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바지가 왜 이렇게 짧아요?

언젠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에 세탁소에 다녀온 아내가 옷가지를 정리하다 말고 짜증을 부린다. 왜 그러느냐 물으니 이유인즉 세탁소 주인이 세탁물을 잘못 주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 집에 거래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우리 세탁물을 모르느냐는 것이다. 10년 아니라 20년을 다녔어도 모를 수도 있는 것이지 무얼 그러느냐고, 그런데 무슨 세탁물이 바뀌었는데 그러느냐고 했더니 당신 바지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지를 보니 바뀐 것 같지를 않았다. 그래서 그 바지 내 것 맞는데? 했더니 아내가 대뜸 당신 바지가 왜 이렇게 짧아요?한다.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사실 나는 아내보다 키가 좀 작은 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연애를 했고 아주 오래 동안 교제를 한 끝에 결혼을 했다. 한마디로 말해 아내의 눈에 콩깍지가 씌인 것이었다. 이 콩깍지는 결혼 생활 30년이 넘도록 벗겨지지를 않아 무탈하게 삼남매를 낳고 키우며 잘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그 콩깍지가 벗겨져 남편의 짧은 바지가 눈에 들어왔단 말인가? 당신 바지가 왜 이렇게 짧아요? 이 한마디가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주여 아내의 눈에 콩깍지를 다시 씌워 주소서! 감사하게도 그 기도는 순적이 응답이 되어 오늘까지 큰 변고 없이 살아오고 있다. 결혼상담소에서 키가 165㎝가 안 되면 아예 상담도 안 받아 준다는 요즘 세태를 생각하면 나는 큰 행운아이고 시대를 잘 타고난 사람이다.숏다리인 나 30년째 몰랐던 아내나는 직업상 주례를 많이 하는 편이다. 요즘 결혼 풍습은 이벤트성으로 변질돼 요란스럽고 왁자지껄해 주례사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지만 주례를 맡은 당사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신성한 결혼예식을 통해 새로운 인생 여정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은 어느 누구보다 간절하기 때문이다. 우선 결혼은 결혼식이라고 하는 이벤트로 다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 축포를 터트리며 결혼식을 마친 후 비행기 타고 괌으로 신혼여행 가서 야자수 나무주위를 돌면서 나 잡아 봐라 하고 며칠 놀다가 온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다. 결혼은 생활로 연결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 일생을 살아가는, 그래서 일생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결혼 전에는 홀로 한 인생을 살다가 결혼을 통해 둘이 한 인생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언젠가는 홀로남아 먼저 간 사람의 몫까지 살아야 하는 홀로 두 인생을 사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서 결혼은 생활이고 인생이다. 그 기간이 얼마 동안인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결혼한 속도만큼 계속 단축될 뿐 절대로 연장되는 법은 없다.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할 당위가 여기에 있다. 둘이 하나 된다는 건, 그런것 아닐까결혼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생텍쥐페리는 결혼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 된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면서 서로 이런 약속을 했다. 내가 밖에서 힘든 날이면 집 현관을 들어설 때 넥타이를 왼쪽 어깨에 걸치고 들어 올 테니 그때에는 당신이 나를 위로해 주고 당신이 힘든 날이면 내가 오는 시간에 앞치마를 왼쪽 옆으로 돌려 입어요. 그러면 그날은 내가 당신을 위로하겠소. 이 일은 잘 지켜졌고 행복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퇴근해 집으로 들어오는 남편의 왼쪽 어깨에도 넥타이가 걸쳐 있고 남편을 맞이하는 아내의 앞치마도 옆으로 돌아가 있었다. 그렇다, 결혼은 두 사람이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나란히 한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 인생은 일생이다. 그래서 소중한 것이다. 화폭의 그림도, 쓰던 원고지도 맘에 안 들면 다시 그리고 쓸 수가 있다. 시험에는 재수, 삼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은 일생이다. 한 번뿐인 인생, 그래서 아름답고 소중하다. 나는 행복해야 해 강박관념에 매이지 말자. 당신의 짧은 바지에서 시선을 돌려 창을 열고 함께 하늘의 별을 헤아려 보자. 반종원 목사

관광이 해결사다

세상엔 참 걱정거리도 많다. 풍년이 들면 넘쳐서 걱정, 흉년이 들면 모자라서 걱정이다. 집이 있어도 걱정, 없어도 걱정이니 속을 태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근데 걱정이란 녀석은 신기루와도 같다. 온갖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다가도 어느 사이 슬며시 사라져 버린다. 엄청난 문제라도 몰고 올 것 같던 갖은 걱정거리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깨달을 즈음이면 또 다른 걱정이 다가온다. 해결됐다고 생각하면 또다시 다가오는 찰거머리 같은 녀석, 언제 생겨날지 모르는 불안한 문제들을 사람들은 걱정이라 부른다.기업경영이나 공공사업에도 걱정거리는 많다. 실패했을 때의 두려움 때문이다. 잘 못 되면 어떡하나? 스스로 해결할 수 없으면서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막연한 문제들, 그러나 걱정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그것은 창조상상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우리 주변의 각종 공공사업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모두 아이디어를 자극하는 소재가 된다. 공동화된 농공단지는 농민미술관이나 공연장으로, 참나무 숲은 참나무를 테마로, 짓다 만 흉한 건물이 있다면 흉물을 주제로, 일출이 없는 서해안은 낙조관광을 살리는 쪽으로 생각을 바꿔본다. 걱정이나 문제 자체를 해결책으로 바꿔보는 것이 아이디어다.사례를 보자. 이천여주광주에는 우리나라 도예인의 48%가 몰려있다. 전통문화를 계승한다는 자부심으로 창작활동을 하는 우아한 직업인에게도 걱정은 있다. 도자상품과 작품의 홍보와 유통, 새로운 창작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작품 제작과정에서 나오는 수많은 파편들의 처리, 도자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적다는 것이 걱정거리였다. 재단에서는 그 걱정을 주제로 삼아보기로 했다.먼저 도자 제작과정에서 실패한 작품이나 버려지는 도자 파편들, 잘 안 팔리는 악성 재고와 깨진 도자들의 매입사업을 시작했다. 내년의 세계도자비엔날레를 앞두고 엉뚱한 곳에 예산을 낭비한다고 걱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하지만 도자 파편이나 악성재고들이 다시 새로운 창작의 소재가 된다는 사실을 대부분 알아채지 못했다. 파편들은 건축과 인테리어, 거대한 도자 환경조형물의 소재가 된다. 도자기 파편으로 집을 짓고 숲을 만들고, 연못이나 놀이터가 있는 도자기 테마파크를 만들어 볼 계획이다. 테마파크는 관광지가 된다. 도자기가 팔리지 않더라도 도예인은 창작활동을 하며 생활할 수 있고 주변의 음식점이나 주유소, 수퍼마켓에까지 관광객이 몰려들게 될 것이다.대부분의 직장에서 5일 근무제가 정착돼 가는 지금은 생활관광시대다. 수도권 2천만 이상의 예비관광객을 두고 있는 경기도는 관광개발의 최적지다. 일본이나 중국, 동남아로부터의 관광객들까지 고려하면 엄청난 시장의 한 가운데 놓여 있는 곳이 경기도다. 최소한 연간 3천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는 한국관광의 핵심지역이다.그런데 불행히도 손님이 적게 찾아오는 것이 또 걱정이다. 기존의 명승고적 외에도 땅이 넓고 강과 산, 골짜기 등 한국 고유의 관광자원이 될 만한 소재들이 산재해 있는데도 써먹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다.이 작은 걱정거리를 관광으로 풀어보는 것도 좋다. 관광지를 조성하려면 또 수많은 걱정거리들이 생기겠지만 일단 시도해 보면 어떨지? 많은 문제들이 예상되겠지만, 사소한 문제는 미리부터 걱정해 둘 필요는 없다. 고쳐가면서 해결해도 심각한 문제로 남지는 않는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소출이 적은 농지나 산림, 개펄, 철조망, 실개천과 강물, 어지러운 마을환경까지 모두 경기도만의 특성화 관광자원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강 우 현남이섬 대표이사한국도자재단 이사장

