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과 바칼로레아

변우복 김포고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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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이른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또다시 논술 준비로 바쁘다. 돌이켜 보면 학생들은 지금까지 논술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 논술 깨나 가르친다는 학원들을 쫓아 다니기도 했고 학교가 제공하는 방과후학교 논술강좌도 여러차례 수강했다. 교과시간에는 여러 선생님께 특별지도도 받았다. 책을 많이 읽어야 된다고 하여 부지런히 학교 도서관도 드나들었다. 그래서 인지 학생들의 논술문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창의성도 엿보이고 논리 전개도 제법이다. 게다가 문장력도 좋다. 그래도 학생과 학부모는 불안하다. 좀 더 나은 논술문을 쓰기 위해 수능이 끝난 지금도 다시 논술에 매달린다. 지나친 정력 낭비가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든다.

문제는 대학이다. 누구나 어느 정도의 논술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로 난해한 문제들을 내놓는다. 여기에 맞추려니 학생들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게다가 대학들마다 출제 경향이 달라 학생들은 대학들의 입맛에 맞는 답안을 쓰기 위해 맞춤식 지도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교가등제공하는 특별프로그램을 수강하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학원 등에서 고액 과외를 받아야 한다.

논술이 지금보다 멋있고 품위 있게 출제됐으면 좋겠다. 학생들의 세계를 보는 아름다운 눈, 학문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을 묻는 문항, 그리고 별도의 비용부담이나 노력 없이도 어렸을 때부터의 꾸준한 독서, 매일 매일 일기 쓰는 버릇에서 생긴 탄탄한 문장력, 학교에서 배운 인문, 자연과학, 예술 등에 관한 폭넓은 안목 등을 바탕으로 누구나 쓸 수 있는 문항들이 출제됐으면 좋겠다.

프랑스 대학입학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에서도 논술고사를 치른다. 이 시험이 있는 날, 모든 프랑스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에 들뜬다고 한다. 무슨 문제가 출제됐는지, 그리고 모범 답안이 무엇인지를 놓고 온 국민들이 이야기 꽃을 피운다. 최근 치러진 바칼로레아 시험에선 ‘예술작품에 대한 감수성은 훈련을 필요로 하는가?’, ‘인간은 기술(技術)로부터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등과 같은 철학적 향기가 풍기는 문제들이 출제됐다. 우리나라 논술시험에도 보편성이 있으면서도 품격이 있는 문항이 출제되길 기대한다. 대학에 좀 더 많은 자율권을 준다면 유연하게 학생을 선발할 수 있을 것이고, 논술문제도 좀 더 멋있어 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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