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웃어요, 웃어 보세요”

언제나 한 해의 끝에 서면 지나온 날들이 새삼스럽게 코앞에 다가오는 것은 아쉬움 때문이다. 아쉬움은 이루지 못한 계획에 대한 섭섭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해를 어떤 깃발을 들고 살았는지를 성찰하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고 괜히 허둥거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나는 누구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 주었는가! 나는 누구에게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손을 내밀었는가! 주위에 있는 이들을 살펴보지도 못하고 땅만 쳐다보며 용케도 견디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심히 아파트 상가 과일가게 앞을 지나는데 주먹보다 큰 탐스럽고 잘 익은 사과 하나가 나를 쳐다본다. 나에게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으며 무슨 열매를 손에 들고 있는가를 묻는다. 겨울을 넘기기 위해 여름내 무성했던 이파리를 다 버리고 뼈만 남은 고독한 나무처럼 서 있는 내가 누구인지를 물을 때면 바로 내 삶의 방향타가 되었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잘못을 했는데도 똑똑한 아들이라고 칭찬해주시던 어머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좋은 일을 하고 사람답게 살아야 달을 에워싸고 있는 달무리처럼 남들이 내 들러리를 서 준다고도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은 나를 바꾸고 내 삶을 바꾸게 하였다. 정신적 지주였다. 대우 김우중 회장의 자서전에는 고학하던 시절 남들보다 신문을 많이 팔아서 하루 양식을 사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눈물로 기뻐하며 감사 찬송을 드리는 식탁이 일생에서 제일 행복했다고 한다. 그 절절한 사연들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무엇이 성공의 지름길이며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를 심어 주었다. 날씨가 많이 춥다. 갈수록 한파가 심해진다는 뉴스다. 우리 주위에는 어두운 곳이 많다. 얼마 전 자원봉사센터에서 사랑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메시지 속에는 따뜻한 손길이 들어 있었다. 독거노인에게 드리는 연탄 나눔 행사에서 나는 무청처럼 시든 눈을 꿈벅거릴 때마다 흘러내리는 할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50~60년대 허리띠를 졸라매고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 고난시대의 어른들이 아닌가! 갑자기 마음에서 울컥하며 무엇이 솟아오를 것 같았다. 겨울 세밑에나 몇 번 손을 거두는 척하는 내가 부끄럽다. 어리석은 삶이다. 음성 꽃동네에는 무의탁 심신장애우, 걸인, 버려진 아이들 등 2천명의 가족이 신부, 수녀, 봉사자들의 보살핌 속에 살고 있다. 신부는 봉사자가 줄어드는 것이 큰 걱정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치마 자락 한번 손에 쥐어보지 못하고 버려진 아이도 있다. 이제 울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도 둥근 밥상에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만면 환한 웃음이 가득한 날이 있었을 것이다. 가족, 이웃, 사회는 끊을 수 없는 정으로 연결된 고리이기에 털어 버리지 못하고 멀리 떠나지도 못하는 대 가족이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바탕으로 오직 진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말했고 캐나다의 시드 캐슬러는 사랑을 바탕으로 봉사하고 섬겨라라고 말했다. 서로 마음의 끈으로 묶여진 사랑의 멋진 삶을 만들어보는 세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해는 행복하니까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지는 웃음의 꽃이 아기자기 피어나는 해가 되기를 염원하자. LPGA 상금의 여왕 신지애가, 한국의 딸 김연아가 우리에게 큰 웃음과 희망을 주었듯이 꽃동네에 김장봉사 웃음꽃이 피었듯이 새해는 우리 모두 만면 환한 웃음이 기득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도 주위를 향해 새해는 웃어요, 웃어 보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산성 둘레의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

지역 문화유적의 복원이 여러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경기문화재단에서는 남한산성을 복원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의 문화유적 복원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등재라는 글로벌 기준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기왕 복원하거나 현상 유지를 원한다면 유네스코 선정 유적이 되겠다는 큰 목표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 과정에 있는 것으로 남한산성이 있다.현재 남한산성의 개발 목표는 심각히 왜곡되고 변형된 것의 원형복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반적으로 남한산성의 개발에는 크게 세 가지 축이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유적지 보존으로 성벽, 성루, 옹성, 대문, 암문, 영문, 누각, 대, 종각 등 남아있거나 사라진 것에 대해 옛 지도를 보고 그대로 복원하는 일이다. 이밖에도 궐이나 행궁, 객사, 창고, 도로, 개울, 우물, 연못, 사적단, 묘, 사찰 등도 대상이 된다. 둘째는 재생이나 재현으로 한옥촌이나 전통정원, 옛길, 풍습, 제례, 폐사지 개발 혹은 재현이 이에 속하고 세째는 개발 혹은 창출로 관광상품 개발과 축제, 이미지 등 현대적인 창작을 덧붙이는 작업이라 하겠다. 복원 중이어서 여러 의견들이 나올 수 있겠으나 의견이 많을수록, 여러 기관이 참견할수록 하나의 유산은 특징 있는 유산이 되는 게 아니라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여러 곳 중 하나의 유산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다 가지고 있으면서 특성 있는 무엇인가가 모자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우선 한 가지 남한산성 개발에서 당장 실행할 수 있고 특징 있는 것으로는 성벽을 들어내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게 들어내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조 17년 1741년에 겸재 정선이 그린 송파진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에는 남한산성이 둥그러니 들어나 보인다. 남한산성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성벽과 누각이 산 아래에서도 보여야 한다. 탑 주위로 나무를 심어 탑을 가리는 일이 없듯이 성이 들어나 보여야 한다.이는 성곽주위 2~300미터 안에 있는 큰 나무를 잘라내면 되는 일이다. 토사가 날 곳이라면 키 작은 나무를 살려 두면 된다. 큰 나무는 성곽을 가릴 뿐 아니라 그 뿌리가 깊게 내려 성곽 밑을 파고 들어가 성곽 자체의 기반을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골프장을 만들면서 나무를 베어낼 줄은 알아도 성곽을 살리려고 나무를 베어낼 수 없단 말인가. 산은 형질에 따라 용도가 있을 것이다. 나무가 자라는 산과 풀이나 관목이 자라는 산 혹은 바위를 캐내는 산 등이 있듯, 성곽이 있는 산은 나무가 주인은 아닐 것이다.최근 역사문화 강좌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세종실록읽기, 화성문화재단의 영조정조 실록읽기, 경기문화재단의 남한산성역사 아카데미, 기타 토지박물관의 강좌, 수원화성운영재단이나 경기도나 수원시 박물관 등에서 펼치는 각종 역사문화 강좌들이 그것이다. 시민들의 역사읽기는 우리민족에 대한 성찰과 함께 우리들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들이 현재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대한 자존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지역의 고적이나 유산을 되살리는 일은 단순히 옛것을 복원해내는 의미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 유산이 갖는 역사 속에서의 의미 그리고 그 정신이 글로벌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가를 체크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남한산성 안에는 180여 유적지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안내는 20여개에 불과하다. 건물의 복원과 동시에 남한산성이 갖는 정신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함께 숙고해야 한다. 국난과 그 극복의 현장으로서 당면한 국제적인 환경 속에서의 남북통일과 세계정세를 연구하는 연구센터, 그 토론장, 실습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기와집 복원과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한국의 변호사 수는 턱없이 부족한가

요즘 정부는 서비스산업 선진화라는 명목으로 변호사 수의 증원 및 전문자격사간 동업규제 철폐 등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쪽의 논리를 대변한 한국개발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현재 한국의 변호사 수를 약 1만1천명으로 보고 전문 자격사 1인당 인구수를 비교해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들보다 월등하게 많다며 우리나라의 적은 변호사 수를 법률서비스 경쟁력의 저하 원인으로 지적했다.현재 한국의 개업변호사 수는 약 1만1천명(2009년 기준)이고, 법률분야 유사 전문 자격사 수는 법무사(옛 사법서사)가 5천800여명, 세금관련 법률사무를 하는 세무사가 8천여명, 특허관련 법률사무를 하는 변리사가 3천800여명, 노사관련 법률사무를 하는 공인노무사가 2천 여명, 관세사가 1천300여명이다. 또 한국에서 부동산 중개 뿐 아니라 경매 대리, 부동산 개발 등에 관한 제반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약 8만5천명의 공인중개사도 법률분야 전문 자격사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미국에서의 경우와 같이 우리나라 변호사 수를 산정하면 약 10만명이 넘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인구대비 변호사 수는 선진국에 비하여 적지 않다. 또 선진국들의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에 비하여 2배 내지 3배인 것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변호사 수는 오히려 많은 편이다.위 법률관련 자격사들을 모두 변호사로 통칭하는 미국의 제도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변호사를 선택할 때 자신의 수요에 맞는 변호사를 적정한 비용을 지불하고 고르기가 힘든 단점이 있는 제도이다. 이에 비하여 우리나라는 위와 같이 소비자가 선택하기 쉽게 전문 자격사들을 엄격히 구분해 놓고 있어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에 맞게 적절한 자격사, 즉 변호사 또는 법무사 등을 선택할 수 있고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고 선택할 가능성은 적어지는 장점이 있다.이제 사법시험을 대체한 미국식 로스쿨제도에 의해 앞으로 매년 2천명 이상의 법조인이 쏟아져 나온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또 변호사 수를 대폭 늘리겠다는 것인가. 변호사 서비스의 질은 변호사 수가 많다고 하여 나아지는 것은 아니며 변호사 수가 증가한다 하더라도 소비자의 만족도는 그렇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양질의 서비스는 더 감소할 수도 있다.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내놓은 과학기술 고급두뇌 확보방안을 보면 1971~1990년 예비학력고사 수석자 23명 중 의대 진학자는 단 1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3~2005년 수능 전국 수석자 전원이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또 역대 국제과학올림피아드 입상자 중 20.4%, 2002~2007년 과학고 졸업생의 10.5%도 의대에 진학했다. 사설입시학원의 2010년도 학과별 대입 배치표를 보면 자연계는 서울대 의대를 필두로 지방에 있는 대학의 의대, 한의대를 거의 다 채우고 서울대 일반학과가 나온다. 그래도 의료계는 의사와 의대교수가 같은 의사이기 때문에 의사 배출 수가 너무 많다고 판단되면 의대 정원을 줄이기도 하는 적절한 대처를 하고 있다. 그러나 법조계는 그렇지 않다. 변호사 수가 너무 많다고 주장하는 쪽은 변호사 업계 뿐이고 법대교수를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변호사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며, 변호사 업계의 주장은 지역 이기주의라고 몰아 붙인다.물론 의학계나 법조계도 사회 발전을 위하여 우수한 인재가 필요하지만 창조적인 분야가 아니다. 과학기술계나 문화예술계야말로 무한경쟁의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를 발전시켜 이끌어 가는 분야인 만큼 창조적이고 뛰어난 인재가 몰려야 할 곳이다. 의료계나 법조계가 대한민국의 우수한 인재들의 블랙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침을 열면서

