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서

“문화란 민족의 내일을 밝혀주는 빛이며 양식이다.” 뛰어난 문화예술정책을 실천하는 프랑스의 문화부장관인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올리면서, 필자는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사실 작금의 우리 문화예술계는 정부의 정책과 지원에 힘입어 과거에 비해 활동 영역이 상당히 폭넓게 확장되었다. 특히 그 영역이 지역의 각종 공연장과 시각 예술공간은 물론 여가 문화공간까지 확장되었고, 나아가 실질적인 경제적 혜택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시민들과 만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일방향 방식의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방향 방식은 근본적인 문제인, ‘문화적 양극화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과거의 우리 문화예술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것이었다. 필자가 어린 시절, 삼양동 산동네에 살면서 느꼈던 문화는 그야말로 간접문화였다. 즉 특정 계층이 누린 문화를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형태였다. 산 아래 대로변에 사는 친구들이 자랑삼아 떠드는 TV 만화영화 내용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동경했고, 그 친구들이 음악시간에 앞줄에 앉아 연주하는 실로폰 소리를 통해 음악의 아름다움을 동경했다.

하지만 그 동경은 그 상태로 머물지 않고 곧 현실에 대한 원망과 거부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악보를 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그 뒤에 몰려서서 악보도 없이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기계적으로 캐스터네츠나 부딪쳐대던 많은 친구들은 다 같은 생각이었다.

 

필자는 동네 공터에서 천막을 치고 약을 팔며 신파극을 하던 배우들의 연기를 보며 아니 그들에 의해 무대에 올라가 즉흥극을 경험했던 그 순간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보면 그것이 필자가 처음 경험한 예술교육이었다. 친구들의 만화영화 이야기를 들으며 새로운 세계를 동경한 시간과 경제적 이유 때문에 캐스터네츠나 부딪치며 서있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과 무대 위에서 연기를 체험하던 그 시간 모두, 문화예술 경험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각각의 시간들은 너무도 다르게 어린 필자의 가슴에 다가왔었다. 그렇게 무대 위의 연기를 체험하면서 느낀 그 정서 그 감동이 후에 필자로 하여금 연극영화과를 진학하게 하고 또 지금처럼 문화예술인으로 자리잡게 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필자의 추억이 무엇을 말해주는지는 분명하다. 그렇다. ‘문화예술의 양극화 현상’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하지만 분명히 치유해야 할 사회적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렇다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서 단순하게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가서 공연하거나 공연장이나 문화공간으로 찾아와서 느껴보라는 일방향 방식은 또 다른 오류를 나을 뿐이다.

무엇보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필자가 몇 년 전에 찾아가는 예술 사업의 평가를 위해 전라남도 섬지역의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공연이 끝나고 화장실에서 만난 어린이에게 공연에 대한 소감을 물었는데 그 대답이 황당했다. ‘맨날 비슷한 거, 보여주고 가고 보여주고 가고… 지겨워요’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일방향 방식의 문화기회 제공은 더 이상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문화 정책이 될 수 없다. 그저 예술계의 경제적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해소해주는 차선책일 뿐이며, 시민들에게는 그저 때가 되니 찾아오는 사업일 뿐이다. ‘문화적 양극화 현상’은 양적 팽창에 의해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질적 소통에 의해서 해결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과감한 사업 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체험을 통한 예술교육은 방식이 까다롭다. 

아마 준비된 단체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예술교육에 대한 사명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문화의 양극화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우리 문화의 미래는 기대할 수 없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계량화된 성과 유혹을 떨쳐버리고 예술을 통한 삶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시민은 평등하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김혁수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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