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 둘레의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

지역 문화유적의 복원이 여러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경기문화재단에서는 남한산성을 복원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의 문화유적 복원은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또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등재라는 글로벌 기준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기왕 복원하거나 현상 유지를 원한다면 유네스코 선정 유적이 되겠다는 큰 목표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 과정에 있는 것으로 남한산성이 있다.

 

현재 남한산성의 개발 목표는 ‘심각히 왜곡되고 변형된 것의 원형복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일반적으로 남한산성의 개발에는 크게 세 가지 축이 있는 것 같다. 첫째는 유적지 보존으로 성벽, 성루, 옹성, 대문, 암문, 영문, 누각, 대, 종각 등 남아있거나 사라진 것에 대해 옛 지도를 보고 그대로 복원하는 일이다. 이밖에도 궐이나 행궁, 객사, 창고, 도로, 개울, 우물, 연못, 사적단, 묘, 사찰 등도 대상이 된다. 둘째는 재생이나 재현으로 한옥촌이나 전통정원, 옛길, 풍습, 제례, 폐사지 개발 혹은 재현이 이에 속하고 세째는 개발 혹은 창출로 관광상품 개발과 축제, 이미지 등 현대적인 창작을 덧붙이는 작업이라 하겠다.

 

복원 중이어서 여러 의견들이 나올 수 있겠으나 의견이 많을수록, 여러 기관이 참견할수록 하나의 유산은 특징 있는 유산이 되는 게 아니라 가장 보편적이고 평범한 여러 곳 중 하나의 유산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다 가지고 있으면서 특성 있는 무엇인가가 모자라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우선 한 가지 남한산성 개발에서 당장 실행할 수 있고 특징 있는 것으로는 성벽을 들어내 멀리서도 알아 볼 수 있게 들어내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조 17년 1741년에 겸재 정선이 그린 ‘송파진’이라는 그림이 있다. 그 그림에는 남한산성이 둥그러니 들어나 보인다. 남한산성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성벽과 누각이 산 아래에서도 보여야 한다. 탑 주위로 나무를 심어 탑을 가리는 일이 없듯이 성이 들어나 보여야 한다.

 

이는 성곽주위 2~300미터 안에 있는 큰 나무를 잘라내면 되는 일이다. 토사가 날 곳이라면 키 작은 나무를 살려 두면 된다. 큰 나무는 성곽을 가릴 뿐 아니라 그 뿌리가 깊게 내려 성곽 밑을 파고 들어가 성곽 자체의 기반을 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골프장을 만들면서 나무를 베어낼 줄은 알아도 성곽을 살리려고 나무를 베어낼 수 없단 말인가. 산은 형질에 따라 용도가 있을 것이다. 나무가 자라는 산과 풀이나 관목이 자라는 산 혹은 바위를 캐내는 산 등이 있듯, 성곽이 있는 산은 나무가 주인은 아닐 것이다.

 

최근 역사·문화 강좌들이 잇따라 열리고 있다.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세종실록읽기, 화성문화재단의 영조·정조 실록읽기, 경기문화재단의 남한산성역사 아카데미, 기타 토지박물관의 강좌, 수원화성운영재단이나 경기도나 수원시 박물관 등에서 펼치는 각종 역사문화 강좌들이 그것이다.

 

시민들의 역사읽기는 우리민족에 대한 성찰과 함께 우리들의 생활을 되돌아보게 하고 우리들이 현재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대한 자존감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지역의 고적이나 유산을 되살리는 일은 단순히 옛것을 복원해내는 의미만으로는 부족한 점이 있다. 그 유산이 갖는 역사 속에서의 의미 그리고 그 정신이 글로벌 차원에서 의미가 있는가를 체크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남한산성 안에는 180여 유적지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안내는 20여개에 불과하다. 건물의 복원과 동시에 남한산성이 갖는 정신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함께 숙고해야 한다. 국난과 그 극복의 현장으로서 당면한 국제적인 환경 속에서의 남북통일과 세계정세를 연구하는 연구센터, 그 토론장, 실습장으로 이어지는 것이 기와집 복원과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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