스포츠 문화와 자본

한 해의 야외 프로경기가 하나 둘 정리되어 휴식기에 들어가고 있다. 야구는 일찍이 두산대 SK 그리고 기아의 승리로 끝났다. 축구는 성남대 포항 그리고 전북현대와의 결승 경기가 남아 있다. 여기에 겨울 실내 스포츠가 이미 줄이어 진행되고 있다. 남녀 농구, 남녀 배구에 핸드볼 등이 가세하고 있다. 스포츠는 대중가요 부르기나 달리기처럼 스스로 즐기려는데 목적이 있다. 심지어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오케스트라도 선진국에서는 마을마다 악단을 구성해 스스로 연주하는 시대인 것이다. 그렇다면 많은 프로 스포츠도 사람들이 즐기는 경기에 대한 모델로 제시되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프로 스포츠에 자본이 개입하여 이제는 스포츠 선수의 플레이는 무대 위의 발레리나나 연극배우 나아가 영화배우의 액션처럼 우리가 보고 즐기는 대상으로 변한지 오래다. 아직 골프 선수들을 쫓아다니는 갤러리들은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배워보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야구선수의 홈런을 보고 홈런 치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스포츠 풍경을 한 번 되돌아 볼 일이다. 인구나 스포츠 시설 그리고 경제력으로 보아 과연 남녀 축구, 야구, 남녀 농구, 남녀 배구, 남녀 탁구, 씨름, 아이스하키 등을 실업 혹은 프로로 운영할 여력이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어느 선진국에서 이렇게 많은 스포츠 종목을 프로로 운영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는다. 비슷하게 운영하는 나라도 있겠지만 그런 나라에서도 중점 전략 스포츠는 있는 셈이다. 영국은 축구에 올인하여 4부 리그까지 있고 기타 럭비와 크리켓 정도다. 나머지 스포츠는 일년 내 방송 중계를 보기 힘들다. 다만 국제 대회로 골프와 테니스는 대회 열리는 때만 주목 받는다. 여기서 기왕 스포츠 관람을 즐긴다 하더라도 자기와 연관을 가지면 더욱 재미있을 것이다. 영국의 축구 팀은 지역연고가 있다는 것은 다 아는 바이다. 어느 해인가 5월에 2부리그에서 1부로 올라가는 세 팀 중 마지막 한 팀을 결정하는 마지막 한 경기가 런던에서 열리게 되었는데 두 고장의 시민들이 피난민 밀려오듯 기차로 차로 윔블던 구장으로 밀려오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경기에 목을 매는 모습이었다. 다른 나라는 시민구단 혹은 말 그대로 지역연고 프로구단이다. 우리나라는 기업 구단이다. 같은 지역 팀을 응원하더라도 우리는 기업을 응원하는 것이고 다른 나라는 자기고향을 응원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 따라 선진국에서는 대도시 팀들이 성적에서 거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필연성을 가지게 된다. 이번 미국 프로야구의 뉴욕 양키스, 일본 야구의 요미우리 동경 팀, 영국 축구의 첼시, 아스날 그리고 제 2도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의 강세, 이탈리아의 밀라노나 로마 팀, 스페인의 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팀이 전부 그러하다. 여기서 우리나라 스포츠는 기업 소속으로 되어 있으나 거의가 대기업 팀이다 보니 외국에서처럼 투입 자본의 편차가 적다. 그래서 1위 기업이 늘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 그리고 기업은 자금을 투입하여도 이득이 나지 않는 걸 아니 크게 투입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돌아가며 우승을 하게 되어 그나마 지역 편차가 적어 다행이라고 할까. 한 나라 시민이 야구를 하든 축구 아니 핸드볼을 하든 자기가 좋아 하는 스포츠를 즐기면 된다. 지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핸드볼에서 인구 550만의 덴마크가 5천여만 인구의 한국팀을 이긴 것은 실내 스포츠를 즐기는 덴마크 여성이 많아서 생기는 자연 결과이다. 이처럼 스스로 즐기는 결과로 국가의 스포츠가 강해지는 게 앞으로 우리 스포츠문화가 나아갈 길이 아닐까. /김광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

숫자놀이 2편:조금만 덜 부끄러운 즐거움

지난 번 칼럼에서 주제넘게 좀 잘난 체를 하였다. 알고 보면 그다지 실체적 의미가 없는 숫자에 현혹되어 많은 사람들이 현상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아둥바둥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깝다는 요지였다. 그리고는 덜컥 글 말미에 탈출법을 대충 알고 있다는 듯 다음 번 칼럼을 기대해 보시라는 객기까지 부렸던 것이다. 많은 독자에게 증거 인멸이 어려운 문자로 해댄 잘난 체이니 이건 아내의 지청구만 참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켕기는 마음에 은근히 스트레스를 받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그것이 억압과 공포의 군사독재일 수도 있고, 돈으로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경쟁이 치열한 시장일 수도 있고, 또는 모두가 멍청한 짓인 줄 알면서도 따르지 않기 힘든 대한민국 교육정책일 수도 있다. 우리는 가끔씩 거대한 벽 앞에 서있는, 그래서 한 없이 초라한 한 개인을 본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바를 찾기 쉽지 않은 경우 우리는 거대한 절망에 몸을 맡긴다. 그러나 실상 거대한 절망보다 우리네 갑남을녀의 삶을 더욱 지배하는 것은 (이를테면 숫자놀이에 얽매인) 일상화된 실망의 쌓여감이다. 때로는 이 정도면 아직 참을만하다고, 또 때로는 자그마한 손익계산에 귀찮음이 더하여, 그리고 아주 때로는 아는 새 모르는 새 의식이 무의식화 되어 우리는 켜켜로 실망을 쌓아가고 산다. 그리고는 어느 날 문득 거대한 벽이 되어 서있는 실망의 더미 앞에서 때늦은 분노와 절망 그리고 무기력을 느낀다. 하여 묻는다. 따분하고 지겹고 귀찮지만 서서히 어슴프레한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실망의 더미에서 탈출하는 법은 없을까?셋 중에 하나 밖에 없다. 싫으면 미련 없이 쿨하게 떠나라. 아니면 열정적으로 외쳐라. 그도 아니면 그냥 참고 살아라. 쿨하게 떠나면 속은 시원하고 모양새는 깔끔하지만 다시 돌아오기 힘들다. 누구는 애인 혹은 배우자를, 또 다른 누구는 도시를 혹은 조국을, 그리고 심지어는 제 목숨을 떠나기도 하지만 떠나가는 대가는 적잖다. 더 큰 문제는 떠났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인 경우다. 제 자식 조기유학 보냈다고 대한민국 교육체제로부터 벗어났다고 할 수 있는가? 나만 미국산 쇠고기 안 사먹으면 광우병 문제가 저절로 해소되나? 하여, 외치게 된다. 때로는 열정적으로 또 때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러나 이게 어디 마음처럼 쉬운 일인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에 기대어 촛불 한 번 들라 쳐도 벌금이 무서운 세상이고, 도지사 업무 수행이 문제 있다고 주민소환 투표장에 가려고 해도 이리 저리 얽힌 지인들 사정이 딱해진다. 누구는 연대와 참여를 외치지만 아직은 내 일이 아니라 어렵다. 그래서 에이 더럽다 하고 모르는 체 참고 살지만 어디 그 속이 편하겠는가? 나의 해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누구나 지사(志士)가 되고 운동가가 되고 철학자가 되기는 힘들겠지만 모두 그렇게 된다고 꼭 세상이 좋아진다는 보장 또한 없다. 그 대신 그런 사람들 생각하는 마음가지고 살면서 아주 부끄럽지는 않게 조그만 힘 보태고 거기서 제 혼자의 즐거움을 찾으면 된다. 촛불 들기 힘들면 촛불 든 이에게 박수 한 번 쳐주고, 지구온난화 걱정되면 자가용 대신 버스 한 번 더 타고, 정치가 마음에 안 들면 투표장에 한 번 더 가면 된다. 그러나 이 손쉬워 보이는 해법이 힘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살아가면서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를 자주 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생각하는 삶에서 나오는 조금만 덜 부끄러운 즐거움. 쉽고도 어렵다. 그래서 더욱 해볼 만한 가치 있는 일이다. 끊임없이 이런 삶을 사는 당신은 자신도 모르게 큰 바위 얼굴이 된다. /강명구 아주대 행정학과 교수

