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송파산대놀이와 양주별산대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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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중부지역은 광주(廣州) 지역과 양주(楊州) 지역을 아우르는 지역이다. 고려시대에는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누었는데, 이 중 하나에 양주와 광주의 앞머리를 따서 이름 붙인 양광도(楊廣道)가 포함된다.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 지역인 양주와 남쪽 지역인 광주를 합한 행정 범위이다.

 

조선시대에 광주는 한양을 지키고 나라를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아 남한산성과 산성리 마을이 조성된 지역이다. 16세기 남한산성 축성 이후 세도가들이 모여들면서 산성리 마을은 계획도시로 조성되어 나라를 지키는 중대한 임무를 수행했다. 산성리 마을은 숙종 17년(1691년) 1천호의 대규모 취락으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광주 사람들은 한양으로 향할 때 한강 남쪽의 송파나루[松坡津]를 주로 이용하였다. 송파나루에서는 조선 후기 전국에서 가장 큰 향시(鄕市) 중 하나인 송파장이 열렸다. 

한강의 나루터는 대부분 한양 중심으로 북쪽에 형성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송파나루는 남한산성 중심의 나루터였기에 한강 남쪽에 위치했다. 한양으로 향하던 모든 배들의 종점은 마포나루였다. 사람들은 배를 타고 마포나루에 도착한 뒤, 용산과 숭례문을 통해 한양에 입성했다.

 

한양의 관문 역할을 수행하였기에 언제나 분주했던 마포나루에 비해 송파나루는 한가한 편이었다. 이러한 송파나루의 활성화를 위하여 광주 산성리 사람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해 낸다. 바로 산업과 문화를 하나로 묶는 작업이다.

이 과정을 통해 탄생한 것이 송파나루에서 펼치는 산대놀이 즉 송파산대놀이다. 마포로 향하던 배들이 송파나루를 들르게끔 함으로써 송파에 큰 장이 펼쳐지고 더욱 활성화되는 역할을 송파산대놀이가 했다.

 

한편 한강 북쪽의 양주 땅은 조선 왕조의 한양 천도로 인해 한양도성을 내어주고 서서히 분화되는 운명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현상을 타개하기 위하여 송파산대놀이를 벤치마킹해 만든 것이 바로 양주별산대놀이다. ‘산대’를 광주에 내 주었으니 ‘별산대’라는 명칭을 붙였다. 이처럼 양주별산대놀이는 송파산대놀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만들어졌다.

 

산대놀이란 본래 중부지방에 전승되었던 가면극을 가리키는 말이다. 약 300년 전 송파산대놀이가 공연되었고, 그 뒤를 이어 양주별산대놀이가 송파산대놀이와 같은 주제인 산대도감극(山臺都監劇) 계통의 중부형(中部型)의 한 분파로 발전했다.

 

산대놀이는 기본적으로 놀이꾼들이 탈을 쓰고 재담, 춤, 노래, 연기를 하며 벌이는 연극적인 놀음이다. 중부지방 탈춤을 대표하는 놀이로서, 한국 가면극 중 연극적인 볼거리가 가장 풍부한 놀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국 가면극의 연출형태와 마찬가지로 음악 반주에 춤이 추가되고 노래가 따르는 가무적 부분과 무언극적인 몸짓과 덕담 재담이라고 하는 사설 즉 대사가 따르는 연극적인 부분으로 구성된다. 현실을 풍자하고 민중의 생활상을 진솔하게 보여주기에 남녀노소 누구나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해학 넘치는 놀이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은 문화와 산업이 함께 발전하는 길을 모색하고 택하였다. 요즈음 한류문화를 통하여 한국을 알리고 문화상품을 파는 것의 가치와 효용을 조상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산대놀이의 교훈을 떠올리며 문화와 경제가 함께 융성해나가는 해법을 우리는 조상의 지혜에서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전보삼 경기도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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