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과 농축수산물

추석 선물과 농축수산물¶/서정석 경기농협본부 부본부장¶¶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코앞이다. 추석 때가 되면 농사 일도 거의 끝나 가는 무렵이며 황금빛 들판과 풍성한 오곡백과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한다. 옛부터 추석에는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 햇곡식으로 빚은 떡과 햇과일로 차례를 지내고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며 정을 돈독히 했다. 해서 ‘1년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속담이 생긴 듯 싶다. 이처럼 즐거운 명절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겐 고민을 안겨 준다. 바로 명절이 선물을 해야 하는 빌미가 되기 때문이다. 대목을 앞둔 생산 및 유통업체들은 물량 확보 등에 비상이 걸리고, 선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얼마나 들여서 구입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된다. 올 추석엔 공산품 보다는 농산물을 확보해서 판매하고 구매하려는 사람들의 고민이 더 클 것 같다. 예년 보다 이른 추석으로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최근 농협유통의 추석 선물에 대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87%가 선물세트 구매 계획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구매 경향은 고가의 선물세트보다는 과일과 건강식품 세트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경기를 체감하는 가계경제의 단면인 것이다. 그러나 과일의 경우도 올 추석엔 질 좋고 가격이 저렴한 햇과일이 풍족하게 공급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농축수산물 생산자와 유통업체에게는 소비자들의 얇은 지갑을 감안하여 품위있는 소포장 선물 세트를 예년보다는 많이 출시할 것을 권장하고 싶다. 가격대가 부담스럽지 않은 정이 담긴 선물이야말로 진정한 선물임을 홍보하면서, 그리고 소비자에게는 농축수산물 직거래장터를 적극 권장하고 싶다. 추석이 임박하면 농협·수협을 비롯한 많은 유통업체에서 직거래장터를 개설한다. 이 장터를 활용하면 신선하고 질 좋은 농축수산물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많은 어려움이 산적해 있는 농어업을 생각할 때, 농축수산물 애용이 긴요하다. 소비자는 농어업인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농어업인과 유통업체는 소비자를 배려하는 마음으로 추석시장을 활기차고 뜨겁게 달구는 것 또한 상생의 길이요, 국가경제의 균형발전을 도모하는 또 하나의 길이라 믿는다. 서정석 농협경기지역본부 부본부장

자식 사랑

이따금 동물들의 생태를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야간의 활동상까지도 추적해 영상으로 담아내는 기술과 끈기에 감탄하면서 카메라의 시선을 따르다 보면 동물들이 살아가는 의외의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특히 동물들마다 특색이 있지만 어린 새끼를 길러서 독립을 시키기까지의 과정에서 어미가 기울이는 정성과 주도면밀함에 감명을 받을 때가 많다. 동물들은 새끼가 아주 어릴 때까지는 먹이를 구해다 새끼가 먹기 좋도록 만들어 직접 먹여주지만 어느 정도 자란 다음에는 스스로 먹도록 하고 더 자라면 먹이를 스스로 구해 먹는 방법을 다양한 방법으로 장기간 훈련을 시킨다. 새끼는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마침내 어미 곁을 떠나 독립생활을 하게 된다. 사람이 자식을 기르는 과정도 이와 다를 바 없다. 그 양육기간이 보다 길고 많은 사람들의 손을 동원해 조직적인 교육을 시킨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를까.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기르는 정성이 더하다 하기 어렵고 가르치는 근본 목적이 다르다 하기도 어려울 듯하다. 다만 인간이라는 종이 생활하는 방식 즉 사회라는 조직 속에서 좀더 복잡하고 다양한 양태의 삶을 살아가는 특성 때문에 가르치는 방식이나 내용에 차이가 있을 뿐 살아가야 할 환경에 적응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가르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자부심에서 배태된 자식 사랑의 사명감 때문일까.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자식들에게 스스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가능하면 오래오래 먹이를 먹여주려 하고, 사회라는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제 몸을 귀하게 여기는 태도를 은연중에 길러주는 경향이 두드러져 가는 듯하다. 이런 풍조는 학교 교육에 대해서도 은근한 압력으로 작용해 오기도 한다. 학생 개인에 대한 걱정과 더불어 이 사회가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걱정스러울 때가 많다. 몇 년 전 영종도에서 인천 연안부두까지 철선을 타고 올 때였다. 뱃전에 선 사람들은 신이 나서 새우깡을 던져주고 갈매기들은 그것을 받아먹느라고 필사적으로 날갯짓을 하며 떼를 지어 배를 에워싸다시피 하고 따라오는 것이었다. 갈매기들은 더 이상 야성의 새가 아닌 듯했다. 사람의 손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재롱 피우는 갈매기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먹먹해졌다.

