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생각한다

부산의 보수동 책방골목을 다녀왔습니다. 젊은 부산을 상징하는 광복동에 인접해 있습니다. 625피난시절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보수동 책방골목은 이제 60년의 연륜을 쌓고 있습니다. 해마다 가을이면 책은 살아야 한다는 슬로건을 걸고 다양한 문화축제를 펼칩니다.좁은 골목에 어깨를 하고 60여 서점이 늘어서 있는 보수동을 저는 고등학교 시절 열심히 찾아가곤 했습니다. 산처럼 쌓여 있는 책들, 서가에 촘촘하게 꽂혀 있는 수많은 책들을 펼쳐보곤 했습니다. 저 책들을 온통 내 자취방으로 옮겨 놓고는 그 책들 속에 파묻히고 싶었습니다. 책을 잘 사지도 않으면서 너무 자주 찾아가 책을 뒤적거려 책방 주인의 시선이 두렵기도 했습니다. 그 보수동 책방들의 풍경은 저의 가슴과 머리에 깊고도 아름답게 각인되어 있습니다.보수동 책방골목의 헌책들과 고서들이 저를 흥분시켰습니다. 보수동 책방골목의 존재와 가치가 새삼 경이롭게 다가왔습니다. 전쟁과 피난의 시절, 임시 수도 부산에서 책을 팔고 책을 읽는 그 풍경이란 슬프고도 아름답지 않습니까.문화와 정신이 깃든 책방거리 불현듯 달려간 보수동 책방골목은 저를 다시 학창시절로 안내했습니다. 헌책의 향기가 저를 유혹했습니다. 일요일 오후, 사람들이 이런저런 책방들에서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맞은편 책방에서 어린 아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아버지의 흐뭇한 모습을 바라다 볼 수 있었습니다.보수동에서 35년째 충남서점을 경영하는 남명섭 사장과 인사했습니다. 2009년도 보수동 책방골목 축제를 이끌기도 한 그는 좋은 책 펴내는 한길사 사장님이라면서 저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한길사가 80년대에 펴낸 마르크 블로크의 봉건사회와 하우저의 예술의 사회학 등이 꽂혀 있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책들을 서점에서 만나는 즐거움이 유별합니다. 한길사의 헌책들은 잘 나오지도 않지만 인기목록이라는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올해 여덟 번째를 맞는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축제는 자리를 잡아가는 듯 했습니다. 부산시민들이 아끼는 축제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서점인들과 문화인들이 손을 잡고, 부산시도 응원합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찾는 보수동 책방골목은 그래서 낭만적인 축제의 공간, 열려 있는 문화의 공간이 됩니다.저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청계천 책방거리를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아니 저뿐이겠습니까. 청계천 책방들은 우리들의 지식의 고향이었습니다. 이 땅의 젊은이들은 책을 싸게 공급해 주는 청계천 책방들에서 꿈을 키웠습니다. 미래를 설계하는 책 체험책 읽기를 했습니다.여러 해 전 새 청계천을 만들면서 서울시는 그 서점들을 살려내지 못하고 없애버렸습니다. 문화 민족문화 국가임을 그렇게 소리 높이 외치면서, 막상 문화와 교양의 상징이자 실체라고 할 수 있는 책방들을 몰락시켰습니다. 저는 그때 청계천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책방거리를 온존시켜야 된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책의 문화 책방의 거리는 개발의 논리에 사정없이 무너져내렸습니다. 이 땅의 정신사에 나름대로 큰 의미를 가지는 청계천 책방거리의 그 빛나던 풍경은 지금 우리들에게 그리운 기억으로만 존재합니다.개발논리 휩쓸리지 말고 보전해야책을 만드는 파주출판도시를 독자들과 함께 책을 만나는 공간으로 진화시키는 일을 출판계 동료들과 기획하면서, 세계의 책방마을과 책방거리를 다시 주목하게 됩니다. 영국 웨일즈의 책방마을 헤이온와이를 다시 다녀오고, 도쿄의 간다 책방거리를 새삼 살펴봅니다. 인류정신문명의 위대한 유산을 담고 있는 고서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토론을 펼칩니다. 보수동 책방 골목이 그래서 더욱 의미있게 다가옵니다.한 권의 책, 하나의 책방은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문화와 정신의 힘입니다. 세계의 수많은 도시들은 책방거리를 정책으로 보호합니다. 책방들이 존재하지 않는 도시는 빈 깡통 같은 것입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책방거리 만들기는, 보다 차원 높은 문화공동체의 논리와 당위를 갖습니다. 책 쓰고, 책 만들고, 책 읽는 문화공동체를 구현하는, 문화 인프라로 구현되는 프로그램입니다. 보수동의 책방골목의 존재와 발전을 현장 답사하면서, 파주출판도시 책방거리를 만드는 출판인들의 문제 의식을 다시 확인합니다. 김언호도서출판 한길사 대표ㆍ책축제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도깨비 방망이

남이섬에 있는 내 작업실에는 도깨비 방망이 하나가 있다. 십오년 전 쯤 충무의 어느 허름한 기념품 가게에서 구한 나무방망이다. 길이가 1미터 쯤 되는데 얼마나 풍상을 겪었는지 옹이가 수천 개는 족히 박혀있고 모양새는 소시지처럼 살짝 휘어 있다. 아무 쓸모도 없는 이 나무방망이를 삼만오천원이나 주고 샀다. 생김새는 여지없이 도깨비 방망이다. 일이 잘 풀릴 땐 자중하라고 뚝딱!, 안 되는 일이 많을 땐 걱정 말라고 뚝딱! 도깨비 방망이에는 이런 글을 써서 천정에 매달아 두었다. 살아가다 보면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다. 진학할 때, 취직할 때, 결혼할 때, 여행할 때, 심지어 점심식사를 할 때도 자장면 먹을까 짬뽕 먹을까?를 두고 잠시나마 망설인다. 비 예보가 있는데 우산을 들고 나갈까, 두고 나갈까? 일상에서 가장 자주 만나는 것이 선택의 길이다. 선택의 순간은 매우 짧지만 선택을 위한 판단과 고민의 시간은 길다. 매일 뉴스를 장식하는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도 선택의 결과물이다. 잘된 선택은 성공, 그릇된 선택은 실패란 결과로 남는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두려움과 희망으로 마음이 두근거리는 이유는 성공과 실패를 예측해야 하기 때문이다.선택의 지혜를 주는 좌우명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판단과 선택기준이 있다. 전공이나 직업, 종교, 조직, 정파의 이념에 따라 기준도 다르다. 나름의 좌우명을 새겨두기도 한다. 어느 날, 라디오 인터뷰를 하는데 느닷없이 당신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좌우명이 없지만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짧게 대답했다. 좌로 가나 우로 가나 만나는 건 운명이다. 그냥 모두 딛고 넘어 간다. 선택의 기로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말한 것이었다. 남이섬 대표를 맡은 이후 숱한 선택의 갈림길을 만났다. 천박하지만 돈 되는 유원지를 유지할 것이냐, 사업성은 적지만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관광지로 바꿀 것이냐? 시설을 늘리느냐 자연을 살리느냐? 눈앞의 이익이냐, 미래가치냐? 그러나 선택의 시간은 언제나 충분치 않다.조직사회에서 리더의 선택은 결재란 이름으로 남는다. 사업의 성패는 물론 조직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임기직 리더들은 백년대계를 중시하면서도 단기효과에 치중되는 경우가 더 많다. 당년도 성과가 리더의 평가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공공기관들이 단기적인 전시효과 중심의 반짝 사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한국도자재단이 전년도 경기도 내 공공기관 평가에서 꼴찌를 했다. 단기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중장기 정책사업 기반조성을 시작했으니 당연한 결과다. 게다가 성과를 계측할 수 없는 공원 녹화사업까지 시작됐다.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천광주여주의 도자문화 시설물은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관광 휴양지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예측된다. 선택의 결과를 어디 집중할 것인가? 대개 집중력은 목적지를 향하게 마련이다.도깨비 방망이는 도처에 있어성동격서(聲東擊西),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병법의 하나다. 나무를 심는 조경사업과 도자진흥이라는 문화사업은 다르다. 세계도자비엔날레라는 국제행사와도 거리가 멀다. 하지만 아스팔트 광장에 전시관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다면 누가 찾을까? 서쪽이 없다면 동쪽에서 뜨는 해는 어디로 질까? 목표지점의 반대편에 집중해야 하는 지금은 융합의 시대다. 전혀 다른 이질문화가 서로 섞이고 재분해 융합되어 제 3의 콘텐츠로 재탄생하고 있다. 사례를 들 필요도 없을 만큼 빠르고 도깨비처럼 변하고 있다. 역사와 전통의 보존이 변화를 거부할 명분이 될 수는 없을 터이다. 시대감각의 변화에 용해되지 못하거나 나이 먹고 경험 많다고 고집만 부린다면 자신도 모르게 꼰대라는 굴레를 뒤집어쓰게 될지 모른다. 변화를 따르는 건 선택이고 집중력은 성동격서의 자신감을 실현시키는 도깨비 방망이다. 강우현 남이섬 대표이사

