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개 비 내리던 날

눈처럼 가볍게 흩날리는 비, 는개가 내린다. 비도 아니고 눈도 아닌 것, 땅에 채 닿기도 전 스러져 버리는 것, 그래서 애틋한 비, 는개는 마음만 적시는 비다. 는개 탓일까. 아침부터 마음이 좀 심란한 참인데 때이른 연하장이 날라왔다. 성질도 급하긴, 아직 이 해를 보내려면 한 파수는 남았는데. 하고 봉투를 열어보니 연하장에 기댄 퇴임 인사장이었다. 공직 40년을 여러분의 사랑과 격려로 무사히 마치고읽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버지가 공직에서 퇴임을 한 것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을 막 시작할 때였다. 아버지가 전근을 할 때마나 전학을 하느라 초등학교를 여섯 번이나 옮겨 다니며 친구도 변변히 못사귀고 그늘 속 풀잎처럼, 약병아리처럼 돼 있던 참이었다. 아버지가 직장을 그만 둔다니 내게는 천둥번개가 한꺼번에 어깨위로, 덮친 지경이었다. 이제 우리 식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중학교에 갈 수 있을 것인가. 안해도 좋을 걱정에 파묻혀 그 때부터 철학아닌 철학을 했다. 그래서였을 게다. 나는 애답지 않은 애라는 칭찬 아닌 칭찬 속에 빛 바랜 소녀시대를 보내며 웃자라기 시작했다. 오래 뒤 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던 작은아버지가 퇴임을 했을 때 나는 아버지가 퇴임했을 때 억장 무너지던 내 심정까지 담아서 간곡한 위로의 편지를 보냈었다. 작은아버지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편지를 들고 오셔서 그 사연 때문에 자기가 한참을 울었노라고 털어놓아 나를 민망하게 했다.눈시울 뜨겁게 만든 퇴임 인사장연하장으로 퇴임인사를 보낸 인사에게는 뭐라고 위로의 말을 전할 것인가. 또 가슴 한 복판에서 는개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에게도 늦둥이로 얻은 중학생 딸이 있기 때문이다.는개는 내려도 내려도 젖지 않는 땅 때문에 심통이라도 난것일까. 그치지를 않는다. 그래도 솔잎끄트머리에 맺힌 빗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져 는개도 비라는 것을 일러주고 있다.뭐라고 써야 할까. 퇴임하고 나면 우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라고, 그렇게 평상적으로? 그렇게 써서는 안 될 것 같다. 그렇다고 그를 위로해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내가 직장을 그만 두었을 때 누가 위로라도 할라치면 나는 상처에 소금이라도 뿌려주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었다. 팽팽히 당기던 고무줄을 누가 느닷없이 끊어내기라도 한 것처럼 헛청대며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던 참이기 때문이다. 소속감을 잃는다는 것, 할 일을 잃는다는 것, 갑자기 지위가 달라진다는 것, 그것은 고통이었다.가족 사랑존중하는 일이 남았다이 엄동설한에 그는 얼마나 쓸쓸할 것인가. 소리죽여 혼자서 울지도 모른다. 자신보다 가족들을 위로하며 씩씩한 남편으로 아버지로 버티고 서는 척 안간힘을 쓸 것이다.그리고 여러 매체를 통해 알게된 퇴임 후의 남자가 가져야 하는 덕목과 역할을 되새길 것이다. 또한 한국의 다른 가장들 처럼 쉽사리 자유인으로서의 자유를 버거워할 것이다.최근에 뉴스를 탄 늙은 배우를 생각해 본다. 그는 자서전을 쓰면서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할 비밀을 털어놓았다. 아내 외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를 지금까지 사랑하고 잊지 않고 있으며, 늙은 지금도 아내외의 여자가 있다고 자랑을 한 것이다. 참으로 대단한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애인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을 은퇴할 나이에 자신의 자랑이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가 될 것인지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자존심을 얼마나 뭉크러 뜨렸는지 생각도 하지않은 것이다.그래서 나는 답장을 이렇게 쓰기로 했다. 가족을 더 많이 사랑하고 진심으로 존중하는 일이 아직 남아있으니 열심히 복무하라고.신효섭 시인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오는 12월18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이주민의 날이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가정이라 불리우는 외국 이주민 가정을 다시 한 번 돌아보면서 기념하는 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도시화, 산업화에 밀려 신부감을 구할 길이 없는 농촌 총각들을 위해 연변처녀들과 짝을 맺어주는 사업을 시작으로 중국, 동남아 등 여러 지역에서 국제결혼을 통해 많은 외국인 여성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이런 절차를 밟아 정착하는 외국인은 불과 20년 사이에 이제 그 숫자가 130만을 넘는 규모로 확대되었다. 이들의 출신지역을 보면 중국(조선족, 중국인), 베트남, 필리핀, 태국, 몽골 등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최근 1~2년 전부터는 캄보디아,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 네팔, 인도네시아 등 다양한 지역의 외국인 여성들이 이주해오고 있다.그런데 이와 같은 외국인의 국내 이주현상은 처음 출현한 것이 아니고 과거 우리 역사기록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의 귀화인들에 관한 기록이 그것이다. 10세기 초 고려 건국부터 14세기 후반 조선 건국 이전까지 400여년 동안 우리 민족은 외부로부터 오는 수많은 외국인들을 받아들였다. 고려 초기에는 중국계 지식인이나 상인들이 왔고, 뒤를 이어 북방에서 발해유민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발해유민들 가운데는 고구려계도 있었지만 만주일대에서 살았던 여진계가 주류를 이루었다. 또한 거란계 이주민들도 있었고, 남쪽에서는 왜(倭)로 불리던 일본계도 이주해왔다. 후기인 13세기 이후 몽골의 영향 하에 들어가면서 몽골족은 물론 색목인, 동남아인 등 더욱 다양한 귀화인들이 들어와 정착을 했다.한국 역사상 10세기 전후 시기부터 14세기 말까지 고려시대를 중심으로 약 500년간은 국외로부터 많은 사람들이 유입되어 함께 살았던 개방사회였다. 그러므로 무신란과 무인집권기를 제외한 이 시기는 다양성과 독창성이 한껏 빛을 발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14세기 말 조선의 건국으로 성리학의 세상이 된 이래 서구열강과 일제의 강압에 의해 개국이 되는 19세기 말까지 500년간은 오직 이념과 정쟁과 갈등이 만연했던 폐쇄된 사회였다.외부로부터 국내로 유입되는 외국인은 물론 중국을 제외한 그 어느 곳과도 문물의 교류가 금지되었던 시기였다. 그 이후 우리는 일제의 식민통치와 해방 그리고 전쟁과 분단, 외세의 간섭으로부터 아직도 자유로울 수 없는 시대인 오늘로 이어져왔다.비록 과거 우리 역사 사실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엄청난 기세로 확산되어가고 있는 다문화 사회의 실체를 접하면서 이 시대의 우리 모두가 지금 커다란 변화의 소용돌이 한복판에 서 있음을 실감한다. 그런 속에서 우리 가운데 굳어져 있는 아집과 잘못된 편견들을 바로 잡는 작업은 또 하나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 한때 우리는 단일민족임을 내세워 자랑스러워했던 시기가 있었다. 모두가 단군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한 민족, 한 자손이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과거의 단일민족론이나 순혈주의는 특히 정치적, 이념적인 목적을 위해 철저히 이용되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독립운동기 우리는 일제의 조작된 민족우월주의에 맞서 싸우며 더욱 강하고 철저한 단군의 후손이 되었고, 근거 없는 단일민족주의자들이 되었는지도 모른다.바로 이러한 잘못된 편견과 아집이 인종주의적 배타성으로 이어지고, 특정 인종, 특정 민족에 대한 멸시와 냉대로 표출되었다. 최근 다문화 가정의 가장 심각한 문제점으로 이혼률 급증, 가정 폭력, 가족 간의 불화 등이 꼽히고 있다. 물론 이에 앞서 언어와 문화의 이해부족, 경제적 어려움 등의 문제가 해소되어야 할 선결과제이겠지만 앞으로 보다 심각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은 혼혈아인 자녀교육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이러한 근본 문제들에 대하여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그 위에 우리 모두가 힘을 모으고 관심을 쏟아부어야 할 것이다.박옥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최 박사의 강의록

