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출판史 99년’ 보진재를 아시나요

99년의 역사를 가진 인쇄출판사 보진재(寶晉齋)를 아시나요? 지난 2002년 8월15일 창립 90주년을 맞아 파주출판도시의 첫 입주사가 된 보진재. 나는 우리 출판사가 보진재와 이웃하여 책을 만들게 돼 행복합니다. 파주 출판도시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보진재의 존재를 늘 자랑스럽게 말합니다.올해로 창립 99주년을 맞는 보진재가 경이롭습니다. 우리 현대사의 격랑을 온몸으로 체험하면서 이 땅의 출판인쇄 문화사를 증언하는 보진재의 존재와 발전은 곧 우리 모두의 긍지이자 희망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일제한국전쟁 꿋꿋이 자리 지켜보진재는 자운 김진환(子雲 金晉桓) 선생에 의해 1912년 8월15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근대 한국미술사의 거장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선생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보진재 당호(堂號)를 당대의 명필 성당 김돈희(惺堂 金敦熙) 선생이 쓰도록 했습니다. 자운 선생과 성당 선생은 막역한 사이였습니다.1874년 서울에서 태어난 자운 선생은 어려서 한학을 배웠는데 서화에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대한제국 정부의 교과서 편찬작업에 10년간 종사하다가 문아당인쇄소 석판부에서 석판미술 인쇄술을 익힙니다. 그리고 스스로 보진재를 창립해 민족문화의 아름다움과 민족정신을 널리 표현해내는 일을 시작했습니다.일제의 식민지 통치시대를 거치면서도 스스로의 자세를 지켜온 보진재가 인쇄한 수많은 책과 잡지들을 통해 이 땅의 젊은이들은 반듯한 정신과 건강한 민족문화를 인식했을 것입니다. 책의 미학과 권능을 보여주는 기업이었습니다. 보진재는 일제 말 조선어학회의 의뢰를 받아 조선어 사전의 제작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일으켜 이윤재이극로최현배 선생 등을 잡아가는 바람에 사전작업은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이분들로부터 건네받은 조선어사전의 원고를 비밀리에 잘 보존시켰습니다. 해방 후 원고는 한글 학자들에게 인도돼 한글 큰사전이 간행됐습니다.625전쟁으로 보진재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야 했지만 피난 수도 부산에서도 인쇄작업은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1968년부터는 출판도 병행해 인쇄출판사로서 보진재는 새로운 역사를 걷게 됩니다. 보진재는 창립자 김진환 선생에 의해 이어 아드님 김낙훈 선생이 제2대 사장을 맡았고, 다시 손자 김준기 선생이 제3대 사장을 맡았습니다. 제4대 김정선 사장은 김진환 선생의 증손자입니다. 1992년부터 경영을 맡고 있는 김정선 사장의 성실하고 진지한 자세가 출판도시에서 일하는 출판인인쇄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지금 보진재가 제작해내는 수많은 책들과 인쇄물들이 우리 인쇄 문화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아랍아프리카동유럽중국 등 세계의 100여 문자로 인쇄제작되는 성서는 정말 아름다운 책의 세계를 보여줍니다. 박엽지로 인쇄된 성서들이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것입니다.인쇄 문화는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담아내는 인쇄 문화를 창출해내는 보진재의 공장을 우리 아이들에게는 참 좋은 현장학습이 될 것입니다.민족 문화 100년 대변하는 유산보진재는 내년이면 창립 100주년을 맞습니다. 출판도시에서 일하는 출판인인쇄인들은 지금 보진재 100년을 위한 준비위원회 같은 것을 토론하고 있는 중입니다. 보진재의 100년사는 우리 민족문화의 100년사이기 때문입니다. 보진재는 우리 모두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 때문입니다. 보진재는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우리의 자랑이기 때문입니다.나는 내년 8월15일 보진재 창립기념 잔치에는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중요한 분들을 모두 초청하고 싶습니다. 정말 의미 있는 축제의 마당을 만들고 싶습니다. 상투적인 잔치가 아니라 우리 민족공동체의 삶과 문화를 생각하고, 한 시대의 사상과 정신을 진동시키는 아름다운 출판 문화의 역량을 의식하는 그런 자리를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이 자리에는 문화계교육계경제계 인사들뿐 아니라 대통령도 초대하고 싶습니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요즘 읽은 세 권의 책 중에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가지(오츠 슈이치)와 죽을 때 후회하지 않고 사는 법 35 가지(한창욱)가 있다. 이 두 권의 책에서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 남는 것은 후회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위한 처방으로 25가지, 혹은 35가지를 이야기한다. 그런가 하면 또 한권의 책에서 영성의 사람 헨리 나웬은 죽음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이야기한다. 앞에서 말한 두 권의 책에서는 죽음 앞에서 후회 없는 삶을 위해 인간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는 데 반해 헨리 나웬은 죽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선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헨리 나웬은 이 책의 결론 부문에서 한 곡예사의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다.나는 공중 날기를 할 때 나를 붙잡아 주는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를 합니다. 대중들은 나를 위대한 스타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진짜 스타는 나를 붙잡아 주는 조우입니다. 그는 1초의 몇 분의 몇 까지 맞출 만큼 정확하게 내가 갈 자리에 와 있어야 하고, 내가 그네에서 길게 점프할 때 공중에서 나를 잡아채야만 하니까요.죽음은 하나님이 준 가장 큰 선물어떻게 그게 가능하지요?공중을 나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붙잡아 주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하지요. 이것이 공중 날기의 비밀입니다. 조우에게 날아갈 때 나는 그저 팔하고 손만 뻗으면 돼요. 그 다음엔 그가 나를 잡아 앞 무대로 안전하게 끌어가 주기를 가다리면 되지요.당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구요?그래요. 최악의 실수는 공중 나는 사람이 붙잡아주는 사람을 잡으려 드는 거지요. 나는 절대 조우를 잡으려 들면 안 됩니다. 나를 붙잡는 것은 조우의 임무예요. 만약 내가 조우의 손목을 잡는다면 그의 손목이 부러지거나 내 손목이 부러지고 말겁니다. 그렇게 되면 둘 다 끝장이지요. 공중 날기를 하는 사람은 날기만 하고, 붙잡아주는 사람은 붙잡기만 해야 합니다. 공중 날기를 하는 사람은 붙잡아줄 사람이 자기를 위해 제 자리에 와 있다는 것을 믿고 팔을 뻗어야 합니다.나는 몇 년 전부터 기독호스피스 사역에 이사의 직함을 갖고 있다. 직함이 있어서 바자회나 후원회 모임에 약간의 후원금을 보내드리는 일을 하고 책임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다가 봉사자들의 봉사현장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말기 암 환자들을 돌보며 그들의 마지막 생을 돕는 그들의 모습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운지 그리고 죽음을 후회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 맞이하게 해 드리려고 애씀이 무엇인지를 보며 경험하게 했다. 서툰 솜씨로 잠깐 봉사하며 마지막 호흡을 몰아쉬는 환우들에게 이렇게 속삭이듯 이야기를 해 드렸다.후회없이 숭고하게 생 마감해야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걸 생각하세요. 당신이 길게 점프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그 자리에 와 계실 겁니다. 하나님을 붙잡으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분이 당신을 붙잡아주실 거예요. 그러니 그저 팔과 손을 앞으로 내밀기만 하세요. 하나님을 믿으세요. 믿고 또 믿으세요.성서는 두 가지를 분명히 말한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한 것이요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이다. 생명이 다하고 의로우신 재판장 앞에 서는 날 누가 나의 노력만으로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오직 한분 십자가에서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기도하신 후 다 이루었다라고 외치시고 운명하신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서 후회가 없습니다라는 고백을 듣는다. 반종원 목사

연탄과 시인

인간에게 두려운 것 두 가지가 있다면 차가워지는 것과 딱딱해지는 것일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차가움과 참을 수 없는 딱딱함은 분명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렇게 뜨거웠던 사랑, 열정, 소망, 생각이 점점 식어버릴 때, 우선 겁이 난다. 또 그렇게 말랑말랑하고 유연했던 것들이 굳어져서 딱딱해질 때 또 한 번 겁이 난다.나이가 들면, 언어가 딱딱해지고 행위가 차가워진다. 노인들의 얼굴에서 희로애락이 점점 지워지고 평면처럼 밋밋해 지는 것은 바로 생각과 몸이 식어가고 있고, 딱딱해지고 있다는 증거다.나이들면서 뜨거운 감정도 식어가연탄을 소재로 시를 쓴 시인이 있다. 문창과에서 시를 가르칠 때 아래의 시를 많이 인용했다.연탄재를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전문)위의 시를 쓴 안도현 시인의 쓴 글에 의하면 독자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속이 뜨끔했다고 말하고 있다. 독자만 뜨끔한 것이 아닐 것이다. 남을 위해 뜨거운 적이 있느냐고 너에게 묻기보다는 모두 자기 자신을 향해 묻고 있는 것이다. 시커먼 검정색의 자기 몸체가 뜨겁게 다 타버리고 나면 나중엔 허연 재만 남게 되는 연탄, 연탄이지만 이 연탄이 뜨거울 동안은 추운 사람, 배고픈 사람, 마음이 시린 사람들을 따스하게 녹여준 적이 있다. 그러나 자기를 녹여준 그 사람들은 연탄이 다 타고나면 허옇게 식은 쓸모 없는 재를 발로 차거나 부숴버리기 일쑤다.결국 가루가 될 때까지 사람들 곁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겪는 연탄을 글자 수가 겨우 30자가 넘는 시로 응축한 이 시는 좋은 시임에 틀림이 없다. 나이를 먹게 되면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달아오르지 않는다. 또 딱딱한 것들이 금방 풀어져 말랑말랑해지지도 않는다. 이런 증상이 있게 된다면 분명 위기의 조짐인 것을 느껴야 할 것이다.한창 뜨거울 때, 한창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울 때 이 뜨거움과 부드러움의 힘으로 누군가를 힘껏 사랑하고 힘껏 돕고 힘껏 녹여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한 일이다. 평생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 되보지 못했다면 참으로 불행한 사람일 것이다.연탄처럼 온기 나누는 마음 가져야별안간 나이라는 제목으로 썼던 시가 생각난다. 나더러 색깔 없는 나이라 하대요/ 이 색깔에서 저 색깔로 넘어갈 때/ 힘줄 버티며/ 안 넘어가려고/ 버팅기던/ 숨찼던 그 색깔의 고개 마루턱/ 나더러 언덕 아래로 미끄러지는 나이라 하대요/ 어느 날 피식/ 숫자의 자모가 끊겨나가 언덕을 구르다/ 강 속으로 쑥 빠져버린 나이/ 모래 언덕에 끌어내/ 자모 맞춰놔도/ 흠뻑 젖어 있는 물먹은 나이/ 이 지루한 무채색의 시간나이와 함께 식어가는 것들을 노래한 씁쓸한 시적 표현이 될 것이다.그런데 나이와 뜨거움이 꼭 관계되는 것만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도 가슴이 절절 끓는 뜨거운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또 나이가 어려도 얼음처럼 차가운 어린 학생들도 있다. 재 가슴이 될 때까지 연탄 가슴일 때 사랑하고 녹이고 따스한 불길을 나누어야 할 것 같다.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온 겨울이었다. 영하 17도가 넘는 추위, 이런 추위도 녹여줄 수 있는 뜨거운 연탄의 가슴을 가진 사람 어디 없을까? 최문자 협성대 총장시인

