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근무하는 학교에는 모두가 즐겨 찾는 예닐곱 평 쯤 되는 야생화 화단이 있다. 필자가 학교에 오기 전부터 야생화를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그때그때 한 두 포기씩 얻거나 사기도 하고, 산이나 들에서 채취해다 심은 것들이 해가 가면서 번지고 새로운 씨앗들이 날아와 자리를 잡기도 해서 이루어진 것이라 단정한 맛은 없지만 오히려 자연 그대로의 풀밭처럼 마음이 편하고 정이 간다. 이 꽃밭에는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이쪽 저쪽에서 쉼 없이 꽃이 피고 진다. 제비꽃, 양지꽃, 봄맞이 꽃, 족두리꽃 등 땅에 달라붙듯이 피어난 작은 꽃들에서부터 제법 우아한 모습을 자랑하는 둥글레꽃, 은방울꽃, 매발톱에 이르기까지 봄꽃들이 한바탕 자리를 차지하다 보면 그들 사이에서 삐쭉이 고개를 내밀다 어느 순간 키가 훌쩍 커진 여름 꽃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옥잠화, 원추리, 솔나리, 하늘나리, 노루오줌, 금계국…. 여름 꽃과 진초록의 잎들이 더욱 무성해지는가 싶으면 어느새 그 사이사이에서 키가 좀 더 큰 부처꽃, 방아풀, 취꽃, 마타리, 쑥부쟁이, 감국들이 고개를 내밀고 꽃망울을 달기 시작한다. 꽃들은 아주 사이가 먼 다른 계절의 꽃들과도 사이좋게 함께 자라기도 하고, 어느 사이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자취를 감추어 버리기도 한다. 좀 더 오래 자리를 차지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고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고 나면 스스로 시들어 씨앗과 함께 땅으로 돌아간다. 그러면서도 다음 해가 되면 또 어김없이 그 빈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다. 꽃들은 제 온 힘을 다해 줄기를 뻗고 꽃을 피우지만 남보다 더 일찍 피려고 다투거나 조바심을 내지 않는다. 봄에 피는 꽃들은 그냥 봄에, 여름 꽃은 그냥 여름에 필 뿐 좀 더 일찍 계절을 당겨 피려 하지 않는다. 또 다른 꽃보다 더 예쁜 빛깔의 꽃을 피우기 위해 제 색깔을 버리지도 않는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저마다 꽃을 피우고 제 분신을 만들어 퍼뜨리고 싶어한다. 어떤 종들은 그 강한 욕망을 제 몸 밖으로 쏟아 내어 다른 것들을 해치기도 하지만 꽃들은 그 욕망을 작은 씨앗 속에 단단하게 갈무리하였다가 삭힌다. 나는 이 풀꽃들을 보면서 우리 학생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제각기의 꽃을 활짝 피워주기를 빌곤 한다. 강현재 구성고등학교 교장
오피니언
강현재 구성고등학교 교장
2008-07-07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