최원용 박사의 강의는 매번 새롭다. 매주 화요일 저녁 8시가 되면 2시간 동안 최 박사의 강의를 듣는다. 한 기업인이 강의실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었고, 모두 16강좌로 이루어진 최 박사의 강의를 듣기 위해 40명쯤 모인다. 학생도 아닌 불혹의 나이를 넘어선 사람들이다. 수강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강의를 듣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최 박사께서 재능을 기부해 주는 시간일 뿐이다. 모두 다섯 단계로 이루어지는 학습과정에서 자신의 인격과 태도를 발견하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과 행복을 전하고 기부하는 사람으로 변화하길 바라는 최 박사의 소망이 담겨있는 강의이다. 그 중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관계인 가족들로부터 이웃에 이르기까지 어떤 방법으로 사랑을 전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는 단계에서 메모해 두었던 친절하라라는 주제의 최 박사 강의록을 옮겨본다. 「1880년 어느 여름, 가가호호를 방문해서 이것저것을 파는 가난한 고학생이 있었습니다. 그 날도 그렇게 하루 종일 방문판매를 다녔고, 오후가 되자 지치고 배도 고팠습니다. 그러나 주머니에는 달랑 10센트 동전 하나 밖에는 없었고, 그것으로는 적당한 것을 사 먹을 수도 없었습니다. 어느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문이 열리고, 예쁜 소녀가 나왔습니다. 젊은이는 부끄러워서 배고프다는 말을 못했고 다만 물 한잔만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녀는 젊은이가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래서 큰 컵에 우유 한 잔을 내왔습니다. 젊은이는 그 우유를 단숨에 마셨고, 새로운 힘이 나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를 드려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소녀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면서 엄마는 친절을 베풀면서 돈을 받지 말라고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젊은이는 이 말에 큰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학비를 마련하는 것이 너무 힘이 들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했던 그는 그때의 우유 한 잔으로 역경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십 수년이 지난 후, 소녀는 중병에 걸렸고, 그 도시의 병원에서는 치료가 불가능한 병이라고 했습니다. 다행히 병원의 의사는 큰 도시의 전문의를 불러오면 고칠 수 있다고 했고, 그렇게 해서 오게 된 의사가 하워드 켈리 박사(1853~1943년)였습니다. 소녀에게 우유 한 잔을 얻어 마셨던 바로 그 젊은이였던 것입니다. 그는 산부인과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로 명문 존스홉킨스 의과대학의 창설멤버이기도 했습니다. 켈리 박사는 환자를 보고 한 번에 그녀임을 알아보았고, 지금까지 개발된 모든 의료기술을 동원해서 그녀를 치료했습니다. 당시로서는 산부인과 질환으로는 상당히 힘든 케이스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치료에 성공했습니다.수술 후 환자는 아주 빠른 속도로 회복되었습니다. 퇴원할 날이 다가왔습니다. 환자는 몹시 기뻤지만 병원비를 생각하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청구서를 달라고 하자 간호사가 상세히 기록된 청구서를 가져왔습니다. 그녀는 무거운 마음으로 청구서에 적힌 항목들을 읽어 내려가다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러나 조금 더 읽어 보니 청구서 제일 하단에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Paid in full with one glass of milk.(한 잔의 우유로 모두 지불되었음.) 그 밑에는 켈리 박사의 사인이 있었습니다. 친절은 상대방을 기쁘게도 하고, 나를 행복하게도 합니다. 친절은 상대방에게 용기를 주고 삶의 의욕을 불어넣어줍니다.」최 박사의 강의는 계속되고 있다. 16강좌가 끝나면 조촐한 수료식도 한다. 벌써 세 번째 수료식이 끝났고, 개인보다는 여럿이 함께하는 동기모임도 만들어 사랑나눔을 실천한다. 친절을 베풀 대상을 정하고 대상에게 매일 한 가지 이상의 친절을 베풀고 나서, 일기를 쓰듯이 느낌과 상대의 반응을 적어보는 일들도 함께 해본다. 최 박사의 진정어린 재능 기부는 눈덩이처럼 커져만 가고 있다.이청연 인천자원봉사센터 회장

대학 구조조정에 대한 단상

최근 들어 대학에 관련된 제반 이슈들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정치권을 비롯해서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반값등록금 문제를 비롯해서 교수 확보율과 졸업생들의 취업률에 대한 평가지표들이 성역처럼 여겨오던 대학의 구조 조정에 이르기까지 상아탑으로써의 권위나, 양심의 마지막 보루로써의 지식인 사회를 견인하는 역할을 기대했던 입장에서 지켜본다면 다소 난망(難望)이다. 실제로 대학이 처한 사회적 환경이 점점 열악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울러 대학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최고의 지성과 자율을 생명으로 여기던 대학이 언제부터인가 평가와 감사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대학도 사회의 한 영역으로서 비판과 감시의 큰 테두리속에 있는 것은 당연하고 또한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슈가 되고 있는 구조조정에 대한 것들이 대학이 처한 특수한 상황과 대학의 주체적 관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관찰자의 시각에서 무분별하게 거론되고 정책이 입안되는 것은 대학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발전을 가로막을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고질적인 문제는 이미 예견되었다. 정부의 무분별한 대학 인가 조치로 인해 양적인 팽창은 있었으나 이에 비해 질적인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고등학교 졸업생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한국적 특수한 환경속에서 최근 저출산, 고령화, 교육시장의 개방, 고학력 미취업자 증가 등의 요인으로 양적 팽창에 대한 부작용이 점점 심각해져 국가적인 문제로 야기된 것이고 대학의 구조조정은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제기되고 요구되고 있다. 향후 저출산과 더불어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대학은 시장원리에 의해 자연적으로 구조조정의 과정을 밟아나갈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대학 또한 교수인력의 질적 제고를 비롯해 기초인문분야의 강화, 수요자 중심대학으로의 변신, 취업률 제고, 재정운영의 투명성, 사학의 가족중심경영 등 대학 구조조정의 요인은 너무나 많다. 기본적인 요건이 미달된 대학에 대한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개별 대학을 둘러싼 여건이 특성상 천차만별인데도 불구하고, 획일적인 잣대로 대학을 평가하는 것은 그 과실에 못지 않는 부작용 또한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흔히 명문대학으로 가는 조건으로 자질 있는 학생, 우수한 교수진, 인정받는 졸업생, 21세기형 교육, 연구 인프라, 풍부한 대학발전 재원, 미래지향적인 대학 분위기 등을 일컫고 있다. 시대가 요구하는 우수한 글로벌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먼저 학생을 교육시킬 우수하고 글로벌한 교수진이 필요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갖추어야 할 것은 풍부한 재정적 재원이고 이를 투명하게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등록금을 동결해온 대다수 대학들은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적정 수준의 재원마련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직원의 인건비 관련 예산축소 등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경비절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한계는 분명하다. 이는 대학의 질적 저하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우리나라 사립대학 재원 중 국고지원금은 현재 2~3%에 불과하나 미국은 30%, 일본은 10% 수준으로 대부분 선진국의 사립대학 국고지원 비율은 10% 이상으로 OECD국가 중에서 최하위수준이다. 더구나 대학교육의 75% 정도를 사립대학에서 담당하고 있는 것 또한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대학의 구조조정이 이러한 정책적사회적 현실에 대한 성찰 없이 떠밀려 조급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직 대학진학을 필수사항으로 여기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고려할 때 심히 우려되는 바가 크다.궁극적으로 학력과 학벌 위주의 사회문화가 개선되지 않고 대학진학을 위한 교육의 열풍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대학의 문제는 정부와 대학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금까지 쌓여 온 압축성장에 드리워진 그늘을 하나씩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이 대학의 진정한 구조조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김정행 용인대학교 총장

11월, 마지막 정거장으로 떠나는 기차

11월은 마지막 정거장으로 떠나는 기차다. 한적하게 비어 있는 객석 위에 쓸쓸함이 앉아 졸고 있고, 유리창 밖에서는 갈 곳 없는 낙엽이 배웅하고 있다.11월은 찾는 이 없이 텅 빈 공중전화 박스다. 애끓던 통화의 온기도 오래전 사라진 채 쓸쓸하게 매달린 수화기에서 적막이 저 혼자 속삭이고 있다. 11월은 아이들이 떠나버린 심심한 놀이터다. 이따금 흔들리는 무료한 그네, 바람이 주르르 미끄러지는 저 외로운 미끄럼틀, 울타리 가에선 나무 삭정이가 막막한 표정으로 떨고 있다.아쉽고 안타까운 11월11월은 석산(石蒜)이다. 순 우리말로는 꽃 무릇이라고 불리는 꽃. 꽃은 9월에, 삭아버린 늑골같이 하얀 줄기 끝에서 선홍색 족두리 떨잠 같은 모양으로 혼자 피어나고, 잎은 10월에 이미 꽃이 지고 난 다음 돋아나서, 꽃과 잎이 서로를 보지 못해 상사화라고도 불리는 꽃이다. 스님을 연모하는 한 처녀가 있었더란다. 그러나 스님은 냉랭하기만 했다. 처녀는 스님에게 말을 붙여 보기는커녕 멀찍이서 바라보며 애를 태우다 그만 병이 나서 죽었더란다. 가슴에 한을 품고 죽은 그 처녀가 묻힌 자리에 꽃 무릇이 돋아났고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하는 모양새가 처녀의 가슴 아픈 사연을 닮았다고 해서 상사화라고 부르게 됐단다. 11월은 그렇게 안타까운 달이다.세월도 인생처럼 마지막으로 치달을 때는 더 빨리 달리는 것인지, 얼마 남지 않은 두루마리 휴지 풀리듯 내 닫고 있다. 곧 12월이되고 이 해도 막을 내리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있었던가. 수많은 사건사고와 함께 한동안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장 선거가 나라를 한번 들썩이게 했고, 무수하게 쏟아지는 예언들처럼 지구가 종말로 가고 있는 것인지, 세계 각 곳에서 지진이며 홍수로 아까운 목숨들이 스러졌다. 또한, 미국을 비롯한 유럽 일본 등 세계경제가 흔들리고, 아직도 요원해 보이는 중동의 평화며, 아프리카의 끝없는 목마름과 배고픔, 이렇듯 지구는 요동치는 놀이기구에라도 올라탄 것처럼 불안하게,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이어가고 있다.한 달의 여유로 한해를 기다리자완보(緩步)동물이라고 불리는 원시생물이 있다. 원이름은 테디 그레이드라고 부른다.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로도 기록되는 이 동물은 살아가는 환경이 팍팍해지면 스스로 삶을 접어버린다고 한다. 그렇게 수십 년이고 수백 년이고 자기가 살기 적합한 시절이 올 때까지 죽은 듯 기다렸다가 환경이 좋아지면 다시 깨어나 생을 이어간다는 것이다. 지구 탄생 이래 세상은 한 번도 편안한 적이 없었다지만 삶이 각박해지고 환경이 척박해지면 완보동물처럼 그렇게 한동안 삶의 휴지기를 보내다가 다시 생을 이어갈 수는 없을까.가는 한 해가 아쉬운 것인지 우리 아파트에는 빨간 줄담쟁이 꽃이 피었다. 5.6월, 봄에서 건너가는 여름에 피는 꽃이 웬일로 이 늦가을에 피어 보는 이를 안쓰럽게 하고 있다.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있는 천리포 수목원에는 지금 벚꽃이 만개했다고 한다. 늦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꽃을 피우는 품종이라고는 하지만 바람이 불고 흰 눈이 세상을 덮는 시절에 피는 벚꽃이라니 너무 쓸쓸하고 애잔할 것 같다.아라파호 인디언은 11월을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했다. 12월 한 달의 유예가 있다는 여유로움이다. 그래, 11월은 12월 한 달의 여유가 있는 달이다. 그 여유로움으로 한해를 기다리는 달이다. 기다림은 시간을 윤기나게 한다고 했으니, 11월은 잘 닦인 놋그릇처럼 빛나는 달인지도 모른다.신효섭 시인

