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문화국민의 자격

찻집이나 음식점에 들어갔을 때 나는 종종 옆좌석의 대화에 관심이 가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의도에서 그러는 건 아니고 그들의 대화의 주종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서다. 대화는 곧 사회의 관심사를 대변하는 것이자 한 나라 국민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대화에서 바라는 게 있다면 책이니, 그림이니, 음악회니 하는 따위의 얘기가 나왔으면 하는 것인데, 섭섭하게도 그런 이야기를 듣기란 그리 흔하지 않다. 아니, 거의 없다 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는 문화나 예술과는 먼 거리에서 살고 있다. 그간 내가 엿들은 대화를 분석해 보자면 아파트 얘기, 주식 얘기, 드라마 얘기, 연예인 얘기 정도였다. 여기에다 최근 들어서는 시국 얘기도 끼어들어 목소리 톤까지 높아졌다. 정치 얘기는 어디서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이상 올라가는 것 같다. 그저께는 한 주부 모임에 나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끼리 한 달에 한 번 꼴로 모이는 자리였고, 내가 한 이야기 역시 문학과 삶에 관한 신변잡기였다. 이야기 끝에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1년에 책을 몇 권 읽느냐? 연극을 몇 편 보느냐? 음악회에 몇 번 가느냐? 미술관은? 돌아온 반응은 나를 적잖이 실망시켰다. 그들은 입을 거의 봉한 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기 바빴다. 개중에는 부끄러운 나머지 머리에 손이 가거나 얼굴이 붉어지는 여성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질문을 한 내가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한 주부가 손을 번쩍 들더니 “작가님, 텔레비전 드라마 보느냐는 말은 왜 안 물어보세요?”하는 게 아닌가. 텔레비전 드라마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본다는 말이었다. 나는 그 주부가 무안할까 봐서 “아 참, 텔레비전 드라마를 빼놓고 딴 것만 물었군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겨울바람처럼 냉랭했다. 그 주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나가는 향우회 자리나 친구들의 모임 자리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다들 나이가 나이인 만큼 건강 얘기가 주를 이룬다. 어떤 병엔 어떤 음식이 좋고, 뭘 먹으면 되레 좋지 않다는 둥 다들 의사 저리 가라다. 그러니 그림이니 음악회 얘기는 아예 끼어들 틈도 없다. 어쩌다가 책 얘기가 끼어드는 것도 글을 쓰는 윤 아무개가 좌중에 앉아 있으니 안부 정도로 묻는다. “어때, 요즘 책 좀 팔려?” “시도 쓴다며?” 친구들은 건성으로 묻고 나도 건성으로 대꾸한다. “뭐, 팔리긴. 만날 그렇지.” “시? 심심하니까 그냥 써보는 거야.” 우리 사회에서 문화나 예술에 관한 대화는 왜 이리도 찾기 어려운가. “요즘 무슨 책 읽어요?” “얘들아, 그저께 본 연극의 감동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어. 너희도 한 번 봤음 해.” “어쩌지? 다음 약속 날엔 우리 남편이랑 뮤지컬 보기로 했는데…” 이런 대화를 종종 들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기왕 내친김에 더 욕심을 내본다. 하루의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주머니의 무릎에 놓인 시집 한 권, 공원 등나무 밑에 앉아 소설책에 정신을 빼앗긴 어르신, 아이를 업고 미술관에 온 젊은 엄마의 모습, 휴게실에 모여 앉아 최근 읽은 책에 대해 담소하는 도의원이나 시의원들의 여유 있는 모습… 얼마나 보기 좋을까.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법없이 살아도 행복한 새해 만들기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매순간 법을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법은 힘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만 부딪히는 많은 경우에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이 법에 의해서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1. 오래전 일이다. 추운 겨울날, 아이를 업은 젊은 아낙이 아파트의 관리비를 내기 위해서 아파트 동네의 큰길가에 차를 대고 바로 앞의 은행에 급히 들어갔다 나오다가 경찰에게 주차위반 딱지를 떼였다. 젊은 아낙은 위반을 하였지만 사정을 보아 달라고 하소연하였다. 그러나, 열혈의 경찰은 잘못을 하였으면 당연히 딱지를 떼어야 하고 경찰이 요구하는 신분증 제시요구를 거부하였으니 면허제시요청거부라고 하여 더 큰 딱지를 먹였다. 경찰은 소위 ‘법대로’ 한 것이다. #2. 수백만의 비난과 염원이 담긴 탄핵결정 앞에서, 박대통령이 ‘‘법’대로 하자’라고 하여도 당연한 것임은 틀림없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드러난 사항들을 아무리 소화하려고 하여도 법대로 한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잘못을 해 놓고 이제 와서 법대로 하자는 것처럼 들린다. 직무태만과 유기 그리고 적법한 절차가 없이 돈과 국정관련서류가 적절하지 않은 사람과의 사이에 오고 가고 하였지만, 개인 사생활의 자유의 영역이고 생각과 행동은 선의로 한 것이니 법으로 한번 따져보자고 하는 셈이다. 아마도 헌법재판소가 ‘법대로’ 잘 판단하여 줄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법이 도덕성의 방패가 되어야 할 것인가? 아득한 원시시대의 가족사회에서는 법이라는 것이 없었을 터이지만 서로 눈빛으로도 염치를 알고 살았다. 그렇지만 별의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오늘날 세상은 한순간도 법을 떠나서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법이 너무 과잉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김영란법’이 국민 대다수를 보호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막상 최초로 법의 판단을 받은 경우는 그저 너무도 보편적인 사람이고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보편적인 사후 감사의 표현, 즉 떡 한 상자의 감사선물이 처벌을 받았다. 법에 의해서 작은 선물이 이제는 개인에게는 느닷없이 폭탄으로 변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 경우에도 선의로 한 것이니 괜찮은 것이 아닌가? 이번의 탄핵에 대한 헌재의 심판과정에서 아마도 우리 사회는 이제까지 잠재되어 있던 의식의 부조리가 노증될 것으로 보인다. 도덕이 앞서야 하는 사회규범에서, 법을 빙자하여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것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번의 촛불을 밝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보편적이고 평등함에 대한 열망이 넘쳐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마음이 바로 우리 문화라고 한다면 이것은 바로 ‘빛의 대문(光化門) 앞의 문화혁명’이라고 할 수 있을 일이다. 그런데 문화혁명은 법과 규정으로 완성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바로 보편적인 행동으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가 바로 우리 사회의 누구의 마음 속에 있어서 우리의 행동을 제어하게 되는 장치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이제까지 살아왔던 모두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사회적인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도리, 즉 도덕심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촛불은 헌법재판소의 주변을 돌겠지만 우리의 의식혁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누구의 말처럼 들불처럼 번져가서 숨어 있는 나쁜 벌레들을 없애고 새해의 새봄에 새싹이 튼튼하게 돋아나서 냉철하고도 태양과 같이 강한 빛을 발하는 법의 보호 아래 따스함이 감도는 인정어린 사회가 되면 좋겠다. 배기동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아시아태평양지역 국제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현실에 적합한 단어가 부족하다