출판도시 책방거리를 만들면서

가을날 오후의 책방, 나이 지긋한 신사들이 책들을 뒤지고 있습니다. 엄마와 함께 나들이한 아이들의 눈망울이 영롱합니다. 아이들은 신기해하고 엄마들은 자애롭습니다. 수많은 책들이 지혜와 지식과 정보를 분출해냅니다.파주출판도시가 새로운 진화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출판인들이 책방거리를 한창 준비하고 있습니다. 책방 100개를 여는 프로젝트입니다. 아름답게 디자인된 출판사들의 건물마다 책방을 개설해, 책의 거리책의 세상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유토피아입니다.세계인이 늘 찾는 지식창고 조성모든 문화예술은 한 권의 책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어디 문화예술뿐입니까. 반듯한 경제와 과학, 민주적인 정치와 사회란 당초부터 책 없이 불가능합니다. 이런저런 문제와 콘텐츠를 담론하고 담아내는 출판행위, 그 행위의 구체적 성과인 한 권의 책, 그 책을 읽는 삶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사회를 사회답게 만들 것입니다.파주출판도시가 기획하는 100개의 책방거리는 책방뿐 아니라 그 사이사이에 화랑과 북카페와 담론장이 함께 들어섭니다. 책을 살펴보고, 그림을 보고, 커피 한 잔을 마십니다. 생각하면서 휴식합니다. 작금의 세계와 인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세계적 도시들은 책방거리를 품격 있는 문화공간으로 자랑합니다. 새책과 고서들을 취급하는 서점들이 즐비해 있는 도쿄의 진보초 책방거리는 세계시민들을 황홀하게 합니다. 세계의 유수 대학 앞에는 책방들이 즐비합니다. 책방 없는 대학이란 당초부터 존재할 수 없습니다.우리의 청계천변에는 책방들이 끝없이 있었습니다. 청계천을 새로 만들면서 이 거리를 살리기는커녕 사라지게 만들었습니다. 인사동에도 고서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 두 개가 겨우 존명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앞에도 책방거리는 없습니다. 대학이 밀집해 있는 신촌에도 없습니다.책은 우리 삶의 에너지이자 희망책방이란 총체적인 교육문화예술공간입니다. 도덕적이고 창조적인 시민들을 키워내는 교육장입니다. 국가사회 발전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살아 있는 지식창고입니다. 문화 인프라입니다.향후 파주출판도시의 책방거리에서는 실로 경이로운 프로그램들이 펼쳐질 것입니다. 출판사들이 수십 년 동안 만들어낸 자사의 책들을 한껏 보여줄 수 있습니다. 헌책과 고서들을 취급하는 서점들도 물론 들어섭니다.출판사와 서점들이 저자와 독자의 대화를 공동기획하게 되면, 수십 개의 서점에서 동시에 대화와 담론의 축제가 펼쳐집니다. 올해의 책 축제도 가능합니다. 아름다운 책을 특별 전시하는 축제도 벌일 수 있습니다. 음식과 생명을 주제로 하는 책 전시와 담론은 그야말로 신나는 축제가 될 것입니다.미국의 태평양 연안도시 포틀랜드의 중심에 파울스 서점이 있습니다. 한 블록이 전부 서점입니다. 책의 천국입니다. 이런저런 책의 행사가 열립니다. 헌책들도 싸게 구할 수 있습니다.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이곳에서 독자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유세를 하기도 했습니다. 포틀랜드는 이 서점을 문화특구처럼 사랑하고 배려하는 정책을 폅니다.세계인들이 늘 찾는 파주출판도시 책방거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곳에서 세계시민들은 친구가 됩니다. 평화와 생명의 문제를 함께 토론할 것입니다. 책은 삶의 에너지이자 우리들의 희망입니다.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맴돌기

자세히 보면 어떤 것 주변에는 그 어떤 것을 에워싸고 맴도는 것들이 있다. 옛날에도 평생을 두고 어느 누구 곁을 맴돌다 말 한번 못해보고 죽어버리는 총각 처녀들의 상사병은 죽음 그 후에도 심상치 않은 이야기를 남겼다. 무엇 때문에 자꾸 맴돌게 되는 것일까?맴돌기 시작하면 시선이 한 곳에서 멈춘다. 먼 곳은 바라볼 생각조차 안하고 다른 것들은 아예 관심 둘 겨를도 없어진다. 맴도는 순간은 맴돌기 이상으로 마음을 끄는 게 없다. 그런데 이 맴돌기가 끝내는 의미 있는 일이 되는 걸 수없이 본다. 늘 거기서 맴돌다가 거기서 무엇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이 혐오스럽기까지 한 집착이 무서워 보이기까지 한 그것이 끝을 보고 있다.죽음에 이르게도 하는 질병과도 같은 것이다. 곤충들은 죽을 때가 되면 날개를 치며 땅에 등을 대고 맴돈다고 한다. 즉 맴돌기는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프루스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그 어떤 사회적 계층도 그 나름대로의 관심의 대상을 갖고 있다. 예술가에 있어서는 더욱 습관의 표현처럼 나타난다.관심이 생기면 주변을 맴돌게 돼여러 가지 형태의 정열과 호기심을 가지고 많은 예술가들은 자기의 영역에서 맴돌기를 해왔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문학, 그 주변에서 무거운 몸으로 맴돌기를 해온 것 같다. 상사병에 걸린 옛날 청년처럼 짝사랑에 지친 젊은이들처럼 그 주변에서 오랜 시간 맴돌다 때로는 잠들기도 했다.이렇게 정신이 원하는 맴돌기의 형태를 그 누구도 막거나 해결해 줄 수 없다. 그 까닭은 자기가 아무런 목적 없이 하고 싶고, 그걸 떠나서 다른 것에서는 별 의미가 느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시시각각 우리들의 감각에 와 닿는 심상은 우리들의 정신 속에 보존된다. 이러한 심상들은 어떤 육체적 상태에 의해서 환기된다.그러나 전화를 끊는다고 해서 상대방의 정신 또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맴돌기가 설사 멈춰도 그것 자체가 맴돌기로 연결된다. 맴돌기의 형태가 바뀐 또 하나의 맴돌기인 것이다. 문학에 대한 나의 맴돌기, 그것은 영혼 불멸의 가설. 그러나 가장 진실답게 단 하나 전해질 수 있는 나의 관습의 미적 표현이기도 하다.한번 정치의 맛을 느껴본 사람들은 정치판에서 맴돌기를 시작하고 돈맛을 느껴본 사람들은 돈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기를 한다. 이 맴돌기는 현실의 불행을 인지하면서도, 또 자신의 욕망과 기획을 객관화시키려고 노력하면서도 멈추거나 결단할 수 없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나는 어딜 맴돌고 있는지 생각해봐야맴돌기는 공격성이나 돌발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갑자기 총을 겨누지는 않지만 한번 히죽 웃고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다. 시인이기 때문에 시 작품 안에서 예를 들 수밖에 없다. 백무산의 다음 시는 그의 문학이 얼마나 노동 속에서 맴돌았는가를 우리에게 느끼도록 해준다.피가 도는 밥을 먹으리라/ 펄펄 살아 튀는 밥을 먹으리라/ 먹은 대로 깨끗이 목숨 위해 쓰이고/ 먹은 대로 깨끗이 힘이 되는 밥/ 쓰일 대로 쓰인 힘은 다시 밥이 되리라/ 살아 있는 노동의 밥이 <노동의 밥 1연>80년대와 90년대를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들 곁에서 맴돌았던 그는 노동자의 칠흑빛 현실인 밥을 통렬히 노래한다. 생동하는 삶은 밥에서 나온다. 밥 근처에서 간절히 맴돌고 있는데 밥을 빼앗긴 분노는 대단할 수밖에 없다. 가슴이 터져 나오는 힘으로 생명인 밥을 지키고 있다. 그들 주변을 맴돌지 않고서는 아무나 쓸 수 없는 시다.오래 맴돌다 보면 맴돌기의 틀은 너무나 견고해진다. 그 억압성은 보이지 않지만 맴돌기는 맴도는 자 가장 깊은 자리 안에 의미로 존재하고 있다. 나의 맴돌기는 어떤 자리였는지 이 계절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 최문자 협성대 총장시인

장하의 계절을 지낸 인생

한해를 사계절로 보아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눈다. 봄은 싹이 트고 꽃이 피는 계절이요, 여름은 자라서 열매를 맺는 계절이다. 가을은 그 열매를 거두고 겨울은 만물이 잠을 자는 계절로 분류를 한다. 그러나 동양의학에서는 일년을 오계절로 이야기 한다. 여름을 열매 맺는 계절로 보고 가을을 거두는 계절로 볼 때 여름과 가을 사이가 장하라고 부르는 계절이다. 이 기간에는 햇살이 뜨겁고 하늘도 높다. 여름에 무더위와는 달리 높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피부 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 든다. 이때에 어머니는 장독을 열어놓고 햇살을 받게 해주고 앞 텃밭에서는 빨간 고추가 붉게 익어간다. 과일나무에서는 과일들이 익어가고 논과 밭에서는 곡식들이 황금빛을 띠고 익어간다. 이 장하의 계절, 여름과 가을사이에 또 한 계절 그 속에서 여름에 맺힌 열매가 익어간다. 다시 말해 여름에 잘 자란 열매가 가을에 추수하기까지 성숙해가는 계절이다. 곡식이든 과일이든 장하의 계절이 있어야 한다. 장하의 계절을 거친 열매는 아름답다. 좋은 알곡이 되고 열매가 되어 창고에 추수하는 이의 기쁨이 되어 창고에 쌓여진다.사람의 말은 소리가 아닌 언어사람에게도 장하의 계절이 필요하다. 장하의 계절을 지낸 인생은 아름답다. 사람의 말은 소리가 아니라 언어이다. 사람의 말에는 뜻이 담겨 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는 말의 차이이다. 짐승은 소리를 내지만 사람은 말을 한다. 사람에게는 사유하는 능력이 있어 그냥 나오는 대로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뜻이 담긴 말, 그래서 언어라 한다.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농가 부업으로 누에를 쳤다. 누에는 우리 인생과 같아서 인생의 사계절과 비슷하다. 유아기에 속하는 애벌레를 거쳐 청소년기와 장년기를 거쳐 노년기에 이르러 모든 먹은 것을 배설하고 입에서 실을 뽑아 누에고치 집을 짓고 그 집에 들어가 번데기가 된다. 입으로 깨끗한 실을 뽑아내는 누에는 깨끗한 집을 짓는다. 그러나 잘 숙성되지 못한 누에는 좋은 실을 뽑아내지 못할뿐더러 집도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한다. 성장ㆍ성숙이 묻어나는 인생 돼야숙성되어 누에고치를 짓기 전에 누에를 잘 늙었다는 표현을 한다. 잘 자라서 속에 있는 배설물을 다 배설하고 난 후에 말갛게 된 누에를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때 어머니는 어린 나에게 누에 듣는데 절대 늙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하셨다. 대신에 잘 익었다는 말을 하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사람이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늙은이, 늙었다는 말이라는 것이다. 곡식도 과일도 잘 익었다는 표현을 쓰는데 왜 사람에게는 늙었다고 하느냐고 하시면서 사람도 누에한테도 늙었다는 말보다는 잘 익었다라고 말하게 하셨다. 이웃집 할머니가 마실 오셔서 누에를 보시고 누에가 많이 늙었네하시면 정색을 하시면서 잘 익었다라는 말로 하시게 하셨다. 어머니는 늙고 싶지 않다고 하셨다. 잘 익고 싶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장하의 계절을 좋아하셨다. 가끔 어머니를 따라 들녘에 나아가 일손을 돕다가 날씨가 너무 덥다고 불평이라도 할라치면 어머니는 암 더워야지, 햇볕이 따가워야지, 그래야 곡식들이 잘 영글지하시곤 했다. 그 말씀을 듣고 황금빛 출렁이는 들녘을 바라보면 갑자기 햇살이 고맙게 느껴지곤 했던 추억이 있다. 이제 내 나이 어머니가 늙기 싫다고 말씀하시던 그 나이가 됐다. 그리고 어머니가 늙기를 거부하시던 심정도 이해가 간다. 어느새 장하의 계절도 모른 채 그냥 훌쩍 인생을 살아온 것 같아 두려운 생각도 든다. 그렇다,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다. 잘 익은 인생이 되고 싶다. 성장과 성숙이 함께 삶에 묻어나는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래서 오늘도 아침을 열면서 이 소원을 마음에 담는다. 장하의 계절을 지낸 인생 되게 하소서! 반종원 목사

