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책 좀 읽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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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만큼 TV드라마가 많은 나라도 없을 성싶다. 아침 드라마, 저녁 드라마도 부족해서 낮엔 재방송까지 내보낸다. 여기에다 주말 드라마, 요일별 드라마까지 합치면 온 나라가 드라마로 해가 뜨고 드라마로 해가 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우리나라 국민은 드라마라면 좋아해도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니라는 얘기가 되겠다.

 

맞다!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 격동의 세월을 살아온 국민이어서 그런지 드라마틱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여기서 이를 탓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내가 무슨 권리로 드라마 즐기는 것을 탓하겠는가.

 

얘기를 꺼낸 데에는 딱 한 가지 이유가 있어서이다. 그 많은 드라마 장면 속에 책 읽는 장면은 눈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다. 톡 깨놓고 얘기하자면, 글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서운해서 하는 소리다. 밥 먹는 장면, 차 마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책 읽는 장면에는 어찌 그리 인색한지 모르겠다. 방송작가도 이 땅의 작가임에 틀림없을 텐데 그 숱한 장면 가운데 책 읽는 장면 한두 컷 좀 넣으면 어디 덧날 일이라도 있나 싶다.

 

어디 TV드라마뿐인가. 버스나 전동차 안의 풍경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다들 스마트폰 들여다보기에 정신이 없다. 젊은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나이 지긋한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옛날엔 그래도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는 이들이 더러 있었는데 요즘엔 이마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한때 일부 학교에서는 아침독서 10분 운동이 펼쳐져 화제가 된 바 있었다. 수업시간 전에 각자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골라 10분 동안 읽는 운동이었다. 여기에는 교사들도 합세하여 자못 범국민적 독서운동으로까지 확산되는 게 아닌가 기대치도 높았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자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더니 요즘엔 이런 소식을 듣기가 어려워졌다.

 

책은 모든 학문의 기본일 뿐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학교’요, ‘도장’이라 말하고 싶다. 특히 날로 문명화되고 기계화되는 미래사회를 생각하면 책의 가치는 더더욱 높다고 본다. 그런데 우리는 이와는 정 반대로 가고 있다.

꼭 책을 읽어야 할 일이 생겨도 종이책 대신 전자책을, 그도 귀찮다 싶으면 인터넷에서 줄거리만 찾아 읽는다. 학창시절의 필독서인 세계명작도 책을 읽지 않고 대신 영화나 비디오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활자의 그 무한한 상상력이 제한된 영상에 갇히고 만다.

 

나는 사라진 것 가운데서 제일 그리운 것으로 아이들의 국어책 읽는 소리를 꼽고 싶다. 아침이면 온 동네가 아이들의 국어책 읽는 소리로 정겨웠던 지난날이 못내 그리운 것이다. 아이들의 그 낭랑한 모국어 소리를 들으며 이 땅의 부모들은 고단한 삶을 위로받을 수 있었고 내일을 꿈꿀 수 있지 않았던가.

 

책 좀 읽자! 말이 난 김에 한 마디 덧붙인다면, 우리 사회의 그 많은 회의나 모임 때 책 한 권 들고 참석하는 건 어떨까 싶다. 요즘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도 서로 나누면서. 감명 깊었던 구절 한두 줄 읽어 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되면 딱딱하거나 지루하기 십상인 회의나 모임도 한결 여유 있고 즐거울 것 같다.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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