글이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시 한 줄, 소설 한 문장 읽기보다 계속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소식을 한번 더 검색하게 된다. 나만 그럴 것 같진 않다. 전국에서 수백만 명이 현직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거대한 역사의 한 장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보다 더 현장감 있고 생생하고 감각적인 언어가 있을 수가 없다. 충격과 경악으로 마비되었다가 분노로 들끓다가 이제 새로운 시간의 도래를 염원하는 물결로 굽이굽이 강을 이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상상력이 늘 현실을 못 따라간다는 뼈아픈 자성을 해본다. 문학인들에게 현실만한 스승이 있을까.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문학과 현실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현실에 적합한 단어가 부족하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현실이 우리보다 더 나은 작가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며 작가들은 “겸손하게 그런 현실을 모방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런 것이 가능할 때 비로소 최고의 작가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단언한다. 마르케스의 작품을 마술적 사실주의 또는 환상적 리얼리즘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중남미의 현실에 알맞은 언어를 찾으려고 애쓸 뿐인 것이다. 그의 글을 들여다보며 나는 아카데미즘에 빠진 한국 시단을 생각해보게 된다. 최고의 학력을 가진 이들이 쓰는 시는 얼마나 난해하고 이론적인지, 그리고 그들에 의해 교육을 받은 창작전문가들의 시는 또 얼마나 고차원적이어서 영문 모르겠는지…. 심지어 시를 난해하게 쓰라고 강의라는 명목으로 선동하는 시인도 있다고 들었다. 유명출판사에서 첫 시집과 첫 작품집을 내고서는 마치 대가가 된 양, 전국 단위의 무슨 심사, 무슨 행사에 중요인물로 초청되어 특강을 하고 세미나에 심포지엄에 불려 다니면서 의견을 발표하고, 그리고는 미래의 작가들에게 글 잘 쓰는 우상이 되어 문단 권력인 양 행세하면서 성추문이나 일으키는 풋내기 시인 작가들도 있다. 젊은 시인들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참신함, 개성, 활력이지 설익은 글 솜씨를 빌미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세속인은 아닌 것이다. 그들만을 탓할 일도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전횡을 하도록 시인하고 묵인한 것이 누구였는가를 생각해본다. 그들에게 선망의 시선을 보내며 우상화에 한몫 거든 것이 내가 아니었나를. 시는 자유며 혁명이며 사랑이라고 했던 시인 김수영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시인이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기성 권력이 하는 행태 그대로, 자신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를 짓밟고 가진 자의 만행을 부리고 있다면 어떻게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시인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적합한 언어를 찾으려고 애써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 적합한 언어는 저절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 허수경 시인은 「시인이라는 고아」라는 글에서 현실이 몸을 관통하는 순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균열을 감지할 때 온전히 경험해야 한다. 이것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다. 몸을 정확하게 통과하지 않는 범상한 시들을 나 역시 많이 쓰고 살았다. 내가 쓴 범상한 시들은 나를 괴롭힌다. 아무리 퇴고를 하고 또 해도 그 범상함은 숨겨지지 않는다.” 몸으로 온전히 경험한다는 것. 균열이 몸을 정확하게 통과한다는 것. 지금 이 시간에 시인들이 해야 할 일은 이것이다. 현실의 육화. 광장에서, 사람들의 얼굴에서, 촛불에서, 균열을 감지하고 온전히 경험하는 것. 그리고 현실에 적합한 언어를 찾으려고 애써야 한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박설희 시인

[문화카페] 역사문화도시 수원, 품격 있는 2017년을 그려본다

수원시는 올해를 ‘수원화성방문의 해’로 정하고 700만 명의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하여 올 1년간 모든 행정력과 적지 않은 시 재원을 투입하였다. 그리하여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굵직굵직한 행사들을 유치하였으며, 기존의 사업 또한 선택과 집중을 통하여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 중 성공적인 행사로 평가 받았던 사업으로서는 수원연극축제, 아시아모델페스티벌, 수원항공전, 수원재즈페스티벌, 수원화성문화제와 220년만의 정조대왕 능행차 공동재현이 있었다. 특히 서울 돈화문 앞에서 금천, 안양, 의왕을 거쳐 수원 연무대까지 전 구간을 서울시와 함께 공동 재현한 정조대왕 능행차는 국민적 관심을 받기에 충분하였다. 수원시는 수원화성을 복원하여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바 있다. 역사적인 가치로 보나 건축미학적인 가치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수원화성은 수원시가 보유한 제1의 유형 문화자원이다. 그러나 온전한 문화유산의 복원은 유형과 무형이 함께 복원되어야 온전한 복원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수원화성이 가지고 있는 무형유산의 복원 차원에서 수원화성을 기반으로 한 무형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하다. 지금은 그러한 인식하에 수원문화재단을 중심으로 무형 콘텐츠의 개발이 시도되고 있으며 서서히 그 성과가 가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매일 오전 11시가 되면 수원화성의 관문인 신풍루 앞에서 정조대왕이 편찬한 무예도보통지에 기반을 둔 무예24기 단원들의 무예 시범 공연이 벌어지고 있으며 관광객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또한 매주 주말이면 화성행궁 광장에서는 장용영수위의식과 정조대왕 거둥행사, 그리고 토요상설한마당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게다가 화성행궁 내 유여택에서는 매주 목요일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아동극 기획공연 ‘신나는 꿈나무 동화마당’이 펼쳐지고 있다. 그 많은 프로그램 중에서 단연 베스트 프로그램을 뽑는다면 야간 프로그램인 ‘달빛동행’일 것이다. 달빛동행은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하고 행궁에서 펼쳐지는 전통연희를 감상할 수 있도록 기획돼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드렸다.또한 최근 들어 화성행궁의 곳곳을 이동하며 도심 속 아름다운 궁궐의 밤을 느끼는 야경관람과 정조의 이야기를 따라 펼쳐지는 역사체험 프로그램인 ‘행궁야사(夜史)’와 전통, 현재, 미래를 주제로 특별한 손님의 이야기와 음악 그리고 차와 함께하는 ‘국악콘서트 정조, 음악과 이야기’와 방화수류정의 고풍스런 야경과 어울리는 품격 있는 음악들로 채워진 ‘방화수류정 달빛음악회’는 용연을 밝히는 가을 달과 함께 멋진 공연을 선보여 관광객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한 가지 특별했던 프로그램은 지난 9월 수원화성행궁 내 낙남헌에서 올 6월 프랑스에서 발견된 ‘정리의궤’ 채색본을 통해 새롭게 밝혀진 낙성연의 모습을 재연 공연한 ‘의궤가 살아있다’다. 문화유산의 복원이라는 차원에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관광객들의 관심을 이끈 성공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또한 지난달 초에 한옥 전통문화공간인 수원전통문화관내 홍재마루를 공연장으로 재구성해 전통의 맥을 이어온 우리의 소리와 춤사위를 전통 다과반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수원화성 풍류음악회’는 앞으로 무궁무진한 무형콘텐츠의 개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수원의 자랑스러운 무형유산인 수원화성재인청 예술을 복원하여 콘텐츠화 하는 사업의 첫 신호탄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내년에는 수원의 자랑스러운 유형유산인 수원화성을 기반으로 한 무형유산의 복원과 콘텐츠 개발을 통하여 역사문화도시 수원의 품격을 더욱 높이기를 기대해 본다. 김승국 수원문화재단 대표이사

[문화카페] 국악기는 진화해야 한다

2005년 국립국악관현악단 10주년을 맞이하여 음악학자, 지휘자, 작곡자, 연주자 등이 함께 참여하는 학술토론의 장을 마련했다. 주제는 ‘국악 관현악 이대로 좋은가?’였다. 서양 교향악단을 모방한 국악기합주가 과연 우리 음악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논의의 자리였다.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주로 전통악기에 대한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되었다. 관현악 합주를 위해서는 반드시 악기개량이 필수적이라는 의견이 모아졌다. 국악기의 특성에 기반 한 주요 질문들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악기는 같은 종류의 악기라 해도 음색이 각각 다르다. 국악기는 대체로 독주 악기로서 같은 종류의 악기라 할지라도 연주자 나름의 개성적인 음색(성음)이 있다. 그러나 관현악에서는 같은 악기끼리는 같은 음색을 낼 것을 요구한다. 둘째, 국악기는 악기에 따라 음량이 다르다. 선비가 방 안에서 조용히 연주하던 거문고와 농민들이 야외에서 농악(풍물)을 연주하던 태평소(새납)는 음량 차이가 크다. 그러나 관현악은 잘 어울리는 합주용 음량을 요구한다. 셋째, 국악기는 음정이 움직인다. 전통음악은 떨고, 흘려 내리고, 밀어 올리는 등 다양한 기법으로 소리를 살린다. 하지만 관현악은 변화 없이 쭉 뻗는 음을 요구한다. 넷째, 국악기는 반음진행이 어렵다. 국악기 구조상 잘게 쪼개는 반음진행은 어렵다. 하지만 관현악에서는 반음진행을 많이 요구한다. 다섯째, 국악기는 합주하기에는 음폭이 매우 좁다. 국악기 중 높은 음은 소금이, 낮은 음은 대아쟁이 맡는다. 대아쟁 보다 더 낮은 음을 내려면 더 긴 줄을 걸고 팽팽하게 당겨주어야 한다. 명주실 소재는 당기면 끊어지거나 꼬임이 풀어져 더 당길 수가 없다. 그런데 관현악에서는 대아쟁보다 더 낮은 음을 내는 ‘대대아쟁(?)’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국악기는 음정이 고정되어 있다. 이미 고정된 음높이로 민요를 연주하다가 조금 높게 또는 낮게 연주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관현악에서는 다양한 음높이를 요구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악기를 개량하여 국악관현악 연주에 접목시켰다. 하지만 20년이 흐른 지금도 국악기는 앙상블 연주에 많은 한계점을 드러내고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 일본, 북한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는 20세기 세계음악을 받아들이고 연주가 안 되는 악기는 개량해서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도 세계음악을 연주하려면 이 과정을 거쳐야 한다. 물론, 서양오케스트라는 앙상블 중심이고 우리 전통악기는 독주 악기이므로 태생부터가 다르다. 태생적 출발은 다르지만 이제 국악기는 전통음악 뿐 아니라 앙상블 음악 연주에 널리 쓰이고 있다. 국악기의 변신이 필요하다. 국악기 음역에 변화를 주는 것이 곧 우리 음악의 전통성을 해치는 것은 아니다. 국악기가 수 천 번의 변신을 한다고 할지라도 전통음악은 여전히 전통악기로 연주할 테니까 말이다. 다양한 세계음악 연주를 시도하며 우리 전통악기 개량의 필요성을 인식하는 가운데 국악기(도구)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국악기가 누구나, 어떤 음악에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보편악기로 변화하고, 음악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현시대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한다. 깨질새라, 끊어질새라 조바심 내며 끌어안는 것만이 전통을 보존하는 길은 아니다.전통의 존속을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대중의 요구를 반영한 현대적 변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이처럼 국악기의 음악적 유용성을 확장하는 가운데 대중적 음악생태계를 조성할 때 전통음악 역시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최상화 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