파주출판도시, 국가사회의 공공인프라

출판계 동료들과 손잡고 출판도시의 건설에 참여해, 한강 하류변 이곳으로 입주해 일한 지 8년이 되어간다. 북한땅이 바로 건너다 보이는 출판도시에서 책을 만들면서 나는 생각한다. 한 시대의 지성과 한 국가 사회의 문화를 어떻게 창출해낼 것인가. 인간다운 삶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과 사상의 근거로서의 출판문화를 어떻게 키워낼 것인가. 우리 국가사회의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이론과 사상으로서의 출판문화, 우리 민족공동체를 지탱하는 경제와 산업과 과학을 일으켜 세우는 근거로서 책의 힘을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파주출판도시를 시작한 지 20년도 더 되어간다. 반듯한 책의 가치와 철학, 지성과 문화의 힘을 이땅에 한번 실현해보자는 것이 우리들의 꿈이었다. 함께 헌신하고 모색하는 출판인들의 유토피아였다. 그리고 지금은 제1단계를 끝내고 제2단계의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 건설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출판은 지식경제발전 원동력파주출판도시는 출판인들의 꿈과 열정으로 실험되고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그러나 출판도시는 우리 국가사회의 성원들이 함께 가꾸어 나가야 할 문화적 인프라다. 출판이란 한 시대를 일으켜세우는 지식과 정신과 도덕이기 때문이다. 교육과 과학과 정치와 경제의 발전동력이기 때문이다.출판인들의 책 만드는 일이란 당초부터 공공성을 갖고 있다. 파주출판도시는 이미 우리 출판인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국가사회의 공공인프라다. 파주시민의 것이고, 경기도민의 것이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것이다. 아니 세계인들의 문화적 자산이다. 이 공공인프라에서 어떻게 하면 출판문화를 제대로 창출해 낼 것인가가 우리 모두의 과제다.한 시대의 출판문화란 어느날 하루 아침에 도약할 수 없다.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성원들의 책 읽기, 책 쓰기, 책 만들기가 축적됨으로써 이윽고 가능해진다. 출판문화란 슬로건 같은 것으로 가능하지 않다. 반듯한 출판문화란 우리 국가사회를 반듯하게 일으켜 세우는 장기적인 프로그램이다. 흔히 창조적 발상을 말한다. 이 21세기에는 창조적 발상이 뭘 만들어낸다고 한다. 그러나 창조적 발상이 어디 하늘에서 하루아침에 떨어지는 것일까. 책 읽고 토론하며, 책 만들고 책 쓰지 않는 시대와 사회에서 창조적 발상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와 문명을 선도하는 명예는 책과 함께 하는 인간들에게, 생각하는 삶을 일상으로 누리는 공동체에 주어질 것이다.반듯한 출판문화 함께 만들어야파주출판도시란 창조적 발상을 도모하는 인프라다. 지금 파주출판도시에서는 8천여명이 창조적 발상의 수단과 방법인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고, 디자인하고 제작해 세상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우리 출판문화를 반듯하게 키워내는 문제를 우리 함께 생각해야 한다.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파주출판도시의 출판문화 생산조건을 개선하는 프로그램이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고 있다. 보다 지적이고 문화적이며, 보다 정의롭고 민주적이며, 전쟁이 아닌 평화의 철학과 실천을 행동으로 해내며, 보다 생산적이고 복지적인 국가사회를 구현하는 이론과 사상과 전략으로서 파주출판도시는 존재하기 때문이다.파주출판도시 출판인들의 이런 저런 대안과 주장은 사실은 우리 국가사회를 어떻게 바로 세우고 제대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온 한국인들이 당당하고 품격 있는 세계시민이 될 것인가 하는 과제도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읽고, 쓰고, 만드는 책의 문제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경기도에 테마파크 3천개 만들자

한국에서 경기도만큼 관광자원이 많은 지역도 드물다. 자연풍광과 명승고적 뿐 아니라 문화시설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관광인구 또한 안정적이다. 중국인 관광객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서울을 포함해서 2천만명 이상의 수도권 인구에다, 한반도의 중심이라는 지리적 이점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한국 관광산업의 노른자위다. 특성도 다양하다. 낙조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서해안과 크고 작은 섬들, 다양하고 질 좋은 농수산물, 그리 높지 않은 산과 골짜기들, 맑은 호수와 강과 지천들, 평화의 염원을 담은 휴전선에 이르기까지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관광자원들이 즐비하다. 이 보물들이 모두 경기관광의 테마라 할 수 있다.관광산업의 부가가치를 부풀려 이야기할 때 주로 쓰이는 단어가 테마파크다. 테마파크는 집객효과가 크고 수많은 일자리 창출로 지역경제 발전에 최적의 콘텐츠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젠 그 허상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됐다.31개 시군 특색있는 관광지 발굴가장 큰 허상은 테마파크를 만들면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또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더 큰 돈을 투자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돈을 투자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기분을 만드는 관광산업과 물건을 만드는 제조업은 다르다. 넓은 땅에 거대한 건물과 시설을 짓고, 디즈니건 유니버설이건 어딘가에서 성공한 스케일로 구색을 맞춰 놓으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도 허황된 선입견이다. 단언하건대 관광산업에서 남의 콘텐츠를 빌려다 성공을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한국의 여느 지역처럼 경기도에는 무수한 관광지가 있지만 수익성이 높은 곳은 적고 경쟁력도 미약하다. 쌀, 도자, 포도 등 개성 있는 콘텐츠들도 코스로 연결되지 못해 관광매력이 적다. 지역의 관광산업은 환경적 특성과 생산자가 다른 특산물들과 하나의 코스로 연결돼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결론부터 말하자면, 31개 시군에 걸쳐 있는 소규모 특화상품이나 테마들을 지역별로 100개씩만 선정해서 여행 코스로 연결하면 3천개의 테마 관광지를 만들 수 있다. 손님이 출발하는 곳으로부터 주유소-수퍼-도자기-음식점-관광 목적지-숙박업소-쌀가게 등, 전혀 다른 테마를 하나의 끈으로 연결하는 것이다. 이것이 벨트 관광이다. 관광지와 관광지를 연결하면 벨트가 될 거라는 생각은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관광의 목적지는 하나면 충분하다.특산물 홍보로 관광 매력 높여야도자기를 만드는 요장 가운데 48%가 경기도에 모여 있으며 그 중 이천광주여주가 90%를 차지한다. 3개 도시가 도자라는 거대한 테마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게다가 지난 10년 동안 도자엑스포와 비엔날레를 열면서 세계적인 명소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코스에는 들어가 있지 않다. 콘텐츠는 있는데 코스가 없고, 테마는 있는데 파크가 없기 때문이다. 파크는 손님들의 쉼터이고 여유 공간이다. 여유 공간을 만드는 건 주민의 몫이다. 가게들만 즐비한 거리는 싸구려 장터로만 남을 뿐이다. 그래서 관광지는 많아도 산업화되기 어렵다.경기도의 관광 규모를 산업화시키려면 한 두 개의 포인트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콘텐츠들을 엮어만 주면 된다. 시군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특화 관광지를 조성할 필요는 없다. 전문가도 아닌 공무원들이 배워가며 관광지를 만든다는 건 웃기는 일이다. 관광꺼리는 충분하다. 코스가 없고 매력이 부족할 따름이다. 강우현 남이섬 대표이사한국도자재단 이사장