수능을 치른 아들에게

아들아, 네가 우렁찬 울음을 터트리고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대입 수능시험을 보았구나. 이 편지를 쓰는 지금은 수능 3일 전인 11월 9일이다. 수능을 앞둔 너에게 특별한 말을 하는 것이 행여 좋지 않은 영향을 줄까 봐 하지 못하고, 수능시험을 마친 후 네가 보게끔 이 편지를 쓴다. 네가 태어날 때 네 엄마 옆에서 함께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 큰 죄인 것처럼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남들처럼 금이야 옥이야 하면서 잘 키우거나, 다른 부모처럼 너를 극성스럽게 과외를 시키거나 아주 어릴 때부터 철저히 계획적으로 공부에 매진하게끔 이끌어 주지도 못한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너는 큰 걱정 끼치지 않고 초중고등학교를 마쳤지. 한때 나만의 과욕으로 아무런 준비도 없이 너를 외국유학 보냈다가 1년 만에 다시 유턴하게 한 일, 그래서 너보다 1년 후배인 아이들하고 같은 학년을 다니게 한 일 등이 모두 다 나의 책임인 것 같구나.수험생활 과정에 어려움을 같이 못한 것도 미안하다. 외로운 시험 준비 과정에 자주 격려의 말도 못했구나. 아버지도 너의 그러한 어려운 과정을 다 경험했으나, 아버지의 입장에서 너의 수능 준비 과정을 보는 것이 더 힘들게 느껴졌단다. 또 너는 작년에 한 번 수능을 본 적이 있지 않느냐. 그때는 네가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아서 다시 도전을 해 보겠다고 했지. 그 말을 듣고 재수를 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는 아버지로서는 내심 많은 걱정도 했었단다. 네가 이 편지를 읽는 때는 시험이 끝났으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수능성적이 좋고, 수능성적이 좋아야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틀에 박힌 말은 이제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누구나 겪는 과정이지만 아들아 공부하느라 정말 수고했다.시험 잘 보았니? 몇 점 정도 나올 것 같니? 같은 질문은 하지 않겠다. 아들아, 조만간 나올 결과인 수능성적에 대해 실망하지 말고 인정하고 받아들여라. 좋든 나쁘든 네가 그동안 열심히 준비한 것에 대한 결과 아니겠니. 대입 수능시험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긴 인생 여정에서 겪을 수많은 시험 중의 하나일 뿐이다. 네가 인생에서 보람 있게 살고 못 살고는 그러한 수많은 시험을 어떻게 준비하고 잘 치르느냐에 달려 있단다. 그런 시험들에는 가족, 친구, 동료, 선후배 등 너와 이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과 조화롭게 잘 살아가는 시험도 있고, 좁게는 가족, 이웃, 넓게는 사회, 국가를 위해 봉사하며 사는 시험도 있단다. 단 하루에 평가하는 수능시험은 너의 인생을 평가하는 시험들에 비하면 오히려 쉽다고도 할 수 있지.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대로의 인생을 살아 왔고, 너도 너 자신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 때가 이렇게 시험이 끝난 지금이구나. 네가 시험 준비를 할 때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단다. 혹시 네가 시험 준비를 게을리 할까 봐. 이제 너도 성인이 다 되었으니 네 방식대로의 인생을 살거라. 그렇다고 네 멋대로 살라는 뜻은 아니다. 네 나름대로의 인생의 목표와 계획을 수립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 계획을 지키려고 노력하며 살라는 것이다.아버지도 인생을 살면서 그때 그때 조금 더 노력했더라면 더 나은 현재가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늘 갖고 있단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배운 지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단다. 이제는 너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께서도 아버지가 대입시험을 볼 때 지금과 같은 마음을 가지셨을 거라고 이제야 깨닫는구나. 너도 언젠가는 지금 아버지의 마음을 알 날이 있을 것이다. /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조정(調停)’ 전성시대

우리는 예로부터 분쟁이 발생하면 상대방을 제압하려 하고, 승패도 삼세번을 해서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풍습을 갖고 있다. 이러한 풍습과 풍토에 변호사 등 법률전문가 등도 분쟁해결 방법으로 소송만을 선호하고 있어, 우리의 분쟁해결 방식이 비용이 많이 들고 기간이 오래 걸리는 저효율의 구조이다. 현대는 각 분야에서 분쟁과 갈등을 효율적으로 해결하도록 해 사회적 낭비를 줄이는 것이 당면과제다. 그리하여 분쟁해결 방법 중 근래 장려되는 것이 조정이다.조정(調停)은 법관이나 조정위원회가 분쟁 당사자 사이를 중개해 화해(和解)에 이르도록함으로써 분쟁의 해결을 도모하는 제도이다. 알선중개중재와 마찬가지로 소송에 의하지 않고 당사자 간의 분쟁해결을 도모하는 제도이다. 분쟁 당사자 사이에 제3자가 개입하여 화해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일상적인 의미로는 중재와 큰 차이가 없으나 법률적으로는 명확하게 구별된다. 즉, 중재의 경우에는 제3자의 판단이 법적인 구속력을 가지며, 당사자는 이에 따라야 한다. 이에 비해 조정의 경우에는 제3자의 조정안에 대해 분쟁의 당사자가 승낙하면 화해가 이뤄지지만, 그 조정안이 법적인 구속력은 없어 당사자가 이를 수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조정이라는 말은 원래 중국책 18사략 권7 송사(十八史略卷七 宋史)에서 처음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송사에는 당파가 나뉘어져 재상(宰相)의 지위를 둘러싸고 서로 다투는 경우, 양파가 서로 교대로 재상의 지위에 취임하고 구원(舊怨)을 잊고, 다툼을 그치는 것을 조정이라 한다고 쓰여져 있다. 이것이 그 후에 다투고 있는 당사자 사이에 제3자가 개입해서 다툼을 중지시키고, 화해를 시킨다라는 의미로 됐다고 한다. 근래 들어 법원은 소송에 의한 일도양단식의 판결보다는 조정 또는 화해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데 많이 노력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양 당사자들이 조정이나 화해보다는 판결을 원하고 있는데도, 조정이나 화해를 강요하는 듯한 경우도 없지 않아 있다. 그러나 조정은 다음과 같은 장점들이 있다. 첫째, 조정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법률상 엄격한 제한이 없으므로 융통성이 있고, 법률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이해하기 쉬운 절차)둘째, 극히 단시일 내에 절차가 끝남이 일반적이고, 이루어진 조정에 대해서는 상소 등 불복을 할 수 없으므로 분쟁이 즉시, 종국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신속한 절차)셋째, 절차비용이 저렴하고(저렴한 비용), 넷째, 소송사건이 조정이나 화해로 끝나면 완전하지는 않지만 당사자 간에 어느 정도 정신적 이해가 된 것이 된다(마무리가 깨끗한 절차). 이 밖에도 여러 가지 장점이 있으니 적극 장려하고 권고돼야 한다. 신속하게 조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분쟁을 소송으로 해결하는 것은 의료행위로 보면 과잉진료에 해당한다. 자연분만으로 하면 될 것을 제왕절개로 출산하는 것과 같다.소송으로 인한 판결은 어느 한 편이 이기고 얻으면 그 반대 편은 그만큼 지고 잃게 되는 제로섬(Zero-sum)게임 같은 것이다. 그만큼 패소한 당사자에게 재산적인 손실 이외에 정신적 한(恨)을 남기게 된다. 법원이 대부분의 사건에서 조정이나 화해를 권하고 있고,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의료심사조정위원회, 건설분쟁조정위원회,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저작권위원회, 금융분쟁조정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와 검사에 의한 형사조정 등 법관에 의하지 않는 각종 조정이 행해지는 요즘은 가히 조정 전성시대라 할만하다./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경기도의 랜드마크는?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랜드마크 빌딩 경쟁에 뛰어 들었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짓는 건 한국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초고층 빌딩이 없다. 그래서 더욱 욕심을 내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랜드마크 빌딩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경기도에는 어떤 랜드마크가 필요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역사적으로 랜드마크는 한 지역의 표지나 경계표를 말한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돌기둥이 너른 대지 위에서 그러했을 것이고 시대가 흘러 유럽 도시에서는 첨탑 교회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그 도시의 중심을 잡아 주었을 것이고 현대에 와서는 높은 빌딩이 그 역할을 대신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 서울 숭례문 같은 대문이 그 기능을 했고 도성 안에서는 종로의 종각이 교통의 십자로에서 중심이 되는 표지물이 되었던 것이다.랜드마크 빌딩은 오늘날에는 단순히 건물 높이가 높아서 표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건축의 첨단기술을 보여주고 동시에 그 건물 안에 호텔, 사무실, 쇼핑 시설과 같은 현대사회를 축소해서 보여주는 문화의 집합지로써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나라도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는 곳이 여러 곳이며 그 중 서너 개가 실현이 가능하다는 등 심심치 않게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133층의 서울 DMC는 디지털 관련사업체를 앞세운 빌딩으로 특화하려 한다.우리나라에서 랜드마크 빌딩이 갖는 기능은 무엇일까. 우선은 방향표지로써의 기능은 감소할 것이다. 원래 유럽처럼 평평한 초원지역 국가에서는 마을 어디서나 방향을 알 수 있는 에펠탑 같은 높은 탑을 세우기를 좋아했다. 지금도 유럽 도시, 특히 궂은 날이 많은 런던에 가면 동서남북 방향을 찾기가 어렵다. 길도 교차로에 서면 넷이 아니라 5~6갈래가 나오는데 이때 가고자 하는 길의 방향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날도 흐려 시간과 해의 위치를 보고 방향을 잡으려 해도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몇 번 다닌 사람은 나침판을 준비해가지고 가서 지도 위에다 나침판을 올려놓고 방향을 찾아내기도 한다.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가. 어느 마을에나 산이 있다. 산이 바로 도시의 방향을 일러준다. 남산은 어느 마을에서나 남쪽에 있다. 북에 있으면 북악산이요 북한산이다. 서울에서도 남쪽에 남산이 있고 그 위의 팔각정이 랜드마크 안테나가 되는 셈이다.경기도도 높은 건물 짓기 경쟁에 뛰어들 것인가. 인천 송도지역에도 151층짜리 인천타워가 들어선다고 한다. 인천에는 이미 바다가 있어 그 높이를 바다의 넓이에 비교할 바는 못 되고 그 건물의 기능으로 무엇인가 기능을 삼아야 할 텐데 수도권 중심이 아닌 곳에 사람을 끌어들일 문화를 창출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냥 높은 시멘트 빌딩 하나 짓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현대적인 의미에서의 랜드마크 빌딩은 문화적인 기능으로 특성 지어져야 할 것이다. 파리의 퐁피두 미술관이나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은 미술관으로 그 도시를 세계적으로 알렸다. 경기도는 무엇으로 알려야 할 것인가. 이천은 도자기 예술촌으로 랜드마크를 삼겠다고 한다. 경기도는 성곽문화에서 산지형 남한산성과 평지형 화성을 가지고 있다. 남한산성은 준비 중이지만 화성은 이미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수원은 화성을 잘 복원하여 성 안에 사람이 북적되는 시장이며, 문화 시설을 연결하여 랜드마크로 삼아야 할 것이다. 건축기술을 앞세우는 높은 빌딩 그것도 빠르게 짓기 경쟁에서 떠나 역사적 연장선에서 문화적 랜드마크 기념물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굳이 구조물을 짓는다면 오래 전의 건축가들이 제시한 산 위의 회전 원형 팔각정 같은 건물도 그 한 예가 될 것이다./김 광 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

