삼분(三分)정책을 통해 지역 불균형 발전을 완화하고 수도권과 지방이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지역 균형발전을 추구하였다. 참여정부의 지역 균형발전의 뿌리는 사회과학의 전통적 난제인 효율성(efficiency)과 형평성(equity)의 이념적 대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효율성과 형평성은 두 가지를 동시에 추구할 수 없는 트레이드 오프(trade off)의 문제로, Hayek와 Rawls의 논쟁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과학에서 지금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어오고 있음에도 답이 없는 문제이다. 그럼에도 참여정부의 지역 균형발전정책은 참여정부가 가지고 있던 이념의 공간에 대한 극단적 적용이었고, 결과적으로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은 구체적 방법과 현실성이 결여된 이념적 형태에 불과하였다. 한국에서 어떤 지역으로 인구가 유입되는 첫째 요인은 직업이고 둘째 요인은 교육환경이다. 그런데 2005년의 경우 전국에서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30만8천개 였고 이 중에서 경기도가 17만3천개로 전국 일자리 창출의 57%를 차지했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의 우수한 교육환경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지역 불균형 발전이란 지극히 부정적인 결과가 그 원인에 있어서는 개인의 합리적 선택에 따른 인구이동으로 인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과라는 역설이 발생한다. 이러한 면에서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은 수도권과 지방의 관계를 ‘제로섬게임’으로 보면서 하향 평준화를 추구하였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이념적인 면에서 참여정부와 커다란 차이를 가지고 있는 정치세력이다. 그럼에도 초창기에 정책 추진력을 상실한 채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을 고려하여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 즉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 ‘선 공기업 이전 후 혁신도시 발전’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최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수도권 규제 완화’를 주장하며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당연히 같은 한나라당 소속이면서 ‘충청권홀대론’을 주장하는 이완구 충청남도지사와는 대립각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참여정부와 상반된 이러한 주장 속에도 역시 수도권과 지방의 관계를 ‘제로섬게임’으로 보는 동일한 시각이 존재하고, 정부와의 대립각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느낌마저 준다. 이 보다는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정책의 부작용을 줄이고 실효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 즉 수도권과 지방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리더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리더는…¶/이종필 수원시의원 ¶¶역사 속에서 리더들에게는 다음 사실을 인식할 수 있다. 그것은, 개인적인 자질, 후천적인 노력, 상황적 조건 등이다. 이들 여러 사실 중에서 결정적인 성격은 상황적 조건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상황적 조건도 리더가 만들고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 자체는 제한적이다. 리더가 조정 통제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정치적 운명’으로 설명하는데 그것이 바로 역사다. 시대적, 사회적 상황이 곧 역사인 것이다. 이 점에서 리더가 상황을 만들지만 상황도 리더를 만든다. 양자 사이에서 우열과 정도를 말할 경우, 상황의 우위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와 리더의 관계를 전제할 때 리더의 기본적 속성은 무엇인가. 첫째, 보편성이다. 리더는 가장 민중적이어야 한다. 민중의 한 요소이자 그들 속에서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민중=리더’의 등가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적이지만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둘째, 시대적 추동성이다. 리더는 시대의 흐름과 일치되거나 그것에 어느 정도 앞서는 존재로서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리더는 민중들의 설화의 대상에 불과할 뿐이다. 시대를 알고 시대를 견인할 수 있는 본능적인 인지가 이룩되어야 한다. 셋째, 자기 극복적 의지이다. 리더는 개인적으로 상황에 단순히 추수하거나 부화하는 존재에서는 벗어나야 한다. 주어진 상황을 자기 식으로 이끌어 갈 의지를 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끌어 갈 일차적인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임을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자기 성찰적 재귀성(再歸性)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재귀성은 스스로에 되돌아옴을 의미한다. 리더는 항상 준엄한 자기 성찰적 재귀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역사는 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최후로 자신에 던지는 질문이 되어야 한다. 리더는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노력의 산물이다. 노력의 대상은 오직 사람과 사회에 대한 강한 책임의식에서 비롯된다. 자신을 민중 속에 내던지지 않는 지도자는 한낱 주어진 존재로서의 세습적 지도자에 불과할 뿐이다. 시대상황과 국민수준과 국민욕구의 세 가지를 충족시킬 리더의 부재가 지금 국민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현실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종필 수원시의원

