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예술대학, 어디로 가는가?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 말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뮤지컬학과를 들어온 거구요. 그런데 교육부에서는 춤과 노래로 먹고 살수 없으니 학과 정원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라네요. 난 다만 먹고사는 것 때문에 예술을 선택한 게 아닌데…’ 경기일보와 용인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뮤지컬스타페스티벌에 참가하기 위해 신청서를 작성하던 어느 예술대학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문제는 이 한숨이 한 학생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예술대학 재학생 모두의 한숨이라는 사실이다. ‘프라임사업’이라 불리는 정부의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대학 사업’은 미래의 산업수요에 따라 공학 계열의 정원을 늘리기 위해 상대적으로 인문예술계의 정원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변질되고 있다. 더구나 교육부는 ‘프라임사업’ 외에도 취업률 성과를 토대로 한, 대학교 자체적인 정원 조정 및 학과 개편 실적을 학교 평가 및 지원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각 대학교는 부랴부랴 인문예술계의 정원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당연히 학생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인문계 분야는 철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반향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전국의 대학교들은 학교 운영의 효율화를 위해 변화가 필요했고 결과적으로 예술 대학이 그 피해를 모조리 뒤집어쓰게 되었다. 한마디로 정부가 예술을 꿈꾸는 학생들의 앞길을 막는 모양이 되고 말았는데 이러한 결과가 가져올 미래의 지역문화 모습은 암울하기만 하다. ‘문화융성’의 정책과 함께 그 근원을 지역에서 찾고자 하는 정부의 문화진흥정책은 나름대로 지역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정책을 추진할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특히 지역의 예술관련 대학 지원 정책이 더욱 절실한 작금의 상황에서 교육부의 대학 지원 정책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문화예술 중앙 집중화 현상에 의해 서울 및 수도권 예술대학은 다행히도 폐과라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고 있다. 문제는 지역이다.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인력 양성은 뒤로 미룬 채 지역 소재 대학들은 당장의 살길을 찾아 무분별한 구조조정을 시도하고 있다. 그중 최악의 상황이 바로 예술관련 학과의 폐과인 것이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쯤에서 지역 문화의 미래를 예상해보면 참담해질 뿐이다. 지금도 예술가를 꿈꾸는 지역의 청소년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중앙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그나마 막아주고 잡아주는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지역 소재 예술대학이었다. 다시 말해서 지역 소재 대학의 예술 전공 학생들은 그 지역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차적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그토록 필요한 인력양성의 산실이 자의반 타의반 심각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오늘도 지역의 많은 예술대학 학생들이 우리의 예술대학은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외치고 있다. 물론 정부의 ‘프라임사업’은 우리나라 미래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일종의 청사진이다. 하지만 예술적 특성을 감안하지 않는 정부의 사업 추진과 대학의 구조 조정이 학생들을 방황하게 하고 있다. 사실 예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의 취업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오히려 급증하고 있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예술을 선택하는가? 이제라도 시각이 달라져야한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으며 좋은 집에서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지만 그것을 뒤로 미루고 예술을 꿈꾸는 젊은이들을 위한 ‘프라임’은 무엇일까? 그 근본적인 고민과 정책이 필요한 이 시점에서 예술대학 학생들을 위한 ‘프라임’ 사업을 기대해본다.김혁수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문화카페] 예술도 때론 불편해야

영원한 진리와 자유를 갈망하는 구도자들은 편안한 일상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일상은 불편함의 연속이며 이것이 수행의 과정이 된다. 수행의 방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망을 절제하고 통제하는 데에 맞추어져 있다.화려하고 멋진 옷 대신 몸을 가리는 정도로만 입고, 기름지고 입맛을 돋우는 감미료는 넣지 않은 음식으로 최소한의 에너지원을 섭취한다. 거처하는 곳도 단순 소박하다. 이렇듯 의식주가 일상에서 추구하는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다.숨을 쉬는 것조차 자율신경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한 목적으로 일상에서 길들여진 호흡법을 거스르며 숨쉬기를 한다. 명상이나 단전호흡의 원리를 따지면 모두 불편한 호흡법이다. 그래도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행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동서양과 고금을 통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수행방법이다. 편안한 몸과 마음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이면을 읽을 수가 있다. 중국의 고전 서경(書經)은 BC 600년경에 만들어진 책으로, 성왕(聖王) · 명군(名君) · 현신(賢臣)이 남긴 이야기를 담은 중국 정치의 규범이 되는 책이다. 주공 편에 나오는 무일(無逸, 편안하지 않음)이라는 글이다. “군자는 무일에 처해야 한다. 먼저 노동의 어려움을 알고 그 다음에 편안함을 취해야 비로소 백성들이 무엇을 의지하여 살아가는가를 알게 된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건데, 그 부모는 힘써 일하고 농사짓건만 그 자식들은 농사일의 어려움을 알지 못한 채 편안함을 취하고 함부로 지껄이며 방탕 무례하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를 업신여겨 말하기를, 옛날 사람들은 아는 것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무일의 정서와 사상은 중국의 지도층과 엘리트 계층이 지녀야 할 중요한 덕목으로 계승되었고 1957년과 1980년대 중국 전역에 대대적으로 실시된 하방운동(下放運動)으로 이어진다. 상류층 간부들을 농촌이나 공장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게 하고 고급 군 간부들을 사병들과 같은 내무반에서 기거하며 현장을 직접 체험하게 하는 운동이었다.간부들의 관료주의 ·종파주의 ·주관주의를 방지하고 지식분자들을 개조하여 부패한 관료가 되지 말라는 이 운동으로 문화혁명 기간 동안 1천만 명이 넘는 인원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잘 알다시피 시진핑도 하방을 통해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고 오만한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 마침내 중국의 지도자로 부상했다. 무일과 하방은 한마디로 불편함을 택하는 것이다. 스스로 고행을 택하면서 성성하게 살아있는 정신을 얻는 데 의의가 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주변을 보면 정말 마음이 편치 않다. 국민의 눈높이는 고사하고 온통 부패한 쓰레기 냄새가 진동을 하니 안 그래도 삼복더위에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열불이 난다. 예술분야도 마찬가지다. 예술이 정치에 예속되고, 성과주의와 대중만 선호하는 양적 우선주의, 그리고 공적지원에만 의존하는 상황에서는 깨어 있는 예술의 정신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렇게 길들여져 생산된 작품은 거의 모두가 달콤하고 화려하고 기름지다.문화가, 예술이 국민 행복에 진정으로 기여하기 위해서는 불편한 부분을 드러내야 한다. 고행을 통해 자유로움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 정신의 가치가 유효하다면 상처 나고 아프고 흉물스럽고 희망 없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야 한다. 불행이 없으면 행복도 없질 않은가. 서민의 불편을 모르는 지도층이 불편한 예술에는 지원을 하지 않고, 길들여져 아름답고 말랑말랑한 예술만 선호하면 희망이 없다. 좋은 약은 입에 쓰다 했다. 무더위와 습기로 불편한 여름날의 단상이다. 예술도 때론 불편해야 한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아트기획학과 교수