[문화카페]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지난 1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은 지난해 10월8일 개관 이후 총 9개의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미술교육, 예술 프로젝트 및 문화행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지난달까지 미술관의 누적 관람객 수(발권 자 기준)는 총 13만여명에 이른다.여기에 미술관 교육 및 다양한 형태의 문화행사 참여자 수를 더하면 관람객 수는 17만명을 초과한다. 이와 같이 기초지자체 미술관으로서 결코 적지 않은 관람객을 짧은 기간에 유치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지난 시간은 성공적이라 자평해 본다. 하지만 신생 미술관의 관장으로서 바라는 바는 적지 않다. 수원시 ‘최초의 미술관’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우리 미술관이 전국, 아니 세계 각지에서 관람객이 몰려올 수 있도록 좋은 전시, 교육 프로그램, 문화행사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물론, 지금까지 미술관이 걸어왔던 1년이라는 시간은 ‘문화’와 ‘예술’이라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위대함에 비하면 미약하지만, 향후 10년간 세계인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수준 있는 미술관을 만들기 위한 기초 작업은 분명 지금 우리의 몫임을 자각한다. 세계적으로 볼 때 수원시와 같이 지방에 건립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 루브르-랭스 박물관, 퐁피두-메츠 박물관의 관람객 수는 한 해 수십만에서 백만 명을 초과한다. 우리는 분명 ‘루브르’나 ‘퐁피두’와 같이 해외 유명 미술관이나 안도 다다오와 같은 유명 건축가의 타이틀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만의 고유 상표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물론, 지방에 건립된 국내 미술관이 꼭 세계 유명 미술관과 경쟁할 필요는 없으며 시민들을 위해 지역적 맥락에 맞게 콘텐츠를 개발·운영한다면 분명 좋은 미술관이 될 수 있다 생각한다. 세계적 미술관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장점을 살펴본다면 우선, 현대산업개발이 정성을 들여 완공한 미술관 자체의 조형적 아름다움이다.‘옛길’이라는 모티프를 건축에 응용하여 완공된 미술관 그리고 언제나 관람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뛰어난 공간구성은 결국, 올해 경기도 건축문화상 대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또한,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행궁 바로 앞에 있어 외국인 관광객 유치가 수월하며 시민들의 접근이 용이하다. 바로 이러한 여건 때문에 향후 10년 안에 우리 미술관이 세계적인 미술관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이미 광주비엔날레는 세계인들의 큰 관심을 자아내는 국제 미술 행사로 확고한 위치를 점유한 지 오래다. 최근에는 임흥순, 조민석 등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큰상을 받았고, 국·공립미술관 최초 외국인 관장으로 부임한 바르토메우 마리 리바스는 세계화 물결 속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큰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였다.이러한 시대적 맥락에서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세계화에 대해 논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미술의 대중화는 물론 창의적이고 수준 높은 콘텐츠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내년에 국내 유망 작가를 소개하는 것은 물론 비중 있는 국제 전시를 유치하는 한편,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 자유 학기제 프로그램의 정착, 지역 사회와의 문화네트워크 구축이 내년도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의 주요 과제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양인섭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장

[문화카페] 문예지의 난립과 신인작가 양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 누구보다도 가슴 설레는 이들이 있다. 신춘문예를 노리는 작가 지망생들이다. 그들은 1년 동안 준비한 응모작품을 각 일간지에 보내는 일에 거의 목숨을 건다. 그리고 눈이 빠져라하고 결과를 기다린다. 새해 첫 날은 운명의 날. 행운의 여신이 손을 잡아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낙선의 쓰라린 가슴을 안고 또 다음해를 기약해야만 한다. 신춘문예와 함께 또 하나의 관문이 문예지의 신인상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문예지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더니 오늘날엔 그 수를 헤아리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그리고 이렇게 쏟아진 문예지들은 약속이나 한 듯 신인들을 마구 양산하였다. 그 결과 작가의 수는 기학학적으로 늘어난 반면 작품의 수준은 되레 떨어졌다는 불미스런 명예도 안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 요즘 시인이나 작가되기 참 쉬워졌다. 글 좀 쓴다 하면 각 문예지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등단을 시켜준다. 물론 전통 깊고 양식 있는 문예지들은 예외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문예지 발행에 따른 재정 확보와 함께 양산한 작가들을 문단의 배후세력(?)으로 삼으려는 속셈 때문이다. 며칠 전 내가 지도강사로 나가는 도서관 글쓰기반의 수강생 L이 전화를 걸어왔다. 모 문예지 신인상 모집에 작품을 보냈더니 문예지 관계자가 좀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고 했다. 그랬더니 작품이 좋다면서 몇 가지 요구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요구라는 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들이어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헤어졌다면서 나의 조언을 듣고 싶어 했다. 요즘의 문예지들이 이렇다. 몇몇 문예지들을 제외하곤 이렇게 해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절차를 거쳐 쉽게 등단한 이들이 시인입네, 작가입네 하면서 활개를 치고 다닌다. 이는 작가 개인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일뿐만 아니라 한국문학을 위해서는 더더욱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가 등단했던 70년대만 해도 작가 입문이 참 어려웠다. 문예지의 수도 적었을 뿐더러 실력이 안 되면 꿈도 꿀 수 없었다. 특히 이름 있는 몇몇 문예지들은 추천도 한 번이 아닌 3회 추천을 통과해야만 작가의 자격을 주기도 했다. 그게 문예지의 전통이자 자존심이었다. 해서 지금도 그들 문예지로 등단한 작가들은 자부심을 갖고 활동할뿐더러 후배들로부터도 존경과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쯤 돼야 문예지요, 문학인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다. 내게 전화를 걸어 조언을 청했던 수강생 L이 휴대폰 문자를 보내왔다. “선생님, 고민 끝에 저쪽의 요구를 거절하기로 했어요. 남편은 요즘 세상이 다 그러니 어려운 잡지 하나 도와준다 생각하라고 했지만 제 자존심이 허락을 안 하네요. 아직 제 실력도 모자라고요. 좀 더 공부를 한 뒤에 제대로 대접을 받으면서 떳떳이 등단하려고 해요.” 이에 나도 흐뭇한 마음으로 문자를 보내줬다. 잘 생각했다고. 서둘지 말라고. 늦게 가도 자기 몫은 남아 있는 법이라고. 그리고 그게 알고 보면 멀리 걸어가게 하는 힘이라고. 그렇다! 실력을 갖춰서 떳떳하게 등단하는 것, 그게 신인의 올바른 자세다. 그리고 그런 자리를 마련해주는 게 문예지의 책무요 사명이다. 신춘문예가 아직도 문학 지망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경주로 여행 갑시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유네스코 교육기구(UNESCO APCEIU)의 일로 세계유산인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사원을 방문하여 우리나라가 국제원조기구를 통해서 이곳의 사원을 복원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속에는 작은 감동이 일어났다. 그 일을 맡고 있는 두 젊은 학예사의 밝은 얼굴에는 ‘헬 조선’이라는 그림자를 볼 수가 없다.그 더운 오지에 일 년에 5백 만 명이상의 관광객이 기꺼이 하루에 입장료로 수 만원을 지불하면서 전 세계로부터 온단다. 그리고 문화유적의 관광수입은 캄보디아 총생산의 거의 20%를 차지한다고 하니 좋은 유적의 힘이 얼마나 나라의 국가경제에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환경오염이나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공장들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는 사례인 셈이다. 그런데 캄보디아에서 돌아오는 그날 오후에 국제회의를 참석하기 위해서 도착한 경주는 도시 전체가 바로 산속의 절간이다. 천년 고적들의 혼들이 소리 나지 않는 말로서 나의 정신을 상쾌하게 만들지만 명승지에서 삶의 구수한 소리와 냄새는 느낄 수가 없다. 줄선 관광버스도 없었고 울긋불긋한 등산복차림의 관광객들도 보이지 않는다. 금세 나의 머릿속에는 오늘날 이 천년고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걱정이 태풍처럼 몰려 왔다. 경주에서 느끼는 지진의 충격은 피부에 와 닿았다. 한국에서는 유래가 없었던 이번 지진의 경우 오늘날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새로운 경험이 되고 있는 것은 그 진앙이 한반도의 동남지역인 영남지역에 있지만 서울에서도 그 진동을 느끼고 지진의 충격이 마음 속 깊이 새겨졌다는 점에서이다. 그런데 경주에서 느끼는 것은 우리 마음의 지진이 더 큰 지진이라는 점이다.지진이라는 자연재해보다도 인간의 마음에 큰 상처를 주는 것은 바로 지진에서 오는 공포를 확산하는 일이다. 텅 빈 경주고도의 주차장들은 그 앞의 식당주인의 걱정스러운 눈빛에서 느끼듯이 나같이 문화유산전문가를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걱정이다.위축된 관광경제를 살리기 위하여 우리 사회가 방도를 마련하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문화유산을 통한 관광경제가 살아나야지 경주가 살아나고 문화유산이 잘 보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주문화유산은 우리의 대표적인 자존심의 상징이 아닌가! 경주의 문화유산은 경주인들만의 것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유산이자 더 나아가서는 인류의 세계유산이다. 그 보존의 책임은 바로 우리 국민이 지고 있는 것이고 만일 문제가 있다면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고 민족의 자존심 문제이기도 하고 또한 우리 사회의 미래지속가능성이 숨어 있는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재난이 닥쳐온 이럴 때일수록 우리 국민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경주를 방문하여 경제적인 힘을 보태어 준다면 경주시민들도 자부심을 느낄 뿐 아니라 한편으로 문화유산의 보존에서 오는 공동체의 힘을 보여줄 수 있다.특히 한국 사회가 항상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적인 발전이 항상 지방민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는 점에서 경주의 지진경제에 대한 우리 공동의 관심과 참여는 우리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일이 아닐까? 멀리 한반도의 동남쪽에 있는 경주이지만 경기지역의 주민들에게는 특별한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문화도시이다. 대륙서쪽으로부터 오는 문화를 받아들이고 우리 민족의 서방진출의 관문으로서 경기지역, 특히 경기만지역이며 고대에는 바로 그 실크로드 문화의 종점이 바로 경주였던 것이다. 결국 경기만, 특히 화성당성과 경주는 고대 한반도실크로드의 시작과 종점으로 연결되는 셈이다.지금도 국가사적인 화성 당성의 입구에 가면 경북도지사의 방문비가 있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이제 지진의 거칠고 두려운 진동이 정치적인 진동으로 사라져 가는 이 때에 우리 경기인들이 경주로 가는 길은 정말 ‘우리 마음의 실크로드’를 놓는 길이 아닐까? 경주로 갑시다. 배기동 한양대학교 교수·아시아태평양지역 국제박물관협회장

