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그저 그런 딴따라 정도로만 보았다. 퇴근 길 운전할 때 여기 저기 라디오 채널을 돌리다가 어느 채널인가 멈추면 알아듣지 못할 쿵쾅거리는 팝 음악이 튀어나왔다. 그 음악 배경으로, 역시 무슨 말인지 잘 모를 팝뮤직 해설의 독특한 저음 디제이 정도로만 생각했다. 동류의식이랄까, 7080세대라는 생각에 좀 관심은 갔고, 눈가의 주름살을 보면서 저 친구도 이제 별 수 없이 늙어가는 구먼이라며 속으로 말한 적도 있다. 나 혼자 나이 먹는 것이 서러워서 연예인도 역시 먹는다고 위안을 삼아 본 것이다. 언제인가는 저 친구 텔레비전 가요프로 고정 엠씨도 하네하며, 그 시간에 집에 있으면 그 프로를 보곤 했다.도시 출신과는 달리, 시골에서 자란 나는, FM라디오 혜택이 적어서 그런지, 팝송에 별 관심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다.그런데, 이번엔 일간지 반면에 큼지막하게,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잘 정리되지 않은 허연 머리카락에 역시 반백의 콧수염을 하고 나타났네. 표정은 웃는 것인지 뭔지 잘 모를 특유의 어정쩡한 얼굴로. 그 기사를 읽을까 말까 하다가 그 기사의 헤드라인이 언뜻 눈에 들어왔다. 철이 들까봐 두렵다라고 씌여 있다. 무슨 소리야? 하면서, 내용을 보기 시작했다. 올해로 그는 방송 20주년을 맞는데, 음악과 함께 철들지 않고 즐겁게 살아온 것이 장수 방송의 비결이란다. 그는 20년째 올곧게 팝 음악만 고집해왔단다. 거기다가 방송 20년 동안 한 번도 방송 펑크를 내거나 지각한 적이 없다고 한다. 또 매일 방송 두 시간 전에 도착해 그날 방송을 점검하고 준비했다고 한다. 대단한 프로정신이다. 방송인 배철수씨의 기사다.위와 같이 사회 각 분야에서 수십 년간 고집스럽게 한 우물만 판 사람들은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 분야, 그 일이 좋고 재미있어서 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하여, 또는 다른 할 일이 마땅치 않아서 그런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20여년 동안 한 번도 펑크내지 않고, 또 한 번도 지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일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사람의 이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나는 20여년 변호사로 살아왔지만 나의 변호사로서의 경지와 배철수씨의 팝 음악에 대한 그것에 비교하면 턱 없이 모자란 것 같다. 이 시점에서 그 이유를 생각해 보면, 먹고 살기 위해 변호사로 살아 왔는지, 법률분야가 좋아서 그러했는지,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이 그 분야로 가니 나도 별 목적 없이 따라왔는지, 아니면 하는 일에 보람을 느끼면서 살아왔는지 뚜렷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법대에 진학하고 법조계에 발을 들여 놓을 때의 포부와 목적의식은 흐릿한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그것은 철들지 않고 일해 왔어야 했는데, 철이 너무 일찍 들어 그러한 것은 아닐까. 돈을 벌 목적 등 세속적 목적 없이, 그 분야 자체가 좋고, 그 분야를 사랑하고, 그 분야와 같이 철 없이 부대끼고 놀고 싶은 순수한 마음이 부족해서일까.배철수씨, 우리보다 한 두 살 위인 줄 알았는데, 다섯 살이나 많네요. 백발의 모습이라 좀 들어 보이지만, 철 없이 살아 왔다니, 만나서 대화가 통할 것 같은 동년배 같은 느낌이 드네요.고락에 겨운 내 입술로 - 모든 얘기 할 수도 있지만 -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라는 데뷔곡에는 이미 배철수씨의 지금까지 인생을 예언했던 것 같네요. 지금까지 20년간 철 들지 않고 살아 왔으니, 앞으로도 최소 20년간은 철 들지 말고 사세요. 나도 이제부터라도 철 들지 않고 살아가고 싶은데 될까요. 앞으로 철 없이 살려고 노력해 볼께요. //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오피니언
오명균
2010-02-28 20:05