[문화카페] 원력의 이상에 살자

시대가 변하는 전환점에 선 오늘이다. 인류역사에서 19C 이전은 농업사회였다. 부의 원천은 땅이요 토지였다. 19C 산업혁명 이후 부의 원천은 땅과 토지에서 돈, 자본으로 이동하였다. 이러한 세상에서는 한국인으로서는 세계적인 인물이 나오기 힘든 일이었다. 땅도 작고, 자본의 크기도 적은 우리의 입장에서는 내가 왜 미국이나 중국과 같은 대국이 아닌 이 땅에 태어났을까? 그저 조상 탓만 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세상이 변하여 스마트 사회가 되었다. 정보화 사회의 부의 원천은 땅도 자본도 아닌 창의성이요 좋은 생각(아이디어)들이 부가 가치가 높은 세상이 되었다. 땅과 자본이 적어도 문제가 없는 창의성의 시대, 상상력의 시대 즉 문화적 콘텐츠가 튼튼한 사람 중심의 스마트 사회가 되었다. 이 시대의 주인공이 누구일까? 문화적 콘텐츠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춘 사람들이 이 시대의 행운아들이다. 이들은 이 시대의 흐름인 창의적 존재들이다. 그들은 대기 대용의 존재들이다. 그들은 내일의 우리 사회를 이끌어나갈 주역들이다. 오늘보다는 내일에 큰 꿈을 갖게 하는 존재들이다. 7전 8기 할 수 있는 존재들 나아가 불굴의 의지를 지닌 내일의 한국 일꾼들이다.그들은 고난의 칼날에라도 올라설 수 있는 용기 있는 존재들이다. 자유를 위하여, 평화를 위하여, 정의를 위한 맑고 깨끗한 영원을 소유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열어가는 세상은 창의성과 상상력으로 무장된 무한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을 것이다. 이 에너지를 사회의 기여에 사용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고 문을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이 길이 이 시대의 사명감이 되어야 한다. 눈을 뜨고 즉 현실에 바탕을 두고 나 혼자만의 꿈이 아닌 이웃들과 함께 꾸는 큰 꿈을 꾸어 현재와 미래의 주인공인 원력의 존재로 살아야 한다. 그들과 함께 가는 길, 즉 동행의 의미를 실천하는 길이 스마트사회인 것이다.속도, 기술,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 즉 사람중심의 전문인 사회가 도래하였음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참 생명의 원동력 즉 이타적 삶이야말로 남과 나를 함께 살리는 영원한 삶이 된다. 자신의 이익보다는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전문인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이 시대 정신을 아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길이다. 열심히 남을 도우며 살 수 있다는,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들은 대발원의 큰 원력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창의성, 상상력, 순수성이라면 우리에게는 새로운 희망의 등불이 켜진 상태다. 창의성과 좋은 생각이란 남을 배려하는 이타적 생각에 기초한 정신이다.‘이타적이다’란 나보다 더 당신을 사랑하는 존재, 한용운의 시 ‘나룻배와 행인’의 첫구절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에서 행인으로 사는 길이 아닌 나룻배로 살려는 나룻배의 정신, 즉 자기중심에서 당신중심으로 중심이동이 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기중심은 아집이요 당신중심은 서원의 원력 문화다.그러므로 자기중심으로는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는 자각이 필요한 때이다. 나 혼자만은 잘 가꾸고, 나 혼자를 위한 일에는 능숙한 솜씨를 발휘하는 재주보다는 남과 함께하는 배려의 정신 속에서 실천하며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그러면 영원한 자유를 즐길 수 있는 행복한 삶이 보장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행복이다. 나와 더불어 우리 모두 행복하여 지는 길인 원력의 이상에 살려는 이 숭고한 뜻을 실천하자. 평화 통일의 대업도 이 정신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전보삼 경기도박물관장

[문화카페] 조기 예술교육의 필요성

언젠가 아침 뉴스를 보는데 프랑스 유치원 아이들이 우산을 쓴 채 미술관 앞에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나왔다. 뒤이어 현지 특파원이 등장하더니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이곳 프랑스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예술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유치원생들은 정기적으로 미술관과 박물관 등을 견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뉴스를 보던 나는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치원생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그 미술관은 유치원생들하고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미술관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피카소는 물론 르노아르니 고갱이니 고흐니 하는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저 어린 것들이 어떻게 감상한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나는 무릎을 치고 말았다. 저게 바로 프랑스 교육이구나!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적어도 미술관의 분위기를 몸으로 익힐 수는 있겠구나! 여기에다 그림에 대한 이해 여부를 떠나 대가들의 그림을 직접 눈으로 봤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학습이 되겠구나! 어릴 적에 청국장 맛을 본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와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청국장을 먹어 보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돼도 청국장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이를 거부하게 돼 있다. 마찬가지로 어릴 적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돼도 발걸음이 그 쪽으로 옮겨지지가 쉽지 않다. 연극 공연장이나 영화관에 중년 이상의 관객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우리들의 교육 현장은 어떤가? 안타깝다 못해 슬프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국영수만 있고 그 밖의 과목은 거의 들러리라고 봐야 한다. 실정이 이러니 예술교육 운운은 입 밖에 꺼낼 처지가 못 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가장 중요할 뿐 아니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과목이 바로 예술교육이다. 예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야 말로 사람이 일생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정서 작용을 할뿐더러 삶의 행복에도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친구 L은 직장을 나온 후 학창 시절의 꿈이었던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일요일이면 동호인들과 가까운 산을 찾아 그림을 그린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서 좋고 맑은 공기와 산의 정기를 받을 수 있어 2중의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후배 P는 색소폰 하나로 전국을 누비고 있다. 그 역시 공직생활을 하느라 오랫동안 밀쳐 두었던 색소폰을 다시 들고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그는 남들 앞에서 색소폰을 불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글 역시 노후의 삶을 즐겁게 하는 데 필요한 예술이다. 돈이 크게 들지도 않고 혼자 있어도 외롭다거나 쓸쓸하지 않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가 더욱 좋은 게 글쓰기이다. 필자가 맡고 있는 도서관 글쓰기 강좌에 중년 이상의 수강생이 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글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한 줄의 시, 한 점의 그림, 한 곡의 노래는 인생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젊게 해준다. 비록 프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가까이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한 게 예술이다. 이렇게 좋은 인생의 벗을 우리는 대학 입시란 괴물 때문에 일찍부터 외면해야 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대원군의 눈으로 보는 브렉시트와 트럼프

요즈음 정치나 경제나 할 것 없이 신문을 온통 뒤덮고 있는 단어가 바로 트럼프와 브렉시트이다.어떻게 보면 이 시대착오적인 생각들이 디지털시대 아니 우주시대에 세상을 흔들고 있다고 하니 아직도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에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그런 면은 역설적으로 정말 우리에게 새로운 위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래서 세계첨단정치인들의 막되어 가는 모습에 나에게는 갈릴레오의 중얼거림을 생각하게 하는 면이 있다. ‘그래도 문명진화의 끝없는 여정의 한 과정인 세계화를 막지는 못할 것이라고…’ 인류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전 세계 지성들은 생명을 존중하고 사회 간 계층 간 장벽을 없애고 편견을 불식하는 것이 바로 인류 공동의 평화와 번영의 지름길이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인류학적인 지식을 동원하여 구약성경에서처럼 아담과 이브는 한 쌍이었고 오늘날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이들의 자손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감성에 호소하기도 한다. 사실 아시아의 어떤 나라의 유네스코가 주최한 ‘세계화와 세계시민’에 대한 이러한 논조의 강연을 끝내고 부딪친 질문이‘그렇다면 제가 한국을 가게 되면 비자 없이 들어갈 수가 있나요?’이었다.말문이 막히는 공격성 질문이었지만 내가 볼 때에는 교통과 통신이 국경을 무시하고 넘나드는 이렇게 발달한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루 속히‘세계화’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질문자도 잘 알고 있었다. 영국은 중세의 끝자락에서 자국의 산업을 위해서 세계화를 일찍 성공하여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만들었다.미국도 전 세계를 자신의 경제적인 영토로 생각하고 살아온 나라이다.세계화를 통해서 국부를 창출하여 세계에서 가장 잘 살고 있는 이 최첨단의 나라들이 이제는 쇄국을 하겠다고 나서니 이제 겨우 세계화로 재미 좀 보려는 우리로서는 아연실색할 노릇이다.‘세계화’가 잘못된 것인지 또는 일견 이제 와서 자신의 이익에 편집적인 증상을 보이는 강대국의 염치없는 태도에 너무 실망한 것인지 모르지만 이제 세계화에 편승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가치에 혼돈을 야기시키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오늘날 이런 사태가 역사적인 반전인가? 아니면 역사적인 사건의 반복인가? 거의 150년 전에 우리는 대원군이 개방을 하지 않고 쇄국정책으로 나라를 유지하려고 하다가 나라를 잃었고 우리와 극렬하게 대비되게 일본은 서양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산업을 일으키고 오늘날의 일본을 만들었다.두 나라 모두 초기에 극렬한 저항에 부딪혔지만 결국 우리는 상당한 고생 끝에 일본에 한발 늦게 나라를 새롭게 일으킨 역사가 있는 것이다. 국제무역에 의존도가 높은 우리로서는 트럼프나 브렉시트와 같은 사건들에 우리 경제가 위축되고 우리의 삶이 피폐하게 될 걱정에 조마조마하게 되지만 아마도 과거의 150년 전의 우리의 경험으로 미루어 그들은 필경 후회하게 될 것이다.왜냐하면 어느 사회이든지 간에 융합을 통한 창의성이 사회의 미래를 좌우하게 될 것인데 사회 간의 장벽이 높을수록 융합될 수 있는 지적 그리고 물적자원이 줄어들게 되어 결국 사회의 발전 속도를 느리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배기동 한양대학교 교수

