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3월 19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예술의전당 건립본부에 첫 출근한 이래 지난 3월 19일로 만 30년이 되었다.
당시 예술의전당은 직원 10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 조직이었다. 2012년 1월 정부가 예술의전당 건립을 발의하였고, 2013년 8월에 동숭동에 사무실을 꾸리고 나서 1984년 서초동 현 예술의전당 맞은편에 있는 녹십자 빌딩 2층을 세내어 사무실을 연 것이 예술의전당 건립의 시작이었다.
이 분야에서 일하기 시작 한지 만 삼십년을 맞이하면서 잊을 수 없는 초기 몇 분이 생각났다. 이주혁 예술의전당 초대 건립본부장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지금은 절판이 된 <예술행정론>을 번역 출판하였다. 간부직원을 뽑기도 전에 예술의전당 공채 1기 4명을 공개 모집하였고, 요원양성 5개년 사업계획을 수립하여, 1987년 16명을 공채하고 교육시킴으로써 인적자원을 축적하였다.
그리고 1988년 음악당 개관이전인 1984년에 프로그램 기획소위원회를 구성하여 예술의전당 개관프로그램을 사전에 준비하였다.
이때 위원이 강준혁, 구히서, 김문환, 김철수, 유홍준, 이건용이었다. 아직 건축가도, 부지도 확정되기 전에 인력을 공개채용하고, 운영계획과 함께 개관 이후 1년간 프로그램을 사전에 구성한 것은 예술의전당이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싶다. 이 소위원회는 음악당, 미술관, 자료관, 교육관, 축제극장의 프로그램 시안을 마련하였다.
그때의 시안프로그램에는 현재도 지속되고 있는 교향악축제, 88년 올림픽 음악프로그램의 정점이었던 세계합창제, 실내악축제, 오페라페스티벌, 청소년 프로그램 등이 제시되었다. 미술관은 소장품이 없는 현실을 감안하여 기획이 중심이 되는 갤러리 형태의 운영 방안이 설정되었다.
향후 사회발전이 사회문화교육에 있음을 인식하고 교육관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이 소위원회는 무엇보다도 공연, 전시, 교육, 연구, 보급 기능을 충실히 수행할 것과 이들 간의 상호 연계성을 강조하였다. 복합문화예술센터( arts complex)인 예술의전당은 최종적으로 축제(festival) 형태로 완성된다는 예술 장르별 전문성과 통합성을 일찍이 제시하였다. 예술경영이란 말이 사용되기 전인 당시에는 예술행정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는데, 문화정책과 연구, 예술행정이 뿌리를 내리게 한 사람이 문화예술진흥원 산하 문화발전연구소 초대 소장을 지낸 이종인이다. 2011년 후진들이 고희 기념집 이종인의 문화정책과 문화행정 이란 책자로 보답하였다. 김문환은 문화정책개발원장을 지내면서 문화의 정책적 연구의 기반을 넓혔다.
1980년대 당시 유럽의 문화정책을 소개하는 창구는 유네스코였다. 영어를 잘하기로 소문난 백승길 부장과 김철수 문화과장은 유럽의 문화정책을 한국에 소개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아울러 도정일의 글은 민주주의와 문화, 문화정책에 대한 인식의 폭을 넓혀 주었다. 문화예술행정연구회를 조직하고 <예술과 행정>을 1988년에 펴낸 이중한 서울신문 논설위원도 예술행정의 중요성을 전파한 전도사로서 잊을 수 없는 분이다.
강준혁 공간사랑 극장장은 참신한 아이디어를 구체적 프로그램으로 제시한 현자와 같은 문화기획자였다. 예술행정이란 말조차 생소했던 1984년 이후, 이분들에게 필자는 더 없는 꿈과 큰 지식, 행정가로서의 자세를 배우게 되었다. 고인이 된 강준혁, 백승길, 이중한 세분과 이주혁 본부장을 비롯한 예술행정, 경영의 선각자들에게 진 빚은 품앗이로 갚는 게 도리 아닐까? 이철순 양평군립미술관장
오피니언
이철순
2015-04-01 2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