공익성에 관하여

모처럼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온 국토를 가로질러 산지사방으로 이어진 도로의 편리함에 감사한다. 이런 시대에 태어나서 삼천리 길을 단 며칠 만에 돌아볼 수 있는 행복에 감격스럽다. 나 혼자 힘으로 그 구경을 하러 다니자고 했으면 얼마나 위험하고 힘든 평생의 역정이 되었을 것인가. 역시 인간끼리 모여 힘을 합하는 것이 얼마나 삶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하는 일인가 말이다. 인간세상 만세! 그러나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이런 상쾌함은 좀처럼 오래 가질 않는다. 잘 뚫리던 도로가 갑자기 막히는가 싶더니 급기야 끝 간 데를 모르게 늘어선 차량행렬이 도무지 움직일 줄을 모른다. 뜨겁게 쏟아지는 삼복의 햇볕에 프라이팬처럼 달아오른 자동차 속은 에어컨의 냉기로 감당이 되지를 않는다. 자동차의 엔진 냉각기능에도 탈이 나지 않을까 싶고, 얼마 남지 않은 연료 게이지의 눈금에도 빠지직 속이 타들어 가더니 누구에게랄 것 없이 분통이 터진다. 이거 아니잖아! 고속도로 좋을 게 없네! 스위스에서 있었던 얘기다. 차량 통행 속도가 늦어져서 터널과 도로 폭을 늘려야 하겠다는 집행부측과 도로를 아무리 늘려봤자 그러한 편익의 제공은 또 다시 차량 수요의 증가라는 악순환을 계속시킬 것이므로 대중운송 수단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도로 증설을 자제해야 한다는 일부 의원들의 주장이 대립했던 적이 있다. 독일의 한 작은 도시에서는 도심에 공영 주차공간을 늘려달라는 주민들의 압박에 불구하고 시장이 거꾸로 도심 주차공간을 없애버렸다. 잠깐 난리가 나기야 했었지만 그 도시는 도심에서는 승용차를 볼 수 없는 쾌적한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이다. 과연 어떤 것이 공익적으로 영원한 정답이었을까. 공익이라는 것은 판단하기 어려운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끝없는 선택의 문제이다. 공익의 범주 속에는 다양한 인생이라고 하는 거의 무한대의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어떤 개인이나 일부 집단의 밀어붙이기가 허용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공익적 결정을 위해서는 ‘룰’이 중요해진다. 요즘 우리나라 유수의 방송매체들이 공익 논쟁에 휩싸여 있다. 서로가 제 고집만이 공익적이라고 하니 보는 사람으로서 민망한 일이다. 이 사회에 ‘룰’의 권위가 깨어졌다는 이야기이어서 서글퍼진다. 올림픽 핸드볼 심판들도 아니고 제발들 ‘룰’ 좀 지켜라. 하석용 인천 시민회의 의장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

텃밭을 가꾸는 사람들¶/방광업 경기도시공사 경영관리본부장¶¶아침에 출근 하면 늘 사무실 창문 너머를 바라본다. 직장이 도심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는데도 인근에 큰 공터가 있어 앞이 훤하여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지난 이른 봄이었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이 하나둘씩 공지 안을 드나들었다. 아마도 풀들이 나 있고 간혹 봄나물들이 자라서 나물을 캐나보다 했다. 어느 날 자세히 보니 공지가 군데군데 따비밭 모양으로 맨흙들이 보이고 며칠이 지나 파란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이 옛 시골에서 살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텃밭을 만들고 푸성귀를 가꾸는 것 일게다. 그들은 계절별로 고추, 콩, 옥수수 등을 심었다. 어느덧 고추가 붉게 물들고 옥수수가 그들의 키보다 커 아이 업은 아낙네의 모습이 되었다. 요사이 늦여름의 작열하는 뙤약볕은 곡식들을 무르익고 살찌우리라. 도심속의 텃밭, 그것은 자연 속에 생명을 키우며 메마른 세상에 사람 사는 정취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텃밭의 생명들로부터 자연의 법칙과 잃어버린 삶의 진실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씨앗을 심고 거두는 적기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 일찍 씨를 뿌려도 또 늦게 거두어도 안되며 모든게 다 때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중요한 자연의 섭리를 망각하고 왜 늘 바쁘게 무엇엔가 쫓기며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 결과 우리가 진정으로 얻은 것은 무엇일까. 콩 심은 데 콩이 나고 뿌린대로 거둔다는 사실이다. 씨앗을 뿌리지도 않고 수확을 꿈꾸는 사람들, 씨앗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잊고 사는 사람들은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특히 국가와 한 지역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 기업의 CEO,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말과 행동을 달리하고 있지는 않은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우리 모두 진실한 마음을 바탕으로 삶의 기본질서를 바로 세워 선진미래사회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텃밭은 우리에게 인간중심의 이기적이고 경쟁이 아닌 자연중심의 공존하는 사고가 중요함을 가르쳐 준다. 텃밭에서 자라는 모든 농작물들은 흙과 거름, 바람과 물과 햇빛 그리고 미생물 등이 아니면 살지 못한다. 경쟁의 삶을 버리고 공존의 삶을 찾아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는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함을 말이다. 나는 오늘 아침도 창문 넘어 텃밭을 바라본다. 아침 햇살이 텃밭 옆 바람결에 흔들리는 가로수 잎 사이를 비추며 어디선가 매미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방광업 경기도시공사 경영관리본부장