사라지는 야생화들

선인들도 중복, 말복은 꽃사태라고 그랬다. 어딜 가나 꽃들이 있다. 도심 뜨거운 아스팔트에도 구멍을 뚫고 이름 모를 한 송이 풀꽃이 올라온다. 언제부터인가 야생화를 보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야생화 전시장은 물론 서산 신두리 모래사구도 몇 번이나 찾아갔었다. 지천으로 깔려 있는 꽃냉이와 야생화들. 네티즌들이 즐겨 읽는다는 꽃냉이라는 시도 신두리를 다녀와서 쓴 시다.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꽃들, 그중에서도 야생화의 의미는 작품 속에서 중요한 이미지로 남는다. 초등학교 때 읽은 폭풍의 언덕이라는 소설은 재미도 있지만 내겐 감동적이었던 소설이었다. 그 소설의 내용 중에서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폭풍의 언덕에서 히스클리프가 캐시에게 매일 꺾어다 바친 야생화 히드꽃이었다. 그 히드꽃에 대한 나의 집착은 대단했다. 식물도감, 식물사전, 백과서전을 찾아가며 히드꽃을 깊이 알기를 원했었다. 작품이 감동적일수록 야생화 히드꽃에 대한 생각은 멈출 수가 없었다.문학작품에 등장하는 우리꽃들파리대학 초청 시인으로 유럽에 갔을 때 영국을 들렸다가 작품 폭풍의 언덕의 작가 샤론부론테의 집과 소설의 배경이 되고 있는 폭풍의 언덕을 방문했었다. 그런데 폭풍의 언덕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히드꽃은 우리나라 개망초꽃 정도도 못 되는 볼품없는 흔한 꽃이었다. 이런 꽃이 문학작품 속에 등장할 때는 대단한 의미를 지니게 되다니 나는 일생 동안 잊을 수 없던 히드꽃을 싱겁게 만나고 돌아왔다.한국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야생화들은 엄청나게 많다. 그 야생화들이 주는 감동 때문에 요즘은 산에 있던 것들이 집으로 옮겨다 심겨지는 야생화들의 수난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야생화에 대한 감동이 거의 없다. 야생화에 대한 감동이 없는 그 젊은이들이 쓴 작품에도 야생화는 없다. 그저 눈에 쉽게 뜨이는 서양꽃들의 이름만 가끔씩 등장할 뿐이다.젊은 작가들은 야생화에 대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자연의 깊숙한 곳이나 버려진 풀 사이에 도움도 없이 혼자 피고 지는 야생화를 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작가가 쓴 감동이 없는 대상을 더구나 독자는 더더욱 감동을 느낄 수 없지 않을까? 문학작품 속에서 그 많던 풀꽃들, 그 야생화의 이름과 사연들이 사라지고 있다. 시인들이 소설가들이 붙잡고 써댄 그 많던 풀꽃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그리고 생뚱맞은 외국의 성 이름, 이국의 도시 이름, 외국의 영웅 이름들이 문학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은 거기에 더 흥미를 갖는다. 한국의 참맛도 느끼지 못했으면서 외국에 드나들게 된 해외여행의 급격한 물살을 탄 영향이라고 볼 수도 있다.서양꽃에 가려져 점점 자취 감춰외국의 꽃 이름은 잘 외우면서, 또 여행지에서 메모에 꼼꼼하게 기록까지 해오면서 자기 나라 강산에 수없이 피고 지는 어머니 같은 꽃들의 이름은 모르고 있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이 참으로 이상하다. 야생화 사전이나 식물 사전은 도서관에서도 열람자가 거의 없다고 한다. 나에게 문학 수업을 받았던 문창과 학생들에게도 확인해 보면 야생화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다. 그런데 충북 괴산 추산초등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 손톱에 봉숭아물을 빨갛게 들이는 날을 정해 놓고 행사를 벌였다는 기사를 지면에서 읽었다. 좋은 행사라고 여겨졌다.바람과 햇빛이 특이한 향기를 간직한 야생화. 그 이름에도 깊은 의미들이 새겨진 그런 야생화들이 문학작품 속에서조차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자기의 체취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최문자 시인

유럽의 책방마을 다녀와서

영국과 벨기에 독일을 잠깐 여행하고 왔습니다. 영국 웰즈지방의 책방마을 헤이온와이, 벨기에의 책방마을 레뒤, 독일의 루르 지방 등이 이번 여행의 중요 답사지역이었습니다. 파주출판도시 책방거리 만드는 일과 오는 10월1일부터 치러지는 책축제 파주북소리(PAJU BOOK SORI)를 위한 기획학습 여행이었습니다. 출판도시의 출판인들과 파주시 관계자들이 함께 했습니다.민과 관이 여러날 함께 여행하면서, 같이 모색하는 여행이란 향후 출판도시를 비롯한 여러 문화예술 주체들이 추진하는 프로그램의 질적 내용을 더욱 풍요롭게 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저는 또 지금 진행중인 헤이페스티벌을 영국의 유력신문 텔레그라프가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에 다시 주목했습니다. 헤이온와이가 기획하고 구현해내는 프로그램들을 유력 미디어들이 적극적으로 후원함으로써, 고품격 콘텐츠의 창출이 그만큼 가능해지는 것입니다.선진 문화예술보며 활발한 토론우리 사회에서는 한없이 많은 축제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만, 투입되는 비용에 비해 그 콘텐츠는 사실 안타깝습니다. 헤이온와이를 만들었고, 그 후 고서마을 운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리처드 부스를 만나 책에 대한 그의 철학을 듣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를 파주북소리에 초청하기로 했습니다. 책의 정신과 사상에 대한 그의 육성을 공유해보자는 것인데, 건강이 허락하면 참가하겠다고 했습니다.헤이온와이의 고지도 서점에서 우리는 동해를 한국해로 분명하게 표기한 고지도 석 점을 구입했습니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제작된 이 지도들을 파주중앙도서관에 기증해 보관하기로 했습니다. 이번 여행의 큰 성과라면 성과라 하겠습니다.독일의 기업인 뮬러가 설립한 뮤지엄 홈브로히는 더욱 의미있게 다가왔습니다. 물구덩이 땅을 잘 다듬어 만든 자연 속의 미술관 홈브로히는 소박하지만, 소박하기 때문에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에코뮤지엄입니다.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건축으로 한층 돋보이는 랑엔재단의 미술관이 있습니다. 나토 미사일 기지에 건설했다는 것 자체가 랑엔 미술관의 가치를 올려줍니다. 전쟁을 위한 기지가 평화의 예술공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0월 파주 책축제 세계속 중심되길독일 경제부흥의 상징이자 실체였던 루르 지방의 그 산업시설들이 지금은 문화예술의 공간으로 조성되고 있습니다. 그 석탄공장제철공장의 장대한 공간들이 지금은 박물관미술관음악관책방휴식공간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졸페라인을 중심으로 한 이 일대는 유럽문화도시로 지정되어 1년 내내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이 진행되었습니다.삶의 흔적들은 보존되어야 합니다. 루르 지방의 보존된 산업유산들에서 우리는 또 다른 역사와 정신, 산업과 문화를 체험하게 됩니다. 장대한 산업시설산업유산들은 그 자체가 예술품으로 인식됩니다.DMZ와 이웃하고 있는 파주에 살면서, 남과 북의 분단과 긴장을 상징하는 철조망을 일상으로 보면서, 저는 언젠가는 이것들이 엄청난 문화유산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철조망은 그대로 유지해야 합니다. 저 거대한 철조망의 벽을 보면서 우리는 평화의 정신을 세계로 발신해야 합니다.DMZ의 철조망 벽을 비롯한 전쟁과 분단의 실체들이 존재하는 땅, 이들과 이웃하는 파주출판도시와 예술마을 헤이리. 아시아인들이 함께 펼치는 책축제 파주북소리는 바로 이 한가운데에서 펼쳐집니다. 아름다운 한 권의 책을 우리들 삶의 한 가운데에 놓는 축제로서 파주북소리는 그렇기에 더욱 문화적이고 인문적이며, 보다 예술적이고 평화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뒷모습이 더 아름다운 인생

어느 주일 아침에 예배가 한창 진행 중에 안내위원이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 한 분을 교회 앞자리로 모시고 나온다. 보기에도 몸이 불편해 보이는 모습이 연세가 많으신 뿐만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옆에 앉은 젊은 여 집사님이 성경도 찾아드리고 열심히 예배를 도와드렸다. 예배 시간 내내 열심히 따라 하신다. 찬송 부르는 시간에도 열심히 입술로 읊조리면서 따라 부르시고 설교시간에도 고개를 끄떡끄떡하시면서 아멘도 하신다. 우리 교회는 헌금 시간이 따로 없고 자율이기는 하지만 헌금봉투도 준비를 해 가지고 오셔서 예배 후에 안내위원에게 맡기신다. 예배 후에 새 신자 접견실에서 상담을 했다. 교회에 나오시게 된 동기는 손자가 교회 앞 현관까지 데려다 줘서 나오시게 되었다고 하신다. 성함을 물으니 김달자 연세를 물으니 몰라요 주소는 몰라요 글자도 모르고 성경도 모르신단다. 그저 아는 것은 성함 석 자와 큰 길 건너 빌라 3층에 살고 계신다는 것, 그리고 예수 믿고 천국 가려고 해서 왔다고 하신다. 예배 후에 안내위원이 집까지 바래다 드렸다. 그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꼬박꼬박 나오셨다. 그저 성함만 김 달자 성도님으로 2년 남짓 교회에 출석하셨다. 거의 매주일 빠지지 않으시고 출석하셨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한 시간이 넘는 예배시간 동안 앉아 있으려면 힘도 드실 텐데 전혀 불편한 내색 안 하시고 꾸준히 출석하셨다. 그러던 어느 주일 예배 드리고 가시는 얼굴이 몹시 피곤해 보이셨는데 그 다음 월요일 전에 왔던 뇌경색이 다시 재발하여 종합병원 중환자실에 한 달여 계시다가 지난 17일 급기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장례를 치러 드렸다. 아는 것이라고는 이름 석 자와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는 것뿐이었다. 지방에서 도시에 나와 직장 생활하는 손자 밥해 주시기 위해 와 계시는 동안 교회를 출석하게 되었고 열심을 다해 신앙 생활을 하셨던 것이다. 이름 석자와 예수만 알던 할머니인생은 살아가는 동안 하루해가 지면 돌아갈 내 집이 있어야 한다. 크든 작든 내 한 몸 편히 하룻밤 안식할 가정이 있어야 한다. 한평생 일생을 다 살고 난 후에는 돌아갈 본향이 있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인생은 나그네요 거류민일 수밖에 없다. 하늘의 태양을 우리 육안으로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두 번뿐이다. 아침에 동녘하늘에 붉게 떠오르는 시간과 저녁에 서산으로 붉게 물들이며 지는 시간이다. 한낮에는 너무 밝아서 육안으로 자세히 볼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생 동안 그 사람을 정확히 볼 수 있는 때는 어머니 자궁을 통하여 이 세상에 태어날 때요, 또 한 번은 이 세상에서의 생을 다하고 떠나갈 때이다.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 사람을 가리고 있고 치장하고 있는 것들이 많아 그 사람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천국으로 돌아가던 뒷모습 아름다워사람은 머물다 간 자리도 아름다워야 하지만 떠나가는 뒷모습이 더 아름다워야 한다. 요즘은 성형 기술이 발달해 나이를 감추고 젊게 보이게 하는 기술이 놀랄 만하다. 그러나 성형을 해서 앞에선 모습이 아무리 아름답고 젊게 보이도록 꾸며도 돌아서서 걸어가는 모습은 속일 수 없다. 뒷모습은 성형이 안 된다. 하루해가 져서 돌아갈 집이 없는 이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라. 그 외롭고 적막함이란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까. 일생을 다하고 돌아갈 본향이 없는 인생을 생각해 보라. 그 망망한 길을 누가 동무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으리라는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이 세상 것은 그저 이름 석 자만 기억하고 사셨던 김달자 할머니, 중환자실에 계시는 동안 긴 호흡 몰아쉬며 희미한 정신 가다듬고 몇 번이고 두 눈을 꼭 감아 보이며 어서 천국 가고 싶다고 하셨던 김달자 할머니, 당신은 뒷모습이 더 아름다웠습니다.반종원 목사