[문화카페] 예술의 산업화

현 정부는 ‘문화융성’을 국정 기조의 하나로 삼고 문화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정책을 시행해 왔다. 문화융성의 핵심은 문화가 지니고 있는 기능을 통해 국민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여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류의 가시적 성과를 거론하며 예술의 산업화를 위한 인프라 조성과 창조경제의 성장동력으로서 ‘예술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초예술이라는 한정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예술창작물의 제품화와 이를 통한 수익창출의 선순환을 통해서 예술산업을 육성하고, 예술생태계 조성을 위해 다양한 인력을 양성하고 투자를 유치해서 예술상품을 적극적으로 시장에 유통시키겠다는 것이다. 시장을 활성화하되 예술 고유의 속성은 유지하게 해서 예술가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여 일자리 창출은 물론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한다는 정책적 발상이다. 아름다운 꿈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그러나 예술의 산업화란 그 자체로 모순된 어법이다. 예술의 순수성과 독립적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는 가능성과 유통·자본화의 대상으로 변질시킬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나라 기초예술의 현주소를 점검해 보자. 연극, 무용, 미술, 음악 등 기초예술 분야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기본적인 생계와 인간적인 품위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기초예술을 소비하는 시장은 지극히 제한적이며 속성상 앞으로도 시장이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없지만, 기초예술 분야의 인력은 여전히 대학에서 양산되니 공급과잉 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있다. 예술대학을 졸업하면 생계를 보장받지 못하는 예술가의 길을 선택하거나 아예 포기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산업화라는 구조는 승자독식의 시장 경쟁을 의미한다. 그러니 산업의 가시적 성과와 열매는 예술이나 예술가가 아닌 정치와 자본에게 돌아갈 것이다. 개인의 정체성과 자유로운 표현에 기초한 다양한 예술적 가치 훼손의 가속화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러한 징후는 이미 여러 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효율과 성과라는 기준에 밀려 기초예술의 공공성은 외면당하고 후진국 형으로 대접받고 있다. 현대문명은 지금 산업화의 후유증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인간 소외, 공동체의 붕괴, 환경과 생태계의 파괴, 양극화 현상 등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예술은 늘 그래왔듯이 문제를 제기하고 감시하면서 인간 정신의 고양과 보편적 가치의 확산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다. 만약 예술마저 산업화라는 물결에 휩쓸리게 된다면 예술의 기능과 존재 가치는 의미를 잃게 된다. 산업화의 좋은 사례로 언급되는 분야는 대부분 대중예술이며 이를 움직이는 큰 힘은 자본이다. 돈이 되는 곳에는 이미 자본이 움직이고 있다. 시장 논리가 적용되어 잘 돌아가고 있는데 정부 개입의 필요성 자체가 의문이다. 예술을 둘러싼 환경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정보기술의 혁명은 예술에 대한 환상도 무너뜨렸다. 예술이 인간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그만큼 커진 것이다. 지금 필요한 정책의 고민은 때 이른 예술의 산업화보다 기초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우리 삶의 여건과 일상의 예술시장을 확장하는 것에 집중해야할 시점이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아트기획학과 교수

[문화카페] 당신의 앞마당까지 달려가는 예술 교육

문화예술만큼은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아니 가장 뛰어난 프랑스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그리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분야는 예술교육이다. 프랑스의 경우 예술교육은 학교와 다양한 예술관련협회 소속의 예술가들과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 협력은 단순한 네트워킹 수준이 아니라 안정된 시스템 속에서 장르를 초월하는 커리큘럼 개발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을 포함하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과정은 중장기적인 계획 속에서 진행되며 그 결과는 탄탄한 열매로 나타나게 된다. 우리의 예술교육은 어떠한가? 다행히 예술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교육계와 예술계의 시각이 확대되었지만 그 실행 방식은 처음부터 잘못되었고 지금까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학교 현장의 예술교육을 담당하는 학교예술강사 사업은 예술계의 전문 인력을 학교에 파견해 학생들의 문화예술교육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로 출발했다.2000년 국악강사풀제를 시초로 하여 2002년 연극분야, 2004년 영화분야, 2005년 무용과 만화분야, 2010년 공예와 디자인 그리고 사진분야로 확대 시행했다. 그 결과 작년의 경우 8천여개가 넘는 학교에서 3천여명에 가까운 예술강사들이 활동했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내부적으로는 시끄러운 소식뿐이다. 프랑스와 같은 예술교육을 추구하면서도 정부는 성과에 대한 조급함 때문에 예술강사 양성이라는 선결 과제를 뒤로 미룬 채 일단 현장의 예술가를 파견하는 형식을 선택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이 사업이 현장의 어려운 예술가들의 수입을 보조해주는 것이 목적인지 아니면 혁신적인 예술교육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적인지 그 방향을 모호하게 했다. 그런데 이 모호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기는 커녕 오히려 강사 신분의 정체성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말았다. 교육계는 교육계대로 예술계는 예술계대로 이미 이러한 결과를 예상하고 지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면 교육계와 예술계가 예상하고 지적해 온 것은 무엇인가? 바로 예술강사 양성 시스템이다. 현장에서의 자신의 경험을 전파하는 예술강사가 아니라 앞마당까지 달려가는 용인문화재단의 예술강사들처럼, 자신의 개인적 경험이 아닌 새로운 커리큘럼에 의해 습득한 객관적 시스템을 교육하는 방식이 프랑스가 추구하는 예술교육인 것이다. ‘예술강사 양성은 현장의 예술가에게는 온전한 직업으로의 전환 기회를, 취업자리가 없어서 고민하는 예술대학 졸업생들에게는 새로운 직업 창출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단 이를 위해서는 수월성을 목표로 하는 현장 예술 경험 전파가 아닌 삶 속의 예술을 위한 커리큘럼 개발과 그 커리큘럼 교육 과정을 통해 배출된 새로운 개념의 예술강사 양성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필자는 오래전부터 강조해왔다.하지만 얼마 전 한 예술대학 재학생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취업 특강 시간을 통해 본 현재의 모습은 참으로 암울했다. 알다시피 예술전공 학생들의 졸업 후 취업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예술계 졸업생의 취업률이 낮다고 그저 예술대학의 입학 정원을 줄이거나 혼란스러운 학교예술강사 제도를 권유하고 있을 뿐이니.안타까울 뿐이다. 이 정도 세월이 흘렀다면, 지금 예술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예술계 현장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학교에서 그동안 배운 예술교육전문가의 길을 갈 것인가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할텐데. 김혁수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장

[문화카페] 문화예술과 삶의 질

며칠 전 거리에 나갔다가 한 전단지를 받았다. 뭔가 하고 펴보다가 머리를 된통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경기도문화의전당 폐지 결사반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나도 모르게 머리가 띵하고 숨이 가빠왔다. 내용인 즉, 경기도가 경영합리화를 내세워 지금까지 운영돼온 ‘경기도문화의전당 폐지, 도립예술단 별도 법인화’를 추진한다는 것. 전단지를 받아든 나의 머리에 섬광처럼 두 편의 영상이 떠올랐다. 하나는 경기도문화의전당 전신인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개관식 때 교성곡 경기찬가를 제작(작시: 윤수천, 작곡: 최병철)하여 개관식장을 대합창으로 장식했던 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며칠 전 10일 일정으로 서부 지중해 4개국을 크루즈 여행하면서 느낀 소회였다. 경기찬가를 작시할 때 필자는 경기도가 지닌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문화예술 속에서 나타내고자 하였으며, 경기도민의 나라 사랑을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삼자고 다짐하였다. 문화의전당 폐지 소식지를 받아들고 내가 한동안 머리가 띵했던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중해 4국 여행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문화예술 애호 정신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문화가 숨 쉬고 있었고 예술이 만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부러웠던 점은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돈의 논리에도 굴하지 않는 선진국민의 높은 정신이었다. 오래된 건물 속에서도 숨결처럼 간직하고 있는 그림 한 점, 낡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전통 춤과 노래는 그들이 얼마나 자기들의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였다. 문화예술은 눈앞의 이익만을 따져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을 갖고 있다. 지난한 세월과 척박한 사회 환경 속에서도 삶의 위안이 되는 게 바로 문화예술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연극, 무용, 노래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샘물과 같은 활력소이며 내일의 에너지이다.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맨 부커 인터내셔널 문학상을 수상하여 국위 선양은 물론 온 국민에 기쁨을 선사한 것도 바로 문화예술의 힘이었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자면 참으로 엄청난 가치라고 할 것이다. 어디 여기서만 멈출 것인가? 아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문학은 세계무대를 향해 좀 더 활발한 진출이 예상되며, 문학작품은 연극과 영화로도 각색되어 그 빛을 광범위하게 쏘아주리라고 본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은 꽃으로 치면 ‘향기’에 해당한다. 향기 없는 꽃이 꽃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듯 문화예술 없는 나라는 존경받는 국가로 설 수 없는 게 작금의 세계사이다. 이런 차제에 문화 융성을 4대 정책 기조의 하나로 내세운 정부 정책과도 반대되는 ‘폐지’ 운운은 당장이라도 전면 재검토돼야 마땅하다. 또한 4개 도립예술단의 법인 설립도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통해 결정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예술단은 공연장과 불가분의 관계임으로 문화의전당 없이는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문화의전당 폐지는 곧 예술단의 무용지물을 의미한다.그리고 이는 도민이 누려야 할 삶의 행복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 차제에 좀 더 나은 문화의전당 운영과 예술단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쪽으로 개선책을 마련하는 게 현명한 처사라 하겠다.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죽음문화’가 필요한 우리의 도시