전문적 특별 교육

전문적 특별 교육¶/신현옥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장¶¶전문적 특별교육은 최고의 학부를 나오거나 지식인만이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구두를 아주 잘 닦는다든지, 김치를 맛깔스럽게 담그는 일은 생활 속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며 경험되어지는 일입니다. 생활 속에서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그것이 소중하고 또한 매우 귀한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얻어진 귀중한 것은 특별한 전문 교육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주부도 가정에서의 일만큼 최고의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한 모든 것은 전문가로서 훌륭한 특별교육의 근거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삶에서의 특별한 교육은 이론보다도 실질적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이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아닐까요. 생활 속에서 자신만이 가지는 특별한 것은 매우 귀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의 경험은 특별한 것이 되어서 전문성을 가지게 하고 또한 새로운 희망을 선물하기도 합니다. 그런 특별교육은 희망을 선물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어르신들을 상대로 미술치료를 하는 치매미술치료협회의 일이나 영실버 아트센터의 일은 어르신을 돌보며 그림을 그리는 일로, 언뜻 보기에는 단순한 듯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어르신들과 함께 하는 많은 시간과 경험과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어르신들의 모습을 그대로 그림 속에 보여주고, 어르신 스스로 새롭게 나아가서 도전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어르신 스스로 의존하던 생활을 점차 자생적 생활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른 일입니다. 그런 면에서 지도하는 치료사의 경험적 전문성 못지 않게 함께 참여하는 어르신들의 삶의 문화 역시 스스로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삶은 긴 여정과 같은 것이기에 보다 다양하고 넓은 자신의 삶을 이끌어 가려는 노력이 역시 함께 필요합니다. 그 안에서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이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 안에서는 우리만이 경험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 안에서 오래도록 곰삭은 것들이 진실된 것이 되어서 우리를 새롭게 이끌어 가는 원동력이 되게 하기도 합니다. 맛보다도 멋이 담긴 삶을 이끌어내기를 바랍니다. 오랜 세월이 묻어난 멋 안에서 우리는 진정한 특별함을 다시금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신현옥 치매미술치료협회 회장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 ¶/유승호 한국의사회 고문, 금촌성심의원 원장¶¶국어사전에 있는 ‘시기와 질투’의 정의를 보면 시기(猜忌)는 시샘하여 미워함, 질투(嫉妬·jealousy)는 남을 부러워 하는 감정이나 그것이 고양된 격렬한 증오나 적의라고 돼 있다. 두 단어가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지만, 시기는 자신의 마음 속 주관적인 상태를 가리키는데 질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상대방이 느낄 수 있는 객관적인 감정의 표출상태를 가리킨다. 분노(憤怒)하고 미워하면서 화(禍)를 내는 것도 파괴력이 있고 커다란 문제를 야기하겠지만, 대상에 대한 은근하고 간접적인 시기와 질투도 이들에 못지않은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다. ‘상대에 대해 분노하는 것도 굉장한 잔인함을 지니며 거대한 물결처럼 휩쓸고 지나가지만, 시기하는 자(者) 앞에서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성경 속의 지혜라는 ‘잠언’의 한 구절이다. 무릇 인간이 복잡하고 치열한 세속의 삶을 살아가면서 시기와 질투가 전혀 없을 수는 없다. 오히려 시기와 질투가 조금 있다면 그것은 생활에 촉매적 자극을 주는 활력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나도 저렇게 해야 되겠구나’라든지 ‘나도 저런 것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는 등 마음 속에 이런 노력과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더 커지면 마치 불과 같아서 조그만 불쏘시개가 불꽃이 되고, 불꽃이 화염이 되고, 화염이 내 집뿐 아니라 남의 집까지 활활 태워 잿더미로 만드는 엄청난 문제로까지 발전한다. ‘시기심이란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실패하기를 바라는 소모적 욕망’이란 격언이 있듯 이러한 시기와 질투의 깊숙한 이면 속에는 자기자신에 대한 열등감이 잠재되어 있다. 상대방과 비교해서 느끼는 상대적 열등감과 원래 자신은 남보다 못하다는 절대적 열등감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가 더 커지는 것 같으면 먼저 자기 자신을 되돌아 보고 반성해야 한다. 시기와 질투가 지나쳐서 도를 넘게 되면 인간이 갖고 있는 생산적인 동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더 나아가 이것이 파괴당하고 무너지게 되면 마지막에는 자신의 파멸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시기와 질투는 적당하게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어느 순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은 한 번 죽는 것이 아니라 경쟁자가 갈채를 받을 때마다 죽는다’라는 중세 수도자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처럼 시기와 질투를 적당히 조절하는 현명함을 갖자.

수도권 통합 바람이 분다

수도권 통합 바람이 분다 ¶/이인석 (인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수도권 단체장들이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협력의 필요성을 주창하고 나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얼마 전 인천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과 인천, 경기가 연결된 경인 메갈로폴리스(대도시권) 건설을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보다 훨씬 앞서 김문수 경기지사는 수도권 통합을 제창한 바 있다. 경제통합을 염두에 둔 서울시장의 ‘대도시권론’이나 행정 통합에 역점을 둔 경기지사의 ‘대수도론’은 경제 글로벌화에 발맞춰 수도권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 단체장들의 수도권 통합 주장은 대도시권을 건설해 도시의 경쟁력을 배가시키려는 21세기 도시 발전의 새로운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지난 90년대부터 저마다 대도시권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2001년부터 우리나라 수도권과 사정이 비슷한 베이징·텐진·허베이 지역의 경제 일체화를 위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도시가 국제경쟁의 무대가 되면서 더 이상 대도시 하나에 머물러 있어서는 국가나 도시의 발전은 어렵게 되었기 때문이다. 수도권에서도 지역 내 경제협력에 눈을 떠야 할 때가 왔다. 글로벌 시티를 지향하는 서울은 도시 공간의 한계로 주변 지역으로부터의 협력이 절실한 실정이며, 인천은 자체의 주력산업이 없이 제조공장 역할만 하다보니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쉽질 않다. 한편 경기도는 서울과 인천에 의해 남북으로 나뉘어 있어 균형적인 지역발전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세 광역자치단체는 제각각 공간적으로나 산업구조 면에서 주변 지역의 지원과 협력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수도권 통합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역보호주의의 거대한 장벽이 가로놓여 있다. 이를 넘으려면 서울은 자신들이 누리는 혜택의 일부를 양보해야 하고, 경기나 인천은 중앙정부의 지원으로부터 소외되었다는 패배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아가 수도권 통합은 국민 전체의 이익에도 부합되도록 전국적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정치가의 비전은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다. 그러나 과학성과 현실성이 결여된 비전은 관념 속에서만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우선 단체장들이 머리를 맞대고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 저력은 의지력?