[문화카페] 재난 이후

지난 9월 28일에 개봉한 ‘설리:허드슨강의 기억’은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를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감독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한 이 영화는 2009년 탑승객 전원이 생존한 비행기 사고를 그린 실화다. 이륙하자마자 새떼와 부딪치는 바람에 엔진이 다 망가진 비행기에서 매뉴얼대로 침착하게 해야 할 일을 하는 기장. 그는 승객들을 대피시키고 맨 끝자리까지 확인한 다음에 마지막으로 탈출을 한다. 그런데 영화는 체슬리 설리 설렌버거 기장의 영웅적인 행위를 부각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조사위원회는 부근 비행장으로 회항하지 않고 강 위에 착륙한 것이 과연 ‘최선’이었는가를 묻는다. 공항으로 갔더라도 충분히 착륙할 수 있었는데 무모한 모험심, 혹은 경박한 영웅심 때문에 강물 위에 불시착시킨 게 아니냐는 것이다. 냉정하게 묻는 조사위원회 앞에서 기장 역시 자신의 판단이 옳았는지 끝없이 자문한다. 어쩌면 빤할 수도 있는 영화의 내용에 긴장감을 불러넣는 것이 이 지점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사후의 조사와 시뮬레이션 실황 등이 펼쳐지고 직감에 의존한 그의 판단이 옳았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허드슨 강 위에 떠 있는 비행기와 탈출해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우연히 강 주변에 있다가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신속히 몰려와 전원을 구조해내는 배들의 모습이 뇌리에 오래 남는다. 구조 작전은 24분만에 끝났다. 영화에서 설리 기장은 비행기가 빌딩과 충돌하는 악몽을 자주 꾼다. 미국인들이 지금도 9·11테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국인들은 그 재난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위기 상황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수없이 되뇌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4·16세월호의 모습이 겹쳐 떠오른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철저한 원인규명이 필요하다. 도대체 배 하나에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얽혀 있는 걸까? 세월호 변호사로 알려진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국회의원이 22일 거창군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해경은 배가 기울었는데 선장과 선원을 먼저 구해냈고, 선내 진입은 물론 밖에서 퇴선명령도 내리지 않았다. 선장은 구조 당일 경찰의 집에서 잤으며, 세월호는 운항정보 등을 국정원에 보고했지만, 쌍둥이 배인 오하마나호는 그러지 않았다. 철근 400톤이 실려 있다는 사실, 국책은행이 돈을 더 빌려준 사실, 청와대가 적절한 지시를 했는지 등 많은 의혹이 남아 있고, 그런 것들을 점검해야 한다”(거창공보뉴스 2016년 10월 22일자)라고 밝힌 것처럼 2년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도 온통 의문투성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세월호라는 말만 하면 경기를 일으키며 ‘너 불순세력이지?’ 하는 눈초리로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최근에 문화예술계를 떠들썩하게 들쑤셔놓은 블랙리스트만 해도 그렇다. 이른바 세월호 관련 시국선언을 한 작가와 예술인들을 문화예술위원회 심사위원이나 예술지원금 명단에서 제외시켰다는 것인데 대규모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원인 규명을 하자는데 왜 블랙리스트에 올라야 하는지 모르겠다. 한 사회에는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내편, 네편 가린다면 끝없는 반목과 갈등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현재의 한국문화예술은 다양성의 가치와 의미를 존중하며 오랜 기간 힘겹게 쌓아 올린 자산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문화계에 대한 원칙이 그립다. 박설희 시인

[문화카페] 화성재인청 예술의 부활 꿈꾸며

조선조 전통공연예술사의 중심을 이루었던 것은 재인(才人)이었다. 재인은 광대(廣大), 창우(倡優), 화랭이, 산이 등의 명칭으로도 불렸다. 이들은 조선조 말까지 직업적인 민간 예능인의 연예활동을 행정적으로 관장하던 기구였던 재인청(才人廳)에 속하여 공연예술 활동을 하였다. 재인청은 주로 경기, 충청, 전라도에 있었으며 수원에도 경기 지방을 대표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화성재인청이 있었다. 화성재인청이 수용하고 있던 예능의 기능은 전통 무형문화 유산인 음악, 무용, 연희(演), 놀이, 의식, 무예 등 가(歌)·무(舞)·악(樂)의 다양한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었다. 조선조 정조시대의 ‘화성성역의궤’와 ‘정리의궤’ 속에 화성행궁 낙남헌(洛南)에서 펼쳐진 ‘낙성연도(落成宴圖)’에는 수원화성에서 펼쳐진 지배계층을 수용층(受容層)으로 하는 궁중정재(宮中呈才)와 기층민(基層民)을 수용층으로 하는 가(歌)·무(舞)·악(樂)이 융합된 민간 연희의 다양한 장면을 찾아 볼 수 있다. 그것은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회적 변화에 따라 문화적 가치가 변용되었으나, 그 문화 내용은 오랜 시간을 통하여 축적하여 온 다양한 문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화성재인청이 지니는 문화적·역사적 가치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한 문화적 보고(寶庫)라 할 것이다. 따라서 화성재인청은 우리나라 전통문화 유산의 보고이자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는 것이기에 주목해야 한다. 조선조가 멸망하고 일제강점기에 접어들어 일제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에 따라 화성재인청도 자연스럽게 붕괴되었다. 화성재인청의 붕괴에 따라 그 조직과 기능이 인멸되어 현대사회에서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문화기반을 잃고 있음은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문화유산의 복원은 유형과 무형이 함께 복원되어야만 온전한 복원이라고 할 수 있다. 유형유산인 수원화성은 복원되었는데 무형의 문화유산이 함께 복원되지 못했다. 화성재인청의 복원이 이루어져야 수원화성의 온전한 복원도 그 모습을 갖출 수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2004년에 수원에 화성재인청복원사업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바 있으며, 경기문화재단의 후원으로 2006년까지 3개년에 걸쳐 ‘화성재인청’과 그 예술의 보존·전승을 위한 학술회의를 개최하여 ‘화성재인청’ 복원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으나 더 이상 확산 발전되지 못했던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었다. 중차대한 사업의 구체적인 결실을 위하여서는 화성재인청 복원과 연관된 전문적인 학자들과 전통예술가들이 공동의 장을 마련하여 체계적이고 완벽한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화성재인청 의 복원과 예술의 보존·전승을 위한 공동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앞으로 수원시는 화성재인청 복원의 실현을 통하여 수원시민들에게는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이어받은 전통적 문화도시 수원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부여함은 물론, 경기도의 중심도시로서 수원시에 꽃 피었던 화성재인청의 전통예술을 국내는 물론 세계에 보여줌으로써 전통문화도시로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김승국 수원문화재단 대표