화성을 다시 생각해본다

지난 토요일 도시사회학 과목을 담당하는 최진호 교수의 요청으로 이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과 함께 오랜만에 수원 화성을 돌아보았다. 아침 10시 창룡문 앞에서 출발, 성곽을 따라 북문, 서문, 팔달산 방향으로 성곽을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였다.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설명을 곁들이면서 동북공심돈, 연무대, 방화수류정, 화홍문을 살펴보고, 팔달산에 올라 서장대를 거쳐 남문인 팔달문으로 내려왔다가 시장을 지나 다시 성벽을 따라 창룡문 앞까지 약 3시간 동안 5.8㎞를 걸으면서 돌아본 답사였다. 절기로는 가을이 지나고 초겨울로 접어들 시기이건만 아직도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가운데 걷기에 쾌적한 날씨였다. 다만 주말이다 보니 중국, 일본 등 외국인 관광객과 우리나라 초중고등학생, 관광객들이 몰려 혼잡하고 정신이 없었다. 또한 화성 최고의 자랑거리인 방화수류정, 화홍문, 남문인 팔달문, 남수문 등의 공사로 그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던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화성이 언제부터 이렇게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었나 놀랍기도 하였다. 세계적 관광지 자리잡은 화성우리나라에는 산과 구릉이 많아 예로부터 성을 많이 쌓았다. 성곽은 그 목적과 기능에 따라 수도나 지방 행정시설로서의 도성이나 읍성, 군사적 목적으로 축성한 산성이나 행성 등으로 구분된다. 그런데 성이 붙은 지명을 보면 경기도 안성화성, 강원 고성횡성, 충남 홍성, 전남 보성장성곡성, 경북 의성, 대구 달성수성, 경남 고성과 대전 유성 등이 있다. 그 밖에도 낙안, 비인, 고창읍성 등은 규모는 작지만 현재까지 성곽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성들은 대부분 행정지명으로만 전할 뿐이고, 실제로 현존하는 성곽들을 보면 군사적 기능을 지닌 산성들이 대부분이다. 산성이나 행성 등은 도성, 읍성에 비해 덜 파괴되고 훼손되었기 때문일 것이다.1796년에 완공된 화성의 역사는 비록 짧지만 한양성, 평양성, 경주의 금성, 월성, 하남 위례성 등과 마찬가지로 수도인 도성으로 설계되고, 축성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실제로 정조는 처음 구상에서부터 완공,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심혈을 기울여 이룩한 화성으로의 천도를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누대에 걸쳐 왕권을 마음대로 주무르던 부패한 세도세력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것 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화성속 정신문화를 전하자화성 탄생의 시발점은 정조의 아버지에 대한 배려와 사랑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는 그 기막힌 현장을 지켜본 10세의 어린 소년이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고난 끝에 왕위에 오른 정조는 아버지를 구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과 죄책감을 효로서 갚고자 아버지 묘를 옮기기로 하고 수원부가 있던 화산 아래로 그 자리를 확정하였다. 이를 위해 그곳에 거주하던 백성들의 거처를 새로 마련해줘야 했는데 화성은 이런 사정들을 배경으로 조성된 성이었다. 따라서 화성의 내면인 정신은 부친에 대한 효라고 하는 가족애와 백성에 대한 사랑인 인간애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실제로 화성 축조과정을 보면 정조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여 석공, 미장이, 대장장이, 와공, 벽돌공 등 전문기술자들은 물론 뒷일을 하던 잡역부들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임금을 지급했다. 다음으로 더욱 뛰어난 점은 화성의 외면을 이루는 최고 수준의 실용성, 예술성, 다양성이다. 채제공, 조심태, 정약용, 김홍도 등 당시 최고의 행정가와 학자와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이 성곽을 이루어냈다. 축성과정과 기술, 자재 등 모든 면에 이르기까지 세세한 내용들이 《화성성역의궤》에 글과 그림으로 기록되어 전함으로써 완벽한 복원을 가능하게 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수 있었다. 화성을 다시 돌아보고 얻은 준엄한 가르침은 이제 성곽의 외면이 아니라 그 내면 속에 정신과 문화를 담아 전하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어진 몫이기 때문이다.박옥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80세 홍 할머니

마흔 다섯에 혼자가 되신 홍 할머니는 올해 80세가 되셨다. 온갖 고생을 다하며 2남 2녀를 키우셨다. 큰 딸은 서울에 살고 작은 딸은 성남에서 살지만 감감 무소식이다. 큰 아들은 이혼을 한 후에 남매와 홍 할머니를 두고 가출한지 3년째 소식이 없단다. 작은 아들 역시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단다. 아르바이트를 해 동생을 돌보는 스무 살된 착한 손녀와 고등학교 2학년인 손자를 부양하는 홍 할머니의 생활은 날마다 고달프기만 하다. 홀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 채 집 나간 자식도 자식이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에 해당되지 않는단다. 정상을 참작하여 생활비 지원을 받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홍 할머니는 정부의 생활비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런 이유로 홍 할머니는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만 되면 무거운 손수레를 끌면서 아침을 시작한지 벌써 4년째가 되셨다고 한다. 동네 구석구석을 돌면서 재활용품을 모아서 번 돈이 작년에는 하루 평균 1만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수입이 하루 7천원 정도로 뚝 떨어졌다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집안의 냉장고에는 달걀 1개와 라면 3개, 그리고 요리를 한지 오래된 김치찌개가 전부였다. 그래도 손자 손녀는 착하게 생활해주고 있어서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을 잊지 않으셨다. 빌라주택 반 지하 두 개의 쪽방 월세가 20만원인데 6개월째 밀려있어도 집주인이 참아주고 있어 당장은 견딜 수 있다고 한다. 나눔의 힘사랑의 집 고치기필자가 홍 할머니 댁 집고치기 봉사현장에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경험하고 느낀 생생한 이야기이다.이렇듯 우리 주변에는 끼니를 때우는 일도 쉽지 않은 형편인데, 하물며 낡은 벽지와 장판 그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전열기구 및 가구 등을 교체하는 일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가정이 많다. 홍 할머니처럼 경제적 어려움으로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주거환경개선 사업 즉, 인천광역시자원봉사센터에서 펼치고 있는 사랑의 집 고치기 사업을 간단하게 소개해 본다. 2009년부터 시작되어 2013년까지 진행할 이 사업은 각 주민자치센터에서 추천받은 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자, 한 부모 가정, 소년소녀가장 등 수혜대상 2천84가구를 선정하여 추진하고 있다. 인천지역의 각 기업체에서 후원한 지정기탁금을 재원으로 하는데, 집수리에 필요한 재료비로 최소화하고 나머지는 자원봉사자들의 땀과 눈물의 노력봉사를 통해서 쾌적한 주거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10월 말 현재 1천300여 가구가 마무리 되었고, 이 사업은 280만 인천시민의 23%에 해당하는 65만 명의 인천자원봉사자들 뿐만 아니라, 인천시민들의 관심과 참여가 높은 사랑의 집 고치기 사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소외계층에 대한 정부 대책 필요집수리에 필요한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의 재능기부와 간단한 짐을 나르고 쓰레기 치우는 일을 돕는 자원봉사자들과 시민들의 따뜻한 손길이 빚어내는 희망나눔이요 사랑나눔이다. 미래사회가 우리에게 희망의 시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미래사회의 대안은 바로 자원봉사인 까닭이다.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노력과 신념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원과 방법을 동원하여 곤란에 처한 이웃과 사회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자원봉사자들의 따뜻한 마음과 행복한 나눔의 손길 때문이다. 그러하다고 해서 80세의 홍 할머니께서 짊어지고 계신 무거운 짐이 가벼워질 수는 없지 않은가. 7천원을 벌기 위해 비가오나 눈이오나 수레를 끌어야만 하는 홍 할머니의 고단한 삶이 편안한 노후생활로 바뀔 가능성은 전혀 없지 않은가. 홍 할머니의 처절한 삶의 여정을 당신의 문제이고 못난 자식들의 문제라고만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홍 할머니께서 살면 얼마나 사신다고는 위정자와 정부에게 보낸 필자의 물음이다.이청연 인천시자원봉사센터 회장

좌우명이 무엇입니까?