종이 울리고 봉화가 올라야

우리 사회는 휴대폰 이래 스마트폰 열풍으로 개인 간의 소통이나 게임 혹은 영상을 즐기는 혼자만의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사회적인 축제나 문화 행사는 아직 미흡한 편이다.이 시대 문화적인 면에서 우리가 선진국에 비해 모자라는 것은 시민이 참여하는 축제나 문화 행사가 부족한 점이라고 여겨진다. 지역마다 축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특색 있는 시민 참여의 문화행사가 적다는 것이다. 극장 안에서 하던 음악이나 연극, 발레 공연을 단순히 야외로 끌어낸다고 해서 축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축제는 역사와 전통 속에서 이뤄져 오던 생활을 문화적으로 형상화하는 모습이어야 할 것이다. 이웃 일본의 거리 마쯔리가 한 예가 될 것이다. 유럽에서 벌어지는 거리 투우나, 말달리기, 토마토 축제가 전통적인 축제이며 현대적인 것으로는 온 도시가 들썩이는 에든버러 공연 축제와 영화, 팝 축제 등이 있다. 축제는 개인의 문화를 그 사회의 공동체 문화로 격상시키는 기능이 있다. 우리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이러한 사회 공동체 문화나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일 것이다. 없던 축제를 갑자기 만들어 내는 것도 안되는 일이지만 있던 전통을 없애거나 복원하지 않는 것도 잘못된 일이다.침묵하는 보신각 종화성 봉수대이제는 문화 활동의 단위가 극장 안이 아니라 거리며, 사회가 돼야 한다. 요즘 안동과 양동 전통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전통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반기는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우리 문화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은 첫째 공간적인 우리 문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진다는 것, 둘째 시간적인 우리 삶의 양태가 인간 보편적인 가치로 존중 받는다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관광객이 늘어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문화를 돈을 써가며 알려 하고 국제적으로 한국과 한국인의 이미지가 높아지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있을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문화의 힘이라 할 수 있다.수원의 예를 보자. 수원의 화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화성이라 하지만 아직은 조선시대 마을도 없고 문화 체험이 빈약하다. 정조와 연결된 무예24기 공연이나 야간 장용영 수위의식 등의 행사가 있지만 수문장 교대식처럼 늘 있는 일도 아니다. 정조학교에 다니면서 화성 별궁의 낙남헌에서 강의를 듣고 토론을 펼쳐본 일이 있다. 별궁을 직접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경험이었다.문화가 살아 숨쉬는 거리 조성을수원 종로 여민각의 종은 지난 2008년 10월8일 화성문화제를 시작하는 날 새롭게 세워졌다. 1776년 정조가 세운 종은 하루 일과의 시작과 끝인 파루와 인정을 알리는 시계였다. 유럽 초원 국가에서는 시내 중심에 높은 교회나 공공건물을 세우고 종이나 시계를 달고 아침, 저녁 그리고 행사 시에 종을 울렸다. 지금도 시계가 고장 나면 수리해서 쓰고 있다.그런데 종로의 종은 무슨 용도로 서 있는가. 지금은 새해 시작이나 화성문화제 행사 그리고 수원시장 취임식 때 울린다고 한다. 시간의 의미는 사라지고 일년에 몇차례 기념 축포격인 타종으로 살아 있다. 야외 박물관용 종인 셈이다.화성의 봉수대인 봉돈 역시 마찬가지로 전시용이 돼 있다. 봉수의 의미대로 평상시는 연기나 불꽃 하나를 정기적으로 올려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하나 혹은 둘을 올려야 할 시대가 아닌가. 앞으로는 생활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생활이 되는 시대다. 그것이 바로 문화 복지를 이루는 사회다. 실천하거나 복원할 문화가 우리 주위에 있다. 문화는 살아 있어야 한다. 김광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

정책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21세기 지식정보화사회, 글로벌 시대에서는 문제해결능력, 의사소통능력, 도구활용능력 등의 핵심역량을 갖춘 창의적인 인재를 요구한다. 이러한 사회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는 기존의 교육과정과는 달리 전인적 성장 도모와 바람직한 진로 직업교육 지원을 통해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소위 미래형교육과정을 발표했다. 이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정책방안 중 하나가 바로 대학입시에 있어서 입학사정관제와 더불어 초중고등학교의 교육과정에 있어 창의적 체험활동의 도입일 것이다.창의적 체험활동이 추구하는 목표는 학생들이 창의적 체험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해 개인의 소질과 잠재력을 계발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실천함으로써 공동체 의식과 세계 시민으로서 갖춰야 할 자질을 함양하는 것이다.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인재를 양성한다는 교육목표가 초중등교육과정에서 제도적으로 도입된다는 것은 우선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그동안 새로운 교육정책의 시도와 제도 개선에도 불구하고 실효성이 부족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이러한 제도와 정책이 지니는 순박한 취지에 대해 의문이 남는다. 입시위주의 학교교육 현실에서 대학입시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창의적 체험활동이 어떻게 편성, 운영될 것인가를 예측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교육과학기술부의 창의적 체험활동의 편성, 운영에 대한 지침에 따르면, 창의적 체험활동에 배당된 시간은 학생의 요구, 학교 및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학교의 재량으로 배정하고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과부의 지침과 현 대학입시제도 하에서 과연 누가 배정된 시간 수를 다 채우겠는가? 과연 학부모들이 이를 수용하겠는가? 또한 창의적 활동의 내용에 대한 지침에서도 역시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학교의 재량으로 관련교과와 연계해 운영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창의적 체험활동을 주교과와 연계할 수 있도록 한다면, 현재와 같은 수능위주의 입시제도 하에서 창의적 체험활동시간이 영어와 수학 등의 주교과목으로 대체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정책의 목표와 그에 따른 정책과제의 성공적 실현을 위해 제도와 내용은 불가분의 관계다. 여기서 교과부의 창의적 체험활동제도와 청소년 활동의 본래적 의미에 대한 고민이 요구된다. 즉 창의성과 인성교육을 통해 미래의 성장동력인 창조적 인적 자본을 육성하고자 하는 미래형교육과정에 대한 기대, 특히 학교 내 교육과 학교 밖의 활동(예를 들면 청소년 시설에서의 청소년활동)의 연계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기대가 있다. 그러나 그동안 학교 밖에서 자발적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졌던 학생들의 활동(예를 들면 취미활동과 동아리활동 등)이 창의적 체험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내 활동으로 편입되면서, 오히려 활동내용이 제도적으로 제한될 뿐만 아니라, 활동의 자율성을 위축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청소년들의 활동에서 포기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발적 참여다. 우리는 자원봉사활동 시수가 학교와 연계되면서 오히려 시간때우기로 잘못 운영된 것을 보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학교의 교육과정으로서 운영되는 창의적 체험활동도 자율성보다는 오히려 외부의 다른 요인이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정책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창의적 체험활동이 또 다른 형태로 대학입시의 시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최 순 종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

소송대리의 고객 만족 서비스

상품은 품질이 좋아야 소비자가 만족할 것이나 그에 못지않게, 아니 품질의 우수성보다 겉포장, 즉 디자인이 더 고객의 관심을 끄는 요소가 된 지 오래다. 보다 우수한 디자인으로 포장하기 위해 더 많은 코스트가 드는 것은 물론이다.그러면 서비스에서의 고객 만족은 어떤 요소에 달려있는가. 야구의 예를 들어보자.야구 감독이 경기를 이끌어 가는 스타일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하나는 번트와 도루, 런 앤 히트 등 기민한 주루플레이의 공격과 한 템포 빠른 투수 교체 등 상대 타자에 따른 맞춤형 투수 운용으로 수비를 하는 스타일이다. 즉, 수싸움을 위주로 하는 작전 야구다. 위 스타일의 야구를 스몰볼이라고도 한다. 다른 하나는 번트보다는 강공을 하고, 잦은 투수교체보다는 가능한 그 투수에게 일정한 이닝을 맡겨두는, 작전이 거의 없는 야구다. 이를 빅볼이라고 한다.법률도 알맹이포장 둘 다 추구야구팀 고객을 그 팀의 팬이라고 한다면, 팬은 위 두 가지 중 어떤 스타일의 야구를 좋아할까. 대부분 시원 시원한 빅볼야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야구 감독도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부득이 스몰볼을 하는 것이지, 빅볼을 하면서 이길 수 있다면 빅볼을 마다할 감독은 없을 것이다. 야구팀 고객인 팬은 빅볼을 좋아하면서도 경기에서 이기기를 바란다. 경기에서 이긴다는 것은 팬서비스의 알맹이라 할 수 있고, 어떤 스타일로 경기를 이끌어 갈 것인가는 팬서비스의 겉포장 또는 디자인이라 할 수 있다. 법률서비스를 단순한 상담 서비스와 소송까지 가는 소송대리 서비스로 나눠 보자. 단순한 상담 서비스는 고객과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고객이 원하는 궁금증을 친절하고 상세하게 풀어주면 고객 만족이 된다. 소송서비스에서의 고객 만족은 소송에서의 이기느냐의 문제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것이 소송서비스의 알맹이라고 할 수 있다. 소송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그래서 그 알맹이와 더불어 소송과정에서 어떻게 의뢰인에게 서비스를 할 것인가도 중요한 요소다. 소송서비스는 먼저 소제기 전 충분한 상담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고객과 대면해 법원에 제출할 소장 등 서면을 작성한다. 또는 고객과의 대화와 확보한 증거 자료로 서면을 작성해 이메일 등의 방법으로 의뢰인에게 보여주고, 의뢰인이 그 서면에 대해 만족할 때 법원에 제출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승소했을 경우에는 별 문제 없겠지만, 패소했을 경우 그 패소의 원인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차후의 방안을 설명한다. 위와 같은 소송 과정에서 고객에게 매 과정마다 상세하게 내용을 설명하고 의견을 듣고 소송을 진행하는 것은 소송서비스의 겉포장이라 할 수 있다.고객에 매 소송과정 상세 설명을소송서비스의 겉포장은 지금까지 대부분의 변호사들이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던 부분이다. 소송서비스의 알맹이와 겉포장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알맹이가 100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알맹이와 겉포장이 50대 50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대체로 소송 과정에서 소위 겉포장 서비스를 충실히 했을 경우 고객은 변호사의 수고와 노력의 수준을 알게 된다. 고객은 소송에서 패소, 즉 알맹이를 얻지 못하게 되더라도 그 결과에 대해 수긍을 하게 된다.그러나 변호사, 사무원 등 충분한 수의 인력과 적절한 수임료 뒷받침 없는 법률사무소에서는 야구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알맹이와 겉포장 두 가지를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제는 법률서비스에서도 어쩔 수 없이 두 가지 모두를 추구해야 한다. 법조인 대량배출 시대가 왔고 고객이 원하기 때문이다. 인력부족과 저가의 수임료는 변호사 자신의 사고전환, 배가된 노력, 비용절감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분재는 힘들고 고통스런 시간 보낸다