어느 해 봄날에 보리가 파랗게 올라오는 해변의 시골길을 가는데 밭 모서리의 작은 나무 판에 아무렇게나 적은 작은 간판 하나가 나의 머리를 어지럽힌 적이 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도 ‘장의차 출입금지’라고 씌어져 있었다. ‘이제 죽어서 고향가기도 힘드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야할 고향도 없지만 씁쓸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더구나 우리의 주거생활의 가장 보편적인 형태인 아파트숲 속에서 우리는 죽어서도 비탈에 만들어진 아파트형 무덤에 가든지 아니면 연기가 되어서 사라지는 것을 생각하면 허전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의 기억들을 되살릴 수 있는 것들은 이제 우리의 옆에 두는 것이 이 문명사회에 하나의 사치로 생각하는 세태가 밉기도 하다. 오래 전에 남태평양을 여행하면서 집 마당에 부모님의 묘소를 만들어서 꽃밭으로 꾸미어서 아침과 저녁으로 가꾸는 것을 보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면 바로 부모님의 묘위에 핀 열대의 꽃들이 보면서 어릴 적의 추억들을 되새기고 있었다. 우리도 과거에는 이와 비슷하게 살았다. 대체로 마을의 뒷동산에 부모님들이 누워계신 것이 보통이었고 대를 이어서 무덤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전통사회에서는 삶과 죽음이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게 되고 조상과 자손 간에 오랜 시간 속에 만들어진 기억에 대해서 무언의 교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죽음의 문화는 사실 이제까지의 인류 문화유산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이었다. 피라미드나 고구려고분 그리고 조선왕릉 등 아마도 수도 없는 과거의 문화유산이 죽음과 관련된 것이다. 그리고 신전 역시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신앙적인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죽음과 관련된 의례문화는 거의 사라지고 없다. 그나마도 진도의 씻김 굿과 같은 것은 무대에서나 볼 일이다. 어느 곳이든 정책적으로 화장을 장려해 묘를 덜 써서 경작지와 숲을 보존하려고 하고, 자손들도 장례는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대단히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세상의 풍조이다. 우리의 생활에서 장례문화가 사라진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 문제가 없을 것인가? 인간의 기억은 인간의 삶의 양식이다. 강남 역이나 다른 테러의 현장에서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애도의 의식들에서 보듯이 인간이 절망할 때에 기억은 치유의 약이 되기도 하고 또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의지를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도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소중한 기억들을 쉽게 지워버리는 것인가? 과거에 우리가 사회적 효율성을 우선하는 시기에 시작된 풍습이 별 생각 없이 지속되어 우리의 장례문화를 사라지게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기억은 지속되기 위해서 우리 주변에 그 자극제가 필요하다.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숲 속에 우리 부모님들의 무덤이 있는 공원을 만들어 아파트를 우리 마음의 고향으로 만들 수는 없을까? 우리의 사표가 되는 사람들의 무덤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공원이 있을 수는 없을까? 어느 생물이건 죽음은 바로 삶의 원천이 된다. 모든 생물의 육체는 소속됐던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한 에너지가 된다. 죽은 자의 삶에 대한 풍요로운 기억들이 살아 있는 자의 정신이 성장하고 유지하는데 양식이 되지 않을까? 또 하나의 엉뚱한 생각인가? 배기동 국제박물관협회 한국위원장·한양대학교 교수

[문화카페] 치유의 진혼굿,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아... 다 치유를 받은 것 같아요! 사진 한 장 찍어 주시겠어요?” 지난 5일 안산국제거리극축제 개막공연이 끝나자 10대의 딸과 함께 있던 한 여성이 필자에게 건넨 말이다. 울먹이는 목소리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세월호 참사라는 기억과 저절로 연결이 될 뿐. 고개를 끄덕이며 순백의 새털로 뒤덮인 두 모녀의 모습을 핸드폰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안산문화광장은 온통 하얀색 깃털로 뒤덮였다. ‘지금, 우리는 광장에 있다!’는 슬로건을 내건 축제이지만 그 광장에 구름처럼 운집한 수만의 관람객들은 이 순백의 물결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가여운 영혼을 달래고 안산시민과 우리 모두의 아픔을 위로하는 말없는 진혼굿이며 씻김굿이란 걸 알고 있었다. 조용하게 그렇지만 참으로 의연하게 진행된 개막 퍼포먼스는 축제가 어떻게 시민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답을 제시한 것 같아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진혼굿은 프랑스 거리극단 ‘컴퍼니 그라떼 씨엘’이 ‘천사의 광장’이란 제목으로 선보인 대형 공중 퍼포먼스다. 안산문화광장 양편에 자리 잡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줄을 연결하고 공중을 공연 무대로 활용하였다. 순백의 옷을 입은 배우들은 허공을 가르는 줄에 매달려 제사장이 되고 무당이 되어 광장에 운집한 관람객들 머리 위로 엄청난 양의 흰 깃털을 쏟아 부었다, 마치 폭설처럼. 그러는 동안 지상에서는 거대한 아기천사 풍선이 관객들 사이로 떠다니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하얀 깃털로 흠뻑 씻김을 받은 환상적이면서 장엄한 제사가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을 초청하는데 1억 5천만 원 가량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그리고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인재를 겪고도 온전한 치유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묻어두고 있다.정치와 종교, 시민단체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이날 광장에 운집한 관람객들이 4만 이상이었다는데 참가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이 SNS를 타고 퍼지면서 진혼의 제사로 정화된 마음과 치유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리라 생각한다. 공무원 조직과 축제 조직, 자원활동가와 시민이 하나가 되어 굿판을 성공시켰다. 저비용으로 효과가 극대화된 안산 광장과 거리의 축제판이었다. 광장과 거리는 삶의 현장이다. 일상의 공간이 축제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고 막혀 있던 억압과 고통의 감정이 드러나고 카타르시스를 거치며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된다. 축제는 예로부터 지역과 사람들을 통합시키고 억압과 상처를 집단적으로 치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잘 알려진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축제다.중세 시대의 피지배층, 농노 및 하인들이 축제 기간 동안에 가면을 쓰고 변장을 해서 왕도 되고 귀족도 되어 억눌렸던 내면의 꿈과 욕망을 분출하며 불만과 억압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 것이 유래다. 1980년 필리핀 바콜로드에서는 ‘MV 돈 후안’ 호의 침몰 사고로 700여명이 희생되었다. 국민적 역경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마스카라축제’를 시작했다. ‘미소가면’이라는 뜻의 이 축제는 참가자 전원이 웃는 얼굴의 화려한 가면과 옷을 입고 축제를 만끽한다. 지역통합과 집단치료의 의미 있는 사례는 오늘날에도 만들어져야 한다. 축제를 통해 상처와 아픔을 이겨내는 것은 물론, 사람과 지역의 관계를 회복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얻어 다시 삶의 현장인 광장과 거리에서 일상을 살아야 한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단초를 발견한 것 같아 희망이 보인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아트기획학과 교수