[문화카페] ‘치세지음’ 프로젝트

경기도립국악단이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았다. 1996년 8월 창단 이후 경기도 소리를 중심으로 우리 전통음악의 명맥을 잇고 발전시키는 것에 목적을 담아 다채로운 활동을 펼쳐왔다.올 초부터는 ‘치세지음 (治世知音·세상을 다스리는 음악)’ 프로젝트를 통해 국악관현악의 음역을 확장하고 전통악기를 보편적인 악기로 바꾸기 위한 노력의 과정을 이어왔다. 20주년 성년으로서, 국악이라 불리는 특수한 음악이 아닌 음악을 하는 보편적인 악단으로 거듭날 것이다. 국악의 대중화를 목표로 서양 오케스트라의 형식을 빌린 국악관현악이 생긴지 50여 년, 경기도립국악단이 창단된 지 20주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국악관현악단은 길게는 천년, 몇 백 년 넘게 원형을 유지한 국악기로 변화를 꾀하며 성장해왔다. 이는 음악의 도구로 각 시대의 음악을 소화했기에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전통을 지키는 것에만 급급한 박제화 된 음악으로 남을 것인지, 시대를 관통해 현대인의 감성에 새로운 느낌으로 스며들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서양 음악에서는 기교 향상을 위해 파가니니,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이 있듯, 국악에도 연주자의 기량을 높이고 보편화를 위해 악기별 체계화된 연습곡이 반드시 필요하다.경기도립국악단은 국내 최초로 1천 페이지에 달하는 악기별 연습교본을 직접 제작하여 음계와 조성의 변화가 어려운 국악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수련 과정을 갖고 있다. 교본은 기교면에서 모든 국악기가 어려움이 없이 그 어떤 음악도 연주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기 위해 만들어진 연습악보이다. 전통악기의 숙련은 기본이고 각 악기별 음계 폭을 넓혀 단원들의 개인 역량강화에 귀중한 초석을 만들어지고 있다. ‘치세지음’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우리 악기와 음악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수반되어야 한다. 국악기가 가진 장점은 독특한 시김새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세계 음악을 국악기가 가진 특징으로 표현해낸다면 서양악기보다 매력적인 음악들을 발굴할 수 있을 것이다.‘치세지음’은 우리의 국악이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전통 음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본이 될 수 있고 악기 파트별 보편성의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연주자 스스로 연주법을 개발하고 그에 맞는 악기를 개량하며, 레퍼토리 확장이 가능할 것이다. 지난 10월 9일 경기도 여주시 영릉에서 훈민정음 반포 570돌 기념 한글날 경축행사가 있었다. 영릉은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인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합장하여 모신 왕릉이다. 세종대왕은 ‘치세지음, 세상을 다스리는 음악이 편하고 즐거우면 정치가 조화를 이룬다’는 옛 선현들의 뜻을 계승하고자 하였다.그리고, 중국의 음악이 아닌 우리만의 고유한 음악을 만들고자 노력하였다. 경기도립국악단은 매년 한글날 공식행사에 참여하여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세종대왕의 염원처럼 국악단의 ‘치세지음’이 우리 음악의 옛 영광을 되찾고 우리 음악의 가치를 전 세계에 알리는 데 초석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본다. 최상화 경기도립국악단 예술감독

[문화카페] 나의 안성 작업실

지난 주말 나의 작업실에 손님들이 찾아주셨다. 경기문화재단이 주최하는 경기지역 예술가 작업실 오픈 프로젝트 옆집에 사는 예술가 : 안성편으로 진행된 첫 만남이었는데 이런저런 전시 준비로 분주한 가운데에도 손님맞이에 대한 기대 반 염려 반으로 설레었다. 그들은 나의 작업실에서 무엇을 볼까?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나? 나의 작업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등을 다시 생각 할 수 있었다. 십여 년간 일구어온 입시미술학원을 접고 늦은 유학을 다녀온 직후 작업실을 지을 생각으로 두달여 부지를 찾다가 야트막한 언덕에 둘러쌓여 편안한 느낌이 드는 이곳 미양면 오양골에 안착하게 되었는데, 인적은 물론 길도 제대로 없는 땅을 나뭇가지 헤쳐 가며 찾아들어 여기가 좋겠다 하니 땅을 소개한 부동산 사장님도 정말 괜찮겠냐고 걱정을 해주던 곳이었다. 돌이켜 보면 도시를 떠나 외딴 골짜기에 집을 짓고 정착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전화와 인터넷이 제대로 연결되기까지의 몇 년간은 전신줄을 남의 과수원 땅에 몇 백 미터나 연결하여 사용했는데 비가 오거나 바람만 좀 심해도 통신이 때때로 두절되어 어디가 끊어졌는지 그 전선줄을 모두 훑어야 했다.포장이 안 된 진입로는 눈이 많이 오거나 봄이 되어 언 땅이 녹으면 4륜 구동차도 대책 없이 헛바퀴만 도는 그런 길이어서 인근 마을 사람들은 아마도 오래 살지 못하고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마련된 나의 작업실은 지금까지 나의 작가로서의 삶을 지지하고 있다. 한 해 한 해 조금씩 심은 묘목들이 자라서 숲을 이루고, 사계절 따라 달리하는 모습을 보면서 색의 조율과정 자체가 그림이 되는 나의 회화적 방법론을 일구었고, 마당에 서면 너른 호수같이 올려다 보이는 하늘을 보면서 무한하게 깊은 푸른색을 얻었다. 제멋대로 자라지만 언제나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고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잡초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를 비워 자연스러움에 도달하려는 생각도 갖게 되었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열다섯 차례 열린 개인전 작업의 아이디어를 이곳 안성 작업실에서 얻었으니 그간의 어려움은 갚고도 남으리라. 예술가의 작업실은 쓸모없는 상상력이 허락되는 자유 공간이며, 작가들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몽상이 마침내 새로운 존재물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또한 그곳은 개별 작가의 예술적 열망을 실현해나가는 사적공간이면서도 인간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 나가기 위한 전진기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안성에는 이렇듯 자신의 세계를 열어 나가기 위해 묵묵히 작업하는 미술작가들의 작업실이 많다. 주로 마을의 끝자락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작업실들은 이제 십 수년 이상씩을 넘긴 작업 공간으로서의 관록이 느껴지고 말없이 서로를 격려하고 지탱하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마침 옆집에 사는 예술가 : 안성편에서는 10월말까지 매주 토요일, 열다섯 명의 안성 작가들이 돌아가며 작업실 문을 연다. 방문객들은 이들의 작업실에서 살아가는 또 다른 세상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또 팍팍한 현실을 사는 우리네 마음속 깊숙이 잠들어있는 감성을 일깨워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의 또 다른 가치를 찾게 해주는 계기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가을의 만남이 내게 가져다준 행복감을 다른 분들도 많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전원길 서양화가

