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발전하면서 늘어나야 할 시설물도 단계가 있는 것 같다. 먼저는 도로 정비고 다음으로 편의시설물이다. 우리나라는 동네 쌈지 공원 단계를 거쳐 요즘은 하천 길 걷기나 자전거 길 정비가 이뤄지고 있다. 몇 달 전 수지 지역의 하천길이 정비되어 자전거와 사람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 하천을 그대로 살리며 길을 내주니 낮에는 물론 밤에까지 많은 주민들이 그 길을 걸으며 즐거워하니 정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병든 다음에 의료비 보조를 할 것이 아니라 사전에 이런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바른 정치가 아닌가. 이 길 하나로 아마 의료예산 몇 백억 원은 절약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다음 공공시설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어느 지자체에서는 도서관을 또는 보육시설이나 급식시설, 체육공원 등 늘려야 할 것이 많겠으나 경기도 지역에서는 문화적 차원에서 광장과 공회당이 있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서울시청 앞 광장은 잔디를 깔았다가 데모대에 의해 뭉개지고 다시 잔디가 깔리는 시련을 겪고 있다. 이미 문화로서의 광장이 아니라 정치 마당이 되어 버렸다. 서울에서는 근간에 광화문 광장을 정비했다. 시청광장에 혼쭐이 나서 광화문광장은 문화 광장으로 선포해 버렸다. 정치문화 발전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사용 규칙이라고 여겨진다. 겨울에는 스케이트 광장으로 이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정작 경기도의 도시들은 어떤 형태든 광장을 갖춘 시가 몇이나 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기차나 전철역 광장은 터미널 백화점으로 바뀌고 광장은 버스와 전광판으로 둘러싸여 사람이 설 공지는 없다. 시청이나 도청 앞은 도로만 지날 뿐 광장은 없다. 광장이란 고대 그리스를 비롯해 근대 스위스에 이르기까지 시민의 정치와 축제마당으로 기능했다. 여의도 광장은 선거 유세와 군사 퍼레이드로 활용됐으나 정치는 텔레비전으로 넘기고 퍼레이드는 평화 무드 속에 연무장으로 넘기고 말았다.
사라진 대규모 광장은 이제 지역 소도시에서 작게 살아나야 한다. 광장은 단순히 빈 터가 아니라 모든 정치와 문화와 생활을 담을 수 있는 변용의 생산터인 셈이다. 이제는 천만 대도시에서 대규모 집회를 하는 시대는 아니다. 작은 소도시들이 자치적으로 생활 정치를 하고 축제를 여는 그런 시대다. 성남시청 앞 잔디광장이 음악회, 걷기 대회, 문화 전시회 등 다각도로 쓰이는 예는 좋은 본보기다.
더불어 이제는 공회당이다. 25년 전 일본에서 경험한 일인데 회사 주재원 시절 딸아이가 유치원을 다니며 학예발표를 하는데 유치원이 아니라 지역 구립공회당에서 여는 것이었다. 천여 명은 들어갈 정식 극장이었다. 유치원 시절부터 무대에 서서 그간 학습한 기예를 부모들에게 선보이는 잔치였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서는 유치원이나 중고등학교 학예발표회를 비좁은 교실이나 학교의 강당에서 갖는다. 무대는 좁고 객석은 평평해서 무대가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데서 발표를 해보는 것과 정식 극장의 무대에 서는 것은 정서 발달 과정에 큰 차이를 줄 것이다. 아예 학예발표회가 사라져 버린 학교도 많다고 하지만. 이런 결과 대학에서도 동아리 활동이 너무 빈약한 형편이다. 서울 소재 대학은 많아야 100~200개, 지방 대학은 50여개 수준인데 이웃 일본 대학에서는 수백 개의 동아리들이 활동하고 있다. 다양성과 창의를 강조하면서 정작 그 터전이 되는 멍석을 까는 절차에는 너무 소홀한 것 같다.
창의를 부르짖는 시대에 지방에서는 문화 교육적 차원에서 공회당이, 사회문화적 차원에서는 광장이 필요한 시대다./김광옥 수원대 언론정보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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