가끔 제자들이 방문하거나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좌우명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다.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자신의 생각과 삶에 대한 가치관 그리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정하고 그 실천적 과제를 좌우명으로 삼게 된다.국내외 잘 알려진 유명인사 들에 대한 좌우명이 익히 알려져 있다. 일례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베토벤의 훌륭한 인간의 두드러진 특징은 쓰라린 환경을 이겼다는 것이다, 미 태통령 닉슨의 인간의 죽음은 패배했을 때가 아니라 포기했을 때에 온다 등 좌우명을 정해놓고 살았던 것을 알 수 있다.보편적으로 좌우명은 자신의 성장과정 그리고 삶에 대한 환경적 요소를 배경으로부터 나오게 되고 또 그 좌우명을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세우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내게도 초지일관(初志一貫)이라는 좌우명이 있다. 모든 부모가 그러듯 자식은 부모 말 잘 듣고 몸 건강하게 공부 잘하면 최고의 자랑거리일 것이다. 나 또한 평범한 학생으로서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유도를 접하고 초지일관으로 여겼던 유도에 매료되어 가면서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부모님이 내게 각별하게 늘상 강조하셨던 말씀 가운데 하나가 한 우물을 파야 물이 나온다는 가르침이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지나고 보니 그 가르침을 통해 처음의 목표를 세우면 중간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초지일관은 지금까지 내가 살아오면서 좌우명이 되었고 사람들이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어떻게 살아왔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초지일관이라고 대답한다. 초지일관의 사전적인 의미는 처음에 세운 뜻을 이루려고 끝까지 밀고 나감이라 풀이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에 큰 각오로 계획을 세우고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지만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넘치는 패기와 높은 이상이라도 그것이 한 때의 마음으로 끝난다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처음의 시작은 약하고 미비할지라도 초지의 마음이 꾸준히 지속되면 먼저는 자신을 바꿀 수 있고 시간이 흐르면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 중 어떠한 분야에 전문가가 되려면 그 분야에 1만 시간 이상을 초지로 일관하면 된다고 한다. 그런 만큼 초지도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관의 마음과 또 실행이 중요하다는 것이다.세계적인 첼리스트도 하루만 연습하지 않고 쉬어도 그 다음 날 첼로소리가 자기의 것이 아닌 것으로 들린다고 한다 유명 피겨 스케이팅 선수가 한 동작의 점프를 익히기 위해 무려 1~2만번의 반복적인 연습을 해야 자기의 것으로 습득되고 대회 때 연습했던 동작이 가능하다고 하니 이것 한 가지만 보더라도 뜻을 세우는 것 이상 부단히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노자는 도덕경에서 처음의 웅대한 뜻을 끝까지 가져간다면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라고 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알려진 한명회는 성종 임금에게 처음에는 부지런하나 끝에는 게으른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라 임금께서는 마지막 삼가기를 처음과 같이 하소서 라 간하였다 한다. 나는 지금도 무엇인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먼저 뜻을 세운다는 마음을 갖는다. 우리의 옛 가르침에 시작이 좋으면 나중도 좋다고 했다. 좋은 뜻을 가지고 시작하고 그 뜻을 굽히지 않는 일관된 마음과 노력의 중요성을 일컫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우리에겐 좌우명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평생을 사는 동안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 그리고 스스로의 책임의식을 지닌 자신과의 약속이라 여겨지기 때문이다.오늘도 날 찾는 제자들에게 잊지 않고 해주는 말 중에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고 또 바람직한 인생의 가치관을 위해 스스로의 약속을 세우라는 의미에서 좌우명을 가지라고 일침한다.김정행 용인대학교 총장

아기 고양이와 스티브 잡스

아기 고양이가 태어났다. 백설 공주처럼, 한입 베어 먹은 사과를 남긴 채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아직 어둠이 너울을 걷지 않은 이른 새벽녘이었다. 잠에 깊이 빠져 있는 참인데 겨드랑이께서 뭔가 고물대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뭘까? 눈을 떠보니 맙소사, 난리가 나 있었다. 온통 잠옷 자락이며 이불이 피 칠갑이었다. 욕실에서 우리 집 암코양이 미오가 기척도 없이 새끼를 낳아 침대 위로 데리고 온 것이었다. 아기를 낳았으니 돌봐달라고.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며 상황 파악이 되긴 했는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 우선 젖을 물려야지. 작고 여린 것을 수건으로 대충 닦아서 제 어미 품에 디밀어 넣었다. -출산한 어미 몸에서 새 생명을 위해 만들어진 신비로운 첫 젖을 먹거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젖을 물기 바랐다. 그러나 새끼는 좀처럼 젖을 물지 않았다. 어미 젖도 불어 있지 않았다. 새끼가 젖을 물지 못해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던 터라 마음이 달았다. 조바심이 난 딸이 그 새벽에 열려 있는 동물병원을 찾아 나섰다. 온 동네를 다 뒤져 가까스로 동물병원을 찾아낸 딸은 헐레벌떡 초유를 사왔고, 서둘러 아기 고양이에게 먹이려 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주사기가 닿는 느낌이 싫은지 아기는 고개를 이리 저리 돌리기만 할 뿐 초유를 먹지 않았다. 그러자 어미가 갑자기 초유를 빨기 시작했다. 평소 우유도 먹지 않는 애가 초유를 빨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기가 젖을 빨기 시작한다. 어미가 초유 몇 방울을 먹었을 뿐인데 진짜 초유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기적이었다. 감동이 일었다. 감동은 큰데서만 오는 것이 아니었다. 갓 태어난 고양이 새끼 한 마리가 가까스로 젖을 먹기 시작한 것만으로 마음 속에서 큰 울림이 일어난 것이다.정신을 수습하고 보니 날이 부옇게 밝아 있었다. 방송을 틀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가 전해진다. 작은 한 생명이 태어나던 즈음, 큰 생명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자 세계 최초 PC 개발자로 IT계의 혁신을 이룬 그의 공적과 함께 불우했던 성장기가 언론을 탔다. 스티브는 축복받지 못한 부모의 결합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림을 받았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게 세상의 구비를 헤쳐왔을까. 얼마나 외로웠고, 얼마나 고달팠을까. 양부모 밑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친부모에게 버림받았다는 좌절과 상실감은 아마도 그의 가슴깊이 응어리져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는 학교를 빼먹기 일수 였고 결국 대학도 입학을 한 후 1학기만 마치고 중단을 했다고 한다. 히피가 되어 공동체 생활을 하기도 했고, 사과 농장에서 허드렛 일을 하기도 했고, 승려 코분치노 오토가와 만난 인연으로 선불교에 입문해서 인도 히말라야를 떠돌기도 했다는 것이다. 놀라운 상상과 창의력 그리고 단순함은 그때 이미 그의 정신 세계 속에 구축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을 쓰면서 스티브 잡스에 매료됐었다. 핸드폰을 단지 통화의 기능에 머물게 하지 않고 온갖 정보의 첨단 도구로 신분상승을 시킨 점이 놀라웠기 때문이다. 아이팟의 단순 디자인은 참선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고, 애플의 로고는 사과농장의 기억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명확한 비전과 천재적 영감 그리고 창조력으로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꾼 스티브 잡스, 그는 자신의 인생이 이쯤에서 종지부를 지을 것을 그는 알고 있었을까.모든 생명에게 죽음은 필연이다. 4,500년 전에 쓰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인간은 왜 죽는가를 주제로 하고 있다.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삶의 유한성에서 벗어날 수 없어, 좌절과 고통을 경험하고 결국은 생을 마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삶의 종지부는 결국 죽음으로 이어지는 그라프를 향하고 있다는 얘기다. 스티브 잡스는 즉음이 인생의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라는 말을 남겼다. 삶은 유한 하므로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는 당부와 함께.아기 고양이가 어미 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다. 또 한 생명의 그라프가 시작된 것이다. 태어난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그라프의 우여곡절은 실은 가슴을 치게 하는 것이다. 신효섭 시인

우리 말과 글 바르게 쓰기

지난 10월 9일은 우리 문자인 한글이 반포된 지 565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하지만 한글날에 대한 관심은커녕 한글의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이들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상 한글이 훈민정음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이래 이 문자만큼 기구한 운명을 살아온 예도 드물 것이다. 아직까지도 한글을 만든 실제 주체가 세종대왕인지 집현전 학자들인지 혹은 이들의 합작품인지 밝혀지지 않았고, 문자가 완성되기까지 어떤 배경과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처음에는 주자성리학 이외의 그 어떤 가치도 용납하지 않았던 완고한 지배층의 반발로 모든 백성들이 널리 쉽게 쓸 수 있게 해주려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대부 집안 부녀자들에게 은밀히 전수되면서 언문, 암글, 가갸글 등 불명예스런 이름으로 불리었다. 일제 식민통치기에는 일본어에 억눌려 역시 천대를 받아오다가 1920년대 후반 조선어학회가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기념일도 지내게 되었다. 하지만 해방 후에도 한글에 대한 사랑이나 관심은 그리 높지 않았다. 사대주의 권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식자층의 한문에 대한 집착과 미국 등 서양에 대한 동경에 뿌리를 둔 외국어 숭배 풍조로 한글은 올바로 자리를 잡지 못하였다. 그런 속에서도 한글날은 해방 직후 국경일로 제정, 공휴일이 되었지만 1990년 산업생산력 증대를 위한 공휴일 축소라는 논리에 밀려 국경일도 공휴일도 아닌 기념일로 바뀌었다가 지난 2005년 다시 국경일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이제 다시 공휴일인 국경일로 찾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이처럼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이제 한글은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한글은 바로 인터넷 디지털시대에 가장 주목을 받는 문자로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드라마와 음악, 춤 등 최근의 한류가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는 그 바탕에 한글의 존재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고, 인정을 받는 한글을 위하여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차근차근 대책을 세워가야 할 것이다.지금 세계에는 230여개의 국가에 약 70억 인구가 살고 있다. 이들은 대략 6천800개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100여개의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외부로부터 한글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점차 확산되어가고 있다. 말과 글은 서로 떼어놓을 수도 떼어놓아서도 안 되는 불가분의 관계이므로 한글과 더불어 한국어 또한 세계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 언어생활은 어떠한가. 최근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물론 초등학교 학생들의 욕설이나 비속어 사용이 위험수위를 넘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사실 지금의 기성세대들도 그 시절에는 욕을 하며 자랐다. 하지만 초등학생들까지 정도를 넘는 심한 욕설과 비속어를 아무데서나 거리낌 없이 마구 내뱉고 그러한 습관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이어진다면 그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말이란 사람의 됨됨이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어서 그것이 타성이 되어버리면 여간해서는 고치기가 어렵다.또한 우리의 글 쓰기 생활에서도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요즈음은 직접 펜으로 글씨를 쓰지 않는다 해도 살다보면 직접 글씨를 써야하는 경우가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잘못 쓴 글씨와 글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똑같이 괴롭다. 그래서 말하기와 쓰기 교육은 학교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 어른들은 잘못된 점을 그때그때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줄 어른들이 없어졌다. 어른들 자신도 잘못 살다보니 바른 것 틀린 것을 구분할 능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TV 등 대중매체의 아나운서나 사회자, 출연자 등 인기인들이 잘못 쓰는 말이나 행동이 미화되는 정도이니 심각하게 따져볼 일이 아닐 수 없다.박옥걸 아주대학교 명예교수