나무를 길러본 사람만이 안다. 반듯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만들기 위해 정원사는 비료를 주고 가지를 치며 깊은 사랑을 준다. 그러나 분재로 선택된 나무는 몸이 구부러지고 뒤틀린채 철사로 얽어매여져 오랜 세월을 참고 견딘다.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평가하는 분재가 되기 위해 견딘 세월은 나무에겐 참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업보다. 정원사의 정성을 무시하고 우쭐대며 웃자란 나무는 오히려 좋은 나무가 되지 못한다. 알맞게 가지를 친 나무, 순을 접은 포도넝쿨이 보다 실하고 단단한 열매를 맺는다.사람들은 최초의 순간에 순백의 은총으로 맨발로 이 세상으로 걸어와 태어난다. 아기 천사가 아장아장 걷다가 뛰는 것에 익숙해지면 유치원으로, 초등학교로, 중고등학교로, 문명의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사회 속에서 생존법칙을 위해 각종 경쟁을 전쟁터처럼 하게 된다. 사회 예비를 위한 학창시절이 한 인간의 미래를 결정한다. 인간의 몸과 품성은 이 시절에 바로서거나 구부러진다. 나는 어릴 적 훌륭한 스승을 만났다. 금산의 벽촌에서 가난을 뒤로 하고 출가해서 모험의 길에 나섰다. 서울 마장동의 판잣집에 살던 외삼촌은 세상에 대하여 증오심으로 가득했던 나, 희망없는 아이에게 특별한 고된 훈련을 시켰다. 훌륭한 스승 존중 되어야 나는 걸어서 어제는 서울역까지, 오늘은 영등포까지, 내일도 다시 걸으면서 서울의 속내를 보았다. 한겨울 2월에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내가 걸어간 걸음만큼, 시간만큼, 내 다리에 힘이 차올랐다. 나는 거짓말 한 마디에 외삼촌으로부터 큰 벌을 받았다. 그 때는 몹시 힘들고 고통스럽고 서러웠지만 외삼촌은 나를 반듯하게 설 수 있는 나무로, 서울이라는 생존밀림을 바르게 보는 매로, 굴하지 않고 세상을 뚫어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호랑이로 만들었다. 나에겐 인생의 선배인 외삼촌이 큰 스승이었으며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길을 가로막는 산을 만나면 마음속에서 옛날의 스승에게 길을 묻곤 한다. 우리사회는 학업성취도평가, 교원평가, 학생인권조례 등 교육정책을 둘러싼 이념적 갈등과 교육정책의 효율성과 적합성을 놓고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교육은 백년대계의 주춧돌을 놓는 것이다. 조선시대 서당에선 회초리를 마련해 스승에게 갖다 바쳤다. 학생이 스스로 가져간 회초리가 오랫동안 쓰이지 않으면 부모가 스승을 찾아가 섭섭해 했다고 한다. 과거에 급제한 뛰어난 문장을 삼십절초 또는 오십절초의 문장이라고 칭송했다. 30자루와 50자루의 회초리가 부러지는 고통을 겪고서 얻은 글이란 뜻이다. 교육은 백년대계의 주춧돌지금 우리에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학교의 질서와 기강이 무너질 듯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감정의 매와 미움의 매는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 체벌전면금지 조치가 2~3시간 만에 급조 되었다는 보도는 부끄러운 일이다. 체벌전면금지 조치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교권도 보장 되고 모든 학생의 학습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사회 복지정책과 교육정책의 사각지대에 버려진 학생들을 보호할 정책도 강구 되어야 한다. 내 자식이 귀하다고 해서 자식을 엄하게 가르치지 못하면 그 아이는 세상에 대한 옳고 그른 기준을 배우지 못한다. 제 멋대로 웃자라는 나무처럼 사회의 법과 질서에 의해 뽑혀지게 된다. 그러기에 교육정책은 멀리보는 눈으로 전문가들의 검토와 논의를 거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다른 두개의 음들이 조화로운 소리를 내는 음악의 화성처럼 사회와 개인 시대의 요구가 모두 반영된 교육제도가 작곡되어야 한다. 한국의 미래가 여기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박무웅 시인

진실이라는 오아시스와 거짓이라는 사막

기억이 이성적이라면 추억은 감성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은 논리적 근거와 추론을 통해 우리에게 재생되는 반면, 추억의 대부분은 한편의 동화같이 또는 한자락의 유행가 가사처럼 떠오른다. 추억을 얘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마도 학창시절일 것이다. 사고뭉치였던 내게도 학창시절의 추억 만큼은 아름답고 기꺼이 되뇌이고 싶다.다만 두 가지 기억은 별로 회상하고 싶지 않다. 한 가지는 소위 HR시간 만큼은 학급운영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개진이 허용돼 몇 가지 제안을 했는데, 그게 문제가 돼 일주일 동안 반성문 썼던 일, 다른 하나는 학급에서 발생한 문제의 원인 제공자를 무기명으로 적어내라고 했는데, 결과는 대부분의 반 친구이름이 거명됐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평상시 문제아였던 필자가 누명(?)을 쓰고 또 일주일동안 반성문을 쓴 사건.두 기억의 공통적 문제점은 사실에 대한 의견제시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단지 학교 뿐만 아니라 많은 사회영역에서 의사표현 또는 비판의 자유가 제한적이었고 또한 이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때문이라고 이해하자. 그렇다면 과연 현재 한국사회에서 의사표현의 자유와 그에 대한 보호는 존재하는가.익명성 존중이 지나친 사회여기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의 거대담론을 논의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최근 일련의 사건에 대한 보도를 보면, 우리의 방송은 가명이나 이니셜, 모자이크나 변성처리가 너무 많다고 생각된다. 심지어 한 사안에 대한 담당자나 전문가의 의견조차도 변성처리 돼 보도되고 있다. 이와 같이 구체적인 사실에 대한 주장과 비판조차도 익명으로 처리되는 것을 개인정보 보호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사회가 익명성 존중이 지나친 사회이기 때문일까. 나는 후자라고 본다. 이와 같은 지나친 익명성 강조는 한국사회의 세가지 특성에서 파악될 수 있다.첫째, 우리 사회 토론문화의 부족에서 기인한다. 토론은 진위 확인의 목적보다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과정이다. 따라서 토론의 중요한 전제는 타자에 대한 인정과 주장에 대한 수용이다. 그러나 우리의 토론문화는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소위 거짓과 악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의사개진의 망설임이 있는 한, 익명성은 강조될 수 밖에 없다.의사표현의 자유 필요해둘째, 비판문화의 부족에서 기인된다. 대표적 비판사회학자인 아도르노는 비판을 위한 비판조차도 필요하다고 한다. 비판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자 추진력이다. 그러나 여당의원이 정부를 비판하는 것, 공무원이 장관을 비판하는 것이 타부시 되는 사회라면, 당연히 익명성이 강조될 수 밖에 없다.셋째, 정보 제공자에 대한 신변안전보호대책 부족 또는 불신에서 기인한다. 물론 여기서 (범죄)정보제공으로 인해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제보자까지도 공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 한 국회의원의 성추행 기사화에 대한 기자의 망설임, 또는 (피해)사실공개에 대한 대학생들의 불안 등은 정부의 신변안전보호책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하고, 익명성은 점점 강조될 수 밖에 없다.개인생활의 자유와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익명성 옹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러나 의사표현의 자유가 닫힌사회이기 때문에, 또는 신변안전보호가 부족한 사회이기 때문에 익명성이 추구된다면 우리 사회에서 진실이라는 오아시스는 점점 더 사라지고 거짓이라는 사막은 늘어날 것이다. 최순종 경기대학교 청소년학과 교수