[문화카페] 밥상을 받으며

받을 때 가장 기분 좋은 상은 밥상이라고 한다. 밥상을 받는 사람에게 왜 상을 받느냐고 시비를 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밥상은 사람만이 받는 것이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밥과 찌개, 적당히 간이 맞는 반찬은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하고 새로운 내일을 기약하게 한다. 밥상을 받기도 하고 차리기도 하면서 식구(食口)들은 유대감을 돈독히 한다. 그 식구 중의 하나가 시인이라면 ‘질투는 나의 힘’ 운운하며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다. 그런데 밥상을 받을 때와는 달리, 상을 받으면서 스스로 찜찜해지거나 구설수에 오르거나 심지어 비난에 직면해야 하는 때가 있다. 바로 명분 없는 상을 받을 때다. 폭염으로 전국이 절절 끓던 지난 여름, 한국문인협회(문협)에서 ‘육당문학상’, ‘춘원문학상’을 제정하기로 해서 논란이 뜨거웠다. 친일행위는 비판해야 마땅하지만 작품은 독립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과, 일제의 요구에 자신의 재능을 이용해 최선을 다한 인물들인데 굳이 문학상까지 제정해야 하는가라는 입장이 팽팽히 맞선 것이다. 문효치 문협이사장은 두 사람의 친일행위는 분명 비판도 하고 반성도 해야 할 일이지만 작품은 독립된 생명체라 발표한 뒤에는 독자의 것이 된다며 작품까지 평가에서 제외하는 것은 한국문학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육당 최남선과 춘원 이광수 두 사람을 빼놓고 한국문학사를 이야기할 수 없고 그들의 작품은 작품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에 동의한다. 하지만 작품을 평가하는 것과 문학상을 제정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더구나 친일 청산 문제는 아직까지도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들끓는 여론에 밀려 문협에서 상 제정을 철회해서 결국 육당문학상과 춘원문학상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이번 일로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작가와 작품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해묵은 문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당 서정주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한국어의 부족장이라 불릴 만큼 언어의 연금술사며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중의 한 명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작품의 성과에 비해 그의 행적이 지나치게 낯부끄러운 것이 사실이다. 일제시대의 친일도 모자라 권력에 대해 그는 평생 해바라기형 삶으로 일관했다. 특히 5·16 군사쿠데타 예찬과 전두환 찬양시 등을 써서 후배 시인들을 실망시켰다. 어느 사회에서 시인이라고 불릴 때 그의 사회적 위치와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으며 그에 따른 책임 역시 막중해진다. 더구나 상까지 제정해 기릴 정도면 문학적 성과뿐만 아니라 그의 역사관과 세계관 역시 평범한 사람들보다 넓고 깊으리라고 기대하게 된다. 미당에 대해 한국의 시인들이 애증을 갖게 된 연유도 그만큼 그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시인인데 대한민국의 대표 시인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처신을 했기 때문이다. 미당의 문학적 성취와는 별도로 미당문학상이 갖고 있는 딜레마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작가와 작품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가. 가을이 되자 여기저기서 수상 소식이 들려온다. 시상식에 가서 마음껏 축하도 하고 왔다. 그런데 오늘 아침 밥상을 받아 뜨거운 밥에 김치를 얹으며 문득 이런 생각이 난 것이다. 상은 역시 밥상이 최고며 마음 편히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이라고. 그나저나 요즘 고민 중인 시 한편이 왜 이리 잘 안 풀리는지 모르겠다고. 박설희시인

[문화카페] 중국 실크로드 활용법이 주는 교훈

실크로드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제는 단지 인간 역사의 대서사시로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일대일로, 즉 중국이 신실크로드 정책으로 세계를 재구성하려 하고 있다. 고대의 실크로드들을 새롭게 연결하여 중국으로 통하게 하는 국가전략이다. 이것은 단순히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실행되는 것이 아니다. 며칠 전, 중국 사천성의 청두에서 있었던 국제박물관들의 모임의 주제도 바로 실크로드였다.현재 세계 곳곳에서 거의 모든 중국의 역사가들을 비롯한 인문학자들이나 심지어 과학자들까지도 여러 국가들의 학자들을 초빙하여 실크로드를 설파하고 있다. 이제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나오는 유적들을 연결하는 길을 재구성하는 것만이 아니고 인터넷의 실크로드도 새로운 중화의 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다. 바로 중국의 인터넷포탈업체인 알리바바가 선언한 것이 인터넷 디지털 실크로드다. 실크, 즉 비단은 인간이 발명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우아한 직물이자 고귀한 발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문명의 시작에서부터 오늘날 현대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사랑을 받는 물품이다. 로마인들이 중국에서 나는 비단을 보았을 때 아마도 미치도록 좋아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름답고 희귀한 것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어떤 어려운 길을 뚫게 되는 법, 수많은 강과 산 그리고 죽음의 사막을 건너서 유라시아 대륙을 오가는 길이 바로 실크로드였다. 물론 실크로드가 비단만을 구하기 위한 길은 아니었다. 좁은 낙타나 말 등에 무엇을 그리 많이 실을 수 있었을까? 바로 희귀하여 값이 금값 이상이 되는 것들이었을 것이다. 한반도 내륙실크로드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화성의 당성에 대해서 학술회의를 할 때 중국인들은 교역품으로 호랑이가죽모피를 예를 들었다. 그렇듯 값비싸고 최고의 토산품들이 이 길을 따라서 이동하였던 것이다. 최근 들어서 여러 곳의 학술대회 등에서 중국의 실크로드 정책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유대를 만들기 위해서 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전략에 감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그 엄청난 기세에 짓눌리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가깝게는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나라들이 연결되고 멀리는 아프리카의 탄자니아와 케냐 등의 나라들도 바로 실크로드로서 연결하여 교류하고 있다.지난해에 탄자니아에서 중국 정화제독의 실크로드 전시회를 보았을 때 고대의 실크로드가 현대 중국에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를 절감하였다. 실크로드는 아프로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3분지 2를 중국에게 연결해 주는 셈이니 경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정말 무엇보다도 귀중한 중국의 세계문화유산이다. 이제는 실크로드는 세계유산으로 되는 과정에서 통국가적으로 유네스코가 엮어주게 되어 있으니 얼마나 좋을 것인가를 알만하다. 중국의 실크로드 활용법은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우리문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국가적으로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물론 우리도 열심히 잘 하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해서 지속성이 있고 정밀한 전략을 가지고 실행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아직도 답하기가 쉽지 않다.문화예산은 가장 쉽게 깎이게 되고 문화시설들은 낡아도 개선할 전망이 밝지가 않다. 아직도 문화는 공짜고 덤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도 전통문화의 발전적인 전승이나 활용 그리고 우리의 미래문화에 대한 비전이 확실하지 않은 점이 가장 큰 우려이다. 이제 디지털에서도 중국의 문화적 비전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우리의 모습이 윤이 나고 허우대가 볼만해야지 관광도 지속적으로 잘 될 것이고 또한 사람이 깔보이지 않지 않을까? 웬만한 우리나라 국립박물관보다도 더 크고 화려한 쓰촨 청두시립박물관 앞에서 그저 쫄아 드는 기분이 드는 것은 나의 기백이 죽어서만은 아니다. 배기동 한양대 교수·국립박물관재단 이사 아시아태평양지역박물관협회 회장

[문화카페] 가을입니다

글을 쓰는 관계로 우리 집엔 우편물이 조금 많이 오는 편이다. 잡지사에서 보내오는 월간지와 계간지, 지인들이 보내오는 신간 서적 등등해서 거의 하루도 거르는 일이 없다. 그런데 그 많은 우편물 가운데 눈을 씻고 찾아도 찾을 수 없는 게 있으니 그건 바로 편지다. 그러고 보니 편지를 받아 본 게 언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며칠 전에 나는 두 통의 엽서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주머니에 쏙 들어갈 만한 크기의 작은 판형의 시집을 내고 이를 몇 분에게 보냈더니 그 중 두 분이 고맙게도 엽서를 보내준 것이다. ‘보내주신 시집『빈 주머니는 따뜻하다』감사히 받았습니다. 손 안에 잡히는 깜찍한 판형에 로맨틱한 서정성·휴머니즘이 이끄는 단장(短章)들에 시의 별미를 맛보았습니다.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으면 합니다.’ 이는 안양의 시인 김대규 선생의 엽서고,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주옥같은 시들이라 단숨에 다 읽었습니다.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시는 짧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저분하면 안 되지요. 깔끔해야지요. 졸시 보내드립니다. 늙으면/누구나 섬이 된다/섬만 섬이 아니고/혼자 있는 것은 모두 섬이다-『섬』’. 이는 오산의 시인 조석구 선생의 엽서다. 우편엽서는 가로 9.5㎝, 세로 15㎝밖에 되지 않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제2종 우편물이다. 앞면은 받는 이의 주소와 보내는 이의 주소를 기재하도록 돼 있고, 뒷면은 용건을 쓰도록 돼 있다. 그러니 굳이 봉투를 구입하지 않아도 되고 우표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참 간편한 우편물이다. 단,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이 있긴 하나 그 또한 특별한 내용이 아니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러다 보니 전에는 엽서를 사용하는 이가 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특히 여행자들이 여행지에서 간단한 안부를 전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그림엽서도 그래서 인기가 높았다. 하지만 오늘날 엽서는 우체국에서 가장 판매가 부진한 우편물이란다. 그만큼 사용하는 이가 줄었다는 뜻이다. 하긴 이메일, 카톡에다가 핸드폰, 문자 메시지 등 다양한 정보 전달 매체가 있는데 굳이 편지나 엽서를 이용할 이유도 없다 하겠다. 그런데 왜 초고속 정보 전달 매체에는 ‘감동’이란 게 없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감동은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니라고. 수고와 정성을 들여야만 비로소 감동은 사람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킨다고. 엽서는 꼭 해야 할 말만 적어야 한다. 한정된 지면 때문이다. 긴 장문의 편지와 구별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이 얼마나 부담 없는 인사요 소식 전달인가. 수다스런 말을 읽어 줘야 하는 수고가 없다는 것도 상대방에 대한 배려다. 올여름은 무지무지 더웠다. 섭씨 35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렸다. 걸핏하면 찾아오던 태풍도 올해는 어디로 갔는지 꼼짝하지 않았다. 뜨거웠던 계절 덕분에 올가을은 더욱 서늘한 계절이 되리라.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펼쳐질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이 우리들 눈앞에 와 있다. 이런 날, 엽서 한 장 쓰는 건 어떨까.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보지 못한 먼 곳의 지인에게 묵혀 두었던 마음 한 장 전하는 일은 어떨까. 가을이 왔다고. 결코 잊지 않았다고.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달빛 품은 화성을 거닐다