유행 건너뛰기

요즘은 서바이벌이 유행이다는 식으로 유행이란 말은 일상에서 가장 흔히 쓰이는 말이다. 시대감각에 따라 사회 전체에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만드는 유행은 전염병에 가깝다. 누군가 무엇인가를 흉내 내며 닮아가는 가운데 쓰나미에 쓸려가듯 서로 감염된다. 사전을 찾아보면 유행이나 전염병이나 신드롬이나 의미는 대동소이하다. 일본과 동남아를 휩쓴 겨울연가, 유럽에서 인기 폭발이라는 케이팝과 브라운관을 들썩이게 나는 가수다, 겨우내 축산농가를 떨게 했던 구제역 등이 유행이고 신드롬이고 전염병이었다.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는 유행은 한 시대의 일시적인 흐름으로 수명의 차이만 있을 뿐, 또 다른 물결에 의해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국가나 공공정책이 유행의 물결에 편승하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자칫하면 정책의 오류를 가져오거나 다수 국민이 피해를 보는 합병증에 걸릴 수도 있다.유행에 감염되는 문화정책예컨대 국회에서 어느 의원이 요즘 케이팝이 유럽 젊은이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는데 정부는 국가 차원에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한다면 해당 국무위원은 뭐라고 답할까? 한류문화 확대를 위한 국가 홍보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이미 관련 기관을 통해 어쩌고저쩌고 라는 답변이 나오고 관련 기관에서는 지원책을 마련하느라고 야단법석을 떨 것이다.또 언제부터 우리나라 지자체들이 문화예술을 중시했다고 저마다 예술촌, 엑스포도 많고 비엔날레도 많다. 텅 빈 콘텐츠 전시관들을 지나치다 보면 한숨도 안 나온다. 문화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산업으로 인식되면서부터 예견된 실수다. 문화의 이름을 팔아 누가 이득을 봤을까?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은 문화산업, 대중적 관심에서 떨어져 있는 예술정책으로 예산을 낭비한 사례를 굳이 들먹일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다.인문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모든 사회현상을 문화라고 하지만 범위를 좁혀 보자. 경기도의 수많은 문화행사 가운데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다. 올해도 71개국에서 1천875명의 작가가 3천362점을 출품, 해마다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2년에 한 번 씩 열리는 비엔날레에는 300만명이나 찾아온다. 옹기 청자 엑스포까지 생기고 도예촌도 여러 곳에 조성된다 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음식점에는 멜라민 밥그릇을 집어던지며 씻을 정도로 도자기엔 관심조차 없다. 생활문화 속에 도자문화가 파고들지 못했다는 얘기다. 행사 따로 생활 따로,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혼이 담긴 우리 도자라는 따로국밥같은 문화행사가 줄을 잇는다.유행 넘어야 미래가 보여문화행사도 유행의 일종이다. 그러나 축제나 행사에 예산을 쓰는 이들은 일시적인 성공에 눈이 멀기 쉽다. 많은 돈을 퍼붓고도 여운이 남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도자축제가 끝나면 도예인들의 삶의 질과 창작환경이 좋아지고 생활문화도 업그레이드되어야 한다. 예술문화와 대중문화의 결합이 전제돼야 한다는 뜻이다.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도자비엔날레가 10년이나 지속되었는데도 한국의 도자문화가 세계는커녕 국내인들에게조차 관심이 없다. 너무 예술행사 또는 이벤트에만 골몰한 탓이 아닐까?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문화예술 행사는 평범한 생활인들에게 예술가의 혼이 스며들게 하여 품격을 높여 준다. 미술행사가 지속되면 집집마다 아름다운 매력이 흘러넘치고, 음악공연이 많은 도시에서는 흥겨운 가락이 활력소가 된다. 올 가을 열릴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는 대중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모양이다. 연례행사를 지속한다는 의무감이나 유행을 넘어 여운을 오래 남기는 한국의 문화유산으로 보여지길 기대해 본다. 강우현 한국도자재단 이사장남이섬 대표이사

사라지는 중도

노나라의 단표라는 사람은 산골에 숨어 물이나 마시고 살면서 세상 사람과 더불어 이익을 꾀하지 않고 나이 칠십이 되어도 그 얼굴빛은 오히려 어린애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굶주린 범을 만나 먹혀 죽었다.장의라는 사람은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을 가리지 않고 분주히 드나들면서 이익을 꾀했지만, 나이 사십에 내열병이 들어 죽었다.단표라는 사람은 안을 길렀지만 범에게 그의 바깥을 먹혔고, 장의는 그 바깥을 길렀지만 그 안을 병에게 먹혔다. 공자도 말했다. 너무 들어가 숨지 말고, 너무 나와 드나들지도 말아라. 마른나무처럼 그 안팎의 중간에 서라.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산층이라는 두꺼운 사회계층이 있었다. 언제나 없어질 것 같지 않게 커다란 의미도 이 사회 경제의 중심부를 지키고 있었다. 직장이나 기관에도 양극을 치닫지 않는 말없는 구성원의 층이 그 직장이나 기관을 지키고 있었다. 정치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양극으로 치닫는 사람을 가생이에 두고 묵묵히 침묵하며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국민들이 여론의 두꺼운 층을 만들며 안정된 중심을 잡아주고 있었다. 양극의 상반된 상황들만 쟁점그러나 요즘 자고 깨면 각종 언론 매체의 보도된 내용들은 양극을 치닫는 격렬한 목소리뿐 그 외에 잘 들을 수 있는 게 없다.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사회사상이 양극의 상반된 상황들만 쟁점이 되고 가운데는 텅 비어있다.자석의 서로 밀고 당기는 양끝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간이라는 부분이 존재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밀치는 힘도 당기는 힘도 중간이 있어야 작동할 수 있다.공자의 말대로 마른나무처럼 그 안팎의(극단적 사실의) 중간에 서주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지난 크리스마스에 한 유명 백화점에 들른 적이 있다. 고객들이 바글바글 대며 모이는 곳은 명품관 주변 아니면 헐값에 판다는 가판대에 싸놓은 상품 주변이었다. 어마어마하게 값비싼 상품(명품)아니면, 시장보다 더 싼, 값이 떨어진 상품 앞에만 소비자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것저것, 싼 것 비싼 것, 고르게 사주던 중산층의 모습들은 어디로 갔을까? 양극을 치닫는 정치 현실에서 이말 저말, 이 논리 저 논리, 잘 들어주면서 그러면서 두껍게 여론을 잡아가던 그 무서운 층들은 어디로 갔을까, 점점 중간은 사라져 가고 있다. 이기심으로 양극화된 자들의 논리, 중도는 비겁하다라는 비난에 밀려 양극으로 밀려나고 있다.얼마 전 어떤 여론기관에서 요청한 중요한 설문 조사지를 받고 응해야 할 처지가 되었었다. 설문 내용을 읽어보니 내 의견을 표시할 부분은 많은 문항에서 삭제되어 있었다. 만일 찬성하신다면 그 이유를 써주십시오. 만일 반대하신다면 반대사유를 써주십시오. 찬성도, 반대도 마땅치 않은 수많은 관심들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 나는 적지 않게 공란을 남기고 설문지를 보내준 적이 있다.예와 아니오 사이에는 무수한 점들이 있다. 이 무수한 점들이 무시된 채 예라는 아니오라는 사실만 중요시된다면 상당히 위험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중간에 서서 잠시 생각해봐야중간에 서서 잠시 생각해보고 이쪽저쪽에 대하여 자세히, 깊이 알아보고 차츰 어느 쪽인가로 가까이 가면서 자기 의견을 실어줄 때 이 사회는 건강하리라고 생각한다. 양극을 치달아 오르면서 서로 국민이 자기편이라고 우기는 정치 현실을 매일 눈앞에 맞대하고 보면서 말없이 가운데에 서있던 많은 자들은 양끝으로 점점 끌려가고 있다.가운데가 점점 비어가고 있다.겉은 물을 따라 순응하지만 속으로 중심을 지켜주는 쉽게 움직일 수 없는, 무시할 수도 없는 잘 무너지지도 않는 예스와 노 사이의 무수한 점들의 집합, 그 중도라는 층이 점점 사라져 위기를 맞고 있다. 이 힘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어떠한 형태로든 회복되어야 할 힘이다.최문자 시인협성대 문예창작과 교수

“어이 친구 막국수나 한사발 하세”