최저생계비를 수호하라

정부 수급보조금과 기초노령연금 등 30만원을 받아 월세 1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가족도 없이 외롭게 살고 있는 A씨(70여). 당뇨병, 위장병, 고혈압 뿐만 아니라 관절염과 뇌혈관 계통 질병까지 앓고 있어 거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A씨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자신의 명의를 도용해 신용카드 채무를 지게 됐다. 결국 A씨에 대한 채권을 양도받은 자산관리 회사가 A씨의 정부 수급보조금과 기초노령연금 수령을 위한 예금통장 계좌에 대해 압류를 해 생계비를 전혀 쓸 수가 없게 됐다. 위 내용은 지난 4월 한 언론기사의 일부다.요즘 정부에서 정하는 최저생계비가 과연 적절한가에 대해 논란이 많다. 한 시민단체의 캠페인으로 대학생 3명이 이달부터 서울 성북구의 장수마을 한 할머니 집에서 4인 가족이 최저생계비로 살아보는 체험을 하고 있다고 한다. 보건복지부가 2007년 이후 3년만에 최저생계비를 새로 결정하는데, 이 시민단체는 정부에 제출할 의견을 모으기 위해 체험을 한다는 것이다. 할머니와 대학생 3명 등 4명이 4인 가족으로 생활한지 일주일 후 가계부를 정산해보니 법정최저생계비(136만3천90원)의 60%이상을 썼다고 한다. 집의 벌레를 제거하기 위해 살충제를 사는 것조차 사치인 것 같아 고민했다고 한다.가족 중 몸이 아픈 사람이 생기면 진료비 등으로 목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최저생계비라는 의미 자체가 허물어지고 만다. 신체장애로 불편한 분들을 특별히 배려, 추가의 최저생계비를 지급한다는 규정도 없었다. 그래서 2002년에는 정부가 최저생계비를 고시할 때 장애로 인한 추가지출 비용을 반영한 별도의 최저생계비를 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위헌심판 청구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2000년 10월1일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시행됐으니, 소위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시행한 지 만 10년이 되어간다.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활을 조성하기 위해 국민기초생활 보장법이 제정되고 시행됐다. 위 법에는 최저생계비란 국민이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소요되는 최소한의 비용으로서 여러 요건을 고려, 장관이 공표하는 금액이라고 규정돼 있다. 법에 의하면,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받을 수 없는 자로서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인 어려운 분들이 생계비 등을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렇게 받는 생계비 등은 위 법에 의해 압류할 수 없도록 돼 있다. 그러나 정부로부터 위 분들의 은행통장으로 입금되는 급여가 위 경우에서 본 것처럼 일반 예금과 같이 취급돼 압류되는 경우가 있다.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는 이러한 어려운 분들의 하소연을 들어 왔다. 그래서 관할 지자체에 협조를 구해 위와 같이 급여가 압류되는 분들이 있을 경우 공단으로 안내하게 했다. 그런 분들의 의뢰를 받아 법원에 압류를 변경하거나 해제해 달라고 신청해 위 분들을 보호해 왔다. 그동안 압류를 변경해제하는 법원의 결정은 약 3개월 이상 소요됐다. 법원의 결정이 있기까지 위 급여가 어떤 방법으로든 인출되면 위 신청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압류변경해제 결정이 나기까지 임시처분으로 돈이 인출되는 것을 방지하는 결정(잠정처분)을 법원에 신청해 위와 같은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수급자들이 생계급여 등을 수령하는 통장 구좌가 특별히 압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은행 내부의 어떤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루 빨리 법제도가 정비돼 법원 결정 없이 최저생계비가 보호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이념 넘어 합심의 힘 만들자

우리 주위에는 감동을 주는 이들이 많다. 어려운 환경을 딛고 학문, 기술, 예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국가와 사회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 동트기전부터 어둠을 몰아내며 일하는 사람들, 남아공 월드컵에서 16강에 오른 태극 전사들, 무려 129억원의 사재를 털어서 자신의 일름을 딴 축구센터를 건설하는 박지성 선수에 이르기까지. 그들로 인해 우리는 깊은 감동을 받고 행복과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기부자들 속에서 부끄러운 나를 바라보게 된다. 월드컵이 전 세계인을 흥분시켰다. 축구는 사람과 공이 펼치는 아름다운 예술이다. 또한 축구는 발과 몸으로 하는 공감 언어다. 때로는 말보다 설득력을 갖는 게 몸이다. 언어의 기능은 소통이다. 축구만큼 전 세계인들에게 공통의 희로애락을 주는 스포츠나 언어는 없다. 국가 위상과 브랜드를 높이는 효과가 최고인 지구촌 최대의 이벤트이기도 하다. 골을 넣으면 다 같이 환호하고 찬 공이 골대를 맞으면 똑같이 탄식한다. 축구가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서로 호흡을 맞춰 공을 몰고 질주하는 모습이 광활한 초원에서 힘을 모아 짐승을 사냥하던 원시의 야생 본능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산에 나무가 없던 어린 시절, 동네 뒷산에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여 즐기던 토끼사냥이 떠오른다. 온 산을 뒤져서 토끼 한 마리라도 잡으면 마을은 온통 축제 한마당이 됐다. 축구통해 평등협동의 힘 깨달아 월드컵처럼 국민 모두 다시 뭉쳐야수 만 명이 들어가는 둥그런 경기장에서 응원을 하다 보면 황인, 흑인, 백인 모두가 색깔을 떠나 인간으로써의 희로애락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는 연대와 일체감의 흥분을 확인할 수 있다. 축구를 통해 평등의 가치와 협동의 힘을 깨닫게 되고 분열과 대립의 족쇄를 끊게 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세계인의 일원임을 알게 된다. 축구는 스포츠의 꽃이다. 그래서 강대국이니 군사대국이니 하는 나라의 경쟁질서는 월드컵 앞에서는 의미가 없다.세계적인 팀을 상대로 한국의 매운 맛을 보여 주고 오겠다던 우리 태극전사들이 원정사상 최초로 16강이라는 위업을 이뤘다. 월드컵 16강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다. 축구의 아름다움은 공격 축구에서 나온다. 우리 태극전사들은 공격 축구의 기량뿐만 아니라 경기운영 태도도 성숙한 자세와 기품을 보여주었다. 8강 문턱에서 최선을 다한 패배로 국민을 감동 시켰다. 스포츠의 진짜 묘미는 또 다른 기회가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제 한국 축구는 다음 월드컵을 대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총체적이고도 근본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세계적인 선수를 양성하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붉은 악마들은 광장에서, 백사장에서, 도시의 이쪽 저쪽에서 목이 아프도록 응원했다. 투병중인 환자도, 농성중인 노조원들도 하나가 되었다. 월드컵 축구만큼 우리를 하나로 모으는 사건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방선거후 정치가 국민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나라가 이념으로 갈라져 있다. 임진왜란시 사색당쟁으로 흩어지고 갈라졌어도 전쟁이 나자 전 국민이 의병으로 나서 한 뜻으로 뭉친 경험이 있는 우리 민족이다. 축구가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듯이 우리에게는 하나를 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바위를 뚫는 파도소리처럼 우렁찬 합심의 소리를 만들어 보자. /박무웅 시인

