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하석용 인천시민회의 의장·경제학박사¶¶세월의 흐름을 넘어서 지워지지 않고 찌릿한 감동을 남기는 영화 몇 편에 대한 기억이 있다.
마음의 행로, 애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사랑은 기적을 낳는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여로…. 대체로 극적이기는 해도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들이다. 글쎄, 실사구시적인 성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나는 대체로 ‘말 되는’ 스토리를 가진 극(劇)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 들어서는 좀처럼 극장에 갈 일이 없다. 극장가에 넘치는 작품들이 판타지 일색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극이라는 것이 현실 그 자체를 보여 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저마다 감동을 느끼는 방법과 영역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 해도 ‘반지의 제왕’이나 ‘캐리비언의 해적’이 설치는 문화판에 대해 입맛이 떫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뒤로 흐른 장구한 세월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경험하게 하기에 충분했고, 그래서 이제 인간들은 지치고 권태로움의 극한에 다가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현상으로 온 세계가 마약과 알코올에 취하고 문화의 모든 영역을 판타지가 뒤덮어 가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맞아 죽을 소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종교가 가지는 환상적 요소까지를 감안한다면 정말 세상은 판타지의 천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판타지가 갖는 삶에 대한 강한 긍정적인 측면을 인정한다. 절망하는 인간에게 희망을 갖게 하기도 하고 새로운 삶의 영역을 개척할 수 있는 동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심심해 죽겠는 인간에게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고 지쳐서 멍청하게 정지해 버린 두뇌의 회전에 자극을 주기도 한다. 인류의 많은 금자탑 같은 문화적 업적들이 판타지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삶의 모든 부문들이 판타지로 돌아가서는 곤란한 일이 아니겠는가. 판타지의 문화적 기능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정치와 경제만큼은 어떤 경우에도 판타지여서는 안 되는 것이지 싶다. 이 영역은 인간들의 기본적인 생존을 안정적으로 보장하는 것을 필연의 목표로 삼아야 하고, 따라서 장난이 허용될 수 없는 범주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와 경제에는 너무도 판타지가 많아 보이니 어쩌면 좋은가. 747, 부동산 경기부양, 동북아 중심, 동양의 두바이, 물류중심, 금융중심, 명품도시, 디자인, 개혁, 개혁… 국민의 뜻, 아니… 그 많은 정치인들의 구호 판타지….
하석용 인천시민회의 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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