욕쟁이 아줌마

충청도 쭈꾸미 집 주인은 예순 다섯 살 아줌마다. 단골 손님들에게 험한 욕을 잘해서 욕쟁이 아줌마로 소문이 나있다. 주인 아줌마 한테 욕을 먹으면서도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찾아가는 곳이다. 욕쟁이 주인 아줌마가 밉지가 않다. 인심 좋은 시골 아낙네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음식 맛도 좋지만 넉넉한 아줌마 인심이 더욱 좋다. 술을 즐겨하지 않는 필자는 한 2년만에 후배들과 찾아간 곳이다. 주인 아줌마는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날도 역시 이 XX야 어디갔다가 이제 오는 거야 자주 오면 안 되냐? 이 XX야 라고 민망할 정도로 욕을 해댄다. 장사는 잘 하고 계신가? 맨날 욕만 하니까 손님들이 왔다가 그냥 돌아가겠지 뭐. 주인 아줌마를 향해서 맞장구를 쳐보지만 소용이 없다. 더 심한 욕을 얻어 먹는다. 그래도 밉지가 않다. 그렇지만 함께 간 후배들은 영문도 모르고 욕쟁이 아줌마의 독설에 황당해 하는 눈치였다. 욕쟁이 아줌마! 오늘은 손님도 없으니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살아온 얘기 좀 나누면 어떨까요?라며 점잖게 제안을 하였더니, 갑자기 순한 양의 모습이 되어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욕쟁이 아줌마는 포장마차 등 온갖 고생을 다하며 여섯 남매를 키우셨는데, 지금은 자식들이 모두 결혼을 하였다고 한다. 쭈꾸미 집을 그만하라는 자식들의 성화에도 불구하고 욕쟁이 아줌마는 여전히 고집을 피우고 계시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집이 아니라 체력이 다 하는 날까지 돈을 벌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9년 동안 남 모르게 도와주고 있는 자식 아닌 이웃이 있었던 까닭이다. 지하 단칸방에 홀로 살면서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중증 장애인을 보살펴 주고 있었다. 가족이 있었지만 버려두고 떠난지 벌써 9년이 되었단다. 사정이 이쯤 되면 포기할 수도 있었을텐데, 욕쟁이 아줌마는 변함없이 쭈꾸미 요리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올해 마흔 살이 된 그가 더 오래 살 수는 없을 것 같기에 마음 아프다는 욕쟁이 아줌마.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매월 삭월세 27만원에다가 쌀과 반찬은 누가 장만해주느냐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대부분 어른들 어린시절이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욕쟁이 아줌마의 어린시절은 더 그러했다고 한다. 그래서 내 자식들에게는 가난을 대물림해서는 안 되겠다며 남 모르는 눈물을 흘리면서 여섯 남매를 키웠다는 것이다. 이제 죽어도 한이 없다는 욕쟁이 아줌마의 마지막 욕심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작은 사랑 나눔을 묵묵히 실천하는 부끄럽지 않은 이웃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욕쟁이 아줌마는 분명 우리들 모두의 수호천사이고 지식인들에게 아름다운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인생의 안내자였다. 우리 사회에서 위급상황에 방치되고 있는 홀몸노인들은 얼마이며 저승길에 갈 때도 혼자인 노인들은 얼마이던가. 지방자치단체별로 노인돌봄 기본서비스 사업을 통해 홀몸노인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지만 갑작스런 노인들의 건강악화와 위급상황에는 속수무책인 것이 우리 사회안전망의 현실이 아닌가. 이웃의 따스한 손길이 늘 필요한 장애인들은 또한 그 얼마이던가. 욕쟁이 아줌마처럼 장애인들을 돌보며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에 우리들 실천행동의 모습은 너무도 초라한 것이 아닌가.요즈음 사회복지비의 증가로 인하여 지방재정이 위기에 몰리고 있다고 야단법석이다. 고령화와 사회양극화 현상으로 복지수요가 급증하면서 지자체가 부담해야 할 예산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지방재정을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제는 매칭펀드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회복지사업은 정부 책임 하에 시행해야 한다. 적어도 노인, 장애인, 아동 관련 복지사업은 완전한 국고보조사업으로 전환해야한다. 그리하여 욕쟁이 아줌마께서 돌보는 중증장애인도 지자체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으며 살아갈 수 있길 소망하는 오늘 아침이다.이청연 인천광역시자원봉사센터 회장

“우리 대학 내에서는 금연입니다.”

용인대학교 교정에서 간혹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외부에서 대학을 방문한 손님이 대학 교정에서 평소의 버릇대로 무심코 담배를 꺼내 피우고 있으면 지나가는 학생들이 그 방문객에게 정중한 태도로 말씀드리는 것을 듣곤 한다.손님 죄송하지만 우리 대학 내에서는 금연입니다. 죄송합니다.물론 별도로 개개인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았지만 언제부터인지 자연적으로 형성된 용인대학의 전통이며 대학문화로 형성된 것 중의 일부이다.21세기에 접어들어 너무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그리고 주위를 들러보면 변하지 않는 것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급변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변화도 요구하고 있다.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에서 1930년대 정부의 역할을 요구한 수정자본주의를 1970년대 시장의 기능을 강조한 신자본주의에 이어 최근 등장한 자본주의를 자본주의 4.0이라 일컫는다. 이는 시장의 자율적인 기능을 강조하되 정부와의 상호관계를 중시할 뿐 아니라 시장 참여자의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하고 더불어 행복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 따뜻한 자본주의이다.이러한 시대의 변화조류 속에 40년 넘게 교육과 체육에 몸 담아 온 교육자로서 학생들을 위해 어떤 바람직한 교육을 시켜야 할까 항상 고민하고 깊이 생각해보고 있다. 그에 대한 대안은 인성교육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집중되곤 한다. 특히 현 세대는 여러 형제 없이 혼자나 둘 사이에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세대라 사회성교육이 무엇보다 절실한 것 같다.기성세대는 여러 형제들과 자라다보니 말다툼, 몸싸움, 울고 불고 등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 부모님에 의해, 형제들에 의해, 그리고 본인 스스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잘못을 빌고, 사과하고, 양보하고, 참는 등의 성장과정 중에 알게 모르게 배우고 익혀 터득한 것들이 많지만 오늘날의 학생들 모습은 많이 다르다.더군다나 지금 학생들은 집중적으로 교실에서 치열한 경쟁의식 속에서 부대끼고 있다. 초중고의 교육과정은 오로지 대학입시에 맞추어져 있고 대학은 취업경쟁에만 시선을 두고 있다. 이러한 와중에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가 배출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이런 큰 공백을 일부나마 교육에서 채워 나아가야 할 것이다.학교 체육의 활성화는 그 중 바람직한 대안이 될 것이다. 학교체육을 부활시켜야 한다. 학교체육의 활성화가 개인뿐 만아니라 국가사회에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은 엄청나기 때문이다.많은 장점들을 나열하지 않더라도, 체육을 통해 경기규정을 지켜지 않으면 안된다는 준법정신을 배우고 팀을 위해 때론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 의식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그 역할은 충분하리라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건강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갖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아무튼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교육과정의 참신한 변화를 꾀해야 할 것이다. 과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면 과거에 매어달리게 되니 이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매일 매일 1%씩 우리 자신을 바꾸어 과거보다 나은 오늘로 변화시키는 비책(秘策)으로 학교 체육의 활성화를 촉구해야 할 것이다. 21세기가 요구하는 멋진 인재를 배출하기 위해 체육과 더불어 새로운 교육문화를 창달해야 하고 그리고 더 미룰 수 없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한 대학에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금연문화가 밝고 깨끗한 대학문화를 형성하듯이 우리 스스로 만 가지 생각보다 한 가지라도 실천하고 만들어갈 때 비로소 희망은 이루어질 것이다.김정행 용인대학교 총장