관광선진국 아직 멀었나

필자는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국내 이곳저곳을 많이 가 봤다. 또 어릴 적 섬에서 성장한 경험 때문에 섬 여행을 특히 좋아한다. 얼마 전 결혼기념일도 기념할 겸 아내와 같이 2박3일 제주도 여행을 갔다왔다. 이전에 제주도에 간 적이 대여섯 번은 되는 것 같다. 그때마다 특급호텔이나 콘도에서 숙박을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비절감을 위해 서귀포의 일반 관광호텔 상품으로 예약했다. 특급호텔과 필자가 예약한 호텔의 경비가 2배 가까이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여행을 하는 목적은 그곳의 자연경관, 분위기, 음식 등을 즐기거나 그곳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거나 배우기 위해 간다. 위와 같은 여행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기반이 돼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편안한 숙소다.숙소가 자신의 집 같지는 않겠지만, 좋은 호텔이든 아니든 깨끗해야 한다. 특히 침구 시트는 반드시 교환돼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숙박한 호텔은 명색이 관광호텔인데 침구와 베개 시트가 교환돼 있지 않아 땀 냄새가 진동했다. 일본 패키지여행을 할 때 투숙하게 되는 여관에 가면 겉모습을 보고 미리 실망하지만 정작 그 여관 객실 안에 들어가면 그 청결함에 만족하게 된다. 여관 내부가 좁고 가구 등이 오래된 것이지만 너무나 깨끗하게 청소되고 정리되어 있기 때문이다.외국인이든 내국인이든 여행객은 힘든 여행에서 편안히 쉴 수 있는 깨끗한 숙소를 원한다. 숙소의 시설이 화려하고 현대적이지 않고 낡은 곳이라도 청결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 다른 관광 지역의 숙박시설도 마찬가지다. 오래 전 주말에 포항에 갔었는데, 거의 모든 숙박시설이 동이 났다. 겨우 찾아 들어간 그곳의 모텔도 침구의 시트가 교환되어 있지 않았다. 어느 곳은 아예 시트갈이가 되어 있지 않은 이불과 요를 주는 곳도 있다. 그런 이불과 요를 매일 세탁하는 것도 아닐 텐데 말이다. 요즘 큰 문제가 되었던 식당의 반찬을 재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관광선진국이 되려면 겉으로 보이는 것을 화려하게 하는 것보다 잘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유념해야 한다. 이제 내국인들도 그러한 것에 더 신경쓰는 시대가 됐다. 제주도는 제주특별자치도다. 관광한국의 대표적인 곳 아닌가. 제주도 고기잡이 배인 태우를 형상화해 건설한 서귀포 새섬을 연결하는 다리인 세연교의 디자인과 화려한 야경, 새섬 둘레 산책로는 너무 좋았다. 그러나 그런 외향적인 볼거리의 화려함과 아름다움도 중요하지만 위에 언급한 숙소의 청결함 같은 내실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제주도에서는 먹을거리 가격이 좀 비싸다. 식사 한 끼에 1만원 이하의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관광지 숙소 주변이라 특별히 비싼 것인지, 제주도 전체가 모두 그런한 것인지 잘 모르지만 음식 등 물가가 서울보다도 높다. 제주도에서 밥을 먹고 나면 가격에 비해 내용이 미흡해 왠지 좀 개운치 않다.필자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관광선진국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 또 제주도가 그 선봉에서 역할을 다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외국인을 국내에 많이 유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국인도 저렴하게 국내 구석구석 여행하는 데 불편함이 없게 해야 한다. 내국인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지속적인 외국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까.숙소의 청결함이야말로 편안한 여행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또 여행객들도 침구시트가 교환돼 있지 않으면 호텔 측을 나무라고 교환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또 비싼 음식값 등 바가지 물가가 없어야 한다. 그래야 변하고 발전하여 관광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나만의 생각일까./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숫자놀이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고 시골 비슷한 교외로 이주한 지 십 년이 되었다. 초창기 성기고 어설펐던 정원이며 텃밭 모습이 자리를 잡아가니 바라보기가 조석으로 즐겁다. 변한 것은 집 주변 풍광만이 아니다. 바라보는 집안 식구들의 마음도 변하였다. 너무 촌사람 되지 말자며 한 달에 몇 번은 서울 나들이하자던 마음은 이제 일 년에 몇 번 서울 나들이가 귀찮아지는 마음으로 변하였다. 우리 집식구들은 이렇게 변하였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여기 몇 평이에요? 더하기 평당 얼마 해요? 이다. 텃밭에서 뽑은 상추에 장독에서 퍼온 된장을 얹어 한 술 맛나게 쌈밥을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 식사 얼마짜리예요?라고 묻는 격이다. 논리적으로는 앞뒤가 안 맞지만 드셔 보세요. 맛나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듯이 나의 대답은 대개 일정하다. 살아보니 좋아요.나의 답변이 우문현답(愚問賢答)인지 아니면 현문우답(賢問愚答)인지는 모르겠지만 둘러보면 세상이 어느덧 숫자로 표시해야만 믿음이 가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온갖 경제지표는 전문가조차도 따로 공부해야 이해가 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할 나위 없고 연봉 얼마짜리 운동선수, 학교 성적이 몇 등, 수능 몇 등급, 세계 몇 위 대학, 몇 번 도로를 따라 달리는 몇 번 버스 노선, 은행 비밀번호. 끝이 없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해도 대한민국 행복지수를 세계에서 몇 등이라고 확인해야 그리고 매년 한 단계라도 더 올려야 직성이 풀린다.숫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숫자는 깔끔하고 명확하며 논리적이고 편리하다. 숫자로 표현 가능한 현상을 말로 풀어쓴다면 우리네 일상은 장광설의 엉클어짐이 못내 불편하여 숫자를 다시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이 될 것이 분명하다. 숫자가 우리네 일상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숫자의 본디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숫자를 과신하여 숫자놀이에 빠지는 경우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고 영향력 있는 숫자놀이가 통계이다. 통계는 복잡다단한 사회현상을 일목요연하게 요약 정리하여 판단을 돕는다. 반면 통계는 숫자 그 너머의 세계에 존재하는 의미세계를 보지 못하도록 부추긴다. 이런 의미에서 통계에 있어 중요한 사실은 통계는 거짓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통계는 삶에 있어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는 반면 중요한 모든 것은 보지 못하도록 부추긴다는 사실이다.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가 가장 빨리 좋아졌다고 갖은 수치를 들이대며 무지한(?) 서민들을 가르치려 드는데 정작 서민들은 나아진 게 없다는, 아니 더 어려워졌다는 이 모순을 어찌 해석해야 옳은가? 너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내가 가르치고 연구하여 밥 벌어 먹고 사는 대학의 요즘 행세를 보자. 숫자뿐 아니라 숫자 너머의 세계도 볼 줄 알 것이라고 (아니, 보아야 한다고) 그나마 주제넘게 대접받고 있는 대학이라는 조직에서조차 숫자놀음에 제 스스로 앞장서서 희롱당하고 있다. 어느 중앙일간지의 대학순위평가에 안달하는 우리네 대학의 모습이 애처로워 하는 말이다. 자기가 만든 잣대로 대학을 평가하여 한 줄로 세우는 그 신문은 대학으로부터 평가를 받으면 몇 등이나 할까 궁금하다. 배부른 소리나 하는 당신은 이런 모순을 해결할 무슨 대단한 묘수라도 있냐고 되묻는다면 다음 번 칼럼에서 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대하시라./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1박 2일의 단상