우리민족의 저력은 의지력?¶/이재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안성지부장¶¶어떻게 이런 일이? 레나테 홍여사가 47년만에 남편 홍옥근씨와의 포옹하는 장면은 슬픔과 희망을 교차시키며 오랜 그리움과 기다림의 결실을 맺었다. 47년간을 남편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가능성을 열고 모든 방법을 동원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그녀가 한 일은 실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집념과 의지의 승리였다. 해방과 함께 다가온 분단의 슬픔이 이토록 저리고 아플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번의 만남은 아직도 상봉을 기다리는 많은 노년의 이산가족에게도 가느다란 희망의 빛줄기를 이어주는 감격적인 사건이었다. 10·4 정상회담의 결과로 우리는 기차를 타고 평양을 거쳐 압록강을 건너 북경올림픽을 응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지만 그 꿈은 실현되지 않았다. ‘비핵·개방·3000’ 정책을 내세우던 현 정부는 ‘상생·공영의 대북정책’으로 변화를 모색하며 대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지만 한미 정상회담에서 매우 민감한 북한인권에 대한 성명을 다루면서도 기술적으로 접근을 하고 있으며, 6자회담에서는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부분을 분명히 하는등 강온 양면정책을 전개하면서 대화와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침탈에도 불구하고 반만년의 역사를 이어온 우리 민족의 저력은 무엇인가. 침략과 억압에 굴하지 않고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역경을 이겨낸 우리 민족에게는 보이지 않는 힘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남과 북이 서로 상생하고 공영의 길로 나서기 위해서는 일방통행이 있을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보다 전향적으로 북한과 대화의 채널을 열고 신뢰를 쌓아가려는 일관된 노력이 필요하며, 이에 북한도 ‘통미봉남’ 정책을 포기하고 대화의 진정성을 보여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남한 뿐만아니라 북한도 변화되어야 할 부분은 바꾸어 주어야 할 때가 도래한 것이다. 남북은 서로 대치를 하면서 힘겨루기를 할 때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대승차원에서 통일시대를 대비해야만 한다. 독일인이지만 레나테 홍이 보여준 의지력은 우리 민족의 저력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며 그것이 남북을 이어주는 통일의 맥이다. 이재용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안성지부장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은¶중소기업진흥공단 경기지역본부장 홍용술(풀네임 사용을 원함)¶¶베이징에서 날아오는 기분 좋은 소식에 축처진 어깨가 한껏 부풀어 오른다. 어둡고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실오라기라도 붙잡고 싶어한다. 사실 요즘같이 생활이 어렵고 애들키우기 힘들 때에 대중은 영웅의 이야기를 그리워한다. 대리만족일 수 있고 내일의 목표점일 수도 있고 막연한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다. 많은 영웅들이 지나갔다. 한니발, 알렉산더, 케사르, 나폴레옹! 우리나라로 들어오면 광개토대왕과 세종대왕에 신돌석까지!¶ 시대가 영웅을 만들어내기도 하고, 영웅이 시대를 이끌어 간다고 한다. 숱한 영웅들이 우리 곁을 지나갔고 지금도 영웅은 만들어지고 있다. 어려운 시기에는 전쟁과 정치영웅이 등장하는 법이고, 평화시에는 경제와 스포츠의 영웅이 시대를 풍미하고 있는 법이다. 사라지고 떠오르는 많은 영웅들 중에 우리는 박태환과 최민호를 새로운 영웅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아시다시피 영웅은 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영웅이야기가 더욱 재미있는 법이다. 박태환과 최민호는 여러번의 쓰디쓴 실패를 맛본다. 도저히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시련도 다가온다. 하지만 그들은 강했다. 한계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와 가족의 지성도 그들을 도운다. 우리는 영웅이야기를 두고 두고 돌려가며 나눈다. 지겹지가 않다. 아이들은 박태환과 최민호를 우상으로 여기고 박태환산업과 최민호산업이 형성된다. 8월의 이야기는 그렇게 재밌게 전개된다. 경제가 어렵고 어느때 보다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기업도 영웅의 전설을 가지고 있다. 정주영과 빌게이츠가 그렇고 스티븐잡스와 포드가의 신화가 또 그렇다. 우리는 신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가. 어려운 창업시기를 지나 기반이 잡히는 가 싶으면 거래처 어음이 부도나서 휘청대고 원자재가격의 폭등으로 기우뚱대기도 한다. 창업 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 까지는 바늘구멍 통과보다 어렵다지 않은가! 그래도 우리는 영웅의 도래를 꿈꾼다. 영웅의 탄생에는 주변의 힘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혼자 갈 수 없는 법이다. 빌게이츠는 창조적 자본주의를 설파하였다. 기업의 성장이 사회와 무관할 수 없고 따라서 이윤의 일부분을 사회를 위해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다 아는 내용이지만 빌 게이츠가 얘기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빌게이츠가 영웅인가? 우리도 있다. 네이버의 최휘영과 다음의 석종훈이 그렇다. 듣고 또 들어도 지겹지 않고 읽고 또 읽어도 싫증나지 않는 경제의 영웅담을 우리는 학수고대한다.

빈곤 퇴치법

빈곤 퇴치법 ¶경기복지미래재단 대표이사 김경한¶¶‘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옛 속담이 있듯이 빈곤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사회의 주요 공공정책의 핵심과제가 되고 있다. 2만불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나라도 빈곤문제의 해결에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사회의 구성원 대다수가 누리는 생활수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풍요속의 빈곤’이니 ‘상대적 박탈감’으로 사회적 불평등을 호소하고 있다. 빈곤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또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분명 단군 이래 5천년의 역사 속에서 가장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사회는 경제적 불평등 뿐만 아니라 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한 갈등이 봇물 터지듯 거리를 누비고 있다. 예를 들면 부모로부터 받은 재산 상속의 차별, 성적 차별, 가정교육 차별,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차별 등 출발선상에서의 차별이 상대적 빈곤을 낳으면서 양극화 문제로 골이 깊어가고 있다. 빈곤은 단순히 소득 빈곤만이 아니라 이렇게 선택권과 기회의 박탈까지를 의미하기 때문에 더욱 복잡해진다.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빈곤과의 투쟁의 역사라고 하더니, 그렇다면 과연 빈곤의 문제는 인간세상에서는 영구미결의 숙명적인 과제인가? 이제 한국사회는 사회보장제도로 총체적인 복지정책을 통하여 절대적인 빈곤을 실질적으로 줄이고 불평등을 감소시킬 수 있는 정책과 전략을 필요로 하고 있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추구와 부의 공평한 분배, 나눔 문화의 활성화, 취약계층을 위한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강화해가는 정책의 도입이 절실히 요망된다. 이와 같은 사업은 정부에게만 의존하고 요구하지 말고, 사회복지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가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것이다. 경기복지미래재단이 현재 ‘2009년도 복지시책추진을 위한 도민지정제안’ 공모를 실시중이다. 다 같이 지혜를 모으자. 사회 취약 계층을 위한 복지정책의 시행만이 빈곤과 불평등을 해소하는 길이다.