나는 수원에서 오래 살았지만 고향은 강원도 두메산골이다. 강원도 향토 음식 가운데는 막국수라는 음식이 있다. 메밀로 가락을 굵게 뽑아, 삶아서 육수에 만 국수를 말하는데 강원도를 대표하는 향토음식 가운데 하나이다. 그 외에도 내 고향에서는 특이하게 부르는 식품 용어가 있는데 소위 막장이라는 것이 있다. 흔히 막장하면 광산에서 광부들이 들어가 일하는 갱내의 막다른 골목을 말하는데 그 막장 말고 소위 간장, 된장 할 때 일컫는 또 하나의 장을 지칭한다. 막장은 허드레로 먹기 위해 담는 된장의 일종으로 볶은 콩을 갈아서 메주 가루를 섞은 뒤에 소금, 고추가루, 양념 등을 넣고 알맞게 부어서 띄우는 장을 말하는데 색깔로 보면 된장보다는 짙고 고추장보다는 엷은데 맛은 그야말로 막장을 맛 본 사람이나 알 맛이다. 나이 들수록 향토음식 찾게 돼그 외에도 김치 가운데도 막 김치, 파전 고추전 할 때에도 막전이란 것이 있다. 그 중에 빼 놓을 수 없는 것은 요즘에는 대중적인 인기가 상당히 부상한 막걸리라는 것이 있다. 막걸리는 우리나라 고유한 술의 일종으로 농민들이 즐겨 마시므로 농주 혹은 탁주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농촌서 막걸리를 한 사발씩 들이키면 배도 부르고 술기운도 올라서 힘든 줄도 모르고 흥겹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고 했던 시절이 있다. 우리 어린아이들도 모심부름을 하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면 힘들고 하기 싫어서 농땡이를 부리고 있을 때면 막걸리를 걸러낸 술지게미에다가 물을 부어 헹구어서 설탕도 아닌 뉴슈가를 타서 한 사발씩 주면 벌떡벌떡 마시고 얼굴이 벌게 가지고 신이 나서 해가 지도록 논에서 심부름을 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나이 40이 되면 어린 시절 입맛에 길들인 음식을 찾는다고 했던가. 요즘 내가 즐겨 찾고 즐겨 먹는 음식 가운데는 이러한 막국수, 막 김치, 막전들이라는 것들이 되었다. 단순히 음식 맛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그러한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사람들로 인해서 이다. 나는 직업상 사람을 자주 만나고 상담을 한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만남의 시간을 주로 새벽이나 낮 시간을 이용해서 약속하고 만난다. 저녁 시간은 나에게도, 그에게도 가족들과 보내는 소중한 시간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만나는 사람들 가운데는 편하게 만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부담이 되기도 하는 사람도 있다. 아침 일찍 만나는 사람과는 주로 우거지국을 먹고 낮에 만나는 사람들과는 주로 막국수를 먹는다. 우거지국과 막국수를 함께 먹는 사람들은 대부분 편한 사람들이다. 아니 편한 정도가 아니라 막역한 사이, 막역지교들이다. 그냥 막연한 사람이 아닌 막역한 친구들, 언제 어디서고 편하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함께 먹는 막역지교 있어 더 소중나는 나름대로 우거지국의 의미를 붙인다. 우거지는 푸성귀를 다듬을 때에 골라놓는 껍데기를 말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우거지는 友巨志이다. 한마디로 큰 뜻을 품은 벗들과 함께 먹는 국이라는 의미이고 막국수는 莫국수이다. 막역지우와 함께 먹는 국수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나는 莫국수가 좋고 友巨志국이 좋다. 그리고 그것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막역지우들이 있어서 좋다. 어느새 莫국수 집도 단골이 됐고 友巨志국집도 단골이 됐다. 두 집 다 푸짐하게 준다. 곱빼기 그릇에다 가득 담아주는 주방 아주머니도 막역지우가 됐다. 씩 웃으며 내미는 우거지국 집 주인양반의 얼굴에서는 인정이 물씬 풍긴다. 그도 나에게는 막역지교가 되었다. 내 입맛에 길들여진 막역한 내 고향 향토 음식들이 생각나는 것처럼 인생이 나이가 들수록 막국수, 막김치, 막장으로 끓여낸 우거지 국을 함께 먹을 수 있는 막역지교가 더 소중하지 않을까, 어이 오늘 점심에 친구 막국수나 한 사발 하세 반종원 목사

‘Art Road 77’을 아시나요

행주산성을 왼쪽으로 끼고 파주로 가는 자유로를 다녀보셨지요. 넘실대는 한강의 위용이 장관입니다. 우리 국토의 심장과 허리를 관통하여 서해로 달려나가는 한강과 함께 자유로는 일산과 파주 출판도시를 끼고 임진각 평화누리까지 이어집니다.웅장하고 아름다운 한강의 하류와 함께 자유로를 달려보기를 권합니다. 오후 해질녘이 더욱 좋습니다. 석양에 강물이 붉게 물듭니다.날씨가 쾌청하면 행주대교 쯤에서 저 멀리 송악산이 손짓합니다. 역사의 도시 개성을 둘러싸고 있는 송악산이 지호지간입니다. 허연배를 드러내보이는 한강, 우리 산하의 크고 아름다움에 자유로를 달리는 사람들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립니다.자유로는 국도 77번 도로의 한 부분입니다. 부산에서 황해도 개성을 잇는 77번 국도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일반 국도입니다.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헤이리에서 문화예술공간을 갖고 일련의 문화예술 행사를 기획하고 시행하는 친구들이 자유로를 Art Road 77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지금 이런 저런 문화예술 행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유로와 그 주변을 예술의 길, 미술의 길로 만들어 가자는 것입니다. 현재 제3회 아트로드 미술제가 헤이리에서 열리고 있는데, 젊은 미술가들과 중견 미술가들의 작품을 헤이리의 이 공간 저 공간에서 보여주는 미술제입니다. 작품이 팔리면 그 이익금을 국제아동구호기구인 Save the Children에 기부합니다. 헤이리 회원들과 미술가들이 손잡고 펼치는 문화운동입니다.10년도 더 되었습니다만, 헤이리의 기획작업을 한창 진행하면서 우리는 자유로 문화예술벨트라는 주제를 만들고 그 실현을 도모하는 토론을 여러차례 하기도 했습니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파주 땅에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을 구현함으로써, 예술적이면서 평화적인 일련의 실천이 가능하다는 인식을 도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토론을 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개념의 마을 헤이리를 하나의 문화공동체 운동으로 진행시켰습니다.Art Road 77이라는 이름을 붙인 미술제 뿐만 아니라 뛰어난 기량을 가진 젊은 음악도들을 성원하는 아트로드 77 음악제 같은 것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건이 마련되면,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들을 더 기획해보자는 토론도 하고 있는 중입니다.인간이 만드는 길, 그 길 만큼 예술적인 것은 없을지 모릅니다. 인간이 대지에 건설한 길이란 참으로 경이로운 예술작품입니다. 파주통일동산에 자리하고 있는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다보는 자유로는 참으로 아름다운 예술작품입니다.77번 국도 자유로를 Art Road 77로 부르면서 일련의 문화예술 행사를 기획하는 우리들에게는 사실은 나름대로의 문제의식 또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문화와 예술로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전쟁이 아닌 평화를 구현하는 이론과 역량이 곧 문화예술일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국토, 우리의 생명이 뿌리를 내리는 대지와 자연에 생명사상과 예술정신을 심자는 것입니다.북녘을 향해 힘차게 달리는 자유로가 임진각 평화누리에서 뚝 끊어집니다. 남과 북의 분단은 길까지 끊어놓았습니다. 아름다운 문화예술의 정신과 사상은 이 중단된 길을 다시 달리게 할 것입니다. 전쟁과 분단으로 형성되고 있는 긴장을 문화와 예술로 해소해낼 것입니다.아시아유럽으로 확장되는 길남과 북의 단절된 문물을 소통시키고, 본디의 민족공동체를 복원하는 이론과 지혜의 가장 구체적인 방안이 문화예술이라는 생각을 우리는 하고 있습니다. 아니 남과 북의 장벽만을 뚫어내겠습니까. Art Road 77은 아시아로 유럽으로 확장되는 길입니다.Art Road 77은 닫힘이 아니라 열림을 도모합니다. 북으로 아시아로, 유럽으로 세계로 가는 화해와 평화와 길, 사랑과 생명의 길을 의미합니다. 자유로 문화예술벨트 또는 Art Road 77 기획정신은 이 분절되어 갈등하고 대립하는 문명을 치유하는 우리 모두의 당위이자 희망입니다.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꼴찌의 변명

부모님께는 가장 보여 드리기 싫은 것과, 담임교사와 둘 만의 비밀이 성적표다. 학창 시절, 성적표를 등 뒤로 몰래 감추던 기억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학교생활에서 성적표를 받는 순간이 가장 긴장되고 점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언제나 기대에 어긋나는 게 점수다. 나도 그랬다. 충청북도 단양의 산골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가장 성적이 좋았던 기억은 2학년 때, 3등이었던가? 중학교 시절엔 17등을 넘어 본 적이 없다. 겨우 서울에 있는 상업학교에 진학했다. 졸업성적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전교생 162명 가운데 157등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3년 동안 누적된 성적이 잘못 기록된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나마 내 뒤의 다섯 명은 학교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꼴찌, 하하하! 차라리 웃고 말았다.과거에 꼴찌를 했다는 걸 자랑 삼아 신문에 쓰는 세상이 되었으니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 요즘엔 오히려 꼴찌를 했기 때문에 창의적이라는 칭찬까지 듣는다. 역설적으로 말하는 이들은 배우고 외운 것이 없으니 상상력이 풍부해진 거라고 추켜준다. 공교육에서 배운 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자식이 꼴찌를 하는데도 부모님은 왜 그리도 무관심했을까?성적표에 무관심한 부모님어버이날을 보내면서 학업 성적에 대해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신 부모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네 인생은 너의 것, 네가 하고 싶은 걸 잘 해야지 가장 큰 힘이 된 격려였다. 은행에 취직하겠다고 상업학교에 입학한 고등학교 1학년 때, 하지만 나는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림만 그렸다. 대회에 나가 많은 상도 탔다. 그럴수록 학교 성적은 떨어졌다. 결국 미술대학에 진학했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배운 과목이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성적표는 매우 중요하다. 승진과 표창과 징계의 근거가 된다. 성적을 내는 평가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지만 평가를 받는 이들에게는 불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객관성과 공정성, 그리고 성적 분포 균형까지 맞추다 보면 결과가 우스꽝스러워진다. 기업평가도 마찬가지다. 남이섬 대표이사를 처음 맡았던 2001년, 경영이 매우 어려워 은행 융자를 받으려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재무제표와 경영평가 점수가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였다. CEO 브랜드와 미래 가치를 중시한다지만 아무도 새로운 사업계획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장기적 회생 설계에도 관심이 없었다. 평가자는 과거의 좋지 않은 실적이 앞으로도 나쁘게 작용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중시했다. 이유는 평가자를 감시하는 자체감사 때문이었다. 경영이 좋아진 후 서로 융자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지금은 당시의 평가자와 금융기관 자체가 사라지고 만 경우도 있다. 시험문제에 객관식이 많은 이유는 평가를 공정하게 하기 위함이다. 사지선다형 문제에서는 개인의 창의적 소질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불가능하다. 채점에 용이하고 뒷말이 없다는 것이 객관식 문제의 장점이기는 하다. 그러나 연필을 굴리면서 얻어낸 답변과 점수가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유행하는 다면평가가 공정성과 객관성은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지 모르지만 조직 내의 창의성 발굴에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창의력이 있거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도전을 감행하려는 용기 있는 사람이 공조직을 떠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창의성 해치는 객관성과 공정성누가 뭐래도 지금은 경쟁사회다. 경쟁 없는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사회생활을 하려면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점수나 성적표는 경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적의 평가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격려하기 위해 일부러 점수나 등수를 내지 않는 학교가 있듯이, 창의적 조직에서는 장기적 안목에서 단기 평가를 유보해 주기도 한다. 만만디 느리다는 중국도 4년 전부터 국제창의성박람회를 열면서 장기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한국이나 경기도나, 세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객관식 위주의 평가 제도를 창의적 주관식으로 전환할 때를 검토해야 할 것 같다. 강우현 한국도자재단 이사장