[문화카페] 풀뿌리 문화와 함께하는 임시공휴일을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필립 코틀러는 ‘3.0 이론’을 통해, 마케팅의 시대적 변화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생산에 치중하던 ‘1.0의 시대’, 소비자를 대상으로 고객을 관리하던 ‘2.0의 시대’ 그리고 이제 다가온 ‘3.0 감성의 시대’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이 시대의 마케팅은 고객이 어디로 움직일 것인가를 예측해서 먼저 그 앞에 자리 잡되, 사람들의 영혼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226개의 시군구가 앞장서서 정부의 정책과 코틀러의 이론을 뿌리내린다면 우리의 문화융성은 지금과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필자의 이런 의견에 대해 혹자는 정부의 예산지원을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하지만 솔직히 예산은 다음 문제이다.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단체 및 그 지역 문화관련 기관의 실행력이다. 다행히도 정부의 문화융성에 대한 노력은 중단 없는 최선의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알다시피 지난 5월6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고 문화융성과 경제효과에 대한 분위기 전환을 기대했다. 문화적 소비를 통해 경제적 내수를 살리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결과적으로 임시공휴일 지정에 따라 황금연휴기간 동안 백화점 매출액과 문화시설 입장객, 교통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소비지출이 약 2조원 증가하고, 이로 인해 3조9천억원의 생산이 유발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이번 임시공휴일 기간을 통해 겉으로 드러난 현상은 고무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구나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문화체육관광부는 임시 공휴일로 지정된 6일을 포함해 5월 1일부터 14일까지, 약 2주간을 ‘2016 봄여행주간’으로 지정했다.문화융성과 관광 활성화 그리고 내수시장 확대라는 다양한 목표를 긍정적으로 아우르는 제도이다. 이 기간 동안에 정부의 지원 아래, 지자체를 비롯해 문화예술 및 관광업계가 협력해 전국의 주요 문화공간 및 관광지를 통해 다양한 혜택을 제공했다. 하지만 비판적인 시각도 있었다. 먼저 인천공항을 통해 외국으로 빠져 나가는 사람이 급증했다는 뉴스가 서민들을 우울하게 했다. 무엇보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에 대한 비판이 강했다. 단순히 면제된 통행료를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한다는 사실을 떠나 이러한 방식이 많은 주유소의 사적 이익에 기여했을 뿐, 상대적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게 하는 역반응으로 나타났다는 문제가 제기 되었다.또한 이번 임시공휴일 혜택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었던 중소기업 관계자들 즉 서민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 역시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였다. 그들은 이번 정부의 임시공휴일 지정은 공무원과 대기업 직원만을 위한 것으로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견을 냈다. 물론 어떠한 정책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풀뿌리 지역 문화와 풀뿌리 지역 경제의 소외’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문화융성과 지역 경제효과에 대한 기대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필자는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선택이 가능한 다양한 정책도 필요하지만 이제 보다 과감하게 사람들의 영혼을 앞장서서 움직이는 정책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정부의 의지는 이미 검증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지역문화를 책임지는 문화관련 단체이다.지역민이 그 지역의 풀뿌리 문화를 즐기고 그 지역의 풀뿌리 경제와 함께하는 디딤돌이 되기 위한 변화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기대했었다. 풀뿌리 문화와 함께하는 임시공휴일을. 김혁수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문화카페] 어린왕자 이야기

존경했던 은사님으로부터 대학 졸업 선물로 받았던 책이 있다. 첫 장에 ‘대학 졸업을 축하하며’ 라는 메시지가 적힌 그 책은 바로 안응렬 교수가 국내 최초로 번역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한국어 초판본이었다. 대학 졸업을 축하하며 많고 많은 책 중에 하필이면 어린왕자를 건넨 선생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열정 가득하고 순수했던 대학 시절의 그 마음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살아가라는 뜻은 아니었을까. 문득 그 책이 생각나 서재에서 찾아 바라보니 옛 추억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세계인에게 가장 사랑받았던 책 중 하나로 전 세계적으로 1억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전 세계인에게 어린왕자가 사랑받았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권력과 물질, 명예만을 좇는 부끄러운 현대인의 모습을 성찰하게 하고, 어린왕자를 통해 삶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찾게끔 하는 메시지가 가슴을 울렸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한다. 어린왕자의 저자인 생텍쥐페리는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 훈련을 받은 것을 계기로 행동적인 인생을 개척하고자 1926년부터는 위험이 뒤따르는 초기 우편비행 사업에 가담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용기 조종사로 종군하여 활동했으나,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P38 라이트닝(P38 Lightning) 비행기를 타고 정찰비행 중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어린왕자의 출발은 생텍쥐페리가 조종사 경험을 바탕으로 야간비행 등의 책을 출판하여 그 원고료로 첫 비행기인 코드롱 시문(Caudron Simoun)을 구입하면서 시작된다. 1935년 프랑스 항공청에서는 비행기들의 내구성을 시험하기 위해 장거리 비행 대회를 개최했는데, 이때 파리-사이공 구간의 장거리 비행대회에 코드롱 시문기를 몰고 생텍쥐페리가 참가한다.그러나 사고로 알렉산드리아 남부에 비상착륙을 하게 되고 리비아 사막에서 4일 동안 길을 잃고 헤매다 가까스로 구출되는데, 이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어린왕자이다. 작은 별인 소행성 B612에서 장미와 함께 살고 있던 어린왕자는 7개의 별을 여행하며, 왕, 허영쟁이, 술꾼, 사업가 등 다양한 부류의 어른들을 만난다. 그 별의 어른들을 통해 생텍쥐페리는 오만, 군림, 위선, 허무주의, 물질만능, 인간성 상실과 같은 현대사회의 병폐를 따끔하게 꼬집어 낸다. 이 과정에서 어린왕자의 순수하고 희망적이며 사랑이 가득한 영혼은 대비되어 부각되며, 읽는 독자 스스로를 더 깊이 반성하고 깨닫게 이끌어 준다. 경기도박물관에서는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며 5월 2일부터 9월 18일까지 ‘2016 어린왕자 특별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생텍쥐페리재단 전속 작가인 아르노 나자르 아가(Arnaud Nazare-Aga)의 조각 작품과 생텍쥐페리 드로잉, 유품, 비행기 등을 통해 생텍쥐페리의 삶과 어린왕자의 주인공들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이번 기회를 통해 전시를 보고 또 책을 다시 한 번 읽어보면서, 어린이들은 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과 같은 꿈을 가슴에 심고, 어른들은 이기적인 욕망의 세계를 극복하며 잊고 살아온 순수한 마음을 찾아보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전보삼 경기도박물관장

[문화카페] 책 좀 읽읍시다

우리나라만큼 TV드라마가 많은 나라도 없을 성싶다. 아침 드라마, 저녁 드라마도 부족해서 낮엔 재방송까지 내보낸다. 여기에다 주말 드라마, 요일별 드라마까지 합치면 온 나라가 드라마로 해가 뜨고 드라마로 해가 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은 드라마라면 좋아해도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가 되겠다. 맞다!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국민이어서 그런지 드라마틱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를 탓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내가 무슨 권리로 드라마 즐기는 것을 탓하겠는가. 얘기를 꺼낸 데에는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어서이다. 그 많은 드라마 장면 속에 책 읽는 장면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톡 깨놓고 얘기하자면,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서운해서 하는 소리다. 밥 먹는 장면, 차 마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책 읽는 장면에는 어찌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방송작가도 이 땅의 작가임에 틀림없을 텐데 그 숱한 장면 가운데 책 읽는 장면 한두 컷 좀 넣으면 어디 덧날 일이라도 있나 싶다. 어디 TV드라마뿐인가. 버스나 전동차 안의 풍경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다들 스마트폰 들여다보기에 정신이 없다.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옛날엔 그래도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는 이들이 더러 있었는데 요즘엔 이마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한때 일부 학교에서는 아침독서 10분 운동이 펼쳐져 화제가 된 바 있었다. 수업시간 전에 각자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 10분 동안 읽는 운동이었다. 여기에는 교사들도 합세하여 자못 범국민적 독서운동으로까지 확산되는 게 아닌가 기대치도 높았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자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더니 요즘엔 이런 소식을 듣기가 어려워졌다. 책은 모든 학문의 기본일 뿐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학교’요, ‘도장’이라 말하고 싶다. 특히 날로 문명화되고 기계화되는 미래사회를 생각하면 책의 가치는 더더욱 높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는 정 반대로 가고 있다. 꼭 책을 읽어야 할 일이 생겨도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그도 귀찮다 싶으면 인터넷에서 줄거리만 찾아 읽는다. 학창시절의 필독서인 세계명작도 책을 읽지 않고 대신 영화나 비디오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활자의 그 무한한 상상력이 제한된 영상에 갇히고 만다. 나는 사라진 것 가운데서 제일 그리운 것으로 아이들의 국어책 읽는 소리를 꼽고 싶다. 아침이면 온 동네가 아이들의 국어책 읽는 소리로 정겨웠던 지난날이 못내 그리운 것이다. 아이들의 그 낭랑한 모국어 소리를 들으며 이 땅의 부모들은 고단한 삶을 위로받을 수 있었고 내일을 꿈꿀 수 있지 않았던가. 책 좀 읽자! 말이 난 김에 한 마디 덧붙인다면, 우리 사회의 그 많은 회의나 모임 때 책 한 권 들고 참석하는 건 어떨까 싶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도 서로 나누면서. 감명 깊었던 구절 한두 줄 읽어 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되면 딱딱하거나 지루하기 십상인 회의나 모임도 한결 여유 있고 즐거울 것 같다.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경기도 공립박물관들은 지속가능경제의 핵심자산