그 아버지의 그 아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란 말이 쓰일 때가 있다. 이 말은 긍정으로 쓰이기도 하고 부정으로 쓰이기도 한다. 칭찬이 되기도 하지만 욕이 되기도 한다. 시골 동네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중고등학교는 시내에서 한의원을 경영하고 있는 도청소재지에 나와 유학(?)을 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때 한의원에는 가정 형편상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고 한의원에서 잔심부름을 해 주는 직원으로 취직을 해 있던 고향에서 함께 살던 동네 형이 있었다. 나는 잠자는 방을 그 형과 함께 썼다. 나보다 두세 살 위인 형을 그 집에서는 내 또래 아이들이 삼촌이라고 불렀지만 나는 시골 동네에서 부르던대로 그냥 형이라고 불렀다. 내가 기억하는 형은 어린나이에 걸맞지 않게 성실하고 착했다. 동년배들이 학교를 다니는 모습이 부럽게 보일 나이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열등감을 가질 만도 하겠지만 전혀 그런 내색 없이 부지런하게 일하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안팎으로 청소를 하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주인집 식구들에게 뿐 아니라 그 집 아이들에게도 친절했고 특히 나에게는 더 없이 각별하게 대해주는 형이었다. 아비의 성실함 빼닮은 삼형제일과가 끝나면 틈틈이 공부를 하고 독서를 하는 모습도 기억된다. 그 형과 함께 그 집에서 5~6년 같이 생활하면서 나 역시 정식으로 온전한 하숙비를 내고 있는 형편이 못되어 틈틈이 그 집에서 그 형을 도와 허드렛일을 하곤 했었다. 지금 기억하는 형은 한 번도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본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언제나 나지막이 부드럽게 이야기 하고 궂은일은 자신이 먼저 알아서 하곤 했다.나는 대학을 진학했고 군대를 다녀왔다. 군대를 면제받은 형은 그 후로 한의원을 경영하던 친척분이 돌아가시자 그곳을 그만두게 됐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연락도 못한 채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설 명절에 고향에 갔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그 형을 만나게 되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살아생전 아버지의 고향을 한 번 자식들에게 구경시켜주고 싶은 마음에서 세 아들을 데리고 고향을 방문했다는 형과의 만남은 이번 설을 통해서 얻은 아주 값진 선물이다. 지난 40년의 세월이 압축되면서 옛 기억이 어제일 같이 되살아나는 반가운 만남이었다. 한의원을 나온 형은 얼마 지나지 않아 결혼을 했고 아들만 셋을 두었는데 아이들이 공부도 잘하고 착하게 자라 큰 아들이 이학박사로 대학교수가 되고 둘째는 한의사가 되어 개업을 하고 셋째 아들은 해외 공관에 근무하는 평신도 선교사라는 것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온 좋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게 돼 반갑고 그가 나와 함께 자라온 형이어서 더욱 자랑스럽고 기뻤다. 다정다감하게 나지막이 이야기 하는 억양이나 모습이 하나도 변한 것 없는 모습에서 배어나오는 훌륭하고 인자한 아버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아들 셋이 어쩌면 그렇게도 아버지를 빼 닮았을까? 자식은 아비의 등을 보고 자란다고 했던가? 잘 키운 세 아들의 모습에서 한마디로 아주 좋은 의미의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다. 자식에 존경받을 만한 부모돼야성경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고 말씀한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부모에 대한 도리를 다하라는 교훈이지만 부모입장에서 보면 효도 받을 만한 부모가 되어야 할 것을 내포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공경은 윤리가 아니라 계명이다. 공경은 선택이 아닌 삶으로 결단해야 할 일이다. 효도는 좋은 부모와 자식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은총이다. 따라서 부모로서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존경받을 만한 부모가 되는 것이다. 그 어떤 재산보다도 부모가 자녀들에게 물려줄 값진 재산은 존경의 삶을 물려주는 것이다. 그게 아닐 때 그 자녀의 삶에는 평생 어깨에 짊어지고 가야하는 갈등과 아픔이 된다. 공경하고 존경하는 삶은 하늘의 질서에 순응하는 삶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반종원 목사

도쿄 책방거리를 함께 보고 왔습니다

2011년 새해에 들어서자 마자 파주출판도시의 출판인들과 함께 도쿄 진보초 간다 책방거리를 보고 왔습니다. 문화관광부경기도파주시의 출판정책 담당자들도 함께 했습니다. 파주출판도시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출판도시 책방거리를 어떻게 꾸밀 것인가. 파주출판도시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간다 책방거리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함께 토론했습니다.120년 전 메이지유신 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간다 책방거리는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귀중한 문화유산일 것입니다. 산세이도쇼텐 등 큰 신간서점도 여럿 있지만 진보초에는 170여개의 고서점이 있다고 합니다. 일본 전국에는 현재 2천200여개의 고서점이 있고, 도쿄에 660여개의 고서점이 있습니다. 세계의 애서가들이나 애독자들은 이곳 진보초 고서점들을 살펴보고 진귀한 책들을 구입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가을에 열리는 진보초 고서축제는 참으로 아름다운 책의 유토피아를 연출해냅니다.120년 역사 서점가 귀한 문화유산저도 이곳을 출입한 지 30여년이 넘었습니다. 책의 향기, 책의 미학을 찾아나서는 여정은 책을 만들면 만들수록 더욱 즐겁습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한 권의 책의 의미와 역량을 새롭게 발견합니다. 신간은 신간대로, 고서는 고서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들은 스스로의 가치와 당위적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책 속에 나 스스로를 침몰시키는 일이란 황홀경 그것입니다.우리는 고서조합으로 가서 책에 대해 대화했습니다.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처럼 회원사회원들이 참여하는 고서옥션이 주제를 달리하면서 진행됩니다. 월요일에는 만화, 화요일에는 양서들이 거래됩니다. 온라인으로도 거래가 이뤄지고 있는데, 630만권의 고서목록이 조합의 온라인에 올라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는 한국어중국어영어로도 주문하게 되어 있습니다.우리는 1902년에 문을 연 기타자와서점을 방문했습니다. 영어고서들로 가득찬 기타자와서점은 현재 창립자 기타자와 야사부로 씨의 손자인 기타자와 이치로 씨가 경영하고 있는데, 저와 참 친하게 지내는 서점인입니다. 제가 지금 컬렉션하고 있는 고서들 가운데 상당수를 기타자와를 통해 구했습니다. 이치로 씨는 지금 한국유학생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열심히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막내 여동생 요시코 씨는 더 일찍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린바 연주자인 큰 여동생 에미코 씨는 이런저런 연유로 예술마을 헤이리의 북하우스 아트홀에서 5년 전에 콘서트를 연 적도 있습니다. 책으로 만들어지는 관계와 우정이라고 하겠지요.우리 일행은 일본의 책과 문화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책방거리와 파주북엑스포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문제의식과 당위성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제대로 한번 해보자면서 손을 맞잡았습니다.파주북엑스포에 그 가치 오롯이출판문화는 우리들 삶의 모든 장르와 연관됩니다. 개인과 공공의 삶의 정신적사상적 기초이자 국가사회 발전의 실천적 전략입니다. 이상적인 정치경제문화국제과학교육예술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입니다.우리의 이번 도쿄 여행은 책과 책의 문화를 찾아나서는 기회였지만, 사실은 우리들 삶의 전체적 구성과 전략을 모색하고 구상하는 기회였습니다. 파주출판도시와 출판도시의 책방거리, 파주북엑스포는 사실 우리 국가사회 전체의 철학과 방향을 반듯하게 수립하고 그 수준을 끌어 올리는 일의 일환입니다.여행이란 새로운 에너지를 우리들에게 공급해줍니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우리는 보다 구체적이고 보다 조직적으로 책방거리 일과 북엑스포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고품격 브랜드의 하나로 파주출판도시를 우리 함께 헌신해서 만들자는 다짐을 하면서 말입니다. 함께 해야 신명납니다. 함께 손잡아야 일이 제대로 진행됩니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봄맞이, 입춘 오기 전에 해야