1박(泊) 2일이라는 인기 TV프로그램이 있다. 여행이든 야유회든 하루 밤을 같이 자지 않고 당일로 다녀오는 것은 왠지 좀 섭섭하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하루 밤을 누구와 같이 자거나, 또는 자지 않더라도 밤을 지내는 것은 남녀사이든, 친구사이든, 가족사이든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느낌이 있다.지난 9월 주말에 필자가 소속된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 직원들 및 가족들과 포천의 산정호수를 들러보고 연천군 전곡읍 근처에서 1박을 하는 1박 2일 야유회를 다녀왔다. 수원지부 구성원은 변호사, 공익법무관(사법시험을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군복무 대신 3년간 검찰청 등 공기관에서 소송대리 즉, 변호사 업무 등을 하는 사람), 일반직을 포함 전 직원이 20여명이다. 공단 직원들의 신분은 공무원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공무원적 성질의 것이 많다. 그래서 그런지 업무 외에 조직 내 친목활성화 면에서는 일반 법무법인의 그것보다 아무래도 침체되어 있고, 소극적인 면이 없지 않다. 공단의 업무가 대민 법률 서비스 업무이다 보니 평일에 휴무하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휴일에 하기도 힘들어서 그런지, 연수 목적이든 친목 목적이든 전 직원이 1박을 하면서 소통하는 프로그램이 없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생각했다.이러한 점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려고 필자가 수원지부에 온 후 친목 도모도 할 겸 매달 간단한 등산, 여행 등을 가기로 하고 모임도 만들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지난 여름 처음으로 수원의 광교산 등산을 한 후 가지 못하다가 이번에 두 번째로 간 것이다. 야유회 갈 날을 잡아 놓고 하는 가장 큰 걱정이 날씨 걱정이었다. 가는 날 일기예보를 보니 출발일인 토요일에는 오전에만 비가 약간 오고 오후에는 안 온다고 한다. 첫 코스인 포천군 산정호수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오지 않았다. 직원들과 같이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가 앉아 있는데, 비가 많이 오기 시작하고 급기야 우박을 동반한 엄청난 폭우가 30여 분간 내렸다. 걱정을 하면서도 점심을 맛있게 먹고 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빛이 나며 맑아졌다. 길 위의 먼지를 없애고 상쾌하게 하려고 하늘이 우리를 반겼구나 하고 생각했다.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안에 돌아볼 수 있는 산정호수 둘레의 산책길은 국내외의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길이다. 산책길을 돌며 바라 본 그리 크지는 않지만 아담한 호수 풍경은 뒷 배경의 경치와 조화되어 여러 각도에 따라 다양한 아름다움을 주었다. 산책길은 소나무 숲길의 정취가 너무 좋다. 특히 호수 제방 쪽에서, 태봉국을 잃은 궁예가 나라 잃은 슬픔에 크게 울어 울 명(鳴) 소리 성(聲)의 명성이 되었다고 하는, 명성산을 뒷 배경으로 호수 풍광을 바라보는 것은 명성산의 여러 바위 빛깔과 어우러져 산정호수 경관의 백미(白眉)가 된다.오후 4시경에 숙박할 전곡읍 근처의 소박한 별장에 여장을 풀었다. 같이 온 유치원생 정도 또래의 직원 딸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졸졸 흐르는 도랑물 소리, 가끔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외의 조용함에 양념이 되어 주었다. 약간의 술을 곁들여 우리 스스로 조리한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모닥불을 피우고 불 주위에 둘러 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으면서 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들을 보며 모두가 소년 소녀시절의 시골고향 모습으로 돌아가 보았다. 밤새워 이야기하며 모두가 나이를 떠나 친구가 되었다. 잠자리 등 모든 것이 불편하여 몸은 피곤하였지만 1박(泊)을 같이 하여 직원들과의 소통과 친목도모에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뿌듯하고 편안하였다./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이제는 광장과 공회당이 늘어야

사회가 발전하면서 늘어나야 할 시설물도 단계가 있는 것 같다. 먼저는 도로 정비고 다음으로 편의시설물이다. 우리나라는 동네 쌈지 공원 단계를 거쳐 요즘은 하천 길 걷기나 자전거 길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몇 달 전 수지 지역의 하천길이 정비되어 자전거와 사람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천을 그대로 살리며 길을 내주니 낮에는 물론 밤에까지 많은 주민들이 그 길을 걸으며 즐거워하니 정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든 다음에 의료비 보조를 할 것이 아니라 사전에 이런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바른 정치가 아닌가. 이 길 하나로 아마 의료예산 몇 백억 원은 절약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다음 공공시설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느 지자체에서는 도서관을 또는 보육시설이나 급식시설, 체육공원 등 늘려야 할 것이 많겠으나 경기도 지역에서는 문화적 차원에서 광장과 공회당이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서울시청 앞 광장은 잔디를 깔았다가 데모대에 의해 뭉개지고 다시 잔디가 깔리는 시련을 겪고 있다. 이미 문화로서의 광장이 아니라 정치 마당이 되어 버렸다. 서울에서는 근간에 광화문 광장을 정비했다. 시청광장에 혼쭐이 나서 광화문광장은 문화 광장으로 선포해 버렸다. 정치문화 발전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사용 규칙이라고 여겨진다. 겨울에는 스케이트 광장으로 이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작 경기도의 도시들은 어떤 형태든 광장을 갖춘 시가 몇이나 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기차나 전철역 광장은 터미널 백화점으로 바뀌고 광장은 버스와 전광판으로 둘러싸여 사람이 설 공지는 없다. 시청이나 도청 앞은 도로만 지날 뿐 광장은 없다. 광장이란 고대 그리스를 비롯해 근대 스위스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정치와 축제마당으로 기능했다. 여의도 광장은 선거 유세와 군사 퍼레이드로 활용됐으나 정치는 텔레비전으로 넘기고 퍼레이드는 평화 무드 속에 연무장으로 넘기고 말았다.사라진 대규모 광장은 이제 지역 소도시에서 작게 살아나야 한다. 광장은 단순히 빈 터가 아니라 모든 정치와 문화와 생활을 담을 수 있는 변용의 생산터인 셈이다. 이제는 천만 대도시에서 대규모 집회를 하는 시대는 아니다. 작은 소도시들이 자치적으로 생활 정치를 하고 축제를 여는 그런 시대다. 성남시청 앞 잔디광장이 음악회, 걷기 대회, 문화 전시회 등 다각도로 쓰이는 예는 좋은 본보기다.더불어 이제는 공회당이다. 25년 전 일본에서 경험한 일인데 회사 주재원 시절 딸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며 학예발표를 하는데 유치원이 아니라 지역 구립공회당에서 여는 것이었다. 천여 명은 들어갈 정식 극장이었다. 유치원 시절부터 무대에 서서 그간 학습한 기예를 부모들에게 선보이는 잔치였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는 유치원이나 중고등학교 학예발표회를 비좁은 교실이나 학교의 강당에서 갖는다. 무대는 좁고 객석은 평평해서 무대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데서 발표를 해보는 것과 정식 극장의 무대에 서는 것은 정서 발달 과정에 큰 차이를 줄 것이다. 아예 학예발표회가 사라져 버린 학교도 많다고 하지만. 이런 결과 대학에서도 동아리 활동이 너무 빈약한 형편이다. 서울 소재 대학은 많아야 100~200개, 지방 대학은 50여개 수준인데 이웃 일본 대학에서는 수백 개의 동아리들이 활동하고 있다. 다양성과 창의를 강조하면서 정작 그 터전이 되는 멍석을 까는 절차에는 너무 소홀한 것 같다.창의를 부르짖는 시대에 지방에서는 문화 교육적 차원에서 공회당이,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는 광장이 필요한 시대다./김광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접하고