느리게 떠나는 것들

가만히 보면 모든 것들은 한없이 느리게 떠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걸 가까이 하게 되면 그것들은 훼손되고, 훼손되면 떠날 준비를 하도록 되어있다. 그것도 아주 서서히 그리고 느리게 죽음의 충동까지 느끼며 쫓겨나는 마음으로 떠난다. 우린 아무 준비 없이 헤어지면서 당혹해 하는 사람들과 만난다. 사랑했던 연인들이 울고불고 야단스럽게 이별의 아픔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미 조금씩, 아주 조금씩 사랑과 연결되었던 관계의 알갱이들이 서로 손을 놓고 그 모서리를 서로가 조금씩 부스러뜨리고 있었던 것을 미처 느끼지 않았을 뿐이란 걸 알게 된다. 허둥대는 사이에 보이지 않는 슬픈 해체는 이루어진다. 미세한 구성입자들은 항상 헤어지려는 꿈을 꾸며 얼마 후 멀어져야 한다는 슬픈 조짐을 만들고 있다. 어떤 사물의 상태에 외형적인 금이 가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적 쓸쓸함이 뒤따른다. 처음 만날 때부터, 마음이 서로 닿을 때부터 이것들은 계산속에 있었어야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은 너무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신음조차 흘러나올 수 없다.모든 현상은 서서히 떠나가고 있어한밤중 잠을 깨보면 내 얼굴 위로 무엇인가 떨어져 내림을 느낀다. 보일락 말락한 먼지들, 오래된 파리똥, 모기가 먹다 묻힌 혈액의 말라버린 분말, 삭은 종이의 작은 귀퉁이 부분들. 만져지지 않는 것들의 끊임없는 이별, 이 작은 이별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하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나는 한 밤중에도 일어나 앉아 잠을 설치고 우울해할 때가 많다.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내 주위의 것들이 하나씩 둘씩, 아니 이제는 아주 잡을 수 없이 무더기로 나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해내고 별안간 쓸쓸한 마음으로 어두워질 때가 있다. 기존의 것들이 지녔던 허위들이 우리를 반성시키기 보다는 쓸쓸함 쪽으로 해석하려한다.얼마나 활기있게 시작되었던 것들인가?규칙성 및 상호주관성에 의해서 사라짐, 사물의 소멸, 주체였던 것들의 삭아짐, 자연의 몬순적 주기에 순응했던 농경민의 철학이 아직도 나에게는 생소하기만하다.처음에 세차게 깍지끼고 시작했던 것들에게 요즈음 호되게 실망 당한다. 이 절망스런 해체에 대한 처리 방법을 우리는 아직도 찾아내지 못하고 그냥 헤매고만 있다. 느리게 떠나고 있는 것들에게 이미 발버둥 칠 수 없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느리게 진행되는 결핍 때문이다. 사랑하고 싶은 대상들은 언제나 나와 하나일 수도 없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랑이 존재할 수 있으리라 본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우리를 외면하려는 것들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지우지 못한다. 빳빳하게 한 번 마주쳤던 것들을 우리는 오늘도 독하게 사랑한다. 허둥대는 사이 슬픈해체는 이뤄져요즘 설거지를 하면서도 느리게 떠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조용해 보이는 듯해도 가슴으로 침식해 들어오는 심심치 않은 크고 작은 사라짐의 사건들이 나를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 어느 날은 꼬박 밤을 샐 때도 있다. 느리게 진행하며 만들어낸 이별이 사실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옴을 알 것 같다. 한 시인은 말하기를 산은 어디서 보아도 대지의 아문 상처처럼 보인다 고 했다. 상처의 크기를 존재의 크기로 보고 있다. 나는 매일 아침 산에 가던 것을 요즘은 못 가게 되었다. 못 갈 때에는 오랫동안 산을 바라본다. 그 느리게 아문 상처의 빛남을 바라본다. 최문자 협성대총장ㆍ시인

세계속 파주출판도시가 되기 위해

파주출판도시는 지금 새로운 변신작업을 한창 진행하고 있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늘 찾아나서는 책의 유토피아로 파주출판도시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출판도시를 출판인들의 삶의 일터일 뿐 아니라 책을 사랑하고 책읽기를 삶의 일상으로 삼는 독자들의 공간으로 만드는 일입니다.파주출판도시의 책방거리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만, 1층이나 2층 또는 지하층을 책방이나 출판문화와 연관되는 갤러리아트샵미술관박물관 등등으로 꾸미고 있습니다. 이미 15개 이상의 책방들이 문을 열고 있는데, 많은 회원사들이 이런저런 주제로 문을 열기 위한 준비 작업, 디자인 작업을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전문 디자인팀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습니다.독자출판인 소통하는 문화공간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출판도시의 2단계까지 완성되면 100 개 이상의 책방과 여러 문화시설들이 문을 열게 됩니다. 100개 이상의 책방들이 문을 여는 파주출판도시의 책방거리! 생각만 해도 신명나고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이 책방들에서 이런저런 담론이 펼쳐지고, 미술전시회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적 체험이 가능할 것입니다.파주출판도시는 또한 다양한 책축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5월에는 어린이 책축제가 열리고 10월에는 국제적인 책 페스티벌인 파주북소리(PAJU BOOK SORI)가 진행됩니다. 아시아의 출판문화독서문화의 한 중심이 되고자 하는 책축제입니다. 다양하고 내실 있는 프로그램들이 확실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특별팀이 꾸려지고 프로그램들을 짜고 있습니다.파주출판도시의 책방거리 조성사업과 파주북소리를 위해 파주출판도시와 파주시경기도가 손을 잡고 일한다는 사실도 주목되어야 합니다. 출판도시와 파주시는 집행위원회를 구성해 정기적으로 협의하여 일을 조직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전례가 없었던 민관의 공동작업입니다. 파주출판도시는 당초부터 공공적문화적 공간입니다. 파주시와 경기도의 지원을 받는 책 축제 프로젝트이지만, 파주시경기도의 것만도 아닙니다. 대한민국의, 대한민국 국민의 출판도시입니다. 아니 아시아인들의 파주출판도시, 세계인들의 책의 도시가 되어야 합니다. 출판문화는 당초부터 세계문화이기 때문입니다. 파주출판도시가 진행하려 하는 일련의 프로그램들은 아시아적 문제의식과 세계시민적 차원에서 기획되어야 합니다.파주출판도시의 이같은 문제의식을 성취해내기 위해서는 그 공간의 조건들도 당연히 개선해야 합니다. 책을 사랑하고 독서를 일상의 삶으로 삼는 세계시민들과, 세계의 출판인들이 방문하는 책의 유토피아가 되기 위해서는 그 공간들도 상응하는 변모를 해야 합니다.국가사회 문화 품격 높여줄 것우리는 파주출판도시를 숲의 도시로 만들고자 합니다. 나무들 사이를 산책하고 나무들 밑에서 독서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차들이 아주 천천히 다닙니다. 일방통행도 연구합니다. 때로는 차없는 거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숲 사이로 살짝살짝 보이는 그런 풍경입니다. 이곳저곳에 야외 미술작품이 설치됩니다. 사람들이 천천히 산책하거나 예술적인 벤치에 앉아 독서를 합니다. 우리는 파주출판도시는 슬로우시티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출판인들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파주출판도시를 에코뮤지움으로 만들 것입니다. 문화적인 삶이 일상으로 구현되는 그런 콘텐츠, 그런 그림과 풍경입니다. 우리가 구상하고 진행하는 일련의 프로그램들은 우리 국가사회의 품격을 높여줄 것입니다. 문화적 품격이 뒷받침되지 않는 국가사회가 이 지구촌 시대를 주도할 수 없습니다. 세계의 일급 출판국가들과 함께 하는 파주출판도시의 책 축제 프로그램들은 우리 국가사회를 선진화시키는 인프라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압니다.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파주북소리 조직위원장