깊은 산 속, 원숭이들만 모여 사는 마을에 흉년이 들었다. 겨울이 되자 그 해에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산과 들은 온통 눈밭으로 변했다. 동굴 속에 갇혀있던 원숭이들은 식량이 거의 떨어져가자 봄이 올 때까지 남은 먹이를 어떻게 나누어 먹어야할지 토론을 시작했다. 연장자 순으로 나눠야 한다는 쪽, 어린 아이부터 먹여야 한다는 쪽, 배가 고픈 건 누구나 마찬가지이니 그냥 똑같이 나누어야 한다는 식으로 갑론을박하는 모습은 흡사 인간세계를 닮았다.돌연 힘 센 젊은 원숭이가 일어서며 소리쳤다. 무슨 소리들이야? 힘센 자가 먼저 먹고 살아 남아야 종족을 보존해 갈 수 있어! 장내가 술렁거렸고 금세라도 큰 싸움이 일어날 것만 같은 험악한 분위기로 변했다. 그 때 아기 원숭이가 엄마 원숭이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엄마~, 봄은 어디서 오는거야? 순간, 동굴 속이 조용해졌다. 엄마가 대답했다. 봄은 저 먼 산 너머에서 오는 거란다.그럼 우리가 봄을 찾으러 가면 되잖아요? 아기 원숭이가 다시 물었다. 이 바보야, 봄을 어떻게 찾아가? 그냥 여기서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야 해. 봄이 우릴 보지 못하면 굶어 죽어요. 그건 아주 오랜 옛적부터 내려오는 우리 원숭이 세계의 전통이지. 곁에 있던 늙은 원숭이가 점잖게 일러주었다. 어려움 닥치기 전 대비책 계획그 말을 들은 어린 원숭이가 갑자기 몸을 날려 동굴을 빠져 나갔다.봄이 먼저 오지 않으면 내가 봄을 맞으러 갈 거예요! 깜짝 놀란 엄마 원숭이가 아기 원숭이를 잡으러 뛰어갔다. 젊은 원숭이들도 원숭이 모자를 구하러 동굴 밖으로 달려 나왔다. 늙은 원숭이들도 하나씩 앞서 나간 원숭이들을 구하러 뒤를 따랐다. 원숭이들의 행렬이 산길을 덮었다. 며칠 밤과 며칠 낮 동안 수백 개의 산을 넘어 마침내 따스한 바람과 함께 피어나는 봄꽃을 맞이했다는 이야기, 동화다.몇 십 년 만의 추위라나,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게다가 구제역까지 겹치고 줄어드는 일자리 때문에 설상가상이란 말이 실감난다. 대체 얼마나 멋진 봄이 오려고 맹추위가 이어질까? 입춘이 되어서야 봄이라 느끼는 건 원숭이 세계와 빼닮았다. 따스한 바람이 불어올 때 봄맞이를 하면 늦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대비책을 강구하면 낭패를 겪는다. 유비무환, 단어나 외우라고 생겨난 말은 아닐 터이다.요즘 복지논쟁이 한창이다. 정치적인 이해득실을 떠나 진정으로 복지사회가 이루어지길 싫어하는 이는 없겠다. 하지만 좀 나은 사람이 덜 나은 사람을 돌보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도 뭔가 꺼림직한 건 공짜라는 말 때문인 것 같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는 말도 자라면서 귀가 따갑게 들어온 말이다. 굳이 대가는 아니더라도 고마움을 전하는 복지문화를 찾아볼 수는 없는지?역경 끝에 오는 봄의 기쁨 더 값져공짜로 어떤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모두 고마워할까? 도움을 주겠다는 이들은, 도움을 받는 이의 자존심에 대해서도 한 번 쯤 짚어보아야겠다. 여럿이 모인데서 장학금을 전달하며 네가 불우해서 도와주는 것이니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하길 바란다.라며 사진을 함께 찍는 순간, 받는 이는 자존심에 큰 상처받을 수 있다. 마음의 상처가 고마움보다는 복수심으로 자라게 해서는 안 된다. 간밤에 싸락눈이 살짝 내리더니 기온이 다시 올라가고 봄기운이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정말 봄이 오고 있나 보다. 봄은 누구에게나 다가갈 것이다. 연초부터의 맹추위와 지난한 일들로 고생하고 좌절하는 이들에게도 봄은 온다. 그럴수록 봄맞이하는 기쁨은 커질 것이다. 역경을 겪고 다시 피어날 꽃들은 내성도 강할 것이다. 우리 주변의 모두에게 화사한 희망으로 다가갈 것이다.봄을 찾아 나선 아기 원숭이처럼, 마음의 봄을 찾아 떠나 보자. 강우현 남이섬 대표이사

옻나무의 생명력

몇년 전 원주 사는 K시인을 따라 옻나무 밭에 간 적이 있었다. 어려서 옻 오른 사람을 동네에서 마주친 기억이 있었다. 징그럽기가 그지 없었다. 온 몸이 벌겋게 부어 오른데다가 부스럼이 더덕더덕한게 여간 볼썽 사나운 것이 아니었다.약간 염려가 되었지만 수천 평 되는 평지에 옻나무만 가득 심은 옻나무 사이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많은 옻나무 중 한 그루도 성한 나무가 없었다. 밑둥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흉칙스런 칼자국이 쭉 나있었다. 어떤 옻나무는 칼금을 수없이 맞은 채로 서서 죽은 나무도 있었다.K시인의 설명에 의하면 옻칠에 쓰이는 옻나무 진은 칼로 나무에게 깊게 상처를 낼 때 그 곳에 고인다고 한다. 칼을 맞은 옻나무가 온 힘을 다해 그 상처를 치유하려고 상처있는 쪽으로 진액이 몰려간다고 한다. 그 때 사람들은 그릇을 거기다 대고 흐르는 진액을 받는다.옻나무 깊은 고통속에 진액 얻어다음 진액을 받기 위하여 상처가 있는 그 나무에다 다시 새로운 칼금 서너 개 더 그어놓으면 그 부위에 진액이 몰려 사흘 후면 많은 옻액을 수거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수없이 칼금을 맞은 옻나무는 죽게 되고 새로 심은 옻나무는 칼을 맞게 되는 줄도 모르고 무럭무럭 자라난다고 했다.그 날, 옻나무밭에 옻나무의 상처들을 바라보면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아름다운 질 좋은 윤기를 낼 수 있는 옻칠이 그런 고통 과정을 견디며 얻어지는 줄 몰랐다.옛날에 부자들은 관을 썩지 않게 하려고 관에다 비싼 옻칠을 두껍게 입혔다고 한다. 오랜 시간 썩지 않고 땅 속 습기에도 견디는 까닭은 이런 고통스런 옻나무의 삶에서 연유된 것이 아닐까.우리 몸도 옻나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 몸에 상처가 생기면 우선 그곳이 통증과 함께 부어오른다. 이는 우리 몸의 에너지가 상처 난 곳으로 이동하여 힘이 총 집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치료하고 나도 상처는 금세 낫지 않는다. 서서히 통증이 가시면서 집합된 에너지도 긴장을 풀고 서서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상처 이기는 회복력 우리몸과 닮아과일을 깎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을 살짝 베기만 해도 그 쓰라림은 아물 때까지 계속되는데 온 몸에 칼금을 맞고 진액을 흘리고, 멈출 때가 되면 또다시 칼금을 그어대는 사람들에게 옻나무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그래서 그 옻칠은 그렇게 강력한 칠이 될 수 있고 썩는 것도 멈추게 할 수 있으며 백년 이백년 지워지지 않는 칠로 남아있게 되나보다.옻나무밭에 다녀와서 나는 한 편의 시를 썼다.원주, K시인을 따라/ 옻나무밭에 갔었다./ 심장은 놔두고/ 밑둥부터 위로 올라가면서/ 수십 번 더 그어진 칼금/ 저건 숲이 아니다./ 고통이 득실거리는 겟세마네 동산./ 죽을까 말까 머뭇거릴 때마다/ 다시 메스를 댄다./ 심장은 두근거리게 놔두고./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피를 내주고 있다./ 몇백 년 썩지 않을/ 힘을 내주고 있다./ 옻나무밭에서/ 수천 개의 못자국을 보았다./ K시인과 함께내가 시를 가르치는 문예창작학과, 시창작 시간에도 옻나무의 고통에 대하여 학생들과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해 가을 학생들과 문학기행 가는 길에도 원주의 그 옻나무밭을 들렀다. 작가가 되는 길, 시인이 되는 길에 꼭 필요한 실습장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옻나무밭에 다녀온 것과 가지 않은 것과는 사유의 깊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미 옻나무밭에 서있는 것이 아닐까.최문자 협성대 총장시인

그분 앞에 서서

수석채집이 취미이신 교우 한 분이 멀리 가서 구해온 것이라면서 까맣게 생긴 돌덩이 하나를 받침대와 함께 가져오셨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것이라 목사인 나에게 선물하고 싶어 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저 평범한 돌덩이로 보일 뿐인데 그분은 연신 감탄을 하면서 너무너무 아름답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는 수석에는 문외한이라서 별 느낌이 오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분은 더욱 열심히 설명을 한다. 움푹 파인 쪽을 가리키면서 이쪽의 기암절벽과 절벽 끝에 고고히 서 있는 소나무를 보라는 등, 실선 하나를 가리키면서 이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지 않느냐는 등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만 나에게는 별로 느낌이 오지를 않는다. 한참 설명을 듣고 나니 그럴 듯도 해 보이고 그런 것 같기도 했지만 역시 나에게는 수석을 보는 심미안이 부족하다. 사람은 모든 것을 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이게 마련이다.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세상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면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공처럼 둥글게 만들어져 있다. 또한 둥글게 만들어진 세상은 쉼 없이 자전과 공전을 하며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 때문에 세상의 구조는 이중적이며 또한 복합적이다. 이 세상은 낮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밤이 있고 아침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저녁이 있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도 이중적이며 동시에 복합적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구 한편에서는 한겨울을 지내고 있는가 하면 동시에 지구 반대편에서는 한여름을 지내기도 하고 한편에서는 한낮을 살아가는가 하면 또 한편에서는 한밤중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세상을 단면으로 생각하기보다 이중적으로, 아니 복합적으로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새해를 맞이했지만 세상은 여러 가지 일로 가득 차 있다. 보이는 것마다 어려운 일이고 들리는 소식마다 마음을 어둡게 하는 답답한 소식들이다. 국가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크고 작은 재난과 사건, 사고의 소식들은 우리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근심되게 만든다. 며칠 전 교우 한 분이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남의 빚보증 잘못 서줘서 큰 어려움을 겪고 난후에 집까지 다 없애고 부부가 아들 하나 데리고 트럭으로 생선 장사를 하면서 어렵게 살아가는 가정의 가장이다. 날씨는 추운데 감기 몸살이 겹쳐 장사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목사님! 온몸이 쑤시고 곧 쓰러질 것만 같습니다. 잘 버틸 수 있도록 목사님 기도 좀 해 주십시오. 얼마나 힘이 드셨으면... 코끝이 찡하다. 서 있어야 할 곳 바르게 인식해야세상은 복합적이고 인간의 사고 구조도 복합적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없이 중요한 것은 내가 어디에 서 있느냐 하는 것을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다. 절망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밤은 더 큰 절망일 것이다. 새 아침, 새해, 새날은 더 큰 고통일 뿐이다. 그러나 소망 앞에 서 있는 사람에게 오늘은 내일을 위한 쉼의 은총이다. 그 사람에게 오늘은 새로운 미래를 향한 새로운 디딤돌일 것이다. 어둠이 짙을수록 새벽이 가까워 옴을 느끼며 한겨울은 만삭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봄을 준비하는 계절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사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서 있어야 할 곳을 바르게 인식하고 사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삶의 지혜이다.50여 년 전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3학년 2학기 국어 교과서에는 이런 동시가 실려 있었다. 봄아, 봄아 오너라. 어서 오너라. 봄이 되면 나는, 나는 새로 4학년. 입김으로 호호 유리창을 흐려 놓고 썼다가는 지우고 또 써보는 글자들, 봄, 꽃, 나비 산촌의 추운 겨울밤 큰 소리로 밤새도록 읽고 또 읽으면서 꽁꽁 얼어붙은 대지 아래로 봄이 오는 소리를 들으며 새로 4학년이 되는 날을 기다릴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을 단면이 아니라 둥글게 만드신 그 분 앞에 서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이리라. 반종원 목사