약 17년간 서울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다가 올해 2월 말, 사회에 봉사를 하는 마음으로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에 지원해 근무하고 있다.법률구조공단의 법률구조(救助)업무는 법률상담, 간단한 소장 작성 등 법률서류작성 등 소송 외 법률구조 업무와 요즘 국선변호사 제도가 활성화 되어 있는 형사사건을 제외하고, 법원에 소장 등을 제출하여 법률구조를 하는 소송상 법률구조 업무를 종류별로 대별해 보면, 근로자가 임금 등을 받지 못한 경우 이 금액을 법원에 청구하는 체불임금 등의 사건이 가장 많다.그 청구금액은 몇 백만원에서 일, 이천만원 정도가 가장 많아 일반 변호사 사무실에 위임하여 소송하기 어려운 사건들이다. 그 다음에 폭력 피해 여성들이 이혼, 위자료, 재산분할 등을 청구하는 이혼 등의 사건들이 많다. 또 채무가 많아 재기하기 힘든 사람들을 위한 개인 파산면책신청, 개인 회생신청 사건도 많다.이 외에 상당수의 사건들은 일반 변호사 사무실에서는 접하기 힘든, 세들어 사는 서민들이 임대기간이 만료되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려는데 집주인인 임대인이 임대 보증금을 주지 못하는 경우 위 임대보증금의 반환 청구를 하거나 임차권 등기명령신청을 하는 임대차 사건, 연로한 부모들이 자식들로부터 생활비를 받지 못해 자식들을 상대로 부양료를 청구하는 사건, 그리고 부(父) 또는 모(母)와 자(子)로 등재되어 있는 가족관계등록부(이전의 호적)에 부 또는 모와 자의 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인 판결을 청구하는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청구 사건, 성(姓)과 본(本)이 출생할 때부터 없기 때문에 이를 창설해 달라는 성본창설허가 신청 사건, 위와 같이 성과 본이 있더라도 가족관계등록부가 구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신청하는 가족관계등록부창설 신청 사건, 상속포기, 한정승인을 신청하는 상속관련 사건, 부모들이 없는 미성년자를 위한 후견인선임 신청 사건, 요즘 많이 발생되었던 전화 사기, 일명 보이스피싱 사건들이다.필자는 아직도 위와 같은 사건들이 많다는 점에 너무 놀랐다. 위와 같은 사건들의 의뢰자들은 모두가 가난한 서민들이거나, 부모를 잘못 만나 어렸을 때 적당히 친생자(親生子)로 호적에 올려 진 사람들이거나, 고아로 태어난 사람들이거나, 세상사에 무지한 약자들이다.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소송에서 법원에서 요구하는 유전자 감정서를 받는데 드는 비용 몇 십만원이 없어서 위 소송을 중도에 포기하기도 하는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세상에 이렇게 경제적으로 또는 가정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공단은 법원이나 검찰조직처럼 경기도 남부의 경우 수원지부, 성남출장소, 안산출장소, 안양출장소, 여주출장소, 평택출장소를 두고 있다.월 소득 260만원 이하의 분들, 6급 이하의 공무원, 위관급 장교 이하의 군인 등 이들에게 일정한 요건하에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소송 구조를 하고 있고, 농어민, 도시 영세민, 체불임금 근로자들, 가정폭력 피해여성에게는 무료로 소송 구조를 하고 있다.이 같은 사회적인 약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법률적인 도움을 주고자 선택한 공단에서 필자는 그들에게 빛이 될 수 있도록 만사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싶다. /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절벽 밑과 철봉 밑

세태를 반영한 신조어를 따라 잡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한 때는 45세면 정년이라는 뜻의 사오정이 유행이더니만 88만원 세대를 거쳐 이제는 청년실신(靑年失信)이란다. 대학을 졸업해도 취업을 못하니 융자받아 낸 대학등록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여 실업자가 되기도 전에 미리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말이다. 내가 대학 다니던 70년대 시절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우리 세대는 주머니는 가난하였지만 마음은 가난하지 않았다. 어려워도 졸업하면 취직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고 뭔가 노력하면 어떡하든 이룰 수 있다고 믿던 시대였다. 지금은 당시에 비하면 물질적으로 참으로 풍요로운 시기임에도 어찌된 노릇인지 이 시대 청년들은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 참으로 가난하다. 어학연수는 기본이고 각종 자격증에 해외봉사까지 이른바 스펙으로만 치자면 내 세대는 지금 청년세대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 가히 풍요속의 빈곤이다.우리만 그런가 하니 그렇지도 않다. 성년이 되고나서도 부모 곁을 떠나지 않는 이른바 캥거루족이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급증 추세란다. 모두 제레미 리프킨의 저작 노동의 종말을 증언하는듯하다. 생산은 늘어도 일자리는 주는 이른바 일하는 20과 일할 수 없는 80의 시대가 이미 도래하고 있다. 삽질하는 경제정책으로는 결코 해결 불가능한 상황이다. 사고의 틀을 바꾸는 이른바 파라다임 쉬프트가 절실한 시기이다. 허나 바랄 것을 바라야지 앞으로 몇 년간 이 정부에 요원한 주문은 하지 않는 것이 정신건강상 좋다. 그래도 절망을 앞세우기에는 희망이 너무도 필요한 시기이다. 내 마음 깊숙하게 자리한 어느 후배 얘기로 요즘 파김치가 된 세대에게 희망이라는 편견을 접종하고픈 마음이다. 40대 후반이 된 이 후배는 한 때 이른바 386의 선봉에 서서 세상을 바꾸어 보려던 열혈청년 시절이 있었다. 그의 꿈은 능력에 따라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군사독재의 억압에 맞섰고 끝내는 모스크바의 어느 대학에서 학위과정을 밟는 자신을 발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탱크 위에서 포효하며 역사를 밀고 나가던 옐친과 러시아 사회의 실제 변해가는 모습을 보고난 후 환멸을 느끼고 귀국하여 국내 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허나 그를 기다리던 세상은 요즘 젊은이의 취업시장과 같았다. 대단한 문장력과 학문적 열정에도 불구하고 이리 저리 떠돌다 자신의 몸이 병든 것을 알았다. 파킨슨씨 병이었다. 약에 의존하지 않으면 몸을 제대로 가누기 힘들게 되고 말도 어눌해졌다. 더 늦기 전에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하고 싶었다. 아들과 함께한 특별한 여행이라는 여행기는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어도 그의 절망은 깊어만 갔다. 세상은 자신의 꿈과는 반대로 가고 어느 한 군데 오라는 대학도 없는 와중에 몸은 망가져 갔다. 벼랑 끝에 매달려 간신히 지탱하던 손목에 힘이 빠졌다. 추한 꼴을 보이기 싫어 제 스스로 매달렸던 손목의 힘을 빼기로 하였다. 나에게 이메일로 심금을 울리는 몇 편의 자작시와 처연한 러시아 음악을 보내왔다. 걱정이 되어 안부전화로 그의 상황을 주시하였다. 어느 날 느닷없이 답신이 왔다. 형님, 세상과 인연을 놓고자 절벽에서 손을 놓아 떨어져 깨어났더니 고교시절 체육시간에 떨어졌던 철봉 밑이더군요. 강의 중 이 이야기를 나의 제자에게 전해주다 눈물을 감추려 잠시 강의실 밖으로 몸을 비꼈던 기억이 난다. 청년실신 너무 걱정마라. 살면 살아지는거야. 나의 후배가 그렇듯이 말이야. 이번 달 언젠가 수술하는 그의 완쾌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국회의 극한 투쟁을 보면서

근래 국회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관철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아주 기본적인 예의도 없이 상대방을 비난한 채 행동하고 있는 것을 보노라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또는 우파진영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보 또는 좌파진영은 겉으로는 보수 또는 진보를 표방하고 자신들의 노선과 주장들이 다수 국민들의 복리에 맞는 것이라고 외치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면서 가깝게는 재선거, 보궐선거, 지방선거, 멀게는 총선,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총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선거에서의 승리는 정권을 잡는 것이고, 특히 대통령 중심제인 우리나라에 대선에서의 승리야 말로 승리 한 진영에 엄청난 성취를 갖다 주는 것이며 반대로 패배한 진영에게는 손실을 주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그러면 위와 같은 성취와 손실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고, 그것을 잃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권을 잡는 진영에게는 엄청난 수의 공직 즉, 권력들이 분배되고, 더 나아가 정권을 잡는 진영과 가까운 사기업들에게는 여러 가지 형태의 이권과 편의가 제공되어 그 기업이 특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한나라당을 중심으로 한 진영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진영은 표면적으로 보수와 진보, 중산층과 서민 등의 가치들을 내세우지만, 실제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한국에서 출신 인구수로 1위와 2위를 차지하는 영남과 호남이다. 즉 수십년간 영남정권이 집권하면서 공직과 재벌을 비롯한 기업들에 영남인맥이 광범위하게 자리잡게 된 것이고 그 조직내에서 우대를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시절에는 반대로 호남인맥이 정관계 및 사기업에서 많은 우대와 혜택을 받았다. 양 진영이 모두 권력의 꿀맛을 보았다. 이러한 점은 생존권의 문제로 되었다. 현대에서 생존권이라는 것은 단순히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상대적 차별감 또는 열등의식이다.따라서 위 두 진영은 극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극한 투쟁을 없애려면 새삼스런 주장이 아니지만 지역감정, 지역차별을 없애는 길 밖에 없다. 모든 국민이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든, 어느 지역의 고등학교를 나왔든 차별 없이 채용되고, 승진에 있어 특혜가 없어야 한다.아직도 공직이나 사기업에서 인사기록에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 기록하는 예가 많은 것으로 안다.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히려 어느 지역출신인지 구별하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이러한 것부터 없애야 한다. 반대의 견해도 있지만, 얼마 전 새로 취임한 검찰총장이 인사카드의 출신지역, 출신학교 등을 모두 없애겠다고 공언한 것을 적극 지지한다. 필자는 충청도에서 태어나 초중고등학교는 영남에서 다녔고, 호남출신의 처와 살고 있다. 따라서 누가 말을 하면 어느 지역 출신인지 대부분 알 수 있다. 지역마다 말투가 다르다. 그렇다고 모든 지역의 어투를 통일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 것이 일반화 되어 있다. 그 사람과의 공통점을 찾아 친근해 지려는 질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고향이 어딘지,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 묻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인사카드 등에 어디 출신인지, 어느 고등학교를 나왔는지 기록하지 말아야 한다. 지역감정, 지역차별이 없어지고 모두 대한민국 국민으로 상대적 차별이 사라져서 국회에서 극한 투쟁이 사라지는 날까지 말이다.위와 같은 국회 정파들의 극한 투쟁의 저변에는 그들이 외치는 어떤 숭고한 가치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런한 지역감정, 지역차별이 자리잡고 있다. /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는가