팝가수 앤디 윌리암스(Andy Williams)가 부른 ‘Moon River’를 들을 때마다 휘영청 달 밝은 밤, 달빛에 부서지는 금빛 물결이 흐르는 낭만적인 강의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달은 동서양과 남성과 여성, 그리고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의 정서에 깊이 호소하는 불변의 소재이다. 달은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부드럽고, 포근하고, 몽환적이며 서정적인 이미지를 준다. 그래서인지 달은 사람들에게 기대고 싶은 친구이자, 소망을 구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달’하면 연상되는 명사로는 연인, 어머니, 그리움, 낭만, 풍류 등을 꼽을 수 있다. 문학작품의 예를 들어본다면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三更인제/ 일지 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라고 노래한 고려시대의 문신 이조년의 ‘다정가(多情歌)’는 달을 소재로 한 시(詩)로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또한 “달하 높이곰 도다샤/어기야 머리곰 비치오시라……”라고 한 백제가요 ‘정읍사’는 달을 통하여 지아비에 대한 그리움과 애틋한 정을 노래한 불후의 고전이다. 달빛에 젖은 성곽의 모습 또한 아름답다. “황성(荒城) 옛터에 밤이 깊어/월색(月色)만 고요해…”라는 대중가요 ‘황성옛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통적 정서로서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華城)은 낮에 보아도 아름답지만 달빛에 젖은 모습은 더욱 아름답다. 그래서 수원문화재단은 달이 사람들의 심성에 깊이 파고드는 점에 착안하여 ‘달빛 품은 수원화성을 거닐다’라는 주제로 ‘수원화성 달빛동행’이라는 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달빛동행’은 5~7월 상반기와 8~10월 하반기로 나뉘어 매월 음력보름 전ㆍ후 달빛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기간 동안 20회, 매회 120명의 관람객을 대상으로 수원화성에서 진행하는데, 2014년 시작 이래 38회 동안 매진기록을 이어가며 4천여 명의 유료관람객과 함께한 수원시의 대표 야간관광 콘텐츠로 각광받고 있다. ‘달빛동행’은 성곽의 아름다운 달빛야경을 통해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새롭게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된 고품격 야간관람 프로그램으로서 문화관광해설사(달빛지기)가 들려주는 깊이 있는 해설과 함께 수원화성 성곽 길 따라 달빛 야경을 즐기고 조선시대 행궁의 건축의 백미, 화성행궁에서 펼쳐지는 전통연희를 감상하는 순서로 구성돼 있다. 그 중 화성행궁 후원에 있는 정자(미로한정)에서 대금연주에 얹어 시조와 전통 입춤이 어우러진 공연 ‘선비의 풍류’는 마치 관람객이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 빠져 들어가 있는 것 같은 몽환적 착각을 하게 할 정도로 일품이다. 특히 화홍문 인근 용연(龍淵)에서 바라보는 달구경과, 방화수류정에서 바라보는 용연(龍淵) 위에 비친 달빛과 어우러진 버들가지를 바라보는 것은 수원팔경 중 으뜸으로서 용지대월(龍池待月)이라 하여 인공과 자연이 어우러진 한 폭의 장관을 이룬다. 또한 달빛동행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야간 화성열차’는 달빛을 품어 황금색으로 빛나는 웅장한 성곽의 모습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며, 마지막 코스인 화성행궁 유여택(維與宅)에서 경기도립국악단과 무용단이 함께 펼치는 ‘궁중연희 달빛향연’은 우리 전통예술 진수의 향유와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 ‘수원화성 달빛동행’은 성공한 관광 콘텐츠로 자리를 잡았다. 몸과 마음이 지친 도시인들에게 아름다운 수원화성의 야경을 바라보며 도심 속 고궁에서 마음의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달빛동행’을 자신있게 추천 드리고 싶다. 김승국 수원문화재단 대표

[문화카페] 태교도시로 문화 정체성 찾는 용인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관심은 자치단체 및 지역문화재단들의 적극적인 문화사업 개발과 함께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사업들이 과연 해당 지역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역문화를 대표하는 사업이 되기 위해서는 정체성과 차별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간과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용인시 역시 이러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용인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었고 그 결과, 세계 최초로 ‘태교도시’를 선포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정찬민 용인시장은 ‘사람들의 용인’을 대한민국 최고의 ‘태교도시’ 로 시민과 함께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 표명과 함께 용인문화재단을 통해 다양한 태교 관련 사업을 추진해나갔다. 용인문화재단은 정부로부터 유아문화예술교육기관으로 선정된 것을 토대로 태교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용인청덕도서관, 포은이벤트홀, 마루홀 등의 운영공간에서 시민들과 다양한 만남을 시도했다. 뿐만 아니라 그 영역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중앙대교육원과 함께 새로운 태교예술교육 프로그램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용인시는 어떻게 이러한 브랜드를 개발한 것인가? 이에 대해 박숙현 이사주당기념사업회 회장은 “이사주당은 215년 전 세계 최초의 태교전문서인 ‘태교신기’를 용인에서 저술함으로써 태교를 전문 영역으로 개척한 학자이다. 용인시가 태교도시가 될 수 있는 역사성, 정통성, 차별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문제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소중함을 인식하고 개발하고 발전시켜나가고자 하는 의지이다. 돌이켜보면 용인시는 그동안 용인경전철을 비롯한 무리한 사업들로 인해 부채상환의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하지만 용인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오히려 보다 근본적인 문화를 찾는 것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 결과 본의 아니게 숨겨져 있던 ‘태교도시’를 이끌어 냈다. 이는 일회성 행사 등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는 작금의 지역 문화 사업에 대한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고무적인 성과로 평가되고 있다. 사실 전국의 기초자치단체는 이미 지역 축제의 한계성을 인지하고 그 탈출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시행되고 있는 축제를 폐지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따라서 축제의 차별화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있지만 그리 만만치는 않다.결국 지역문화는 정체성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방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만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바로 전국에 있는 지역문화재단들의 의지이다. 이와 관련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는 이미 ‘지역이 해답이다. 문화로 소생하는 지역공동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해 함께 고민해왔다. 이쯤에서 이루어져야할 것은 정부와의 네트워킹이다.‘문화융성’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지원에도 불구하고 기초지역의 풀뿌리 문화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시급하고 유일한 해결 방안은 정부와 지역문화재단과의 소통과 협업인 것이다. 이를 통해 전국 곳곳의 작은 마을에서 문화로 삶이 변하고 문화로 행복한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의 궁극적인 비전이다. 김혁수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회장