선비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인간이 사는 세상에 문제가 없고 고통이 없던 때는 없었겠지만 요즘 세상은 점점 더 사악해 지고 죄의 형태도 지능적이고 교활해 지는 추세이다. 땅 속에서 불법으로 모아 감추어둔 수십억의 돈 뭉치가 발견되고 먹을거리 해물을 양잿물에 불려서 몇십 억의 수익을 낸 업자가 구속된 이야기가 매스컴에 오르내린다. 물건을 사다 할 때 사용하는 한자 살 매(買)는 그물 망(?)과 조개 패(貝)가 모여 만들어진 합자(合字)이다. 즉 조개를 그물로 떠내듯이 물건(物件)을 사 모으다 라는 의미를 갖는 단어이다. 그런데 반면 반대로 물건을 팔다 할 때 사용하는 한자 팔 매(賣)는 살 매(買)에 선비 사(士)가 붙여진 단어이다. 무슨 말일까? 물건을 사는 사람은 정성 들여 그물로 조개를 거두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며, 반대로 파는 사람은 그 모은 정성을 선비의 마음과 자세로 물건을 팔아야 함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미이다.그러면 선비의 마음으로 물건을 파는 팔 매(賣)에 삼수변(水)이 붙으면 어떤 단어가 될까? 도랑 독(瀆)이 된다. 농경사회에서 작은 도랑을 만드는 일은 생명을 주는 일과 같은데, 도랑을 만들어 타인에게 유익과 도움을 주는 사람 역시 선비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다시 팔 매(賣)에 말씀 언(言)이 붙으면 읽을 독(讀)이 된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글을 읽도록 쓰고 말하는 사람은 엄밀히 말하면 자신의 지식과 지혜를 파는 사람이며 이 역시 선비의 마음으로 해야 함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런데 매(賣)에 계집 여(女)가 붙으면 과연 어떤 단어가 될까? 놀랍게도 더럽힐 독(?)이 된다. 자신의 욕망과 욕정을 위해 사람을 사고 파는 일은 결코 더러운 독이 됨을 발견한다. 사람은 결코 사고 파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점점 사회가 무섭다고 말한다. 이는 어쩌면 선비의 마음을 점차 잃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극단적인 이기주의와 침식된 우리사회와 병든 생각을 치료하는 길이 무엇일까? 우리의 병든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서 선비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외유내강한 사람을 군자라고 말한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배려하는 마음, 그 삶이 어떠하든지 간에 한 가지는 분명하다. 모든 인생은 역사의 지평에 아무리 미미할 지라도 반드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 영향력이 사람을 살리는 것이냐, 죽이는 것이냐 하는 것일 뿐이다. 성경 잠언 4장 24절에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여기에서 난다.고 말씀한다. 또한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한다. 예수의 마음을 품을 것을 권면한 말씀이다. 마음이 좋으면 좋은 사람이요, 마음이 크면 큰 사람이다. 씨앗이 자라고 열매를 맺는 마음은 길가와 같이 굳음 마음이 아니라 옥토와 같이 좋은 마음이다. 예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신 그 마음이다. 선비의 마음을 넘어 예수의 마음을 품기 시작할 때 우리 사회는 더 아름다운 사회를 함께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반종원 목사

권위주의 잡상

문화의 세기가 다가옵니다. 1999년 내내 서울 세종로 문화관광부 본관 건물에 큼지막하게 걸려있던 구호다. 산업화로 대변되는 20세기를 지나면서 품격과 교양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21세기를 준비하자는 뜻이었다. 새 천년 시대의 개막을 앞두고 전 세계가 기대와 희망으로 흥분했다. 2000년을 보내면서 세상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갔고 10년이 지났다. 새로운 천년이라는 것도 결국 연말과 연시를 나누는 달력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는 사이에 세상은 급변했다. 혁명적 진보를 이룬 것은 역시 정보문화이다. 정보혁명은 소통의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소통의 민주화는 신비감으로 포장된 사회 각 분야의 권위주의를 무너뜨렸다. 전통적인 권위주의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평등문화가 싹트기 시작했다.권위주의란 위계질서와 지배복종의 관계를 중요시하여 상하간의 계층적 인간관계를 순리로 받아들이는 성향을 말한다. 권위주의가 가장 먼저 퇴보하기 시작한 곳은 행정 분야다. 지자체가 자리를 잡아가면서 권력자는 봉사자의 입장으로 변해야 했다. 속도가 늦기는 해도 개혁이니 혁신이니 하는 구호들은 행정이 주도해 왔다. 반면에 사법과 입법 등 권력의 견제기구들은 여전히 권위주의에 함몰돼 있다. 사법부야 인간에게 징벌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으니 그럴 수 있겠으나 선거를 통해 국민의 대표 자격을 위임받은 의회가 권위를 앞세우는 건 왠지 어색하다. 시대문화 발목잡는 권위주의국회가 열리면 총리나 장차관을 비롯해서 모든 간부들이 줄줄이 대기해야 한다. 업무가 마비되는 건 당연하다. 광역이나 기초의회도 똑같다. 텔레비전에서 자주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풍경이 그대로 연출된다. 고위 책임자를 불러다 세워놓고 부하들 앞에서 호령하고 훈계하는 모습은 권위주의를 넘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존경과 권위는 강요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닌데도 견제기구가 새로운 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면 역사의 아이러니다. 주민 센터를 찾아가 행패를 부리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동장에게 망신을 주는 주민대표가 돌출하는 이유는 견제의 임무를 벼슬이라고 착각한 데서 온다. 대의정치에서 국민의 대표는 선거 때 내세웠던 심부름꾼의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 오랫동안 심부름센터를 성공적으로 운영하려면 거래처를 잘 유지할 수 있는 교양과 마케팅 능력이 우선돼야 한다. 소리 없이 존경과 권위를 쌓아가는 심부름센터들도 적지 않다. 그것이 희망이다.지금은 얕은 상식의 융합이 창조산업으로 각광받는 시대다. 아무리 많은 독서를 한다고 해도 그걸 써먹지 못하면 죽은 지식이나 다를 바 없다. 學而時習之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했다. 배운 즉시 쓰지 않으면 언제 무용지물이 될지 모를 만큼 환경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배워 좋은 곳이 쓰라고 했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겠지만, 시대문화는 당대의 교양을 통칭한다. 교양이나 지식은 변한다. 상식도 변한다. 다양한 교양들이 융합하는 시대문화의 세기란, 다양한 교양들이 상호작용하면서 창의적으로 융합되는 사회 현상의 총칭이다. 융합은 평등하고 수평적인 가치 기준에 따라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문화의 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교양과 예술, 자연과 기술이 전통과 미래와 섞이면서 한 편으로는 혼돈, 다른 한 편으로는 희망을 연출하는 것이 생활문화다. 대중적 창의성은 보편적 생활문화에 누군가 비상식적 아이디어로 불을 지피는 순간 타오른다. 비상식적 아이디어를 보편적 상식으로 구현하는 이들이 오히려 권위와 존경을 누리고 있다. 암 투병을 하면서도 세계인들의 박수를 받는 스티브 잡스가 청바지를 입고 세기적 인터뷰를 한다고 아무도 비판하지 않는다. 대중적 창의성에 불을 지피려면 권위주의라는 불필요한 껍데기부터 벗어 던져야 한다. 문화의 세기는 상식을 깨는 용기 있는 교양인을 기다린다. 강우현 남이섬 대표이사