사회적인 여러 모임이나 행사를 치르는데, 우리나라에서 근 20여년사이 바뀐 풍습이 하나 있다. 그건 사정에 따라 순연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초청장이나 행사 안내문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떻게 그런 변화를 맞고 있는 것일까. 그건 가장 간단한 야외 결혼식의 경우를 보더라도 비가 안 오면 야외 결혼식장에서 멋지게 꽃 장식을 두르고 행사를 치르지만 만일 비가 온다면 작으나마 실내 공간이 준비되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만치 우리의 시설이 많아지고 교통이나 주변 환경이 나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많은 야외 공연이나 행사에서는 간이 비옷을 마련하여 나누어 주기도 한다. 젊은이들은 비를 맞으며 같이 발을 구르는 것을 더 좋아하기도 한다. 거기에 많은 행사들이 줄이어 있고 모두 바쁜 시대여서 다른 날로 연기하려 해도 공연장이 잡히지도 않고 출연자며 참석자들이 다른 날에 다시 올 수도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영국에서 본 일인데 1년간의 축구 스케줄이 다 잡혀 있고 회원 중심제로 운영한다. 회원들은 새 연도가 시작되는 8월 이전에 몇 백 만원의 회비를 내고 필요시 신청해 관람한다. 우승 팀이 가려지는 5월이 가까워지면 회원이 아닌 사람은 표를 살 수도 없다.우리나라 신문에서 TV프로그램 표를 보노라면 아직 *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축구경기의 경우 프로그램란에 우천시 순연이라는 문구가 기재됨)라고 아래쪽에 적혀 있다. 아마도 프로그램이 달라져도 신문사 탓은 하지 말라는 안내일 수 있으나 원칙적으로 방송사에서 프로그램을 바꾼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있어서는 안 될 일인 것이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급한 일이 있으면 어떡하느냐. 풍수해나 지진 등의 긴급재난 방송은 법에 따라 긴급방송을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법에 따라 당연히 할 수 있는 방송을 위해 그런 문구를 적은 것은 아닐 것이다. 외국 선진지상파 대중 방송은 일주일 전에 그리고 위성이나 케이블 등의 방송은 한 달 전에 프로그램계획표가 나오고 그대로 방송을 하고 있다.시대가 바뀌었는데 우리나라 방송사가 아직도 형편에 따라 방송프로그램을 바꾸겠다는 의식은 버려야 한다. 신문에서 이런 문구가 빨리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래야 방송이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이 되고 시청률이나 스폰서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성 있는 방송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또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다.마찬가지로 많은 지역 사회에서 지역의 건설공사며 문화행사가 중도에 바뀌거나 중단되는 일이 종종 있다. 이것은 사전에 준비가 부족했거나 설계가 잘 못 됐거나 주민의 동의를 받지 못했다는 증거가 된다. 때로는 공사를 수주하고는 중도에 계속 설계를 바꾸어 가면서 싼 입찰로 보게 되는 손해를 메우려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행사든 행정이든 중도에 바꾼다는 일은 그 속내에 수상한 점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인쇄 된 종이는 백지보다 싸다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건설된 토지는 나대지보다 싸고 나대지는 변형된 토지보다 비싸다는 말이 성립한다.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시도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실패하더라도 시도해 보는 것이 더 가치가 있는 생활 태도이지만 사회나 국가적으로는 확신 없는 어중간한 행사나 정책은 충분히 무르익을 때까지 심사숙고해야 하고 결정 이후에는 중도 변경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는가? 개인 간의 약속은 몰라도 사회적인 약속에서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김광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

발전의 역설

지난 7월11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가나(Ghana)를 방문해 역사적인 연설을 하면서 제가 태어났을 당시 케냐와 같은 국가들의 1인당 경제 규모는 한국 보다 훨씬 컸지만 지금은 한국에 완전히 추월당했다고 하여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국제적으로 인정해 주었다. 지난 일주일간 가나의 수도 아크라(Accra)에 머물면서 이곳 국가 계획 수립 담당자와 예산 담당 공무원들을 만나면서 국가발전 전략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발전 경험을 공유하자는 지식공유사업(Knowledge Sharing Program)에 참여하면서 역설적이게도 우리를 돌아보는 의미를 갖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가나는 우리보다 약간 늦은 1957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이후 독재정권군사정권의 경험을 하였고, 1991년에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작년에는 박빙의 선거를 통해 평화정권 이양의 경험도 하였다. 우리의 역사와 유사한 역사적 배경과 정치발전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발전의 측면에서 우리와 구분되는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이곳은 남부 도시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면 농촌 지역에서는 아직도 나무 아래에 책상과 의자 몇 개를 두고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열악한 교육시설에 교사의 보수도 형편없어 인재를 양성할 기회가 상실되고 있다. KOICA 사업의 일환인 월드비전(World Vision)에서 학교 지어주기를 하고 있어 가나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625 전쟁 중에도 천막 속에서 공부를 했던 흑백사진이 스쳐갔다. 그 열렬한 교육열을 통해 인재를 양성하였고, 그러한 우수한 인적 자원 인프라가 경제발전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냈다. 내가 머물고 있는 호텔 길 건너에 건축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새벽을 가르는 5시가 되면 사람들이 모여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일종의 도매시장인 마콜라(Makola) 시장에는 집에서 재배했거나 만든 물건을 가져오는 사람, 그것을 사서 길거리에서 팔려는 1천여 사람들이 5시가 되면 모이기 시작한다. 엄청난 금(gold)과 코코아 생산국이라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중국의 값싼 노동력에 근거한 물건이 들어오면서 이들의 경쟁력은 위협받고 있다. 21개가 있던 섬유공장이 문을 닫고 지금은 3개만 남았다는 이야기에 섬뜻한 느낌이 들었다. 돌아보면 우리가 한창 경제발전을 하던 60년대에 중국이 사회주의 혁명을 하느라고 우리와 경제 경쟁을 하지 않은 것이 우리로서는 매우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가나에 와서 우리의 경제 발전을 돌아보니 상대적으로 빨리 벗어난 식민지 경험, 당신 세대에서는 굶더라도 자식 공부를 시키려 했던 부모 세대의 교육열, 그리고 이를 통한 우수한 인적 자원의 확보, 무엇보다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적극적 의지(will to economize)가 중요한 요인이 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그런데 발전의 원동력이 이제는 발전을 저해하는 모순을 보여 주고 있다.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교육열이 공교육 파괴라는 공공의 적이 되었고, 경제성장을 이루려는 의지가 투기 세력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제 이러한 경제개발 초기의 힘을 새로운 발전 원동력으로 전환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2006년 한국을 방문했던 노암 촘스키(N .Chomsky)는 한국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Many things are happening)라고 하여 우리 사회의 역동성을 설명한 적이 있다. 그 역동성을 살려야 한다. 그리고 역동성이 지향할 수 있는 원대한 비전이 필요하다. 목표 성장률 7%라는 숫자의 환상에 갖혀 있을 것이 아니라, 세계를 향한 원대한 논리가 필요한 시기이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공기의 소중함

