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문화예술과 삶의 질

며칠 전 거리에 나갔다가 한 전단지를 받았다. 뭔가 하고 펴보다가 머리를 된통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경기도문화의전당 폐지 결사반대’.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나도 모르게 머리가 띵하고 숨이 가빠왔다. 내용인 즉, 경기도가 경영합리화를 내세워 지금까지 운영돼온 ‘경기도문화의전당 폐지, 도립예술단 별도 법인화’를 추진한다는 것.

 

전단지를 받아든 나의 머리에 섬광처럼 두 편의 영상이 떠올랐다. 하나는 경기도문화의전당 전신인 경기도문화예술회관 개관식 때 교성곡 <경기찬가>를 제작(작시: 윤수천, 작곡: 최병철)하여 개관식장을 대합창으로 장식했던 일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며칠 전 10일 일정으로 서부 지중해 4개국을 크루즈 여행하면서 느낀 소회였다.

 

<경기찬가>를 작시할 때 필자는 경기도가 지닌 빛나는 역사와 전통을 문화예술 속에서 나타내고자 하였으며, 경기도민의 나라 사랑을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삼자고 다짐하였다. 문화의전당 폐지 소식지를 받아들고 내가 한동안 머리가 띵했던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지중해 4국 여행에서 필자가 느낀 것은 소위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들의 문화예술 애호 정신에 대한 부러움이었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문화가 숨 쉬고 있었고 예술이 만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부러웠던 점은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돈의 논리에도 굴하지 않는 선진국민의 높은 정신이었다. 오래된 건물 속에서도 숨결처럼 간직하고 있는 그림 한 점, 낡은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전통 춤과 노래는 그들이 얼마나 자기들의 문화예술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였다.

 

문화예술은 눈앞의 이익만을 따져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을 갖고 있다. 지난한 세월과 척박한 사회 환경 속에서도 삶의 위안이 되는 게 바로 문화예술이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 한 편의 연극, 무용, 노래는 삶에 지친 이들에게 샘물과 같은 활력소이며 내일의 에너지이다.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맨 부커 인터내셔널 문학상을 수상하여 국위 선양은 물론 온 국민에 기쁨을 선사한 것도 바로 문화예술의 힘이었다. 이를 돈으로 환산하자면 참으로 엄청난 가치라고 할 것이다. 어디 여기서만 멈출 것인가? 아니다! 이를 계기로 한국문학은 세계무대를 향해 좀 더 활발한 진출이 예상되며, 문학작품은 연극과 영화로도 각색되어 그 빛을 광범위하게 쏘아주리라고 본다.

 

한 나라의 문화예술은 꽃으로 치면 ‘향기’에 해당한다. 향기 없는 꽃이 꽃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듯 문화예술 없는 나라는 존경받는 국가로 설 수 없는 게 작금의 세계사이다. 이런 차제에 문화 융성을 4대 정책 기조의 하나로 내세운 정부 정책과도 반대되는 ‘폐지’ 운운은 당장이라도 전면 재검토돼야 마땅하다.

 

또한 4개 도립예술단의 법인 설립도 충분한 논의와 검토를 통해 결정돼야 마땅하다고 본다. 예술단은 공연장과 불가분의 관계임으로 문화의전당 없이는 제대로 운영되기 어렵다. 문화의전당 폐지는 곧 예술단의 무용지물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도민이 누려야 할 삶의 행복을 빼앗는 결과로 이어질 게 자명하다. 차제에 좀 더 나은 문화의전당 운영과 예술단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쪽으로 개선책을 마련하는 게 현명한 처사라 하겠다.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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