지혜의 샘

지혜의 샘¶/홍용술 중소기업진흥공단 경기지역본부장¶¶조짐이 심상치 않다. 현재의 경기를 보여주는 동행지수와 앞으로의 경기를 보여주는 선행지수가 6개월째 하락했다. 7월의 경상수지는 24억5천만달러 적자를 기록했고, 자본수지는 57억7천만달러의 유출 초과를 나타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돈을 계속 빼내고 있다. 9월 위기설이니 10월 위기설이니 정제되지 않는 소문들이 끊이지 않고 들린다. GDP 성장률은 1분기 5.8%에서 2분기 4.8%로 급락한 데 이어 하반기에는 3.9%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바깥 경제는 어떠한가. 미국은 수출호조와 세금환급 조치로 지난 2분기 3.3%의 성장을 기록했지만, 세금 환급 효과가 사라지면 4분기에는 성장율이 0%대로 떨어질 거라고 한다. 일본 경제 역시 휘청거리고 있으며 유럽 경제의 2분기 성장률도 1999년 유로화 도입 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최대 수출국인 중국은 올림픽 이후 투자와 소비가 가라앉고, 두자릿수의 성장률이 내년에는 한자릿수로 떨어지면서 침체 국면에 빠질 것이라고 한다. 중국 경제 침체는 우리의 수출에 바로 영향을 미친다. 중국의 GDP 성장률이 1%포인트 둔화되면 우리나라 GDP는 0.15%포인트 가량 하락할 것이라고 한다. 대외경제 상황의 악화속에 지금은 무엇보다도 내수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내수의 핵심은 소비에 있고 소비는 고용을 통해서 창출된다. 청년 실업자에 대한 정부대책이 나왔다. 중소기업 인턴 취업자에게 6개월간의 급여 50%를 주고, 이후 정규직 전환시에는 또 6개월의 급여를 지원한다. 그리고 ‘사회적 벤처 경연대회’를 열어 한해 100명에게 각각 5천만원의 창업자금을 제공한단다. 고용을 늘리는 창업기업을 위해 하반기에 1천억원의 정책자금이 증액되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하지만 지금 매우 곤궁한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도 있다. 남의 얘기 들리 듯 그럴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우리는 IMF경제 위기 상황도 최단시간 내에 극복해 낸 경험과 지혜를 갖고 있다. 외국 명품 브랜드보다는 질 좋은 국산 브랜드 사용으로 우리 기업의 성장을 도와야 한다. 기업은 한 두 명씩이라도 채용을 늘리고, 정부는 고용지원금 기간을 더 늘린다면 분명 내수는 살아날 것이다. 고유가 문제는 전 국민의 에너지절약 동참으로 해결할 수 있고, 각종 규제가 풀리면 떠났던 외국 자본도 돌아올 것이다. 지금은 어렵고 견디기 힘들지만 슬기롭게 극복해 나갈 지혜의 샘이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생각에 한결 마음이 놓인다. 홍용술 중소기업진흥공단 경기지역본부장

책 속에 있는 인생길

책속에 있는 인생길¶/유승호 금촌성심의원 원장¶¶서너평 남짓한 병원 진료실에서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다 보면 좋던싫던 책과 많이 접한다. 즐겨 읽는 역사물이나 고문(古文)에선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지만 사람들끼리 부딪치면서 겪는 희로애락이나 알콩달콩한 흥밋거리는 역시 대중소설 속에 있다. 소설속 얘기가 사실에 근거하거나 혹은 있음직한 설정이더라도 때론 가슴을 찡!~울리는데, 이제껏 살아온 삶의 매 순간들을 건성으로 흘려보냈거나 아쉬움이 많을수록 더욱 그렇고…. ‘놓친 열차는 아름답다’는 대학시절 교양학부 교수의 말씀이 갈수록 절절하게 와 닿는다.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이 얽히고 살아가는 삶들을 무리없이 절묘하게 풀어가는 작가 솜씨에 ‘역시 프로는 틀리구나’ 감탄하면서 부분마다 공감하는 글귀들을 따로 추려 메모도 하는데 직접 글을 쓸 때나 대화를 할 때마다 필요한 글귀를 인용할 수가 있어 상당히 도움이 된다. ‘독서는 풍부한 사람을, 대화는 재치있는 사람을, 글 쓰는 것은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경험철학의 창시자인 베이컨의 말처럼 책은 사람을 완성시키는 밑거름이다. 두보의 시 ‘제백학사모옥(題柏學士茅屋)’에 나오는 ‘남아수독 오거서(男兒須讀 五車書)’ 즉, ‘남자라면 평생동안 모름지기 다섯수레 분량만큼의 방대한 책을 읽어야 한다’란 말이나, 안중근 의사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 안에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 굳이 거창한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책 속에는 인생의 수많은 지혜와 경험이 담겨져 있다. ‘독서백편 의자현(讀書百遍 意自見)’ 즉, ‘책을 백 번 읽으면 그 뜻이 스스로 보인다’는 뜻인데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 깨달음과 경험을 하나하나씩 배워 나가지만 더욱 현명한 사람은 타인의 삶에서 깨달음과 경험까지 배워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로 바로 책속에 다양한 인생 길이 있기에 그것을 통해 삶 속의 시행착오나 좌절을 피할 수 있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대충 책장을 넘기지만, 현명한 사람은 공(功)들여서 읽는다. 그들은 단 한 번밖에 읽지 못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독일소설가 ’장 파울‘의 말처럼 공들여 읽는 책 한 권처럼 인생도 매 순간을 최선을 다한다면 가치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어느덧 9월이다. 산이 높아보이고 말(馬)이 살찐다는 풍요의 계절인 가을, 퇴근길에 서점에 들려 책 한 권 사서 마음에 넉넉함을 담아보자. 유승호 파주 금촌성심의원 원장