뿔난 엄마의 가출

뿔난 엄마의 가출¶박숙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장)¶¶요즈음 나이든 여성들 사이에 드라마 ‘뿔난 엄마의 가출’이 화제다. 늘 가족들 보살피기에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었던 드라마속 주인공이 자신의 생일조차 기억해주지 못한 가족들에 대해 ‘1년간 가출(휴가)’이라는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엄마는 그저 그렇게 항상 그 자리에서 희생적인 삶을 사는 존재라는 인식에 대해 가족들로부터 생일조차 기억되지 못한 엄마가 드디어 뿔이 났다는 것이다. 충분히 뿔이 날만한 사건인 것 같다. 그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뿔난 엄마의 가출에 대한 반응이 같은 여성인데도 전업주부와 취업여성 간에 상당히 다르다는 점이다. 대체적으로 전업주부들은 찬성인데 반해 취업여성들은 반대 의견이 더 많다고 한다. 가사노동이란 것이 해도해도 끝이 없고 성과도 드러나지 않으면서 일상적으로 반복되는데 전업주부는 그 일차적 책임자로 항상 얽매여 있다가 1년간 장기휴가(?)를 얻었다. 그것도 시아버지가 허가한 휴가를 당당히 얻어 가사노동과 엄마의 역할에서 해방된 드라마 속 주인공을 통해 전업주부들은 대리만족을 얻고 있는 것 같다. 반면에 취업여성들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결코 가사노동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엄마의 역할은 취업과는 별개로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장기휴가를 받은 뿔난 엄마와 비교해 볼 때 무언가 불공정한 느낌이 들 수도 있다. 물론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출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이 가능하겠지만, 보통 엄마들에게는 그림의 떡일 것 같다. 게다가, ‘뿔난 엄마’의 행복을 위해 졸지에 대가족 살림을 다 떠맡게 된 며느리 역시 엄마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과연 바람직한 선택인지도 생각해 볼 문제다. 대한민국의 엄마들이 더 많이 뿔나기 전에 좋은 대안을 모색해 봐야 함을 이 드라마는 시사하고 있다. 가사노동을 평상시에도 가족원들이 나누어서 한다면 엄마가 뿔날 일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또 엄마는 항상 집을 지키면서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컴퓨터도 배우고 영화도 보며 자신의 세계를 가꾸어 가면서 가정도 이끌어 나가는 존재로 인식되어야 하지 않을까? 행복한 가정은 누구 한사람의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족원 모두의 노력과 역할분담으로 가능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숙자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장

수원역 후문 필히 설치해야

수원역 주변은 교통체증과 혼잡한 거리로 시민들이 늘 시달리고 있는 지역이다. 시당국에서도 여러 가지 교통개선 방안을 마련하면서 노력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교통량과 인파의 흐름을 해소하기에는 구조적으로 역부족이고 한계가 있다. 그나마 서부 우회도로 개통으로 통과 차량의 흐름은 좋아졌지만 수원역 주변은 여전히 복잡하다. 수원시 도로교통과 자료에 의하면 서수원IC 방향 42번도로, 고색로 방향 43번 도로에서 수원으로 진·출입하는 일일 차량수가 각각 8만여대와 4만여대이다. 또한 1번국도로 수원역을 통과하는 차량 수는 7만3천여대에 이르며, 도청방향으로 진·출입하는 차량은 6만여대가 넘어 수원역 주변은 그야말로 교통대란이다. 우리나라는 근대 산업화를 통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룩해 왔다. 그 가운데서 철도의 역할은 큰 몫을 차지했다. 따라서 도심의 형성과 개발이 철도역을 중심으로 이뤄지기 시작했고, 철도역 앞쪽으로는 대부분 상업시설, 근린생활시설, 주거시설 등의 개발을 촉진하는 시설들이 들어섰으며, 뒤쪽으로는 석탄, 시멘트 등 물류시설과 가공공장 등 산업시설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다. 철도가 남북방향으로 길게 설치되면서 차단되어 있어 각 도시마다 동서간의 극심한 개발의 불균형을 이뤄 왔다. 수원도 마찬가지다. 때마침 수원역 뒤에 있는 KCC 공장이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업계획 등 지구단위계획을 수립할 때 반드시 수원역 후문을 설치해야 한다. 수원역 후문을 설치해 안산방향과 화성방향에서 수원역으로 진·출입하는 차량을 서부우회도로와 연결하여 분산시킴으로써 수원역 주변의 교통흐름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으며, 일일 50만여명의 유동인구도 후문으로 분산하게 되면 지금의 혼잡스러움의 해소에도 매우 큰 영향을 줄 것이라 확신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원역 후문을 설치하면 동서간의 균형있는 발전을 빠른 속도로 이끌어 낼 것이다. 후문에 광장과 공원을 만들고, KCC 공장부지 개발계획에 각종 시민 편의시설들을 포함시키며, 상업시설을 배치하면서 기존의 서부우회도로와 연결하는 환승교통망을 구축하면 서수원 개발과 발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할 것이다.