이사, 그리고 비움의 즐거움

이사를 했다. 30년 만이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쟁여 두었던 이사(移徙)는 거사(巨事)였다. 30년 묵은 세월을 들춰내고 헤집어서 켜켜이 쌓인 기억과 조우하는 일이었다. 기억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짐을 꾸리다 보니 까마득히 지난 시절 일이 생생히 떠오르는가 하면 엊그제 일이 가뭇없기도 하다. 들추어 낸 옷이며 장신구가 낯설기 그지 없다. 무슨 생각에 내가 저것을 장만했을까. 어디에 필요해서 저런 걸 다 사두었을까. 모를 일이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뒤져도 찾지 못했던 물건이 불쑥 얼굴을 내민다. 예컨대 지난 봄 어머니가 세상을 뜨신 후 새삼 중학교 시절 모처럼 공원에 가서 찍었던 가족사진이 보고 싶었다. 해묵은 앨범은 물론 오래 된 습작 노트 따위를 다 뒤져도 사진은 종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짐을 정리하는 도중 우연히 낡아빠진 가방을 들추다가 너무도 뜻밖에 사진을 찾았다. 누렇게 바랜 인화지 위에 일곱 식구가 공원 누각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있는 흑백 사진. 그중 이미 네 식구는 저세상으로 가버린 아픈 사진이 낙엽처럼 팔랑 떨어져 내렸다. 무슨 때를 맞아서 찍은 기념 사진이었을까. 우리 식구 모두는 한복을 차려입고 있었다. 아버지는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단장을 짚은 채 약간 거들먹 대는듯한 자세였고, 어머니는 오간지 치마 저고리 차림에 해사한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사진을 보다가 픽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바로 아래 동생의 모습 때문이었다. 동생은 나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컸다. 덕분에 내 별명은 무녀리(문열이)였다. 첫째라서 어머니의 출산 문을 여느라고 용을 쓰다 보니 작고 못나게 태어났다는 뜻이다. 그 무녀리 언니에게 물려받은 한복이 이미 동생에게 작았던 터라 짧은 저고리 소매기장을 감추고 발목 보다 껑충 올라간 치마 기럭지를 가리느라 엉거주춤 무릎을 약간 구부린 모양새였다. 아마도 자기보다 키가 작은 언니를 배려하느라 그랬을 터였다. 그 동생은 지금 이 세상에 없다. 이사를 하며, 과장 하자면 두 트럭분 정도의 짐을 버렸을 것이다. 이사를 떠나면서 한 트럭을 버렸고, 새집에 들어가며 또 한 트럭 분량을 버렸다. 제일 많이 처분을 한 게 책이었다. 서고 가득 진열 했던 책들은 한때 내 축적된 지성(!)과 정서와 자존심의 표징 역할 까지 했던 것들이었다. 그런 책들을 처음에는 아까워 하다가, 주저하다가, 막판에 가서는 아낌없이 구민회관이며 지하철 도서시설 등에 시집보내듯 싸서 보냈다. 속으로 위로하기는 그래,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뭐 든지 다 알아 볼 수 있는 세상인데 뭐 했지만 실은, 책들은 먼지와 한 통속이 되어 30년 동안 숨죽인 채 진열돼있던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옷을 버렸다. 딴에는 멋을 부린다고 시절에 맞춰 사 모았던 옷들이었지만 다시 보니 추레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세월 따라 옷도 이미 늙어버린 것이다. 낡은 가구야 말로 새 집에는 무용지물이었다. 기능성 위주로 마련된 집에 장식성을 강조한 가구는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버리고 버리다 보니 우리 삶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얼마나 될까 생각을 하게 됐다. 건축가 승효상은 자신의 저서에서 건축이란 비움의 완성이라는 말을 썼다. 이사를 겪으며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화가 이우환을 보자. 그의 그림은 미니멀리즘의 극치를 달린다. 흰 캔버스 위에 작고 검은 점 달랑 하나. 지금 보다 더 많이 소양이 부족하던 시절 나는 속으로 그 그림은 사기라고 생각했었다. 큰일 날 생각이었다. 법정스님은 무소유를 자신의 철학으로 강조했다. 소유과 탐욕의 해악이 무엇인가를 비판적으로 일갈한 것이다. 이미 그들은 비움의 필요성, 비움의 여유, 비움의 아름다움을 선각한 것이다.경제위기로 나라가 뒤숭숭할 때였다. 스님 한분이 그랬다. 욕심을 줄이고 살면 시절이 어려워도 견딜 수 있다고. 이사를 하고, 많은 것과 작별을 하고, 나는 새로이 비움의 즐거움을 터득하고 있는 중이다.신효섭 시인한국여성언론인협회 사무총장

혼례풍습 어제와 오늘

예년과 달리 올해는 추석을 지나 일주일 가까이까지도 30도를 넘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는 어쩔 수 없어 조석으로 찬바람이 불고 하늘은 높아만 간다. 언제부터인가 매미소리가 사라지고 풀벌레 울음소리로 바뀌면서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우리에게 가을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신호는 여기저기서 쏟아져 들어오는 결혼식 청첩장이다.물론 요즘은 결혼 인구도 줄어 결혼예식도 예전처럼 많지 않지만 그래도 주말이면 몇 군데씩 예식장을 돌아야 한다는 이들의 비명을 자주 듣는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품앗이인지라 우리 집 큰일에 왔던 댁의 혼사에 참석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이고, 그런 관계가 아니라 해도 꼭 참석해야 경우도 있으니 결혼식장을 찾아다니는 일이 마냥 기쁘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살아왔던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나의 결혼식을 떠올려보니 어느 듯 40년이 가까워온다. 1970년대 초의 색이 바랜 당시 결혼식 사진들은 마치 역사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주례를 맡아주셨던 스승님은 물론 그 속에 서 있는 이들 중 고인이 된 분들도 많고, 너무 젊은 모습이어서 알아보기 어려운 얼굴들도 있다. 그때까지만 해도 예식이 끝나고 식사대접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참석한 하객들에게 대부분 스테인리스 식기세트나 우산 등 기념품을 주고받는 것이 대세였다. 그러던 것이 갈비탕 식사를 대접하는 관행으로 바뀌었다가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뷔페로, 스테이크 류의 식사가 나오는 호텔 예식으로 이어져왔다.해방 이후 우리의 혼례 풍습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기형의 모습으로 태어나 변화해오고 있다. 하지만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직도 혼례 의식은 종교 예식으로 치러지고 있다. 오늘날 인도나 몽골,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양권 나라에서는 각기 민족의 문화 전통을 따르면서 적절한 변화를 주고 있는 데 비해 유럽 등 서방의 여러 나라와 미국을 비롯한 중남미 나라들은 성당이나 교회 중심의 종교적인 질서 속에서 법률적 절차 이행에 의미를 두는 한편 파티와 춤을 즐기는 전통과 관습을 이어가고 있다.한동안 북한이나 중공 등 과거의 공산국가에서는 통치자의 사진을 걸어놓고 결혼식을 올리는 등 강한 정치성을 드러내기도 하였으나 최근 중국에서는 그들만의 전통적인 예식에다가 여러 가지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부 지나친 혼수와 축의금으로 허례허식이 심각해져 사회적인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국의 혼인 예식장도 하객이 넘치는 일은 없다. 대부분 가까운 친인척이나 친지만 초청되기 때문에 우리처럼 예식장이 정신없이 붐비지 않는다. 마치 자신의 영향력이나 집안의 세를 과시하듯, 남의 눈을 의식하여 경쟁을 하듯 유명 호텔 예식장에 수많은 하객을 초대하여 엄청난 비용을 낭비하는 그런 혼인예식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이런 잘못된 관행의 똑같은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꼭 알려야 할 가까운 이들만을 모시고 올리는 경건하면서도 의미있는 예식이 되어야 한다. 그것만으로 아쉽다거나 경제적으로 형편이 되는 집이라면 혼인 잔치를 따로 벌여 여기에는 모르는 사람들까지 모두 참여시켜 간단하게 국수 한 그릇 정도 대접하면서 축제를 벌이는 것은 어떨까. 야외 공원이나 공공 기관의 강당, 체육관, 마을회관 같은 시설을 이용하도록 권장하여 모두들 축하하고 즐길 수 있는 잔치, 그런 이벤트가 된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전통과 정신을 계승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혼인 예식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영향력이 있는 인사들이나 사회지도층이 앞장서서 문제점 개선의 공감대를 넓혀가며 전파시키려는 노력과 의지가 필요하다.박옥걸 아주대 명예교수 한국사학 전공

미래사회의 대안 ‘자원봉사’

필자는 그 분의 이름을 모른다. 모 음식점 주차장의 한 귀퉁이에서 열쇠가게를 운영하며 주차관리를 해주는 분이다. 점심 약속 때문에 1년여 만에 찾아간 그 음식점 주차장의 모습은 여전했다.오랜만입니다. 요즘은 무슨 일을 하고 계신지요? 그 분은 반갑게 인사를 하면서 필자를 맞아 주었다. 저는 자원봉사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친절하게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인사 나눈 일이 없었음에도 다정한 이웃을 만난 것처럼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다. 그 분은 매일 저녁시간에 유흥음식점 주변에 있는 통학로를 이용하는 여고생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광고물 등을 제거하는 일을 해왔다는 것이다. 어른이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시작한 일이 어느덧 20여 년이 됐다는 것이다. 남모르게 하는 일이 재미가 있었고 늘 행복했다고 했다. 그는 또 봉사활동은 내 집 주변부터,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부터 스스로 잘 해야 되는 것 아니냐? 라고 했다.이웃사회 행복하게 만드는 봉사자원봉사(volunteer)라는 어원은 영국의 인보관 운동(Settlement Mov-ement)이다. 인보관 운동은 봉사와 자선에 기반해서 잔여적 복지를 실천한 자선조직협회(Charity Organization Society, COS)와는 달리 지역사회의 모순을 변화하려는 자발적인 지원자들의 보편적 사회복지 실천운동이었다. 이런 점에서 volunteer는 노령, 빈곤, 장애 등의 사회적 위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사회의 모순을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의 문제로부터 도출하고 시민들 스스로가 사회의 공적인 일에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모순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시간과 재능과 노력과 신념뿐만 아니라 사회적 자원과 방법을 동원해 곤란에 처한 이웃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놓는, 곧 이웃과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자이다.부자가 가난한 사람에게, 배운 사람이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 건강한 사람이 병든 사람에게 베푸는 것은 박애정신에 의한 자선활동이다. 이를 자원봉사 활동으로 잘못 이해하면 감상적이고 알량한 동정심에 빠져 자신은 베푸는 우월자이고, 상대는 시혜를 받는 열등자로 왜곡된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이는 공동체의 붕괴, 인간성 상실 등의 문제로 나타날 수도 있다.자원봉사는 자선활동이나 선행을 매개로 하여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그리고 사람과 자연간의 관계를 바람직하게 변화시키는 활동이다. 자원봉사는 칭찬이나 존경받기 위해 저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비난받고 무시당하는 이웃들이 살고 있는 저 낮은 곳으로 스스로 내려가는 것이다. 인간을 차별화하고 소외시키는 왜곡된 가치를 제거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웃과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이상으로 여기는 것이 자원봉사다.국가의 정책제도적 뒷받침 필요최근 들어서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인층의 증가, 노인의 여가 시간 증대, 노인의 건강수준 향상 등으로 노후생활에 있어서 자원봉사 활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성에 대한 강조에도 불구하고 실제 참여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6% 미만에 머무르고 있는 형편이다. 노인의 자원봉사 참여 활성화는 당사자를 비롯한 민간차원의 노력만으로는 실효성을 얻기 어렵다. 국가차원의 정책 및 제도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연구자들은 노인의 자원봉사 활동 참여효과로서 퇴직 이후 상실한 사회적 지위와 역할 보충, 긍정적 자아개념 유지, 노후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 자아성장과 자아실현 부여, 사회적 관계망 형성, 신체 및 정신 건강 유지 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자원봉사는 우리가 미래사회를 희망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주는 대안이 되는 것이다. 이청연 인천시자원봉사센터 회장