닿고 싶은 곳

사람들은 각기 자기가 바라보고 싶은 대상이 있다. 무엇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삶에서 중요한 의미와 방향을 갖게 된다. 하루에 100명의 딴 얼굴을 바꿔가면서 바라보게 되면 절대 우울증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우울증 환자들은 거의 한 곳, 한 대상만 주시하거나, 아예 아무것도 바라보지 않으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한강변에 성벽처럼 둘러서있는 아파트. 거기에 살고 있는 주민들은 많은 시간 무엇을 바라보며 지낼까? 아마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게 될 게 아닌가. 어떤 마음이 들까?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허름한 집을 짓고 암치료를 하고 있는 지인이 있다. 가끔 편지를 보내주는데, 오늘은 홍단풍 사이를 걸었어. 빨간 단풍이 이렇게 매혹적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 등 편지를 보낼 때마다 바라보는 대상이 바뀌어져 있고 그 바라보는 대상에 대하여 매료되어 있었다. 역시 자연을 바라보고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답고 평안하고 많은 걸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바라보는 대상 따라 삶도 달라또 미국 도심 속에서 의사를 하고 있는 아는 분은 이런 편지를 보내오기도 했다. 온통 노랑내가 나서 아무 것도 바라볼 게 없었어요. 옥수수 익는 냄새, 마늘 냄새 가득한 밭둑길을 내려다보고 싶었지요. 몸은 미국에 있었지만 감각은 한국에 남아있었다. 바라봄의 대상은 고국에 있었다.인류의 역사는 섞는 역사이긴 하다. 어떻게 섞이느냐 무엇과 섞이느냐가 중요하다. 바라보는 관점이나 시각도 이 섞임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이같이 우리 삶의 정체성은 벽을 뚫으면서 섞이려고 하는 통에 바라보는 것들도 흐려지고 있다. 아무리 바라보는 대상을 익명으로 가장시켜도, 우리에게 부글거리며 급격히 다가오고 있는 퓨전의 시각과 관점은 어쩔 수 없다. 한편의 시를 소개한다.나무는 죽을 때 슬픈 쪽으로 쓰러진다/ 늘 비어서 슬픔의 하중을 받던 곳/ 그 쪽으로 죽음의 방향을 정하고서야/ 꽉 움켜잡았던 흙을 놓는다/ 새들도 마지막엔 땅으로 내려온다/ 죽을 줄 아는 새들은 땅으로 내려온다/ 새처럼 죽기 위하여 내려온다/ 허공에 떴던 삶을 다 데리고 내려온다/ 종종거리다가 입술을 대고 싶은 슬픈 땅을 찾는다/ 죽지 못하는 것들은 모두 서 있다/ 아름다운 듯 서 있다/ 참을 수 없는 무게를 들고/ 정신의 땀을 흘리고 있다.사람들이 저마다 닿고 싶어 하는 곳은 어떤 곳일까? 오랜 시간 바라보다보면 닿고 싶은 대상이 나타나게 마련이다. 자연을 바라보면 자연에 순응하는 깊은 바라봄의 대상, 닿고 싶은 곳이 생긴다.퓨전 문화속 넓게 보는 눈 가져야우리는 퓨전 문화 속에 살고 있다. 퓨전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무엇을 바라보며 살까? 하루 종일 TV시청이나 인터넷을 즐기는 젊은이들은 어느 집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은 거의 모니터 크기 안의 것들만 하루 종일 바라보게 된다. 퓨전 사극, 에로, 공포 만화를 폰 카드로 보고 듣는다. 그런데 가끔 3m씩 뛰어오르는 바다도 보았다가 작은 제비꽃잎을 바라보기도 하고 큰 산을 넘는 구름을 바라보면 어떨까.그런 것에 닿고 싶은 마음은 이제 이 시대에선 없는 것일까?최문자 협성대 총장시인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지난 주엔 건강관리를 잘 못해서 조금 고생을 했다. 수년 전부터 고혈압과 당뇨가 있어서 식사 조절과 운동요법으로 자신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안된다. 지난주에는 회의도 많았고 모임도 많아 자연히 식사 조절과 운동을 잘하지 못하고 건강관리에 좀 소홀히 했다. 그래서 후유증으로 며칠 고생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아내가 불쑥 이런 말을 한다.당신 나이가 몇 살인데 아직도 먹어야 할 것과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 못하고,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에 해야 할 일을 구분 못해요! 그렇구나! 내 나이가 몇 살인가, 이 나이를 먹도록 아직도 몸에 안 좋다는 음식을 탐하고, 몸에 좋다는 운동은 게을리 하니 나는 아직 철이 덜 든 인생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든다.꼭 할 일 나중 일의 구분살아온 인생의 날들을 모아 압축을 하면 두 단어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감사 하나는 후회라는 단어일 것이다. 인생에서 후회스런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일까? 인생의 가장 큰 낭비는 무엇일까? 그것은 세월을 생각 없이 살아온 것일 게다. 성경은 말씀한다.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5-16).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에서 아낀다는 의미는 길거리에 내다 버린 소중한 것을 다시 찾아오라, 생각 없이 시장에 값싸게 내다 판 물건이 나중에 알고 보니 아주 소중하고 값진 물건임을 깨닫고 달려가 되물러오듯 그렇게 시간의 가치를 알고 살라는 말씀의 의미이다. 왜 인생을 헛되게 세월을 낭비하며 사는 것일까? 지혜가 없기 때문이다. 지혜가 무엇인가? 지혜 중에 가장 큰 지혜는 시간의 가치를 알고 세월을 아끼는 것이다. 누군가가 시간은 금이다라고 말했지만 이 말은 반드시 진리만은 아니다. 시간은 금이 아니라 금 이상이다. 시간은 생명이다. 금으로 생명을 살 수 있는가? 병실에서 의사 선생님을 붙들고 선생님 살려만 주십시오. 돈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하면서 애원하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가? 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시간이며 세월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참 지혜일까?두 가지를 생각하고 싶다. 첫째는 우리 인생의 삶에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자주 깨닫고 사는 것이다. 성서는 세상만사가 때가 있다고 말씀한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고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는 것이다. 인생에 허락된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고 하는 것이다. 두 아들을 두었던 어머니의 간증이다. 큰 아들과는 달리 둘째 아들은 오토바이 폭주족 클럽에서 활동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저녁 오토바이 장비를 갖추고 나가는 아들을 향해 어머니는 얘야 잠깐 엄마하고 이야기 좀 하자 했는데 아들은 어머니 내일 얘기해요 하고 서둘러 집을 나갔다. 그런데 그날 밤 급한 전화 한통을 받는다. 아들의 교통사고였고 그 시간은 아들이 집을 나간 지 10분 후의 일이었다. 내일은 있다. 그러나 그날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한정된 세월을 아껴쓰는 지혜둘째는 인생에서 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다. 육체의 남은 때,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내 인생의 육체의 때가 일주일 정도 남았다면 그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까?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오늘을 마지막이듯이 살라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지혜는 먼저 할 일과 나중 할 일, 꼭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하는 것이다. 무엇이든지 내가 다 해야 된다고 덤비는 것처럼 무모한 것은 없다. 오늘이 마지막이듯이. 내 삶의 동반자를 사랑하리라. 내게 맡겨주신 자녀들과 성도들을 사랑하리라. 이들이야말로 끝까지 사랑해야 할 내게 맡겨주신 상급이다. 반종원 목사

편집자들을 감동시킨 독자의 금일봉

한 독자가 금일봉을 편집실로 보내왔습니다. 책 만드느라 얼마나 수고하느냐면서, 회식이라도 한번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제 편집자들과 함께 점심을 했습니다. 책 만드는 사람들에겐 이건 하나의 감동입니다. 이런 독자들이 존재하기에, 오늘도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온몸으로 일하는 출판 편집자들은 힘을 얻습니다.출판 편집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한 시대와 한 국가사회의 정신과 사상을 조직하고 체계화시키는 작업이란 한 권의 책으로 가능합니다. 한 시대 한 국가사회, 한 민족공동체가 반듯하게 발전하기 위해서 반듯한 정신과 사상을 담아내는 책의 문화가 필요충분조건이고, 이 책을 만드는 권능과 의무가 출판 편집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한 권의 책으로 한 시대는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이 한 인간의 행로를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이 한 국가사회와 민족공동체를 새로운 역사 차원으로 진동시킬 수 있습니다. 위대한 인류문명은 책의 정신, 책의 힘으로 창출됐습니다.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책의 힘반듯한 책을 꿈꾸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출판 편집자라면 그가 사는 시대 상황을 고뇌할 것입니다. 흔들리는 시대현실에서 출판 편집자들은 오늘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현 상황을 대승적으로 극복해내는 보다 대안적이고 보다 근원적인 인식과 해답을 제공하는 한 권의 책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의 흔들리는 시대현실을 살면서 우리는 반듯한 문제의식과 인문정신으로 성찰하는 출판 편집자들의 존재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한 국가사회 또는 한 민족공동체의 정신적물질적 삶의 수준과 역량은 그 국가사회와 그 민족공동체가 창출해내는 출판문화로 평가할 수 있다는 단호한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공동체가 창출하고 보유하는 책의 문화, 독서의 문화로 그 공동체의 행복지수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 지식정보시대에.유감스럽게도, 제대로 책을 만들겠다는 출판 편집자가 귀해지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본격적인 독서를 하는 독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듯해서 때로는 위기감마저 들고 있습니다. 한쪽에서 지식정보시대라고 소리 높이 외치면서도 사실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어떠한 국가사회 정책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학술적이고 인문적이며 수준 높은 교양을 담아내는 책은 대중적이지 못하지만,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최신의 정보와 지식과 이론을 담아내는 책은, 국가사회의 문화적 인프라로서 기획하고 출간해야 합니다. 국가사회 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고급 지식과 정보와 이론을 담아내는 책을 만들어내야 합니다.오늘 다양한 분야에서 공공적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 연구결과는 책으로 출간되어 독자들에게 제공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책은 사상과 이론의 공개시장입니다. 모든 연구와 성찰은 사상과 이론의 공개시장에 상정됨으로써 제2제3의 창조가 가능해집니다. 이 사상과 이론의 공개시장에서 참으로 창조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출판 편집자들입니다.상업성 얽매이지 않은 출판 환경을반듯한 출판 편집자들이 한껏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보다 국가사회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전혀 상업적이지 않은 책도 과감하게 기획해내는 출판 편집자의 문제의식과 실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지원프로그램을 국가는 당연히 해내야 합니다. 가장 상업적이지 않은 책이 때로는 국가사회 발전의 차원에서 참으로 경이로운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오늘도 한 권의 책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출판 편집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의식과 실천으로 우리의 개인적공공적 삶은 건강하고 반듯한 행로를 걸을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보다 창조적인 발상을 온몸으로 해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보다 창조적이고 보다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기상예보와 관광산업

지난 겨울은 유난히 추웠건만, 촉촉한 봄비가 마른 땅을 적시는 걸 보니 봄이 오긴 온 모양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맞이 행렬이 산과 들을 찾을 것이다. 행락철만 되면 필요 이상으로 친절한 기상예보를 자주 접하게 된다.내일은 고기압의 영향으로 황사가 심하게 불어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급적이면 나들이를 삼가 주시고 외출에서 돌아오면 반드시 손발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정도는 참 좋은 예보다. 건강에 관심이 높은 현대인들에게 이렇게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건 고마운 일이다.내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올 확률이 삼십 퍼센트, 곳에 따라 때에 따라 비 또는 구름이 끼겠습니다. 나들이를 계획하신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이쯤 되면 나들이를 하지 말라는 권고와 같다. 비가 온다는 건지 안 온다는 건지 명확하지도 않고 곳에 따라 때에 따라 오거나 안 오거나 한다는 부연설명까지 곁들여 준다. 비가 안 온다고 예보했다가 쏟아지면 감당하기 어려운 항의를 받게 될 테니까 예보자의 입장이 일견 이해는 간다. 하지만 관광지의 경우, 비가 오지 않더라도 토요일이나 공휴일 전날 이런 예보가 나왔다면 최소한 절반 이상의 영업 손실을 각오해야 한다. 야외 공사장에서 일하는 이들도 비가 예보되면 영락없이 공치는 날이 되기도 한다. 드러내 놓고 항의하지는 않겠지만 아마 전국적으로 상당한 손실이 일어날 것이다. 회피성 예보가 관광 손실 주범더 이해되지 않는 예보가 있다. 기상대의 표현은 아닐 것으로 믿고 싶지만, 언론에 보도되는 날씨예보는 더 한심하다. 내일은 더 춥다는 날씨 보도다. 지난겨울에도 사나흘에 한 번은 그런 보도가 나왔고 그러는 사이에 봄이 찾아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꽃샘 추위, 지난 수십 년 동안 봄마다 나타나는 판박이 제목에 얼마나 식상해 할지는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이런 헤드라인은 관광지뿐만 아니라 일상의 건강 리듬까지도 망가뜨린다. 요즘은 인터넷 정보를 통해 지역별로 실시간 날씨 정보가 전달되니 굳이 신문 방송에서까지 일기예보를 할 필요가 있는지 재고해볼 만하다. 한국은 사계절 맛이 명확하다는 것이 장점이다. 꽃피고 새가 지저귀는 봄 맛, 땡볕과 그늘과 시원한 바닷가의 여름 맛, 천고마비 단풍철의 가을 맛, 눈밭에서 눈덩이 굴리는 겨울 맛을 느낄 수 있는 천혜의 땅이 한국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명확하게 구분돼 있는 사계절 탓에 냉난방비를 따로 부담해야 하고 동남아시아나 추운 나라들에 비해 옷값도 더 들어간다. 관광지의 수익구조는 계절비용의 이중부담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다. 스키장은 봄부터 가을까지 개점휴업이고 수영장은 한겨울에 문을 닫아야 한다. 다른 관광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계절 맛에 있다.한국 관광의 활로는 사계절을 정복하는 데 있다고 한다. 골프장이 스키장과 워터파크까지 겸해야 수익구조를 잡을 수 있는 상황에서 투자비와 회수 가능성을 따져보면 이익을 내기 어렵다. 한국의 관광산업이 봄과 가을을 제외하고 여름과 겨울까지 통틀어서 산업화하기엔 아직 요원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12월부터 3월까지를 아예 비수기로 설정해 놓은 곳도 많다. 유독 관광산업에 비정규직이 많은 것은 연중사업으로서의 한계 때문이다.사계절 살리는 게 한국관광 활로굴뚝 없는 소프트 산업으로서의 관광산업이 뿌리를 내리려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계절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정부가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주변 환경의 안정과 아이디어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주변 환경은 낡은 법과 제도를 현실에 맞게 고치는 일이다. 아이디어는 남다른 사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 사업자의 책임이다. 닭갈비가 잘 팔린다고 온통 닭갈비 동네가 되었을 때 최초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가장 먼저 피해를 본다. 관광저작권에도 관심을 둘 때다. 기상예보에도 신중을 기해야 하고 그걸 받아쓰는 언론의 호들갑도 줄어드는 것이 좋다.강우현 한국도자재단 이사장남이섬 대표이사