공립박물관은 애물단지인가? 흔히 공립박물관의 운영이 엉망이라는 비판을 듣게 되는데 그때마다 나는 실소한다.공립박물관은 만들게 되는 가장 흔한 동기는 정치인들의 선심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공립박물관을 건립하는 일은 돈이 한두 푼이 드는 일이 아니다. 전곡선사박물관만 해도 건립하고 개관하는데 거의 5백억 원이 들었다고 하면 깜짝 놀랄 것이다.왜냐하면 ‘돈 한푼 벌지 못하는 기관을 세우는데 그렇게도 많은 돈을 들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매년 운영비로 수십억의 돈을 쓴다고?’라는 생각이 앞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박물관 정책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 수도 있다. 의회에서도 이따금씩 지방의 공립박물관들에 대해서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등장한다. 공립박물관들이 잘못되는 경우는 원천적으로 정치가나 행정당국이 지역사회의 상징이나 문화창달을 한다는 구호아래 선심용으로 박물관을 일회용 이벤트로 건물을 지어놓고 문만 열면 기능을 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현대의 박물관은 묘지 앞의 비석이 아니다. 그 속에서 박물관전문가들이 프로그램을 만들고 사람들을 모아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고 또는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느끼고 터득하도록 만드는 곳이 되어야 한다. 만들기만 하고 아무런 학예전문가도 고용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 공립박물관이 아직도 많다.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어 대중에게 전달할 학예전문가들이 필요하고 운영비가 있어야 대중들이 즐겁게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된다는 것을 무시한 탓이다. 세계 유수한 나라들의 박물관들은 대체로 공립기관이다. 정부가 지역사회의 문화기반으로서 그리고 고용창출의 수단으로서 설립하고 운용하고 있다.지금 프랑스정부가 수교13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나라에 공격적으로 세일즈하는 것이 바로 박물관과 그들의 문화이다. 한편, 한류로서 말춤이나 한류 드라마 등이 외국에서 인기를 끄는 그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한국적인 사고를 보여주고 또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그 한국적 사고, 즉 한국문화는 그 원형이 바로 우리의 박물관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는 살리고 박물관을 죽인다고 말한다면 결국 장차 우리 문화만이 아니라 소비경제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명약관화한 일이다.지난 두 해 동안 세월호의 불행한 사건과 메르스 사태 동안 문화소비가 줄어서 경제에 큰 타격을 준 것을 보면 현대 사회에서 박물관이나 문화기반의 활용이 가져오는 소비진작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자동차가 일 년 수출한 것보다도 더 큰 수입을 벌어들였다고 하는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는 바로 스필버그 감독의 박물관 경험에서 유래한 것이다. 박물관이 돈을 쓰기만 한다고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차세대들이 부지런히 박물관을 방문하여 문화적인 경험을 통해서 창의적인 사고를 하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하는 공공박물관체제를 만들 수는 없는가? 이 같은 질문조차 없어진 시대여야만 우리는 앞으로 스필버그 뿐 만 아니라 머스크나 잡스 같은 세계적인 창의적 인간들을 길러낼 수 있을 것이다.공립박물관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획기적인 체질 개선이 있어야 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확고하게 밀어주는 문화정치가 바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휴식과 창의적인 배움의 보금자리로서 박물관이 우리의 미래 먹거리를 만들 수 있게 할 것이다.우리가 그동안 부러워하였던 중동산유국들이 공통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바로 서비스업이고 그 핵심이 바로 박물관산업이다. 세계적인 루브르박물관이나 구겐하임박물관도 사와서 전세계의 사람들이 방문하도록 만들어 가는 국가경제전략을 실행하고 있다.왜 우리는 제대로 시스템을 갖추어서 공립박물관을 본연의 기능을 충실히 하도록 만들기는 켜녕 골치덩어리라고 생각하는지 안타깝다. 유네스코도 이미 지속가능발전사회건설을 위한 핵심과제로 문화를 선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배기동 한양대학교 교수국제박물관협회 한국위원장

[문화카페] 양철북과 삼포세대

1999년 20세기 마지막 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였다. 1959년에 발표된 그의 대표작 ‘양철북(Die Bleichtrommel)’은 전 유럽을 떠들썩하게 했고, 1979년에 쇨렌도르프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기도 했다.소설의 주인공 오스카는 자신의 세 번째 생일날 의도적으로 계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뒤로 오랜 세월을 더 이상의 성장이 멈춰버린 난장이로 살아가게 된다. 왜곡되고 비틀린 어른들의 세계와의 ‘거리두기’였다. 이후로 ‘냉철한 관찰자’로서 현실을 지독하게 비꼬아대는 악마적 수다쟁이로 살아간다. 오스카가 두드리는 양철북 소리와 끔찍한 괴성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부조리한 어른들의 세상을 공격하고 그 소리의 힘이 세상을 멈추게도 한다. 어른들이 모두 죽고 전쟁이 끝나고 나서야 자라지 못하고 멈춰 있던 오스카의 몸이 커지면서 스물 한 살의 청년으로 돌아온다. 귄터 그라스는 나치즘이 광란하던 독일의 상황과 소시민적 일상의 충돌을, 작은 키 때문에 어른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고 성인의 지성을 가져 아이의 세계에도 속하지 못하는 비정상적인 존재의 눈으로 포착하며 전시 및 전후시대 독일의 현실을 희화적으로 묘사했다. 그런데 독일의 전후시대 상황과 오늘의 대한민국이 묘하게도 겹쳐진다. 서울연구원이 지난 10일 발간한 ‘한 눈에 보는 서울’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의 청장년 10명 중 5~6명이 결혼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캥거루족’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연애·결혼·출산이라는 전통적인 가족 구성에 필요한 세 가지를 포기한 세대를 지칭하는 소위 ‘삼포세대’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학자금 대출 부담, 치솟는 집값 등 과도한 삶의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는 포기선언이다.더 나아가 취업과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오포세대’, 인간관계와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세대’ 등의 용어까지 등장했다. 연애·결혼·출산에 대한 젊은 세대의 의식이 변화한 탓도 있지만 우리 사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현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세계적인 경기침체와 내수 시장 위축에 따른 저임금과 높은 생활비용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서 다른 구조적인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혹시라도 나치즘과 동종의 광기가 신자유주의라는 아름답고 세련된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가 사는 오늘을 휩쓸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금수저로 대변되는 강자인 기득권층은 그들만의 세상을 점점 더 견고하게 구축하고, 모든 분야에서 이익의 극대화만을 위해 무한궤도로 치닫는 사회 시스템은 인간 삶의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사회 구석구석에까지 전근대적인 구호가 앞서는 구조 속에서 효율성, 성과, 시장 논리의 그물망에 포획된 우리 스스로가 독립적인 성인이 아닌 캥거루족 미숙아들을 양산해내고 있는 셈이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결정과 책임을 질 능력을 갖춘다는 말이기도 하다. 일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는 몸으로 성장을 했지만, 일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고 그래서 사랑하겠다는 결정도 내릴 수 없으면 성인이 아니다. 경제적 독립도 하지 못하고 사랑할 수 있는 자기 선택권도 포기해야 한다면 한 인간으로서 미숙아다. 누구의 책임인가. 어제는 귄터 그라스가 타계한 지 1년째 되는 날이었다. 마침 안산 단원미술관에서는 판화와 조각 분야에서도 명성을 날린 귄터 그라스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몸만 훌쩍 커버린 채 독립을 하지 못한 우리의 삼포세대에게서 양철북의 오스카를 다시 발견한다. 삼포세대가 두드리는 절박한 양철북 소리를 새로 당선된 나라일꾼들이 잘 들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아트기획학과 교수

