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쓰는 후배와 점심을 먹으려고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 시간인데도 손님이 고작 세 사람뿐이다. 주문을 하고 나서 왜 이렇게 손님이 없느냐고 물으니 작년부터 이렇단다. 그러면서 식당을 차린 지 올해로 3년짼데 도저히 못해 먹겠다며 울상이다. 우리도 점심을 먹으면서 기분이 안 좋긴 마찬가지였다.
며칠 뒤였다.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택시를 탔다. 헌데 기사의 얼굴이 날짜 지난 빵처럼 딱딱하기 이를 데 없다. 수고가 많다는 인사말에도, 행선지가 어디라고 일러줘도 도통 반응이 없다. 해서 혹시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느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기사 왈, 더러워서 못해 먹겠단다. 이유를 물으니 방금 손님과 요금 관계로 다퉜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식 뻘이나 되는 젊은 사람한테서 욕까지 얻어 먹었다는 것이다. 나는 맑은 날이 있으면 궂은 날도 있지 않느냐고 위로를 해주었다.
또 한 번은 짐이 있어서 짐콜을 불렀다. 그런데 퇴근 무렵이라서 길이 보통 막히는 게 아니다. 자연 기사와 이런저런 얘기가 오갔다. 자기 얘기를 들어주는 내 태도가 마음에 들었던지 기사는 하소연을 하기 시작했다. 용달차를 몰다가 작년에 짐콜로 옮겼는데 손님이 없어 죽을 맛이란다. 그래도 자기는 혼잣몸이라 괜찮지만 처자식이 딸린 가장들은 죽기 일보 전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못해 먹겠다는 말을 세 번이나 했다.
언제부턴가 이곳저곳에서 들리는 소리가 ‘못해 먹겠다’는 소리뿐이다. 장사를 하는 사람, 농사를 짓는 사람,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 회사에 나가는 사람, 공직에 있는 사람… 다들 못해 먹겠다는 사람들뿐이지 해먹을 만하다고 하는 사람은 못 봤다.
경기가 좋지 못한 데다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힘들어서 그렇게 말하겠지만 좀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이왕이면 내가 선택한 일이니 온 몸을 바쳐 사랑해야 하지 않겠는가. 사랑은 쥐꼬리만큼 하고 나서 크게만 얻으려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
두 아이에게 사과 다섯 개씩을 주고 먹으라고 했다. 한 아이는 다섯 개 중에서 가장 맛없어 보이는 사과부터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사과 다섯 개를 다 먹었다. 다른 아이는 사과 다섯 개 가운데서 가장 맛있어 보이는 사과부터 먹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그 아이도 사과 다섯 개를 다 먹었다. 그런데 같은 사과를 먹었는데도 결과는 아주 다르게 나왔다. 먼저 아이는 맛없는 사과 다섯 개를 먹은 반면에 두 번째 아이는 맛있는 사과 다섯 개를 먹은 것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먹었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른 결과가 나오게 돼있다.
맛있는 사과를 먹을 것인가, 아니면 맛없는 사과를 먹을 것인가는 오직 각자에게 달렸다고 생각한다. 무슨 일을 하던 마찬가지다. 어떤 정신을 가지고 임하느냐가 중요하다. 부정적인 사고에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만을 바라서는 안 될 것이다.
글을 쓰다 보니 자연 출판사 사람들과 교분을 갖게 되는데, 여기에도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항상 밝은 얼굴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책을 만드는 사람과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만든다는 사람이 있다. 작가인 입장에서 누구를 더 만나고 싶겠는가. 열이면 열이 밝은 얼굴에 긍정적인 사고를 가진 출판인을 만나고 싶어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올해 출판 시장은 연초부터 불황으로 허덕이고 있다. 어린이책 시장은 더더욱 어렵다. 그래도 나는 ‘해먹을 만’ 하다고 미소를 지으며 오늘도 컴퓨터 앞에 앉는다. 구름은 언젠가 걷히게 돼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끔은 구름 낀 날의 풍경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고 자위한다. 맛있는 사과를 먹기 위해서는.
윤수천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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