시급한 농촌노인복지 확대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 세월의 무상함을 탄식하는 말들이 있다. 일장춘몽(一場春夢)과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인생을 돌이켜 보면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이 빠르고 젊음 또한 한 순간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젊은사람이 행여 노인을 경시하는 태도라도 보이면 “이런 못된 놈,너는 안 늙을줄 아냐?”라는 꾸지람을 듣게 된다. 헌데 요즈음 세태를 보면 정말로 못된 놈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공짜 관광을 빙자해서 노인들에게 비싼 물건을 구매케 하는 놈, 어렵사리 모아 둔 폐지를 실은 리어카를 통째로 훔쳐 가는 놈, 치매가 있는 부모를 외진 곳에 두고 오는 놈 등등 자신은 노인이 안될 것으로 착각하는 별의 별 못된 놈이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최근 보건복지가족부가 65세 이상 노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불법·부당판매 행위로 인한 피해실태 조사에서 50%에 가까운 노인들이 피해를 경험했다고 한다. 국가적으로도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제연합(UN)은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1%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정하고 있는데 통계청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고령화사회로 진입했고 2020년에는 고령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제 노인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노인복지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는 대목이다. 특히 농촌지역의 고령화는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여 대부분의 농촌마을에서 60대가 이장을 맡고 70세가 넘는 분 중 상당수가 힘겨운 농업노동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도시지역에 비해 농촌지역의 노인문제가 심각한 것은 도시지역은 노인정, 노인전문의료시설, 자원봉사자 활동 등 노인복지 서비스를 비교적 용이하게 접할 수 있는 반면 농촌지역은 서비스 지원 체계가 미약하여 노인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농촌노인 복지를 위하여 국가와 지자체에서 관심을 높이고 있지만 아직은 미약한 편이고, 농촌노인과 밀착화되어 있는 농협에서 장수대학 운영, 건강진단서비스, 고령가구 가사도우미 지원, 복지시설 확대 등 다양한 노인 복지사업을 전개하고 있지만 민간단체로서의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정부의 대폭적인 예산 확대를 통한 체계적인 시책이 노인복지 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그것이 국가 선진화의 전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서정석 농협경기지역본부 부본부장

꽃 사진을 찍으면서

어쩌다 카메라를 들고 교정에 핀 꽃을 찾아다니노라면 누군가 보고서 의외란 듯 꽃 사진을 다 찍느냐고 하면서, 사진을 좀 보여 달란다. 휴일이나 일요일에 산이나 들을 돌아다니다 찍은 것들까지 보여주면 참 예쁘다고, 솜씨가 좋다고, 작품화 할 거냐고 묻는다. 그렇게까지 말하면, 태연한 척 그냥 좋아서 찍어보는 거라고, 배우는 중이라고 말하면서도 쑥스럽고 민망함에 가슴 속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 같다. 동무 따라 강남 가듯 얼떨결에 사진 강좌 몇 번 나가서 설명 듣고 함께 어울려 출사라는 것을 해보는 과정에서 조금씩 재미를 느끼게 되었었다. 처음에는 인물이나 풍경을 찍으면서 똑같은 대상을 어떤 각도에서 어떤 구도로 포착하는가에 따라 느낌이 확 달라지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제각기 다를 수밖에 없는 이치를 깨달은 듯 스스로 흐뭇해지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카메라의 각도를 의식하게 되고 화면에 담긴 연출가의 의도를 생각해 보게도 되었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꽃 사진에 흥미를 느끼고 이따금 혼자서도 산이나 들을 돌아다니다가 들꽃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렌즈를 통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사실 촬영했던 것이 사진으로 잘 나오면 좋기는 하지만 별로 집착하지는 않는다. 자연을 관찰하여 충실하게 기록해 두자는 의도나, 영상미를 구현하려는 욕심에서 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렌즈를 통해서 들여다보는 그 순간의 경이로움, 황홀감에 사로잡힐 뿐이다. 솜씨가 서툴어서도 그렇겠지만 사진으로 완성된 꽃들은 그런 느낌을 주지 못한다. 여태껏 관심을 갖지 않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또 맨눈으로 잘 포착되지 않던 것들이 카메라를 매개로 해서 나에게로 왔고, 그리하여 나의 눈과 마음이 더 환하게 열린 것 같은 그 느낌이 좋다. 아주 작은 꽃들을 보면서 그들도 갖출 것을 모두 갖추고, 그 작은 꽃잎, 꽃 술 하나하나가 그렇게 정교하게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모양이나 색깔, 매달린 자리가 모두 다르면서도 꽃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제각기 풍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때로는 숙연해지기도 한다. 감히 자연의 섭리를 깨달아서가 아니라, 한 때 장미의 조형성을 예찬한 시를 읽고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 장미이리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보려했던 허식과 오만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다. 요즈음은 어린 아이들을 보면서, 때로 청소년들을 보면서도 그 꽃들을 생각한다.

통계가 걱정이다

기상청이 연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도무지 간단없이 쏟아지는 집중호우에 손을 써볼 방도가 서질 않는 모습이다. 엄청난 예산을 들여 장만한 수퍼컴퓨터도 별 힘을 쓰지 못하는 것 같고, 예전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늘어난 기상정보의 양으로도 2~3일 후 하늘의 변덕을 따라잡기가 속수무책인 모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예측이 어려운 미래라는 시간은 위험하다. 예측할 수 없고 경험하지 않은 사건들은 통상 생명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생각하면 산다는 것이 통째로 미래라는 미지의 영역과의 끝나지 않는 전쟁이지 싶기도 하다. 인간들은 미래예측에 있어서도 집단적으로 대응한다. 혼자 힘으로는 어려우니 여럿이서 공동대응을 해 보자는 것이다. 긴 시간과 넓은 장소에 걸쳐서 발생하는 현상들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모아서 설거지를 하다보면 무언가 줄기가 잡히게 마련이고, 그 줄기만 잘 건지면 그걸 이용해서 미래라는 시간을 정복할 수도 있다는 계산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바로 통계라고 부른다. 그 결과로 법칙을 도출하고 때로는 진리를 발견했다고 과장하기도 한다. 일기예보의 과정도 이와 같고 무릇 학문을 한다는 것이 대체로 이러한 작업의 연장이라고 해서 크게 잘못이 없을 것이다. 통계의 부실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짓이다. 미래 예측함수의 구성이 망가질 테고, 결국 엉뚱한 예측의 결과가 우리의 미래를 위험 속에 빠뜨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통계가 신통치 않다는 지적이 끝이 없다. 언제나 국민의 느낌과 따로 노는 물가통계나 실업률 통계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환경평가의 통계항목은 OECD 평균의 1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심지어 나라 곳간의 통계가 마구 틀리는 판이다. 숫자가 좀 틀리는 건 그렇다 치고 요즘은 통계가 소설까지 쓰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다. 연일 발표되는 각종 경제유발효과와 일자리 창출효과는 도대체 어떤 통계로부터 나오는 것인지, 경인운하를 만들면 거기서 연간 30만명이 요트를 타고 놀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짐작이 되지 않아서다. 미래를 극복하는 수단은 정확한 통계이지 소설은 아니지 않은가 싶어 걱정이다.