반듯하게 글씨 쓰기와 말하기

서예가 박원규 선생과의 대화로 한 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서예평론가 김정환 씨가 묻고 박원규 선생이 대답하는 형식으로 제법 큰 책입니다. 책 제목을 박원규, 서예를 말하다라고 붙였습니다.서예란 동아시아 인문학의 최고경지를 의미합니다. 동아시아의 정신과 사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예술입니다. 지식인들과 선비들에게 서예란 필요충분조건이었습니다.예로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했습니다. 언어와 글씨를 제대로 쓰고 사용하지 않고서는 반듯한 정신과 삶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반듯하게 글씨 쓰는 일이란, 그 행위를 넘어서는 인문적 경지를 말할 것입니다. 한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구성하는 지식인들 또는 선비들에게 요구되는 서예란 나라와 사회의 문화적 역량입니다. 반듯하게 글씨 쓰는 것은 곧 바른 언어, 바른 공동체를 의미합니다.오랜 친구인 박원규 선생과 우리는 서예의 의미에 대해서 늘 이야기해왔습니다. 한 시대의 정신과 사상을 담아내는 한 권의 책도 우리 민족공동체의 삶을 지탱하는 문자로 구성되는 것이고, 그렇기에 책과 서예도 사실은 같은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나라사회의 문화적 역량우리 출판사가 기획하는 이런저런 전시와 문화행사 때마다 준비되는 방명록을 살펴보면서 큰일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방명하는 글씨의 수준이 안타까울 정도로 시원찮습니다. 자기 이름도 반듯하게 쓰지 못합니다. 이런 글씨로 어디 반듯한 정신과 삶이 구현될 수 있을까! 이런 글씨로 말을 바르게 할 수 있을까!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과 선비들이 붓을 던져버렸습니다. 신언서판의 오랜 전통이 무너졌습니다. 글쓰기와 말하기가 무절제하고 혼탁해졌습니다. 컴퓨터가 가져온 지식정보혁명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듯하게 글씨 쓰고 올바르게 말하는 정신적문화적 행위까지 던져버린다면 이건 분명 천박한 문화임에 틀림없습니다. 반듯하게 글씨를 쓰고 올바르게 말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과 정보를 표현하는 이상의 문화행위정신행위입니다.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습자시간을 부활시켜야 합니다. 연필과 펜과 만년필과 붓으로 글씨를 쓰게 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컴퓨터라는 디지털교육과 함께 손으로 글씨를 일상으로 쓰게 하는 아날로그교육이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한자도 가르쳐야 합니다. 붓과 펜으로 한자를 쓰게 하는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글이 우리 문자이듯 한자도 우리 문자입니다. 이 지식정보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이 창조적 상상력이라는 이야기를 너도나도 합니다. 상형문자인 한자는 창조적 상상력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박원규 선생과의 대화집은 서예만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문자와 서예를 통해, 배우는 일이란 무엇이며, 고전이란 무엇인가를 담론합니다. 언어가 무엇인가를 토론합니다. 동양의 인문학이자 예술학으로서의 서예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오늘 한국의 인문학이 지향할 바를 말하고 있습니다.지식정보 이상의 문화정신행위출간과 함께 예술마을 헤이리에서 박원규 선생의 서예전을 시작했습니다. 책과 전시를 통해, 특히 젊은이들이 서예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합니다. 전시장에서 서예가와 직접 대화하면서 서예체험을 하게 하고, 서예교육 또는 글쓰기와 말하기를 반듯하게 하는 교육과 운동을 우리 함께 펼치자는 그런 의도입니다.서예가서예동호인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퇴직 후에 서예를 배우겠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어린이들이나 젊은이들이 서예를 배우게 하고 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교육운동문화운동이 더욱 절실합니다. 이 21세기에 신언서판 운동을 새롭게 펼치는 운동을 하고 싶습니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촌티 살리기

내 고향은 충북 단양이다. 중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내 별명은 촌놈이었다. 서울 생활이 처음이라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 있었는데 별명까지 촌놈이었으니 기를 펼 수가 없었다. 뭔가를 잘 하면 촌놈이 제법이라 했고 실수라도 하면 촌놈이니까라며 놀려댔다. 나름으로는 촌티를 안 내려고 애를 썼지만, 그게 바로 촌티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10년 전 남이섬 대표를 맡았다. 하지만 디자이너로 도시 생활에 익숙해 있던 서울티는 가평과 춘천의 경계점에 있는 유원지를 경영하는데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행락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널려있는 남이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청소뿐이었다. 쓰레기들을 보며 고향을 떠올렸다. 신문지로 봉지를 만들고 음식 찌꺼기를 모아 돼지 키우던 시절, 세숫물은 채소밭에 뿌려주고 마당 청소하다 나온 검불을 불쏘시개로 쓰던 기억들이 소중하게 다가왔다.道만의 촌스러움 훌륭한 관광 소재쓰레기가 넘치는 유원지를 관광지로 바꾸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유원지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은 비웃기만 했다. 월급도 제 때 못주면서 관광지를 만든다니, 테마파크 하나 만드는데 얼마나 큰돈이 들어가는 지 알기나 하냐고. 테마파크를 꼭 돈으로 만드나? 쓰레기가 넘치면 쓰레기 테마파크를 만들지. 그래서 시작한 것이 재활용이었다. 쓰레기는 쓸 애기로!, 버릴 것이라도 잘 다듬고 닦아서 아기를 키우듯 다시 살리자는 뜻이다. 가지치기한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굴러다니는 자갈들을 모아 담장을 쌓으며 고향의 촌스러운 풍경들을 살렸다. 때마침 드라마 겨울연가의 성공으로 손님이 급증했다. 2001년 27만명에 불과하던 남이섬 방문객은, 한류와 쓰레기 테마로 올해 200만명을 넘어섰다.경기관광, 촌티로 승부하라.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촌스럽다는 것은 독특한 개성이 살아있다는 증거다. 세속의 때가 덜 묻었다는 뜻이다. 경기도에는 촌스러움이 수없이 살아있다.중국 대륙을 품을 기세로 길게 뻗어있는 서해안을 보라. 휴전선을 머리띠 삼아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감싸 안고 있는 드넓은 경기 땅과 남한강 북한강의 물줄기들, 그 땅에서 생겨나는 갖은 먹을거리며 구경거리는 모두 경기도만의 촌스러움이고 관광자원이다. 이제는 고향의 촌스러움을 팔 때가 됐다. 논두렁 밭두렁, 들판의 잡초들, 바닷가 옛집의 낡은 어구들, 골짜기의 낡은 음식점까지, 약간 촌스럽긴 해도 경기도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콘텐츠를 다시 찾아내야 한다.가끔 우리 경기도에는 관광자원이 없어요라는 말을 듣는다. 그러나 있다. 많다. 널려 있다. 쓰지 못하거나 소중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지역 간의 시샘이나 경쟁도 관광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데 착안해야 한다.음식점 등 관광 콘텐츠 다시 찾아야지난 주 여주도자세상 상량식이 있었다. 한국 최대의 도자쇼핑센터로 육성할 모양이다. 전국 도예인 가운데 50% 쯤 경기도에 거주한다는 근거 하나만으로 세계의 도자를 경기 여주로 모아놓고, 도자기를 살 사람은 모두 여주로 불러들이겠다고 한다. 세계적인 명품은 하나의 브랜드로 승부할 수 있지만 지방의 군소 브랜드는 뭉쳐야 산다. 비슷한 것끼리 차별화를 시도하다간 홍보비만 낭비할 뿐이다. 쌀을 사려면 어디로 가고, 인심 좋은 고장은 어디, 평화를 느끼려면 어디, 등등 이미지를 몰아주는 게 테마 관광 사업이다.고향의 촌스러움에 부끄러워하던 기억이 남아있지 않은 한국인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기분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이미지라면, 관광은 그걸 가시적으로 이용하는 사업이다. 촌티야말로 한국 이미지의 집합체다. 촌스러움을 경기 스타일이라고 가정한다면, 집집마다 전해져 내려오는 모든 전통이나 인심까지도 독특한 관광 소재가 될 것이다. 촌티 음식에 촌티 서비스에 촌티 패션, 새해부터는 한국의 촌티를 모두 경기도로 모아 보자. 강우현 남이섬 대표이사

