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조기 예술교육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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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아침 뉴스를 보는데 프랑스 유치원 아이들이 우산을 쓴 채 미술관 앞에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나왔다. 뒤이어 현지 특파원이 등장하더니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이곳 프랑스에서는 유치원 때부터 예술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이 유치원생들은 정기적으로 미술관과 박물관 등을 견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뉴스를 보던 나는 의아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치원생들이 들어가려고 하는 그 미술관은 유치원생들하고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미술관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피카소는 물론 르노아르니 고갱이니 고흐니 하는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저 어린 것들이 어떻게 감상한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음 순간, 나는 무릎을 치고 말았다. 저게 바로 프랑스 교육이구나!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적어도 미술관의 분위기를 몸으로 익힐 수는 있겠구나! 여기에다 그림에 대한 이해 여부를 떠나 대가들의 그림을 직접 눈으로 봤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대단한 학습이 되겠구나!

 

어릴 적에 청국장 맛을 본 아이와 그렇지 못한 아이와의 차이는 클 수밖에 없다. 청국장을 먹어 보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돼도 청국장 그 특유의 냄새 때문에 이를 거부하게 돼 있다. 마찬가지로 어릴 적에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돼도 발걸음이 그 쪽으로 옮겨지지가 쉽지 않다. 연극 공연장이나 영화관에 중년 이상의 관객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 현실이 이를 증명하고도 남는다.

 

우리들의 교육 현장은 어떤가? 안타깝다 못해 슬프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다. 국영수만 있고 그 밖의 과목은 거의 들러리라고 봐야 한다. 실정이 이러니 예술교육 운운은 입 밖에 꺼낼 처지가 못 된다. 그러나 알고 보면 가장 중요할 뿐 아니라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과목이 바로 예술교육이다. 예술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야 말로 사람이 일생을 사는 데 가장 중요한 정서 작용을 할뿐더러 삶의 행복에도 크게 기여하기 때문이다.

 

친구 L은 직장을 나온 후 학창 시절의 꿈이었던 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일요일이면 동호인들과 가까운 산을 찾아 그림을 그린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서 좋고 맑은 공기와 산의 정기를 받을 수 있어 2중의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후배 P는 색소폰 하나로 전국을 누비고 있다.

그 역시 공직생활을 하느라 오랫동안 밀쳐 두었던 색소폰을 다시 들고 불러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재능 기부를 하고 있다. 그는 남들 앞에서 색소폰을 불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글 역시 노후의 삶을 즐겁게 하는 데 필요한 예술이다. 돈이 크게 들지도 않고 혼자 있어도 외롭다거나 쓸쓸하지 않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오히려 혼자 있을 때가 더욱 좋은 게 글쓰기이다. 필자가 맡고 있는 도서관 글쓰기 강좌에 중년 이상의 수강생이 몰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은 글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고 새로운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한 줄의 시, 한 점의 그림, 한 곡의 노래는 인생의 삶을 윤택하게 해주고 젊게 해준다. 비록 프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가까이 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한 게 예술이다. 이렇게 좋은 인생의 벗을 우리는 대학 입시란 괴물 때문에 일찍부터 외면해야 하는 현실이 못내 안타깝기만 하다.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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