중국의 새로운 도약과 우리현실

북경의 하늘 위로 용이 날아오르고 있다. 얼마 전 중국의 만리장성에서 올림픽 드래곤을 하늘높이 펼치는 행사가 있었다. 중국은 지금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중국은 문화혁명과 마오쩌둥 집권이후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고, 마오쩌둥이 죽고 덩샤오핑이 개방정책과 시장경제 정책을 도입한 이래 엄청난 경제성장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05년 10월 중국은 경제정책의 대수술을 통해 20여년간 경제개혁과 발전의 핵심이론으로 추진한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을 폐지하고 새로운 경제정책의 틀로 균부론(均富論)을 채택, 중국사회에 일고 있는 빈부격차와 사회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왔다. 더욱이 시장경제체제 전환, 행정관리 체제개혁 등 새로운 발전전략을 추진한 결과 중국은 지난 몇 년간 두 자릿수 이상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지속했고, 특히 올해는 지난 10년이래 가장 높은 11.6%의 경제성장률이 예상되고 있다. 이제 중국 수도권의 경쟁력은 용이 날개를 달았다고까지 한다. 아울러 중국은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역사적인 대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의 ‘인문, 과학기술, 녹색’이라는 세 가지 슬로건 가운데 특히 인문올림픽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춤추는 베이징’이 그들의 문화코드이다. 중국이 근대에 실패한 원인을 문약(文弱)에 기인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금 세계적인 인문부흥을 주도하겠다는 야심찬 기치를 내걸고 있지 않은가. 반면 최근 우리는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문제, 독도문제, 중국과의 동북공정 문제 그리고 러시아와의 한·소 수교관련 차관 문제 등 풀어야 할 숙제들이 우리의 앞을 가로막고 있다. 특히 국내외 경제가 악화일로의 위험신호를 나타내고 있는 이 시기에 지역균형발전을 추구한다는 명분으로 얼마전 정부가 발표한 ‘선 지역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를 내용으로 한 지역발전 정책은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지금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도시와 지방간의 대결구도 이어서는 안된다. 이제 세계 경제는 국가간의 경쟁력 있는 도시와 도시간의 경쟁시대이다. 또한 영국·프랑스 등 선진국들은 규제폐지가 대세이고, 더욱이 중국·싱가포르 등은 많은 인센티브를 주면서 기업 유치에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중국은 새로운 비약을 하려고 하는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방광업 경기도시공사 경영관리본부장

도시와 안식년

열병이 난 도시는 너무 뜨겁다. 도시와 사람은 이제 잠시 휴식 같은 안식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너무 뜨거워 이젠 많이 아파옵니다. 건강하지 않은 모습으로 멀어진 도시의 행복은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도시화 되고 바빠진 일상 속에서 우리는 안식년 같은 시골사람의 여유가 필요한 것 같다. 다음 시간을 위해서 휴식과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바쁜 일상 속에서 오히려 창의성은 더욱 요원한 것처럼, 풍성한 수확을 위해 이제 잠시의 휴식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에도 휴식과 여유가 필요하다. 바쁘게 살아온 자신의 삶에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그저 두서 없이 지난 시간이 자신을 바라볼 것이다. 공허한 시간을 떠나서, 꽉 찬 시간처럼 가득한 시간을 찾아 여유와 한가로움을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요. 특별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발 물러선 마음으로 조금은 느리게 세상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산책을 떠나듯 주변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주 느리고 아주 깊게 그 모두를 품에 담아 가지기 바랍니다. 그 안에 당신의 행복이 있습니다. 자신의 몸을 섬기십시오. 자신의 삶을 사랑하십시오. 삶의 순간 순간을 바라보고 느끼시기 바랍니다. 그런 휴식에서 새롭게 피어나는 당신만의 시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잊었던 친구에게도 전화를 해보십시오. 오랜만에 들려오는 친구의 음성에서 반가움과 과거의 향기를 맡아보시기 바랍니다. 그에게 정을 주고, 나의 소중함을 일깨우듯 향기를 느끼십시오. 그리고 돌아서서 자신의 미래를 꿈꾸십시오. 그 안에서 넘치는 마음이 당신을 새롭게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무심한 듯 잊었던 당신의 가족에게 손을 내밀어 보십시오. 언제나 그곳에서 당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지켜선 가족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해 보십시오. 그리고 마음을 주고, 아늑함과 평화로움을 느껴보십시오. 당신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은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 안에 넘치는 당신의 행복을 모두 찾아, 당신이 가지시기 바랍니다. 당신 안에는 언제나 행복이 가득합니다. /신현옥 치매미술치료협회장

