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치유의 진혼굿, 안산국제거리극축제

“아... 다 치유를 받은 것 같아요! 사진 한 장 찍어 주시겠어요?”

 

지난 5일 안산국제거리극축제 개막공연이 끝나자 10대의 딸과 함께 있던 한 여성이 필자에게 건넨 말이다. 울먹이는 목소리에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지만 묻지는 않았다. 세월호 참사라는 기억과 저절로 연결이 될 뿐. 고개를 끄덕이며 순백의 새털로 뒤덮인 두 모녀의 모습을 핸드폰 사진으로 남겨주었다.

 

안산문화광장은 온통 하얀색 깃털로 뒤덮였다. ‘지금, 우리는 광장에 있다!’는 슬로건을 내건 축제이지만 그 광장에 구름처럼 운집한 수만의 관람객들은 이 순백의 물결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가여운 영혼을 달래고 안산시민과 우리 모두의 아픔을 위로하는 말없는 진혼굿이며 씻김굿이란 걸 알고 있었다. 조용하게 그렇지만 참으로 의연하게 진행된 개막 퍼포먼스는 축제가 어떻게 시민들에게 다가가야 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답을 제시한 것 같아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 진혼굿은 프랑스 거리극단 ‘컴퍼니 그라떼 씨엘’이 ‘천사의 광장’이란 제목으로 선보인 대형 공중 퍼포먼스다. 안산문화광장 양편에 자리 잡은 건물과 건물 사이에 줄을 연결하고 공중을 공연 무대로 활용하였다.

순백의 옷을 입은 배우들은 허공을 가르는 줄에 매달려 제사장이 되고 무당이 되어 광장에 운집한 관람객들 머리 위로 엄청난 양의 흰 깃털을 쏟아 부었다, 마치 폭설처럼. 그러는 동안 지상에서는 거대한 아기천사 풍선이 관객들 사이로 떠다니는 모습을 연출하였다. 하얀 깃털로 흠뻑 씻김을 받은 환상적이면서 장엄한 제사가 예술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이 작품을 초청하는데 1억 5천만 원 가량 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그리고 세월호 참사 등 대형 인재를 겪고도 온전한 치유의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묻어두고 있다. 

정치와 종교, 시민단체들이 막대한 비용을 들였다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이날 광장에 운집한 관람객들이 4만 이상이었다는데 참가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영상이 SNS를 타고 퍼지면서 진혼의 제사로 정화된 마음과 치유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리라 생각한다. 공무원 조직과 축제 조직, 자원활동가와 시민이 하나가 되어 굿판을 성공시켰다. 저비용으로 효과가 극대화된 안산 광장과 거리의 축제판이었다.

 

광장과 거리는 삶의 현장이다. 일상의 공간이 축제의 공간으로 탈바꿈하면서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고 막혀 있던 억압과 고통의 감정이 드러나고 카타르시스를 거치며 새로운 활력을 찾게 된다. 축제는 예로부터 지역과 사람들을 통합시키고 억압과 상처를 집단적으로 치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잘 알려진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은 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축제다. 

중세 시대의 피지배층, 농노 및 하인들이 축제 기간 동안에 가면을 쓰고 변장을 해서 왕도 되고 귀족도 되어 억눌렸던 내면의 꿈과 욕망을 분출하며 불만과 억압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 것이 유래다. 1980년 필리핀 바콜로드에서는 ‘MV 돈 후안’ 호의 침몰 사고로 700여명이 희생되었다. 국민적 역경과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마스카라축제’를 시작했다. ‘미소가면’이라는 뜻의 이 축제는 참가자 전원이 웃는 얼굴의 화려한 가면과 옷을 입고 축제를 만끽한다.

 

지역통합과 집단치료의 의미 있는 사례는 오늘날에도 만들어져야 한다. 축제를 통해 상처와 아픔을 이겨내는 것은 물론, 사람과 지역의 관계를 회복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얻어 다시 삶의 현장인 광장과 거리에서 일상을 살아야 한다. 안산국제거리극축제에서 단초를 발견한 것 같아 희망이 보인다.

 

김동언 경희대 아트퓨전디자인대학원 아트기획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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