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한 해의 끝에 서면 지나온 날들이 새삼스럽게 코앞에 다가오는 것은 아쉬움 때문이다. 아쉬움은 이루지 못한 계획에 대한 섭섭함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해를 어떤 깃발을 들고 살았는지를 성찰하기 때문이다. 뒤돌아보면 아무것도 해놓은 것이 없고 괜히 허둥거리며 살아온 것만 같다. 나는 누구의 손을 다정하게 잡아 주었는가! 나는 누구에게 사랑이 넘치는 따뜻한 손을 내밀었는가! 주위에 있는 이들을 살펴보지도 못하고 땅만 쳐다보며 용케도 견디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심히 아파트 상가 과일가게 앞을 지나는데 주먹보다 큰 탐스럽고 잘 익은 사과 하나가 나를 쳐다본다. 나에게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으며 무슨 열매를 손에 들고 있는가를 묻는다.
겨울을 넘기기 위해 여름내 무성했던 이파리를 다 버리고 뼈만 남은 고독한 나무처럼 서 있는 내가 누구인지를 물을 때면 바로 내 삶의 방향타가 되었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잘못을 했는데도 똑똑한 아들이라고 칭찬해주시던 어머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좋은 일을 하고 사람답게 살아야 달을 에워싸고 있는 달무리처럼 남들이 내 들러리를 서 준다고도 하셨다. 어머니의 말씀은 나를 바꾸고 내 삶을 바꾸게 하였다. 정신적 지주였다.
대우 김우중 회장의 자서전에는 고학하던 시절 남들보다 신문을 많이 팔아서 하루 양식을 사가지고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가 눈물로 기뻐하며 감사 찬송을 드리는 식탁이 일생에서 제일 행복했다고 한다. 그 절절한 사연들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 살아 숨 쉬고 있으며 무엇이 성공의 지름길이며 사람답게 사는 것인가를 심어 주었다.
날씨가 많이 춥다. 갈수록 한파가 심해진다는 뉴스다. 우리 주위에는 어두운 곳이 많다. 얼마 전 자원봉사센터에서 사랑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메시지 속에는 따뜻한 손길이 들어 있었다. 독거노인에게 드리는 연탄 나눔 행사에서 나는 무청처럼 시든 눈을 꿈벅거릴 때마다 흘러내리는 할머니의 눈물을 보았다. 50~60년대 허리띠를 졸라매고 조국 근대화를 이룩한 고난시대의 어른들이 아닌가! 갑자기 마음에서 울컥하며 무엇이 솟아오를 것 같았다. 겨울 세밑에나 몇 번 손을 거두는 척하는 내가 부끄럽다. 어리석은 삶이다.
음성 꽃동네에는 무의탁 심신장애우, 걸인, 버려진 아이들 등 2천명의 가족이 신부, 수녀, 봉사자들의 보살핌 속에 살고 있다. 신부는 봉사자가 줄어드는 것이 큰 걱정이라고 한다. 어머니의 치마 자락 한번 손에 쥐어보지 못하고 버려진 아이도 있다. 이제 울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도 둥근 밥상에서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만면 환한 웃음이 가득한 날이 있었을 것이다. 가족, 이웃, 사회는 끊을 수 없는 정으로 연결된 고리이기에 털어 버리지 못하고 멀리 떠나지도 못하는 대 가족이다.
톨스토이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사랑을 바탕으로 오직 진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고 말했고 캐나다의 시드 캐슬러는 ‘사랑을 바탕으로 봉사하고 섬겨라’라고 말했다. 서로 마음의 끈으로 묶여진 사랑의 멋진 삶을 만들어보는 세밑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새해는 행복하니까 웃는 것이 아니라 웃으니까 행복해지는 웃음의 꽃이 아기자기 피어나는 해가 되기를 염원하자.
LPGA 상금의 여왕 신지애가, 한국의 딸 김연아가 우리에게 큰 웃음과 희망을 주었듯이 꽃동네에 김장봉사 웃음꽃이 피었듯이 새해는 우리 모두 만면 환한 웃음이 기득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도 주위를 향해 “새해는 웃어요, 웃어 보세요”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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