탈피

껍질의 사랑은 대단하다. 깊은 겨울 지리산 산자락을 걸으면서 빼곡히 서 있는 나무들을 곁에서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있다. 하나같이 나무껍질들은 거칠고 갈라지고 구멍이 뚫리거나 부서져 있었다. 얼마 안 가서 곧 허물어질 듯한 모습이었다. 껍질들이 그토록 생명을 걸고 감싸고 있는 알맹이의 존재는 무엇일까?유년시절 어머니께서 가끔 혼잣말처럼 하시던 말씀이 기억난다. 에미는 네 껍질이야.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껍질이란 그 말은 매우 쓸쓸한 단어였다. 알맹이의 눈부신 출현을 위해서 언젠가는 막 까서 버려도 좋은, 기억조차 안 되는 껍질의 역할을 말씀하신 것 같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마음을 잡지 못했다. 굳은살이 박히기까지 얼마 동안 껍질을 잃은 생살로 살면서 마음 여기저기가 무척이나 아팠다.껍질을 깨는 혹독한 고통 극복얼마 전 껍질의 사랑이란 시를 쓴 적이 있다. 껍질들은 각기 개체의 몸에 붙어 있다가 새로운 몸의 창출을 위해 몸이 껍질을 버려야 하는 순간 몸과 이별을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인다. 몸이 온몸을 비틀며 껍질을 떼어 내려고 몸부림치면 껍질은 금이 가 찢어지고 깨어져 하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몸에서 떨어져 나와 파편처럼 나뒹굴어야 한다. 그래서 껍질의 사랑은 안타깝고 눈물겨우며 어떻게 보면 비참한 상황을 맞는다. 이러한 비애와 고통이 없으면 몸과 껍질은 같이 죽음을 맞게 된다. 바닷가재는 바닷가재로 성장하기 위해 산란하기까지 25회나 껍질을 벗어던지고 그 후로도 1년에 한 번씩 또 껍질을 벗어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껍질은 단단해져 몸을 가두고 몸 안으로 뚫고 들어가 구멍을 내거나 파괴해 버려 몸은 결국 질식하거나 단단한 껍질에 찔려 죽는다고 한다. 생태계 보전과 순환을 위해서는 이러한 고통스런 탈피는 필연적이다. 그런데 몸이 껍질을 벗을 때는 껍질을 벗은 후 다음 껍질이 생성될 때까지 까진 알몸이 그대로 생살로 노출된 채 얼마 동안을 견뎌야 한다고 한다. 비바람, 흙먼지가 닿거나 후려칠 때마다 갖은 쓰라린 상처를 참으면서 눈물겨운 시간을 견뎌야 새로운 껍질이 만들어지고 다시 새 삶은 시작된다. 바닷가재 말고도 껍질을 벗어야 하는 생물들은 수없이 많다. 현란한 무늬와 컬러로 허공을 날아다니는 아름다운 나비도 사실은 눈물겹게 자기 몸 한 부분을 깎아 내버리는 쓰라린 과정을 거쳐야 했다. 구렁이나 뱀도 허물을 벗어내고는 한 사흘 움직이지 못한다고 한다. 생살로 땅을 기어야 하는 무모한 고통을 두려워 하기 때문이다.변화와 순환 향해 나아가야누구나 변화는 두려워 한다. 지금 있는 그대로가 편하고 안정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더 혹독한 고통과 만나고 그때는 변화하고 싶어도 정말 변화할 수 없는 지점에 서 있게 된다. 대학이 대학으로 바로 서기 위해서 변화의 물결 위에 서있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회사상과 지식기반이 나날이 변화하는데, 대학만 그대로 있다가는 시대상황의 날카로운 평가에 무너질 수 있다. 총장이 되고 나서 이 변화의 놀라운 속도를 절감하게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이것저것 정책으로 변화를 시도할 때 껍질을 깰 때의 아픔처럼 공동체 구성원의 고통이 수반돼 멈칫거리게 된다. 그러나 껍질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나비가 될 수 없고 창공을 날 수 없으므로 날마다 변화를 꿈꾸고 있다.대학뿐 아니라 한 사람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삼라만상과 사물들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이 눈이 되고 얼음이 되는 모습이라든지 나무가 잎싹을 내고 여름 내 무성했다가 열매를 맺고 다시 죽은 듯이 맨살로 겨울을 견디는 모습은 모두가 살아나기 위한 변화의 모습일 것이다.지리산 산자락에서 본 나무껍질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 날마다 우리에게 변화의 필연성을 일깨워 주시는 것을 느낀다. 세상의 모든 껍질들은 쓸쓸하다. 그러나 그 쓸쓸함이 변화와 순환을 가져다준다.최문자 협성대 총장시인

‘설교하다 자빠졌네’

다 찢겨져 나가고 12월 한 달 남아 벽에 걸려 있는 달력이 무엇엔가 쫓기는 듯 마음을 더욱 더욱 뒤숭숭하게 만드는 오후, 자동차 운전 중에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된 한 여성 개그우먼에 관한 일화를 소개한다. 그녀가 한 재단에서 운영하는 회사에서 특강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때 자신은 죽으면 묘비에 적을 비문을 미리 정해 놓았다고 했는데 그 내용은 웃기고 자빠졌네라고 했다고 했다. 방송을 들으며 혼자 한참을 웃다가 생각하니 의미가 있는 이야기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웃기자고 하는 개그이지만 무언가 주는 메시지가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녀는 남을 웃기는 일이 직업이다. 그 웃기는 일을 평생 천직으로 알고 웃기는 삶을 살다가 죽겠다는 의지가 담긴 내용이 아닐까 생각하니 숙연해지기까지 했다.오늘의 모습은 지나온 삶의 결과사람은 죽으면 모두 무덤에 자빠질 것이다. 돈을 벌려고 동분서주하다가, 정치를 하다가, 노래를 부르다가, 웃다가, 울다가, 싸우다가 자빠질 사람 등등 각자 자기의 직업에 따라 하던 일을 멈추고 자빠질 것이다. 단 무엇을 어떻게 하다가 거기에 자빠져 있느냐 하는 것이 다를 뿐 예외 없이 자빠질 사람들이다. 인생은 살아온 삶을 모두 종합해 행주를 짜듯 꽉 짜면 두 단어가 남는다. 하나는 감사라는 단어와 또 하나는 후회라는 단어이다. 어떻게 살다가 자빠지면 후회가 없을까?죽은 자는 말이 없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그 말이 반드시 옳은 말은 아니다. 죽은 자도 말을 한다. 흔히 지나간 세월을 허탈해 하고 내 인생가운데 다 흘러간 것으로 치부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시간과 세월은 절대로 흘러 없어진 것이 아니다. 내 인생 가운데 고스란히 축적돼 내 안에 있다. 오늘의 내 모습은 지나온 내 삶의 결과이다. 지난날의 내 삶의 이야기는 오늘 감사로 귀결되기도 하고 후회라는 단어로 남기도 한다. 그러기에 인생은 죽어서도 말을 한다. 무덤에 자빠진 후에 일간지의 한줄 머리기사로, 혹은 사람들에게 한마디의 단어로 오르내리기도 한다. 나는 목회를 하는 사람으로서 평생을 설교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다. 설교하다가 자빠질 사람이다. 더 나아가 자빠져서도 설교할 사람이다. 설교자는 죽어서도 설교자이다. 살아서도 좋은 설교자여야 하고 무덤에 자빠진 후에도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살아있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감동을 준 설교는 무덤에 자빠진 후에도 여전히 힘이 있을 것이다.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다 설교자이다. 살아서 뿐 아니라 무덤에 자빠져서 설교할 사람들이다. 정치는 이렇게 하는 것이라고, 돈은 이런 것이라고, 명예와 권세는 이런 것이며 그래서 인생을 후회 없이 살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설교할 사람들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하루하루의 삶은 무덤에 자빠져 외칠 설교 원고를 쓰는 것이다.감사하며 후회없는 인생 살아야어떻게 살아야 할까? 어떤 원고를 써야 할까? 지금도 자빠져서 설교하는 두 분에게서 배우고 싶다. 한 분은 기독교인 뿐 아니라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도 다 알만한 솔로몬이란 분이다. 그는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지혜의 마음을 구했다. 지혜의 마음의 의미는 듣는 마음을 의미한다. 내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늘의 소리와 땅의 소리를 듣는 지혜를 구했다. 또 한분은 솔로몬의 친구 아굴이란 분이다. 그 사람을 알려면 그의 친구를 보라고 했던가, 솔로몬에게는 좋은 친구가 있었다. 솔로몬은 그의 자서전 격인 잠언 서에서 그의 친구 아굴의 기도문을 소개한다. 그는 평생에 두 가지 소원이 있다고 기도한다. 하나는 평생에 진실한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라는 것과 겸손한 삶을 살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해 끝자락에서 두 분의 기도를 마음에 담고 기도의 손을 모은다. 반종원 목사