어떤 면장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소단위 지역단체장의 위상과 역할은 그 영향력이 매우 중요하게 확대됐다. 어떤 생각을 가진 단체장을 만나느냐에 따라 지역의 발전은 물론 지역에 살고있는 주민들 삶의 질과 변화의 방향이 바뀌게 된다. 최근 서울시장의 자리를 걸고 주민의 뜻을 묻는 주민 투표의 논란은 씁쓸한 그 한 예가 된다.얼마 전 충북 청원군 ○○면을 취재차 들른 적이 있다. 조그만 면의 단체장인 이 면장과 주고 받았던 이야기들은 오래 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면장은 자연 속에 있거나 도심 속에 있거나 늘 들려오는 소리들을 귀 담아 듣는데 열중한다고 했다. 자연을 향해 한 귀를 열고 주민들을 향해 또 한 귀를 열어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려는 한 면장의 지역과 주민을 향한 관심과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면내를 흐르고 있는 금강을 끼고 가다가 강원도 깊은 산을 방불케하는 산골짜기 입구에서 우리는 차를 세웠다. 진장골이라는 곳이었는데 산세가 험하고 나이 먹은 나무들이 즐비하게 서있었다. 면장은 이곳에다 인간과 자연이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그 계획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10㎞쯤 되는 험로 사이에 마른 솔잎을 깔아 솔밭길을 냈다. 도시를 탈출해 자연을 찾는 자들에게 이 청정지역에서 맨발로 솔잎 위를 걷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 눈사태로 쓰러진 죽은 노송들을 주워다가 주민들이 깎고 다듬어 다양한 의미와 전설이 담긴 장승 400개를 솔밭길 가는 길 양쪽에 세워놓았다. 이 밖에도 인간이 자연과 접할 수 있는 지역 특성을 살린 계획들을 일일이 설명하는 면장의 자연사랑의 모습은 매우 진지했다. 이 모든 계획은 자연을 누구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면장에게 면 단위 예산의 자율적 운영을 위임한 어떤 군수의 꽤 괜찮은 행정적 방침과 지원에서 비롯되었다고 했다. 인간의 온갖 행위는 자연에서 비롯되고 자연과 함께 한다 잃어버린 근원에 대한 현대인의 동경과 그리움의 중심 대상은 예나 지금이나 역시 자연이다. 자연은 고향, 어머니의 기호로 대변되기도 한다. 이러한 자연을 향토적 터전으로 삼고 자연 속에 살면서 정말 자연으로 인간을 이끌어가고 싶어하는 한 지역의 면장과 하루를 같이 보내면서 마음이 유쾌했다. 네팔을 여행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네팔 여인들이 산에 나무하러 가서 나무 하기 전에 하는 일은 신에게 먼저 기도를 드리는 일이다.신이여, 당신의 것을 조금 가져다 쓰겠습니다. 용서하십시오.그 이야기는 긴 시간 지나도 잊혀지지 않았다.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는 또 한 시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보다 사악하다. 그 이유는 출생할 때 제일 처음 자연물이 아닌 인공적인 것들 위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출산할 때 새끼들을 자연 속에 떨어뜨린다. 풀잎이나 흙, 모래 속, 자갈, 물 속, 나무껍질, 그루터기 등. 그러나 인간의 출산은 펄프를 화공약품으로 강하게 소독한 하얗게 질린 시트나 종이 위에 최초로 떨어져 티슈로 눈물, 콧물, 침을 닦고 소독된 종이기저귀에다 배설하며 자란다. 그 시인의 말에 따르면 이것이 인간을 메마르고 사악하게 만든다라는 것이다.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어머니들이 출산할 때에는 방에다 짚을 깔았었다. 아기는 무명 홑이불에 싸여 짚 위에 최초로 뉘어졌다가 어머니 품에 안겼던 것이다.날이 어두울 때까지 면장과 산 속을 걸었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자연 속에 파묻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하루 종일 도심 속에 사는 자연에 허기진 사람들에게 대체물로서의 자연을 접하게 하려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는 촌부 같은 한 면장의 일하는 모습과 진정성은 이 시대의 모든 지자체 단체장들이 바라봐야 할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최문자 시인

서점이 된 도미니크 성당에서

벨기에 남쪽 인구 12만의 작은 도시 마스트리히트를 찾아갔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구경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국의 일간 신문 가디언은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선정한 바 있습니다. 천상의 서점이라고 했습니다. 서점은 1294년에 세워진 도미니크 성당의 내부를 개축하여 만든 것입니다. 과연 지상에 존재하는 천상의 서점입니다. 저는 이 서점 이야기를 여러 해 전부터 들었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방문은 이번 유럽 여행의 가장 신나는 일정이었습니다. 세계의 서점들을 나름대로 찾아다닙니다만,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의 경이로운 풍경에 압도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네덜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건물이라고 합니다. 좀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위치를 묻는 저에게 한 가게 주인은 즐거운 표정으로 가는 길을 설명해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서점 셀레시즈 도미니크는 마스트리히트 시민들의 가슴엔 문화적 긍지로 자리를 잡고 있는 듯 했습니다. 마스트리히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둘러보는 코스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책방 변신에 관광객들 줄이어유럽의 성당이란 참으로 유럽인들의 미의식을 집성시키는 공간입니다. 바닥 면적이 300평이 안되는 도미니크 성당도 안에 들어서면 역시 감동적인 공간의 위용을 보여줍니다. 천정 높이가 20미터는 됩니다. 천정에는 벽화가 있습니다. 돌기둥들이 장엄합니다.지난 2006년 네덜란드 서점 체인 셀레시즈가 이 성당을 서점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철제로 내부를 3층으로 개축했습니다. 벽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것이 사용조건입니다.서가에 꽃혀 있는 책들, 쏟아져 들어오는 자연광, 스테인드 글라스의 빛깔이 책방 내부를 더욱 환상적으로 만듭니다. 지난 200여년 동안 교회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되다가 책방으로 변신하면서 마스트리히트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저자와 독자의 대화, 전시회, 강연회, 음악회 등이 열려 오래된 성당 도미니크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공간에서 문화예술공간이 되면서 더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습니다.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은 이제 책을 사랑하는 세계인들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명서점이 되었습니다.유럽에는 성당이 참 많습니다. 유럽의 역사와 문명의 이데아는 기독교가 토대를 이룹니다. 유럽의 모든 도시 한가운데는 하늘을 찌르는 성당이 근엄하게 서 있습니다. 그러나 휘황찬란하게 아름다운 교회의 장식과 치장에 비해, 예배를 보는 신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아름답고도 성스러운 유물이 된 듯도 합니다.독서로 가능한 세계 탐구 아름다워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은 현대 서구사회의 종교현상을 보여줍니다. 기독교 문명권의 변화를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종교적 공간이 책의 공간, 대화와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전화되는 풍경에 저는 주목하고 싶습니다. 책의 정신과 책의 사상의 위대한 가능성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책방으로부터 생성되는 자유정신과 독서로 가능한 새로운 세계에의 탐구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1970년와 1980년대에 우리는 민주화운동을 치열하게 진전시켰습니다. 강압적인 권력의 통제시대에 우리는 책을 읽고 토론했습니다. 그 시대를 생각하면서 저는 이미 작고한 연세대 김찬국 교수를 늘 떠올립니다. 해직시절에 임시로 목회를 하기도 한 선생은 책을 가득 넣은 가방을 메고 다니면서 책 읽기를 권하곤 했습니다. 책 읽게 하는 것이 곧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 했습니다. 한길사는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책을 기획하면서 선생에게 집필을 부탁드리기도 했고, 선생의 단독저서 인간을 찾아서를 출간한 바 있습니다.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에서 저는 실천하는 신학자 김찬국 교수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책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정신과 사상을 탐험하는 일입니다. 진리와 진실을 탐구하는 삶의 여정입니다. 책의 정신과 사상을 탐구하고 탐험하는 사람들이 찾는 책방이란 참으로 의미심장한 공간입니다. 언젠가 다시 셀레시즈 도미니크 서점을 가고 싶습니다.김 언 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나의 은퇴설교