삶에는 다양한 분류 양식이 존재한다. 학자에 따라 분류하는 방법도 다르겠지만 나는 크게 물질적 양식과 정신적 양식으로 분류하고자 한다. 사람은 누구나 물질적 양식을 필요로 한다. 다만 그것에 의존하는 확률이 얼마냐에 따라 삶의 충만함이 달라진다. 둘은 좋고 나쁨을 따지지 못하는 상호 이질적이며 상호 보완적인 분류다. 그저 현대 사회에서는 정신적 중요성에 비해 물질적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은 자판기에서 마시는 커피의 몇배 아니 몇십배 비싸더라도 그것을 따지는 사람은 없다. 그저 당연하려니 한다. 왜 그럴까? 아주 좋은 원료를 사용하여서 그럴 수도 있다. 최상의 서비스를 곁들여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흔히들 이야기하는 자릿세가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곳은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이다. 끼리끼리 누릴 수 있게 차별화 한 곳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탓하지 않는다. 그곳에 끼고 싶으면 나름대로의 자격을 갖추면 된다. 깨끗한 옷과 찻값을 치룰 수 있으면 최소한의 자격은 된다. 교양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요, 요즘 유행하는 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즉, 물질적인 것이 정신적인 것을 도와주는 형식을 취함으로서 그것을 더욱 강조하는 사회풍조인 것이다. 맛있는 커피를 굳이 그곳에서 마실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곳을 찾는 이유는 때깔이 고운 것이 맛도 좋다는 스스로에게 인식된 고정관념 때문일게다. 나는 요즘 어머님을 찾아뵙는 빈도수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줄어들었다. 핑계는 먹고살기 위해서다. 건축 경기가 엉망이다 보니 건축설계를 해서 먹고사는 나로서는 그 많은 회사 구성원들을 책임지기가 버겁다. 현실이다. 당장 벌지 않으면 많은 식구들이 어렵게 된다. 여유가 없다. 예전 같으면 음악도 듣고 좋은 장소 찾아다니며 스케치도 했는데 지금은 어림 없다. 그러다 보니 가까이 계신 어머님조차 순간순간 잊고 산다. 참 한심한 속물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실거다. 애비가 얼마나 바쁘면 연락조차 못할까? 문득 생각이 나서 전화기를 든다. 어머니, 채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애비야 밥은 먹고 다니니. 끼니 거르지 마라. 건강해야 이겨낸다. 네가 약한 모습 보이면 직원들 마음은 어떻겠냐. 특히 아무리 어렵더라도 형제지간에 사이좋게 지내도록 해라. 집이나 나라나 경제가 어려우면 이런 저런 불상사가 일어나고 불협화음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럴 때 일수록 서로 격려하고 화목하게 지내도록 해라. 네가 중심을 잡지 못하면 큰일 난다. 숨도 쉬시지 않고 마치 전화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 하신다. 늘 가슴이 찡하다. 물질적인 세상에 젖어있던 내가 잠시나마 뒤를 돌아보고 진정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상기시키는 시간이다. 어머님 말씀을 듣고 나면 순간 축 처져 있던 몸에 힘이 솟고 잃었던 용기가 다시 돌아온다. 나에게 있어서 어머니는 공기와 같은 존재이시다. 물리학적으로 본다면 약 78%의 질소(N2)와 약 21%의 산소(O2), 그리고 약 1%의 아르곤(Ar) 그리고 미량의 수소(H2), 네온(He), 헬륨(He), 크립톤(Kr), 크세논(Xe)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기의 구성요소가 어떠하든 공기는 나에게 가슴 벅찬 어머니의 기억으로 돌아온다. 며칠 전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셨다. 온 국민들은 슬픔 속에 가신님의 영면을 바랐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 합니다. 그분은 국민에게 공기 같은 분이셨다. 지금 그분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김동훈 ㈜진우 종합건축사 대표

사과 먹는 법

시를 쓰는 후배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 시간인데도 손님이 고작 세 사람뿐이다. 주문을 하고 나서 왜 이렇게 손님이 없느냐고 물으니 작년부터 이렇단다. 그러면서 식당을 차린 지 올해로 3년짼데 도저히 못해 먹겠다며 울상이다. 우리도 점심을 먹으면서 기분이 안 좋긴 마찬가지였다.며칠 뒤였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택시를 탔다. 헌데 기사의 얼굴이 날짜 지난 빵처럼 딱딱하기 이를 데 없다. 수고가 많다는 인사말에도, 행선지가 어디라고 일러줘도 도통 반응이 없다. 해서 혹시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기사 왈, 더러워서 못해 먹겠단다. 이유를 물으니 방금 손님과 요금 관계로 다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식 뻘이나 되는 젊은 사람한테서 욕까지 얻어 먹었다는 것이다. 나는 맑은 날이 있으면 궂은 날도 있지 않느냐고 위로를 해주었다.또 한 번은 짐이 있어서 짐콜을 불렀다. 그런데 퇴근 무렵이라서 길이 보통 막히는 게 아니다. 자연 기사와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지 기사는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용달차를 몰다가 작년에 짐콜로 옮겼는데 손님이 없어 죽을 맛이란다. 그래도 자기는 혼잣몸이라 괜찮지만 처자식이 딸린 가장들은 죽기 일보 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못해 먹겠다는 말을 세 번이나 했다.언제부턴가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소리가 못해 먹겠다는 소리뿐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 농사를 짓는 사람,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 회사에 나가는 사람, 공직에 있는 사람 다들 못해 먹겠다는 사람들뿐이지 해먹을 만하다고 하는 사람은 못 봤다.경기가 좋지 못한 데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어서 그렇게 말하겠지만 좀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이왕이면 내가 선택한 일이니 온 몸을 바쳐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은 쥐꼬리만큼 하고 나서 크게만 얻으려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두 아이에게 사과 다섯 개씩을 주고 먹으라고 했다. 한 아이는 다섯 개 중에서 가장 맛없어 보이는 사과부터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사과 다섯 개를 다 먹었다. 다른 아이는 사과 다섯 개 가운데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부터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그 아이도 사과 다섯 개를 다 먹었다. 그런데 같은 사과를 먹었는데도 결과는 아주 다르게 나왔다. 먼저 아이는 맛없는 사과 다섯 개를 먹은 반면에 두 번째 아이는 맛있는 사과 다섯 개를 먹은 것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먹었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오게 돼있다.맛있는 사과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맛없는 사과를 먹을 것인가는 오직 각자에게 달렸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던 마찬가지다.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임하느냐가 중요하다. 부정적인 사고에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만을 바라서는 안 될 것이다.글을 쓰다 보니 자연 출판사 사람들과 교분을 갖게 되는데, 여기에도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항상 밝은 얼굴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책을 만드는 사람과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만든다는 사람이 있다. 작가인 입장에서 누구를 더 만나고 싶겠는가. 열이면 열이 밝은 얼굴에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출판인을 만나고 싶어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올해 출판 시장은 연초부터 불황으로 허덕이고 있다. 어린이책 시장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도 나는 해먹을 만 하다고 미소를 지으며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는다. 구름은 언젠가 걷히게 돼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끔은 구름 낀 날의 풍경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자위한다. 맛있는 사과를 먹기 위해서는. 윤수천 동화작가

동북아 경제협력과 한중 해저터널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한국과 중국, 일본은 자유무역협정과 같은 제도적인 경제통합은 없지만 지리적으로 가깝고 경제성장 전략이 비슷하여 무역 및 투자 확대를 통한 기능적인 경제통합이 심화되어 왔다. 2008년 우리나라의 총 수출액 중 중국으로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22.1%로 한중 수교가 이루어진 1992년의 3.4%에 비해 7배가 증가하였으며, 우리나라의 총 수입액 중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92년의 4.5%에서 2008년에는 17.7%로 증가하였다. 특히 2007년에는 총 수입액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이 일본과 역전되면서 중국은 우리나라 제1의 수입대상국으로 부상하였다. 향후 한국과 중국 간의 교역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교역량 급증에 따른 효율적인 여객 및 화물 운송시스템 구축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여 경기도에서는 2008년 초부터 한중 해저터널 건설 방안을 검토해 왔다. 해저터널은 기존의 육상, 해상 및 항공 교통수단의 한계성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저에 터널을 건설하여 자동차 또는 기차가 대륙간 또는 국가간, 육지와 섬을 왕래할 수 있도록 하는 교통시설이다. 한중간의 해저터널은 철도뿐만 아니라 자동차 이용객을 위하여 차량터널로 건설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으나, 노선 연장이 373㎞로 길고 배기가스 처리 등의 환경문제를 고려할 때 철도전용 터널로 건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된다. 한국과 최단거리에 위치한 중국 산둥성의 웨이하이와 연결되는 해저터널의 우리나라 출발지점은 인천, 화성, 평택당진 외에도 북한의 황해도 용연 등 4개 대안이 검토 가능한데, 향후 대안비교를 통해 최적노선을 선정한 후 중국과의 협의를 거쳐 노선을 확정하게 될 것이다. 바다 밑으로 터널을 뚫는다는 것에 대해 일반인들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터널을 뚫는 방법은 그동안 상당한 수준으로 기술이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해저터널 건설이 기술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한중 해저터널 건설에 소요되는 공사비는 교량구간, 터널구간의 연장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략 110조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사비를 토대로 여객 및 화물에 대한 수요추정을 통해 사업 타당성을 분석할 때, 요금수입만을 갖고 막대한 공사비를 회수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으로 파악되었다. 따라서 경제적 요인 및 경제외적인 요인까지 고려한 종합적인 측면에서의 효과분석을 실시하여 타당성을 판단할 필요가 있다.지난 7월 16일 지역발전위원회에서는 초광역개발권 구상에 대한 중간보고회에서 해저터널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언급한 바가 있다. 경기도에서 요청하여 현재 국토해양부에서 검토 중인 동북아 경제공동체 대비를 위한 한중 해저터널 기초연구가 내년 4월에 완료되는데, 용역 결과를 토대로 대통령께 건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작년 1월 경기도에서 한중 해저터널 얘기를 처음 꺼냈을 때만 해도 꿈꾸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해저터널 구상이 점차 실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전 세계 3대 초고층빌딩인 버즈 두바이, 타이베이 101,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는 모두 우리나라 건설사가 시공한 건물이다. 해저터널도 초고층 건물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어야 건설할 수 있는 시설이다. 따라서 한중 해저터널이 건설되기 위해서는 필요성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와 함께 핵심기술의 체계적인 개발이 필요하다. 2025년에는 고속열차를 타고 중국에 갈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조응래 경기개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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