동아시아 인문독서대학을 준비하면서

지난달 25일부터 4일 동안 대만을 다녀왔습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 제13차 회의를 했습니다. 이번에는 동아시아인문독서대학의 개설을 집중적으로 토론했습니다. 6년 전부터 인문도서를 주로 출판하는 한국중국일본대만홍콩의 출판인 30여 명이 책을 통해 동아시아의 발견을 시도하고 있습니다.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동아시아 출판공동체독서공동체 구현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책으로 소통하고 책으로 동아시아의 문화시대를 새롭게 열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출판인편집자들의 생각입니다.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가진 동아시아가 근현대에 오면서 서구에 침식당하고, 서구의 이론과 사상에 경도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21세기에 반듯한 인간과 사회를 세우는 정신과 사상의 근거로써 우리는 동아시아의 정신과 사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것을 책으로 만들고, 그 책을 읽는 문화운동으로써 우리는 동아시아출판인회의를 발족시켜 나름대로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동아시아의 국가들과 그 민족들은 본래 같은 책을 읽었습니다. 근현대에 오면서 그것이 단절되고 상처받았습니다. 전쟁과 침략과 갈등으로 지적문화적 교류와 소통이 파괴됐습니다.여러 차원에서 동아시아는 이제 밀접한 연관을 맺어가고 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갈등하면서도 동아시아공동체라는 말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는 그러합니다. 이 변모되고 있는 동아시아 전체 차원의 살림살이 속에서, 일련의 의식 있는 인문학 출판인들이 손잡고, 우리 출판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동아시아 차원의 책의 문화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모색하고 있습니다.우리는 3년의 작업 끝에 지난 4월 동아시아인문도서 100권을 선정발표했습니다. 20세기 중후반 동아시아에서 출간된 명저와 문제작들은 현대 동아시아의 지적사상적 성과입니다. 동아시아 차원의 주체적 문제의식의 구체적인 표현입니다. 한국중국일본에서 각각 26권씩, 나머지가 대만홍콩의 책들인데, 우리는 각국어로 이들 책들의 해제집을 펴냈습니다.동아시아출판인회의는 이 책들을 각 나라 언어로 번역해서 출판하는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서구 일변도로 번역출판되는 문화적 불균형 상황 속에서, 이들 책을 번역하는 일은 동아시아적 문화운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아시아 문화사 또는 동아시아 출판문화사에 일찍이 없었던 하나의 역사적 사건입니다.동아시아에는 어디 이들 책만이 존재하겠습니까. 다양한 문제의식의 책들이 수다하게 기획되고 저술되고 출간됩니다. 동아시아출판인회의의 회원들은 동아시아인문도서 100권뿐 아니라 지금 힘차게 전개되는 동아시아 출판문화를 또한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들 책을 소개하고 출판하는 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시민들이 함께 동아시아 책을 구체적으로 읽고 토론하는 동아시아인문독서대학을 개설하려는 것입니다.폭력과 전쟁, 물질과 갈등이 난무하는 이 21세기에, 일련의 출판인들이 대학기업미디어와 손잡고 강좌를 개설해서 동아시아의 정신과 사상, 가치와 이론을 학습하는 출판운동문화운동은 참으로 의미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동아시아의 시민들지도자들CEO들교육자들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되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운용돼야 하는가를 논구하고 성찰하는, 동아시아학을 함께 학습하는 지적 실천과 인식은 동아시아 유교문화권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의미할 것입니다.동아시아의 미래를 책으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이 동아시아출판인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출판인들의 문제의식입니다. 동아시아인문독서대학도 같은 문제의식입니다. 동아시아의 책을 읽는 시민들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시대를 창출해 낼 수 있습니다. 김 언 호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세금을 아끼는 창의산업

지금은 창의력 경쟁시대다. 정치경제사회문화스포츠와 관광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창의적 접근을 요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그러나 창의력이 별건가?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능력이다. 그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 자체가 구태의연할 만큼, 이미 상식화된 지 오래다.문제는 행동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걸 받아들이는 조직이나 사회의 안목이 없으면 괴짜들의 공상망상에 그치고 만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실현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아이디어가 실현되려면 자본과 노동 등 이해 당사자들의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민족이 창의성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었을까? 평범한 이해 당사자들의 상충된 논리를 극복하지 못한 괴짜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창의성 검증을 요하는 문화산업지난 달 중국 베이징에서 제5회 국제창의산업엑스포가 열렸다. 전기전자 등 첨단산업은 물론 도자기나 전통음식까지 모든 화두가 창신(創新), 창의적으로 새롭게였다. 창의를 향한 길은 국가가 만들겠다. 인민은 그 길을 부지런히 달려가시라. 작년부터 등장한 이 구호는 창조사회를 꿈꾸는 이들에게 기대와 희망이 됐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부나 지자체가 벌이는 각종 공공사업들이 얼마나 창의성에 기반을 두어야 하는지, 창의력 시대에 세금을 어떻게 쓰는 게 좋은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지난 주, 난생 처음 도의회 증인석에 섰다. 문화관광위원회 행정감사 자리였다. 오전부터 밤 아홉시 반까지 호되게 감사를 받았으니 지치고 짜증스럽기도 했어야 하는데 다음 날 아침, 이상하게도 마음이 개운함을 느꼈다. 가슴 속의 체증 같은 것이 사라지고 뭔가 알 수 없는 희망 같은 것이 다가왔다. 가끔 뉴스에서나 보아오던 국회의원들의 방대한 자료요구와 수박 겉핥기식 행태를 우려했지만, 지역사업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과 관심도는 달랐다.제출된 자료를 꼼꼼히 살피고 구체적인 부분까지 관심을 갖고 질의했다. 세금을 낭비하지 않도록 따지면서도 진솔하게 당부하는 모습,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창의 문화산업에 대해 공부하는 자세로 진지하게 다가오는 질문들은 기존의 의회에 대한 선입견까지 바꿔 주었다. 좋은 아이디어에는 격려까지 해주는 넉넉함도 있었다.창의력에 바탕을 둔 문화산업은 초기 단계에서 성공의 근거를 제시하기에 가장 어려운 분야다. 성공보다는 실패 확률이 더 많다. 그래도 대부분의 마스터플랜 기획자들은 장밋빛 사업계획을 들고 예산을 확보하는 데 이골이 나 있다. 예산은 곧 세금이다. 자신의 돈으로 사업계획을 짠다면 성공보다는 실패 대비책을 먼저 짜는 것이 순서다. 예산도 적게 짜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런 계획은 예산심의를 통과하기 어렵다. 그래도 믿어 줘야 하는 것이 창의산업이다. 그런데 누구를 믿나? 지휘자를 믿고 오케스트라를 믿어야 한다.지휘자만 알고 있는 악보도 있다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먼저 악기의 특성과 악보를 이해해야 한다. 지휘자의 머리 속에는 곡의 특성과 분위기가 이미 그려져 있다. 그걸 모두 언어로 전달할 수는 없다. 그래서 때로는 부분을 강조하며 지휘하기도 한다.공공사업에 있어 창의력이 자리를 잡기 어려운 이유는, 지휘자의 상상세계를 객관적 수치로 입증해야 한다는데 있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사회는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요구하면서도 그걸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이중적인 잣대를 쓴다. 세금이라고 하는 공공재가 투입되는 까닭이다. 공정성과 객관성은 매우 중요하지만 창의성이 떨어진다. 성공 확률도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창의산업의 성공을 원한다면, 지휘자의 상상력과 양심을 믿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생각을 아이디어라 할 수 없듯이, 창의력을 검증하려는 생각을 잠시 접어 보자. 그래야 세금도 아낄 수 있다. 헛일로 세월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강우현 남이섬 대표이사 한국도자재단 이사장

가면부부

독일에서 출간돼 50주 연속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25개국에 소개된 화제작이 있다. 페르디난트 폰 쉬라크가 지은 책이다.유명한 독일 의사인 페너가 48년간 대화 없이 살면서 서로 미워하다가 욕설을 퍼부은 아내를 도끼로 살해하는 이야기다. 남들이 보기에는 너무 행복하고 그럴듯하게 보였지만 부부는 서로 비난하고 미워하면서 최악의 48년이란 긴 악몽의 시간을 보냈다.매체를 통해 보면 이 시대는 페너부부 말고도 행복의 탈을 쓰고 긴 시간 이혼하지 않으면서 불행하게 살고 있는 부부가 적지 않다. 남들 앞에선 행복하게 잘 사는 척하지만 집안에서 가면만 벗으면 원수처럼 등을 돌리고 말 없이 사는 부부가 허다하다고 한다.서로 마주치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부는 서로의 일정을 어긋나게 조정하고 심지어 한집에 살면서도 밥도 따로 해먹는다. 대화는커녕 눈길 한 번 안 주고 소통은 냉장고에 붙여진 메모지에 서로 필요한 것만 얼음처럼 차가운 문장으로 적는 것이 고작이다. 어떤 노부부의 기막힌 7년간의 가면부부 이야기도 있다. 노부부는 탈을 벗고 끝내 이혼소송에 들어갔지만, 정말 어처구니없는 가면부부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이 시대는 많은 가면부부를 양산하고 있다. 이 가면부부들이 더는 못 참고 이혼하게 되는데, 대화가 끊겨 있기 때문에 이혼하고 싶다는 이혼 사유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많은 부부가 미움이나 비난을 가면으로 가리고 있다.퍼소나(Persona)란 용어는 탈, 또는 가면으로 번역되는 문학용어인 동시에 인간이 세상에 내보이는 외적인격의 상징물이다. 인간은 자아와 이 세계와의 갈등 관계로 늘 혼란을 겪는다. 자아가 부정적일 때 인간은 자기 봉쇄적 방법으로 탈을 쓰게 된다.탈을 쓴 탈 속의 자아는 거리낄 것 없이 자유롭고 멋있고 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 그러나 탈 속에 숨겨진 실재적 자아 때문에 인간은 분리에 대한 인식이 날카로워지고 자아는 더욱 고립적이 된다.이 시대는 이러한 이중적 자아가 내적 갈등을 겪으며 살아가기에 아주 좋은 시대이다. 인간들이 쓰고 있는 탈은 다양하다. 가장 어두운 표정의 실재 위에 가장 밝은 탈을 쓰고 있을 때라든지, 가장 불행한 부부가 쓰고 있는 행복의 가면, 악마적 상상을 하고 있는 얼굴 위에 성자의 정결한 탈을 쓰고 있을 때도 있다. 이때 탈 속의 실재 자아는 자기가 자기를 타인으로 여기기도 하고 순간적이지만 자기가 아닌 쓰고 있는 탈의 흉내를 훌륭히 해내기도 한다.가면을 쓰지 않을 때 할 수 있었던 증오, 비난, 모욕, 경멸, 폭언들이 가면 하나 쓰고 나면 모든 것이 해결이나 된 듯 잠시 정지되고, 그치게 된다.윤동주의 참회록이라는 시를 잠깐 소개한다. 시인 윤동주도 자기의 욕된 얼굴과 외형으로 드러난 자신과의 괴리를 참지 못해 자기가 자기 얼굴을 문지르는 것을 시에서 읽을 수 있다.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 이다지도 욕될까?/ 중략 /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어 보자. /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 슬픈 사름의 뒷모양이 /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참회록의 한 부분이다. 시인은 자신을 욕된 역사의 유물이라고, 역사에 짓눌려 있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한다. 윤동주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끊임없이 닦으면서 녹, 즉 가식의 근원인 퍼소나를 지우면 자기를 찾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여기서 거울은 퍼소나를 쓰고 있는 나를 비춘다. 거울에 비춰진 얼굴은 실재의 자기가 아니고 역사의 굴욕적인 유물인 퍼소나이다. 윤동주는 탈을 쓰지 않은 참 자기를 찾기 위해 철저하게 참회한다.이 시대의 아침, 어느 가면부부 한 쌍이 퍼소나를 벗어던지며 이처럼 서로에게 정결한 참회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유쾌할까?최 문 자협성대 총장시인

