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서 심심찮게 쓰이는 말인 괘씸죄에 대해 정확하게 정의를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사적인 감정이 개입돼 객관적이지 않은 잣대로 어떠한 사람을 처벌하는 것을 괘씸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현직 판사가 최근 아버지의 법정구속이 소위 괘씸죄의 결과로 의심된다는 내용을 담은 글을 사법부 전산망에 게재한 모양이다. 대한민국 판사는 법과 직업적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할 헌법상의 의무를 부담하는 국가기관이다. 아마도 대다수 사람들은 판사의 한자표기를 ‘判事’가 아닌 ‘判士’로 오해할 수 있다. 판사하면 고위 공무원으로 재판을 하는 ‘사람’으로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판사는 사람이기에 앞서 국가기관이다. 그래서 判士가 아니라 判事인 것이다.
이런 연유로 개인이기에 앞서 국가기관으로서 법과 직업적 양심에 따라 재판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는 판사는 소위 괘씸죄와 완전하게 거리를 둬야 함은 자명하다. 한편 판사도 인간이기에 피고인이나 변호인의 법정태도가 좋지 않다거나 자신의 재판 진행에 대해 감정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 어느 정도 흥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判士가 아닌 判事 본분을 유지하면서 자제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판사라고 할 수 있다.
현직 판사의 괘씸죄 발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면서 하물며 현직 판사 아버지가 괘씸죄의 대상이니 일반인들은 오죽하겠느냐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하지만 법원에서 7년 동안 근무한 적이 있는 필자는 이같은 대중적인 견해에 대해선 찬동하기 어렵다. 필자는 적어도 법원은 대한민국의 그 어떠한 조직보다 괘씸죄와는 거리가 먼 조직이라는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고 경험을 통해 이를 확인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판사 99명이 아무리 공정하게 재판해도 판사 1명이 사적인 감정에 따라, 소위 괘씸죄에 따라 심판한다면 사법부 전체가 신뢰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개개의 사건에서 신을 대신한 심판관인 판사의 판단은 한 개인의 인생에 너무나도 큰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 1명이라도 사적인 감정에 따라 재판하는 판사가 있다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 그 일이 판사 일이라면 그 실수에 대해 너그러워질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는 소위 괘씸죄에 따라 재판하는 판사가 1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무한한 책임만을 부여받은 채 과도한 업무 속에서 명예와 자긍심만으로 버티고 있는 판사들이 국민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존경을 받는 그러한 사회 분위기를 기대해 본다.
민기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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