떠밀리는 자들

내가 싫어하는 문장 중에 밀어붙인다라는 말이 있다. 밀어붙인다는 것은 의지와 절차와 과정을 삭제한 행위이다. 이 시대에서는 이 물어붙인다는 행위가 어쩌면 그 행위자를 능력 있는 것으로 평가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그러나 힘에 의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엉거주춤 떠밀려가는 자의 심정은 어떠할까? 나도 작은 경험이지만 이 밀어붙이는 일 때문에 한 동안 보라빛 공포에 시달린 적이 있다. 어느 날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보니 모든 물체가 프리즘을 통해 보는 것처럼 물체의 테두리가 일곱가지 색깔로 둘러싸여 보였다. 하늘을 봐도 나무를 봐도 사람을 봐도 가장자리가 보, 남, 파, 초, 노, 주, 빨 그 중에도 보라색이 진하게 물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며칠을 보라빛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다가 안과를 찾았다. 여러 가지 안과 질환에 대한 검사를 받았으나 결과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의사의 답변만 들었다. 다른 병원에도 가보고 한약도 먹어보고 특별한 민간요법도 써보았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떠밀린다는 건 참기 힘든 일친척 중에 정신과 의사가 있었는데 만난 기회에 우연히 그 고통을 털어놓았더니 요즘 생활 중 극도의 공포감을 느낀 사례가 있는지 한 번 잘 생각해보라고 했다. 혹시 생각이 나면 한번 찾아오라고 했다. 이틀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언뜻 한 기억이 떠올랐다.얼마 전부터 나는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었다. 운동 신경도 둔한데다가 겁도 많은 터라 수영 선생에게 핀잔을 여러 번 들었었다. 어느 날 2m가 넘는 깊이의 풀 속으로 다이빙하여 헤엄쳐나가는 훈련을 할 때였다. 나는 무섭고 자신이 없어서 내 차례가 되면 자꾸 뒤로 도망쳐 줄 맨 뒤에 가서 서 있곤 했다. 밀어붙여 누군가가 수영선생에게 소리치자 수영선생은 준비자세도 취하지 못한 나의 엉덩이를 물 속으로 힘껏 밀어붙였다. 수없이 물을 들이키며 간신히 물 속에서 빠져 나온 나는 그날로 수영을 그만 두었다. 근래에 겪은 일 중에 공포를 느꼈던 일이 그 일 뿐이였으므로 나는 병원을 찾아가 의사와 상담 중 그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의사는 나에게 처방의 하나로 중지했던 수영강습을 다시 시작할 것을 권했다. 의사의 지시대로 단체강습이 아닌 개인레슨을 받았다. 아주 얕은 곳에서부터 무리 없는 절차로 천천히 친절한 수영강습을 받았다. 2주간쯤 지나서 나는 언제 나은지도 모르게 무지개 색으로 둘러싸여 보이던 모든 물체가 정상적으로 보이게 되었다.그 후 1년을 넘게 더 수영훈련을 하여 지금은 수영의 모든 종목을 다 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의지없이 누구에게 떠밀린다는 것이 얼마나 참기 힘든 일인지 작은 수영강습 사건을 통해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삶은 신이 내린 선물이다. 이 선물은 나에게 주신 것이므로 내가 멋지게 사용해야 한다. 어느 누구의 강한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떠밀리며 살 수는 없다.그 누구도 남을 밀어붙여선 안돼이 시대의 많은 어머니들이 자식사랑이란 명분을 가지고 자녀를 깊은 물 속으로 힘껏 떠밀고 있다. 또 직장에서 세상에서 목적이 아닌 목표를 향해 떠밀고, 떠밀리고 있다. 또 어떤 정책이나 제도가 검증과 토의 과정이 삭제된 채로 밀어붙여지는 예도 허다하다.떠밀리는 자들의 공포가 얼마나 큰지 그 부작용이 얼마나 큰지 당해본 자 아니면 모른다. 나는 비록 보라빛 공포라는 작은 고통을 겪었지만 떠밀리는 또 다른 자들의 고통은 각양 각색으로 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상황에서도 남을 밀어붙이며 깊은 삶의 물 속으로 빠뜨릴 권리는 없다.최문자 협성대 총장시인

봄맞이 상상연습

삼월의 꽃샘추위라 하지만 봄이 오고 있는 건 분명한가 보다. 한 낮 봄볕의 따사로움에 언 땅이 녹아 질척거린다. 골짜기를 덮고 있던 두터운 얼음덩이들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시냇물은 다시 흐른다. 며칠 전 빈 병에 꽂아둔 갯버들이 벌써 기지개를 켠다.겨울과 봄의 차이가 느껴진다. 차이(差異), 서로 같지 않고 다르다는 뜻이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지만 차이라는 말은 세상사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빈부의 차이, 국력과 학력의 차이, 경험이나 실력의 차이, 1등과 2등의 차이, 차이란 말이 신분을 규정하고 자존심도 변하게 한다. 차이를 이해하면 조화를 이룰 수 있지만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갈등을 겪기도 한다.행복은 차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취미와 노동의 차이,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가며 하는 일은 취미활동이라 하고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노동이라 한다. 간식과 군것질의 차이, 일하다 먹는 것은 간식이고 놀다가 먹는 것은 군것질이다. 버릴 것을 걱정하면 쓰레기가 되고 쓸모를 고민하면 쓸 애기 즉, 재료가 된다. 크는 대로 내버려 두면 잡초, 화분에 담아 가꾸면 화초가 된다. 내 일이라 생각하면 주인, 남의 일이라 생각하면 머슴이 된다. 혼자 입어서 어울리는 건 외출복이고 함께 입어서 어울리면 유니폼이라 한다. 손길이 닿는 일에는 의미가 생기고 그냥 놔두면 무의미해 진다. 일상에서 차이를 찾아가며 말장난을 하다 보니 봄맞이 상상에 행복감이 느껴진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내려와 낮은 곳에 머물며 만물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봄비가 산야를 적셔주면 새 싹들이 돋아날 것이다. 하늘에만 머물러 있는 물방울은 구름일 뿐이다.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 수도 없이 많은 다른 친구를 만난다. 풀씨를 만나 싹을 키우고 도랑을 만나 농사를 짓게 하고 전기도 만들어 준다. 각기 다른 것끼리 잘 어울리는 것을 조화라 한다. 차이를 인정하면 융화되기 쉽다. 차이란 말이 다시 정겹게 다가온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결혼을 통해 새 생명을 낳듯이, 차이가 클수록 창조의 가능성도 큰가 보다.해마다 찾아오는 봄이지만 왜 봄을 기다리나? 겨울이 춥기 때문일 것이다. 옷을 하나씩 껴입다가 다시 하나 씩 벗어던지는 기분, 무더위에 진저리가 나더라도 추운 겨울에 우리는 여름을 상상한다. 어려울 땐, 차라리 세상이 뒤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더 나아질 거란 확신도 없지만 그래도 뭔가 바뀌길 기대하는 마음, 새로움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희망이다.차이의 순환이 삶이다올 봄에는 희망의 꽃들이 방방곡곡에서 만발했으면 좋겠다. 절망보다는 희망이 좋지 않은가. 그런데 희망은 어디서 오나? 상상에서 온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것을 현실에서 그려보는 것을 상상이라 한다. 상상력은 그걸 찾아내는 힘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들, 기왕이면 성공을 상상하자. 분석을 좋아하는 이들은 언제나 불길한 상상을 앞세운다. 걱정거리나 문제점 찾아내는 데 더 익숙해 있다. 교사가 시험문제를 낼 때 답을 갖고 있듯이, 문제점을 지적할 때는 답안지도 준비해 둬야 한다. 대안이다. 세상이 이렇게만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이나 그걸 감시하는 사람이나 게임을 하듯이 문제와 답안지를 나누다 보면 이상향도 만들어질 것 같다. 끝말잇기 놀이는 아이들의 창의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지만, 어른이 되면서 말꼬리 잡기로 변질되기도 한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가 때로는 상상의 틀을 뒤바꾸기도 하는 모양이다.올 봄에는 여느 해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이 다가올 것 같다. 구제역 여파가 아직도 행정을 정체시키고 있고, 축산농가의 슬픔에 고기를 사먹는 이들의 시름까지 더해지고 있다. 절망으로 지쳐 있는 이에게 봄이 온 들 무슨 소용일까? 이럴수록 희망상상이 절실해진다. 다시 일어나는 상상, 다시 성공하는 상상, 웃음이 꽃피는 상상.강우현 한국도자재단 이사장남이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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