나는 목회를 하는 사람으로서 참으로 부러워하고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한곳 있다. 아끼고 사랑하는 구절이다. 성경 사무엘 상12장에 기록 된 사무엘 선지자께서 은퇴설교하는 내용이다. 내가 목회일선에서 물러가게 될 때 설교하려고 아껴두는 본문이기도하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왕이 세워지기 전 사사시대의 선지자겸 사사이며 제사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통치자였다. 그러다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우게 된다. 왕을 세운 후에 사무엘은 백성들을 불러 모아놓고 은퇴를 선언하며 고별설교를 하게 된다. 한나라 안에 두 개의 리더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 때문이다. 자신은 머리가 허옇게 흰 노인이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그의 아들들과 새로 세워진 왕과 백성들이 서있다. 그리고 그는 그 앞에서 외친다.나는 어려서부터 여러분 앞에 출입한 사람으로 오늘 내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앞과 여러분의 왕 앞에서 증거 하십시오. 내가 뉘 소를 취한 적이 있습니까? 뉘 나귀를 취한 적이 있습니까? 누구를 속인 적이 있습니까? 누구를 압제 했습니까? 누구의 뇌물을 받고 눈이 흐려져서 잘못된 결정을 내린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말씀하십시오. 내가 갚아 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이 일제히 외친다. 아닙니다. 당신은 우리를 속이지도 아니하였고 압제하지도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것도 취한 적이 없나이다. 우리가 왕과 하나님 앞에서 증거 합니다. 다만 은퇴 후에도 우리를 기도를 해 주십시오. 내가 결단코 기도를 쉬는 죄를 범하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인가, 사무엘은 자신의 사역의 평가를 그가 이룬 업적으로 평가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가 이룬 업적은 얼마나 화려했던가, 정치, 사회, 경제, 종교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던 나라를 위기에서 건저내고 불레셋에 빼앗긴 법궤를 되찾아오고, 자신이 이룬 공적으로 평가 받으려 하면 엄청난 공이 인정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역을 업적이 아닌 자신의 삶으로 평가받고 싶어 한다. 깨끗한 삶, 아버지로서의 자식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는 지나온 모든 삶, 하나님 앞에서, 왕과 백성들 앞에서 증거 받을 만한 삶, 자신의 흰머리 앞에 부끄럽지 않은 깨끗한 삶으로 평가받는 모습은 이 땅에 모든 지도자들이 교훈으로 가슴에 담아야 할 삶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 본문이 그렇게 좋다. 그리고 나의 은퇴 설교 본문으로 일찌감치 정해 놓고 목회를 한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사무엘처럼 살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그냥 이 본문으로 설교해야지 하는 마음가짐으로 살려고 노력할 뿐이다. 나도 어느새 불혹을 넘어 이문의 나이를 살고 있다. 머리도 희어졌고 아이들도 장성해서 내 설교를 듣고 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부끄러운 것뿐이다. 드러내고 싶지 않고 감추고 싶은 부분이 많이 있다. 흰머리는 염색으로 감추었고 마음속에는 내가 누구인데하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다. 감추어져 있을 뿐이지 은근히 무엇을 바라는 마음도 몰아내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저 오늘도 아침을 열면서 지혜의 사람 솔로몬의 친구였던 아굴의 기도를 읊조린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기도하오니 나의 죽기 전에 주시옵소서! 곧 허탄한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잠30:7-9)

청춘이 희미하다

청춘이라는 문학 잡지가 있었다. 이 잡지는 1914년 10월에 최남선이 창간한 문학 청년들을 상대로 한 우리 나라 최초의 문학 잡지로 다른 잡지와 차별되는 점은 다른 잡지보다 시대적으로 앞서 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국내 작가의 작품만 게재하는 그 당시 잡지들의 틀을 벗어나 해외 문학을 소개하고 번역 문학의 기수가 된 것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였으며,이 시대로 말하자면 잡지가 젊고 글로벌하며 독자에게 도전을 주던 문학 잡지였다.청춘이란 말의 의미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대 후반에서 이십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한 그런 시절을 뜻하는 말 로 표현되어 있다.취업이 인생목표가 된 이 시대 청춘청춘은 이처럼 아름답고 파릇파릇하며 내면에 무한하게 잠재된 에너지를 갖게 된다. 이 에너지는 비전이나 열정과 연결되고 청년들이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나갈 수 있는 것은 청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그런데 이 시대의 젊은이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청춘이 자꾸 희미해지고 청춘이 불안하고 때로는 암울해서 견딜 수 없다. 얼마 전 밤 늦게 제자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약간 취기가 있는 목소리였다. 선생님 청춘이 왜 이리 희미합니까? 이 참을 수 없는 희미함 때문에 저 정말 견딜 수 없습니다 꿈도 야망도 당찼던 제자였다. 대학원도 마치고 나름대로 자기 길을 잘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제자였다.60년대 70년대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알 것이다.비록 그 시대의 삶은 가난하고 배고팠지만 꿈을 가지고 미래에 도전하는 힘은 강하고 담대했다. 깊은 역경을 뚫고 성공하려는 청춘의 힘은 무서울 정도로 확신에 차 있었다. 또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에게도 청춘의 특성이 있다. 정치적으로 부패한 기성 세대가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했던 그 시대에도 시대적 사명을 띠고 목숨과 청춘을 바쳤었다. 민주화는 수많은 청춘들의 피가 항쟁해 이루어낸 결실이다. 90년대 이후 빠른 속도로 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청춘을 흔들리기 시작한다. 20세기가 전문성의 시대라면 21세기는 통합의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의 교육시스템은 대학 입시라는 표 안에서만 생각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이것은 생각하기의 본질을 절반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적인 사고는 청춘의 특권임에도 불구하고 상상의 영역으로 호출된 수많은 감정과 이미지에서 태어나는 보석 같은 결실들이 삭제되고 있기에 이 시대의 청춘은 늘 불안하고 허전하며 점점 희미하고 무의미해진다.창조적인 사고는 청춘의 특권대학 총장을 하면서 시달렸던 문제중 하나가 취업률에 관한 것이었다. 얼마나 잘 가르치는 대학인가? 보다 얼마나 취업을 잘 시켰는가? 에 더 평가의 무게를 둔다. 수많은 학생들이 취업 문제 때문에 괴로워하고 시달리고 못 견뎌 하는 것을 직접 듣고 보았다.취업에 실패하면 인생을 실패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청춘은 취업에 매달려 있다. 60~70년대의 청춘보다 이 시대의 청춘은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빠른 속도와 변화에 밀려 우울할 수밖에 없다.역사 속에서 가장 창조적이었던 사람들은 실재와 환상을 경험하기 위해 무한히 노력해 왔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으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묘사한 세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 시대의 청춘은 이러한 벽을 뚫어야 한다.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듣는 것과 주의 깊게 듣는 것을 구별하도록 한다. 취업이 인생의 목표나 목적이 되는 것에서 취업을 미래의 자기 세계를 만드는 도구로 주의 깊게 차별해야 희망이 보이지 않을까? 청춘이 희미해서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청춘들에게 이미 청춘을 의미있게 보낸 우리 모두가 희미하다고 느끼는 그들의 미래를 환할 때까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와줘야 되지 않을까.최문자 시인

“아빠, 내 짝꿍이 얼마나 예쁜지 알아?”

빨리 집에 좀 내려와 보세요 아내의 호출이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고 있는 막내 녀석 책가방에서 담임선생님이 써준 알림장을 꺼내 보여 주며 읽어 보란다. 학교에서 종종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있습니다. 학교에서도 지도하고 있습니다만 가정에서도 신경을 써서 지도해 주세요 아내는 아이를 앞에 앉혀 놓고 땅이 꺼져라 한숨짓고 아들 녀석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있다. 아내는 당신이 어떻게 좀 해보란다. 뭘 어떻게 해, 아이들이 놀다보면 좀 그럴 수 도 있지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줄 알았네 하면서 아들 녀석을 데리고 서재로 올라왔다.문득 언젠가 친분 있는 한 목사님으로부터 자신의 아버지의 교육방법가운데 하나가 자식이 잘못했을 때면 허리띠 매를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은 것이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날 나는 아이에게 그 이야기와 함께 아빠도 네가 잘못을 할 때마다 허리벨트로 혼내주겠다고, 오늘은 처음이니까 용서하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타일렀다.좋아하는 아이 괴롭히는 아들녀석몇 날 후 이번에는 알림장에 짝꿍 지우개를 연필로 30번을 콕콕 찔러놨습니다. 새 지우개를 사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기록이 되어있다. 아내는 이번에도 역시 나를 불러댔고 어떻게 좀 하라고 야단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허리벨트를 만지작거렸다. 아이 시선이 가죽벨트에 머물자 얼굴에 잔뜩 겁을 먹으면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아빠 정말 잘못했어요. 다시는 정말 안 그럴게요하는 게 아닌가, 그러는 아들을 보니 슬며시 벨트에서 손을 뗄 수밖에.아이를 데리고 동네 목욕탕엘 갔다. 금세 다 잊어버리고 신이 나서 텀벙거리고 좋아한다. 대화가 시작되었다. 너 왜 학교에서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니? 오늘 네 짝꿍 지우개는 왜 연필로 30군데나 찔러놨어? 하자 대답하는 말 아빠 그 애가 얼마나 예쁜지나 알아요? 이게 무슨 말인가, 그 애가 예쁘고 좋아서 그런 건데 그것도 모르고 짝꿍아이는 치사하게 울면서 선생님께 일러바쳤다고 했다. 아하 그랬구나. 참 우리 요셉이 마음이 많이 서운했겠구나 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아빠도 너만큼 어렸을 때 옆집에는 아주 정말 예쁜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는데 그 애가 얼마나 예쁘고 좋은지 매일 놀러갔었다는 이야기, 자꾸 그 애를 괴롭히고 울려놓고 와서 그 애네 할머니한테 혼나기도 했다는 이야기, 그러다가 그 애네 집이 이사를 가서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 지금도 생각하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이를 괴롭히고 못살게 군 게 바보 같았다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더욱 친절하게 대해 주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니 제법 진지하게 듣는다. 듣고 나서 이 녀석 하는 말 아빠 친구가 그래도 내 짝꿍보다는 안 예쁠걸. 녀석 반해도 단단히 반한 모양이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아이에게 야 임마 네가 안 봐서 그렇지 아빠짝꿍이 얼마나 예쁜지나 알아? 그럼 엄마보다도 예뻐? 그런데 왜 결혼 안했어? 이야기가 이상하게 흐른다. 암튼 좋아하는 사람은 더 친절히 대해 주는 것이라는 것과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아빠의 가죽벨트가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힘주어 일러주었다. 어린시절 추억 새록새록기분 좋게 목욕하고 집에 와서 기분 좋게 저녁 먹고 나니 이내 아내는 숙제 시키느라 아이와 실랑이를 벌린다. 그때 불쑥 엄마 그거 알아? 뭘 알아? 숙제하다 말고 뭘 딴 짓 하려고 그래 아뿔싸 이 녀석 기어코 일내고 말았다. 아빠 짝꿍이 엄마보다 백배천배 예쁘대 근데 괴롭혀서 결혼 못했대 아예 하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보태서 하는 게 아니가, 아 그래? 그런 일이 있었구나, 엄마가 그것도 모르고 있었네? 말은 그렇게 하는데 표정은 영 아니다. 이어서 이상기류가 흐르고 아내의 톤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한다. 짜식, 남자끼리 한 얘기를 함부로 말하다니, 그렇게 입이 가벼워서야.반종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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