나눔 문화

몇 년 전에 경기도 공동모금회 지원으로 미국의 LA 공동모금회를 방문한 적이 있다. 경기도와 인구는 비슷한데 이웃돕기 모금액은 무려 100배가 넘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함께 방문했던 모든 분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렇게 모금된 돈은 저소득층에 사용될 뿐만 아니라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구축하고, 시민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하는데도 사용되고 있었다. 사회복지는 정부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렇게 국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 저력이 위대한 미국을 만드는 초석이 되었고, 사회복지 선진국이 되는 지름길이었으며,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의 원천이 아닐까? 우리나라도 콩 한 톨도 나누어 먹는다는 옛말이 있듯이 넉넉하고 푸근한 인심으로 마을 공동체를 일구어왔지만, 갑자기 산업화, 도시화, 핵가족화 되면서 새로운 환경적 변화에 전통적 나눔 문화가 접목되지 못하고 표류하더니 급기야 계층간의 갈등과 세대간의 단절현상으로 사회를 각박하게 하고 있음은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는 시민들의 사회복지 욕구가 증대하고, 각종 시민단체가 목소리를 내면서 자원봉사자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나눔 문화가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음은 퍽 다행한 일이다. 나눔은 세상사 무엇이던, 어떤 상황에서건 나눌 수 있지만 크게 대별하면 마음 나눔, 물질 나눔, 문화 나눔 정도이겠다. 우리의 마음은 샘물과 같아서 퍼내면 퍼낼수록 고이게 마련이니 따뜻한 마음, 거룩한 마음, 행복한 마음 등 긍정적 마음을 이웃과 나누고, 내가 가진 작은 것-금전이든, 육체든- 소외된 이웃에게 다가가 함께 어울리는 것이 물질 나눔이고, 문화 나눔은 영화, 연극, 콘서트 등 문화적 각종 행사를 어려운 이웃에게 관람권을 제공함으로써 문화소외를 해소하는 또 하나의 나눔 방식이다. 분명 나눔은 미래의 행복을 예치하는 무형의 예금통장이다.

새터민에 대한 맞춤형 정착지원서비스의 필요

최근 몇 년 새 북한을 이탈하여 남한으로 입국한 새터민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작년말까지 국내에 입국한 새터민의 수는 모두 1만2천248명에 이르며, 2007년 한 해 동안 전년 대비 44.7%나 증가한 2천544명이 입국했다고 한다. 최근에 입국하는 새터민은 과거 식량을 구하기 위한 단순 생존형 탈북이기 보다는 좀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한 이주민 성격으로 변하고 있다. 가족동반이 많고, 여성, 아동 및 장년층의 비율도 증가하는 등 새터민의 구성이 다양화되고 있다. 이러한 새터민의 구성변화에 맞추어 이들을 위한 정책서비스의 변화가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그런데 중앙정부(통일부) 주도하에 추진되고 있는 새터민 정착지원 서비스는 그만큼 다양화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경기도는 서울 다음으로 많은 새터민이 정착하는 지역으로, 전체 새터민 중 23.4%(2천939명)가 살고 있다. 그런데 본원에서 새터민 연구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경기도 정착 새터민의 실업률 통계자료조차 썩 정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2008년 3월 현재 전국 및 경기도의 실업률은 3.4%인데, 같은 기간 경기지방경찰청이 집계한 경기도 새터민의 실업률은 53.7%로 그 비율이 15배나 높다. 또 북한인권정보센터에서 전국 새터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실업률은 22.9%이다. 수치가 다르긴 하지만 이들을 종합해본다면 새터민의 취업욕구는 상당히 높으나 실제로 취업은 잘 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취업이 어려운 데는 인적자원이 부족하거나 남한사회에의 적응이 쉽지 않는 등 여러 요인이 있겠으나, 일반인의 새터민에 대한 접촉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정확한 자료없이 다양화되고 있는 새터민을 위한 맞춤형 정착지원정책을 개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며칠 전 경기도2청에서 새터민 취업지원을 위해 새터민을 상담인력으로 특별채용하고 도 공공기관에 새터민 채용을 적극 권장한다는 발표는 새터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 같다. 통일부가 새터민 관련 업무의 지방이양 정책방향을 갖고 있으므로 경기도에서 먼저 관심을 갖고 지원체계를 확립하는 것이 시급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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