시민과의 소통 방식을 개선해야

지난 1일부터 새 단체장들의 지방자치가 시작됐다. 이전에 있던 거창한 취임식 대신에 간소하게 그리고 장식물들을 대폭 줄여서 시작한 곳이 많아지고 있다.이번 선거에서 예측하지 못한 야당 우세가 들어나자 정치계는 물론 사회 여러 분야에서도 당황스러워 했다. 민심 혹은 여론이라는 게 평소 신문 방송을 통해 들어나야 하는데 숨어 있던 큰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는 데 대한 당혹감이라고 하겠다. 우리의 정치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선택으로 시작된 정권교체는 우리 정치수준을 한 단계 높여 놓은 게 사실이다. 자칫 앞으로는 행정능력으로 단체장을 심판하는 게 아니라 주민의 기대욕구에 부응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갈아치우는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다. 이런 정치적 혼란 속에 정치인이나 단체장들은 우선 시민을 상대로 한 소통의 방법을 배우고 스피치 개선도 이뤄야 할 것이다.단체장들, 행사 군더더기 줄이고 첫째, 수많은 의례 행사에서 허식을 없애야 한다. 지난 6월19일 625 60주년 평화를 기리는 평화 콘서트가 임진각 평화누리 야외에서 있었다. 행사를 주관한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의 대표와 함께 지역 시장, 농협 사장 등이 입장하는데 미리 의자에 앉아 있던 한 관객이 앞이 안 보이니까 얼른 앉으세요라고 소리치자 다른 사람들이 동감입니다라고 호응했다. 지금도 작은 지역 행사에 가보면 느낄 것이다. 행사에 참석한 시장, 구청장은 물론 시구의원에 온갖 관련 단체장까지 소개하는 데 행사 시간의 반을 차지하고 만다. 참석한 시민들이 참을성이 있더라도 마음으로 그걸 받아드리겠는가.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행사를 이어 갈 수는 없다. 차라리 구의원이 차 한 잔이라도 직접 들고 다니면서 식에 참석한 사람들과 대면 접촉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겠는가. 많은 지방의 문화행사도 그 포맷을 바꿔야 한다.둘째, 정책 홍보는 물론 스피치에서도 수사학을 고려해야 한다. 말이 짧을 수록 좋다는 건 진리다. 요즘 연설들도 점차 짧아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정치는 진리를 설파하는 게 아니고 많은 사람을 설득해야 하니까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이 대통령 취임 연설은 36분이었고 오바마 대통령 연설은 18분이었는데 긴 이야기는 자칫 정책설명이 되고 만다. 취임식은 정치 철학을 보여주는 시간이 아닌가. 일상으로서의 여러 지역행사는 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진대 그때는 연설에 유머를 갖추어 주민의 마음속으로 접근해야 한다.셋째, 정치인이나 단체장은 희망의 비전을 제시해 줘야 한다. 정치인이나 행정가는 위임을 받은 사람으로서, 그 집단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국회 상임위에서 보면 의원은 장관에게 실무 과장이 할 일을 묻고 그 대답은 장관이 아니라 함께 온 국과장들이 대신한다. 무슨 사업을 한다면 그 사업의 필요성과 효율성 같은 원칙에 대해 소신을 밝히면 되는 것이지, 입찰 흥정하듯 구체적인 숫자를 나열하는 비난과 추궁의 방식은 달라져야 한다. 비전을 통한 소통이 이뤄지면 결국 사회 통합에 기여하는 일이다.시민과 한마음돼 희망 밝혀야지난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 보여준 800여만 붉은 악마의 시민 에너지는 이어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집회며 여러 시민단체의 활동, 그리고 선거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정책가나 정치인은 시민들의 마음을 항시 읽고 그에 맞는 새로운 소통방식으로 다가가야 한다. /김광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우리 축구대표팀이 남아공 월드컵 16강전에서 패배를 함으로써 지난 2주동안 우리를 열광케했던 축구열기는 장맛비와 더불어 약간은 식은 듯 하다. 비전문가 입장에서 패배원인을 굳이 따진다면, 아마도 선수들이 너무 잘 하려고 한 노력이 오히려 패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초반 실점의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서 더 잘하려고 하다 보니 기회가 와도 주저하게 되고 완벽한 기회만을 찾았다. 그것보다는 오히려 과감한 시도를 더 많이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번 축구경기와 비슷하게 너무 많아서 또는 너무 잘하려다가 오히려 결실이 적은 정책들이 종종 있다. 그중 하나가 아마도 청소년복지지원법에 의거해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설치 운영하는 청소년 쉼터가 아닌가 생각된다. 청소년 쉼터는 가출청소년의 일시적인 생활지원과 선도 및 가정사회로의 복귀를 지원하기 위한 시설로서, 상담치료 등의 서비스 제공은 물론, 검정고시 준비, 학업지도 교육, 경제교육, 문화체험학습 등의 자립지원 또는 진로지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많은 프로그램 제공이 오히려 害그러나 제공되는 수많은 프로그램이 가출 청소년들에게 어떤 의미일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청소년 쉼터를 찾는 청소년의 상당수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상처를 받은 아이들이기 때문에 심리정서적인 면에서 취약한 상태이다. 또한 이들 대부분은 즉흥적이고 유흥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이 있고 자립의지나 진로에 대한 동기부여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와 같은 이들의 관심과 요구가 고려되지 않은 채, 많은 프로그램만 제공된다면, 청소년 쉼터는 결과적으로 쉼터를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청소년들이 오히려 기피하는 시설이 될 수 있다.실제로 가출 청소년의 증가와 더불어 청소년 쉼터도 증가하고 있지만, 청소년 쉼터는 문제 청소년으로서 가출 청소년을 수용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기존의 쉼터가 귀가조치를 목적으로 보호나 양육 등의 기능만을 수행해왔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범죄에 노출돼 있는 노숙 및 배회청소년, 이른바 거리 청소년의 보호역할을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여기서 청소년 쉼터의 기능보완이 요구된다. 즉, 청소년 쉼터는 보호와 양육의 기능과 더불어, 거리 청소년의 기본적인 생존권(숙식)을 보호할 수 있는 기능도 병행돼야만 한다. 이러한 청소년 쉼터의 기능 전환을 통해 거리 청소년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청소년 문제, 즉 폭행 및 절도, 성매매 등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청소년에게 필요한 쉼터 돼야또한 시설적 측면에서, 기존의 청소년 쉼터는 상담 및 진로교육 등의 보호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시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의 쉼터가 되기 위해서는 이들의 흥미와 관심, 열정과 개성을 펼칠 수 있는 공간(컴퓨터 활용공간, 놀이공간 등)이 요구되며, 또한 거리 청소년의 특성상 다양하게 나타나는 스트레스와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시설(헬스장 등 운동시설)이 필요하다.너무 많은 것을 제공하기 보다는 청소년 쉼터를 필요로 하는 청소년의 특성에 대한 고려와 이들의 관심과 요구가 반영된 시설로 기능이 전환될 때, 가출청소년의 자발적 방문을 유도할 수 있으며 가출로 인해 발생되는 청소년 문제를 적극적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정책은 때때로 너무 많은 것보다 오히려 적은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최순종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

보이스 피싱

수원에 사는 50대의 김모 여인은 지난 5월 한 남자로부터 아들이 교통사고로 다쳤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그 후 그 남자는 재차 전화를 걸어 아들이 교통사고 난 것이 아니라, 내가 납치하고 있다. 돈을 입금하면 아들을 풀어주겠다는 말을 했다. 김 여인은 이 남자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은행구좌에서 폰뱅킹의 방법으로 남자가 불러주는 은행 구좌로 500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거짓이었다.또 수원에 사는 40대의 홍모씨는 지난해 7월 인터넷 메신저로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유모씨와 대화를 하다 급히 돈이 필요하다는 말에 200만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홍씨와 대화한 자는 유씨의 아이디를 해킹한 다른 사람이었다.권력기관 사칭에 속는 피싱 사기지난 2004년 국내에 상륙한 소위 피싱(Phishing)은 개인정보와 낚시를 뜻하는 합성어로, 전화 등으로 개인 정보를 불법으로 알아낸 뒤 이를 이용하는 금융 사기 수법이다. 이는 이메일과 가짜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한 일반 피싱에서, 보이스 피싱, 인터넷 메신저 피싱으로 진화해 왔다. 지난 한 해 보이스 피싱에 의한 피해건수는 2만619건, 피해액은 2천36억원에 이르고, 메신저 피싱의 경우도 피해가 4천863건, 79억여원에 이른다. 피해자들이 순진해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2007년 5월 지방의 한 법원장이 보이스 피싱으로 6천만원을 사기당했다는 보도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피싱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고, 송금받은 은행 계좌 정보 열람이 안돼 일반 형사범죄처럼 수사기관의 수사만으로는 그 피해를 회복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우선 경찰 등 수사기관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피해액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범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하거나, 송금받은 계좌 명의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범인은 자신의 은행 계좌가 아니라 노숙자 등의 계좌, 소위 대포통장을 이용해 돈을 송금받아 피해자 입장에서 범인을 거의 알 수가 없다. 간혹 범인을 알아내도 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피해자로서는 돈을 송금받은 계좌 명의자를 상대로 가압류를 신청하고,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피싱사건은 피해액이 대부분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의 소액이라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선임해 구제받기가 힘들다. 그리고 법무사도 그 권한의 한계상 피싱사건을 하기가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돈을 송금받은 계좌의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소 제기와 동시에 법원에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을 별도로 신청해야 하는 등 소송기술상의 문제로 피해자 스스로 소송하기에는 더욱 어려움이 많다.검경국세청 등 심부름꾼 인식돼야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는 피해를 막기 위한 기관 간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보도자료를 냈고, 지난 1월 경기일보에서는 끊이지 않는 피싱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 간 적극적인 공조가 필요하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경찰, 검찰, 은행, IT업체, 금융감독원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수원지부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4월까지 총 64건의 법률구조를 했고, 현재도 수십 건의 피싱 피해 법률구조를 하고 있다.피싱 사기가 근절되기 위해서는 검찰청, 국세청 등 소위 권력기관의 직원이라고 사칭하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하는데, 아직도 상당수 사람들은 이 같은 권력기관이라면 지레 겁을 먹는 현실이 너무나 아쉽다. 언제쯤이면 권력기관으로 인식된 이런 기관들이 심부름꾼 기관으로 불릴지 기다려진다. 그때쯤이면 피싱 사기도 상당수 없어질 것이기에. /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사회적 자본 발전시키기