[문화카페]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서

“문화란 민족의 내일을 밝혀주는 빛이며 양식이다.” 뛰어난 문화예술정책을 실천하는 프랑스의 문화부장관인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리면서, 필자는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사실 작금의 우리 문화예술계는 정부의 정책과 지원에 힘입어 과거에 비해 활동 영역이 상당히 폭넓게 확장되었다. 특히 그 영역이 지역의 각종 공연장과 시각 예술공간은 물론 여가 문화공간까지 확장되었고, 나아가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일방향 방식의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방향 방식은 근본적인 문제인, ‘문화적 양극화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우리 문화예술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것이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 삼양동 산동네에 살면서 느꼈던 문화는 그야말로 간접문화였다. 즉 특정 계층이 누린 문화를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형태였다. 산 아래 대로변에 사는 친구들이 자랑삼아 떠드는 TV 만화영화 내용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고, 그 친구들이 음악시간에 앞줄에 앉아 연주하는 실로폰 소리를 통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동경했다. 하지만 그 동경은 그 상태로 머물지 않고 곧 현실에 대한 원망과 거부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악보를 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그 뒤에 몰려서서 악보도 없이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기계적으로 캐스터네츠나 부딪쳐대던 많은 친구들은 다 같은 생각이었다. 필자는 동네 공터에서 천막을 치고 약을 팔며 신파극을 하던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아니 그들에 의해 무대에 올라가 즉흥극을 경험했던 그 순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필자가 처음 경험한 예술교육이었다. 친구들의 만화영화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세계를 동경한 시간과 경제적 이유 때문에 캐스터네츠나 부딪치며 서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과 무대 위에서 연기를 체험하던 그 시간 모두, 문화예술 경험의 시간이었다.하지만 그 각각의 시간들은 너무도 다르게 어린 필자의 가슴에 다가왔었다. 그렇게 무대 위의 연기를 체험하면서 느낀 그 정서 그 감동이 후에 필자로 하여금 연극영화과를 진학하게 하고 또 지금처럼 문화예술인으로 자리잡게 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의 추억이 무엇을 말해주는지는 분명하다. 그렇다. ‘문화예술의 양극화 현상’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하지만 분명히 치유해야 할 사회적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단순하게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가서 공연하거나 공연장이나 문화공간으로 찾아와서 느껴보라는 일방향 방식은 또 다른 오류를 나을 뿐이다. 무엇보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필자가 몇 년 전에 찾아가는 예술 사업의 평가를 위해 전라남도 섬지역의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공연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만난 어린이에게 공연에 대한 소감을 물었는데 그 대답이 황당했다. ‘맨날 비슷한 거, 보여주고 가고 보여주고 가고… 지겨워요’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일방향 방식의 문화기회 제공은 더 이상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문화 정책이 될 수 없다. 그저 예술계의 경제적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는 차선책일 뿐이며, 시민들에게는 그저 때가 되니 찾아오는 사업일 뿐이다. ‘문화적 양극화 현상’은 양적 팽창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질적 소통에 의해서 해결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과감한 사업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체험을 통한 예술교육은 방식이 까다롭다.아마 준비된 단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예술교육에 대한 사명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문화의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문화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계량화된 성과 유혹을 떨쳐버리고 예술을 통한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시민은 평등하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김혁수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문화카페] 송파산대놀이와 양주별산대놀이

우리나라 중부지역은 광주(廣州) 지역과 양주(楊州)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누었는데, 이 중 하나에 양주와 광주의 앞머리를 따서 이름 붙인 양광도(楊廣道)가 포함된다.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 지역인 양주와 남쪽 지역인 광주를 합한 행정 범위이다. 조선시대에 광주는 한양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아 남한산성과 산성리 마을이 조성된 지역이다. 16세기 남한산성 축성 이후 세도가들이 모여들면서 산성리 마을은 계획도시로 조성되어 나라를 지키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했다. 산성리 마을은 숙종 17년(1691년) 1천호의 대규모 취락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광주 사람들은 한양으로 향할 때 한강 남쪽의 송파나루[松坡津]를 주로 이용하였다. 송파나루에서는 조선 후기 전국에서 가장 큰 향시(鄕市) 중 하나인 송파장이 열렸다.한강의 나루터는 대부분 한양 중심으로 북쪽에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송파나루는 남한산성 중심의 나루터였기에 한강 남쪽에 위치했다. 한양으로 향하던 모든 배들의 종점은 마포나루였다. 사람들은 배를 타고 마포나루에 도착한 뒤, 용산과 숭례문을 통해 한양에 입성했다. 한양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였기에 언제나 분주했던 마포나루에 비해 송파나루는 한가한 편이었다. 이러한 송파나루의 활성화를 위하여 광주 산성리 사람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 낸다. 바로 산업과 문화를 하나로 묶는 작업이다. 이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송파나루에서 펼치는 산대놀이 즉 송파산대놀이다. 마포로 향하던 배들이 송파나루를 들르게끔 함으로써 송파에 큰 장이 펼쳐지고 더욱 활성화되는 역할을 송파산대놀이가 했다. 한편 한강 북쪽의 양주 땅은 조선 왕조의 한양 천도로 인해 한양도성을 내어주고 서서히 분화되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하여 송파산대놀이를 벤치마킹해 만든 것이 바로 양주별산대놀이다. ‘산대’를 광주에 내 주었으니 ‘별산대’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처럼 양주별산대놀이는 송파산대놀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산대놀이란 본래 중부지방에 전승되었던 가면극을 가리키는 말이다. 약 300년 전 송파산대놀이가 공연되었고, 그 뒤를 이어 양주별산대놀이가 송파산대놀이와 같은 주제인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 계통의 중부형(中部型)의 한 분파로 발전했다. 산대놀이는 기본적으로 놀이꾼들이 탈을 쓰고 재담, 춤, 노래, 연기를 하며 벌이는 연극적인 놀음이다. 중부지방 탈춤을 대표하는 놀이로서, 한국 가면극 중 연극적인 볼거리가 가장 풍부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국 가면극의 연출형태와 마찬가지로 음악 반주에 춤이 추가되고 노래가 따르는 가무적 부분과 무언극적인 몸짓과 덕담 재담이라고 하는 사설 즉 대사가 따르는 연극적인 부분으로 구성된다. 현실을 풍자하고 민중의 생활상을 진솔하게 보여주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해학 넘치는 놀이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문화와 산업이 함께 발전하는 길을 모색하고 택하였다. 요즈음 한류문화를 통하여 한국을 알리고 문화상품을 파는 것의 가치와 효용을 조상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산대놀이의 교훈을 떠올리며 문화와 경제가 함께 융성해나가는 해법을 우리는 조상의 지혜에서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전보삼 경기도박물관장