살면서 곁에 있는 두친구

어떤 나라의 왕이 있었는데, 늦은 밤에 내관을 시켜 신하에게 입궐하라 명했다. 전갈을 받은 신하가 곰곰히 연유를 생각해 보니 공(功)보다는 화(禍)가 따를 것 같아서 혼자 입궐하려는 생각을 바꾸어 평소 친하게 지내는 두 친구한테 동행하기를 요청했다. 매우 절친한 친구는 부탁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거절하며 혼자서 입궐하라 하였고, 보통의 친한 친구는 궁궐 대문 앞까지만 동행할테니 궁 안에는 혼자서 들어가라 하였다. 이 일화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함께 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비유한 얘기인데, 즉 왕은 염라대왕을 비유적으로 뜻하고, 내관과 궁은 각각 저승사자와 저승을 가리키며 매우 친한 친구는 돈과 재물을, 보통의 친한 친구는 가족과 형제 또는 친지를 비유한다. 삶에선 언제나 돈과 재물, 가족이나 형제, 친지들과 함께 하지만 죽음 앞에서는 혼자이다. 특히 살면서 단 한 순간이라도 곁에 없으면 절실히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 돈과 재물인데 죽을 때 관속에 돈을 가득 채워넣을 수는 없듯이 결국 빈손으로 가는 것 또한 인생이다. 가족이나 형제 또는 친지는 일상생활에서 함께 호흡하며 희로애락을 같이 하는 관계인데 죽을 때 화장터나 매장지까지는 올 수 있지만 그후엔 잊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물질문명이 발달할수록 풍요로움과 편리함에 젖어 인간이 추구하는 욕구는 더욱 커지는데, 오직 재물과 물질만으로는 삶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없는 것 또한 인간의 속성이기에 외형적 풍요로움 보단 정신세계에서 내적인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게 진정한 행복일게다. 그리고 이러한 내면적인 인격을 고루 갖춘 사람을 가리켜 ‘성숙(成熟)한 사람’이라 말한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너 자신은 울었지만 주위사람들은 너의 탄생을 기뻐했단다. 내가 세상을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때 주위 사람들은 울었지만 너 자신은 기뻐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모 신학자이자 철학자의 한 마디가 새롭다. 살아가면서 돈과 재물에 쪼들리면 삶이 척박하겠지만 너무 많아도 자칫 인생이 고달프다. 따라서 과욕(過慾)에서 벗어나 적당히 자족할 수 있는 ‘중용(重用)’의 현명함이 필요하며, 다시한번 물질적 풍요로움보다 내면적인 삶의 의미와 가치에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자. 유승호 금촌성심의원 원장한국의사회 고문

수도권 규제 정책의 허상

수도권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정치권의 볼모가 되어 대기업 공장이나 대학의 신증설이 막혀 있고, 일반 기업도 공장총량제 때문에 마음대로 공장을 세울 수가 없다. 수도권을 억제해야 지방이 발전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논리를 이용하여 대선 때마다 정치인들은 비수도권의 표를 얻어내곤 했다. 그 결과 국토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양분되고, 이로 인해 부각된 경제 분단선을 사이에 두고 지역간 대립, 갈등이 증폭되어 왔다. 수도권 규제는 도시의 발전 법칙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도시는 2차 산업과 3차 산업의 밀집지역으로 집중과 확산이 거듭되면서 발전한다. 지난 반세기 수도권의 성장은 이러한 도시발전 법칙이 걸어 온 길이다. 공업도시였던 서울은 서비스업의 중심으로 변모하고, 대신 제조업은 경기·인천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지금은 수도권의 제조업 비중이 떨어지고, 생산지의 비수도권 이전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2006년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울산에 이어 충남과 전남이 각각 2위와 3위를 차지했다. 특히 철강산업이 몰려 있는 충남은 지난해 1인당 지역내총생산이 3만달러를 넘었다. 경기와 인천은 평균보다 낮은 수준이다. 도시발전이나 지역간 경제격차의 법칙을 무시한 수도권 규제는 오히려 경제적 낭비, 지방주의와 분열주의를 조장할 뿐이다. 이미 지역간 상호 의존, 협력 관계는 존재하기 어렵고, 정부는 지도·조정 기능을 잃어 버렸다. 국익 보다는 지역 이익의 목소리가 큰 것도 사실이다. 분명히 수도권 규제 정책은 국가의 균형 발전보다 분열을 촉진시킨 면이 더 강하다. 김문수 경기지사는 수도권 규제를 망국적 정책이라며 연일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비판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수도권 규제를 풀겠다는 공약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비수도권에서 보면 호랑이로 보일지 모르지만, 글로벌 경제의 눈에 비친 수도권은 토끼에 불과하다. 밧줄을 풀어 수도권의 손발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 이것이 우리 경제가 글로벌 격랑을 헤쳐나갈 유일한 길이다. 이인석 인천상의 상근부회장

이순신 장군의 지혜

KBS 2TV ‘1박2일’이라는 오락프로그램에서 방영한 ‘백두산 특집’을 시청하면서 밀려오는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백두산의 천지에 오르면 왜 백두산을 ‘민족의 영산’이라 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가 있다. 백두산의 북쪽, 간도 땅에서 고구려의 용맹스런 기상과 독립을 위해 말 달리는 선구자들의 웅장한 기개를 느낄 수 있다. 그 곳에 일송정이 있고 광개토대왕비와 장군총 등 우리 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나 백두산에서 가면 백두산과 비룡폭포는 간데 없고 장백산과 장백폭포만 남아 있다. 그뿐 아니라 백두산에서는 태극기를 펼칠 수도, 애국가를 부를 수도 없다니…. 을사조약 이후 외교권을 강탈당한 채 이루어진 일본과 청나라간에 맺어진 간도협약으로 숙종 때부터 논의되어온 간도문제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간도협약은 간도문제의 종지부가 아니라 시작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간도협약을 맺은 두 나라는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있는가.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 우기면서 문제화 하고 있으니 대략난감하다. 중국은 간도에 이어 북한으로부터 백두산의 40%를 이양받고, 이제는 고구려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왜곡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기가 막히고 어이없고 억울하고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남과 북은 서로 대화조차 못하고 있으니 효과적인 대책을 세우리라 기대하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른다. 통탄스럽고 답답하지만 까맣게 밀려오는 왜군을 치밀한 계책을 세워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지혜가 우리에게 있었지 아니한가.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주변국들은 우리와 영토뿐만 아니라 이권과 주도권 등을 놓고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제안이지만 정부차원에서 이러한 예상문제를 놓고 다각도로 연구를 하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 시작은 남북간의 신뢰회복과 대화 그리고 경협과 평화체제를 구축하면서 미래를 개척해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과 일맥상통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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