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곱게 물들던 가로수도 앙상한 가지 위에 마른 잎들만 썰렁하게 매달고 있고 풍성했던 가을 들녘은 추수가 끝나 고즈녁하기가 이를 데 없다. 마치 외로움에 자식 그리워하시는 친정 아버지의 야윈 모습과 많이도 닮았다.
10월과 11월은 행사들도 많았고 마음도 괜시리 바빠 친정발길이 다소 뜸했었다. 한주일만 못 보면 궁금해 먼저 전화를 거시는 친정 아버지를 생각해서라도 미리미리 챙겨야 했었는데, 역시 친정 아버지께서 먼저 “따르르릉 따르르릉…” 애타게 찾으신다. 어쩌다 직접 받으면 “오늘은 집에 있는 거니? 시간 있으면 엄마 병원에 다녀왔으면 좋겠는데. 가까이 사는 너만 귀찮게 하는구나”라고 말씀하시며 미안해 하신다.
젊어서는 고생 하나 모르시고 지역사회에서 봉사하시며 왕성한 활동을 하셨기에 친정 어머니께서 힘든 일들은 도맡아 하셨다. 그런 어머니께서 평소 지병으로 몸을 혼자 쓰실 수가 없어 병원에 모셔야만 했다. 평소 친정 어머니를 많이 의지하셨던 터라 함께 생활해 오며 몰랐던 빈 자리가 많이도 외로우신 것이다.
젊었던 시절에는 워낙 약해 “내가 환갑이나 살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시던 분이 팔순이 넘어 아내 생각, 자식 생각에 그리움과 외로움만큼 바짝 여위신 게 못내 서럽다. 자식이 바쁘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유와 핑계이다. 치 사랑보다 내리 사랑이라고 내 자식이 우선이고 나를 우선시하는 이기심이 옛 어른들의 효 정신을 뒤로 한 발짝 물려 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내 자식이 감기에 기침 한번 하면 바로 병원으로 약국으로 달려가는 부모 마음. 그러나 내 부모는 자식에게 누가 될까 참고 참으시다 당신 몸을 혹사시키기 일쑤였다. 당연히 해야 할 도리지만 “아버지, 어머니께 다녀오셨나요? 안 가셨으면 제가 모시러 갈게요”라고 여쭈면 “그럴 수 있는 거니? 그러면 나는 좋지.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서.”라고 말씀하신다. 마치 큰 인심이나 쓴 게 되어 버렸다.
필자도 나이를 먹고 늙어 간다. 사시는 동안 한번이라도 더 찾아 뵈야겠다고 마음 먹지만 오늘도 또 하루를 보냈다. 가로수는 잎들을 모두 떨궈 버려도 봄이 되면 다시 새싹을 틔우고 꽃도 피우지만 친정 아버지와 친정 어머니는 이제 외롭게 시들어 가시고 힘든 여정 끝내면 남는 건 후회와 그리움뿐이리라. 올해 달력이 다 떨어지기 전 손자들 데리고 한번이라도 더 찾아뵙겠다. 아버지 닮은 딸이라며 “이 딸에게는 더 잘 해 주게나”라고 말씀하시던 이웃 어른들의 말씀이 다시금 생각나는 오늘이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문애숙 고향을생각하는 주부들의 모임 경기도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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