62 지방선거가 끝나고 정치인들의 경쟁과 다툼 역시 끝이 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선거를 통해 민심은 살아 솟아오르는 샘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샘물이 모인 강줄기의 위력은 무서웠다. 민초는 바다이고 권력자는 바다에 뜬 배라는 고사대로 민심에 풍랑이 일면 배를 뒤집을 수 있음을 입증했다. 선거가 끝나니 한국 민주주의가 한결 성숙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후진국형 선거사고는 눈에 띄게 줄어 들었다. 선거 결과를 놓고 너무 밋밋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용히 마무리 되었고 패자 역시 겸허한 반성이라는 말을 달고 다닌다.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긴장과 갈등 국면을 하루빨리 접고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자본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지방선거 갈등 국면 접고나무에 따라 잎이 다르고 열매가 다르듯이 우리 인간 또한 모두가 다르다. 물론 이 세상에 영속하는 존재도 없다. 어느 시대에나 찬바람은 불고 낙엽은 떨어진다. 사회적 자본이 사람들이 모여서 어울려 사는 방법이고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근간이라면 서로의 행복과 복지를 위해서 양보하고 희생하고 예절을 지켜야 한다.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분명 신뢰다. 신뢰가 없으면 어떤 역사도 발전시킬 수 없다. 타인이 나에게 손해를 준다고 생각한다면, 거래란 있을 수 없고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상호 신뢰 역시 생기지 않는다. 신뢰는 정직하고 공평한 관계에서 샘솟듯 일어난다. 그것이 자본사회의 도덕이다. 실력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가진 자와 모자란 자가 갈등이 있어도 기본적인 사회규약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좋은 관계로 발전한다. 젊은이들이 영어와 컴퓨터를 잘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자본인 신뢰의 가치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신뢰가 불러오는 사회이익은 포도나무에 포도송이가 달리듯이 먼 훗날 보답으로 돌아온다. 이음새 하나가 천년을 지탱한다고 했다. 나사못 하나가 자동차를 끌고 가고 100층 빌딩의 전자 빔과 빔들이 시간의 마모를 지탱한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열매로 맺어지기 위해서 신뢰를 바탕으로 정직한 사회인이 되어야한다. 현실에 면피하는 친구보다는 진실을 밝혀주는 친구가 값지다. 약속한 친구에게 출발도 안 했으면서 지금 가고 있어, 차가 밀려서라고 듣기 좋게 말하는 것이 요령이고 철든 것은 아니다. 우리는 중요한 것부터 지키는 것이 아닌 먼저 한 약속을 지키는 룰을 가져야 한다. 신뢰 바탕으로 사회발전 이끌어야사람 관계란 것이 때로는 사소한 계기로 깨져 버릴 때가 있다. 참다운 용서는 내 머릿속에서 먼저 미움과 섭섭함을 빼내는 것이다. 우리사회는 친지와 지인에게 유독 친절한 문화가 있다. 한국식 배려다. 그러나 진정한 배려는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나 양보하고 친절해야 한다. 사회에는 내 물건과 남의 물건과 우리 물건이 있다. 임자 없는 물건은 나의 물건이 아니다. 도덕은 사람과의 관계를 위한 결단이다. 나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타인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 손해 역시 영원하지 않다. 큰 시야로 보면 세상에는 공짜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 사회적 자본인 신뢰를 발전시키고 후손들에게 연습시켜야 한다. 그래야 보다 풍요롭고 가치로운 한국사회를 기대할 수 있다. /박무웅 시인

축구는 즐기는 것이 우선

오늘부터는 월드컵 주간이다. 11일 금요일에 시작해 7월12일까지 계속된다. 주말 토요일 저녁 8시 반에는 B조 한국 대 그리스전이 열린다.축구의 국가별 실력은 무엇에 비례할까. 경제력일까, 인구 순일까, 축구 기술 수준일까. 다 옳은 말이다. 3가지 요소가 다 갖춰져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그 나라 사회와 문화 시스템도 일정 수준 이상 돼야 한다. 중국의 예를 보면 알 수 있다. 인구와 경제력이 세계 1, 2위다. 그런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 51개로 종합 1위를 한 나라가 축구는 왜 안 되는 것일까? 바로 사회 시스템이 아직 유기화돼 있지 못하다는 증거가 아닐까.한 국가의 스포츠 발전에도 단계가 있다. 처음에는 혼자 하는 경기, 이를테면 수영이나 다이빙, 육상에서 맞서서 하는 유도나 권투에 집중한다. 그러다가 서로 떨어져 하는 탁구나 배구 등을 거쳐 팀으로 맞붙어 하는 농구나 핸드볼 등 복잡한 경기로 발전해 간다. 그 정점에 축구가 있다.축구는 그 나라 문화 수준 닮아축구는 각 11명 씩 22명이 90분 내내 쉬지 않고 움직여야 한다. 문지기도 그냥 서 있는 것 같지만 수비 위치를 조정하고, 자리 이동을 하고 바쁘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축구는 그 나라 사회의 안정도나 문화 수준을 닮은 것으로 보인다. 그 나라 사회가 움직이는 모습이 축구에 반영된다고 보인다. 개인 기술과 협력의 전술 등은 단지 축구만을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 시민이나 사회 즉 국민이나 축구 팬들의 자율적 호응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우리나라는 원정 16강을 이루어 낼까. 지난 2002 월드컵에서 4강을 했으니 16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지만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2002년에는 선수들이 1년간 틈틈이 집중 훈련을 했다. 이번에는 그렇지 못했다. 바로 해외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해외파는 우리나라 축구 실력이 늘어났다는 증거가 되지만 합동 훈련 시 소집이 제때 되지 않는 약점이 있다. 축구의 선진국이라는 잉글랜드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돈이 우선 되는 프로여서 합동 훈련보다 자국 리그 경기를 더 중히 여긴다. 그리고 몸값이 높다 보니 시합 시 몸을 사리기도 한다. 그리고 이따금 선수가 감독보다 우위에 있어서 조직적이지 못한 때가 있다. 그러니 다른 중간 실력의 국가 팀이 오랫동안 합동 연습을 하면 좋은 실력을 보여줄 수도 있다. 1998년의 크로아티아나 2002년의 한국 그리고 터키가 그렇다. 세계 축구 수준은 16강 이상과 그 이하로 나눌 수 있다. 16강 이상으로 올라가면 실력과 운이 함께 작용한다. 우리 축구가 걱정 없이 16강에 들어가려면 프리미어에서 뛰는 선수가 20여명은 더 넘어야 한다. 그런 중에서 3분의 2를 고르고 그만큼 높아진 국내 선수에서 3분의 1을 골라 팀을 구성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번에는 해외파가 10명이라고 하지만 프리미어 리그 선수는 3~4명에 지나지 않으니 조금 더 축구의 인프라를 키워야 할 수준이다.팀 성패보다 경기 자체를 즐겨야축구는 스포츠다. 열 번 지다가도 한 번 이기면 그것으로 기분이 좋은 것이다. 건강으로 걷기를 강조하는 시대에 단조로운 걷기보다 조기축구라도 즐기는 사람이 진정으로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으면 관전 자체를 즐기는 것이 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도 기왕이면 한 사람의 팬으로서 우리 팀에 직간접적으로 성원을 보내면 선수들이 더욱 힘을 내지 않을까. 공은 둥그니까 승리를 기원하는 국민의 몫을 더하자. /김광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

정의의 권력

지난 주 천안함 사건의 원인에 대한 민관합동조사단의 공식적 발표와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함으로써 두 달 이상 지속돼 온 침몰 원인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혼돈은 우선 일단락 정리된 듯하다. 그러나 정부의 공식적 발표에 대한 각계계층의 입장표명을 살펴보면 왠지 씁쓸함이 남는다. 이는 국가의 존위를 결정지을 수 있는 사안에까지 개인 또는 특정 집단의 (이기주의적)근거 없는 주장이 무분별하게 보도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다. 여기서 필자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진보진영과 보수진영의 입장차이를 다시금 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천안함 사태는 남북관계의 긴장을 불러온 정부의 실패한 대북 정책의 결과라는 야권의 주장과 같은 정치적 논쟁에 또 하나의 의견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여기서 우리는 정쟁(政爭)에 대한 논의보다는 의사표현의 자유와 그에 대한 책임이라는 아주 작은 원칙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 사회적 사건에 대한 (예를 들면 정치적 입장에 따라)관점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안에 대한 관점, 즉 한 사건을 바라보는 출발점은 다를 수 있지만, 주장에 대한 근거는 반드시 논리성, 객관성, 타당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천안함 사태의 원인규명을 위해 군 관계자뿐만 아니라 (여야에서 추천한)민간인까지 포함해서 조사단을 구성했고 더구나 객관성에 대한 의문을 불식시키기 위해 외국 전문가까지 포함, 조사했다. 중립적으로 구성된 그들의 조사는 과학적이고 명백한 증거제시를 통해 북한의 도발이라고 결론지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을 비롯한 대부분의 국제사회가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인정하고 있고 최근에는 중국과 러시아 역시 조사결과를 인정하는 분위기다.그러나 우리사회의 야당과 진보단체 지식인이나 지도층 인사들은 어떠한가. (물론 일부이긴 하지만)객관적인 물증을 거부하고 의혹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어 안타깝다. 한 동양철학 교수의 말처럼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정부의 발표가 설득력이 없는 가설적 추론에 불가하다면, 과연 본인들은 정부의 발표에 반론을 펼 수 있는 논리근거를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해 모든 천암함 관련 정보가 차단돼 있고 또한 정부가 모두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반증을 할 수가 없다라고 할 것이다. 이는 아마 가장 쉽고 편한 대답임과 동시에 가장 무책임한 답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식인의 독단이고 오만이다. 책임있는 지식인의 주장은 명확한 논리(논리적 정의)나 검증과 근거(실증주의적 정의), 이것도 아니면 최소한 사회구성원이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규범적 정의)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한 사안에 대한 판단이나 결정을 할 때, 우리는 전문가(지식인)의 견해와 충고를 따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보다 그 사안에 대해 더 많은 지식과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은 우리의 것보다 더 큰 힘을 갖는다. 아니 우리가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이것이 바로 정의(定義Definition)의 권력(Power)이다. 그러나 정의하는 권력은 책임이 수반돼야만 하고, 책임을 인식하지 못한 정의는 권력남용이다. 정의는 주관적 판단이 아니라 논리와 근거에 입각한 객관적 사실에서 도출돼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지식인의 책임인 것이다. /최순종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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