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연출 전공 제자 하나가 2천만원 예산의 장편 영화로 돌업했다. 화려한 출발이다. 영화감독 전공자가 장편영화를 만들었으니, 정상궤도로 간 셈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조해준 기금에다 자기 돈까지 얹어서 만든 것으로, 청소년 문제를 다룬 것이다. 상업적인 투자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정식 개봉해서 관객들에게 평가를 받아야 한다. 그게 영화가 살아가는 길이다. 자기도 먹고 살아야 하고. 시사회 때 보니 제법 잘 만들었다. 제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얼마 전 충무로에서 제작된 수억 원 들인 영화과 동일 소재인데도 잘 만든 것 같았다. 솔직히 돈이 영화를 만드는 건 아니다. 열정과 지혜와 실력이 만드는 것이다.
나의 지론은 돈보다는 아이디어와 실력이 우선이라는 것. 작년에 나온 영화중 초저예산영화 가시꽃은 불과 300만원으로 만들어져서 부산영화제에 초청되었고, 개봉해서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제자의 영화도 국내외 영화제에 한번 내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우울한 것은 이런 영화들이 과연 국내외에서 상을 받든, 평론가의 평가를 좋게 받든, 시사회의 관객들이 좋아하든 극장에 걸리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대기업 극장들은 이런 영화들을 거의 걸지 않는다. 수백개의 스크린을 운영하면서도 이런 영화들은 보나마나 찬밥신세다. 관객들은 극장의 협소한 전략 때문에 다양한 영화를 감상하지 못한다. 이러한 문제는 좋은 작품과 감독들을 배출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 그저 오락적인 소수 영화들만을 극장이 선호하니까, 이런 무명의 저예산 영화들은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사장되는 게 현실이다. 극장은 문화적 의식이 약하다. 문화의식이 있다면 다양성의 가치를 존중할 것이다. 한국 영화산업이 갈수록 위태로워지는 이유는 콘텐츠가 획일적이고 협소하여 관객들이 싫증을 내기 때문이다. 영화는 상상력과 다양성의 산물이다.
영화는 오락이고 여가활동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교과서가 아니고, 극장은 학교가 아니다. 따라서 영화는 파격적일수록 좋고, 상상력이 많을수록 좋다. 새로운 목소리,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관객들을 충족시켜야 그 산업이 발전한다. 이론이 그런데도 극장의 현실은 정반대로 간다. 대체로 한국영화의 특색은 몇 가지로 획일화된다. 첫째, 돈 많이 들어간, 스타가 나오는 영화. 둘째, 액션, 코미디, 멜로를 적당히 짜깁기한 뻔한 오락영화. 셋째, 외국 영화를 짜깁기해서 한국현실로 번안한 영화. 작년에 나온 가시꽃, 사이비 같은 영화는 위의 경우에 해당되지 않으며, 투박하고, 저예산이고, 스타도 없고, 짜깁기도 없다. 독창적이고, 끈질기고, 영혼을 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영화는 설 땅이 없다. 해마다 야심찬 젊은 감독들과 신선한 영화들이 등장하지만, 곧 죽어버린다.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하거나, 한다고 해도 상영일수를 얻지 못한다. 극장은 문화의 창조 따위엔 아무 관심이 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영화라는 상품을 이렇게 홀대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영화콘텐츠는 다양해야 하고, 개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관객들이 식상하지 않고 계속 관람을 할 것이다. 이러한 기본적인 원칙조차 무시하면서 장사를 하려하니 산업은 자가당착에 빠지고 만다. 산업은 더 큰 한방을 원하니까 스타가 나오는 대작 블록버스터를 염원하게 된다. 대작의 매출을 성사시키려니, 독과점을 할 수밖에 없고, 다양한 저예산 영화들은 치이고 마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제자들의 무운을 빈다. 이 살벌한 스크린의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자 과연 누구인가? 정재형 동국대학교 교수
오피니언
정재형
2014-02-19 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