파주출판도시 책잔치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지금 내년 파주출판도시 일원에서 열릴 가을 큰 책잔치 준비에 한창입니다. 우리들 공동체의 삶을 반듯하게 일으켜세우는 이론과 사상으로서의 책과, 책의 문화를 몸과 마음으로 한껏 체험하고 그 의미를 제대로 인식해보자는 것입니다. 이 지상의 아름다운 책들이 어떻게 생성존재하며 우리들의 일상이 책의 문화와 어떻게 연계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는 것입니다.우리가 구상하는 책 축제는 여느 책 축제 방식을 극복하자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책 축제 또는 책 행사는 저자 또는 출판인들이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파주책축제는 독자를 그 중심에 놓으려 합니다. 한 시대와 한 사회를 일으켜세우는 책의 문화는 사실은 독자에 의해 완결됩니다.책을 쓰는 저자, 책을 만드는 출판인도 출판문화 창출의 주체들이지만, 무엇보다 독자가 그 필요충분 조건입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책 축제는 독서인독자를 주역으로 내세우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전제합니다. 책문화의 주체적 수용자로서, 책의 콘텐츠를 평가하는 독서인독자들 없이 책의 문화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빈으로 책의 내용을 읽고 비평하는 세상의 독서인독자들을 초대하려 합니다.이젠 독서인독자의 시대입니다. 저자의 정신과 이론과 사상이 독서인독자에 의해 자리매김됩니다. 저자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독자가 저자입니다. 저자가 독자입니다. 한 장르에서 독자이지만 다른 장르에서는 저자가 됩니다.출판사들이 운집해 있는 파주출판도시는 책의 주체인 수많은 저자들과 연계돼 있습니다. 아마도 수천명의 저자들을 초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에서 책을 펴낸 외국의 저명한 저자들도 물론 초대될 것입니다. 이렇게 초대받은 저자들은 깨어있는 독자들과 담론할 것입니다. 독자들과 저자들은 출판문화의 주체로서 서로의 견해를 주고받는 아주 유익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국내외의 출판인편집자디자이너들이 아울러 초대됩니다. 책의 문화에 물적 재료를 공급해주고 구체적인 생산을 맡는 종이회사 관계자와 인쇄제책 관계자들이 물론 초대됩니다.우리들의 책 축제에는 책으로 가르치는 교육자들과 학부모들, 한 시대의 책의 문화를 온축시키는 도서관인들이 당연히 초대됩니다. 책문화의 정책관계자들도 초대돼야 합니다. 책의 문화 뒤켠에서 책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구체적 동력이 되는 이들의 존재가 사실은 망각되거나 무시되고 있음에 우리는 주목합니다. 이들 출판 문화의 숨은 주역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책의 문화, 새 차원의 지식정보를 토론하는 축제가 될 것입니다.파주책축제는 우리의 문화적 삶과 연관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책의 모든 주체들이 함께 기획하고 함께 누리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책과 연관되지 않은 장르가 이 지식정보시대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창출해내는 콘텐츠, 보다 창조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과 정보와 에너지를 체험하고 축적하는 그런 축제를 우리는 지금 준비하고 있습니다.세상에는 축제도 참 많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책축제는 생산적인 지성과 아름다운 감성을 경험하고 축적하는 그런 기회가 돼야 합니다. 파주출판도시는 당초부터 이런 축제를 생각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파주출판도시의 이런저런 출판공간들이 독자들에게 공여돼야 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파주출판도시 책방거리의 기획도 책축제와 같은 문제의식으로 구체적인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김 언 호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시아버지가 차려준 아침상

엄마 아침밥 먹으러 가도 돼요? 한 40분 후에 아내의 핸드폰에 문자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해 말 결혼한 아들 녀석의 문자다. 아들 내외는 모두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늦잠을 자서 아침밥을 못 먹게 됐는지, 아니면 그날따라 아침밥이 먹고 싶었는지 제 엄마에게 문자를 넣었다. 새벽 예배드리고 들어가 누워있는 아내를 깨우기가 안쓰러워 그래 오너라 라고 대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나서 얼른 넥타이만 푸르고 앞치마를 두르고 밥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넣고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고 나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두부도 있고 콩나물, 무도 씻어 손질해 놓은 것이 보인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커다란 동태도 있다. 얼른 두부는 썰어서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냉동실 동태를 꺼내 손질해서 무와 콩나물을 넣어 찌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치 깍두기를 상에 올려놓고 아침상을 준비했다. 몇 가지 반찬 뿐 이었지만 그런대로 밥상이 차려졌다. 밥상을 차려놓고 아내를 깨우면서 애들이 아침 밥 먹으러 온대요 했더니 깜짝 놀란다. 아무것도 준비 안됐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그래도 일어나라고 했더니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간 아내는 또 한 번 깜짝 놀라면서 왜 깨우지 그랬느냐는 것이다.사실 나는 군대 생활할 때 부대장 숙소에서 관사병으로 근무를 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부전자전이라던가. 내 아들 녀석도 부대장 숙소 관사병으로 근무를 했는데 세월이 흘러서 같은 관사병이라도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숙소에서 혼자 계시는 상관 식사수발을 다 들고 그야말로 온갖 집안 제반사를 다 하는 보직이었던 반면에 아들 녀석은 장교식당에서 식사를 날라다가 수발하고 숙소에서 하는 일도 단순한 일 정도만 하는 보직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세월이 지나면서 관사 병의 근무형태도 많이 달라진 모양이다. 그런 덕분에 나는 아내가 여행이라도 갈 때면 밥 짓기, 세탁하기, 청소하기 등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아내가 해외연수를 가서 여러 날 만에 왔지만 한 끼도 외식을 하거나 굶지 않고 여섯 살 된 막둥이와 함께 잘 지냈다. 그 기간 동안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신 교우 한분이 인근에 오셨다가 들렸다고 방문을 해서 마침 점심준비를 하는 중이라 손님대접까지 해서 보냈다.애들이 미안해 할까봐 아내를 깨워서 앞치마를 막 인수인계하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아들내외가 들이닥친다. 출근시간이 늦었다면서 밥 먹을 시간이 5분밖에 없다고 헐레벌떡 달려와 밥상 앞에 앉는다. 며늘아기도 빨개진 얼굴로 미안해요 어머니, 그냥가도 되는데하면서 함께 밥상에 앉아 아침밥을 먹는다. 그리고는 둘이서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동태찌개며 두부 부침을 다 먹고 남은 것은 맛있다고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갔다. 찌개가 정말 맛있어요하는 새 며느리에게 아내가 오늘 아침 밥상은 너희 시아버지가 준비했다고 피곤해서 누워 있는 사람 안 깨우고 문자온 것 보고 손수 준비를 했다고, 그러니 애들이 얼마나 무안하고 죄송했겠는가. 그래서 애들이 나간 후에 아내에게 왜 쓸데없이 그런 얘기를 해서 애들 미안하게 만드느냐고 한마디 했다. 누가 하면 어떤가, 시간이 좀 있고 할 줄 아는 일이라면 남녀가 따로 있는가, 그래서 부부는 돕는 배필이라 하지 않았던가.점심 때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며늘아기에게서 온 것이다. 아버님 따뜻한 아침밥 너무 잘 먹었습니다. 점심 먹으면서 시아버님이 해 주신 거라고, 신랑은 백점 시아버님은 만점이라고 자랑했어요. 그래 군 생활 3년 관사 병으로 근무하며 밥 짓는 것을 배웠던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쑥스럽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반 종 원은총침례교회 담임목사

시아버지가 차려준 아침상

엄마 아침밥 먹으러 가도 돼요? 한 40분 후에 아내의 핸드폰에 문자가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해 말 결혼한 아들 녀석의 문자다. 아들 내외는 모두 서울로 출퇴근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늦잠을 자서 아침밥을 못 먹게 됐는지, 아니면 그날따라 아침밥이 먹고 싶었는지 제 엄마에게 문자를 넣었다. 새벽 예배드리고 들어가 누워있는 아내를 깨우기가 안쓰러워 그래 오너라 라고 대신 문자를 보냈다. 문자를 보내고 나서 얼른 넥타이만 푸르고 앞치마를 두르고 밥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넣고 스위치를 올렸다. 그러고 나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두부도 있고 콩나물, 무도 씻어 손질해 놓은 것이 보인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커다란 동태도 있다. 얼른 두부는 썰어서 프라이팬에 올려놓고, 냉동실 동태를 꺼내 손질해서 무와 콩나물을 넣어 찌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김치 깍두기를 상에 올려놓고 아침상을 준비했다. 몇 가지 반찬 뿐 이었지만 그런대로 밥상이 차려졌다. 밥상을 차려놓고 아내를 깨우면서 애들이 아침 밥 먹으러 온대요 했더니 깜짝 놀란다. 아무것도 준비 안됐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그래도 일어나라고 했더니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간 아내는 또 한 번 깜짝 놀라면서 왜 깨우지 그랬느냐는 것이다.군생활 관사병 경력 큰 도움사실 나는 군대 생활할 때 부대장 숙소에서 관사병으로 근무를 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부전자전이라던가. 내 아들 녀석도 부대장 숙소 관사병으로 근무를 했는데 세월이 흘러서 같은 관사병이라도 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숙소에서 혼자 계시는 상관 식사수발을 다 들고 그야말로 온갖 집안 제반사를 다 하는 보직이었던 반면에 아들 녀석은 장교식당에서 식사를 날라다가 수발하고 숙소에서 하는 일도 단순한 일 정도만 하는 보직이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세월이 지나면서 관사 병의 근무형태도 많이 달라진 모양이다. 그런 덕분에 나는 아내가 여행이라도 갈 때면 밥 짓기, 세탁하기, 청소하기 등을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아내가 해외연수를 가서 여러 날 만에 왔지만 한 끼도 외식을 하거나 굶지 않고 여섯 살 된 막둥이와 함께 잘 지냈다. 그 기간 동안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신 교우 한분이 인근에 오셨다가 들렸다고 방문을 해서 마침 점심준비를 하는 중이라 손님대접까지 해서 보냈다.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애들이 미안해 할까봐 아내를 깨워서 앞치마를 막 인수인계하고 방으로 들어왔는데 아들내외가 들이닥친다. 출근시간이 늦었다면서 밥 먹을 시간이 5분밖에 없다고 헐레벌떡 달려와 밥상 앞에 앉는다. 며늘아기도 빨개진 얼굴로 미안해요 어머니, 그냥가도 되는데하면서 함께 밥상에 앉아 아침밥을 먹는다. 그리고는 둘이서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동태찌개며 두부 부침을 다 먹고 남은 것은 맛있다고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갔다. 찌개가 정말 맛있어요하는 새 며느리에게 아내가 오늘 아침 밥상은 너희 시아버지가 준비했다고 피곤해서 누워 있는 사람 안 깨우고 문자온 것 보고 손수 준비를 했다고, 그러니 애들이 얼마나 무안하고 죄송했겠는가. 그래서 애들이 나간 후에 아내에게 왜 쓸데없이 그런 얘기를 해서 애들 미안하게 만드느냐고 한마디 했다. 누가 하면 어떤가, 시간이 좀 있고 할 줄 아는 일이라면 남녀가 따로 있는가, 그래서 부부는 돕는 배필이라 하지 않았던가.점심 때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며늘아기에게서 온 것이다. 아버님 따뜻한 아침밥 너무 잘 먹었습니다. 점심 먹으면서 시아버님이 해 주신 거라고, 신랑은 백점 시아버님은 만점이라고 자랑했어요. 그래 군 생활 3년 관사 병으로 근무하며 밥 짓는 것을 배웠던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가?쑥스럽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반종원 은총침례교회 담임목사