[문화카페] 작가들의 창작과 원고료

주점 ‘은성’은 6·25 한국전쟁 당시 모더니즘의 시인 박인환이 즐겨 찾던 곳이었다. 그는 전쟁의 참혹함과 암울한 현실을 시와 술을 방패 삼아 견디려고 거의 매일 이곳을 찾곤 하였다.그렇다고 수중에 돈이 넉넉한 편도 아니었다. 자연 외상술값만 늘어났다. 주인 역시 굳이 돈을 내라고 독촉을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외상술값이 자그마치 500만 원이나 되었다.그러던 어느 날 주인이 제안을 했다. 외상술값 대신 시나 한 편 써달라고. 박인환은 그 자리에서 시를 써 주었다. 그 시가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으로 시작되는 저 유명한 세월이 가면이다. 시인 황지우는 대학시절 운동권 학생이었다. 그리고 수배자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느 날 도피 중에 신문사 휴게실 테이블에서 시를 5분 만에 써야 했다. 수중에 돈이 떨어져 원고료가 급했던 때문이었다. 그의 대표시면서 명시가 된 너를 기다리는 동안은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내 가슴에 쿵쾅거린다…’ 원고료는 작가의 창작에 대한 보상 내지는 정신노동에 대한 대가라고 봐야 옳다. 고뇌 끝에 완성한 영혼의 산물에 대한 실질적인 보상이자 예우 차원의 반대급부인 셈이다. 그런데 이게 오랫동안 그 뜻과는 너무도 멀고, 기준도 있으나 마나가 되어 말이 원고료지 입에 올리기조차 부끄러운 게 한국 문단의 현실이 되었다. 현재 각종 문예지를 비롯해 잡지에서 작가에게 지급하는 원고료는 200자 원고지 당 5천 원에서 1만 원인 것으로 안다. 그만큼 들쭉날쭉한 게 원고료다. 그러나 이것도 일부 문예지나 잡지의 경우이지 원고료 대신 정기 구독료로 정산을 하거나 아예 주지 않는 곳이 허다하다.원고료 대신 현물을 주는 곳은 그래도 작가를 예우하는 편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대표 문학단체라 할 수 있는 한국문인협회가 회원에게 지급하는 원고료의 기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시) 등단 10년 이내 작가: 5만 원. 11년~40년 작가: 6만 원. 40년 이상 작가: 7만 원. (소설) 등단 10년 이내 작가: 30만 원. 11년~40년 작가: 40만 원. 40년 이상 작가: 50만 원. (수필) 등단 10년 이하 작가: 5만 원. 11년~40년 작가: 6만 원. 40년 이상 작가: 7만 원. 동화) 등단 10년 이하 작가: 7만 원. 11년~40년 작가: 9만 원. 40년 이상 작가: 12만원.(이상 편당 원고료) 이런 실정이니 극히 일부의 인기 작가를 제외하고는 대다수의 작가들이 생계를 위해 다른 직종에 매달리며 살고 있다. 물론 작가를 지원해 주는 정부산하 기관이 있긴 하나 이의 혜택을 받는 작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리고 지원받는 액수도 말이 지원금이지 성에 차지 않는다. 더욱이 걱정스러운 것은 날로 악화되는 출판시장이라 하겠다. 책을 읽지 않는 비독서 인구의 증가는 작가의 창작의욕까지 꺾고 있어 한국문학의 위기를 부채질한다고 봐도 좋을 듯싶다. 노벨문학상 발표철이 되면 왜 우리는 그 대열에 이름을 못 올리느냐고 분개만 할 게 아니라 한국문단의 이런 형편부터 개선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본다. 윤수천 아동문학가

[문화카페] 북극 모기떼의 경고

최근 중남미 열대지방에서 발견된 지카 바이러스 때문에 지구상에 또 전염병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이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이 낳는 아기는 두뇌 용적이 작아져서 문제가 생긴다고 한다. 인류가 7백 만년 동안 지속적으로 두뇌를 키워서 환경변화에 잘 적응해 이렇듯 번성을 해오고 있는데 뇌가 작아지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가 있을 것이다. 인간이 진화하여 오는 동안에 지구환경의 변화가 엄청나다는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인간의 이기심이 생태계가 가지고 있던 생물의 공존체계를 무너뜨려 많은 생물들이 살 곳을 잃어간다는 점에서 이것도 어쩌면 환경의 역습일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환경이 인간을 공격할 수 있는 지구환경의 몇 안 되는 무기가 바로 모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에 북극의 구석기사람들이 맘모스를 사냥한 흔적이 있는 고고학유적을 보기 위해서 시베리아의 북쪽 끝에 있는 러시아의 사하공화국의 작은 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바로 엄청난 모기떼가 사람이 나타나면 무조건 공격을 해대는 것이다. 맨살이 드러난 나의 얼굴과 머리통 주위로 구름같이 모기가 몰려들어서 얼굴, 목 심지어 머리털 속을 온통 두드러기 환자같이 만들었다. 북극으로 향할 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모든 것이 얼어붙는 그 툰드라의 동토대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으며 또한 나같이 아둔하게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없다면 이놈들이 무엇을 먹고 살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사람이 가는 곳은 어디든지 가는 놈들이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모기의 환경에 대한 놀라운 적응력에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오늘날에도 모기가 매개하는 말라리아 전염병은 걸리게 되면 빠른 속도로 사람의 적혈구를 파괴하여 가장 많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 가는 질병의 하나이다. 말라리아 모기를 박멸하기 위해서 디디티를 사용하였지만 모기는 스스로 변종을 만들어서 적응하면서 아직도 인간을 공격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도 전방지역에 말라리아 모기를 조심하라고 하여 ‘열대도 아닌데 왜?’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의 북극여행에서 절감한 것이 ‘말라리아 모기의 강인함은 인간문화의 강인함을 초월하는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돌연변이 중의 하나가 바로 낫모양적혈구를 만드는 열성유전인자이다. 도넛 모양으로 유선형으로 만들어져야할 적혈구를 낫처럼 삐쭉삐쭉한 모양으로 만들어내는데 이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급기야는 적혈구가 모세혈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혈관을 파열시킴으로서 결국 열을 내면서 죽게 된다.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대부분의 열대 아열대 지역에서는 이 치명적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말라리아에 강한 절대적으로 유전자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화적인 산물인 디디티가 박멸하지 못한 말라리아 모기에 어쩔 수 없이 인간은 몸(유전자)의 구조를 바꾸어 적응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경고이자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지구환경을 보존하지 않으면 우리는 엉뚱하게 진화하거나 절멸하게 될 것이라고. 배기동 한양대학교 교수·국제박문관협회 한국위원장

[문화카페] 우리는 부끄러움을 아는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는 정의가 실종된 사회다. 약 2300년 전 맹자(孟子)가 살던 중국은 새로운 철기문명의 확산으로 무기가 발전되면서 제후국들 사이에 영토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던 혼란한 정국의 ‘전국(戰國)시대’였다.맹자는 제후국들을 돌아다니면서 군주들에게 너그러움의 정치를 펼치라고 호소했다. 리더의 덕목으로 의(義)를 역설하며 의가 실현되는 단초로 수오지심(羞惡之心)을 들었다. 수(羞)는 자신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오(惡)는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이 부끄러움이 반성과 개선을 끌어내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요소이자 사회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본 것이다. 정의로운 사회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회다. 역사는 반복된다. 우리가 사는 시대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물결은 철기문명이 확산되던 전국시대, 맹자의 세상과 비교가 된다. 강대국 중심의 세계질서 재편과 약소국 침탈, 자국 이익의 극대화만을 위한 치열한 경제 전쟁은 맹자가 보았던 전국시대 약육강식의 시대상과 매우 흡사하다. 오늘날 맹자가 돌아온다면 강대국들에게 그들만을 중심으로 설정된 정의는 잘못된 것이며 함께 살 수 있는 상생의 정치를 펼치라고 할 것 같다. 정치가와 기업인들을 향해서는 대량의 정리해고,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미생의 근로자들, 극도로 치닫는 양극화 문제들을 진정으로 해결하고 개선해야 한다고도 할 것이다. 인간 삶의 다양한 가치가 무시되며 단지 효율성, 성과, 시장 논리라는 잣대로만 평가되는 사회 시스템은 민생을 점점 어렵게만 만든다.그 시스템이 주창하는 아름답고 희망에 찬 슬로건의 이면에서 자본의 이익과 욕망으로 무장한 민낯과 만나게 된다. 자본과 권력이 정의를 제멋대로 규정해 놓고는 국민들에게 따르라 하니, 2300년 전 전쟁과 수탈로 혼란하던 전국시대에서 인류는 한걸음도 진보하지 못한 셈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문화융성이라는 이 정부의 멋진 기치 아래에서도 경제가 어려우니 문화예술계는 기관마다 예산 삭감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최근 여러 곳에서 돈이 풀리고 있다. 어느 곳간에서 나온 예산인지 몰라도 심증은 있다. 선거철이 온 것이다. 문화예술계 인사와 예산을 정치권이 장악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사업의 이면에서 선거를 겨냥한 목적성이 포착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후안무치(厚顔無恥)의 정치다. 최근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가 문화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5억 원의 초저예산 제작비로 1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서점의 종합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있다.시인 윤동주는 일본 제국주의 강점기에 적극적인 행동 대신에 시인으로 산다는 일에 괴로워했다. 거대하고 폭력적인 제국주의의 부끄러운 정의 앞에 ‘부끄럽지 않기’ 위한 그의 삶이 우리가 처한 현실과 겹쳐지며 큰 울림으로 다가온 듯하다.‘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서시’ 중에서)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낸 주신 학비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으러 간다....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쉽게 쓰여진 시’ 중에서) 영화 속 시인 정지용은 청년 동주와 마주한 자리에서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게 부끄러운 거라고 한다. 부끄럽지 않은 시인 윤동주가 우리를 참 부끄럽게 한다. 김동언 경희대학교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아트기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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