[문화카페] 죽살이의 철학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가?’라는 명제의 해답을 제시한다기보다는 하나의 방향은 시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건설적 운영과 시스템 속에서 이 문제를 생각해보자. 우리의 옛 어른들에게는 삶이란 문제는 죽음의 문제와 함께 생각하는 인식이 있었다. 그러므로 인생(人生)이란 무엇인가 하면 그것은 생사(生死)라고 답하였다. 그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옮기면 ‘죽살이’라는 표현이다.즉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자는 논리다. 진정한 용기,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려는 의지, 이 모든 일들이 죽음 앞에서 흔들린다. 죽음 즉 생사를 뛰어넘으면 그 해답은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면 죽음을 먼저 생각하고 나서 살 것을 생각하는 옛 어른들의 참 지혜가 진정한 삶의 자세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디 그것뿐인가. 죽음을 생각하는 지혜가 생활 속에 그대로 용해되어 있었다. 옛 어른들의 생활구조에는 4대 선대들을 봉사하는 사당(祠堂)문화가 대단히 발달되어 있었다. 산자의 생활 중심도 집안의 사당문화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집안의 대소사는 물론, 들고 날 때도 조상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먼저 고하였다. 집안에 4대 봉사하는 사당을 두었다는 사실은 죽음을 생활 속에서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집안의 큰 어른은 불천위 제사라고 하여 영원토록 제사를 올리는 이상으로 내세웠으며 가문의 큰 영광으로 여겼다. 그것은 하나의 위계질서요, 욕망의 크기를 줄이는 선인들의 지혜였다. 우리말 ‘죽살이’ 즉 죽었다고 생각하면 욕심이 적어져서 개인을 위해서가 아닌 사회를 위해서 봉사하며 살 수 있게 된다. 죽음이 임박하면 욕망이 없어진다. 욕망의 체계가 탈락하면 진실된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고 자기 인생에 대한 마이너스 손익계산서 앞에서 당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죽음의 철학을 뛰어넘어 삶의 철학 죽살이를 실천하는 삶이 행복한 삶이다. 사회의 기여도가 높은 사람은 염라대왕도 어쩌지 못한다. ‘여러분 지옥으로 갑시다!’ 라는 목련 존자가 어머니 구한 이야기는 죽음도 지옥도 두렵지 않는 떳떳한 자기 고백이다. 주자(朱子)도 다음과 같은 한마디를 남겼다. “새가 죽으려 할 때는 그 울음소리가 슬프고, 사람이 죽으려 할 때는 그 말이 착하다.” [鳥之將死 其鳴也哀 人之將死 其言也善] “새는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슬프게 우는 것이지만, 사람은 궁색한 처지에 놓이면 본디의 성품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하는 말이 착한 것이다”라고 풀어 볼 수 있는 의미 깊은 글이다. 사람이 짐승과 다른 까닭은 시작과 끝냄을 신중히 하고, 곤궁함에 처하여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짐승은 죽으려 할 때 소리를 가려서 낼 겨를이 없고, 오직 궁색하고 급박한 울음소리를 내는 것이다.사람은 죽으려 할 때 착하게 생을 마치는 생각을 못 하고 오직 슬퍼하고 두려워할 뿐이라면 짐승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때문에 ‘인격 있는 사람이 죽으려 할 때에는 정도(正道)를 간직하고 격언(格言)을 잊지 않는다’ 라고 설명하여 사람이라면 죽음에 임해서 착한 말을 할 수밖에 없음을 밝혀주고 있다. 우리도 선업(善業)을 쌓아서 죽음 앞에 떳떳한 삶을 살아야 겠다. 전보삼 경기도박물관 관장

[문화카페] “문 닫았네!”

한동안 소식이 없던 시골 친구가 전화를 주었다. 서점하는 친구였다. 열흘 남짓 유럽 여행을 다녀왔단다. 나는 대뜸 “서점은 어떡하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껄껄 웃고 나더니 “문 닫았네.” 하는 거였다. 문을 닫아? 난 머리를 무엇에 심하게 부딪힌 기분으로 한동안 말을 잃어버렸다. 친구에게 서점은 집이나 다름없었다. 잠자고, 먹고, 꿈을 꾸는 곳이었으니까. 부친이 경영할 때부터 거의 그랬다. 동기생들이 졸업을 한 뒤 직장을 구하려고 애를 쓸 때도 친구는 느긋했다. 서점이 곧 직장이었으니 애써 따로 구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부친이 세상을 뜨자 친구는 아예 서점을 집으로 삼아 24시간을 보냈다. 친구는 결혼도 서점과 했다. 그랬던 친구가 서점을 그만두었다는 거였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아니, 물을 수가 없었다. 얼마 전 우리 주변의 서점 가운데 문 닫는 곳이 날로 는다는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친구 역시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해야만 했다. 아주 잘했다고 대답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서점이냐고, 되레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날 저녁 내내 마음이 우울했다. 문득 지난날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우리 나이쯤 된 이들에게 서점은 책이나 파는 그냥 서점이 아니었다. 도서관도 되었고 휴식처도 됐다. 어디 그뿐인가. 데이트 장소로도 그만이었다. 남의 눈을 피해 우린 좋아하는 여학생과 서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크리스마스 같은 땐 시집이나 에세이집을 사서 건네기도 했다. 서점 주인은 알면서도 모른 척했고 때론 슬며시 자리를 피해 주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눈 씻고 봐도 동네 서점을 찾을 수가 없다. 대형 서점에 밀려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더니 이젠 기억 속에서만 찾아야 하는 흑백 필름이 돼가고 있다. 시대가 그만큼 변한 것이다. 우리네 삶에서 골목이 사라지듯 서점도 그렇게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 그건 어쩜 시대의 변천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란 생각도 든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허전한지 모르겠다. 몇 평 되지도 않는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그곳은 젊은이들의 미래가 숨 쉬는 곳이었고 꿈이 자라던 곳이었다. 여기에다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책 한 권을 사이에 놓고 정겨운 대화가 오고 갔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가끔은 외상 거래도 할 수 있던 곳이었다. 지식과 정보만을 공급하는 기계화된 오늘날의 대형 서점과는 분위기부터가 다른 공간이었다. 살아 보니 현대화되고 모든 일이 편리해지는 것은 분명 환영할 만하되 그렇다고 해서 꼭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자동차 몰이에 피곤해진 자가용족들이 하루쯤 운전대를 놓는 일도 그 중 하나겠다. 그런가 하면 도시에 신물이 난 이들이 어머니의 품속을 찾듯 자연을 찾아 떠나는 일도 그 중 하날 것이다. 우린 이렇게 때로 불편을 감수하고서라도 뭔가 찾아가고 싶은 ‘곳’이 있다. 동네 서점도 그 가운데 하나일 터. 나는 며칠 있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걸 생각이다. 이 더위에 어떻게 지내냐고. 우리 오랜만에 냉면이나 한 그릇 하자고. 난 친구와 시원한 냉면집에서 딴 이야기는 다 접어놓고 저 잣나무처럼 푸르던 우리들의 학창 얘기나 해야겠다. 윤수천 동화작가

[문화카페] 오일장을 찾아가는 박물관

백화점이나 대형슈퍼 등이 등장하고 교통이 좋아지면서 전통적인 오일장은 이제 예전의 그 활기를 보기가 어렵지만 어릴 적에 보았던 그 장터의 가슴 설레던 기억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요즈음에도 장이 서는 날이면 시장의 옆길까지 수레들이 연이어 서 있고 화려한 색상의 옷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봄이면 갓 솟아오른 꽃이 새초롬하게 올라오는 화분도 길거리에 널리기도 하여 지나는 사람의 눈길을 끄는 매력은 아직도 화석처럼 남아 있지만 어릴 적에 느꼈던 축제 속에 있던 같은 활력은 없다. 이제는 물건을 파는 방식도 다르고 그리고 사람을 모으는 데 있어서 장터에는 특별한 매력을 끄는 볼거리 시설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장터의 물건과 사람 그 자체가 사람을 끄는 매력이었고 여기에 서커스라도 있으면 장터의 솜사탕장수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던 것이다. 오일장은 인구가 적고 구매력이 낮은 농촌에 필요한 생필품을 공급하는 가장 중요한 유통문화였던 동시에 그 지역의 주민들에게는 적어도 닷새에 한번은 약간의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카타시스의 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즈음에도 오일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이제는 아파트단지에도 그런 오일장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본래의 기능이 우리 생활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들에게 주기적인 시장은 생활의 리듬으로 보아서 어쩌면 대단히 효율적인 물건과 감정의 유통방식인지도 모른다. 낯선 지역에 여행을 하는 경우에 그 지역의 물산을 이해하고 그리고 사람들의 사는 꾸밈없는 모습들이 솔직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곳이 바로 전통오일장이다. 어쩌면 시장은 이제 많이 퇴색되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그 지역의 생활문화를 전하는 일종의 생태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다. 오일장을 과거 내가 어릴 적에 보았던 서커스 같이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지역생태박물관으로 개발하면 어떨까? 경기도에도 아마도 이 백 개소에 달하는 박물관이 있고 이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오일장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 박물관들은 많지가 않다. 그런데 대체로 먹고 살기가 바쁜 세상에 박물관에 공부하는 기분으로 가는 것은 쉽게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서 박물관은 사회교육이나 청소년 창의교육에서 가장 유효한 기관이고 앞으로 점차로 학교교육에서 할 수 없는 영역을 다루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이다. 우리 사회에 필수적인 이 두 가지 기능을 원활하게 살려나가는 것이 아마도 지속가능한 사회성장을 만드는 것의 기본이 되지 않을까? ‘찾아가는 박물관’은 특별한 유물들을 소재로 하여 볼거리를 구성하여 학교 등 필요한 곳을 찾아가서 전시와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오일장을 찾아가는 박물관’을 만들면 어떨까? 내가 전곡선사박물관을 할 때 구상한 것이었지만 아직도 실현된 적은 없다. 우선 공립박물관들이 유익하고 재미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장터에서 보여준다면 오일장도 살고 박물관의 고유한 기능도 훨씬 효율적으로 할 수 있어서 지역사회 개발에 도움이 되고 박물관도 대중적인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가 있지 않을까? 배기동 한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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