장난끼와 유치미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나는 장난을 좋아한다. 말장난, 먹장난, 붓장난, 글장난 등등 그 중에서 나는 말장난이 특히 좋다. 말로 말을 만들고 형상을 생각하며 그림으로 그려보고 또 뭔가를 만들어 가는 상상놀이, 생각의 꼬리들을 이어 가다 보면 일상의 피곤이나 절망감이 사라진다. 말장난은 상상의 시작이다.어린아이 같은 상상놀이에 몰입해 있으면 저절로 젊어지는 것 같다. 한없이 꿈꾸며 달려가던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다시 맛볼 수 있다. 새로 시도하는 일이 실패할 거라는 걱정도 잊혀 진다. 안되면 다시 해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다른 걸로 바꿔서 해도 될 테니까. 아무튼 장난끼는 나이조차 잊게 해 준다.어린 아이들을 만날 때는 장난끼가 자주 발동한다. 그들과 말장난을 하며 함께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나 자신이 다시 동심으로 되돌아감을 감을 느낀다. 아무 것이나 끼적거려 좋고 이거 뭐 같니? 하며 놀아줄 수 있다. 아이들과 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유치해진다. 언어나 행동이 그들의 눈높이에 닿아 있고 시선의 각도마저 닮아가기 때문이다. 유치한 장난끼가 발동한다.끼 살리기를 고령화 정책으로끼는 열정의 또 다른 의미다. 유치함은 창의력을 나타내는 자유로움과 발랄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상상과 창조를 해석하는데 익숙해 있는 이들에게 장난끼를 갖고 유치하게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다.웬만한 자리에 오르거나 나이가 들면 자신도 모르게 권위적으로 변해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자리 값과 나이 값을 해야 한다. 하지만 권위나 나이 값이 어디 폼만 잡는다고 생겨나는 건가. 거들먹거리며 아래 사람들에게 호통이나 친다고 해서 존경까지 받은 수 있는 건 아니다. 나이는 벼슬이 아니다. 세상을 섭렵할수록 머리를 숙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동심으로 돌아가 다시 고개를 들고 해맑은 표정으로 웃어 보자.건강 프로그램은 언제나 인기를 끈다. 술과 고기를 적게 먹고, 금연하고, 기왕이면 야채를 많이 섭취하면서 적당한 운동을 하라. 많이 웃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 대부분의 프로그램이 육체건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육체건강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신건강이다. 단풍철에는 동창 모임들이 잦다. 일흔을 넘긴 이들도 동창생들끼리 만나면 뭐가 그리 재미있고 우스운지 깔깔대며 즐거워한다. 밑도 끝도 없는 어린 시절의 옛 추억에 세상 경험까지 더해지면 무한한 상상들이 꼬리를 물고 금방이라도 세상을 바꿀 아이디어가 된 듯이 기뻐 날뛰기도 한다.새로운 아이디어 개발 큰 도움기분이 좋으면 가뿐한 마음에 몸도 날아갈 것 같다. 무슨 일이 닥치더라도 해낼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겨난다. 자신감은 걱정거리도 사라지게 한다. 용기를 준다. 용기가 없으면 공연한 자존심만 살아난다. 자존심과 자존심이 만날 때 다툼이 생겨나듯, 자존심을 잃으면 열등감으로 이어진다. 나 돈 없다고 깔보는 거야?, 못 배웠다고 깔보는 거야? 이런 어이없는 다툼들을 우리 주변에서 만나기는 어렵지 않다.한국은 이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퇴직자나 고령자를 위한 다양한 사회보장 프로그램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경로형 보호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 유교적 미풍양속을 반대하는 건 아니지만, 일할 수 있는 이들을 뒷방으로 밀어 넣지는 말아야 한다. 고령자들을 위한 창조적 일터,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장끼로 장난끼를 발동할 수 있게 해 준다.노인과 어린이, 노인과 노인들이 유치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장소를 찾아 주자. 굳이 새 시설을 갖출 필요는 없다. 기존의 유치원이나 경로당, 마을회관도 좋다.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마음 놓고 해 볼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떤 사업이나 정책이건 미래를 완벽하게 예단할 수는 없다. 장난끼와 유치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좋은 아이디어일수록 리스크는 많다. 어차피 성공과 실패의 가능성이 절반씩이라면, 장난끼로 열정을 모으고 유치함으로 상상을 모아 보자.강우현 남이섬 대표이사한국도자재단 이사장

괴물

이 시대에는 괴물이 매력 있는 대상으로 등장한다. 괴물이 인간을 향해 가장 잔인한 형태로 보복하고 한바탕 복수극을 치르는 공포영화는 상당한 인기가 있어 얼마 전 영화 괴물에 대단한 관심을 보여준 바 있다.시인 남진우는 공포 영화와 함께 이밤을이라는 시에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대형 화면 가득 산송장이 넘실거린다./ ()끝없이 이어지는 저 괴물의 계보학/ 화면은 순식간에 피로 물든다 (중략)이 시가 나타내고 있는 괴물은 인간들의 억압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을 괴물로 변형해 출현시킨 상징물이다. 사람들은 피로 물든 화면을 바라보면서 실재가 지워진 가상으로 화한 이미지의 재현을 즐긴다.어떤 성화를 위장한, 폭력적인 생명을 가장한 죽음의 행위를 오락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가학성과 피학성이 겹치는 괴물과 인간과의 관계 속 심연은 생명과 죽음의 이중 의미를 지닌다.괴물이란 신화의 말을 빌리면 부자연한 체구 및 부분을 가진 생물을 말하며, 보통 굉장한 힘과 잔인성을 가진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생물체이다.예를 들면 스핑크스와 키마이라를 들 수 있다. 야수의 무서운 성질과 인간의 지혜와 재능을 겸비한 자다. 신화에서는 자주 신이나 영웅에 대적하고 있다.우리가 잘 아는 스핑크스는 테바이시 사람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괴물로서 사자의 몸뚱이에 상반신은 여자였다. 이 괴물은 어려운 질문을 인간에게 던진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인간을 죽여 버린다.어느 날 스핑크스는 한 농부에게 질문을 했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동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선한 농부 오이디프스는 그것은 인간이다라고 대답했다.스핑크스는 자기가 제출한 수수께끼가 너무 쉽게 풀린 데 굴욕을 느끼고 바위 밑으로 몸을 던져 죽어 버렸다. 인간이 괴물을 이긴 신화의 한 스토리다.신화뿐만 아니라 이 시대에도 괴물이 자주 출몰한다. 사람의 몸에 야수의 사상이나 생각을 가진 기형의 생물체라든지, 행복한 얼굴을 가진 인간이 무서운 방향으로 다가가면서 공포의 쾌감을 즐기는 것 등은 분명 괴물의 모습이며 괴물의 행위를 닮고 있는 것이다.괴물은 그 몸이나 생각, 힘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다리에서 목까지는 인간의 것이지만 머리는 줄창 짐승이나 마귀의 생각만 하고 있다면 괴물임에 틀림없다. 한강과 그 주변 둔치를 타고 올라와 히스테리컬하게 언제 나를 공격할지 모른다.괴물은 잔인해 보이지만 가끔 심술도 부리고 엄살을 떨면서 친밀하고 약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괴물의 또 하나의 특징은 감당하기 힘든 식욕과 탐욕이다. 통째로 먹이를 삼키기도 하고 자신의 은신처에 먹이를 저장해 놓기도 한다. 영화 괴물에서 괴물은 이 영화의 출발점에 불과하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이러한 괴물과 맞서 싸운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처절하고 외로운 사투를 벌인다.인간들은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과 사투를 벌인다. 이 시대의 괴물은 잔인하고 공포스러운 모습보다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논리를 가지고 접근해 오고 있다. 가끔 아름답고 우아한 모습 또는 근사한 선물을 가지고 오기도 한다.사람이지만 괴물이 하는 짓을 아무 거리낌없이 해버리는 이 시대의 괴물은 영화 속이 아니라 지금도 인간과 공존하며 분명 삶에서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괴물을 즐기는 것은 어쩌면 내면의 억압된 상처에 대한 자각증상이며 검은 네트워크의 심적 정황이 유발된 심리적 상태일 수도 있다. 가장 위험하고 심각한 문제는 괴물이 현대인의 끔찍한 보복성을 반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 문 자 협성대 총장시인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